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7 12:09:06

이석태

파일:헌법재판소 휘장.svg 헌법재판소 재판관 (대법원장 지명, 대통령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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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 지명, 이명박 대통령 임명
이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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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석태
李錫兌 | Lee Suk-tae
파일:1702953062163_ik0tpb_2_0.jpg
<colbgcolor=#911B2B><colcolor=#E6B366> 출생 1953년 4월 17일 ([age(1953-04-17)]세)
충청남도 서산시
재임기간 헌법재판소 재판관
(김명수 대법원장 지명 / 문재인 대통령 임명)
2018년 9월 21일 ~ 2023년 4월 16일[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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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11B2B><colcolor=#E6B366> 학력 경복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경력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제14기 사법연수원 수료
변호사이석태법률사무소 변호사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국장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객원연구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한겨레신문 사외이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위원장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 (초대 / 참여정부)
제6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원 법학연구원
중국 베이징대학교 대학원 객원연구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비상임이사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
세월호 침몰 사고 특별조사위 위원장
포럼 진실과 정의 공동대표
공익인권변론센터 대표
헌법재판소 재판관 (2018.09. ~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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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헌법재판소 재판관 재임 중4. 여담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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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법조인이자 전직 헌법재판소 재판관.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이후 줄곧 인권변호사로 활약했다. 김창종 전 재판관의 후임자로 2018년 9월 21일 취임하였다.[2] 판사, 검사, 헌법연구관 등 이른바 '재조(在曹)' 법조인이 아닌, 오로지 변호사 경력만 지닌 헌법재판관으로 화제가 되었다.

2. 생애

1953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3]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을 합격하였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14기. 연수원 수료 후 변호사로 법조인 인생을 시작했다. 1989년 김형태 변호사와 함께 법무법인 덕수를 창립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의 유족이 국가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사건을 맡아 경찰관에 의한 고문·가혹 행위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받았다. 또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재심을 맡아 진실을 규명하고 강씨가 누명을 벗을 수 있도록 했다.

헌법재판소 사건도 다수 대리했다. 대표적으로 국·공립 사범대 졸업자를 교원 임용에서 우대하는 것은 사립 사범대 졸업자를 차별하는 것으로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았고, 민법상 동성동본 금혼 규정과 호주제 위헌 소송을 대리해 헌법상 평등권과 혼인에 관한 기본권 신장에 기여했다.

문재인대통령참여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일하던 2003년 공직기강비서관으로 함께 일했다. 2012년 2월부터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했으며 지난 2015년 1월부터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힘을 쏟았다. 하지만 초기부터 특조위 권한과 기능을 약화시키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두고 정부와 마찰을 빚으며 이 내정자 등은 광화문 농성을 벌였다. 또 2016년에는 조사활동을 보장하라며 정부에 항의하는 단식농성도 했다.

대법원은 이 내정자를 지명하면서 “이 변호사는 공익·인권 분야의 변론뿐 아니라 사회 활동에 폭넓게 참여해 인권과 법치주의 신장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이 내정자는 헌법재판관으로 임명이 확정될 경우 판사나 검사 출신이 아닌 순수 재야 변호사 출신으로는 최초 헌법재판관이 된다.

그러나, 그간 활동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정치성향, 그리고 법관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그 이전 김선수 전 대법관처럼 큰 논란을 일으켰고[4], 9월 21일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은 여야간 대립으로 불발되었지만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문 대통령이 임명을 단행했다.

3. 헌법재판소 재판관 재임 중

아래의 사안에서 드러나듯 김기영 재판관과 함께 뚜렷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한 판결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는 의견(2018헌마827)
  • 교원의 정당 및 정치단체 가입을 금지한 조항에 대한 전부위헌 의견(2018헌마551)
  • 형법상 국기모독죄에 대한 전부위헌 의견(2016헌바96)
  •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단순위헌 의견(2017헌바127)
  • 오신환 전 의원에 대한 국회의장의 사보임이 적법하다는 의견(2019헌라1)
  •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범죄로 규정한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대한 일부위헌의견(2017헌마1113 등)[5]
  • 임성근 당시 판사에 대한 탄핵 인용의견.[6] 임성근 법관 탄핵소추 및 심판의 주심이기도 했다.#
  • 근로자의 단순파업이 형법 제314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위헌이라는 일부위헌의견[7]
  •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른바 검수완박법의 입법절차에서 소수당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되었는지 여부가 문제된 권한쟁의심판에서 검수완박 입법이 합헌이므로 기각되어야 한다는 의견.
  • 위의 심판과 같은 날 선고된, 국회가 검수완박법을 입법한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검사의 권한을 침해하는지 문제된 권한쟁의심판에서, 국회의 입법행위만으로는 검사의 권한이 침해될 가능성이 없다는 각하의견[8]

2021년 11월과 2022년 5월, 음주운전 및 음주측정거부를 2회 이상 범한 경우 가중처벌하는 이른바 윤창호법 규정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문제된 사건에서, 해당 조항은 책임과 형벌의 비례원칙에 위배되므로 위헌이라는 다수의견을 각각 내었다.[9]

2021년 12월,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촬영된 피해자의 진술영상을 법정에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신문 없이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한 성폭력처벌법 제30조제6항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문제된 헌법소원사건에서, 해당 조항은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는 다수의견을 내었다.[10]

4. 여담

5. 둘러보기

파일:무궁화장 약장.png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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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이 재판관 재임 당시 헌법재판소법 의거, 재판관 정년 임기인 만 70세를 맞이해 동시 취임한 이은애 재판관보다 먼저 퇴임했다. 정년이 아닌 임기종료일은 2024년 9월 20일이였다.[2] 이석태 전 재판관은 이은애 전 재판관과 같은 날 취임했는데, 헌법재판소 공식자료에 의하면 이석태 전 재판관은 김창종 전 재판관의 후임자이고, 이은애 전 재판관은 이진성 전 재판관의 후임자이다. 이진성 전 소장이 대법원장에 의해 지명된 재판관 중 헌법재판소장이 된 최초의 사례인 탓에 순번이 다소 꼬였기 때문이다.[3] 1972년 서울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했으나 자퇴한 후 법학과에 입학했다. #[4] 다만, 헌법재판소의 특성상 비법관 출신의 임명이 재판관 구성의 다양성의 측면에서 더 적절하다는 견해도 있다. 유튜브 링크 물론 정치편향 논란은 별론이지만.[5] 유남석 소장,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이 일부위헌 의견을 내었으나, 최종적으로 합헌 결정이 났다.[6] 이석태 전 재판관을 포함한 3명의 재판관이 인용의견을, 6명의 재판관이 각하 혹은 심판절차종료의견을 내어 최종적으로 각하결정이 났다.[7] 5명의 재판관이 일부위헌의견을, 4명의 재판관이 합헌의견을 내었고, 위헌결정정족수 6인에 이르지 못하여 합헌결정이 났다.[8] 이 사건은 재판관 5:4로 각하결정이 났다.[9] 두 사건 모두 재판관 7:2 의견으로 위헌결정이 났다.[10] 본 사건은 재판관 6:3 의견으로 위헌결정이 났다.[11] 동시에 지명된 이은애 전 재판관은 2024년 9월까지 총 6년 임기였다.[12] 2017년 9월에 취임하여, 2023년 9월에 6년 임기가 끝난다. 5달 차이로 재판관을 한 명 더 지명할 수 있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