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박씨 일가족이 살던 방의 모습. |
2. 상세
당시 60세였던 박 모씨는 35세였던 큰딸, 32세였던 작은딸과 함께 살고 있었으며 인근 놀이공원[1] 식당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잇고 있었다. 큰딸은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었으나 비싼 병원비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작은딸은 만화가 지망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있었으나 빚으로 인해 신용 불량자가 되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생활비와 병원비를 신용카드로 부담했기 때문이었다.#아버지는 2003년에 방광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2005년에 두 딸과 함께 송파구 석촌동으로 이사 온 어머니인 박씨가 사실상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는데 사건 발생 1달 전에 넘어져 몸을 다쳐 식당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실의에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하여 생활고로 고민하던 끝에 집세 및 공과금인 70만원이 든 봉투와 유서를 남긴 채 번개탄을 피워 일가족이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일어났다.[2] 유서의 내용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였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사회복지 제도의 허점을 드러낸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며 사건 이후 사회보장제도 개선에 대한 많은 논쟁과 비판이 오갔다.
3. 왜 사회복지 혜택을 받지 못했나?
박씨 가족은 사회복지 제도에 대한 지식 부족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어머니 박씨는 식당에서 일할 당시 월 120만원 상당의 소득이 있었으며 큰딸의 질병인 당뇨와 고혈압은 근로능력 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식당 일을 그만둔 상황에 가족 중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작은딸이 유일했지만 이 경우 가족 중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2명인 것으로 간주되어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에 제한이 생긴다.[3][4]제도의 허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복지제도 자체가 취약 계층으로 구별된 사람들만을 돕는 선별적 복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행정자료의 전산화가 잘 되어 있음에도 각 자료의 유기적 연결은 안 되어 있어서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 모든 자료들(급여 명세서, 4대보험료 납부 증명서 등)을 수혜자 본인이 직접 준비[5]해야 한다.
심지어 개인정보 동의서, 금융거래 조회 동의서 등을 작성했는데도 금융거래내역서를 가져오라는 공무원도 있고, 심지어 규정도 제대로 모르는 인간들이 공무원 이랍시고 앉아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고 가야한다.(...) 어찌되었든 지원을 받으려고 하더라도 자신이 취약 계층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규정에 따른 요건을 갖췄음을 입증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과 공공갈등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사회적으로 공무원들이 유리한 입장에 서있기 때문에 악성민원인으로 몰리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4. 사건 이후
일가족이 세상을 떠난 후 그들의 살림살이는 모두 임의 폐기처분되었고[6] 장례는 빈소도 없이 쓸쓸히 치러졌으며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친지 등 10여명이 전부였다고 한다.#2016년 2월 26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고인을 추모하는 의미로 송파 세 모녀 2주기 추모제를 개최했다.#
4.1. 유사 사건
사건 이전은 물론, 사건 이후인 2014년 부터 지금까지도 일가족자살 사건 자체는 끊이질 않고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나 대침체 때 거리로 쫓겨나고 죽어나간 숱한 사람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여전히 경제적인 이유로 죽는 사람들이 많다.2015년에는 용인시에서 일가족 4명이 생활고에 허덕이다 번개탄 불을 피워 집단 자살했다. 정확히는 자녀 둘을 살해하며 자살했다. #
2019년에는 성북구에서 네 모녀가 빚과 생활고에 허덕이다가 비슷한 방식으로 집단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양주시에서도 아버지가 어린 아들 둘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살뿐만 아니라 6세 아들을 포함한 탈북 모자 가정이 굶어죽는 사건도 일어났다. 탈북자 모자 숨진 채 발견..."아사 추정" 다만 기사에 나온 것처럼 탈북 모자의 경우 처음에는 탈북자 지원이 이루어졌으나 결혼으로 인해 지원자 대상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다시 이혼하면서 신청 자격은 충족했지만 이웃과의 교류가 없어서 다시 수급자신청을 하면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굶어죽은 것으로 보인다. 고독사로 굶어죽는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지만(2011년 32세 최고은, 전 영화감독) 가족 단위로 굶어죽은 사건은 전례가 거의 없었다.
아래는 2019년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서울 화곡동 일가족 4명 자살(1.24) △경남 거제 펜션 20대 청년 3명(2.22) △전남 여수 리조트 한 가족 4명(2.25) △경기 남양주 펜션 3명(3.2) △충남 공주 일가족 4명(3.6) △부산 한 가족 3명(3.13) △경기 양주 한 가족(3.18) △경기 화성 일가족4명(3.26) △경기 시흥 일가족 4명(5.5) △경기 김포 구래 한 가족(5.7) △대구 동구 2명(5.17) △충남 공주 여인숙 2명(5.20) △경기 의정부 한 가족 3명(5.20) △경기 시흥 한 가족 4명(6.9) △울산 모자 자살(7.10) △울산 청년 3명(7.10) △제주 펜션 3명(7.14) △경기 의왕 한 가족 4명(8.17) △대전 한 가족 4명(9.4) △인천 아라뱃길 자매 2명(9.21) △충북 단양 청년 4명(9.22) △인천 남동구 2명(9.24) △제주 연동 한 가족 4명(10.1) △경남 김해빌라 한 가족 3명(10.2) △경기 시흥 한 가족 4명(10.8) △경남 거제 한 가족 4명(10.15) △경기 의정부 모자 2명(10.23) △서울 성북동 한 가족 4명(11.3) △경기 양주 한 가족 3명(11.6) △경기 가평 펜션 젊은 남녀 5명 자살 시도 2명 사망(11.19) △인천 계양구 한 가족 4명(11.20) △충남 천안 쌍둥이형제(12.4) △대구 북구 한가족 4명(12.24)
2020년 1월 6일에도 생활고로 인해 김포에서 일가족자살이 일어났다.
