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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몰이족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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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C0C0C0> 레젠다리움의 전쟁
전차몰이족/발크호스와의 전쟁
Wainrider/Balchoth War
시기
T.A. 1851 - T.A. 2510
장소
곤도르
로바니온
다고를라드 평원
안두인 대하 양쪽 강변
교전세력 가운데땅의 자유민 연합 동부인 세력
교전국 파일:곤도르 국기.svg곤도르
에오세오드
전차몰이족
발크호스
지휘관 로멘다킬 1세
투람바르
나르마킬 2세
칼리메흐타르
온도헤르
에아르닐 2세
키리온
에오를
에오문드
마르하리†
마르휘니
불명
병력 곤도르
에오세오드
불명
피해 피해 규모 불명 피해 규모 불명
결과 곤도르에오세오드 족의 승리
영향 로한의 건국

1. 개요2. 전개
2.1. 제3시대 1851년의 침공2.2. 제3시대 1944년의 침공2.3. 제3시대 2509년의 침공

[clearfix]

1. 개요

반지의 제왕의 과거 사건으로, 친족분쟁대역병으로 연달아 치명타를 맞아 휘청거리던 곤도르와 동부의 전차몰이족들의 전쟁이다.

2. 전개

2.1. 제3시대 1851년의 침공

파일:250px-Stefano_Baldo_-_Wainriders.jpg파일:250px-Jack_Dullahan_-_The_fall_of_King_Ondoher.jpg파일:Earnil_ii_king_of_gondor_by_yoritomodaishogun_dddip8d-pre.jpg
전차몰이족의 모습온도헤르 국왕에아르닐 2세
1851년에 돌 굴두르에 있던 사우론의 영혼의 꼬드김을 받은 전차몰이족이 북부인들의 영토로 대규모의 침략을 해 들어왔다. 전차몰이족은 곤도르 동부에 거주하던 여러 부족들 중 하나로, 동부 최강 세력들 중 하나였으며 거대한 크기의 전차를 타고 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굉장히 호전적인 성향의 부족이었다.[1] 전차몰이족은 약 100여 년이라는 엄청나게 오랜 기간 동안 곤도르를 끊임없이 괴롭히면서 안그래도 망해가는 곤도르의 국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전차몰이족이 1856년에 쳐들어오자 당시 곤도르의 국왕인 나르마킬 2세로바니온의 마르하리 왕[2]의 군대와 함께 어둠숲 아래 평원으로 출전하여 전차몰이족과 대규모 전투를 벌였으나 완패하였고 그 자신도 전사하였다. 하지만 곤도르군은 후위대로 있던 마르하리의 기병대가 큰 활약을 한 덕분에 전멸은 면하고 이실리엔으로 간신히 후퇴할 수 있었다.[3] 이 결과로 곤도르는 이실리엔을 제외하고 안두인 대하에뮌 무일 동쪽 영토를 모두 상실하였다.[4] 전차몰이족은 여세를 몰아 로바니온으로 쳐들어갔고 많은 수의 북부인들이 그들의 노예가 되었다. 하지만 일부는 더 북쪽으로 이동하여 너른골인들과 섞였고 마르하리의 아들 마르휘니가 이끄는 잔존 세력들은 어둠숲과 안두인 대하 사이의 기슭을 지나 바우바위(Carrock)와 창포벌판 사이의 안두인 골짜기에 정착하여 초대 군주가 되니, 이들이 곧 에오세오드 족이 된다.

1899년에 곤도르의 국왕 칼리메흐타르는 남부의 위협이 제거[5]되자 전사한 나르마킬 2세의 원수를 갚기로 한다. 마르휘니는 다시 전차몰이족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곤도르에 경고를 하였으며 동시에 노예가 된 북부인들에게 전차몰이족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라고 선동한다. 마르휘니의 경고대로 전차몰이족은 다시 곤도르를 침략하나 곤도르와 마르휘니가 숨겨둔 기병대의 후방공격을 받고 대패하였다. 동시에 로바니온에서도 북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만 전차몰이족의 저항이 거센 바람에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했다. 한편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자 곤도르와 아르세다인 왕국은 오랜 단절을 끊고 다시 동맹을 맺는다. 이들은 앙마르나 전차몰이족이 누메노르 생존자들을 없애려는 단일한 목적[6]에 의해 움직인 것이라 판단하였고 이에 아르세다인의 왕자 아르베두이와 곤도르의 공주 피리엘의 혼인으로 더욱 굳건한 관계를 맺는다.

