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5:30:13

아리랑(매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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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출신 사진 작가 허버트 스말스(Herbert Smals)가 2013년 7월 25일에 매스게임을 관람하면서 찍은 풀버전

1. 개요2. 역사3. 특징
3.1. 아동 학대3.2. 폐지3.3. 부활
4. 기타

1. 개요



2002년부터 2013년까지 개최된 북한의 초대형 매스게임.

북한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열리는 단일 공연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참여한 공연이기도 한데 공연마다 연인원이 무려 10만 명이나 참여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2007년 8월에는 '세계 최대의 집단 체조이자 예술 공연'으로서 기네스북의 공인을 받기도 했다.

공식 명칭은 김일성상 계관작품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으로, 평양릉라도5월1일경기장에서 열렸으며, 공연 기간 동안 주 4~5회 공연되었고 2012년 10월 9일 기준으로 공연이 총 435회나 열렸다고 한다. #

2. 역사

사실 매스게임이 북한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북한을 위시한 공산주의 국가에서 유행했는데[1] 이 유행(?)에 따라 북한은 1947년부터 김일성의 지시로 매스게임을 시작했다고 한다. 일단 북한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에 '조선은 하나다'라는 이름의 대집단체조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긴 하다.

북한의 집단체조는 로동신문에 따르면 김일성이 1930년에 중국 만주의 카륜과 오가자에서 농촌혁명화를 위해 창작ㆍ지도했다는 꽃체조 '조선의 자랑'이 기원이라고 하며[2] 카드섹션[3]을 처음 도입한 것은 1955년 8월에 있던 '해방의 노래' 공연이었다고 하고 초기에는 카드섹션에 '배우자 단결하자' '경축 8.15'라는 등의 글자만 새겨졌으나 1961년 9월 19일에는 김정일의 주도로 만들어진 '북한식 집단체조의 원형'이라고 여겨지는 '노동당 시대'가 만들어져 모란봉경기장에서 초연되고 나서야 카드섹션에 그림이 도입되었다. 1971년 11월에는 집단체조의 창작과 보급을 체계적으로 주관하는 집단체조창작단이 설립됐고 1983년 1월에는 체조수들을 양성하는 전문학교인 집단체조구락부[4]를 창립했다. 김일성 시기 북한의 매스게임이 어떠했는지는 1978년 5월에 있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공산당 서기장의 평양 방문 무렵의 영상을 참고하도록 하자.[5]

2000년 10월 12일부터는 릉라도5월1일경기장에서 '백전백승 조선노동당' 공연을 열었는데 이 작품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란 형식으로 진행되어 처음으로 체육과 예술이 융합된 것으로 여겨지고 낮이 아니라 저녁에 상연함으로써 조명효과를 최대한 살리는 등의 새로운 형식과 기술이 도입되었으며 출연자 규모에 있어서도 처음으로 10만명을 기록하는 등 아리랑 매스게임의 원형인 것으로 여겨진다.

아리랑 공연은 당시까지 북한에서 85번째로 창작된 집단체조였다고 하며 김일성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해[6] 2002년 4월 29일에 처음 열렸고 2013년 9월 30일까지 거의 매년 봄, 가을마다 개최되었다고 한다.[7]

참고자료('북한의 집단체조 특징과 발전사')[8]

3. 특징

7부 구성[9]에 공연 시간도 1시간 30분이었고 공연은 3만 명이 참여하는 거대한 카드섹션, 집단체조, 무용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주 내용은 김일성김정일'업적' 찬양, 일제강점기빨치산 항일 투쟁,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의 선전, 조선 어린이들의 아름다움[10], 집단농장의 위대한 생산성, 조선인민군의 용맹함, 선군정치, CNC, 조선의 아름다운 강산, 북한 주도의 남북통일 정책 등이었다. 공연의 기본 틀은 유지되고 있지만 매년 조금씩 소재를 바꿔가며 개작되고 있었다.[11]

북한에 초청된 해외 고위급 인사들과 상당수 패키지 여행자들은 반드시 저 공연을 보고 가야 했다고 한다. 매들린 올브라이트를 비롯한 여러 고위 인사들이 관람한 바가 있으며 북한의 몇 안 되는 외화벌이 수단이다.[12] 고려투어에서 티켓을 살 수 있었다고 하며[13] 좌석은 후방 연기자로부터 멀수록 공연 전체를 관람하기 유리해지기 때문에 좋은 좌석으로 간주되어 고액이 되었다고 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의 리얼리티 프로 <디에고의 밀착취재>에서도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다.

