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전 야구선수 임현준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2. 아마추어 시절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삼성 라이온즈에서 운영하는 리틀 야구단에 입단하여 야구를 처음 접했다가 5학년 때 대구 본리초등학교로 전학가서 본격적으로 학원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참조 대구고 재학 시절에는 1루수로 활약했다. 3학년인 2006년 28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 때 팀의 에이스인 김건필과 다른 선발투수였던 이희성 대신 깜짝 선발로 등판, 6⅓이닝 동안 4피안타 무실점으로 천안북일고를 물리치고 모교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를 눈여겨 본 경성대학교 야구부 윤영환 감독의 제의로 경성대에 진학해 투수로 전향했다.경성대학교 1학년 때 67이닝을 던지며 8승 1패, 평균자책 1.61을 기록했다. 이는 당시 팀의 에이스였던 4학년 고창성보다 더 뛰어난 성적이었다. 또, 단국대와의 대통령기 결승전에서는 4피안타, 7삼진, 1볼넷을 기록하며 완투승을 기록해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MVP를 수상했다. 하지만 2학년 이후로 밸런스가 무너지고 잔부상에 시달려 1학년 때만큼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다.
4학년 때 프로에 지명받기 위하여 다시 절치부심, 총 6개의 전국대회에서 팀의 두 번의 우승(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을 이끌고, 두 대회 모두 MVP를 수상했다. 4학년 때 기록은 22경기, 104⅔이닝, 평균자책 2.58, 8승(1번의 완봉을 포함해 총 6번의 완투승), 2패, 2세이브. 또한, 68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면서 사사구는 32개를 허용해 제구력도 뛰어났음을 증명했다. 다만 4학년 중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게 되면서 혹사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1]
3. 프로 시절
3.1. 2011 시즌
2011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고향팀 삼성 라이온즈에 4라운드로 지명되었다. 속구의 평균 구속은 떨어지지만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 게임 운영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만 스카우트팀에서는 선발투수로 크길 바라고 지명했지만 현장에서는 중간계투로 즉전감으로 평가했다.마무리훈련 때부터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았고, 권혁의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 좌완 계투자리가 비면서 2011 개막전 엔트리에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4월 2일 KIA와의 개막전 때 프로 첫 등판해 공 4개만 던져 승리투수가 되며 프로 첫 승도 기록했다.
권혁이 돌아오기 전인 4월 15일까지는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서 거의 매일 등판했으나[2], 권혁이 돌아온 뒤에는 등판이 뜸해진 편. 계속 1군에 남아 권혁과 좌완계투를 분담하며 1이닝씩 던지다가 6월 8일 2군으로 내려갔다. 8월 6일 다시 1군으로 올라왔으나 12일만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에서도 원포인트로 등판했다. 신인으로서 좋은 활약을 보여 한때 신인왕 후보로도 거론되었다.
2011 시즌 삼성 2군에서 이렇다할 좌완 선발투수가 박민규 외엔 없음에도 대학 시절까지 선발로 활약한 임현준을 선발로 육성하려는 계획은 없는 듯하다. 또한 류중일 감독은 다음 시즌에 조현근이 합류하게 됨으로써 임현준의 군문제를 먼저 해결하게 하려는 모양이며, 그렇기에 올시즌에는 임현준을 계투로서만 기용할 모양이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이영욱과 함께 상무로 입대하게 되었다.
3.2. 군 복무
입대 첫 해인 2012년에도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21경기 동안 1승 1패 1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점 4.56으로 그리 좋은 성적을 기록하진 못했다.2013년에는 팔꿈치 수술을 받으면서 1경기도 등판하지 못한 채 그대로 제대했다.
