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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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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환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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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시절

1. 개요

LG 트윈스 소속 내야수 오지환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태어나고 축구선수를 꿈꿔왔으나 같은 아파트에 살던 박상수 감독이 야구를 하자고 설득해 군산초에서 야구를 시작했다.[1] 군산초등학교 졸업 후 학교 문제로 인해 야구를 그만둘 뻔했다가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고향인 서울특별시로 전학을 갔다.[2] 자양중학교 재학 중에 다리를 찢어 포구하는 1루 수비로 유명했던 OB 베어스 출신의 원년 1루수 '학다리' 신경식 당시 감독이 그를 발굴했다.[3][4]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원래 내야수였으나 경기고의 에이스였던 최원제장충고등학교로 전학가면서 투수도 겸업했다. 마운드에 선 뒤부터는 점차 비중이 투수 쪽으로 옮겨가야 했다고 해야 맞을 듯. 고교야구대회 결승전까지 대부분의 이닝을 소화하며 올라가기도 했다.
고교 무대에서는 안치홍(KIA), 김상수(삼성), 이학주(해외진출), 허경민(두산)과 함께 1990년생 5대 유격수로 불리었다. 여담으로 이들 중 2023년 기준 주전 유격수로 꾸준히 활약해 온 선수는 오지환 밖에 없다. 안치홍KIA 타이거즈 입단 후 3루수로 잠시 뛰다가 붙박이 2루수가 되었고, 김상수는 초반 활약 이후 간염으로 이탈 이후 유격수로 오랜 기간 활약하다 2루수로 자리를 옮겼다가 2022년 후반기부터 유격수로 되돌아갔고 kt로 이적 후 주전 유격수로 활약 중이다. 허경민은 데뷔 초반 두산의 두터운 내야 뎁스를 뚫지 못하다 군복무 이후 본인의 장기인 수비로 1군 자리를 꿰차고 타격까지 발전하며 주전 3루수가 되었고, 이학주는 유격수로 뛰고 있으나 주전은 아니다.[5]

2008년에는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어 라이벌인 허경민, 김상수, 안치홍, 박건우과 함께 맹활약을 펼쳐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때 오지환은 주장으로 활약했고 대회 종료 후 지명타자 부분에 대회 올스타로 선정되었다.

3. LG 트윈스

2008 시즌 종료 후 실시된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2억 8천만 원, 연봉 2천만 원에 LG 트윈스와 계약하여 입단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수로서 뛰어난 오지환을 투수진 강화를 위해 뽑았다고 생각했으나, 당시 스카우트였던 서용빈[6]은 순수하게 타격 재능만 보고 구단에 1차 지명으로 오지환을 뽑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해 관철시켰다. 입단 직후 당시 LG 감독이었던 김재박 감독에게 "경기고등학교 때 유격수 뿐만 아니라 투수로도 나선 탓에 기본기가 부족하다. 다소 투박하지만 뛰어난 야구 센스를 지녔다."는 평을 들었다.[7] 팀에서는 그 기대치를 반영하여 일본에 진출한 이병규의 등번호 9번을 달아줬다.[8] 물론, 남는 번호가 없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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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즈음에 자신의 싸이에 쓴 글. 당시 LG는 666858의 성적을 찍고 있던 막장팀이었다. 해당시즌 LG 순위는 꼴찌. 해당 경기가 아땠는지는 문서 참조.

그리고 15년 뒤, 오지환은 한국시리즈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MVP가 되었다. 암흑기를 지켜보던 선수가 자신이 좋아하던 팀에 입단해 29년만의 팀 통합 우승을 이끌게 된 것이다.

3.1. 2009 시즌

주로 2군에서 뛰며 타율 0.312 12홈런 60타점의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실책 14개로 1위를 기록하는 등, 수비가 불안했다. 1군에는 확장 엔트리 시행 후 처음 올라왔다.

3.2. 2010 시즌

사실상 데뷔 시즌. 박종훈 감독 체제 하에 주전 유격수로 발탁되어 개막전부터 선발 출장했고, 심지어 그 경기에서 데뷔 첫 홈런인 쓰리런 홈런을 때려내며 타격 능력을 보였으나 또한 보는 사람 뒷목 잡게 만드는 수비도 보였다. 4월 11일 두산전에서, 김현수의 평범한 좌익수 플라이성 타구를 좌익수 앞까지 따라가 좌익수 작은 이병규와 충돌할 뻔하여 놓친 실책은 일품. 개막 쓰리런의 임팩트 이후 타격감이 하락하여 만년 유망주 박경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나 싶더니만, 점차 타격감을 끌어올려 4월 26일 기준 타율 0.295 2홈런 12타점을 기록하며 조인성과 함께 LG 상승세의 실질적인 주역이었고 특히 시즌 초반에는 신인왕 떡밥까지 돌았다. 수비도 날이 갈수록 안정되고 있었다.