남한 국적으로 관람한 사람은 2007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있으며 정치적 이념에 상관없는 한국 NGO 단체 회원들이 방북하면서 종종 보는 경우가 있었다. 공연에 한국군을 살해하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남한의 보수 언론이나 보수단체에서 격렬히 반발하기도 했고 남북관계가 완화되면서 북한이 해당 장면들을 빼기도 했다. 특히 2007년 남북정상회담 전 정책총괄점검회의에서 이재정 당시 통일부장관이 보고한 바에 의하면 방북한 2차 선발대가 본장 및 종장만 봤으며 "서정적이고 장엄한 공연"이란 평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수주의 성향 언론 등지에선 이러한 소감을 부정적으로 봤다.

한국에선 오랫동안 이러한 매스게임을 전쟁 연습, 대남 협박질 정도로 보았으며 남북 고위급 회담, 적십자 회담 등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남한 고위인사들에게 아리랑을 관람하게 하자 남한에선 북한의 협박질 정도로 받아들여서 매우 분노하기도 했다.

도올 김용옥은 인간이 하는 쇼로서는 최상의 쇼라고 극찬하며 여기에 이념적 훈수를 달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주민은 아리랑을 보면서 우리는 굶어죽어도 도덕적으로 명예롭게 살자, 잘 사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느낀다고 하는데, 문제는 정작 본인의 딸은 미국에서 행위 예술가로 잘 살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앞에서 알몸으로 요상한 행위 예술 퍼포먼스를 하다간 고사포로 처형당할 수도 있는데, 자신의 딸은 자유 끝판왕 미국에서 잘먹고 잘살게 하고, 남의 딸들은 북한에서 영혼 없는 로봇이나 꼭두각시처럼 기계적인 율동을 하면서 살라는 것은 잔인할 수 있다. 이처럼 남의 자녀에겐 개천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설파하는 한편, 자신의 자녀에겐 부정적인 수를 써서라도 하늘의 용이 되게 하려는 이중적인 잣대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실패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러시아 감독이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에서 북한의 소녀에게 좋은 기억이 뭐냐고 묻자 머뭇거리다 눈물을 흘리며 잘 모른다고 하고, 그럼 좋은 시라도 말해달라고 하자, 그 소녀의 입에서 "나는 위대한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운운하며 '소년단 입단 선서'를 외우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했다. 동시라든지 한창 순수해야할 소녀에게 저런 세뇌를 시키는 북한을 찬양하여 번 돈으로 자신의 자녀 미국 유학비로 보태는 이율배반적인 부모들을 보면 자칫 '인간 혐오증'이 생길 수도 있다.


3.1. 아동 학대

어린 여자아이들과 남자 아이들이 아리랑 게임에서 대형카드를 들고 매스게임을 하는 모습은 비극입니다. 이들은 북한 정권에 의해 세뇌로 (아리랑 공연을)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여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힘든 상황도 인식하지를 못합니다.(It's tragic and a tragedy to see these young girls and boys and people involved in it. They don't know how they are being exploited...)[14]
디펜스 포럼[15]의 회장 수잔 숄티(Suzanne Scholte, 1959~) 원문