3.3. 2014 시즌
4월 1일 당시 컨디션 난조였던 권혁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으나, 4월 2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아웃카운트를 1개도 못 잡고 피안타 2개에 볼넷 1개를 허용하면서 4월 3일 2군으로 내려갔고, 다시는 1군에 못 올라온 채 2군에서 시즌을 마쳤다. 다만 2군에서는 선발 수업을 받으면서 23경기에 등판해 4승 6패 1홀드 4.7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피안타가 다소 많긴 했지만 그래도 프로 입단 4년만에 첫 선발이었음에도 92이닝을 소화했다. 이 해 갑작스러운 모친상을 당했고, 팀에서의 입지가 줄어들자 절박한 마음에 2016년부터 사이드암 전향을 선택했다고 밝혔다.3.4. 2015 시즌
시범경기에서 계투로 4경기에 등판해 무실점을 기록했고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자체 평가전에서도 무실점을 했지만, 박근홍과 백정현에게 밀려 개막전 엔트리에는 탈락했다. 3월 30일 우동균이 2군으로 내려간 후 그 대신 3월 31일 1군에 올라왔다.아무래도 좌완 계투로는 박근홍이나 백정현이 있다보니 4월 4일 LG전과 4월 12일 KIA전 등에 등판하는 등 띄엄띄엄 등판했고, 그나마 12일에는 홈런을 맞았다. 결국 4월 20일 김현우과 심창민의 복귀를 앞두고 권오준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그러나 2군에 내려간 뒤 부진에 빠지면서 이전처럼 선발로 투입되지 못하고 계투로 뛰고 있다. 2군으로 내려간 지 약 2달 지난 후인 6월 25일에 1군에 올라왔는데, 그나마도 심창민의 부상으로 투수진에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3]
7월 16일 넥센 히어로즈과의 경기에서 양팀 투수들이 너나 할것 없이 털리는 와중에 7회에 나와 7구로 3타자를 깔끔하게 막으며 의문의 호투를 했다. 그러나 7월 22일 KIA와의 경기에서는 10점 앞선 상황에서 등판했음에도 0⅔이닝 6피안타 6실점(4자책점)으로 부진하였다. 7월 23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9월 6일 알프레도 피가로가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후 8일에 백정현이 1군에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복귀가 미뤄지면서 그 대신 9일 1군에 올라왔다. 9월 26일 두산전에 등판했는데, 사이드암 스로[4]로 투구폼을 바꿨다. 아웃카운트 3개를 잡는 동안 오히려 좌타자에게 홈런을 포함해 3안타를 맞으며 3실점을 했다. 9월 27일 박계범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3.5. 2016 시즌
2월에 사이드암 투수가 된 건 양일환 코치와 상의한 결과라고 밝혔다.
3월 9일 NC와의 시범경기 2차전에서 임대한을 이어 팀의 3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2015시즌 9월에 등판했을 때보다 팔 각도를 더 낮춰 높은 언더핸드 스로에 가까울 정도가 됐다. 볼넷 하나를 주긴 했지만 1이닝 1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시범경기에서 6경기에 등판해 ERA 0.00을 기록했다. 생소함 때문인지 17번째 타자만에 피안타를 맞는 등, 시범경기 동안은 좌타 킬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됐다. 4월 1일 개막전에서 7회에 등판해 첫 타자 최주환을 몸 맞는 공으로 출루시킨 후 바로 권오준으로 교체됐다. 4월 3일 안지만과 정인욱이 1군 엔트리에 등록되면서 대신 성의준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한동안 등판이 없으면서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6월 들어 2군에 복귀했다. 옆구리 근육 손상이 있었다고. 타고투저가 극심한 퓨처스리그에서 2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9월 1일 엔트리가 확대되면서 1군에 올라왔다. 1군에 올라온 당일 KIA전에서 9회초에 등판해 1이닝 4피안타 1피홈런 4실점으로 부진했고, 결국 9월 2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3.6. 2017 시즌
대만 2군 전지훈련에 참가했고 정규시즌도 2군에서 시작했다. 2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했지만 그동안 1군 성적이 안 좋았던 탓인지 다른 투수들에게 콜업 순번이 밀리다가 6월 6일 김정혁과 함께 1군에 올라왔다. 당일 5이닝을 던진 앤서니 레나도에 이어 등판했으나 0.2이닝 1탈삼진 3볼넷이라는 기괴한 피칭을 하고도 무실점을 기록했다.8일 더스틴 니퍼트가 선발 등판해 누구도 기대하지 않던 두산전에서 선발 안성무의 뒤를 이어 4회부터 3.2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기대 이상의 호투를 보여주었다. 이후 팀 타선이 상대에 블론세이브까지 안기며 연장전까지 접어들었으나 10회말 끝내기 안타로 팀은 아쉽게 패했다.
