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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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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고대3. 중세4. 근세5. 근대6.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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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몬테네그로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

2. 고대

6세기동로마 제국황제 헤라클리우스의 권유로 세르비아인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아드리아 해 해안과 세르비아 중서부에 5개의 공국을 형성했는데, 현 몬테네그로 지역에 그 중 하나인 두클랴(Дукља)라는 공국이 있었다.

3. 중세

파일:9세기 세르비아 공국들.png
9세기 세르비아 공국들 (오른쪽의 회색 영역은 세르비아(Србија) 혹은 라슈카(Рашка), 왼쪽은 북쪽부터 순서대로 파가니야(Паганија), 자후믈레(Захумље), 트라부니야(Травунија), 두클랴(Дукља)이다)

두클랴는 10세기 중반 세르비아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라슈카가 동로마 제국에 정복당해 직할령으로 편입되자, 세르비아계 공국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고 콘스탄틴 보딘(Константин Бодин, 재위 1081~1099)의 재위 하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보딘 사후 몰락하다가 세르비아 왕국 네마니치 왕가(Немањић)의 초대 군주 스테판 네마냐(Стефан Немања, 재위 1166~1196)의 지배하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14세기 스테판 우로시 5세(Стефан Урош V, 재위 1355~1371)의 죽음 이후 네마니치 왕가의 대가 끊기자 제타 공국(Кнежевина Зета)으로 독립했다. 제타 공국은 정교회를 믿었던 네마니치 왕가와의 차별화를 위해 가톨릭을 국교로 채택했다.

4. 근세

이후 1498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점령지의 행정을 지방 엘리트들의 개종과 예니체리 징집으로 포섭하여 한두세대 정도의 시간을 두고 중앙의 통치 아래로 끌어 오는 걸 주 정책으로 삼았다.[1] 그런데 몬테네그로 지역은 일단 자체적인 지형만으로도 제대로 다스리기 더럽게 힘든 지형이고, 이 지형이 또 역사적 상황과 시너지 효과를 내어 오스만 제국의 발칸 반도 정복 과정에서 끝까지 오스만 체제를 거부한 발칸 반도 공국의 유랑민들이 대거 몰려 들어와 리즈 시절의 오스만 제국에서도 그냥 손 놓아버리고 몬테네그로 토착 유지들에게 맡겨버렸고 결과적으로 정교회 주교들의 자치령이 수립되어 사실상의 독립을 영유했다.

1696년에 다닐로가 정교회 체티네 주교가 되었고, 세습제를 확립하면서 몬테네그로 구왕가인 '페트로비치네고시(Petrović-Njegoš) 왕조'의 시조가 된다. 물론 성직자는 자녀를 가지지 못하기에 숙질계승으로 세습했다.

1766년에는 표트르 3세를 자칭하는 남자가 나타나서 페트로비치네고시 가문의 바실리예 주교를 러시아로 쫓아내고 지배권을 획득하기도 했는데, 그는 사실 '작은 슈체판(Šćepan Mali)'이라는 농부였다. 하지만 상당히 유능한 인물로 오스만과 베네치아의 공격을 물리치고, 기겁해서 제거하려던 러시아로부터도 결국 인정을 받아 한동안 몬테네그로를 잘 다스리다가 1773년 오스만에 암살당했다. 그리고 1782년 다시 페트로비치네고시 가문에서 페타르가 주교가 된다.

5. 근대

그렇게 페트로비치-네고시 가문의 숙질간 세습 주교제가 이어지다 1852년 다닐로 2세 주교가 세속군주임을 선언하고 몬테네그로 공국을 선언, 다닐로 1세가 된다. 하지만 딸만 하나를 둔 채 1860년 요절하여 또 숙질계승으로 니콜라 1세가 즉위한다.

니콜라 1세는 1918년 세르비아에게 폐위될 때까지 58년간(몬테네그로 공으로 50년, 1910년 몬테네그로 왕국 선포 후 왕으로 8년) 재위하면서 12명의 자녀를 낳아 10명이 성인으로 자라 이탈리아, 세르비아, 러시아의 왕족들과 혼인관계를 맺어서 "유럽의 장인"이라고 불렸다.[2] 하지만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선 몬테네그로라는 나라도 있었냐?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를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던 나라였다.[3]

6.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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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국이었던 몬테네그로는 1910년몬테네그로 왕국을 선언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동맹군에게 국토가 점령을 당하고, 전쟁이 끝나나 했더니 맏사위인 세르비아 국왕에 의해서 독립을 상실하고[4]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하여 1919년 1월 몬테네그로 내에서 녹백내전(녹군은 독립 진영, 백군은 친유고 진영)이 일어났으나 백군이 이겼다. 니콜라 1세와 몬테네그로 왕실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프랑스에 망명정부를 세웠으나, 1929년 니콜라 1세의 손자이자 왕실 수장 미하일로(1908-1986)[5]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합병을 인정하여 망명정부가 끝난다. 이 사람의 인생도 파란만장한데 제2차 세계대전프랑스에서 가난하게 살고있던 와중에 추축국 측이 괴뢰국의 대표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고, 전쟁 후 티토에게서 두둑한 종신연금을 받았지만, 결국 티토 정권에 실망한 뒤 프랑스에 살면서 반티토 활동을 하다가 죽었다.