애초에 아리랑 공연은 독재 정권 치하에서밖에 할 수 없는 규모의 공연으로서 연습 중에는 각종 가혹행위가 수시로 일어나며 북한의 경제난 속에서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공연에는 평양에 살고 있는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들까지의 어린이들을 동원[16]하면서 아동 학대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일단 훈련 기간이 6개월~1년인데 6~14세밖에 안 된 어린이들이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18시간 동안 훈련해야 하기 때문에[17]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실제로 2009년에 탈북한 한 북한이탈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아리랑 공연에 동원되는 북한 학생들은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보통 저녁 10시까지 연습하는 데다 심지어 새벽까지 훈련하는 일이 다반사었다고 하며 4~6월에는 5~6시간, 7월 중순에는 9~10시간, 최종 예행연습 시기인 7월 말에는 15시간씩 연습을 강행하고 훈련도 엄청나지만 구타 역시 성행해 공연에 참가한 6살 어린이들이 지도원들에게 맞거나 벌을 받는 것은 다반수었다고 한다. # 다만 주성하는 신동아 기사에서 요즘은 행사 인원 수송체계가 정비돼서 보통 밤 10시경 훈련이 끝나고 돌아오며, 과거에는 집이 멀리 있는 학생들은 밤 12시까지 훈련하고 경기장 안에서 단체로 자는 일이 많았다고 증언했다.[18]

그러나 이를 넘어서는 사례도 존재한다. 한 탈북자는 3월부터 오전에만 공부하고 오후에는 훈련만 했으면 5월 모내기 전투에는 하루 종일 모심기에 동원되다가 11월까지는 (약 반년 동안) 공부도 하지 못하고 훈련만 했다는 증언을 남겼고# 심지어 극단적인 경우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난 사람이 새벽 1~2시에야 잘 수 있었다[19]고 한다. #

공부를 못 한다는 게 무슨 말이냐면 정확히는 가뜩이나 1고등중학교를 제외한 일반 중학교는 대학 가기도 힘든데 공연에까지 동원되다 보니 중학교 4학년[20]부터는 졸업할 때까지 3년 동안 아예 공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말인데[21] 이 때문에 학생들은 수업을 방학 때 몰아서 받거나 아예 졸업을 연기해야 했으며 자식을 대학에 보내려는 부모들이 뇌물을 주고 자녀를 동원에서 빼내 따로 공부시키는 일이 보편화됐을 정도였다.

2019년 6월 25일에는 국제반인도범죄철폐연대(ICNK) 사무국 열린북한이 발행한 보고서를 통해 4~5세밖에 안 된 어린이들이 매스게임 '빛나는 조국' 훈련에 참가한 것이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이것은 외국에 있는 북한 인권 단체가 아닌 로동신문의 기사를 통해 밝혀진 내용이며[22] 기사의 설명에는 '스르르 감겨지는 눈을 서로서로 손으로 떠 올려주며'라는 구절도 있어서 어린이들이 잠도 자지 못하고 강제로 훈련에 임해야 함을 직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의 언론 실태를 보면 이런 명백한 아동학대를 북한의 이미지에 '손상이 가는' 것으로 여겨 전혀 안 실을 것 같은데, 오히려 당당하게 로동신문에 실은 것을 보면 북한은 아리랑 훈련이 아동 학대라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

여름에 18시간 동안 뙤약볕이 내리쬐는 야외의 콘크리트 바닥에서 연습을 하는데도 아침식사는 계란 두 알#, 저녁식사는 빵 한 조각과 사탕[23]전부이며 이 때문에 훈련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빈혈과 영양실조, 일사병에 걸리는 것은 아주 흔해빠진 일이었다. 그나마 빈약한 식량들은 집에서 도시락을 챙겨오는 것으로 어찌어찌 무마된다 치더라도 겨울에도 가혹한 훈련은 계속되어 야외에서 온종일 회초리를 들어 가며 굳은 허리를 '문어처럼' 유연하게 만들어야 했고 이들은 얼어 갈라터진 발바닥에서 핏물이 나와 우는 아이들을 집에 보내지 않고 계속 훈련을 시켰다.# 덤으로 주성하의 말에 따르면 추위가 시작되는 10월 말에는 얇은 공연복 때문에 한 학생이 독감에 걸리면 다른 학생들까지 집단 감염되기도 했다고 한다.

훈련도 아주 가혹하여 무용을 연습하는 어린이들은 성인도 하기 힘든 복잡한 동작을 하나하나씩 수천번, 수만번 반복 연습하다 보니 근육이나 인대 파열이나 탈골, 골절을 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연습에 빠지면 안 되기 때문에 간단한 응급처치만 하고 바로 훈련에 참여해야 하며 이 때문에 다리를 절단한 학생도 있다고 한다.

