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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1호 APOLLO 11 | |
아폴로 11호 미션 패치[1] | |
이름 | 아폴로 11호 |
호출부호 | 사령선: CM-107, 컬럼비아 달 착륙선: LM-5, 이글 |
발사일 | 1969년 7월 16일 13시 32분 0초 UTC 케네디 우주센터, 플로리다 LC 39A |
달 착륙일 | 1969년 7월 20일 20시 17분 40초 UTC |
닐 암스트롱의 하선 시각 | 1969년 7월 21일 02시 56분 15초 UTC |
달 선외 활동 | 2시간 31분 40초 |
달착륙 시간 | 21시간 36분 20초 |
월석 질량 | 21.55 kg (47.5 lb) |
귀환일 | 1969년 7월 24일 16시 50분 35초UTC |
달궤도 시간 | 59시간 30분 25.79초 |
미션 기간 | 8일, 3시간 18분 35초 |
우주선 | 사령선 - 컬럼비아(Columbia) 달착륙선 - 이글(Eagle) |
사령관(CDR) | 닐 암스트롱[2] |
사령선 조종사(CMP) | 마이클 콜린스[3] |
달착륙선 조종사(LMP) | 버즈 올드린[4] |
Here men from the planet Earth first set foot upon the Moon, July 1969 A.D. We came in peace for all mankind.
서기 1969년 7월, 여기 행성 지구로부터 온 인간들이 달에 첫 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모든 인류를 위해 평화의 목적으로 왔다.
서기 1969년 7월, 여기 행성 지구로부터 온 인간들이 달에 첫 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모든 인류를 위해 평화의 목적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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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폴로 계획의 9번째 미션.[5] 인류가 최초로 지구 이외의 천체에 발을 디딘 사건으로, 지금도 인류 과학 기술 발전의 대명사로 꼽힌다. 냉전 시기 우주 경쟁이 미국의 승리로 기억되게 해준, 가장 기념비적인 결과물이자, 인류가 이룬 가장 위대한 과학 업적 중 하나로 평가된다.2. 준비
아폴로 계획은 우주 개발에 따른 체제 경쟁의 성격이 강했으므로, 당시까지의 모든 아폴로 미션은 11호의 성공을 위한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첫 유인 탐사 미션은 아폴로 계획 전체와 향후 미국 유인 우주 프로그램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만큼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다.
워낙 역사적인 일이 되는 만큼 NASA 홍보부 측에서는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로 불린 아폴로 10호의 콜사인과 달리 더 의미있고 진지한 콜사인을 요구했다.
그 결과 사령선은 쥘 베른의 '달 세계 여행'에 등장하는 우주선 '컬럼비아드'에서 따온 이름이자,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인 '컬럼비아(Columbia)'[6]로, 달착륙선은 미국의 국조이자 가장 유명한 상징인 흰머리수리를 따서 '이글(Eagle)'이라는 콜사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폴로 11호와 관련된 모든 상징, 아폴로 11호가 가져가는 모든 물건에 '미국', '자유'에 관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선전하고자 노력했다.
착륙 지점은 이전에 달에 착륙한 탐사선들이 보낸 지형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교적 평평한 '고요의 바다 (Mare Tranquillitatis)'로 결정되었다.
좌측부터 암스트롱, 콜린스, 올드린. 우주복에는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1호의 종이 조각이 들어 있었다. |
역사적인 임무의 주인공들은 이미 제미니 계획 시절 우주 비행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었다.[7]
- 닐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 - 사령관
-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 - 사령선 컬럼비아 호의 조종사
- 에드윈 "버즈" 올드린(Edwin "Buzz" Eugene Aldrin Jr.) - 달착륙선 이글 호의 조종사
원래 순서대로였다면 암스트롱은 10호의 선장이 되는 것이 맞았으나, 나사의 높으신 분들은 달에 처음 착륙하게 될, 당연히 고이고이 기록될 위인이 과묵하고, 자기 자신을 뽐내지 않을 사람이기를 원했다. 이에 부합하는 사람은 닐 암스트롱이 적격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올드린에 대한 뒷이야기가 많은 편인데, 나사 간부들은 발사팀 발표 전 암스트롱에게 달에 인류 최초로 착륙할 수도 있는 11호의 선장으로 선발되었으며, 달착륙선 조종사로는 올드린을 배정하였다. 원하면 바꾸어 줄 수 있다고 질문하였는데, 올드린의 성격상 여러 말들이 오갔기 때문이다. 암스트롱은 흔쾌히 팀원을 수락하였고, 올드린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암스트롱뿐일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하여 팀 배정이 통과되었다.
한편 아폴로 11호 계획을 맡은 크랜츠의 팀은 시뮬레이션 훈련을 할 때마다 낙제를 받았다. 마지막 훈련에서도 낙제를 받았는데 착륙선 컴퓨터의 시스템 에러 코드 1201과 1202 때문이었다.
관제사들은 "왜 중지시킨 겁니까? 경보는 울렸어도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잖아요. 착륙을 중지시키지 말았어야죠."라는 말을 남겼고, 엔지니어들은 실제 상황에서는 그 에러가 안 뜰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사실 1201, 1202 에러는 컴퓨터가 과도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오류로, 아폴로 11호의 비행 컴퓨터는 중요한 일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이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실제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서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한 내용이 암스트롱과 올드린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닐 암스트롱의 공식 전기인 '퍼스트 맨'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자면, 크랜츠의 팀은 이러한 오류가 발생할 것이며, 별 문제가 되지 않음을 발사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내용이 아폴로 11호 팀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이에 대해 암스트롱은 "시뮬레이션에서 그런 내용이 밝혀졌다는 것을 지구로 돌아와서 몇 년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고, 유인우주선센터의 신속한 대응으로 당시 큰 곤란을 겪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미리 알았다면 조금 더 신속히 대응할 순 있었겠죠."라고 말했다.
3. 과정
아폴로 11호 임무의 전과정을 요약한 영상. |
3.1. 발사
1969년 7월 16일, 발사 3시간 30분 전인 아침 6시부터 세 사람의 우주비행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이때 세 사람은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헬멧을 착용하였고, 지구 귀환 때까지 지구의 공기를 마실 수 없었다.아침 6시 27분, 노란색 보호용 장화를 신은 아폴로 11호 팀은 유인우주선 관리 건물을 나와 발사대로 향했다.
아침 6시 54분, 발사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 확정되었고, 8시 32분 정상적으로 발사되었다. 발사 당시 엄청난 인파가 케이프 커네버럴에 모여 있었으며, 닐 암스트롱의 아내인 재닛 암스트롱과 두 아들은 플로리다 바나나강의 요트에서 NASA가 제공한 스피커를 통해 통신을 들었다. 지구궤도를 1바퀴 반 즈음 돌아갈 때로[8] 10시 58분, 달로 향하는 연소가 진행되었고 이들은 역사상 최초의 달 착륙 여정을 시작하였다.
1969년 7월 16일 오전 8시 32분,[9] 인류 최초로 지구 이외의 천체에 발을 딛기 위한 위대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
3.1.1. 새턴 V 로켓의 발사 과정
자세한 내용은 새턴 V 로켓 문서의 로켓 발사 절차 부분을
참고하십시오.3.1.2. 비행 중 일화
달로 향하는 경로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단연 콜린스였다. 새턴 로켓 탑재를 위해 반대로 실려 있던 달 착륙선을 분리한 뒤 반대 방향으로 다시 도킹하였으며, 아직 분리되지 않은 새턴 로켓의 최종 단의 연료를 폐기하고 궤도상에서 밀어냈다.우주비행사들은 우주복 대신 테플론 소재의 선외복을 착용하고 휴식을 취했다. 점점 지구와 멀어져가는 여정에서, 아폴로 11호는 태양광에 의한 장비 손상을 막기 위해 조금씩 회전했다.[10]
우주선 내의 첫 식사는 샌드위치. 간식 칸에는 땅콩, 캐러멜, 베이컨, 말린 과일 등이 있었으며 주스, 물, 심지어 커피까지 음료도 넉넉히 준비되었다. 우주비행사들이 마시기 편하게 입에 꼭지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한 모금 정도가 나왔다고. 비닐봉지에 이것을 3번 해서 총 3모금의 뜨거운 물을 받아 음식을 조리했다. 정확히는 튜브 형태의 음식을 데운 것.
의외로 이때의 우주식도 칠면조 요리, 핫도그, 파인애플 케이크와 같이 다양한 음식들이 있었다. 우주선 음식 중에서 3명이 각각 선호하는 음식이 달랐다고 할 정도로 다채로운 음식이 준비되었다.[11]
달로 향하는 동안 텔레비전 중계방송도 이루어졌는데, 우주에서 본 지구의 모습은 암스트롱이 설명하였으며, 군인인 올드린[12]은 팔굽혀펴기를 했고, 요리 담당이기도 했던 콜린스는 선내에서 치킨 스튜를 만들었다.
이러한 '버라이어티' 느낌의 생방송 중계는 체제 경쟁과 동시에 대중매체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전달하였으며,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달로 향하는 3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세명의 우주비행사는 달 궤도에 진입하였다.