그러다가 1940년 유고슬라비아가 추축군에 의해 점령되며 몬테네그로는 이탈리아 왕국병합되었다. 몬테네그로인들은 이탈리아군에 대항하여 봉기하지만, 이탈리아는 이를 진압하고 이 과정에서 몬테네그로인들을 학살했다. 1943년 이탈리아는 물러갔고, 나치 독일이 1년간 지배하다가 1944년 해방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몬테네그로도 독립 단위인 몬테네그로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원으로 다른 나라들이 다 떨어져나갈 때도 신유고 연방, 세르비아 몬테네그로(Државна Заједница Србија и Црна Гора,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가연합, 통칭 신 유고 연방)를 구성했지만 신 유고연방에서 코소보 문제가 불거지는 와중에 분리 떡밥이 나왔다. 사실 몬테네그로는 유고슬라비아의 해체시기에도 끝까지 남을 정도로 세르비아에 대해서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지만,[6] 1990년대의 전범국가이기도 한 세르비아와 같이 있다가 제재와 폭격을 같이 당하다보니 독립 노선이 대두하게 됐다.

결국 2003년 신유고 연방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바뀌면서 3년 뒤에 몬테네그로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고, 결국 국민투표로 2006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했다.[7] 이로써 세르비아는 신유고 연방 시절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해안지대였던 몬테네그로를 잃고 내륙국으로 전락했다.

이후 몬테네그로는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여 세르비아의 뒤통수를 쳤다.# 이게 다 세르비아의 자업자득인 셈. 다만 세르비아인들도 바보는 아니어서 2010년대쯤부터는 자신들이 이웃들과 함께 서로 싸질러 놓은 사고의 규모와 발칸 반도를 넘어선 코소보 문제의 민감함을 모르는게 아닌 탓에 몬테네그로의 결정을 섭섭해하면서도 크게 비분강개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2015년부터 다음해까지 몬테네그로에서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반정부 시위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 2016년 10월 16일 총선 당일에 세르비아 헌병 대장을 포함하여 20명의 세르비아 및 몬테네그로 국적 사람들이 쿠데타 혐의로 체포되었다. 몬테네그로가 서방으로 돌아서는 것을 막기 위한 세르비아와 러시아의 음모로 보고 있으며, 러시아는 쿠데타 음모 가담에 대하여 부인했다.

이후 몬테네그로는 미국의 찬성 주도로 NATO에 공식적으로 가입했고(러시아는 이에 반발했다), 2019년에 기소된 이들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1] 오스만 제국에서는 현지 지배층의 개종과 그 자제들을 제국의 행정, 군사 엘리트로 끌어 넣는 간접 통치 기간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부분 토착 귀족과 유지들을 개종시키고 이들의 자식들을 코스탄티니예로 보내며, 이 와중에 끝까지 반항하는 세력은 철저하게 갈아 버린 다음에 밀레트 제도에 따라 농촌 단위로 농민들을 묶어 자치를 실시한다. 그런데 몬테네그로와 보스니아의 일부 지역은 워낙 월경지적 성격이 강하고, 지형이 험난하며, 제국 중앙 정부에 포섭당할 생각도 없어서 끝까지 이 간접 통치의 과도기가 결국 영구적으로 정착해 버렸다. 오스만 제국령 유럽 밖을 보자면 바르바리 해적들이 자치하던 북아프리카 영토나 맘루크들이 지배하던 이집트 등이 추가된다.[2] 또다른 당시 유럽의 장인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 이탈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왕비 엘레나가 니콜라 1세의 넷째딸이다.[3] 김영사의 앗! 시리즈 혁명이 이글이글에선 20세기 초만 해도 몬테네그로란 나라가 유럽에서 미지의 나라였다고 나왔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중세풍 옷차림이나 여러가지 생활양식이 남아있기까지 했다.[4] 세르비아 페타르 1세의 왕비가 니콜라 1세의 맏딸 조르카였지만 1890년에 셋째아들을 사산하고 사망.[5] 몬테네그로 왕가의 현 당주 니콜라 2세의 아버지다.[6] 사실 기원을 따지고 보면 세르비아인과는 같은 민족이었고 문화도 공유했다. 민족 정체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근대부터.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공산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세르비아인이어도 몬테네그로에 살면 몬테네그로인이라는 식으로 인구조사에 응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본인 정체성을 세르비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몬테네그로 인구의 30% 가까이 된다.[7] 특이하게 독립 가결선이 50%가 아닌 55%였는데, 55.5%의 찬성표가 나와서 독립했다. 만약 부결되었다면 2009년에 한 번 더 독립 투표를 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월드컵 도중에 독립했는데(2006년 6월), 월드컵에서는 마지막으로 축구팀 세르비아-몬테네그로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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