이후 원포인트나 추격조로 기용되며 잘 던지나 싶었으나 15일 김대우에 이어 등판하여 아웃카운트 하나 잡고 2루타를 맞은 뒤 교체됐는데, 다음 투수 심창민이 적시타를 맞으며 시즌 첫 자책점을 기록하였다. 또 17일 SK전에서 5회 등판해 최충연이 남겨놓은 2명의 주자를 뜬공 아웃 하나 잡고 싹 다 분식한 것은 물론 자신도 4실점하며 2이닝 4실점으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선발전원 안타를 허용하며 스코어는 14:5가 되어 경기가 완전히 기우는데 일조했다. 결국 팀은 구자욱과 다린 러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4:10으로 패배했다.
6월 28일 권오준과 백정현이 1군 엔트리에 등록되면서 대신 김승현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6월 30일 현재까지 승패 없이 9⅔이닝 5자책점으로 평균자책점 4.66을 기록하고 있다.
8월 4일 김대우를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8월 13일 선발로 내정된 황수범을 대신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3.7. 2018 시즌
시범경기에 등판하며 생존을 신고했다.좌완 언더로 변신 하면서 데뷔 이후 1군에 가장 오래 있었던 두 번째 커리어 하이 시즌.
3월 24일 두산과의 개막전에서 6회 2사에서 오재원을 7구 루킹 삼진으로 처리해 0.1이닝을 막으며 홀드를 기록했다. 3월 25일에는 0.2이닝을 막으며 추가실점을 막았다.
4월까지의 경기를 모두 끝낸 시점에서 좌타 상대 피안타율 0.143, 피OPS는 0.494를 기록하며 원포인트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6월 3일 NC전 한기주의 뒤를 이어 등판했지만 6구째에 박민우에 몸에 맞는 볼을 내주고 즉시 최충연과 교체되었다. 다행히 실점하지 않아 ERA는 5.51로 그대로 유지.
6월 20일 양창섭이 올라오며 2군으로 내려갔다. 2군 성적이 안 좋아서 콜업 기회를 잘 잡지 못하다가 8월 14일 아시안 게임 휴식기를 앞두고 백정현이 1군에서 제외되면서 대신 등록됐다.
9월 25일 9회에 1이닝을 잘 막으면서 경기를 끝냈다. 어쩐 일인지 ERA가 3.83으로 내려가 있다.
시즌 최종 성적은 40경기 등판 27⅔이닝 평균자책점 3.90 WAR 0.65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로는 꽤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3.8. 2019 시즌
1군 개막 엔트리에 유일한 좌완 불펜으로 합류했다. 원 포인트 릴리프로서의 역할이 막중할 것이다. 개막전엔 8회 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 김성욱을 상대로 올라와서 이닝을 마무리했다.3월 2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 9:6으로 리드 중이던 8회 말 2사 1, 3루 상황에 좌타자 아수아헤를 상대로 등판해 이닝을 마무리지음으로써 시즌 첫 홀드를 기록했다. #
4월 마지막 주 우천 취소된 이틀을 빼고 4일 모두 등판을 했다.
어린이날 시리즈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3일 연속 등판을 했다. 현재 삼성의 유일한 좌완 불펜으로서 원 포인트 릴리프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해주고 있으나, 이후 월요일 하루 쉬고 또 화요일 등판, 하루 쉬고 또 목요일 등판을 하며 유일한 좌완 불펜인 것의 단점까지 보여주고 있다.
5월 10일 발표된 인터뷰에선 1이닝을 책임질 수 있는 투수가 되고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5월 14일 최채흥이 롱 릴리프로서 불펜에 합류해 좌완으로서의 부담은 덜었지만, 여전히 거의 매 경기 등판하고 있다.