3.2. 착륙 궤도 진입
UTC 기준 7월 20일, 이글은 컬럼비아와 분리되어서 달 착륙 궤도에 진입했다. 아폴로 11호가 착륙하는 실제 영상. 14분 16초부터 착륙 결정이 내려지고, 17분 58초에 착륙을 완료한다. |
그러나 이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의 크레이터와 바다 같은 랜드마크를 기준으로 착륙 연습을 받았는데, 두 비행사는 착륙선이 지나가는 랜드마크들이 모의 착륙 때보다 약 4초 빠른 위치임을 알아챘다.[13] 이 상태대로라면 원래보다 서쪽에 착륙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잠시 후, 착륙 돌입 5분 후 이글이 1800m 상공으로 서서히 내려갈 때 컴퓨터가 코드 1201과 1202 에러를 띄우기 시작했다.[14] 모의 착륙 때의 문제점이 다시 생긴 것이다.
휴스턴에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할때 컴퓨터 엔지니어 잭 가먼(Jack Garman)이 관제사들에게 "착륙을 계속해도 좋다"는 말을 전한다.
1201/1202는 시스템에 일시적인 과부하가 걸렸을 때 출력되는 에러 코드로, 중요한 문제긴 하였지만 AGC의 작업관리 기능 덕분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15][16] 비행사들은 이를 전해듣고 착륙을 강행한다.
창 밖을 주시하던 암스트롱은 예상 착륙 지점이 돌투성이인 것을 발견하고 준 수동 조종모드로 전환한 뒤 올드린의 고도와 속도 복창을 듣고 이글을 조종해나갔다. 이 때문에 모의 착륙에서보다 시간이 더욱 많이 소요되었고, 휴스턴에서는 연료가 떨어지지 않을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가 긴장하는 가운데 착륙선 이글은 1969년 7월 20일 20:17:40 UTC에 달에 있는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다.
Houston, Tranquility Base here. The Eagle has landed.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기지.[17][18] 이글은 착륙했습니다.
착륙 약 18초 후, 20:17:58 UTC, 닐 암스트롱
경보가 두 번이나 울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하고 진행된 착륙이었고, 착륙했을 때 연료계의 잔량은 25초 분량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달의 인력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관계로 실제로는 약 50초 정도의 분량이 남았지만, 커다란 크레이터를 넘어가며 이뤄낸 착륙이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사, 그리고 유인우주센터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달착륙선의 연료량을 심각하게 걱정했지만, 암스트롱은 "연료 문제는 생각보다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고, 그 정도 속도에서는 역분사 없이도 착륙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되진 않았습니다." 라고 밝혔다. 한편, 닐 암스트롱은 매우 부드럽게 달에 착륙했는데, 실제로는 조금 거칠게 착륙하는게 착륙선과 달 표면 사이의 압축 고무를 짓누르는 효과가 있어 사다리를 이용해 오르내릴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후 미션부터는 거칠게 착륙했다.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기지.[17][18] 이글은 착륙했습니다.
착륙 약 18초 후, 20:17:58 UTC, 닐 암스트롱
올드린은 착륙을 마치고 선외 활동 준비를 시작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This is the LM pilot. I'd like to take this opportunity to ask every person listening in, whoever and wherever they may be, to pause for a moment and contemplate the events of the past few hours and to give thanks in his or her own way."
"이쪽은 달 착륙선 파일럿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 나는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든, 지금 어디 있든, 잠시 멈춰 지금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서 각각의 방법으로 감사를 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이후, 올드린은 조용히 성찬식을 진행하는데,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마련해 준 작은 빵과 와인을 들고 성경 구절을 읽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올드린은 이를 생중계하기를 원했지만, 달 탐사와 관련해서 나사와 미국정부, 그리고 아폴로 대원들에 대한 각종 종교적인 해석과 합리화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민감한 상황이라서 유인우주센터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19] 다만, 같은 시간 올드린에게 빵과 와인을 제공한 그 교회에서는 같은 시간에 성찬식을 올리며 올드린이 현재 달에서 같은 행사를 진행하고 있음을 밝혔다."이쪽은 달 착륙선 파일럿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 나는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든, 지금 어디 있든, 잠시 멈춰 지금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서 각각의 방법으로 감사를 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한편,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가 바로 이들이 어디에 착륙했는지 꽤 긴 시간 동안 파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달 착륙 후 나사가 이들의 착륙 지점을 파악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육분의로 달 표면을 훑으며 이들을 찾아보려던 마이클 콜린스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해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3.3. 달 착륙과 최초 하선
착륙 후 우주비행사들은 실험 장치들과 성조기를 꽂을 위치를 계산하고 달에 발을 내딛으려고 했지만, 해치가 너무 작아 준비에만 2시간이나 걸렸다. 사실은 해치 설계가 끝난 후에 우주복 설계를 변경했는데, 해치에 반영이 안 되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20]7월 21일 02:39 UTC에 암스트롱은 해치를 열고 착륙선의 사다리를 내려갔다. 암스트롱은 사다리를 내려가며 착륙선에 부착된 카메라를 켜고 위에 나온 기념판을 착륙선 사다리에 부착시켰다. 달에 첫 발을 내딛기 직전 암스트롱은 이 말을 남긴다.
I'm, ah...at the foot of the ladder. The LM footpads are only, ah...ah...depressed in the surface about, ah...1 or 2 inches, although the surface appears to be, ah...very, very fine grained, as you get close to it. It's almost like a powder. (The) ground mass, ah...is very fine.
저는 아...착륙선의 사다리 밑단에 서 있습니다. 착륙선 다리는 아...아...달 표면에, 아...1인치나 2인치 정도 가라앉아 있지만, 달의 표면은 가까이서 보면 꽤…꽤 입자가 곱습니다. 거의 가루와 같이 보입니다. 지표는, 아...꽤 좋습니다.
I'm going to step off the LM now.
이제 저는 착륙선에서 내려가겠습니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입니다.[21]
1969년 7월 21일 02:56:15 UTC, 닐 암스트롱
저는 아...착륙선의 사다리 밑단에 서 있습니다. 착륙선 다리는 아...아...달 표면에, 아...1인치나 2인치 정도 가라앉아 있지만, 달의 표면은 가까이서 보면 꽤…꽤 입자가 곱습니다. 거의 가루와 같이 보입니다. 지표는, 아...꽤 좋습니다.
I'm going to step off the LM now.
이제 저는 착륙선에서 내려가겠습니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입니다.[21]
1969년 7월 21일 02:56:15 UTC, 닐 암스트롱
올드린도 암스트롱에 뒤이어 달을 "웅장한 황무지 (Magnificent Desolation)"[22]라고 묘사했다. 이때 혼자서 성찬식을 실시했고, 이것은 달에서 행해진 사상 최초의 성찬식이었다.[23][24] 그리고 20분쯤 후 올드린도 달에 발을 내딛었다.
달 표면의 발자국을 찍은 유명한 사진. 암스트롱의 발자국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올드린의 발자국이다. 게다가 이는 올드린의 첫 발자국도 아니며, 월면 성분 실험의 일환으로 찍은 발자국이다. |
뒤이어 인간이 월면에서 얼마나 잘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 후 두 사람은 기념판을 월면에 설치하고 성조기를 세우는 등의 선외활동을 진행했다. 이로써 북극점+남극점은 노르웨이가, 에베레스트 산은 뉴질랜드/네팔이 정복한 것처럼 달은 미국이 정복한 셈이 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통화를 진행했고,[25][26] 암스트롱은 과학 실험 키트 설치를 마치고 짧은 산책을 가졌다.[27][28] 그리고 유리 가가린과 아폴로 1호 승무원들을 기리는 물건들을 놓았다. 이후 착륙선으로 돌아와 총 2시간 반의 선외활동을 마무리했다.
달에서 착륙선으로 돌아온 직후 올드린이 찍은 닐 암스트롱의 사진. |
개인 물품 기록이야 당연히 나사가 가지고 있지만, 극비 사항으로 알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추측에 의거한 목록만이 존재한다. 다음은 달에 가져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물건들이다.
- 매사추세츠 로빈스 회사가 주조한 450개의 은메달
세 명의 우주비행사가 150개씩 개인 주머니에 보관했는데, 이중 몇 개가 달착륙선에 실렸는지는 불분명하다. - 로빈스 회사가 주조한 3개의 은메달
한 명이 하나씩 보관. 역시 몇 개가 달에 갔는지는 불분명하다. - 10.2cm X 15.2cm 크기의 UN기, 성조기, 여러 나라의 국기, 50개 주의 깃발, 컬럼비아 특별구와 기타 미국령 영토의 깃발들
1969년 7월 3일 나사가 "이 깃발들을 달착륙선에 가지고 갔다가 지구로 가져올 계획"이라고 밝힌 만큼 가져갔을 가능성이 크다. 이중 올드린이 몇 개를 판매했는데, 달에 간 게 무엇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 미 하원과 상원에 있던 실물 크기의 성조기
- 아폴로 11호 기념 편지봉투
올드린이 우표 수집 모임의 부탁으로 101개를, 콜린스가 도장을 가지고 탔다. 올드린과 콜린스의 것은 경매에 일부가 부쳐졌다.[29] - 최초의 비행기인 플라이어 1호의 날개 조각
- 아폴로 11호 유리섬유 직물 패치
개인 물품으로 분명히 포함되었지만 달 표면에 가져갔는지는 불분명하다. - 아폴로 11호 자수 패치
개인 물품이 아닌 공식 물품으로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 - 금색 올리브 나뭇가지 배지 3개
한 개는 올드린이 선외활동의 마지막 순간에 달 표면으로 던졌으며 3개의 복제품이 더 있다. 각각의 아내들에게 비행사들이 선물로 주었다. - 올드린의 성찬식 물품들
그 외에도 여러 물품들이 있었다. 암스트롱은 아폴로 메달들과 어머니를 위한 나뭇가지 배지, 다른 사람들을 위한 물건들 조금 정도로 밖에 밝히지 않았다. 언젠간 밝혀지겠지만 아폴로 원정대를 더욱 심오한 존재로 보이게 하는 부분. 이는 개인 물품[30]에 대해서만 기술한 것이다.
