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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colbgcolor=#0065bd> 스코틀랜드 알바 왕국 국왕 룰라흐 막 길레 쿰가인 Lulach mac Gille Coemgáin | |
이름 | 스코틀랜드 게일어: Lulach mac Gille Coemgáin (룰라흐 막 킬레 쿰가인) |
출생 | 1031년경 |
사망 | 1058년 3월 17일(향년 25~26세) |
재위 | 알바 왕국 국왕 |
1057년 8월 15일 ~ 1058년 3월 17일 | |
부모 | 아버지: 길레 쿰가인 막 말 브리티 어머니: 그루오크 잉겐 베터 |
자녀 | 말 스네크타이, 성명 미상의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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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전신인 알바 왕국 제20대 국왕. 모레이 왕조 2번째 국왕이다.2. 생애
1031년경 모레이의 모르마르[1]인 길레 쿰가인 막 말 브리티와 보이테 막 키나다[2]의 딸 그루오크 잉겐 베터의 아들로 출생했다. 아버지 길레 쿰가인 막 말 브리티는 1020년 형제 말 콜룸 막 말 브리티와 함께 백성을 선동해 당시 모레이의 모르마르이자 막 베하드의 아버지인 핀들라크 막 루어드리를 살해하도록 했다. 이후 모레이 모르마르에 오른 형제 말 콜룸 막 말 브리티가 1029년에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모레이 모르마르가 되었다.1032년, 길레 쿰가인 막 말 브리티가 거주지에서 일어난 화재로 수행원 50명과 함께 산 채로 불에 타 죽었다. 일부 학자들은 말 콜룸 2세가 유력한 왕위 계승자인 그를 질시해 음모를 꾸며서 그를 암살했다고 주장했고, 다른 학자들은 막 베하드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방화를 저질렀다고 추정한다. 이후 막 베하드가 모레이의 모르마르가 되었고, 룰라흐의 어머니인 그루오크 잉겐 베터는 막 베하드와 재혼했다.
1040년 막 베하드가 알바 국왕 돈카드 1세의 모레이 침공을 물리치고 돈카드 1세를 처단한 뒤 알바 국왕이 되었다. 이후 막 베하드와 그루오크와의 사이에서 자녀가 없었기에, 룰라흐가 막 베하드의 의붓아들로서 차기 국왕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던 1057년 8월 15일, 막 베하드가 룸파난 전투에서 노섬브리아의 지원을 받은 돈카드 1세의 아들 말 콜룸 3세와 맞붙었다가 전사했다. 그 후 막 베하드의 추종자들이 룰라흐를 새 국왕으로 옹립했다. 이는 막 베하드가 전사한 후에도 그의 추종자들이 말 콜룸 3세를 제쳐놓고 룰라흐를 왕으로 세울 만큼 여전히 강력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룰라흐의 통치는 얼마 가지 못했다. 1058년 3월 17일, 그는 스트라스보기의 라이니 인근 에시에서 말 콜룸 3세에게 피살되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포던의 존은 그가 전투 도중에 전사했다는 전승과 습격을 당해 죽었다는 전승을 밝혔으며, <티거나흐 연대기>는 그가 배신당해 죽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유해는 아이오나 섬 수도원에 안장되었다는 이야기와 에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묻혔다는 이야기가 동시에 전해진다.
룰라흐는 두 자녀를 두었다. 아들 말 스네크타이는 1058년부터 1078년까지 모레이의 모르메르를 지냈지만, 1078년 말 콜룸 3세의 공세로 모레이를 완전히 빼앗기고 수도원으로 은퇴해 1085년에 사망했다.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딸은 말 스네크타이의 뒤를 이어 모레이 모르메르가 된 에이드의 아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