6월 7일 기준으로 타율 0.256, 5홈런 28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쓰리런덕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유난히 영양가 있는 뜬금포를 많이 쳤다. 다만 BB/K 비율이 1:3인 데다 삼진율 3할[9]이라는 처참한 선구안과[10] 좌투수만 만나면 아무것도 못하는(35타수 3안타 0.086) 고질병은 반드시 고쳐야 했다.

1군 첫 해라고는 하지만 주전 유격수치고는 실책이 너무 많은 게 문제. 하루 빨리 해결이 되어야 김재박-유지현의 라인을 이을 수 있지 않을까. 초반에 벌어놓은 실책들+후반에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나오긴 하는 실책의 결과물로 2010 시즌 실책 1위를 차지했다. 2010 시즌을 0.241의 타율과 13홈런 61타점, 137삼진, 27실책으로 마무리하며, 2년차 선수치고 좋은 힘을 보여주면서 두자리수 홈런이라는 좋은 기록을 얻었지만[11], 삼진왕, 실책왕을 모두 차지하고 말았다. 또한 단일시즌 피삼진 137개로 역대 한 시즌 최다 피삼진 2위에 랭크되었다.[12] 그래도 신연봉제 덕분에 고작 입단 3년차만에 억대연봉을 받는 선수가 됐다. 물론 박명환심수창에게 성화가 몰리는 덕분에 의외로 오지환은 조용히 넘어갔다. 세이버매트릭스로 파고 들어도 오지환은 그 해 팀 내 WAR 5위 안에 드니 억대 연봉을 받아도 이상할 건 없었다.

3.3. 2011 시즌

박종훈 감독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오지환에게 더 이상의 특혜는 없을 거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개막 후 4경기 치르는 동안 겨우 1경기 출장했다. 타율은 0.000. 신 연봉제로 인해서 본의아니게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상대팀은 줄곧 좌투수를 내보냈고, 박경수가 유격수 역할을 잘해냈으며 김태완의 예상 밖의 선전으로 벤치를 지키게 되었다. 본인의 뼈를 깎는 노력이 없다면 2011 시즌은 벤치에서 손가락만 빨다가 끝날 거라는 성급한 예상도 있었다. 좌타자로서 좌투수를 상대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독한 마음을 가지고 연습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9일 한화전에서 위기감을 느꼈는지 5타석 3타수 2안타 2볼넷으로 좋은 타격감을 보였고 볼넷도 2개를 골랐고 커트를 연신 해내는 등 오지환 답지 않게 정교한 모습을 보였다. 좌투수 마일영에게도 깨끗한 안타를 뽑아냈다.

박종훈 감독이 11일자 기사에서 오지환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인터뷰를 했다.

너랑싸움하고싶다 시즌2?

물론 이 인터뷰의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역으로 오지환에게 더욱더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관심이 없었다면 거론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뷰 내용에서도 수비 & 좌투수 공략 두 가지 명제를 강조해서 인터뷰했다.

오지환이 이걸 좋은 쪽으로 받아들여서 극복을 해낸다면 최고가 될 것이고, "이형종처럼 난 너랑 맞짱뜨고 싶다!"고 받아들인다면 결국 흔하디흔하고 이름 없이 사라지는 선수가 될 것이었다. 다행히도 생김새완 달리 오지환은 마인드가 훌륭한 편이라 이형종처럼 키보드워리어 짓을 하지 않았다.[13]

괜찮은 타격감과 수비에서도 경기를 많이 치른 상태는 아니지만 꽤 깔끔해졌다.

16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8회 내야플라이를 놓치는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애써 냉정을 유지하는 모습이었지만 추가실점으로 역전당할 상황에 몰렸을 때 거의 울려고 하는 듯한 모습에서 얼마나 자신의 실책에 대한 자책감이 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9회 마지막 땅볼을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면서 승리. 여담이지만 이 실책은 오지환의 시즌 첫 실책이었다.

20일 SK전에서 8회 대타로 나와 이영욱을 상대로 '밀어서' 문학구장을 넘기는 시즌 첫 홈런을 기록했다.

27일 롯데전에서 박종훈 감독의 좌우놀이에 대해 한이라도 맺힌 듯 미친 듯한 맹타를 쳐냈다. 수비에서도 전에 없이 매끄러운 플레이를 펼치며 수비 쪽에서만큼은 의구심을 서서히 걷어내고 있다.

29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첫 타석 때 타격을 하다가 방망이 끝에 공이 맞으면서 손목이 꺾이는 부상을 당했는데 결국 2주간 2군 크리...이런 유형의 부상이 타자들에겐 의외로 많다. 물론 대부분 감수를 하면서 하는 타자들이 많다. 오지환의 경우는 손목 쪽에 충격이 간지라 아쉬운 대목.[14]

5월 11일 1군에 재등록되었으나 14일에야 100% 힘으로 타격훈련을 했다고 하니 생각 외로 손목충격이 오래간 셈이다. 윤진호가 수비에서 상당한 능력을 보이며 유격수 자리를 메꿔줬지만 자동아웃수준의 절망적인 타격 때문에 팬들은 오지환의 복귀를 손꼽아 기다렸다. 더군다나 오지환이 빠진 동안 LG타선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15일날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부상 이후 처음으로 대타 출전했으나 삼진으로 물러났다. 다음 주부터 선발 출전을 할 수 있을지는 얼마나 타격페이스를 끌어올리느냐에 달려있는 듯하다. 그가 합류해야 공격 & 수비 모두 안정된 플레이가 가능하다. 올해의 오지환은 유격수로서도 준수한 수비를 보였다.