마이클 콜린스가 찍은 사령선과 도킹하는 착륙선의 사진. |
이후 달 착륙선에 돌아가서 달 표면에서 7시간의 수면을 취한 후, 이륙해서 달 궤도에서 기다리는 사령선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상승용 엔진을 작동시키는 스위치가 부러져 있었는데, 기껏 달에 내려왔다가 집에 가지 못할 위기가 있었지만 올드린이 급히 볼펜을 스위치 자리에 꽂아 넣어 문제를 해결했다.[31]
그러나 이륙하던 도중, 올드린은 자기가 그렇게 고생해서 세웠던 성조기가 달 착륙선의 엔진이 일으킨 폭풍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이후 성조기는 달 착륙선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세우게 된다.[32]
3.4. 귀환
무사히 착수한 아폴로 11호와 승무원들 | 격리 중 닉슨 대통령을 만난 승무원들 |
차 안의 세 사람이 아폴로 11호 탐사단. 좌측부터 콜린스, 올드린, 암스트롱이다. |
달에서 이상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에 대비해서 2주일동안 격리되었고,[34] 그 후 미국과 전세계에서 벌어진 수많은 환영행사에 참석하였으며, 미국은 승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들은 런던을 방문하고 엘리자베스 2세를 알현하기도 하였다.
아폴로 11호 우주인 3명은 대한민국에도 방문했으며, 인류 최초로 다른 천체에 발을 디딘 영웅들은 국가적 환영을 받았다.[35]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박정희 대통령.[36] 1969년 11월 3일. |
여담으로, 미 공군이 스파이 위성을 통하여 착륙 예정 지역에 태풍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 하였는데, 사령선이 태풍이 있는 지역에 진입한다면 구조에 난항을 겪을 뿐 더러 사령선의 낙하산이 파손되어 그대로 추락해버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원래의 착륙 지점에서 398km 북동쪽으로 떨어진 지역으로 착륙 지점을 바꾸었다.
이 시점에서는 이미 착륙 단계에 접어들어 궤도 수정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사령선 컴퓨터의 재진입 프로그램을 수정하여 재진입 활공 거리를 더 늘리므로써 태풍을 피할 수 있었다.
3.5. 기타 미션 중 일화
- 비행사들이 달에 떠나기 몇개월 전부터 주변인들이 암스트롱에게 첫 발걸음을 내딛고 무슨 말을 할 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정작 암스트롱은 착륙선이 땅에 닿고 나서야 어떤 말을 할 지 고민했는데, "일단 내가 내딘 발걸음이니 발걸음에 관한 내용을 넣고, 인류의 발전과 관련된 언급을 하면 되겠다!"라는 간단한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다고 한다.
- 상술한 암스트롱이 첫 발을 내딛으며 한 명언은, 의외로 '영문법' 문제로 오랫동안 구설수에 올랐다. "'for a man' 에서 'a'의 발음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a man'이라고 쓰면 '한 명의 인간'이라는 뜻으로 닐 암스트롱 자신만을 지칭하지만, 'a'가 없다면 'man'이 인류로 해석되어 문장 자체가 모순된다. [37] 즉, '이것은 인류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는 모순된 문장이 되어버리는 것. a 유무에 대한 논란이 일자 최초의 달착륙 NASA 우주비행사가 문법도 모르는 사람이라거나 인류에게 던지는 메세지가 아닌 그냥 홧김에 나온 소리라는 말도 나오기도 했고, 이후 나오는 책들이 이 인용문을 쓸 때 a가 정말 빠졌다면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아니면 일일이 man 앞에 괄호 a를 넣는 식으로 써야할 필요가 있기에 논란을 종식시킬 필요가 있었다.[38] 2006년 호주의 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음성분석을 했고 그 결과 a의 발음을 확인했다고 밝히며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정작 암스트롱 본인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전기에서 밝혔다.최초 달 착륙 암스트롱, 영문법 실수 안했다.
- 암스트롱이 명언을 남기며 첫 발을 디딘 후 올드린이 내려왔는데, 올드린은 원래 제미니 계획에서도 사령관은 우주선 안에 있었고 조종사가 EVA 등 궂은 일을 도맡았기 때문에 자신이 최초로 달에 착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사는 달 착륙선 좌석 배치 때문에 암스트롱이 먼저 착륙해야 한다고 알렸다는 말이 있다. 해치는 여닫이식인데, 해치가 올드린이 서 있는 쪽으로 열리기 때문에 올드린이 먼저 나가려 하는 경우 해치가 파손될 수 있었다. 그런데 후일 다른 회고에서는 나사에서 처음부터 리더인 암스트롱이 먼저 내리는 그림을 원했으며, 해치 이야기는 적당한 구실로 붙인 것이라는 설도 있었다.
- 암스트롱의 독사진이 하나도 없는 이유는 올드린이 암스트롱을 찍어주지 않아서라는 인터넷 커뮤니티발 추측이 있는데, 아폴로 미션은 실제로는 '달에 먼저 착륙하느니' 정도의 사적 감정에 휘둘릴 만만한 미션이 아니었으며, 작은 고장이나 기기 작동 오류가 그들을 우주 미아로 만들 수 있었다. 둘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으며, 암스트롱의 사진이 적은 이유는 암스트롱만 카메라를 장착하고 내렸는데, 올드린이 실험장비를 설치하느라 카메라를 넘겨받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결과적으로는 전부 얼굴이 나오지 않는 헬멧을 쓰고 있어, 누구나 아폴로 11호에 우주복이 나오기만 하면 암스트롱의 사진으로 오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유명한 위 사진도 암스트롱이 아니라 올드린의 사진이다. 사실, 암스트롱이 나오기는 하는데, 올드린의 헬멧에 착륙선과 암스트롱이 비쳐 보인다. 어쨌든 그 후의 아폴로 미션에서는 두 우주비행사 모두 카메라를 우주복에 장착하게 했다. 위 사진에서 가슴 부분 네모난 상자 부위에 카메라를 장착하는 어댑터가 있다. 자세한 내막은 여기에서 확인 가능하다.
- 이 미션에서 가장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은 바로 마이클 콜린스. 사람들은 암스트롱은 당연히 알고 올드린도 어느 정도는 알지만 콜린스는 거의 모른다. 콜린스의 서러움은 여기서 끝이 아닌데 콜린스는 달에 착륙하지 않은 채 사령선을 타고 달의 궤도를 돌면서 두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다.[40] 다만 콜린스는 성격 자체가 좀 조용했던지라 "이제야 좀 살겠구먼"하면서 임무 시간 중 가장 편안했던 시간이라고 밝혔다.[41] 달 뒤편으로 들어가자 지구의 관제센터는 물론 달에 착륙해 있던 올드린과 암스트롱과도 통신이 48분간 두절되었다. 그래도 인류가 탄생한 뒤 그 누구보다도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서 48분 동안 모두와 통신이 두절된 채로 달의 뒷면을 넘어 달의 궤도를 홀로 비행[42]했으니 대단한 업적을 세운 것이다. 그런 점을 인정받았는지 콜린스는 올드린이 공군에서 테스트 파일럿 스쿨 교장으로 있다가 예편한 것과 달리 준장까지 달고 전역했고, 이후 예비역 소장으로 특진하기도 했다. 그리고 50년을 기다린 뒤 2019년 아폴로 11호 50주년이 되자 구글 두들에 육성을 담은 영상을 올리는 등 닐 암스트롱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며 인스타그램 활동도 가장 활발하게 하였으나 2021년 4월 28일, 암 투병 끝에 9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 달 궤도에 혼자 남은 콜린스는 몇가지 작업을 위해서 사령선을 기동하던 도중 짐벌락[43]에 빠져 유도 시스템이 먹통이 될 뻔했다. 이에 콜린스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4번째 짐벌을 보내주는건 어떤가?" 라며 농담을 하기도 하였다.
4. 미션 이후
4.1. 유사시를 대비한 추도문
사실 임무에 참여한 과학자들과 달에 착륙한 비행사들은 생존 귀환 가능성을 상당히 낮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유명 언론인, 작가이자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윌리엄 새파이어는 발사 이틀을 남기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대통령 발표문을 준비해야 했다.이후 1999년 이 연설문의 전문이 공개되었다. 다음은 최악의 경우 닉슨 대통령이 읽어야 했을 수도 있었던 추도문이다.
Fate has ordained that the men who went to the moon to explore in peace will stay on the moon to rest in peace. These brave men, Neil Armstrong and Edwin Aldrin, know that there is no hope for their recovery. But they also know that there is hope for mankind in their sacrifice. These two men are laying down their lives in mankind’s most noble goal: the search for truth and understanding. They will be mourned by their families and friends; they will be mourned by their nation; they will be mourned by the people of the world; they will be mourned by a Mother Earth that dared send two of her sons into the unknown. In their exploration, they stirred the people of the world to feel as one; in their sacrifice, they bind more tightly the brotherhood of man. In ancient days, men looked at stars and saw their heroes in the constellations. In modern times, we do much the same, but our heroes are epic men of flesh and blood. Others will follow, and surely find their way home. Man’s search will not be denied. But these men were the first, and they will remain the foremost in our hearts. For every human being who looks up at the moon in the nights to come will know that there is some corner of another world that is forever mankind.
