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내전 الحرب الأهلية الصومالية Somali Civil War | |||
전황 지도[1] | |||
■ ● 소말리아 정부군 영토 ■ ● 알 샤바브 세력 점령 영토 ■ ● 소말릴란드 점령 영토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점령 영토 ┄ 국경선 | |||
기간 | |||
1991년 11월 27일 ~ 진행 중 (침공 개시일로부터 [dday(1991-11-27)]일 / [age(1991-11-27)]주년) | |||
장소 | |||
소말리아 전역[2] | |||
교전 국가 및 세력 | |||
[[소말리아| ]][[틀:국기| ]][[틀:국기|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3] | [[소말릴란드| ]][[틀:국기| ]][[틀:국기| ]][4]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틀:국기| ]][[틀:국기| ]] | |
지원 국가 및 세력 혹은 지원 의사 표명 국가 및 단체 | |||
[[튀르키예| ]][[틀:국기| ]][[틀:국기|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 |
지휘관[5] | |||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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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양측 미상[6] | |||
전황 및 영향 | |||
시아드 바레 정권의 와해 최고혁명위원회의 몰락 상태 통합 급진 이슬람주의자와 정부 간의 갈등 소말릴란드의 독립[7] 2012년 새 정부의 출범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소말리아에 여행금지령 선포[8] |
피해 상황(추정치)[9] | |||
사상자 최소 30만 명[10] ~ 100만 명 이상[11] 실향민 최소 110만명 발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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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1년부터 진행 중인 소말리아의 내전에 관한 문서이다.2. 배경
소말리아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왕국의 식민지였으며, 당시에는 에티오피아와 도매금으로 묶여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라고 불렸다. 한편 현재의 소말릴란드 지역은 영국의 식민지 영국령 소말릴랜드였으며 지부티는 프랑스의 식민지 프랑스령 소말릴란드였다. 이후 이탈리아가 패전하자 이탈리아령 소말리아 지역은 영국이 군정을 실시했다가, 1950년부터는 이탈리아가 재통치하게 되었다. 1960년에 영국령 소말릴랜드가 먼저 독립, 같은년도 7월에 이탈리아령 소말리아가 독립하면서 소말릴랜드와 소말리아가 합병하여 현재의 소말리아가 탄생하였다. 소말리아는 현재 내전으로 인한 무정부 상태이므로 여행 금지 국가이다.3. 전개
소말리 청년연맹의 셰르마르케가 초대 대통령을 맡았으며, 대소말리아주의를 골자로 하는 외교정책이 수립되었다. 이 정책은 소말리아인 거주지까지 소말리아의 영토에 포함시키려는 정책으로, 에티오피아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국경에서 산발적인 전투가 장기간 발생하였다.1969년에 셰르마르케 대통령을 암살하면서 쿠데타로 집권한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장군은 자기 씨족 위주의 정책을 펼치며 22년간 장기집권 하기에 이른다. 시아드 바레는 국내의 정치적 불만을 대소말리아주의를 내세워 주요 정치적 관심을 에티오피아의 오가덴 지역으로 돌렸고, 군사적 요충지라는 이점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는 친소국가로 발전해나갔다.
오랫동안 바레 장군이 독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고속도로도 놓고 발전소, 항구, 공항, 축구장, 그리고 상하수도 시설도 확충하는 듯 그럭저럭 성장은 해나갔다.
그러나 친미국가이던 에티오피아에서 사회주의 쿠데타가 발생한 후 에티오피아가 친소국가가 되자 상황은 나빠지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소말리인들의 거주지를 두고 에티오피아와 벌인 오가덴 전쟁에서 쿠바와 소련의 개입으로 인해 에티오피아에게 깨지면서 상황이 나빠졌고, 때 마침 남미와 아프리카, 동유럽을 휩쓸었던 외채위기에 휘말리면서 소말리아 경제는 파탄상태에 이르렀다.
