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7 18:57:41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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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일 제국 전쟁기.svg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 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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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Helmuth Johannes Ludwig von Moltke
파일:external/media-2.web.britannica.com/9940-004-5F9FBFF1.jpg
이름 Helmuth Johannes Ludwig von Moltke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1]
출생 1848년 5월 25일
프로이센 왕국
사망 1916년 6월 18일 (향년 68세)
독일 제국
복무 파일:독일 제국 전쟁기.svg 독일 제국군
최종 계급 파일:KHeer_OF9_GenOberst_(Bayern)_1918.gif 상급대장
주요 참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주요 서훈 붉은 독수리 대십자상
1. 개요2. 생애3. 기타

[clearfix]

1. 개요

일명 소(小) 몰트케. 그의 숙부인 헬무트 폰 몰트케와 구분하기 위하여, 이 사람은 소 몰트케, 그의 숙부를 대(大) 몰트케라고 흔히 칭한다.

1차 대전이 시작될 당시에 독일군을 지휘했지만, 마른 전투를 비롯한 초기의 주요 전투에 실패하였다. 그의 실책으로 독일은 속전속결로 승리할 기회를 놓쳤고, 이후 전쟁은 참호전으로 대표되는 4년간의 장기 소모전, 교착상태를 지속했다.

2. 생애

2.1. 초기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는 프로이센 왕국에서 1848년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큰아버지, 헬무트 폰 몰트케의 이름을 따라 헬무트라는 이름을 받았다. 1868년 프로이센군에 입대하여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참전하였다. 2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으며, 1875년부터 1878년까지 장군참모 과정을 밟기 시작하였다. 이후 프로이센 전쟁 대학에 입학하였고, 1880년에 졸업하였다. 1882년, 그는 자신의 큰아버지 헬무트 폰 몰트케의 부관이 되었다. 1902년 중장 진급과 함께 병참감이 되었다. 빌헬름 2세의 이 임명은 큰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1906년 빌헬름 2세에 의해 알프레트 폰 슐리펜 백작의 후임으로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 초기까지 그 직위를 지켰다. 몰트케는 군단급 부대에서 참모 보직을 맡은 적이 없었기에 그의 임명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슐리펜의 비망록에 남아있던 작전 계획을 실제로 실행한 당사자이고, 그가 수정한 슐리펜 계획이 실패한 것으로 인하여 흔히 비판받는다. 다만 그 전에 슐리펜 계획도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본질적으로 허점이 많은 전략이었다.

그러나 소 몰트케는 그 이전부터 슐리펜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대폭 수정시켜 버렸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의 슐리펜 계획의 우익과 좌익의 병력 비율은 7:1이었는데, 그것을 6:2로 변경하였고, 1, 2군을 각각 18개에서 13개 군단으로 축소하였다... 게다가 러시아의 총동원이 의외로 빠르자 동부전선에도 우익에서 5개 군단을 빼내 우익을 더 축소시킴은 물론, 후방에 있던 6개의 예비병력을 좌익 지원 위치로 이동시키면서, 슐리펜 계획에서 포위의 핵심인 우익의 군사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무리수를 저질렀다.[2]

이렇게 악화된 조건에도 불구하고 40일이라는 비현실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강대국 프랑스을 굴복시키고, 동시에 동부에서 러시아까지 항복시켜야 할 상황이었다. 몰트케는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었는데, 독일군이 마른 전투에서 저지당하고, 이로 인해 빌헬름 2세의 신임까지도 잃게 되자 그는 정신적으로 무너졌고, 황제는 몰트케를 해임한 후 에리히 폰 팔켄하인 보병대장을 후임 참모총장으로 임명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1916년 사망하여 1차대전에서 독일의 항복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 전쟁을 선포한 이후, 소 몰트케는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에게 러시아에 대한 총동원령을 내릴 것을 요구하는 월권을 했다.

2.2. 제1차 세계 대전

1차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일 제국군이 지나친 낙관주의로 일관했기 때문이지만, 그의 슐리펜 계획 수정도 전쟁 수행에 악영향을 끼쳤다.[3] 결국 이는 프랑스를 빨리 정복하지 못해 마른전투라는 결과를 낳았으며, 독일의 양면전과 참호전을 초래하였다.

3. 기타

인터넷에서 몰트케란 이름을 넣고 검색하면, 1) 장발에 수염없는 깔끔한 장군과 2) 대머리에 콧수염 달린 장군이 동시에 나와서 헷갈리기 쉬운데, 본 항목에 나오는 소(小) 몰트케는 후자의 인물이다. 그런데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이 2000년대 초 제작한 8부작 전쟁사 다큐멘터리 <전쟁과 문명>(War and Civilization)의 6부에서도[4] 대 몰트케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소몰트케의 사진을 넣는 실수를 저질렀다.[5] 은근히 헷갈리기 쉬운 듯.

신지학(Theosophy) 신봉자였다.

대 윌리엄 피트소 윌리엄 피트와 달리 상대적으로 안 알려진 것도 사실이다


[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몰트케'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융커들이 자신들의 심장인 동프로이센을 지키겠다고 프랑스 전선에서의 좌우익 균형을 깨버린 결과가 바로 1차대전의 단기 결전을 무산시키고 참호전 양상으로 변화시킨 마른 전투다.[3] 총력전 양상으로 확대된 국민전쟁의 특징을 간과하고, 대 몰트케의 중심타격이론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해 받아들인 결과다. 이러한 문제는 보불전쟁 때도 있었지만 당시의 대승리에 도취되어 이를 간과했다.[4] 영국의 원로 전쟁사학자 존 키건도 출연했다.[5] 링크된 영상의 34~35분 정도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