달을 향해 탐험을 떠났던 우주비행사들은 이제 달에서 영면을 취할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닐 암스트롱, 에드윈 올드린[44]이라는 두 용감한 우주비행사는 더 이상 구원의 길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이 인류를 위한 희망이었음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들 두 우주비행사는 진실과 이해를 갈구한다는 인류의 제일 고귀한 목표를 위해 그들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국가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 그리고 그녀의 아들 둘을 미지로 떠나보낸 어머니 지구 또한 애도하며 그들의 넋을 기릴 것입니다. 아폴로 11호 대원들의 탐사로 인해 인류는 하나로 결속했고 이들의 희생으로 인하여 인류의 동포애는 더욱더 깊어졌습니다. 고대 인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 속 영웅들을 보곤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밤하늘 속 영웅들을 바라보지만, 이 영웅들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고귀한 인간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발자취를 따를 것이고, 무사히 귀환할 것입니다. 인류의 탐험은 절대 멈추어져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첫 발자국을 내민 선구자이며 영원토록 우리의 가슴 속 가장 중요한 곳에 기억될 것입니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밤마다 달을 보는 모든 인간들은 저곳 어딘가에 영원한 인류애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달을 향해 탐험을 떠났던 우주비행사들은 이제 달에서 영면을 취할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닐 암스트롱, 에드윈 올드린[44]이라는 두 용감한 우주비행사는 더 이상 구원의 길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이 인류를 위한 희망이었음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들 두 우주비행사는 진실과 이해를 갈구한다는 인류의 제일 고귀한 목표를 위해 그들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국가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 그리고 그녀의 아들 둘을 미지로 떠나보낸 어머니 지구 또한 애도하며 그들의 넋을 기릴 것입니다. 아폴로 11호 대원들의 탐사로 인해 인류는 하나로 결속했고 이들의 희생으로 인하여 인류의 동포애는 더욱더 깊어졌습니다. 고대 인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 속 영웅들을 보곤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밤하늘 속 영웅들을 바라보지만, 이 영웅들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고귀한 인간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발자취를 따를 것이고, 무사히 귀환할 것입니다. 인류의 탐험은 절대 멈추어져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첫 발자국을 내민 선구자이며 영원토록 우리의 가슴 속 가장 중요한 곳에 기억될 것입니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밤마다 달을 보는 모든 인간들은 저곳 어딘가에 영원한 인류애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참 주옥같고 슬픈 문장. 이 연설이 끝나면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전화를 하고, 이후 성직자가 생방송으로 추도 예배를 드릴 예정이었다고 한다.[45]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착륙선의 이륙과 사령선과의 도킹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고, 올드린과 암스트롱은 콜린스와 함께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으며, 당연히 이 연설문이 읽힐 일도 없었다.
xkcd에서는 이 추도문까지 패러디했다.[46][47]
4.2. 달 착륙 영상 테이프 분실 사건
아폴로 11호의 착륙 후에 닐 암스트롱이 첫 발을 내딛은 장면과, 달 표면에서의 활동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약 6억 명이 시청하였다. 당시 영상은 미국과 호주의 전파망원경 총 4곳에서 달착륙선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 휴스턴에서 중계하는 방식이었는데, 영상을 전송하는 방법이 구식 그 자체였다. 신호 규격의 문제로 변환을 할 수 없어서, 즉 달에서 온 신호를 받아 처리하여 브라운관에 손바닥만하게 나온 영상을 TV카메라로 찍어서 그걸 휴스턴으로 넘겨주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휴스턴은 그 4개의 신호를 잘 나오는걸로 번갈아가면서 돌렸기 때문에 화질은 더더욱 개나 줘버린 것이다. 오늘날에 볼 수 있는 영상의 화질저하 원인은 그런 이유이다.중계상의 문제 및 기록을 위해 달에서의 활동 영상은 녹화되고 있었는데,[48] 각 전파망원경과 휴스턴에서 녹화를 하였다.[49]
그리고 그 우수한 화질의 녹화본은 잊혔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당시에 녹화된 영상을 수소문했지만 관계자는 물론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몇몇의 인원과 나사까지 동원해서 추적을 시도하였지만 수많은 기록더미속에서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70년대에 나사에서는 기록테이프 부족으로 인해 이전에 기록되었던 테이프를 재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달 착륙 영상도 그런식으로 소실되었나 추측하고 있다. 일단은 각 전파망원경에서 녹화를 했으므로 그곳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본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지만 밝혀진거는 없다.
현재는 호주 전파망원경에서 받은 음성 없는 영상을[50] 디지털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하였고, 일부 결과가 나왔는데 화질이 아주 좋아졌다고 한다.
2019년에 아폴로 11호 테이프와 필름의 디지털 복원작업 결과로 다큐멘터리 '아폴로 11'이 개봉되었다. 아래 대중문화 항목 참조.
4.3. 오늘날의 아폴로 11호
2009년 10월 29일, NASA가 운용하는 달 정찰 궤도선 카메라(LROC)가 촬영한 아폴로 11호 착륙선의 고해상도 사진 (해설) |
-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 표면에 남긴 발자국은 풍화와 침식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달 때문에 약 100만년 뒤에 사라질 예정이다.[51]
-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TV를 '악마의 산물'로 보던 헨드릭 페르부르트 전 총리[52]의 취지 때문에 인간의 첫 달 착륙 장면을 라이브로 볼 수 없는 극소수의 국가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에 언론의 비판이 거세자 남아공 정부는 굴복하며 달 착륙 장면의 녹화된 영상을 15분간 제한적으로 볼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물론 이 녹화본을 중계한 후에는 다시 TV 방송을 금지해 버렸지만.[53]
- 1999년에는 NASA에서 달 착륙으로부터 정확히 30주년 되는 7월 20일에 찬드라 X선 우주망원경을 탑재한 STS-93 컬럼비아가 발사... 될 뻔 했지만 메인 엔진 이상으로 카운트다운을 중단했다. 3일 후 발사했지만 이 때도 결국 엔진 누수가 발생하여 예정한 궤도에 미치지 못했다.
- xkcd what-if에 따르면 마이클 콜린스는 다른 아폴로 사령선 조종사들과 함께 인류 역사상 기록된 예 중 다른 인간으로부터 홀로 가장 멀리(3,585km) 떨어진 사람들 중 하나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 쓴 책에 따르면 외로움은 딱히 느끼지 않았다고.[54]
- 2020년에 찍은 위성사진임에도 불구하고 구글 지도 위성사진으로 아폴로 11호가 착륙한 지점에서 월면차 바퀴자국을 확인할 수 있다는 오해가 있다. 실제로 천문학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오해를 가끔 볼 수 있다. 하지만 아폴로 11호에는 월면차가 실리지 않았으며, 해당 자국은 상승 엔진이나 하강단의 분사 자국으로 추정한다. 참고로 월면차가 첫 드라이브를 한 것은 아폴로 15호다.
- 2016년 7월에는 아폴로 11호에 사용된 유도 컴퓨터(Guidance Computer)의 소스코드가 GitHub에 오픈소스로 완전히 공개되었다. 2017년 11월 11일, README와 기여 관련 규칙 파일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링크
- 아폴로 11호 발사로부터 반 세기 전, 뉴욕 타임스는 로버트 고다드가 논문에서 말했던 "로켓을 강력하게 만들면 달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문구에 "고등학생보다 못한 수준"이라며 폭풍디스를 퍼부었으나 아폴로 11호가 발사되자 결국 정정기사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폴로 11호 착륙 50주년을 기념한 엠블럼. 닐 암스트롱이 언급한 'giant leap(거대한 도약)'를 오마주하여 유인 화성 탐사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Next giant leap'라는 캐치퍼레이즈가 달려 있으며 두 개의 알파벳 'O'를 각각 달과 화성으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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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7월로 아폴로 11호의 성공 50주년을 맞이했다.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기념 열풍이 부는 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7월 19일(현지 시간) 버즈 올드린과 마이클 콜린스, 그리고 사망한 닐 암스트롱의 유족들을 백악관에 초청하고 기념 행사를 열었다. 구글도 마이클 콜린스의 육성을 담은 기념 동영상을 만들었다. 스페이스X 또한 국제우주정거장 보급선인 드래곤 우주선에 달 착륙 50주년 엠블럼을 랩핑하여 이를 기념하였다.[55]
-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서 개최한 아폴로 11호 50주년 기념영상 상영회. 워싱턴 기념탑에 빔 프로젝터로 새턴 V 로켓의 발사 등의 장면을 보여주었다.
- 50주년 기념 주화로도 가졌다.위키피디아 정보
- 달 착륙선 '이글'이 아직도 달 주위 궤도에 있을 가능성이 나왔다.#
- 해당 우주선의 연료전지 공급사였던 UTC 사와 현대자동차가 수소차를 공동개발한 적이 있었다. 프로젝트명은 '머큐리'.
5. 조작 음모론
자세한 내용은 아폴로 계획 음모론 문서 참고하십시오.일부 사람들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거짓이라는 음모론이 불거지기도 했으나, 그냥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음모론에 대한 모든 내용은 수많은 과학자, 미디어, 언론 등에 의해 수없이 간파되었고, 이후에도 달착륙에 수차례 성공하였으나, 음모론에 대한 내용 대다수는 극히 일부분의 의문점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내용들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폴로 계획 음모론 참고. 이러한 논란은 냉전 시기 소련과의 경쟁의식 때문에 미국이 과학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것을 세계에 선전하고자 조작극을 벌였을 거라는 근거 없는 추측에서 나왔다. 소련이 달 왕복 우주선을 만들자 미국 NASA에서는 이에 대한 대항마가 필요해졌고, 그래서 아폴로 11호를 만들었지만 달에 갈 수는 없었던지라 어쩔 수 없이 달 착륙을 한 것처럼 조작을 하였다는 설이다.