최대 10~15kg에 달하는 500여장의 배경책을 들고[24][25][26] 카드섹션을 연습하는 학생들이 카드를 잘못 뒤져 흠집을 만들면 훈련 지도원에게 매를 맞기도 했는데 김일성의 얼굴 부분을 맡았던 한 학생은 카드를 잘못 뒤져 김일성 얼굴에 흠집을 냈다고 평양에서 추방되기도 했다.[27] 물론(?) 자기가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체벌은 물론이고 저녁에 추가로 연습을 해야 하며 아예 그 사람이 속한 팀 전체에 연대책임을 물어 휴식 없이 훈련을 받아야 하고 훈련 과정에서 온갖 욕설과 구타가 난무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실제로 10~11세밖에 안 된 소학교 학생들이 연습할 때 다리가 찢어지지 않는다고 서너 명의 남자 선생이 어린이의 정강이를 잡고 다리를 찢기도 했으며 다른 어린 학생들은 허리가 등 뒤로 꺾이지 않는다고 지글지글 끓는 듯한 아스팔트 위에 서너 시간씩 허리꺾기 벌을 서기도 했다. 탈북자들은 훈련 중에 동작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지도원에게 가차 없이 구타나 몽둥이찜질을 당한다고 전했으며 심지어 이는 고작 6세밖에 안 된 어린이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심지어 급성 맹장염의 고통을 참아 가면서 연습한 7, 8살 소년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해도 '김정일이 지켜보기로 한 행사를 위해 생명을 바쳤다'는 이유로 영웅으로 추앙받았다는 실화도 있다.[28] # 이와 비슷하게 한 탈북자는 일부 청소년들이 매스게임하다가 갑자기 내장이 파열되거나 맹장이 터지는 고통 속에서도 카드를 펼치는 것을 멈추지 않아 상을 받는 청소년들이 있었다는 증언을 남겼다.[29] 매스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병이 나도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 # 그리고 안전 설비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는지 2007년에는 TV로 중계되는 공연에서 조선인민군 교예단 소속 공중 교예사 1명이 공연 중에 공중점프를 하다가 지상에 추락해 즉사하는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30]

행사 한 달 전부터는 전체 예행 연습을 하는데 대기시간부터 행사가 끝나는 시간이 3시간이 넘는 만큼 화장실 가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 음식과 물을 제한하는데 훈련하면서 심한 탈수와 일사병이 생기는데 이런 와중에 물도 거의 주지 않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건강을 해친다. 실전 훈련에선 6시간 이상을 버텨야 하는데 카드섹션과 집단체조 연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기저귀를 차거나 간이 칸막이와 비닐 주머니에 볼일을 보는 것이면 운이 좋은 편이며 서거나 앉은 채로 옷에다가 대소변을 보는 경우가 많고[31] 여학생들은 소변을 참다가 배뇨장애, 방광염에 걸려 혈뇨까지 보는 경우가 많았다.[32][33] 이런 자식들의 모습을 보고 흐느껴 우는 부모들의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었으며, 이 때문에 평양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을 아리랑 공연에서 빼내려고 애쓰기도 했다. 어찌나 볼일을 제대로 못 보는 아이들이 많았는지 소변의 악취가 강한 곳은 암모니아 냄새 때문에 코는 물론 눈까지 시릴 정도였다고 하며 특히 덥고 습한 날씨까지 겹치면 생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방광염에 걸리는 경우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닌데, 그 이유는 물을 거의 먹이지 않는 데다가 수분이 땀으로 배출되 오줌이 잘 안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학생들은 생리, 과체중으로 인해 남학생 등에 올라타거나 들어 올리는 동작이 곤란하기 때문에 피임약을 강제 복용시키거나 식사량을 제한하기도 했다고 한다. 더욱이 평양 출신 학생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며 지방 참가자들은 평양 외곽 기숙사에 집단 투숙시켰는데 시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드섹션에서 김일성 부자의 얼굴 형상에 동원된 학생들은 따로 선발되는데 매 학생들의 사상, 생활 등의 료해를 걸쳐 선발하며 공연장까지의 통근도 별도의 차를 타고 이동하는 등의 특혜(?)를 누린다고 한다. 물론 상술한 것처럼 이들은 가장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하며 2003~2004년경에는 공연 당일에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한 학생이 카드섹션에서 김일성 부자 얼굴 형상에 동원되었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임종도 보지 못한 채 공연에 참여해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훈련 과정에서의 학대와는 무관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늦은 밤에 귀가하는 학생들이 강도를 만나 봉변을 당하고 성범죄에 노출되는 일까지 발생하자 집이 먼 학생들의 경우엔 버스로 귀가시키는 '배려'가 나오기도 했으며 심지어 공연 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대동강 능라다리 난간이 무너져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34]