5월 21~23일 한화 이글스 시리즈에선 3경기 모두 출전했고, 하루를 쉰 후 키움 히어로즈전 8:10으로 역전한 8회초에 등판해 장영석을 공 2개로 잡은 후 내려갔다.
5월 25일 현재 필승조로 운영 중인 이승현, 최지광, 장필준 중에 경기 수는 27경기로 제일 많지만, 이닝은 16이닝으로 제일 적다. 참고로 이승현은 26경기 29.2이닝을 던졌다. 하지만 5월만 놓고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한데, 이승현이 10경기에 출전해 12.1이닝 동안 이닝 평균 21.5개를 던졌지만, 임현준은 14경기에 출전해 6.2이닝 동안 평균 투구수가 고작 7.1개다. 3배가 차이 나는 투구수를 던지기 위해 불펜에서 몸을 풀며 던진 투구수까지 합치면 현재 제일 혹사가 심각하다.
위에서 언급된 본인의 소망을 장기적으로 이뤄주기 위함인지, 6월부터는 기울어진 경기에서 임현준에게 1이닝을 통째로 맡기는 경우가 꽤 늘었다.
9월 28일 SK전 10회초 2아웃 만루상황에 나와서 박정권 상대로 삼진을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이닝에서 이학주가 끝내기 홈런을 치면서 8년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통산 3승째.
시즌 최종성적은 71경기 등판 42⅓이닝 소화에 ERA는 3.40, 1승 8홀드를 기록하며 전년도의 커리어 하이를 다시 갱신했다.
시즌 후 품절남 대열에 합류했다.
3.9. 2020 시즌
노성호 영입으로 한결 부담이 덜해지면서 홀드 상황에서의 등판이 줄었고, 주로 동점이나 근소한 차로 밀리고 있을때 나오고 있다. 이닝은 적지만 6월까지도 ERA 0을 유지중. #6월 17일 두산전 4대 2로 앞선 상황에서 박세혁한테 초구 솔로홈런을 맞았다. ERA는 0.90.
노성호가 빠진 후 이승현이 전혀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졸지에 미친 듯이 갈리고 있다. 벌써 커하시즌의 절반 가까이 가는 경기수를 나오기 시작했다. 6월 19일에는 급기야 4연투를 했고, 결국 제구 난조를 보이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6월 29일 권오준과 함께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8월 25일 대구 LG전 6회초 2사 1,3루 상황에서 올라왔는데, 오지환의 타석에서 2구째 홍창기가 도루실패로 아웃되면서 이닝이 끝나버렸다. 이후 다니엘 팔카가 홈런을 치면서 승리투수를 요건을 갖추었으며, 이후 오지환을 2구 좌익수 파울플라이로 처리한뒤 장필준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이 점수가 유지되면서 단 4개의 공을 던지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9월 8일 대구 한화전 10회초 2사 만루에서 김윤수 다음 투수로 등판해 뜬공으로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ERA는 3.14.
9월 9일 한화와의 DH 2차전 4회 1사 만루에서 원태인에 이어 등판했으나 몸 맞는 볼-3루수 파울플라이-볼넷으로 0.1이닝 2사사구 무실점을 기록 후 우규민과 교체되었다.
9월 24일에서 삼성의 유일한 피안타를 기록해서 실점하였다. 책임 주자는 김윤수의 것이였다.
10월 6일 LG전에서 9회말 1사 2, 3루의 위기 상황을 막기 위해 등판해 정근우를 자동 고의사구로 거른 후 오지환을 내야 뜬공으로 잡아낸 뒤 오승환과 교체되어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10월 15일 SK전에서 0.1이닝을 무실점으로 처리함으로써 ERA 1점대에 진입했다. 하지만 심창민의 책임주자를 분식하면서 심창민의 평균자책점은 올라갔다.