참고로 미국은 이미 아폴로 8호부터 달 궤도를 다녀왔고 이는 10호까지 해당되었으며 이런 풍부한 경험과 기술력을 토대로 아폴로 11호부터 17호까지, 13호를 제외하고 달 착륙을 실패하지 않고 성공해냈다.
6. 아폴로 11호와 문화
6.1. 대중매체에서의 묘사
역대 휴고상 시상식 | ||||
최우수 드라마틱 프리젠테이션 | ||||
제16회 (1969년) | → | 제17회 (1970년) | → | 제18회 (1971년)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 | 아폴로 11호에 대한 텔레비전 보도 | → | (수상작 없음) |
1960년대의 사건은 물론 현대사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사건 중 하나였던지라[57], 뉴스를 비롯한 각종 텔레비전, 영화, 음악 등에서 상당히 많이 다뤄졌다.
당시 방영된 실시간 뉴스로는 미국의 명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진행했던 CBS 생중계가 유명하다. ABC 생중계와 비교가 되는데, CBS보다는 그래픽을 상대적으로 덜 쓰고 직접 촬영하는 화면을 내보내고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고 그래픽 또한 상대적으로 현실감이 있었다.
크롱카이트가 '휴! boy!' 하면서 안경을 벗고 웃는 모습(16:00부터)은 인터스텔라 티저 예고편에서 재활용된다.
발사 카운트다운 또한 매우 유명하다.
대한뉴스 736호 "사람이 달에 내리다" | 당시 신문 보도 |
그 해 8월 8일 개국한 MBC TV의 개국 기념식 사회를 맡은 최세훈 아나운서는 "아폴로 11호가 달을 정복했습니다. 이제 채널 11, MBC 문화방송 텔레비전은..." 으로 시작하는 첫 일성으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트랜스포머3에서도 영화 극 초반부에 등장한다. 아폴로 계획을 외계인 음모론과 엮어 풀어나간다. 아폴로 팀이 달에 불시착한 센티널 프라임의 우주선과 접촉한다. 여기서 재현 오류가 있는데, 달 착륙선의 사람이 타는 윗부분까지 달에 남아 있다. 달 착륙선은 윗부분이 사람이 타는 부분이고, 달에서 떠날 때는 아랫부분을 남긴다. 우주인들이 달 탐사 중에 죽어서 착륙선으로 되돌아가지 못했거나, 착륙선의 기기 고장으로 이륙을 하지 못 하는 이상, 윗부분까지 남아있을 수가 없다.
미국 HBO에서 아폴로 계획에 대해 다룬 미니시리즈 지구에서 달까지 제6화 Mare Tranquilitatis (고요의 바다)가 아폴로 11호 미션을 다뤘다.
2018년작 영화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의 우주비행사 시절 삶을 다루는데,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2019년에는 아폴로 11호 달 착륙 50주년 기념으로, 아폴로 11호 미션 당시 NASA가 찍었던 기록화면들을 현대의 컴퓨터 영상기술로 고화질 보정한 다큐멘터리 아폴로 11이 개봉되었다.
퓨쳐라마에서는 시즌1 2화에서 프라이가 닐 암스트롱이 남긴 발자국을 일부러 밟아서 망가트려버린다
한국의 아동 문학가 윤석중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기념하여 동요 <앞으로>를 작사하였다.
웹툰 조의 영역에서는 어류의 육지 진출에 대한 복선으로 아폴로 11호를 다루는 책이 잠시 등장한다.
2019년에 애플TV+에서 방영한 대체역사물 드라마 포 올 맨카인드 에서는 아폴로 11호 발사 준비 중에 소련의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먼저 달 착륙에 성공하여 인류 최초 달 착륙의 영예를 소련에게 뺏긴 것으로 나온다. 그 후 발사된 아폴로 11호는 결국 착륙 중 프로그램 오류를 해결하지 못해 크레이터 가장자리에 비스듬하게 걸쳐진 채로 아슬아슬하게 착륙하지만 우주비행사들과 NASA 직원들의 노력으로 무사히 귀환하여 인류 2번째 달 착륙으로 기록된다. 이에 절치부심한 미국은 물량빨로 아폴로 계획을 밀어붙여 상주 유인 달기지를 세우고 아폴로 23호까지 달에 보내는 중. 간추린 줄거리 소련도 유인 달기지를 세웠으며, 1976년 대선에서 레이건이 실제보다 4년 일찍 당선에 성공하고 냉전이 격화된 시즌 2 시기에는 미국 소련 양 측이 달기지에 소총과 폭발물 등 무장까지 반입하더니 결국 양측의 교전이 벌어져 많은 사망자가 나온다.
더 크라운 시즌3 7화에서 필립 마운트배튼이 달착륙을 바라보며 아폴로 11호 승무원들을 동경하고 자신의 처지에 공허감을 느낀다. 승무원들이 영국을 방문하자 특별히 부탁해 단독 면담 시간을 가지는데, 저 하늘 높이 있던 것 같던 승무원들도 감기에 걸리고, 왕실 생활에 궁금해하고 신기하게 여기고 궁에서 장난치는 등 여느 평범한 청년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면서 공허함을 떨쳐낸다.
플래그 더 문에서는 사고에 대비해서 여분의 아폴로 11호가 NASA 소속 케네디 우주 센터 격납고에 보관되어 있는 설정으로 미국 정부에서 대기업 회장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이걸 꺼내어 재정비 후 쏘아 올린다는 내용이며 정부에서 모집한 전직 우주비행사와 기술자들이 진행하는 아폴로 11호 프로젝트가 주내용으로 나오며 주인공들이 몰래 발사전의 아폴로 11호에 탑승했고 전직 우주비행사인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이들을 말리러 아폴로 11호에 갔다가 대기업 회장의 사주를 받은 누군가의 해킹으로 인해 발사시간이 앞당겨지며 어쩔수 없이 임무에 수행하게 되는게 주내용이다.
플라이 미 투 더 문(2024)에서는 달착륙을 위한 아폴로 11호 발사를 실제로 진행시키는 동시에 실패할 경우 내보낼 조작 영상도 같이 만들었다는 식으로 음모론의 주장을 일부 차용하기는 했으나, 결론은 아폴로 11호 발사는 사실이고 많은 관계자들의 노력한 결과라는 줄거리이다.
설송(코드네임 케드르)에서는 미국 포지션인 베스푸치아 합중국이 아폴로 11호를 달로 보내어 달 착륙을 먼저 성공시켰지만, 소련 포지션인 팔랑스테르 연방이 2년 뒤 인간이 거주할 수 있으며 수인 문명이 있는 외계행성 녹스를 발견함으로써 그 업적이 묻히고 말았다.
6.2. 모형 및 완구
2017년 레고 아이디어 시리즈에 포함되어 '21309 아폴로 새턴 V'로 출시되었다. 정식 발매가는 179,900원이고 총 브릭 수는 아폴로 11호의 발사 년도와 같은 1,969개이며, 완성 시 로켓의 길이가 무려 1m에 달하는 대형 세트이다. 실제 로켓처럼 발사 단계별로 3단 분리가 가능하며, 마이크로스케일 달 착륙선과 사령선, 우주인 마이크로피규어 3개[58], 착륙선이 달 표면에 착륙한 모습과 사령선이 지구로 귀환한 후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을 재현할 수 있는 추가 부품, 로켓을 눕혀서 전시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받침대 3개가 들어 있다. 스티커를 단 1개도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며, 로켓 선체에 있는 각종 성조기 데칼이나 글자, 착륙선과 함께 있는 초미니 성조기까지 모두 프린팅 부품이다.
2년 뒤인 2019년에는 아폴로 11호 발사 50주년을 기념하여 크리에이터 엑스퍼트 시리즈에서 '10266 아폴로 11호 달 착륙선'으로 출시되었다. 정식 발매가 139,900원에 브릭 수는 1,087개로, 이번에는 착륙선 자체만 미니피규어 스케일로 구현하여 완성 시 가로, 세로, 높이가 모두 20cm로 꽤 큼직해졌고 재현도가 대폭 상승했다. 월면경이나 카메라 등을 꺼낼 수 있는 해치들이 재현되어 있으며 상/하부를 분리할 수 있어 달에서 이륙하는 모습을 재현할 수 있고, 브릭으로 달 표면을 재현한 전시용 밑판[59], 밑판에 꽂을 수 있는 성조기와 우주인 미니피규어 2명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무려 착륙선 실내도 재현되어 있다.
반다이의 어른의 초합금 제1탄으로 아폴로 11호 & 새턴 V호 로켓이 출시되었다. 로켓 발사부터 사령선의 귀환까지 달 착륙의 모든것을 재현할 수 있는 굉장한 물건. 스케일은 1/144. 전고 76cm의 거체를 자랑한다. 덧붙여 그 2탄은 무려 1/144 동 스케일의 스페이스 셔틀. 제 6탄은 아폴로 13호.
홍콩 프라모델 메이커 드래곤 모델에서도 아폴로 11호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
무려 완성시 높이가 1.5m나 되는 1/72 스케일의 새턴 V호 로켓이 있고,
1/72 스케일 아폴로 우주선 플라모델/다이캐스트 모형 등을 발매하고 있다.
12인치 피규어 메이커 온라인 디드에서는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을 재현한 피규어를 발매하고 있다.