그리고 기본적으로 저녁에 진행되는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공연 참가자들은 이른 새벽에 경기장 안에서 모여야 했는데[35] 공연 참가자들의 고통은 이때 최고조에 다다랐다고 한다. 공연진입 순서에 따라 많은 인원들이 빼곡히 줄을 지어 서 있는데 이들은 관객들이 입장을 시작해서 입장이 완료될 때까지의 2~3시간 동안 밀집된 공간에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이동은 둘째치고 화장실을 갈 수조차 없었다. 물론 카드 섹션에 참가하는 학생들도 관객의 입장이 시작되면 움직이지도 못하고 공연이 시작될 때까지 몇 시간 카드를 펼쳐들고 기다려야 하고 수많은 공연자들이 제한된 공간에 빼곡히 서 있다 보니 더위 때문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그 땀냄새를 견디는 것도 고역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전대미문의 대규모 아동 학대를 국가 차원에서 자행하던 북한은 파렴치하게도 "세상에 부럼없어라", "어린이는 나라의 왕"이라는 허울뿐인 구호를 내세우며 북한이 어린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고 심지어 2008년 9월에 로동신문은 아리랑 공연에 대해 "우리의 장하고 미더운 청소년 학생들의 높은 정신세계가 안아 온 열정의 산물"이라고 미화했다. #

탈북자 출신인 주성하 기자도 아리랑에 대해 언급했다. #1, #2[36] #3 김정일의 수행원이었던 김정률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매스게임을 위해 2개월 동안 어린아이부터 농부의 아내에 이르기까지 평양 주민 수천 명이 매일, 날씨 상관 없이 이른 아침부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일정한 움직임과 걷기동작을 연습해야 했으며 식사와 화장실은 전혀 제공되지 않았고 심지어 다리에 심하게 쥐가 나서 거의 몸을 지탱할 수 없는 노인과 가는 보슬비를 맞고 코감기에 걸려 우는 어린이들조차 예외는 없었다고 한다.[출처]

만평 작가 신경무조선일보 <조선만평> 2007년 10월 1일자에서 매스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로봇으로 묘사했다.

얼마나 아동 학대가 심각한지 김정일조차 아리랑 공연의 아동 학대가 극심하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증언이 나올 정도다. 대북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의 해외 통신원의 제보에 의하면 2010년 12월 24일 최고사령관 추대 기념 군 장령들과의 회의에서 김정일은 중학생들의 신체 개선과 관해 "외국 언론들이 북 남 성인의 키를 비교하길래 헐뜯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실제 어느 군부대 현지시찰을 가보니 갓 입대한 군인들의 키가 중학생 같았다. 문제는 평양 출신 군인들도 같은 형편이었다. 식량난 외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해결 방법은 없겠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박재경 선전부국장이 군입대 시 체중미달 원인으로 아리랑 공연을 꼽았는데 정확히는 "숙련도의 완성을 위해 해마다 8개월씩 반복훈련을 받는 데다 먹지 못해 체력이 떨어진다며 참가인원 수송을 위해 동원되는 후방총국 대 열차 사단의 유류비도 회수 못하는 것만큼 외화벌이도 안 된다. 그러니 큰 국가명절에만 상징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보고했다. 이를 들은 김정일도 박재경의 의견에 수긍하고는 "아리랑을 실내용으로 바꾸고 정주년 행사 때마다 대집단체조로 하는 방안을 알아보도록 하자."고 지시했다고 한다. # 달리 말하자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인민은 줄면 줄었지 마르지 않는다. 땅이 있고 물이 있고 내가 있는 한 인민은 얼마든지 다시 불어난다."는 역대급 인명경시 발언을 한 사람마저 진실을 알고 개선하라는 말을 할 정도면 아리랑 공연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3.2. 폐지