그러나 야구 관련 커뮤니티들에서 오지환의 부상이 좀 심하다는 카더라가 돌았다. 그래서 11일 오지환을 올리긴 했는데 여태껏 타선에 선발로 넣지 못한 것이라는 속사정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두고 봐야 알 듯. 오지환 복귀 때부터 상대팀이 계속 우투수를 선발로 세웠는데도 선발 유격수로 못 나왔다는 게 꺼림칙하긴 하다. 윤진호가 좋은 수비를 보여 벤치에 있었다기엔 설득력이 부족한지라...

결국 그 우려는 현실화되었다. KIA 타이거즈 전에서도 선발 출전했지만 3타수 무안타 3삼진을 당했는데 중요한 건 배트도 제대로 못 쥐었다는 것이다. 결국 손등부위에 뼛조각이 발견되어 3개월 동안 결장하게 되었다. 아쉽지만 잘 회복해서 완벽하게 돌아오길 팬들이 바랐다.

복귀 후 팀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어줬다. 좋은 타격으로 타율도 0.292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갑자기 물타격을 보여주며 타율은 0.220까지 떨어졌고 수비에서도 뇌수비를 저질렀다.

특히 임찬규가 나올 때마다 그의 수비는 빛을 발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안좋은 의미로.[15] 9월 18일에는 포구실책으로 차일목끝내기 만루홈런의 테이블세터 역할을 했으며, 10월 1일 임찬규가 선발로 나왔을 때는 1사 만루 병살 상황에서 공을 흘리는 치명적인 에러를 저지르는 등 연봉 대폭락이 예상되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를 본 사람들은 기름손 왕자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어쨌거나 2011 시즌은 좋지 않은 기억만 남긴 채 마감했고, 연봉계약 에서도 찬물을 맞았다. 1억 2백만 원에서 53% 깎인 4천 8백만 원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3.4.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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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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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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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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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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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017 시즌

지난 시즌 종료 후 경찰 야구단에 지원하여 입대하려 하였지만 문신 문제로 인해 무산되면서 어쩔 수 없이 올 시즌 종료 후 입대하게 된다. 올 시즌은 오지환을 대체할 유격수를 발굴하는 과제로 인해 출장 경기 수가 지난 해에 비해 줄어들 가능성이 꽤 있다.

강승호가 유격수 수비에 약점을 보이며 2루수로 손주인의 백업이 됨에 따라서 이번 시즌도 유격수로 대부분의 경기에 출장하고 있다. 오지환이 잘 치는 날에는 팀도 잘하고 오지환이 삽질을 하는 날에는 팀도 삽질을 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6월 들어 완전히 스윙폼이 무너져 버리면서 거의 대수비 수준으로 추락해 버렸다. 7경기 연속 삼진 7경기 11삼진으로 거의 공을 맞추지도 못한다. 얼마나 투수들에게 만만히 보였는지 LG에게는 배팅볼 투수 수준인 이보근이 같은 곳으로 똑같은 공을 3번 던져서 헛스윙 3번을 유도해내 삼구삼진을 먹여버리기도 했다.

2016 시즌 초중반에도 한창 부진했었으나 2군에 내려갔다가 올라온 후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던 데다 2군에 내려갔다 올라온 타자들이 이천매직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선수 개인이나 팀을 위해서라도 2군에 갔다 오는 게 좋아보인다.

그래도 7월 12일 SK와의 경기에서 5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을 기록하는 등 팀이 역전승을 이뤄내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7월 21일 삼성전에서 역전 적시타를 쳤지만, 그 이후에 정찬헌의 2타점 적시타와 이형종과 김재율의 백투백 홈런에 묻히고 말았다.

7월 25일 넥센전에서 이병규의 838삼진을 뛰어넘어 840삼진을 기록했다. 어마어마하다.

8월 4일 발목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거기서부터 오지환의 2017 시즌은 잊으면 좋을 듯하다. 시즌을 앞두고 30홈런을 치고 골든글러브를 받고 싶다고 했지만, 홈런은 단 8개 밖에 못 쳤다.[16]

최종 성적은 107경기 타율 0.272 91안타 8홈런 39타점 47득점 10도루 출루율 0.362 장타율 0.407. 전체적으로 커리어 로우였으며 거기에 이종범의 유격수 실책 기록을 넘어 버리고 말았다.