6.3. 1969년 축구전쟁의 일시 휴전
아폴로 11호가 발사되던 1969년 7월 20일에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간 월드컵 지역예선 분쟁으로 인한 전쟁인 축구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폴로 11호가 발사되는 날, 아폴로 11호가 발사되고 달에 착륙하고, 달에서 지구로 귀환할 때까지 36시간 동안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일시 휴전협정을 맺고 아폴로 11호 중계를 서로 같이 봤다. 그리고 중계가 끝나자마자 전쟁이 재개되었다.6.4. 대통령기록관 아폴로 11호 기증 월석
아폴로 11호 우주인을 통해 채취된 극소량의 월석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월석 기념패를 통해 선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리처드 닉슨의 지시에 따라 250여 개가 제작된 것이며, 전 세계 135개국에 기증되었고 심지어 경쟁국이었던 소련에까지 전달되었다. 기념패 상단에 작은 은색 단추가 있는데, 이 위에우리나라에 기증된 월석 기념패에는 다음의 문구가 적힌 금속판이 붙어 있으며, 다른 기념패들도 기증 대상 국가명 외에는 모두 같은 문구이다. 영문만 적혀 있으며, 하단의 한국어 번역은 참고용이다.
PRESENTED TO THE PEOPLE OF THE
REPUBLIC OF KOREA
RICHARD NIXON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This flag of your nation was carried to the Moon and back by Apollo 11, and this fragment of the Moon's surface was brought to Earth by the crew of that first manned lunar landing.
대한민국 국민에게 드림
리처드 닉슨 미합중국 대통령
여러분 나라의 국기는 아폴로 11호에 의해 달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으며,[60] 이 달 표면 조각은 최초의 유인 달 착륙 승무원이 지구로 가져왔다.
REPUBLIC OF KOREA
RICHARD NIXON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This flag of your nation was carried to the Moon and back by Apollo 11, and this fragment of the Moon's surface was brought to Earth by the crew of that first manned lunar landing.
대한민국 국민에게 드림
리처드 닉슨 미합중국 대통령
여러분 나라의 국기는 아폴로 11호에 의해 달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으며,[60] 이 달 표면 조각은 최초의 유인 달 착륙 승무원이 지구로 가져왔다.
현재는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이 기사에서 기념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전시 중은 아니고, 수장고에 있다고 한다. 이후, 아폴로 17호가 채취한 월석의 일부 역시 기증되었다. 아폴로 17호 월석은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 전시 중이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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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5e5e5><colcolor=#000> 1 | iPhone 아이폰 | Apple (조너선 아이브) | 2007 | |
2 | Macintosh 매킨토시 | Apple | 1984 | |
3 | Google Search Engine 구글 검색엔진 | 구글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스콧 해선) | 1997 | |
4 | Eames DAR Chair 임스체어 | 레이, 찰스 임스 | 1950 | |
5 | Sony Walkman TPS-L2 소니 워크맨 TPS-L2 | SONY (오가 노리오) | 1979 | |
6 | OXO Good Grip Peeler 옥소 굿그립 필러 | 스마트 디자인 | 1990 | |
7 | Uber RideShare 우버 라이드 셰어링 | 우버 | 2009 | |
8 | Netflix Streaming 넷플릭스 스트리밍 | 넷플릭스 | 1997 | |
9 | Lego Building Blocks 레고 블록 | 힐러리 피셔 페이지 | 1939 | |
10 | iPod 아이팟 | Apple (조너선 아이브) | 2001 | |
11 | Google Maps 구글 지도 | 웨어 투 테크놀러지스 | 2005 | |
12 | Apollo 11 Spacecraft 아폴로 11호 | NASA | 1969 | |
13 | Akari Lamp 1A 아카리램프 1A | 노구치 이사무 | 1954 | |
14 | MacBook Pro 맥북프로 | Apple (조너선 아이브) | 2006 | |
15 | Post-Its 포스트 잇 | 3M (아서 프라이) | 1977 | |
16 | 747 “Jumbo Jet” Airliner 보잉 747 | 보잉 (조 서터) | 1970 | |
17 | SX-70 Polaroid Camera SX-70 폴라로이드 | 제임스 길버 베이커 | 1972 | |
18 | Model S 모델 S | 테슬라 (프란츠 폰 홀츠하우젠) | 2012 | |
19 | Model 3210 모델 3210 | 노키아 (앨러스터 커티스) | 1999 | |
20 | Savoy Vase 사보이 꽃병 | Iittala (알바, 아이노 알토) | 1937 | |
21 | Hue Lighting System 휴 조명 시스템 | 필립스 (Signify) | 2012 | |
22 | App Store 앱스토어 | Apple | 2008 | |
23 | Spotify 스포티파이 | Spotify (다니엘 에크) | 2006 | |
24 | Amazon Prime 아마존 프라임 | 아마존닷컴 | 2005 | |
25 | Muji Rice Cooker 무인양품 밥솥 | 무인양품 (후카사와 나오토) | 2014 | |
26 | Airbnb 에어비앤비 | 에어비앤비 (조 게비아) | 2008 | |
27 | Wikipedia 위키피디아 | 위키백과 | 2001 | |
28 | NYC Subway Map 뉴욕 지하철 지도 | 유니마크 (마시모 비녤리) | 1972 | |
29 | iOS iOS | Apple | 2007 | |
30 | Shinkansen 신칸센 | 일본국유철도 | 1964 | |
31 | WeChat 위챗 | 텐센트 (장샤오룽) | 2011 | |
32 | Nest 네스트 | Nest Labs (토니 퍼델) | 2011 | |
33 | 606 Shelving System 606 선반 시스템 | Vitsoe (디터 람스) | 1960 | |
34 | Skype 스카이프 | Skype | 2003 | |
35 | Modern Classics 클래식 | 펭귄 북스 (얀 치홀트) | 1952 | |
36 | ClearRX 클리어RX | 데버라 애들러 | 2005 | |
37 | Mobike 모바이크 | 베이징 모바일 바이크 테크놀러지 | 2015 | |
38 | Round Thermostat 원형 보온장치 | 허니웰 (헨리 드라이퍼스) | 1953 | |
39 | Stool 60 스툴 60 | Artek (알바 알토) | 1953 | |
40 | Facebook 페이스북 | Facebook (마크 저커버그) | 2003 | |
41 | Billy Bookcase 빌리 책장 | IKEA | 1979 | |
42 | Pride Flag 프라이드 플래그 | 길버트 베이커 | 1978 | |
43 | Lia Pregnancy Test 리아 임신 검사 | 베서니 에드워즈 (애나 심슨) | 2017 | |
44 | Super Mario Bros.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 닌텐도 (미야모토 시게루) | 1985 | |
45 | Vélib Bike Service 벨리브 자전거 서비스 | JCDecaux | 2007 | |
46 | Apple Watch 애플워치 | Apple (케빈 린치) | 2015 | |
47 | Bialetti MOKA Pot 비알레티 모카포트 | 알폰소 비알레티 | 1933 | |
48 | Poäng 포엥 | 이케아 (나카무라 노보루) | 1974 | |
49 | Volkswagen Bug 폭스바겐 비틀 | 폭스바겐 (페르디난트 포르셰) | 1938 | |
50 | Office 365 오피스 365 | Microsoft | 1990 | |
51 | Tupperware 터퍼웨어 | 얼 터퍼 | 1948 | |
52 | View-Master 뷰마스터 | 찰스 해리슨 | 1962 | |
53 | LifeStraw 라이프 스트로우 | 베스테르고르 프란센 | 2005 | |
54 | Raspberry Pi 라즈베리 파이 | 라즈베리 파이 재단 | 2012 | |
55 | Flex-Foot 의족 | 외수르 | 1971 | |
56 | Medical Toy Blocks 의학 장난감 블럭 | 이마무라 히카루 | 2012 | |
57 | Life Magazine 라이프 | Time, Inc. | 1936 | |
58 | Leica M 라이카 M | 에른스트 라이츠 | 1954 | |
59 | Lettera 32 레테라 32 | 마르첼로 니촐리 | 1963 | |
60 | Airtable 에어테이블 | 에어테이블 | 2012 | |
61 | Forever Stamps 영원우표 | USPS | 2006 | |
62 | Telephone Area Code 지역번호 | Bell Labs (라디슬라프 수트나르) | 1947 | |
63 | ET66 Calculator ET66 계산기 | 브라운 (디터 람스) | 1987 | |
64 | Apple Pay 애플페이 | Apple | 2014 | |
65 | Flyknit 플라이니트 | 나이키 | 2008 | |
66 | Orange-handled Scissors 오렌지 손잡이 가위 | Fiskars | 1967 | |
67 | Pokémon 포켓몬 | 게임프리크 (타지리 사토시) | 1989 | |
68 | EpiPen 에피펜 | Mylan | 1987 | |
69 | Medical Drones 메디컬 드론 | Zipline | 2014 | |
70 | Geodesic Dome 지오데식 돔 | 버크민스터 풀러 | 1948 | |
71 | Tampon 탐폰 | 얼 하스, 게르트루트 슐츠 텐더리히 | 1933 | |
72 | 23 & Me 유전자 검사 | 린다 에이비, 폴 쿠센차, 앤 워치츠키 | 2006 | |
73 | Dyson Bagless 다이슨 백리스 | 제임스 다이슨 | 1980 | |