시즌 성적은 51경기 25⅓이닝 1승 1패 5홀드 ERA 1.78. 외견상으로는 뛰어나 보이지만 피안타율이 전년도 .214에서 .261로 4푼 넘게 올라 분식회계가 크게 늘었다.
3.10. 2021 시즌
잦은 분식회계 때문인지, 50경기 넘게 등판했음에도 9.1% 삭감된 1억 원에 사인했다. 아마 도전형일 수도?[5]3월 23일 키움과의 시범경기에서 이승민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송우현에게 2루타를 허용한 후, 대타 서건창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다. 팀은 비겼다.
3월 25일 SSG와의 시범경기에서 선발 양창섭의 뒤를 이어 등판, ⅔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4월 4일 키움전과 4월 8일, 10일 두산전에서 무실점을 기록한다.
4월 10일 대구 kt전에서 강백호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우타석에 나온 조일로 알몬테를 초구 좌익수 뜬공 처리하며 임무를 다했고, 이후 호세 피렐라가 데뷔 첫 홈런을 역전 홈런으로 장식하면서 구원승을 챙겼다.[6]
4월 11일 대구 kt전에서 다시 강백호랑 상대해 1루 땅볼로 처리했다.
4월 13일 대구 한화전에서 하주석을 상대로 적시타를 내주며 분식을 하고 내려갔으나, 우규민의 호투로 자책점은 오르지 않았다. 자책점은 앞 투수 최지광한테 기록됐다.
5월 5일 7회 0:0 1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정은원을 상대했는데, 7구 삼진으로 막아낸 뒤, 심창민에게 바톤을 넘겼다.
5월 14일 잠실 LG전에서 3:3 7회말 우타자인 정주현을 상대로 나와 원래라면 우익수 뜬공이지만 구자욱이 넘어지면서 공을 피해버리면서 3루타를 주고[7], 안타를 맞아 3:4로 역전을 당했다. 그리고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서 패전이 되었다.
5월 18일 대구 키움전에서 0.1이닝 3안타 3실점을 하면서 좌타자를 못 잡는 좌승사자가 되었다.[8] 이날 삼성은 3:15로 대패했다
현재 좌타자 상대 타율은 0.368으로 매우 좋지 않다. 오히려 우타자 상대 타율은 0.167로 우승사자라고 불려야 될 듯하다. 다만 몇몇의 좌타자들에게만 약한 것인 것을 보여주는 듯 최근에는 다시 호투 중이다.
6월 11일 대구 NC전에서 7회초에 등판해 이명기를 땅볼로 잡지만, 나성범에게 우중간 2루타를 허용한 후에 다음 타자가 양의지라서 최지광으로 교체되었다 .
6월 13일 대구 NC전에서 7회초 2사 1,2루 상황에 등판했지만, 공 9개중 스트라이크를 하나만 잡는 볼질을 하면서 결국 볼넷-사구로 밀어내기 1실점 한뒤 심창민으로 교체되었는데 그 심창민도 실점을 하면서 백정현의 승리를 날리는 민폐를 끼쳤다. 현재까지 좌타자 피출루율이 4할이 넘으면서 좌타자 원포인트로써의 역할을 전혀 해주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팀은 8회말 3점을 뽑아 역전하며 승리하였지만 임현준은 이 날 삼성 팬들에게 가루가 될 정도로 까였다.
6월 16일 잠실 두산전에서 8회 등판해 두산의 좌타라인인 정수빈, 페르난데스, 김재환을 막으라는 역할이 부여되었다. 선두타자 정수빈을 볼넷으로 출루시켜 지난 13일의 악몽이 재현되는 줄 알았으나, 페르난데스의 초구 타격으로 병살타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깔끔하게 막아낼 수 있었으나 김재환에게 안타를 맞고 우규민과 교체되었다. 이후 우규민은 1구만 던지며 양석환을 뜬공 처리하며 어쨌거나 8회를 무사히 넘겼다.