2013년 9월 30일을 끝으로 외화부족과 자금난을 이유로 중단되었다고 한다. # 사실 북한이 아동 학대에 대한 국제적 비판 때문에 공연을 중단한 것은 절대 아니고 그동안 아리랑 공연으로 외화를 벌어왔는데 2010년대 초반 들어 대북제재가 강해져서 북한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어 관광수익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공연을 중단한 것이다.

다만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아리랑 공연을 중단한 이유 중에는 주민 여론의 악화도 있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평양 주민들이 똑같은 내용의 공연을 10년 넘게 반복하다 보니 이미 질린 상태였으며 강제로 관람 동원을 시켜도 개·폐막 행사가 아니고선 관람석의 절반도 못 채울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평양 주민들은 이미 이전부터 자식들이 가혹한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 뒷돈을 주고 자식을 공연에서 빼내려고 했던 판이었다.[38] 태영호의 증언으로 보면 김정은이 자신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아리랑 공연을 중단한 것으로 보이며 북한 주민들은 아리랑 공연 중단을 엄청 반겼다고 한다.

3.3. 부활

그러다가 공연 중단 5년 후인 2018년 9월 9일부터 9월 30일까지 아리랑 매스게임은 정권수립 70주년 기념 일환으로 <빛나는 조국>이란 이름으로 부활했는데 이 공연에서는 드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당시의 남-북-미 대화국면에 따라 군사적 구호는 줄어들고 경제발전을 독려하는 내용들이 대폭 추가되었으며 문재인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은 9월 19일에 김정은 부부와 함께 살짝 변형된 버전을 관람하기도 했다. 참고로 좌석 가격은 3등석이 100유로(약 13만 원), 2등석이 300유로(약 38만 원), 1등석이 500유로(약 64만 원), 특등석은 무려 800유로(약 103만 원)이었다. #

2019년 6월 3일부터 10월 중순까지는 <인민의 나라>라는 이름으로 공연했으며 이것도 동년 6월 20~21일에 방북한 시진핑 중국 주석이 김정은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39]] 2020년에는 10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위대한 향도>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개최했으나[40] 2021년부터 2023년까지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개최되지 않았다.

2023년 12월 6일 중국 지린성 창춘시에 위치한 '국제조선관광' 홈페이지에서 2024년 5월 초에 4박 5일 일정으로 집단체조 및 예술공연인 '아리랑' 공연이 포함된 관광상품도 마련된 것이 확인되어 2024년 중 아리랑 공연이 4년 만에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

4. 기타

공연에 참가한 학생들에게는 선물을 줬는데[41] 정확히는 일반적인 학생들에게는 설탕과 과자, 교복과 학용품 등을 선물했고 간부의 자식들에게는 21인치 컬러 TV[42][43] 같은 전자제품을 선물로 줬다고 한다. #1, #2, #3

영국의 일렉트로닉 밴드 'Faithless'가 뮤직비디오에 아리랑 공연 장면을 넣기도 했다. 정확히는 북한 배경의 다큐멘터리 영화 '어떤 나라'에 수록된 장면을 사용한 것이며 노래의 제목은 'I Want More'



Attaché라는 EDM 아티스트도 이를 모티브로 한 '평양'이라는 곡을 작곡했다.