3.10.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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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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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1차 FA

시즌 후 FA 선언을 했고 LG 구단과 3차례의 만남을 가졌으나 구단 측의 충분한 제안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지영, 유한준 등 극소수를 빼면 19 시즌 이후 FA 계약 속도가 워낙 느리긴 하지만...덤으로 진해수송은범도 2차 드래프트 이전인지 지지부진이라고.[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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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오지환의 에이전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굳은살이 잔뜩 박힌 손의 사진을 올린 후 오지환은 LG에서 뛰고 싶은데 잘 풀리지 않아 너무 힘들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한편 댓글에서 에이전트 본인은 6년을 요구했지만 잘 되지 않았음을 밝히면서 LG 팬들을 뒤집어놨다.[18] 오지환 측에서는 6년을 공론화하며 프랜차이즈 대우를 안 해준다며 팬들의 여론을 얻어서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한편 LG 측에선 4년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11월 25일 스포츠조선의 박재호 야구부장이 본인 유튜브에 푼 썰에 따르면 6+@년에 세자릿수 금액을 요구했다고 (사실이 아닐수도 있지만) 한다.[19][20] LG 팬들은 오지환의 본인 요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심하다며 이 사실이 진짜면 LG가 포기해도 이해를 한다는 식의 의견을 내고 있다. LG 트윈스 갤러리는 당일에 나온 신인왕 떡밥으로 KIA 갤과 불이 붙은 상황이었는데 이 유튜브 영상 한편으로 그 불이 싹 꺼지고 오지환 이야기로 불타올랐다. 네이버나 엠엘비파크 등의 사이트에서도 LG 팬들조차도 오지환에 대한 여론이 상당히 안 좋아진 상황. 한편 다른 팀 이적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상황상 선수에게 불리한 건 어쩔 수 없는 듯. 기사나 야구부장 유튜브 등지에서 나오는 이야기로는 타팀에서 오지환을 영입하려는 의사가 없다고 한다. SK에서 잡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거의 접은 상태라고 박재호 야구부장이 유튜브 영상으로 밝혔다.[21]

오지환 측에서는 돈 이야기는 꺼내지 않은 상황이며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간이 6+@년인 것은 사실로 추정되는 상황이며, 차명석은 4년 계약에서 물러설 생각이 없다고 한다. 즉, 오지환이 물러서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FA 미아가 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

결국 26일 차명석 단장이 일본행 비행기를 탐으로써 협상은 달을 넘기게 됐다.

12월 3일 박재호 야구부장의 유튜브에서 또 새로운 소식이 나왔는데 차명석 단장이 에이전트에게 시장 상황을 보고 오라고 굉장히 답답해했다고 한다. 구단의 제시액과 에이전트의 제시액이 격차가 꽤 크다고 하며 오히려 LG 구단에서 제시한 금액이 비슷한 나이에 최근 몇년간 타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안치홍, 김선빈보다도 더 높다고 한다. 이 정도면 넙죽 도장을 찍어야 할 상황에 에이전트는 이적까지 고려한다고 하니 팬들조차도 다 열받는 상황.

12월 5일 오지환이 FA 계약을 구단에 백지위임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잔류를 확정지었다. 본인은 6년 계약 썰에 그 썰은 사실이며 팀에 오래 남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제안이었다고 하며 가족들을 위해 더 이상 FA 계약을 끌고 싶지 않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백지위임을 선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사에 4년 50억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발언을 하는 등 사실상 4년 50억을 요구한 상황이고, 안치홍이 LG와 접촉했다는 찌라시가 돌자마자 저런 행동을 하였기에 차명석 단장이 미국 출장을 가기전 딴 맘 먹을까봐 쫄아서 블러핑을 했다고 보는 게 지배적이다. 그리고 차 단장은 미국 출장 갔다와서 이야기 하자면서 절대로 조급하게 도장 찍게 만들 생각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덕분에 차라리 신인이나 키우라고 타팀 팬들이 비아냥대고 있지만, 섣불리 주전 선수가 나간 뒤 신인 아무나 박고 키우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행복회로만 돌리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거기에다가 포수 다음으로 키우기 어렵다는 주전 유격수를 마땅한 대안 없이 뱉어버린다면....

서울팜이 좋다지만, 그건 두산 베어스키움 히어로즈에게나 해당되는 얘기. 두산은 김재호가 나가면 류지혁이라는 대체자가 있으며, 키움은 김하성이 메이저리그 진출 등으로 향후에 진출하게 된다면 김혜성이 있다.[22]

백지위임 후 2주가 지난 12월 20일에 4년 40억에 재계약했다는 오피셜이 떴다. # 2016년의 김재호 다음으로 유격수 2위 FA 계약이지만 당연히 대다수의 그린야갤러들은 거품이라며 비아냥대고 있다.[23]

여기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차명석이 원래는 75억이며 더주고 싶었다는 말에 뒤집었었다.