74 | Netscape Browser 넷스케이프 브라우저 | AOL & Mercurial Communications | 2005 | |
75 | Futura Typeface 푸투라 글꼴 | 파울 레너 | 1927 | |
76 | SUICA 스이카 | JR East | 2001 | |
77 | Air Jordan 1 에어 조던 1 | 나이키 (피터 무어) | 1985 | |
78 | Pocket Survival Tool 멀티툴 | 티머시 S. 레더먼 | 1983 | |
79 | Box Chair 박스 체어 | 엔초 마리 | 1971 | |
80 | Ultra-Light Down 울트라경량다운 | 유니클로 | 2011 | |
81 | Havaianas 하바이아나스 | 로버트 프레이저 | 1966 | |
82 | Womb Chair 움 체어 | Knoll | 1966 | |
83 | PeaPod 피팟 | 앤드루 파킨슨, 토머스 파킨슨 | 1989 | |
84 | Magic Band 매직밴드 | Disney (Frog Design) | 2013 | |
85 | Type 2 타입 2 | 폭스바겐 (벤 폰) | 1950 | |
86 | Unix OS 유닉스 | Bell Labs (켄 톰슨, 데니스 리치) | 1970 | |
87 | Wayfarer 웨이페어러 | Ray-Ban (Raymond Stegeman) | 1952 | |
88 | Stokke Tripp Trapp 스토케 트립 트랩 | 페테르 옵스비크 | 1972 | |
89 | Aravind Eye Hospital 아라빈드 안과 | 고빈다파 벤카타스와미 | 1976 | |
90 | Bitcoin 비트코인 | 사토시 나카모토 | 2009 | |
91 | National Park Map 내셔널 파크 맵 | 마시모 비녤리, 렐라 비녤리 | 1977 | |
92 | 911 911 | Porsche 페르디난트 포르셰 | 1963 | |
93 | Teema Tableware 티마 테이블웨어 | 카이 프랑크 | 1963 | |
94 | LINN Sondek LP12 린 손덱 LP12 | 에드거 빌처 | 1963 | |
95 | Valentine Typewriter 발렌타인 타자기 | 에토레 소트사스 | 1963 | |
96 | IBM Logo IBM 로고 | 폴 랜드 | 1963 | |
97 | Model 500 모델 500 | 웨스턴 일렉트릭 (헨리 드라이퍼스) | 1951 | |
98 | Great Green Wall of Africa 아프리카 녹색장성 | Panafrican Agency of the Great Green Wall | 2007 | |
99 | IBM Mainframe IBM 메인프레임 | 엘리엇 노이스 | 1952 | |
100 | Blackwing 602 블랙윙 | Eberhard Faber | 1934 |
[1] 올리브 가지는 아폴로 미션의 사상적 목표인 평화를 상징하며, 달 착륙선의 콜사인인 '이글' 즉, 흰머리수리가 달에 내려가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 마이클 콜린스가 디자인 했는데, 비행사들의 이름이 없는 이유는 임무 완수에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림을 잘 보면 지구의 그림자가 왼쪽으로 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본인의 실수였다고.[2] 백업 짐 러블. 이 팀은 앤더스 대신 켄 매팅리가 들어온 채로 아폴로 14호에 배정되나 13호 예정이었던 앨런 셰퍼드의 팀이 셰퍼드의 귓병 이후 복귀에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며 일정을 교대하여 아폴로 13호에 배정된다.[3] 백업 윌리엄 앤더스[4] 백업 프레드 헤이즈[5] 아폴로 계획의 초창기 테스트 과정에서 우주비행사 3인이 사령선 훈련 도중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NASA가 아폴로 1호로 명명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 넘버링이 꼬이게 되자 아폴로 2~3호는 공번 처리를 하고 첫 발사는 4호가 되었다. 이 때문에 아폴로 11호가 아홉 번째 미션이 된 것.[6] 후에 이 이름은 우주왕복선 제1호기에도 사용된다, 다만 이 사령선 이름을 딴 건 아니다.[7] 당초 이 팀은 아폴로 8호의 백업 팀이었고 콜린스 대신 프레드 헤이즈가 들어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콜린스 대신 올드린이 사령선 조종사, 올드린의 자리엔 헤이즈. 하지만 제미니 시절의 베테랑들이 중대한 미션을 담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기에 아폴로 8호의 사령선 조종사에 짐 러블이 배치되고 8호 사령선 조종사 콜린스가 8호의 백업이었던 11호 팀으로 옮겨오며 사령선 조종사가 된 뒤 기존의 올드린이 헤이즈 대신 착륙선으로 갔고 헤이즈는 백업 신세가 되었다. 결국 13호에서 달에 가지만 아폴로 13호는...이후 19호 사령관으로 예정되었지만 아폴로 계획 자체가 사라지는 바람에 취소되었다.[8]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반 공전하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발사가 늦어질 때를 대비하기 위해 여유 시간을 둠과 동시에, 장비 점검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고.[9] 한국 시간으로 1969년 7월 16일 오후 10시 32분이다. 한국에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이 서울 남산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중계해 시민들이 관람하였다.[10] 이 방법에 대한 콜린스의 표현이 압권. "우리는 쇠꼬챙이에 끼워 돌리는 통닭 같았어요"... 실제로 이 회전 동작을 "바베큐 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정식 명칭은 PTC(Passive Thermal Control).[11] 닐 암스트롱은 미트소스 스파게티, 감자 요리, 파인애플 케이크를 즐겼다고 한다.[12] 당시 아폴로 팀 대부분은 군인 자격으로 선발되었다. 11호에서는 닐 암스트롱만이 민간인 자격으로 선발되었다.[13] 이 문제는 나중에 밝혀졌는데, 이글과 컬럼비아의 분리하는 순간의 도킹 포드 내 잔여 압력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아폴로 미션에서는 잔여 압력을 추산하여 정확한 착륙 위치를 계산, 더 많은 활동을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시계가 중력의 영향으로 달에서의 시간이 지구에서보다 느리게 가게 되어 시간이 틀려졌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이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애초에 아폴로 착륙선은 관성항법장치와 천문항법 장치를 이용해 위치를 계산한다. 시간에 의한 오차가 있다 해도 컴퓨터의 보조적인 운항에만 문제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상대성 이론에 의한 시간지연이 4초나 일어나려면 엄청난 중력차가 있어야 한다. 심지어 달처럼 중력이 약해지면 시간은 느리게 흐르긴 커녕 더 빠르게 흐른다. 자세한 설명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참고하자.[14] 위의 실제 착륙 영상에서도 볼 수 있는데, 14분 33초에 코드 1201이, 14분 59초와 15분 13초에 코드 1202가 뜨는 모습이 상단에 표시된다.[15] 세간에서는 이것이 버즈 올드린이 랑데뷰 레이더를 켜 놓은 것이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원래 아폴로 11호는 랑데뷰 레이더를 켜놓은 채로 착륙하기로 되어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에러의 원인은 하드웨어의 버그였다. 달 착륙선의 랑데뷰 레이더는 사령선을 추적하며 회전하는 추적식 안테나였는데, 안테나의 각도는 레졸버를 통하여 측정되고 CDU(Coupling Data Unit,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장비였다.)에서 레졸버의 아날로그 신호가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어 컴퓨터로 전송되었다. 당시에 CDU와 레졸버는 서로 다른 AC 전원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위상 동기 회로가 없는 탓에 서로 위상이 틀어지게 되었고, 전원의 위상차로 인해 서로 타이밍이 흐트러져 안테나 각도 측정에 문제가 생긴 CDU는 오류 수정을 위해 AGC로 무려 초당 6400번의 인터럽트를 발생 시켰는데, 이것이 너무 빠른 속도로 오다 보니 모든 프로세스를 정해진 시간 내에 실행 할 수 없어 오류를 발생시킨 것이다. 해당 오류가 발생하면 컴퓨터는 빠른 시간 내에 재부팅하여 기존의 계산을 이어갔다.[16] 실제 AGC를 시뮬레이션에 연결하여 이글을 착륙시키는 영상. 해당 영상에서 CDU의 문제를 비슷하게 재현하였는데, 28분부터 보면 디스플레이 좌상단의 AGC 프로그램 실행 여부를 나타내는 표시등이 점등되는 시간이 길어지다가 나중에는 계속 켜지더니 29분 15초 쯤 오류가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추후에 같은 현상이 몇 번 더 발생 하였는데, 컴퓨터가 점점 과부하 걸리는 것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32분 23초 쯤 디스플레이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프로세스 처리에 시간이 많이 부족해지자 디스플레이 업데이트를 중단하여 프로세스 여유를 확보한 것이다.[17] 착륙 위치인 '고요의 바다'에서 따온 것. 확실하고 안전하게 계획된 위치에 내렸다는 말을 전한 것이다. 원래 모의 비행에서 착륙선의 콜사인은 줄곧 '이글'이었다. 그러나 암스트롱은 떠나기 직전 이 명칭을 떠올리고 관제실의 캡콤 찰스 듀크에게만 이를 귀띔해주었다. 이후 아폴로 11호가 착륙한 자리의 이 명칭은 국제 천문 연맹에서 공인되어 지금도 라틴어 명칭인 'Statio Tranquillitatis'로 불리고 있다.[18] 이 말을 들은 찰리 듀크는 다들 숨죽여 지켜보느라 새파랗게 질렸는데 이제야 숨 좀 쉬겠다는 말을 보냈는데 이 역시 명언으로 남았다. 찰리 듀크 역시 이후 아폴로 16호에 배정되어 달을 밟게 된다.[19] 나사는 아폴로 8호 때 달 궤도상에서 창세기 구절을 읽었다고 여러모로 난리가 난 적이 있기에 신중했다.[20] 이유는 다르지만 우주선 해치 문제는 소련도 겪은 적이 있다.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첫 우주유영을 한 뒤 우주선에 못 들어갈 뻔 했다. 항목 참조.[21] 위 영상의 47초 부분에서 암스트롱이 이 말을 한다.