[1] 물론 북한의 매스게임은 그 규모와 내용에서 동구권의 매스게임과 차이가 크다고 한다.[2] 물론 북한 매체의 신뢰성상 이 공연이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3] 북한에서는 '배경대'로 부른다.[4] 1997년에 청소년체육학교로 개칭되었다.[5] 여담으로 이 영상의 배경 음악은 차우셰스쿠의 1971년 방북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친근하신 챠우쉐스꾸 동지의 노래다.[6] 이 때문에 원래 이 공연의 이름은 '첫 태양의 노래'가 될 뻔했으나 김정일의 지시로 '아리랑'이 된 거라고 한다.[7] 다만 2003, 2004, 2006년에는 홍수 피해로 인해 중단되었다고 하며 2007년에도 홍수 피해로 인해 공연이 연기되었다고 한다.[8] 아리랑 공연 시작으로부터 1개월 전인 2002년 3월 27일 기사다.[9] 환영장, 서장, 1장 '아리랑민족', 2장 '선군아리랑', 3장 '아리랑무지개, 4장 '통일아리랑', 종장[10] 참고로 아리랑 공연의 훈련 과정을 보면 아동 학대의 정의에 정확히 부합한다.[11] 디에고의 밀착취재 '북한'편 참조.[12] 나머지는 슈퍼노트마약, 그리고 무기를 비롯한 몇 안되는 수출 상품이다.[13] 당연히 한국에서는 차단되었다.[14] 후술하듯 로동신문에서 이 아동 학대를 자랑스럽다는 듯이 당당히 언급하는 판이다.[15] Defense Forum Foundation, 탈북자 지원과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한 미국의 비정부기구. 2004년에는 미국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키는 데 기여했고 2008년에는 제9회 서울평화상 수상자가 된 북한 인권운동가다.[16] 참고로 북한에서는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중학교'로 칭한다.[17] 그나마 후술하듯 이는 휴식시간을 포함한 수치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북한이 아무리 막장이라고 할지라도 어린이들에게 18시간 동안 쉬지 않고 훈련만 시키지는 않았을 것인데 사실 북한 이상의 독재국가였던 민주 캄푸치아도 강제노동하는 주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휴식을 주긴 했으니 북한이 아리랑 공연 훈련 중에도 휴식을 준 것은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18] 여담으로 남녀가 하루 종일 함께 훈련하고 잠까지 함께 자니 '사고'도 잦았다고...[19] 대략적으로 잡으면 휴식 시간까지 포함해도 하루에 무려 18~19시간(!!!)을 연습에만 썼던 셈이다. 그나마 증언들을 조합해보면 이는 극단적인 일부 케이스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20]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이다.[21] 한국으로 치면 서울특별시에 있는 고등학교 1~3학년 학생이 정부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공부 자체를 못 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수능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한국인 입장에서는 더더욱 이해를 못할 일인 셈.[22] 사실 이 보고서는 로동신문 기사를 통해 유추한 북한의 인권 실태에 대해 다룬 것이고 이 때문에 제목도 '로동신문이 폭로하는 북한의 인권유린'이다.[23] 그것도 중국산 싸구려 제품이었다고 한다. 사실 아리랑 공연 참가자들에게 주는 음식이 매우 빈약한 것은 원래 주기로 했던 양을 지휘부가 빼돌렸기 때문이라고 한다.[24] 움직임이 많은 가운데 부분에서 카드섹션을 하는 학생들이 이렇게 무거운 배경책을 들어야 했는데 김일성 부자의 얼굴 부분을 맡은 학생들은 아예 배경책을 이들의 얼굴이 담긴 책으로 바꿔 들어야 했다. 참고로 아리랑 공연의 카드섹션은 세로로 총 72줄로 구성되었는데 맨 윗쪽인 1~10번 줄과 맨 아래쪽인 60~72번 줄은 카드섹션에서의 움직임도 적었기 때문에 배경책도 얇았으며 주로 돈 있는 집안의 자녀들이 이 파트를 맡았다.[25] 참고로 수박 한 통의 무게가 4~6kg 정도다. 즉, 아리랑 공연에서 카드섹션을 하는 수박 서너개를 1시간 반 동안 한꺼번에 든 것과 다를 바 없던 셈이다. 이러다 보니 카드섹션을 하는 북한의 학생들은 키가 크지 못했을 정도였다.[26] 다만 10~15kg은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2009년 기준으로 평균 카드책 무게가 5.4kg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미성년자에게 2시간 동안 수박 한 통 들게 하는 것은 똑같잖아[27] 참고로 평양은 김일성 일가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사람만 살 수 있는 도시다. 