2.2. 제3시대 1944년의 침공

1940년에 에오세오드 족에게서 다시 전차몰이족의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이 입수되었고 곤도르의 왕 온도헤르는 이에 전쟁준비를 시작한다. 온도헤르는 적들이 북쪽과 남쪽에서 모두 쳐들어올 것이라 예상하고 군대르 둘로 나눠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남부전선에는 왕실의 일원인 에아르닐에게 지휘권을 줘서 펠라르기르에 주둔토록 했다. 그리고 북부전선은 왕인 자신이 스스로 지휘하였는데 이는 오래된 곤도르의 관습[7]이었다. 마침내 1944년에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곤도르에 전해졌다. 에아르닐은 절반의 군대와 함께 안두인 강을 건넜고 나머지는 일부러 포로스 강의 여울을 무방비로 둔 채 남부 이실리엔에서 북쪽으로 40마일 정도 되는 곳에 야영하였다. 한편, 온도헤르는 북부 이실리엔을 통과해 다고를라드 평원에 군대를 배치하기로 하였다.[8]

10월 4일, 온도헤르는 45년전 승리했던 전투를 생각하며 적들이 북쪽에서 쳐들어올 것이라 생각하고 막 검은 문을 지나고 있었다. 또 외조카 미노흐타르가 우익부대, 당시 도르엔에르닐[9]의 제후 아드라힐이 좌익부대를 이끌며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이들은 다고를라드 평원에서 비로소 그들의 자리를 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차몰이족은 룬해에서 집결한 뒤 로바니온칸드의 군대와 합류하여 곧장 서진한 다음 곤도르의 측면을 공격하였다. 이에 전열이 무너진 온도헤르의 군대는 급히 우측으로 방향을 돌려 맞섰고 후미에 있던 미노흐타르에게 자신의 좌측을 지원하라는 전령을 보냈다. 하지만 온도헤르는 중무장한 기병대와 이륜 마차들의 돌격에 대비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호위대와 기와 함께 급히 낮고 둥근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시무시한 공격이 그 기를 향해 퍼부어져 그 기는 노획되었고 그자신과 호위대 그리고 맏아들이었던 아르타미르가 전사하였다. 그 후, 이들은 곤도르군의 전열 깊숙히 질주하여 대혼란을 일으켰고 많은 자들을 죽음늪까지 몰고 가서 대부분 전멸시켰다.

이제 왕의 외조카 미노흐타르가 지휘권을 잡았다. 전차몰이족의 주력부대가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온도헤르를 전사시킨 기병대와 이륜 마차들은 퇴각하였고 그 사이 그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먼저 그는 자신의 기를 세워, 가까이에 있는 중앙부대의 남아있는 사람들과 자신의 관할에 있는 자들을 재집결시켰다. 그 후, 자신의 후위에 있던 좌익의 아드라힐에게 전령을 보내 당장 후퇴할 것을 명하고, 자신은 안두인 강 동쪽에서 가장 좁은 지역인 카이르 안드로스에펠 두아스 사이까지 후퇴하여 그곳에 방어선을 치고 미나스 아노르로 가는 길을 최대한 방어하려고 했다. 이 후퇴의 시간을 벌기 위해 미노흐타르는 몸소 후외대를 결성하여 전차몰이족의 전진을 저지해보려고 했다. 또한 아드라힐에게 남쪽의 에아르닐을 찾아 이 재앙과 현재 상황을 전하도록 명했다.

또한 미나스 아노르에 있는 둘째 왕자 파라미르에게도 급보를 보내려는 찰나, 에오세오드의 군사들이 방어선에 합류하여 그가 전사하였음을 알렸다.[10] 비록 이실리엔의 땅은 전차몰이족에게 익숙하지 않아 곤도르에게 유리한 상황이었으나, 이마저도 얼마 되지 않아 곤도르군이 친 방어선이 수적으로 우세한 전차몰이족의 주력부대의 돌격 앞에 무너져 적의 손에 떨어졌고 미노흐타르도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후위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아드라힐을 찾아 남쪽으로 달아난다. 북부 이실리엔까지 들어와 진격을 멈춘 전차몰이족들은 진지를 차리고, 두 차례의 완승에 축하연을 열었다.

하지만 곤도르의 군대가 모두 전멸한 것은 아니었다. 남부전선에 있던 에아르닐은 군대를 이끌고 와서 포로스강을 건어 근처의 하라드와 칸드의 연합군을 전멸시키고, 급히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후퇴하던 군사들을 모았다. 그리고 성급하게 곤도르의 멸망을 자축하던 그들의 기지를 기습하여 대부분 전멸시키고, 달아나는 이들도 쫓아와 죽음늪에서 모두 죽이니, 연합군은 죄다 몰살되었다. 하라드칸드는 이 패배로 치명타를 입었고 더 이상 곤도르를 함부로 침공하지 못했다. 이후 곤도르는 멸망의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게 되었다.

2.3. 제3시대 2509년의 침공

2489년에 보로미르가 나즈굴과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하자 뒤를 이어 키리온이 통치 섭정으로 즉위했다. 그의 재위 시기에 곤도르는 크나큰 위기에 처한다. 2501년에 전차몰이족의 일족인 발크호스 부족이 동부에서 몰려와 북부인들을 학살하고 이들을 내몬 다음 로바니온을 차지한 것이다. 또한 돌 굴두르의 지원을 받아 창포벌판의 남부 안두인 계곡까지 모두 황폐화 시키면서 곤도르를 궁지로 몰아넣는 데에 성공하였다. 2510년에 로바니온을 점거한 발크호스 부족이 곤도르로 남하할 움직임을 보이고 안개산맥의 오르크들도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통치 섭정 키리온은 과거에는 혈맹이었지만 지금은 저 멀리 북쪽으로 이동한 에오세오드족에게 구원을 요청하기로 한다. 에오세오드족에게 구원을 청하는 것은 돌 굴두르의 어둠지역을 통과해야하는 어려운 임무였기에, 키리온은 여섯 명의 자원자를 모집하여 하루에 2명씩 짝을 지어 밀사를 파견했다.

