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Liu Rifle 劉慶恩將軍半自動步槍 류칭언장군 반자동보총 | |||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종류 | <colcolor=#000,#fff>반자동/볼트액션 겸용 소총 | ||
원산지 | [[중화민국 북양정부| ]][[틀:국기| ]][[틀:국기| ]] | ||
{{{#!folding 【펼치기 · 접기】 | 이력 | ||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역사 | <colcolor=#000,#fff>1914년~1918년 | ||
개발 | 류칭언 | ||
개발년도 | 1914년 | ||
생산 | 한양 조병창 프랫 & 휘트니 | ||
생산년도 | 1914년~1918년 | ||
사용국 | [[중화민국 북양정부| ]][[틀:국기| ]][[틀:국기| ]] | ||
제원 | |||
탄약 | 7.92×57mm S-Patrone | ||
급탄 | 6발 들이 일체형 탄창 | ||
작동방식 | 가스 작동식, 회전 노리쇠 스트레이트-풀 볼트액션 | ||
총열길이 | 647mm | ||
전장 | 1,225mm | ||
중량 | 4.7kg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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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orgotten Weapons의 리뷰 |
2. 설명
작동 방식은 후대의 게베어 41이나 시제형 M1 개런드와 비슷한 가스 트랩식으로, 덴마크인이 설계한 방 소총(Bang rifle)의 개량형 버전이었다. 당시에 반자동소총(Self-Loading Rifle)은 손에 꼽힐 정도로 희귀했던 시기였다. 그 중에서도 제식 소총탄을 쏘는 현역 반자동소총은 아직 몬드라곤 소총밖에 없던 때였으니 당시의 중국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선진적인 소총. 급탄 방식을 볼트액션-반자동으로 변환하는 방법은 총구에 위치한 실린더를 돌리는 것으로, 반시계방향은 볼트액션, 시계방향은 반자동이다.[1]3. 역사
개발자 류칭언 장군 |
1916년 9월 8일, 2종류의 시제 소총이 베이징의 난유안 시험장에서 테스트를 받았으며, 각각 한양 조병창에서 만든 수제 스프링과 프랫 & 휘트니 사의 기계로 만든 절삭 스프링을 사용한 소총이었다. 여기서 앞서 말한 공작기계 계약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듯이, 한양 조병창의 스프링은 급탄 사이클을 안정적으로 반복하기엔 너무 힘이 약해 부적합 판정을 받았고 당연히 프랫 & 휘트니의 스프링은 그런 문제가 없어서 채택되었다. 그럼 이제 기계만 중국에 도착하면 되는데, 시기가 시기다 보니 기계의 준비, 조달이 늦어졌고, 당연히 자국엔 없는 외제 기계에 생산을 의존해야 했던만큼 개발 속도도 느렸다. 계약대로면 기계가 진작 도착했어야 할 시기에 부품 품질이나 비교하는 테스트를 한 것도 그 이유.
결국 전쟁이 끝난 후인 1919년 여름, 드디어 기계들을 실은 배가 출발하나 싶더니, 중국으로 가는 도중 배가 가라앉아버렸고 설상가상으로 개발자인 류 장군마저 군 회의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져버려[2] 몸의 절반이 마비되는 바람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들이 다시 준비되어 상하이에 도착했지만, 개발을 주도해야 할 사람이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데다 평소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군벌들에 의해 프로젝트가 방치되면서 혁신적인 소총 제작을 밀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고, 쓸모없어진 공작기계들은 1921년까지 창고에 처박혀 있다가 새로 설립된 공시앙 조병창으로 전달되어 게베어 1898의 복제품을 만드는데에나 쓰였다. 남은 시제품들은 희귀 총기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신세가 되었고, 최대 20정 가량이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남아있는 실물은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한계
상당히 이른 시기에 개발되었기에 시대를 앞선 총기로 보일 수 있으나, 사실 1910년대에 반자동소총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실용화가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소총 중 그나마 성공적이라고 할 만한 게 RSC 1918이었고, 이것도 종전 직전에서야 생산되기 시작해서 생산량이 부족했다. 성공적인 반자동소총은 2차 대전기에 들어서야 등장했다. 원본인 방 소총조차 결국 1929년까지 개발이 진행되었다가 폐기된 마당에, 공업 기술이 열악하고 및 산업 인프라가 미미하여 생산에 필요한 강철조차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고 평가받은 중국에서 지속적인 개량이 필요했던 총기가 대량으로 생산되는건 불가능했을 것이다.설계에도 과도기적인 취약점이 있는데, 자동장전소총임에도 보통 (수동) 발사형식을 별도로 만들어 둔 것은 개발 당시까지만 해도 전세계의 서구식 군대에 널리 퍼져 있었던 일제사격 전술을 위한 것, 혹은 자동장전 기능이 고장날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가스 트랩 방식은 구조가 복잡한 데다 신뢰성이 떨어져 후대에는 사장되는 방식이고,[3] 애초에 규격대로 제작되지 못해 초보적인 고장을 많이 일으켰던 한양 생산품을 제외한 P&W 생산품은 반자동으로 사격했을 때 6개 클립을 고장 없이 발사했지만, 수동으로 조작할 경우 이중급탄[4] 문제가 자주 발생했다. 또한 가스트랩식 특유의 강한 반동 때문에 속사가 어려웠으며, 탄약의 품질이 균일하지 못하면 (만들어지는 가스도 당연히 균일하지 못하니) 장전하지 못하는 문제가 모든 시험용 소총에서 발견되었다. 볼트액션 소총에 익숙한 병사들이 노리쇠에 얼굴을 지나치게 가까이 대는 문제가 있었으나 이는 총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이 필요한 것이었다.