하지만 이 계약은 거품이나 오버페이는커녕 손에 꼽힐만한 역대급 혜자계약이었으며 전준우의 4년 34억 다음가는 미친 계약으로 평가받는다.[24] 차명석이 말했던 75억을 줬어도 혜자계약이다.[25]

3.13.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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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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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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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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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1. 비FA 다년계약 (파기)

FA 기간 3년 간 활약과 노고를 바탕으로 2024-2029 6시즌 간 총액 124억원의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하는 데에도 성공하였다.

다만 2023 시즌 이후 해당 계약을 파기하고[26] 동일 조건으로 FA 계약으로 진행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2차 드래프트에 대비해 보호선수 슬롯을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3.16. 2023 시즌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23 KBO 리그 수비상 (유격수)

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KBO 한국시리즈
2023 한국시리즈 MVP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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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2차 FA

2차 드래프트에 대비해 보호선수 슬롯을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기존에 체결한 비FA 다년 계약을 동일 조건의 FA 계약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아예 확률이 없다고 봐도 되지만, 이론상으론 이적도 가능하다.

12월 21일 인센티브 24억원 포함, 6년 총액 124억원에 LG 잔류를 확정지었다. #

그러나 비FA 다년계약을 맺은 오지환이지만 2차 드래프트 꼼수를 위해 차명석 단장과 협의 하에 FA 신청한 행동이 후일 KBO에서 룰의 허점을 노린 편법이라 판단하여 해당 규정을 다시 보완하는 계기가 되었다.#

3.18.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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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가대표 경력

4.1.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 대표팀 개인별 성적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3 2 1 0 0 0 0 2 0.500 0.667 0.500 1.167 0 1 1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는 선동열호에 차출되었다. 오지환 본인 커리어에서 첫 A대표팀 입성. 하지만 막상 뽑혔음에도 단 3타석에만 들어섰다. 그 이유는 백업이었던 것도 있지만 인도네시아 현지 열악한 수도사정으로 인한 장염[27] 때문도 컸다.

4.2. 2020 도쿄 올림픽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7 7 23 5 1 0 2 5 3 0.217 0.357 0.565 0.923 1 7 3

같은 소속팀인 고우석, 차우찬, 김현수와 함께 선발되었다. 등번호는 2번.[28]

타격 성적이 한창 바닥을 뚫고 들어가던 시점이라 의문이 제기되긴 했지만, 김하성의 메이저리그 진출 후 남은 국내선수들 중에서 유격수 수비는 최상위권이라는 게 중평이었기에 아시안게임 때와 달리 납득하는 분위기이다.[29] 다만 선발 자체보다는 김경문 감독이 "오지환, 박해민은 안 뽑겠다"고 공언해놓고 말을 뒤집고 둘 다 뽑은 게 구설수에 올랐다. 뭐 김경문 입장에서는 김하성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한 말이겠지만.

만약 도쿄올림픽, 특히 한일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오지환에게 계속 시달렸던 병역기피 이미지는 많이 줄어들 것이며 호감으로 바꿔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다.

소속팀인 LG 트윈스와의 평가전에서 목 부위가 4cm 가량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교체되었으나 다행히도 올림픽 출전에는 큰 지장이 없다. 오지환이 빠지자 내야 수비가 흔들리는 등 그의 선발 이유를 증명했다.

이스라엘과의 오프닝 라운드 1차전에서 7번 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출전했다. 이 날 오지환에게 지배신이 강림하여 경기를 멱살 잡고 캐리했다. 5타석 4타수 3안타(1홈런) 3타점 1볼넷 1도루의 기록이다. 팀이 0: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익수 뒤로 넘어가는 동점 2점 홈런을 쳐냈다. 또, 7회말에는 4:4의 스코어에서는 우중간을 가르는 역전 1타점 2루타를 쳐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스코어 5:4로 역전했다. 단순히 장타력만 뽐낸 게 아니다. 경기 내내 자신의 장점인 안정적인 수비력을 뽐냈다. 게다가 볼넷으로 걸어나간 상황에서 도루까지 성공시키며 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팀은 양의지의 끝내기 사구로 승리. 마지막 타석에서도 행운의 안타가 될법한 타구를 3루수가 잘 잡은 거라 아쉬움이 남았다.

미국과의 오프닝 라운드 2차전 역시 7번 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출전했다. 지난 이스라엘전과 달리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KBO리그 보다 수준이 높은 리그에서 뛰는 투수들을 상대로 상당히 고전했다. 타격에서 3타수 0안타, 1볼넷으로 팀에 큰 기여는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도 미국에 2:4로 패했다.

8월 2일 이스라엘전에서도 2회 말에 투런홈런을 때려내며 점수를 0:3으로 벌렸고, 5회말에는 손등에 맞는 사구로 진루하며 빅 이닝의 발판을 마련했다.[30] 수비에서의 탄탄함도 여전했다. 최종 성적은 3타수 1홈런, 1볼넷. 아시안 게임 당시 같이 선발 논란을 빚었던 박해민과 함께 만점 활약을 하면서 군면제를 후불로 갚는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이제 한일전이나 금메달 결정전에서만 잘 한다면 후불에 이자까지 치는 셈이지만. 희한하게도 이스라엘만 만나면 훨훨 날아다녀서 이스라엘 킬러로 자리매김했다.