김일성 얼굴에 흠집을 낸 것이 김일성에 대한 충성도가 낮은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28] 참고로 김정일이 참석한 단 한 번밖에 없는 '1호 행사'에서 단 한 번의 실수라도 했으면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담당 교사까지 반동분자로 몰리게 되었다고 한다.[29] 참고로 '1호 공연' 직전에 맹장이 터졌음에도 고통을 참고 참으며 카드섹션을 멈추지 않다가 카드섹션을 다 끝내자마자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목숨을 잃은 학생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 학생은 사후에 허울뿐인 '김정일 청년 영예상'을 받았다고 한다. 김일성 시기인 70년대 중반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불행 중 다행히도 그 학생은 병원에 실려가 목숨은 부지했다. 그 역시 '김일성 소년 영예상'을 수상받았다.[30] 참고로 이를 중계하던 조선중앙TV는 화면을 신속히 전환하여 사고 장면을 은폐했다고 한다.[31] 이것만으로도 정서적 아동 학대가 충분히 되는 수준이다. 만약 대변을 지린 상태라면 수치심이 배가 될 것이다.[32]The students who participate in the background section as card holders [the ones who flip colored tiles in synchrony to create a vast image] are forced to sit for three straight hours until the end of the training session. Some of them have contracted bladder infections.[33] 해부학적 구조 때문으로도 상대적으로 취약하지만 전술했다시피 충분히 물을 섭취하지 못하면 더욱 위험해진다.[34] 다만 북한 언론은 룡천역 폭발사고처럼 도저히 숨길 수 없을 정도로 피해 규모가 아주 극단적이거나 평양 아파트 붕괴 사고처럼 이미 주민들 사이에 퍼질대로 퍼진 경우가 아닌 이상 사건사고 보도를 안 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35] 특히 '1호 행사'가 예상될 때는 모든 참가자들은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하루 전부터 공연장에 모여 대기해야 했다고 한다.[36] 다만 이 기사에서 아리랑 공연에 대한 언급은 두 줄도 되지 않으며 이 기사는 실제로는 평양의 여대생의 생활이 어떠한지를 다룬 것이다.[출처] 잉그리트 슈타이너 가쉬, 다르단 가쉬 엮음, 박진권 옮김, 독재자를 고발한다!, 위즈덤피플[38] 상술한 것처럼 평양이 북한 체제에 가장 열렬히 충성하는 사람들만 살 수 있는 곳이란 것을 감안하면 지방에서 아리랑 공연에 대한 여론이 어땠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39] 참고로 6월 10일부터 26일까지는 공식 공연이 중단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김정은이 공연에 불만을 품어서라는 소문이 있다.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190627/96219906/1]|#][40] 다만 이들 공연에서는 북한이 코로나 19 방지를 이유로 국경을 폐쇄했기에 외국인 관람객은 없었다.[41] 북한에서는 아리랑 공연처럼 특별한 행사에 참여했거나 공훈을 세웠을 때, 명절이나 김일성, 김정일 생일(태양절/광명성절)에 주민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고 있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부자가 하사하는 물품만 '선물'이라고 부를 수 있고 주민들끼리 주고 받는 것은 '기념품'이라고 불러야 한다.[42] 겉으로는 '아리랑' 상표를 달고 나왔으나 실제로는 중국의 창훙(長虹)그룹의 생산품이었다고 한다. 이 정도 사양은 장마당에서는 북한 돈으로 60만 원(미화로는 200달러)의 거액으로 거래되었다고 한다. 당시 북한에서 60만 원은 월급 2500원을 받는 일반 노동자가 20년을 벌어야 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고 한다.[43] 주목할 것은 링크의 기사들은 모두 2007년(!) 기사인데도 북한 내부 소식통에서 '컬러 TV'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인데 물론 평양인 만큼 구식 '컬러 TV'를 대체할 용도의 새 '컬러 TV'를 줬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