시험 후 군에서 의논된 사항들도 이 소총의 설계상, 지정학상 한계를 잘 보여준다.
- 현재 제식 소총보다 무겁다.
- 생산을 위한 강철은 무조건 수입해야 한다.
- 원재료 비용이 현용 소총에 필요한 것보다 2위안 더 비싸다.
- 가스 트랩에 먼지나 진흙이 끼면 어떤 영향을 주는지, 기능 전환이 전장에서 얼마나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등은 실제 배치 후에나 알게 될 것이다.
- 총열 부식[5]은 얼마나 일찍 발생할 것인가? 독일제 소총의 경우 약 5,000발 이후 부식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노리쇠가 과열되면 고장을 일으킬 것인가?
- 뒤쪽이 지나치게 긴 소총으로 표적획득과 조준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결론적으로 설계 자체의 신뢰성의 한계, 원자재와 공작기계, 탄약 등 대부분의 중요 자원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지정학적 상황, 그리고 프로젝트 지도자인 류칭언 장군의 비운의 사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더 이상의 개선을 진행하지 못하고 사라진 20세기 초의 반자동소총 시제품이라 볼 수 있다. 만일 류 장군이 건강하게 생존했더라면 개량을 거듭하며 더 쓸만한 소총이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와 경쟁 관계였던 군벌들이 많았으며 이전보다 더 수입에 의존하는 제작과정이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었음을 감안하면 예산과 시간을 더 받을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가스트랩 방식을 사용하는 후대의 유사한 반자동소총들은 수동 전환 기능을 제거하거나 아예 다른 작동방식으로 바꾸는 등 노선 자체를 갈아탔다. 게베어 41도 류장군 소총처럼 가스 트랩 방식과 반자동/볼트액션 전환 기능이 적용되었는데, 1910년대의 중국에 비해 공업 기술이 훨씬 발달한 40년대의 독일에서 개발되었음에도 문제가 많았으며, 그나마 발터 사의 모델의 경우 마우저 사의 모델과 달리 요구 조건 중 하나였던 작동 방식 전환 기능을 무시한 덕분에 채용되었으나, 가스 트랩 방식의 한계는 여전했기에 단행정 가스 피스톤 방식으로 전환한 게베어 43으로 개량해야 했다. 또한 반자동 소총 중 개발 시기가 이른 축에 속하는 M1 개런드도 시제형에서 가스 트랩 방식을 채택했다가 장행정 가스 피스톤 방식으로 교체한 후에야 신뢰성이 향상되었다.
5. 매체에서
- 배틀필드 1
In The Name of Tsar DLC에서 의무병의 주무기로 추가되었다. 6발 클립 때문에 젤프스트라더 1906의 상위호환으로 여겨지는데다가, 반자동 모드와 볼트액션 모드를 전환하는 기능도 갖추었다. 반자동 모드와 볼트액션 모드의 탄환 대미지가 다른데다가, 6발은 반자동소총으로는 너무 적은 장탄수라 의무병으로 볼트액션 뽕을 느끼려는 소수 유저들이 주로 들고 다닌다.
- Hearts of Iron IV
중국 군벌의 생산 가능 총기로 등장한다.
6. 참고
Forgotten Weapons에서 이 소총의 시험 보고서를 입수하여 PDF 문서로 옮겼다. 중국어 영어7. 둘러보기
보병장비 둘러보기 | |||
근대 (~1914) | 대전기 (1914~1945) | 냉전기 (1945~1991) | 현대전 (1992~) |
[1] 현재 남아있는 시제품에는 실린더에 이를 각각 普/自(각각 普通/自動의 의미)로 표기하고 있다. 당시에는 수동으로 장전해야 하는 볼트액션 방식이 보편적이었으니 볼트액션 방식이 '보통'이고, 자동으로 장전되는 방식이 '자동'인 셈.[2] 배 침몰 사건이 유력한 원인으로 추측된다.[3] 총구 끝의 캡에 팽창하는 가스가 차면 그것이 총열 아래의 밀대를 끌어당기고, 그 밀대는 캠에 연결되어 지렛대 원리로 노리쇠를 걷어차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전달 도중 에너지를 많이 상실한다.[4] 하나씩 탄창에서 올라와 노리쇠에 밀려나가야 할 탄이 두 개가 튀어나와 동시에 약실에 들어가려 함으로써 발생하는 고장. 개발 과정에서는 보통 탄창의 설계 오류로 자주 발생한다.[5] 탄환과 강선 사이의 좁은 틈으로 가스가 새어나가 총강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발생하는 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