8월 4일 일본과의 준결승전 역시 7번 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출전했다. 2회 첫 타석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히트 바이 핏치를 당하며 출루했다. 하지만 4회말 수비 상황에서 평범한 뜬공을 놓치며 실책을 기록했다. 이번 대회 전 경기에서 안정적인 수비를 뽐내던 오지환이었기에 더욱 아쉬웠다. 다행히 고영표가 잘 막으며 실점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이후 9회 타석에서는 선두타자로 나와 출루에 성공했고, 폭투에 의해 2루까지 나갔으나 후속타자가 모두 힘없이 물러나며 2-5 패배를 막지 못했다.

두번째로 뽑혀간 국가대표에선 연습과정 중에 스파이크에 턱이 찢어지고, 이스라엘과의 2차전에 손에 사구를 맞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투혼을 발휘하면서 많은 야구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으며, 이스라엘 전에서 말그대로 하드캐리를 해내고 다른 국가와의 경기에서도 적절한 타격과 안정적인 수비력을 보여주면서 '왜 자신이 국대로 뽑혔는지' 증명하는데 성공해, 3년전 병역특혜 논란부터 지속된 자신에게 비판적인 여론을 180도 뒤집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선수선발에 관한 수많은 논란과 중심타선의 부진, 감독의 막장 투수운용으로 메달을 놓치고 거대한 비난에 휩싸이며 오지환의 활약은 빛이 바랬다.

최종 성적은 타율 .217로 부진해 보이지만, OPS는 .923을 기록하여 세이버의 황제라는 별명답게 타율에 비해 높은 효율을 기록했으며,[31] 타점도 2018년에 같이 욕먹었던 박해민과 함께 팀내 최다 타점 공동 2위인 5타점을 기록했다.[32]

4.3.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 - - - - - - - - - - - - - - -

본인의 세번째 국가대표 차출. 현 한국인 최고 유격수인 김하성이 차출되어 2021년 메이저리그 2루수 골드 글러브를 획득한 토미 에드먼과 키스톤을 이루면서 주전이 아닌 백업 유격수 또는 우타인 김하성 타석때 좌타 대타로 나설 전망이다.

3월 6일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연습 경기에서 1회 2회에 실책을 저지르며 2실책이라는 오지환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으로 욕을 대차게 먹었다. 경기 직후 오릭스와의 경기에서의 패착이 한국의 내야수비였던 것을 감안하면 비난은 충분히 받을 만했다. 다만 교세라 돔 오사카 경기장 잔디가 인조잔디였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김하성도 실책한 모습을 보면 잔디 적응이 덜 된 것 같다.

이후에는 거의 백업으로 뛰다가 중국전에 선발로 나와 라인드라이브, 번트안타에 2안타를 때려내는 등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토미 에드먼의 심각한 부진으로 차라리 김하성을 2루로 보내고 진작 오지환을 진작 주전으로 썼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동료 박해민도 같이 들은 말.