또한 이와중에 바레는 자신의 씨족[12]인 다로드-마레한 족에게만 권력을 몰아주었고, 다른 씨족들은 철저하게 차별하고 정치에서 배제시키면서 바레 정권에 대한 불만과 원한이 고조됐다. 결국 소말리아의 다른 씨족들과 반정부 세력들은 1987년 통일 소말리아 회의(United Somali Congress, USC)를 결성하여 바레 독재정권을 공격하면서 이후 소말리아는 사실상 USC 등 소말리아내 반군 세력들과 바레 정부군 간의 내전 상태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들은 1991년 1월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를 공격, 장악하는데 성공하고 바레의 정부군 세력들을 굴복시킴으로서 바레 정권을 전복하였다.[13] 자세한 내용은 소말릴란드 참고.
3.1. 내전의 시작
바레 정권을 몰아낸 것은 좋았지만, USC가 원래 여러 씨족과 단체들의 연합체였던 만큼 분열은 예견된 일이었다. 일단 알리 마디 무하마드가 임시정부 수반이 되었지만 USC를 이끌고 있던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와 권력 다툼이 생겼고 여기에 여러 씨족, 군벌들이 얽혀들어가면서 결국 본격적인 내전이 벌어지고 유엔이 개입하게 된다.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92년 평화유지 작전인 UNOSOM I(United Nations Operation in Somalia)를 시행한다. 계속되는 폭력과 내전으로부터 남부 소말리아의 안정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국제 연합은 군사연합을 구성하였다. 이는 1992년 12월에 소말리아에 입성하였으며, 리스토어 호프 작전은 국제 연합군의 성공으로 끝난다. 1993년 5월, 국제 연합군은 대부분 철수하고 UNOSOM II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아이디드는 UNOSOM II 체제를 그의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다. 1993년 6월, 아이디드의 군대가 UNOSOM II에 연관된 모가디슈의 파키스탄 군 기지를 공격하여 80명의 사상자를 낸다. 10월에는 블랙 호크 다운으로 유명한 모가디슈 전투에서 19명의 미군과 1000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였다. 결국 국제 연합군은 1995년 3월 완전히 철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이디드는 1996년 적대 군벌이 쏜 총탄에 맞아 모가디슈에서 사망한다.
3.2. 이슬람 군벌
2000년 과도국민정부(Transitional National Government)가 설립되고 아브디카심 살라드 하산이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된다. 2004년에는 케냐 나이로비에서 과도연방정부(Transitional Federal Government, TFG)가 설립되었다. 과도연방정부는 2011년 현재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는 소말리아의 유일한 정부이다.그러나 내전의 혼란상을 틈타 세력을 키운 이슬람법정연합(Islamic Courts Union)이 과도연방정부와 대립각을 보이면서 2006년 5월 내전이 다시 발발하였다. 2011년 과도연방정부는 알샤바브, 히즈불 이슬람 등 이슬람 군벌들과 싸웠고, 2011년 초까지만 해도 수도인 모가디슈조차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 2010년 연말의 판세
3.3. 정부군의 공세
소말리아 정부는 20년 만인 2012년 9월, 국내에서 새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9월 들어 소말리아 정부군과 케냐군은 남부지역 반군의 최대 거점도시인 키스마요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으며, 29일에 반군단체 알샤바브는 키스마요 기지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참고로 케냐군이 참전한 것은 이웃 나라에 대한 영향력 행사도 있지만 소말리아 해적 때문에 케냐 여러 섬까지 외국 관광객이 납치당하면서 자국 관광업까지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소말리아/해적 참조.2014년 10월, 소말리아군이 알 샤바브의 주 수입원인 남부 바라웨 항만을 탈환했다. 알 샤바브는 여기를 통해 석탄을 수출하면서 적어도 연간 2,500만 달러(265억여 원)를 벌어들여 왔다.#
