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27 16:35:11

옹나라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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雍 | Yong Dynasty
파일:십팔제후왕.png
십팔제후왕 임명 직후의 후초 (기원전 206년)[1]
기원전 206년 ~ 기원전 205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전한
국호 옹(雍)
별칭 삼진(三秦)[2]
위치 중국 섬서성 일대
수도 폐구(廢丘)[3]
정치 체제 군주제
국성 장(章)
국가원수
주요 군주 장한,(기원전 206년~기원전 205년),
현재 국가
[[중국|]][[틀:국기|]][[틀:국기|]]

1. 개요2. 국호3. 역사
3.1. 연표3.2. 건국3.3. 멸망
4. 국력
4.1. 지휘관
5. 외교

[clearfix]

1. 개요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4] 후초의 제후국들을 세울 때, 진나라 영토의 일부 지역을 분할하여 세운 제후국이다. 이때 임명된 제후왕은 진나라 최후의 명장 장한.

수도는 폐구(廢丘)였으며, 진나라 영토중에서 함양 이서를 다스렸다.

2. 국호

정식 국호는 옹(雍)이다. 진나라의 초기 수도의 이름과 동일하다.

3. 역사

3.1. 연표

기원전 206년 장한, 항우에 의해 옹왕에 봉해짐
기원전 205년 장한 자살, 멸망

3.2. 건국

비록 항우의 폭거에 짓밟히긴 했지만, 과거 전국을 통일했던 강력한 국가였던 진나라를 삼분(三分)하여 그 힘을 약화시키고, 동시에 파촉을 영지로 받은 유방이 중원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 세워진 제후국이다.[5]

3.3. 멸망

한나라를 상대로 연패를 거듭하다가 수도인 폐구에서 농성하던 옹나라는 안읍 전투가 벌어지는 기원전 205년 9월까지도 항전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전황의 변화로 후방의 우환을 끊어야 했던 한군이 번쾌의 계책으로 폐구를 수몰시켜서 형세가 위태로워지자 군주인 장한이 자살하고 폐구가 함락되면서 멸망하고 한나라에 흡수된다.

4. 국력

상술한 것처럼 진나라 영토는 안 그래도 항우에 의해서 황폐화됐는데, 그걸 또 견제한답시고 삼분해버리는 바람에 옹나라는 천하를 통일했던 진나라 땅 위에 세워졌음에도 전력이 대폭 약화된 상태로 건국되었다.

민심은 민심대로 처참해서 한신이 삼진평정을 논할 때 유방에게 진나라 백성들은 장한을 원망하는 마음이 골수까지 차 있으며, 아무도 그들을 믿고 따르지 않는다고 단언을 했을 정도다.
군사력 역시도 장한이 기껐 반란군들을 평정하며 육성했던 장수들과 병사들 모두 신안에 묻혀버리는 바람에 상당히 부실했다.
황폐화되고 민심은 등을 돌려버리는 바람에 군사를 재정비할 여력이 전혀 없었다. 기껐 진나라 최후의 명장을 왕으로 세워 유방을 견제하도록 해놓고 기타 여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거기다가 이걸 또 셋으로 쪼개[6]놨으니... 결국 세 달만에 뛰쳐나온 유방에게 각개격파 당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4.1. 지휘관

별도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옹나라 지휘관은 없었고, 왕인 장한이 확인 가능한 유일한 지휘관이다. 장한의 화려한 이력을 생각해보면 유방을 견제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나, 처해진 환경이 너무나도 처참하여 한나라의 지휘관인 한신을 상대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래도 적나라나 새나라처럼 바로 항복하진 않고 꽤 오랜 시간 농성에 성공하긴 했다.

5. 외교

한때 옹나라의 군주인 장한 밑에 있던 사마흔동예가 각각 다스리던 새나라, 적나라와는 나름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들이 힘을 합쳐 한나라에 대항하는 일은 없었다.

  • 새(塞), 적(翟) - 새나라와 적나라를 각각 다스리던 사마흔동예는 모두 한때 옹나라의 군주인 장한 밑에 있던 이들이라서 옹나라와는 나름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들이 힘을 합쳐 한나라에 대항하는 일은 없었다.
  • 서초 - 서초의 군주인 항우에게는 골수에 사무치는 원한이 있었겠지만, 그의 힘과 그에게 항복했다는 사실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복종관계에 놓인 관계이다.
  • 한나라 - 유일하게 옹나라와 전쟁을 해본 국가가 한나라인 만큼,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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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u(초록색)은 항우서초이고, 후초는 지도에 나온 모든 나라를 아우른다. 서초는 명목상으로는 후초의 제후국인데. 실상은 후초의 의제서초항우가 세운 허수아비 황제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는 기원전 206년 딱 1년 동안만 단명하였다. 진나라를 멸하고 의제를 황제로 추대한 항우는 바로 그 해 의제를 시해한다. 참고로 장한의 옹나라(당시 명목상 후초의 제후국)는 서쪽에 있는 연짙은 하늘색(Yong)이다.[2] 옹나라, 적나라, 새나라를 통틀어 삼진이라 불렀다.[3] 현재 싱핑시[4] 진왕 자영의 항복을 받아내어 명목상 진나라를 멸한 사람은 유방이긴 하다.[5] 이는 범증의 계책이다.[6] 물론 똑같은 비율로 삼등분 한 것은 아니고 옹>새>적 순으로 인구수와 영토의 질 차이났다. 특히 옹과 새나라는 비슷한데 적나라는 나라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