5. 연도별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오지환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WAR*
2009 LG 5 10 1 0 0 0 1 1 0 1 5 .111 .200 .111 .311 -24.7 -0.09
2010 125 417 85 13 6
(2위)
13 59 61 13 44 137
(1위)
.241 .332 .423 .755 96.0 2.72
2011 63 180 33 7 0 2 17 15 5 19 57 .212 .299 .295 .594 64.4 0.36
2012 133
(1위)
540 115 22 2 12 66 53 23 55 122
(1위)
.249 .331 .383 .714 102.8 3.50
2013 124 514 113 20 8
(1위)
9 81
(3위)
47 30
(4위)
54 113
(2위)
.256 .347 .399 .746 102.6 3.91
2014 113 464 104 20 8
(4위)
8 72 56 28 51 102 .262 .354 .413 .767 94.6 2.62
2015 138 566 138 41
(3위)
4 11 76 56 25 59 121 .278 .357 .443 .800 110.3 4.44
2016 121 472 110 14 5 20 73 78 17 65 97 .280 .387 .494 .881 126.6 4.16
2017 107 390 91 13 4 8 47 39 10 45 105 .272 .363 .407 .770 101.2 2.14
2018 144
(1위)
617 148 26 2 11 93 71 10 59 146
(1위)
.278 .354 .396 .750 89.4 2.83
2019 134 547 119 23 5 9 63 53 27
(4위)
57 113
(5위)
.252 .339 .378 .717 100.8 3.37
2020 141 591 158 41
(3위)
7
(2위)
10 95 71 20 45 116 .300 .362 .461 .823 119.9 4.41
2021 134 532 118 19 2 8 62 57 12 54 82 .254 .335 .356 .691 93.9 2.33
2022 142 569 133 16 4 25
(4위)
75 87 20 62 107 .269 .357 .470 .827 138.6 5.77
2023 126 502 113 24 3 8 65 62 16 64 82 .268 .371 .396 .767 121.9 3.89
KBO 통산
(15시즌)
1750 6911 1579 299 60 154 945 807 256 734 1505
(4위)
.265 .351 .413 .764 105.4 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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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때의 인연으로 박상수 감독과는 사적으로 작은 아빠라고 부를 정도라고.[2] 정확히 말하자면 오지환은 야구선수를 꿈꿔왔지만 부모님이 초등학교때까지만 야구를 허락해주고 야구선수의 길을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예체능 전형으로 중학교 원서를 쓰지 않고, 일반 전형으로 야구부가 없는 집과 가까운 학교로 갈 예정이었으나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해서 학업으로는 다른 학생들을 따라갈 수 없었고, 이미 일반 중학교 원서를 써버린 탓에 오지환이 살고 있던 군산 지역에 유일한 야구부가 있는 군산중으로 진학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야구를 하기 위해 서울로 전학갈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중학교 원서를 처음부터 예체능 전형으로 써 군산중으로 진학하고 고등학교도 인근 지역인 군산상고나 전주고 등 호남지방에서 졸업했다면 LG가 아닌 KIA로부터 1차지명을 받았을 수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도 이웃인 박상수 감독이 쌍방울 시절 한솥밥을 먹은 당시 자양중 감독인 신경식에게 도움을 요청해 야구부가 있는 자양중에 입학할 수 있었고 신경식 감독 집에서 생활하면서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경기고 진학 이후에는 학교 숙소에서 지냈다.[3] 타지역 출신이어서 중학생 시절에는 신경식 감독의 집에서 지냈다고 한다.[4] 그리고 프로 입단 후 이 둘은 다시 한 팀에서 만나게 된다.[5] 시카고 컵스 산하 싱글 A팀 피오리아 치프스에서 118경기를 유격수로 소화했다. 2010년 시즌 기록 .282 타율에 32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공격력과 주루는 인정받았으나 34개의 실책을 저지르는 등, 수비는 아직 개선해야 했다. 관련자료. 2011년에는 맷 가자 트레이드에 엮여 탬파베이 레이스로 옮겨서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 최고수준(베이스볼 어메리카 전체 94위.) 유격수 유망주이자 2011 탬파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다만 이후 부상과 부진으로 결국 메이저리그엔 진출하지 못했고, 이후 국내에 복귀하였다. 복귀 후에도 본래 강점이었던 송구 능력 외엔 큰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6] 당시 서용빈은 갓 일본 연수를 마치고 와서 2008년부터 스카우트 일을 하고 있다가 2008 시즌 중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7] 김상수는 김응용 사장, 선동열 감독으로부터 제2의 이종범이란 소리를 듣고, KIA의 안치홍은 조범현 감독으로부터 타격 재능은 팀 내 최고라는 소리를 들은 것에 비하면 수수한 평가다.[8] 지금은 이병규의 번호가 영구결번이 되면서 이제 더 이상 달 수 없는 LG의 9번을 오지환이 달아본 셈이다.[9] KBO 통틀어서 규정타석을 채우면서 삼진율 3할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2000, 2001 시즌의 톰 퀸란밖에 없다. 퀸란은 리그 최고 수준의 3루 수비력과 리그 최고의 뜬금포(당시 퀸란은 삼진/볼넷/홈런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를 장착하고 있었기는 하다.