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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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5년 5월 11일 브래드포드 시티 구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당시 경찰과 소방관, 선수들이 힘을 합쳐 관중들을 대피시켰으나 관중 56명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하고[1] 265명이 부상을 입은 참사로 힐스버러 참사, 헤이젤 참사와 함께 유럽 축구계의 흑역사이자 영국에서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축구장 화재다.[2]2. 역사
브래드포드 시티의 홈구장인 밸리 퍼레이드는 1911년에 지어진 이래 줄곧 목조 건물이었다. 구장의 지붕, 테라스, 의자 등 거의 모든 부분을 목조로 지었다. 그리고 목조 건물은 담뱃꽁초로 인한 화재가 나기 직전까지 그대로였다.[3] 또 1981년에 영국 보건안전청에서 해당 스타디움에 위기 상황 시 제대로 된 계획이 있는지 조사했으나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이후 조사에서도 "나무로 된 경기장에 먼지등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담배 하나라도 떨어진다면 위험하다." 고 적혀 있었다.사고 전까지만 해도 1985년은 브래드포드 시티에게 가장 중요한 해였다. 당시 트레버 체리가 이끌던 브래드포드 시티는 3부 리그에서 우승하는 데 성공해 56년만에 최초로 트로피를 받았다. 덕분에 1937년 다음에 영국 축구 2부 리그로 오르는 영광을 거머쥐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85년 5월 11일 링컨 시티와의 3부 리그 우승 기념 경기가 열렸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11,076명의 관중이 모인 가운데 경기는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듯 싶었으나 전반전이 끝나기 5분 전인 오후 3시 40분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관객 에릭 베넷(Eric Bennett)이 경기장 G구역에 버린 담배꽁초가 꺼지지 않고 관중석 바로 아래의 쓰레기 더미에 불을 붙였다. 처음 불이 났을 땐 관객들은 작은 사건이 하나 터졌다고 생각했다. 베넷(Bennett)은 불을 끄려고 커피를 부었으나 불은 꺼지기는커녕 테라스로 번지더니 구장에 버려진 신문지, 나뭇가지 등으로 인해 삽시간에 목조 지붕까지 번져 대화재가 발생했다. 경기장에 있던 경찰들은 경기를 중단시켰다. 불을 끄려 소화기를 찾는 이들도 있었으나 소화기는 없었고[4] 밸리 퍼레이드 스탠드에 있던 약 3,000여명의 관중들은 빠르게 대피하기 시작했다. 불은 더 커지기 시작하더니 방수를 위해 역청을 발라 둔 지붕에까지 번졌다.
더 큰 문제는 3,000여명의 관중이 다 빠져나가기엔 시간이 너무 적고 길이 좁던 것이다. 관중석 출입구는 관중석 꼭대기에 있었다. 출입구까지는 불길속으로 뛰어들어야 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관중들은 바로 앞의 경기장을 택했다. 관중석은 경기장까지는 약 1.5m 높이의 담 위에 있었고 그 담을 넘은 뒤엔 또 1.5m의 광고판을 넘어야 경기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훌리건을 막으려 설치한 펜스는 메인 관중석에 설치되어 있지 않아 담을 겨우 넘은 관객들은 경기장으로 피신한 것이다.
소방관은 신고 4분 만에 경기장에 도착했고 경기장에서 관중들을 관리하던 경찰과 소방관, 선수[5]들이 힘을 합쳐 신속히 관중들을 대피시켰으며 경기는 중단되었다.
3. 피해
안타깝게도 관중 56명이 사망했다. 브래드포드 시티 서포트는 54명, 링컨 시티 서포터는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중 3명은 화장실을 통해 빠져나가려다 변을 당했고 27명은 경기장 K구역의 관중석과 경기장 사이서 발견되었다. 나머지는 윗쪽 출입구까지 갔으나 경기장을 나가지 못하고 사망했다. 사망자 중엔 질식사 외에 빠져나가려던 사람들에게 밟혀 압사당한 사례도 있었다. 또 이 사고로 브래드포트 시티 클럽 전 회장이었던 샘 퍼스(Sam Firth, 향년 86세)가 숨졌다. 그는 가장 나이 많은 사망자였고 가장 어린 사망자는 11세였다. 또한 26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브래드포드 시티의 테리 요라스(Terry Yorath)는 관중석의 가족 대피를 돕다 부상을 입었다.
4. 사고 이후
사고 이후 피해자를 돕기 위한 기금이 설립되었고 약 300만 파운드가 모금되었다.브래드포드 시티는 경기장이 다시 지어지기까지 다른 경기장을 써야 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법으로 경기장을 불이 잘 붙지 않는 소재로만 짓도록 새롭게 정해져서 밸리 퍼레이드 구장을 비롯한 모든 구장이 목재 구조를 버리고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그래서, 나무로 지어진 경기장은 안전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문을 닫았다. 하지만 대다수가 안전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아예 뜯어 고쳐야만 했다. 하지만 경기장이 다 완공되기까지는 1990년대까지 기다려야 했다. 또 새로 지어진 밸리 퍼레이드 경기장 한쪽엔 추모비가 들어섰고 사망자의 이름과 당시 나이가 새겨졌다.#
4명의 경찰관과 2명의 관객이 대피를 도운 덕에 여왕의 용감장을 받았다. 그리고, 브래드포드 시티는 1986년 12월 다시 밸리 퍼레이드로 돌아왔다.
2015년 4월 23일, 당시 화재로 할아버지와 삼촌, 아버지, 그리고 삼촌을 잃었던 마틴 플레처는 사고를 다룬 책을 냈다.# 같은 해 5월 11일엔 사고 30주년을 맞이해 BBC에서 사고 당시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Missed Warnings: The Bradford City Fire" 이 방영되었다.
다만 불이 나도록 만든게 호주인 에릭 베넷이 맞냐는 논란이 아직도 있는데 베넷은 이미 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진실은 누구도 모르게 되었다. 2015년 4월 17일 은퇴한 영국 형사인 레이몬드 팔코너는 화재 30주년을 맞아 지역 언론인 브래드포드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불을 낸 사람이 호주에서 브래드포드에 사는 조카를 만나러 왔다가 사고 당일에 경기를 관람한 에릭 베넷이라고 지목했는데, 그 때까지도 영국에 살고 있던 베넷의 조카 레슬리 브라운은 팔코너의 인터뷰 내용에 반발하며 "삼촌이 담배를 피다가 불을 냈다는 건 거짓말이나 들고 있던 커피로 불을 끄려고 했던 건 사실"이라며 담배 건에 대해선 정확한 증거를 보이라고 부정했다. 그 외에는 누군가가 경기장에 연막탄을 던졌고 그게 화재로 번졌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것과 관련된 목격자도 단 1명밖에 없어 정확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