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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colbgcolor=#0065bd> 스코틀랜드 알바 왕국 국왕 카우산틴 1세 Causantín I | |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 야코브 데 베트 2세(Jacob de Wet II)가 그린 상상화. | |
이름 | 스코틀랜드 게일어: Causantín mac Cináeda (카우산틴 막 키나다) 영어: Constantine I (콘스탄틴 1세) |
출생 | 836년경 |
사망 | 877년 (향년 40~41세) |
재위 | 알바 국왕 |
862년 ~ 877년 | |
부모 | 키나드 1세 |
형제자매 | 아드 막 키나다 |
자녀 | 돔날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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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전신인 알바 왕국 제3대 국왕. 키나드 1세의 아들이자 돔날 1세의 조카로, 돔날 1세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재위 기간 동안 이교도 대군세를 맞아 분투했지만 끝내 바이킹에게 목숨을 잃었다.2. 생애
<알바 왕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836년에 출생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알바 왕국 초대 국왕 키나드 1세이고, 형제로 아드 막 키나다, 마엘 무이레[1], 스트래스클라이드 국왕 룬의 아내가 된 성명 미상의 누이가 있었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일부 학자들은 그녀가 픽트족의 공주였다고 주장하지만, 이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사료는 없다.862년 4월 13일, 숙부이자 제2대 알바 국왕 돔날 1세가 사망한 뒤 왕위에 올랐다. 후대 사료는 그를 알바의 왕이라는 칭호로 부르지만, 동시대의 <얼스터 연대기>는 그를 '픽트족의 왕'이라고 지칭했다. 이 칭호는 키나드 1세와 그의 직계 후계자들이 픽트족이 거주하는 모든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음을 의미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멀리까지 영역을 확장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그의 치세 동안, 브리튼섬에 대한 바이킹의 활동이 절정에 이르렀다. 일명 이교도 대군세로 알려진 이 사건은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라는 위대한 바이킹이 잉글랜드 노섬브리아에서 붙잡혀 국왕 엘라 2세에게 처형당하자 그 아들들이 복수를 위해 쳐들어가면서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라그나르의 아들들인 약골 이바르, 흰 옷 할프단 등이 이끄는 바이킹들은 잉글랜드 동남부의 동앵글리아 왕국을 쳐서 굴복시킨 뒤 노섬브리아 남부를 점령하고 노섬브리아에 맹공을 퍼부어 국왕 엘라 2세를 붙잡아 산 채로 등을 가르고 등가죽을 펼쳐 전시하는 피의 독수리 형벌로 처형했다. 그 후 바이킹들은 브리튼 곳곳에 정착지를 마련해서 주변 지역을 침략했다.
알바 왕국이 위치한 스코틀랜드 역시 바이킹의 공세에 직면했다. 866년, 카우산틴 1세는 더블린의 데인족 왕 올라프 1세의 침략을 격퇴했다. 870~871년, 올라프 1세는 이바르와 함께 재침해 픽트족을 포함한 많은 포로를 사로잡았다. 특히 4개월간의 포위 공격 끝에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의 수도인 덤버튼을 함락했다. 얼스터 연대기에 따르면, 스트래스클라이드 국왕 아르트갈이 바이킹에게 사로잡힌 뒤, 카우산틴 1세의 사주로 살해되었다고 한다. 아르트갈 사후 스트래스클라이드의 왕위에 오른 이는 카우산틴 1세의 매부인 룬이었다. 알바 왕국은 이를 통해 스트래스클라이드 왕국까지 영향권에 넣는 데 성공했다.
알바 왕의 연대기에 따르면, 올라프 1세는 874년경 카우산틴 1세와 장기간 전쟁을 치르던 중 전사했다고 한다. 875년, 할프단 왕이 이끄는 요크 왕국의 바이킹들이 알바 왕국을 침공하여 달러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픽트족과 게일족을 격파했다. 카우산틴 1세는 이 전투에서 살아남았지만 아솔의 고지대로 후퇴해야 했고, 동중부 저지대는 1년간 바이킹에게 접수되었으며, 그 지역에 살던 수많은 픽트족이 학살당했다.
얼스터 연대기에 따르면, 카우산틴 1세는 876년 파이프 해안가의 'inber dub fáta'(길고 어두운 강어귀)로 불러는 장소에서 데인족과 전쟁을 치르다가 죽었다고 한다. 알바 왕 연대기에 따르면, 카우산틴 1세는 877년에 죽었다고 한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바이킹에게 체포된 뒤 크레일 인근의 한 동굴에서 심한 고문을 받고 죽었다고 한다. 그의 유해는 아이오나 섬에 있는 왕릉에 묻혔고, 동생 아드 막 키나다가 집권했지만 1년 후 사망했다. 이후 기리크 막 둥갈과 오하드 막 룬이 공동 통치했다.
그의 아들 돔날 2세는 889년부터 900년까지 알바 국왕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