[10] 단 출루율이 1할 가까이 높았던 2010년 기록을 볼 때 선구안보다는 컨택트 능력이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공은 보는데 못 맞춘다. 그래도 2013년 현재는 많이 개선되었다. 2015년에는 타격폼 수정으로 볼삼 비율이 슬슬 반으로 맞출 수 있는 가능성을 엿봤다.[11] 다만 안치홍이 입단 1년차에 두자리수 홈런을 쳐버려서 조금 묻혔다.[12] 2000년 톰 퀸란의 173개가 역대 1위이다.[13] 사실 이형종은 방황을 좀 해서 그렇지 팀 내에서는 오버트레이너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타자로 나름 제 몫을 하며 팀에 보탬이 되고는 있다.[14] 데드볼이 아닌 공을 치다 가장 끔찍한 부상을 당한 사례도 있다. 현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인 하라 타츠노리가 그 좋은 예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전설적인 마무리 츠다 츠네미의 돌직구를 쳤다가 오른팔 뼈가 아예 부서져 나갔다. 타격 후 하라의 오른팔은 너덜너덜해지고 고통 속에 뒹구는 모습은 지금도 회자 될 정도. 결국 이것 때문에 회복 후 타격폼까지 바꿔야 했다. 지금이야 하라 타츠노리 본인도 허허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엔 웃을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번개 맞을 확률이긴 하다.[15] 그나마 롯데전에서 호수비를 하긴 했다.[16] 사실 시즌 초반에는 홈런 페이스가 매우 좋았으나 4월 이후로 타율과 홈런 갯수가 떡락하더니 8월이 되면서 부상을 당하고 시즌을 날렸다.[17] 셋 다 싸인을 안 해준다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18] 현재는 인스타를 비공개했다.[19] 이 정도는 최소 8년 100억을 요구했다는 것인데, 이는 4년을 환산하면 차명석 단장이 제시한 김재호의 첫 FA 때 금액과 동일하다. 이 당시 한참 FA 인플레이션 시대였는데도 과하게 준 거 아니냐고 말이 나왔다. 근데 FA 인플레이션 시대가 끝난 지금 상황에서는...더군다나 세자릿수 금액이 100억 이상일 수도 있다. 당장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6년 106억의 대형 계약을 맺은 최정도 구단이 대우 잘 해줬다는 소리를 듣는 판에... 최정은 자타가 인정하는 KBO 최정상급 타자에, 김광현과 더불어 SK 최고 프랜차이즈 선수며, 영구결번 역시 확실하다. 이 정도 급이 되어야 요구할 수 있는 게 6년 100억이다.[20] 참고로 야구부장 유튜브에서 저 사실을 밝히기 전에 엠엘비파크 쪽에서 6+2년 110억을 요구했다는 썰이 터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욕을 엄청나게 먹고 글을 지웠다가 야구부장 유튜브 영상이 뜨자마자 진짜 썰쟁이라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그 사람은 이후에 자신이 썼던 기간과 금액이 공공연하게 떠돌던 이야기였다고 밝혔다.[21] SK는 외부 FA는 물론 이진영, 이호준, 정근우, 정우람, 정상호 등 내부 FA도 놓친 적이 많다. 이 때문에 내야진 사정을 아는 팬들은 이제는 좀 사서 쓰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하지만 SK는 김창평, 최준우, 안상현 등 어린 내야수들이 많기 때문에 오지환 영입은 젊은 선수들의 안착을 위한 방패막이 그 이상도 아니다.[22] 심지어 둘다 백업인데 정주현보다 WAR이 압도적으로 높다.[23] 계약 규모를 김상수 기준으로 줬어야 했다는 극단적인 의견도 있지만 말이 안되는 이유는 사실 둘의 통산 sWAR 차이는 9에 가깝다. 당연히 오지환의 우위. 같은 드랩이고 군면제라 연차가 같은데 김상수와 같은 등급으로 매기기엔 통산 WAR에서 심하게 압도해 버린다. 게다가 김상수는 FA 직전 3시즌 잔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가치가 깎였고 이학주라는 대체자도 있었다.[24] 4년간의 WAR은 오지환이 약간 더 높은데 전준우가 무려 6억이나 더 싸서 전준우의 혜자력을 넘지는 못 했다. 심지어 전준우는 나이 때문에 2차 FA도 더 저렴하다.[25] 골든글러브에도 수상에 성공한 것은 물론이며 20-20클럽과 3할 타율도 성공했다. 또한 4년동안 쌓은 WAR이 19.59인데 75억을 기준으로 해도 1WAR당 3.83억의 가성비를 보여주었다. 보통 1당 4억의 가치를 한다고 생각하면 혜자계약인 셈이다. 결정적으로 LG가 그토록 바랬던 통합우승에 성공했으며 오지환의 그때 활약은 한국시리즈 MVP만으로 설명 끝. 근데 오지환의 실제 계약은 40억인데 1WAR당 2.05억의 가성비를 보여준다. 게다가 오지환이 프랜차이즈 선수인 것을 생각하면....[26] 2024년부터의 계약이라 KBO에 제출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고 한다.[27] 수도 상태가 최악이라 사용하지 말고 양치도 호텔 생수로 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는데 이를 제대로 듣지 않고 수도를 사용하여 장염에 걸렸다고 한다. 더 문제는 다른 몇 명의 선수들도 그랬는데 이게 알려진 직후 10개 구단 팬들로부터 죄다 까였다. 당시 병역특례 차출 논란에 더해 오설사라는 멸칭을 얻은 것은 덤.[28] 현재 본인이 LG에서 쓰는 번호인 10번은 황재균이 사용한다. 등번호 2번은 오지환이 2013년부터 6년간 사용했던 번호이기도 하다.[29] 다른 유격수 후보군 중 노진혁, 심우준은 수비범위가 좁고, 김재호는 노쇠화가 왔으며, 하주석은 수비는 준수하지만 유리몸이라는 문제가 있다.[30] 볼에 맞을 때 주심이 몸에 맞지 않았다는 오심을 내렸으나 챌린지 신청을 통해 판정이 정심으로 바뀌었다. 왼쪽 손등에 맞아서 그런지 손을 계속 신경쓰는 모습을 보여 걱정을 샀으나 이후에도 계속 수비를 보면서 큰 부상이 아니었음을 보여줬다.[31] 반대급부로 비슷한 타율인 .211의 오재일은 OPS를 .484를 기록하며 극단적인 저효율을 보였다.[32] 1위는 7타점을 기록한 김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