미군이 소말리아에서 두 차례 공습을 감행해 이슬람 극단 무장세력 알샤바브 대원 37명을 소탕했다고 미국 아프리카 사령부가 2018년 11월 20일에 밝혔다.#
소말리아 정부군과 아프리카연합(AU) 소말리아 평화유지군(AMISOM)이 미들 주바 지역에서 합동으로 알샤바브 반군 소탕작전을 펼칠 계획이라고 찰스 타이 지투아이 AMISOM 부사령관이 2018년 12월 16일(현지시간) 밝혔다. AMISOM에 따르면 세력이 급속히 위축된 알샤바브 반군은 게릴라전 등 비대칭 전술에 의존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알샤바브가 무너진다고 해도 오랜 내전으로 국가 기능이 위축, 파괴되다시피한 소말리아인지라 과연 알샤바브의 토벌로 내전이 끝이 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4. 매체에서
- 소설 탈출은 당시 소말리아에 파견되었다가 탈출한 당시 주소말리아 대한민국 대사 강신성 씨가 쓴 책으로 대한민국과 북한 외교관들이 힘을 합쳐 모가디슈에서 탈출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 2021년 영화로 만들어져 제목명 모가디슈로 개봉되었다. 태영호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북한 외교관들은 대한민국 외교관들의 도움을 받은 데다 그 난리통에 극비문건인 난수책이 든 가방을 분실하기까지 했지만, 귀국한 북한 외교관들에게 김정일은 "살아 돌아 왔으니 다행"이라며 의외로 조용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다만 다른 외교관들은 딱히 불이익을 받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인지 김용수 대사 본인은 퇴직하였다. 김정일이 너그럽게 넘어갔다고는 하지만 일단 책임 자체를 묻긴 해야 하므로 김용수가 물러나는 것으로 끝낸 것으로 추정한다.
* 위의 모가디슈 탈출 실화는 2021년 11월 11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도 다루었다. 이제는 노년이 된 강신성 씨가 그때 그 북한 쪽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제는 성인이 되었을 당시 북한 외교관의 자녀들에게 용돈이라도 챙겨주고 싶다며 그리워하는 모습이 애틋한 여운을 남기는 에피소드.[14]
5. 여담
- 1993년 한국군 상록수부대를 유엔 국제평화유지활동을 위해 소말리아 내전에 파병했었다.#
6. 참고 문서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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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지도 확대하기[2] 다만 북서부 지방(소말릴란드)은 소강 상태다.[3] 소말리아 주재 아프리카 연합 과도임무단.[4] 두 세력과 다른 세력으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미국 세력에 포함된다.[5] 2009년부터의 지휘관부터 표시.[6] 정보가 미비하여 기록이 되지 않는 수준이다.[7] 독립 초기에는 이를 승인하는 국가가 없었으나, 이후 시간이 흘러 현재는 총 2개국에게 공식적 독립을 승인받은 상태이다.[8] 한국만 유일하게 소말리아 여행시 처벌제도를 도입했다. 물론 한국이 여행금지 처벌제도를 건 이유는 다들 알다시피...[9] 실제 수치가 아닌 추정치다. 좌측이 우크라이나 측(우크라이나군, 국제군단 + 우크라이나 민간인)의 추정 피해이고 우측이 러시아 측(러시아군, 도네츠크 인민 민병대, 루간스크 인민 민병대 + 러시아, 도네츠크, 루간스크의 민간인)의 추정 피해이다. 다만 각 군의 최대 피해는 상대 국가, 진영의 주장이므로 실제 피해보다 왜곡이 있을 수 있다.[10] SFG에서 추정한 수치.[11] AFP에서 추정한 수치는 50만 명.[12] 소말리아는 과거부터 전통적으로 씨족 사회이다.[13] 이 시기가 영화 모가디슈의 시대적 배경이 된다.[14] 왜 그런가하면 소말리아 정부군과 반군의 총격전이 오고가며 모두 죽을 마당에 이념을 떠나 남과 북의 외교관 일행들이 협동하며 탈출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