6월 24일 대구 한화전 8회초 1:3으로 앞선 2사 3루에서 좌타자 하주석을 처리하려고 등판했으나 결과는 풀카운트 끝에 볼넷을 내주고 바로 우규민으로 교체되었다. 우규민이 동점을 만들지는 않으면서 0이닝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팀은 1점차까지 따라잡혔지만 승리. 이후, 퇴근길에서 회복해서 돌아오겠다는 말을 미루어보아 2군으로 내려가는 듯.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6월 25일에 1군에서 말소되었다. 올라온 선수는 김윤수. 그리고 다시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등판 일지를 보면 볼넷이 있는 게임이 너무 많다. 오죽하면 삼성 팬들의 한숨이 김상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와 임현준이 볼을 던질 때일까... 바깥쪽으로 흘러가는 브레이킹볼로 헛스윙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 이유야 어찌 되었든 브레이킹 볼의 날카로움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승부를 위해서는 스트라이크 존에 넣어야 한다. 또한, 브레이킹볼이 계속 손에서 빠지는 모습도 너무 많이 보인다. 완벽하게 공을 낚아채는 데에 더 신경을 써야 하고, 브레이킹볼의 각도가 날카롭지 않다면, 이를 좌타자 바깥쪽 보더라인에 걸칠 수 있게끔 던져야 한다. 당연히 이런 이야기는 너무나 이상적인 모습이지만, 임현준의 역할은 좌타자 상대 원포인트다.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구위가 없다면 이 정도의 제구가 되어야 자신의 별명인 좌승사자의 명성을 지킬 수 있다.
후반기 들어 이승현과 노성호, 박세웅 등이 좌완 불펜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입지가 매우 좁아지고 있다[9][10] 밸런스와 제구를 잡지 못한다면 이대로 시즌을 2군에서 마감하게 될 확률이 농후하다.
결국 11월 1일에 방출 통보를 받았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4. 은퇴
KBO 리그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희귀한 좌완 언더핸드 투수다보니 좌완 불펜이 부족한 팀에서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였으나, 세간의 예상과 달리 은퇴 선언을 하며 야구 생활 1기를 마감했다. 이로서 삼성의 원 클럽 플레이어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으며, 후회는 없지만 가을야구에 함께 하지 못하게 된 부분이 제일 아쉽다고 한다.[11] 은퇴 후에는 야구 공부를 하며 지도자나 프런트로 활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임현준이 은퇴함에 따라 KBO 리그의 좌완 사이드암/언더핸드는 김대유, 김성민 단 2명만 남게 되었다.[1] 경성대 야구부는 한정된 투수자원으로만 마운드를 운영하는 혹사로 알려져 있다.[2] 경기 수에 비해 이닝이 적은 것은 이 때문이다[3] 참고로 심창민은 6월 24일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는데, 하루 지난 후에 임현준이 1군에 올라온 것은 6월 23일에 계투로 3이닝을 소화해 어차피 1군에 올려봤자 바로 투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4] 우타자를 상대로는 이전의 투구폼을 변칙적으로 쓰는 모습도 보였다.[5] 도전형은 기본급은 낮지만, 옵션을 모두 충족하면 총액이 올라간다.[6] 참고로 작년 팔카의 데뷔 첫 홈런 때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7] 공이 라이트에 들어갔다고 한다. 수원 KT전에서도 이런 플레이를 했었다.[8] 다만 이정후에게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이 석연치 않았다. 삼진으로 끝날 상황인데 볼 판정이 되어 안타를 맞았고, 그것이 대패의 시작점이 되었다.[9] 2020년 부터 좌타 피안타율이 우타를 역전하고, 에이징커브까지 겪으며 방출을 걱정해야한다[10] 좌타 피안타율이 높다는것은 그의 최종병기인 좌완언더의 희소성이 사라진 것이다.[11] 임현준은 삼성이 한창 왕조를 만들기 시작한 2011년에 신인으로 입단했으며 군 복무도 프로 2년차인 2012년에 입대해서 일찍 마쳤기 때문에 전역한 후에는 왕조가 끝나 있었고, 임현준이 1군 불펜에 자리를 잡았을 때는 팀의 암흑기였기 때문에 임현준으로서는 10년 동안 가을야구를 즐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