[22] 한국어로는 '위대한 황야'를 비롯해 여러 번역이 혼재한다.[23] 참고로 이 와인은 달 위에서 먹은 최초의 액체고 밀떡은 인류가 달에서 먹은 최초의 음식이다. 이때 올드린이 사용한 잔은 그가 다니던 교회에 전달되었고, 지금도 그 교회에서는 7월 20일을 기념하고 있다.[24] 드라마 지구에서 달까지에서 재현된 모습. 읽은 문장은 요한복음 15장 5절;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If you remain in me and I in you, you will bear much fruit;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25] 하지만 닉슨 대통령은 콜린스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왜냐하면 '달에 착륙한 인간'들과 통화를 했기 때문에 콜린스는 애초에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26] 원래 닉슨 대통령은 이 통화를 위해 긴 연설을 준비했지만, 당시 백악관에 닉슨 대통령과 함께 있었던 아폴로 8호 비행사 프랭크 보먼이 "케네디의 유산임을 존중하라"며 닉슨 대통령을 설득했고, 결국 닉슨 대통령은 약 1분 정도로 짧게 말을 마쳤다.[27] 이때 세워진 착륙 모듈로부터 가장 멀리 떠난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았다.[28] 2018년 영화 퍼스트 맨에서는 암스트롱이 이때 자신의 죽은 딸 카렌의 이름이 적힌 팔찌를 분화구 안으로 던진다. 물론 영화적 첨가. 미션 시작 전에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기념으로 뭘 가져갈 거냐는 말에 "뭘 챙길 공간에 연료를 더 챙기겠다"고 한 말은 이에 대한 암시가 아니라 실제로 암스트롱이 한 말이다. 실제론 약간 개그 상황에 가깝다.[29] 암스트롱은 자신의 물건으로 전혀 이득을 취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30] 아폴로 팀의 물품은 개인 물품과 공식 물품으로 나뉘어져, 일부를 제외하곤 아직도 비밀 사항이라 밝혀지지 않았다.[31] 물론 스위치 하나가 부러진다고 집에 못 가지는 않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다중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볼펜은 그가 지금도 가지고 있다.[32] 아폴로 미션을 통해 달에 두고 온 6개의 성조기 중 멀리 떨어져서 세운 5개는 햇빛에 하얗게 타버렸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륙 당시의 추진력에 밀려 날아간 이 깃발은 달의 먼지에 파묻혔다면 그 색을 일부 유지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33] 맨 위 2번째 사진을 보면 유리창 위에 영어로 호넷 + 3 라고 적혀 있는데, 항공모함 호넷에 오신 3명의 손님 정도의 뜻을 가진 개그다.[34] 이 자가격리 시설은 11호부터 14호까지 하나씩 만들었는데, 14호 후에 달 표면이 무균 상태임이 밝혀지면서 격리 절차가 중단되었다. 2019년 개봉한 아폴로 11호 다큐멘터리에서 드러난 재밌는 사실 한 가지가 있는데, 누군가가 우주비행사들의 격리 트레일러에 무슨 동물원 우리마냥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고 쓴 종이를 붙여놨다.[35]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한국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하며, 암스트롱은 미 해군 항공대, 올드린은 공군으로 참전하였다.[36] 왼쪽부터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버즈 올드린이다.[37] man과 mankind는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38] 단수, 복수, 관사에 대한 취급이 관용적인 한국어와 달리, 영어는 이를 철저히 구분한다. 마치 단수 또는 복수를 써야하는 표현에 s가 있냐 없냐 차이만큼 큰 것이다.[39] 대표적으로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2 유리의 복수>에서 소련 캠페인의 주인공(사령관)이 달에 착륙하자 로마노프 서기장이 감격에 겨워 외치는 말. "아~! 드디어! 소비에트가 달에 착륙했소! 이것은 동무에게는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소비에트 인민에게는 위대한 도약이지! 와하하하하!"[40] 만약 달 착륙선에 문제가 생겼더라도 사령선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라도 살아 돌아올 수 있었고, 후술할 추도문도 달 착륙선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를 가정했기에 콜린스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사실 장점이라고 하기도 힘든데 진짜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PTSD 걸리기 딱 좋다.[41] 물론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에서 이륙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사고 없이 무사히 도로 도킹할 수 있을까 걱정도 내내 했다고 한다.[42] 엄밀히 말하자면 달에서의 사령선 단독 비행은 콜린스가 아니라 아폴로 10호의 사령선 조종사 존 영이 처음이다. 하지만 존 영은 아폴로 16호 사령관이 되고 우주왕복선 초대 사령관도 하는 등 NASA에서 통산 40년 넘게 근무하며 제대로 끗발 날렸으니 콜린스가 더 서러워보이는 것이 사실이다.[43] 이는 3축 짐벌을 사용하던 아폴로의 관성 측정 장치의 문제였다. 당시에는 자이로스코프와 가속도계를 짐벌을 이용하여 안정되게 유지하는 안정 플랫폼(Stable platform) 방식의 관성측정장치를 이용했는데, 플랫폼의 짐벌이 일렬로 정렬되어 버리면 플랫폼의 현재 각도를 알아낼수가 없게 되어 재정렬 전까지 유도를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아폴로 사령선 및 착륙선은 짐벌락에 빠지는걸 방지하기 특정 자세로의 기동을 자제해야만 했다. 아폴로 13호에서도 산소탱크 폭발로 기체가 흔들리는 와중에 짐벌락 각도에 빠지는걸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4축 짐벌로 구성되었던 제미니의 관성 측정 장치는 이러한 문제가 없었다.[44] 콜린스는 사령선에 남아 있어 착륙선이 사령선과 접촉하는데 실패해도 돌아올 수 있었으므로 제외.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렇게 달에 두 명의 동료를 죽음의 공간 한 가운데로 남겨두고 떠났단 점에서 PTSD를 겪으며 평생을 고통받았을 것이다.[45] 영화 퍼스트맨에서 닐 암스트롱이 집을 나서는 장면과 교차되면서 연설문을 검토하는 장면이 나온다.[46] 각각 우주선이 사라졌을 때, 비행사들이 우주선과 함께 화성으로 무단이탈을 감행했을 때, 우주비행사 6명이 돌아왔을 때, 우주선이 USS 호넷 호에 떨어져 닉슨이 깔려 죽었을 때, 그리고 귀환한 우주선이 실수로 고철로 팔려서 비행사들이 탄 채로 파쇄됐을 때.[47] 무단이탈 패러디 버전에는 '올해가 가기 전에 다른 우주선을 보내 명령에 불복종한 아폴로 11호 승무원을 붙잡아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 주자'라며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까지 패러디했다.[48] 릴 테이프로 약 45개 분량.[49] 전파망원경에서 수신된 영상은 중간 손실이 적기 때문에 화질이 우수했다.[50] TV중계본 화질열화판이다.[51] 뒤집어 말하면 통념과는 달리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말이다. 달이 아무리 지각변동과 대기가 거의 없는 천체라지만 물리학적으로 변하지 않는 물체는 없다. 지금도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입자의 진동과 태양풍, 극도로 희미한 달의 대기, 달 어딘가에서 일어난 운석 충돌로 인한 나비효과, 월진 등에 의해 아주 아주 느리게 변하고 있다.[52] 아파르트헤이트를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한 인물이기도 하다.[53] 결국 남아공의 TV 방송은 1976년 1월 5일에야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는 흑백 방송에서 컬러 방송으로의 전환기었기 때문에 남아공은 처음부터 컬러 방송을 송출했다.[54] ' 이제 나는 혼자였다. 완전히 혼자. 그 어떤 알려진 생명체보다도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내가 끝이었다. 누가 숫자를 셌다면 달 저쪽 편에는 30억 더하기 2명이 있었고, 이쪽 편에는 1명 말고 무엇이 있었는지 오직 신만이 아실 것이다. ' - 마이클 콜린스, Carrying the fire 중[55] CEO 일론 머스크는 암스트롱이 살아생전 우주 민영화에 관한 미 의회 청문회에서 민영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는 기사를 보고 "내가 매우 존경하는 위인인데, 가슴이 아프다."라며 암스트롱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기도 했다. 후에 이를 안 암스트롱이 자신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며 대답해준 것은 덤.[56] 닐 암스트롱은 2012년 8월 25일에 사망했으며, 마이클 콜린스는 2021년 4월 28일에 사망했다.[57] 전세계의 대략 6억 5천만 명의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참조[58] 실제로는 워낙 작은 피규어인지라 분실을 대비한 여분이 하나 들어 있어서 총 4개이다.[59] 여기 옥의 티가 하나 있다. 아폴로 11호가 착륙한 고요의 바다는 크레이터가 거의 없는 넓고 평탄한 구역이었는데, 레고로 재현한 밑판은 익숙한 달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큼직한 크레이터가 하나 있다. 물론 자유롭게 분해, 조립이 가능한 레고이므로 크레이터를 떼어내 재현도를 올리는 것은 손쉽게 가능하다.[60] 아폴로 11호가 조그마한 국기들을 달에 가져갔다가 돌아왔다. 이 중에는 태극기도 있었고 우리나라에 기증된 월석 기념패에는 바로 그 태극기가 박혀 있다. 다른 나라에 전달된 기념패도 같은 형식으로 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