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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정복, 식민 통치한 역사는 보스니아 역사에 깊은 유산을 남겼다.2. 역사적 관계
2.1. 근세
오스만 제국은 발칸 반도를 정복하였고 합스부르크 제국과 대치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서 보슈냐크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한다. 보슈냐크 무슬림들은 사부아 공자 외젠의 공격을 직접 격퇴하는 등 분전하였으나, 17세기 말에 이르면 대 튀르크 전쟁 이후 유럽 내에서 오스만 제국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고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 일대의 영토를 상실하면서 해당 지역의 무슬림 난민 상당수가 헝가리와 가장 가까운 오스만령 보스니아로 피난을 가 정착하였다.2.2. 19세기
1878년 베를린 회의의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오스만 제국과 공동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1882년에는 과도한 세금 문제로 무슬림과 정교회 신도들이 오스트리아의 지배에 맞서 대대적으로 봉기하였으나 진압되었다.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대규모의 무슬림 신민들을 지배했던 노하우가 부족한 것은 물론 해당 지역의 세르비아인 정교회 신도들 역시 무시했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개발을 주저하였고, 총알받이용 보병을 징집하는 구역 정도로 관리하였다. 1879년 당시 38.7% 정도에 달했던 무슬림 인구는 오헝 제국의 식민 정책 및 무슬림들의 오스만 제국 망명 등으로 1910년에는 32.2% 정도 비율로 감소하였다. 반면 가톨릭 인구는 1879년 209,391명 18.1%에서 1910년 무렵에는 434,061명 22.9%으로 증가하였다.
2.3. 20세기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공동관리하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동통치령은 1908년부로 완전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국제적 긴장을 이른바 보스니아 위기라고 부른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보슈냐크인 인구의 추가 유출이나 소요 사태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1909년부로 무슬림 행정기구에 자치권을 부여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 범슬라브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는 가운데, 보스니아 내에서도 종교에 상관없이 보스니아의 세르보크로아트어 사용 남슬라브 주민들이 슬라브 민족주의로 뭉쳐야 한다는 보스니아인 민족주의가 대두되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치하의 보스니아에서는 한편으로 보수적인 울라마(이슬람 율법학자)들은 종교 용어로 오스만어를 꾸준히 사용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슬라브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은 좀 더 세속적인 다른 무슬림들은 아랍 문자 대신에 키릴 문자로 보스니아어를 표기하기 시작하였다. 반오스트리아 감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로 체코인 관료들을 파견하곤 했다.보스니아의 중심 도시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젊은 보스니아」(Mlada Bosna)의 회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저격당한 이른바 사라예보 사건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배하고 이후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 세르비아인들은 독립을 쟁취하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크로아티아 등을 합쳐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세웠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산정권이 수립되었으며 한동안 나치 독일에 합병되었던 오스트리아는 다시금 분리/독립되었다. 1990년대초부터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해 해체되면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독립국이 되었다. 독립국이 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오스트리아와 공식수교했다.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의 독립을 최초로 승인한 국가로 1992년 4월 8일부로 수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