2022년 8월에 수원 세 모녀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2023년 8월에는 김해에서 자녀를 살해하고 동반자살하려다 실패한 남자가 구속되었다.
2024년에는 구미에서 40대 부부가 8세 딸을 죽이고 자살했다.#
5. 세 모녀의 가계부
#기사 |
라면, 소세지, 오뎅, 식빵, 프리마, 왕뚜껑, 후랑크, 소주 등 대체로 1~2천원대의 품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가난과 장애로 인해 번개탄을 피워 끝내 자살로 이어졌어도 음식물 쓰레기 스티커, 씽크대 마개, 월세와 공과금과 같은 법조항 하나하나를 준수하면서 꾸준히 밀리지 않고 납부했다.
6. 작은딸의 행적
MBC 리얼스토리 눈과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작은딸의 행적과 작품에 대한 내용이 방영되었다. 작은딸은 만화가 지망생이었으며 그 실력도 프로급 수준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유품인 습작 노트 수십권 중에는 작은딸이 참여한 동인지도 있었다고 한다.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단순한 지망생이 아니라 이미 출판만화계에 데뷔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품을 수거한 업체에서는 “만화책이 (유독) 많았다. 독자라기보다는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사람 같다”고 증언했으며 만화가 강도하 씨는 둘째딸의 작품을 “돌아가시기 전에 만들었던 흔적들을 보면 그냥 취미 이상인 것 같아요. 꽤 많은 시간을 들인 그림들이거든요. 단순 아마추어 실력은 아니거든요”라고 평가하였다. 방송 제작진들이 취재한 결과 작은 딸은 세상을 떠나기 7개월 전까지 작품활동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으나 연재처인 한 중소 출판사로부터 받은 원고료는 겨우 19900원에 불과했고 연봉으로 환산해도 15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관계자는 “이런 작가들이 상업적으로 어떤 성과를 내기에 굉장히 어려운 시장이 돼버렸어요. 자기가 하려는 작품 스타일이 웹툰 스타일에 맞지도 않고[7] 거기(웹툰)에 맞춘 작품을 하지 않고서는 만화작가로서 살아남을 수 없는 시장환경이 돼버렸다는 거죠”라고 증언한 것으로 보아 출판만화 스타일을 고집한 작가로 추정된다.[8]
세 모녀의 가계부에 잉크를 구입한 내역이 있는 것으로 보아 디지털 작업이 아닌 수작업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아래 링크된 기사에서 작은딸의 작품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리얼스토리 눈’ 가난한 만화가 공들인 그림 고료 '19,900원'
'궁금한 이야기Y' 웹툰 스타일 거부한 무명작가 고료 연간 15만원 미만
7. 기타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1] 위치상 롯데월드로 추정된다.[2] 박씨 가족이 키우던 고양이가 있었는데 역시 박씨 가족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되었다.[3] 혜택을 아예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근로능력이 있다면 자활사업에 참여를 하면 되는데 자활사업에 참여하면 교육수당도 나올 뿐만 아니라 생계급여에서 교육수당의 차액만큼 생계급여를 지급해준다. 또한 교육을 넘어서서 근로를 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몸상태에 따라서 근로유지형 사업단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생계급여에서 자활근로로 벌어들이는 소득의 차액만큼 추가로 지급받을 수도 있었다. 또한 자활근로를 참여하다보면 자활사업단을 직접 기획하여 운영할 수도 있는데 충분히 자활사업단을 통하여 작가의 꿈을 키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정보들이 송파 세모녀에게 전달되지 못하였고, 이는 명백한 공무원의 직무태만과 정보비대칭이 불러일으킨 비극에 해당한다.[4] 또한 근로능력과 관련하여 별도의 진단서를 받아서 근로능력이 없음을 인정받으면 되기는 하지만 다만 문제는 해당 진단서가 병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비싸다.(...) 물론 환급을 해줄 수는 있지만 구청에서 선납을 해주지는 않았기에 고혈압, 당뇨에 의한 근로능력평가 인정을 못받았던 것으로 보인다.[5] 자존심 짓밟는 기초생활수급 신청, 이정도다[6] 이 때 일부 언론에서 사진앨범 속 가족사진들을 그대로 공개해 버려 논란이 불거졌다.[7] 웹툰들은 스크롤바를 내릴 때를 가정해 작품을 만들기에 보통 컷을 거의 일관적인 수직구도로 배치한다. (한 칸 작업하면 아래에 여백을 두고 또 한 칸 작업하는 식)[8] 아니면 웹툰 시장에서 활용되는 전자기기마저도 이 집 사정에는 비싸서 엄두를 못 냈기에 출판만화 쪽으로 굳힌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엔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쓰는 태블릿도 많이 싸져서 저가로 잡으면 5~6만원대의 태블릿도 구할 수 있지만 잉크(8000원), 족발(19000원) 같은 수준의 물건들도 비싸게 보일 이 집안의 사정에는 5~6만원대의 타블렛이 또 뭘로 보일지... 게다가 웹툰을 그릴 땐 태블릿만 필요한 게 아니라 어뎁터, (태블릿을 연결할) 컴퓨터, 그림을 그릴 프로그램(포토샵이나 클립스튜디오 등) 등 생각보다 이거저거 꽤 많이 필요하고 당연히 전기료도 먹는다.) 단순히 웹툰 스타일이 본인에게 영 맞지 않아서 결국 출판만화 쪽으로 가기로 맘을 먹었을 수도 있지만. 진상은 본인들만 알 것이다.[9] 곡명인 "1571"은 세모녀법이 시행된 날인 2015년 7월 1일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