총 6명의 밀사들이 에오세오드족을 향해 구원을 청하러 떠났으나, 오직 한 명만이 포위망을 뚫는데 성공하였다.[11] 3월 25일에 사신은 에오세오드 부족의 거주지에 도착하여 에오세오드의 지도자인 에오를에게 전갈을 전했고, 에오를 또한 곤도르가 무너지면 에오세오드족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 곤도르를 돕기로 결정한다. 4월 6일, 에오세오드는 대략 7천명 정도의 모든 기병대를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돌 굴두르에 도달했을 무렵, 돌 굴두르의 사악함에 두려움을 느끼고 망설였지만 갈라드리엘이 새하얀 안개로 어두움을 밀어내며 그들을 도와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한편 곤도르에서 원군만을 간절히 기다리던 키리온은 에오세오드 부족의 군대가 와줄지 회의를 느끼며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로한 고원을 지날 무렵 이미 안두인 강을 건넌 발크호스족이 후방에서 대거 출현하여 퇴로를 끊어버렸고 북쪽의 맑은림강을 넘어 곤도르 군대를 켈레브란트 벌판까지 밀어붙였다. 게다가 북쪽에서는 안개산맥의 오크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곤도르군을 사이에 밀어넣으며 앞뒤가 모두 막힌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키리온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바로 그 순간, 발크호스 군대의 후방에서 에오를의 기병대가 기습공격을 펼쳤고 발크호스는 크게 패해 달아났다. 에오를은 이들을 마저 추격하여 칼레나르돈 평원에서 발크호스족 군대를 대파하고 곤도르 병사들과 키리온을 구해내는 데에 성공한다. 모든 이들은 키리온이 에오를을 데리고 가 대연회를 베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에오를에게 석달 후 이곳에서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빠르게 미나스 티리스로 돌아간다.

석달 후, 키리온은 에오를과 함께 성산[12]에 올라 이미 숱한 전쟁으로 인하여 인구가 많이 줄어있었던 칼레나르돈의 소유권을 에오를에게 양도한다고 선포하였다. 이에 에오를은 칼레나르돈에서 살 것이며 곤도르와의 우정은 영원하고 곤도르의 적은 곧 그들의 적이라고 에오를의 맹세를 선포하며 화답한다. 키리온과 에오를은 함께 퀘냐로 이 맹세는 누메노르의 영광과 엘렌딜의 신념이 함께 할 것이고 발라일루바타르가 보살필 것이라고 맹세했고,[13] 이렇게 곤도르와 로한의 동맹은 시작된다.


[1] 전차몰이족의 모티브는 훈족이나 몽골 제국 정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2] 마르하리는 과거에 로바니온의 왕을 칭하며 곤도르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비두가비아의 후손이다. 비두가비아의 딸 비두마비발라카르와 결혼해 엘다카르를 낳았으므로, 비두가비아에게 다른 자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 하지만 이 전투에서 마르하리 또한 전사하고 만다.[4] 하지만 여전히 곤도르의 군대는 강력했고 전차몰이족들도 더이상의 진격을 못하여 로바니온 정복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5] 이미 그의 조부시기에 움바르는 곤도르 영토가 되었고 하라드인들은 내분이 일어나 있었다.[6] 둘다 배후에는 사우론의 술책이 있었다.[7] 왕이 주요 전투에 나서고 왕위 계승자는 수도에 남는 것.[8] 이 시기 아직 안두인강 북쪽에 세워둔 요새들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적들의 도강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온도헤르에게는 어떠한 경고도 전해지지 않았고 이에 온도헤르는 느린 속도로 이동하게 되었다.[9] 이 지역은 돌 암로스가 있는 지역으로, 곤도르 건국 전부터 엘렌딜의 먼 친척들이 다스리던 지역이었다. 곤도르가 건국한 이후에도 이 지역은 여전히 이들의 자치령으로 남아있었다.[10] 곤도르의 국법으로 왕의 모든 아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아들 파라미르는 마치 반지전쟁 때의 에오윈 공주처럼 변장을 하고 전투에 참여하였고 죽음의 늪 쪽을 후퇴하다가 적들에게 포획되었다. 마르휘니가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결국 파라미르는 그의 팔에 안기어 죽었고, 그가 왕자라는 사실은 몸수색을 하다가 왕자의 인장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알려졌다.[11] 사신의 이름은 보론디르로, 에오세오드와 같은 북방인 혈통을 이어받아 승마에 능숙했다. 그는 켈레브란트 벌판의 전투에서 전사했다.[12] 로한어로 할리피리엔. 엘렌딜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로한의 건국 이후에 유해는 미나스 티리스에 이장하고 봉화대로 쓰이게 된다.[13] 그리고 반지전쟁 시기에 사루만에게 유린당한 로한발라 만웨의 사자이자 일루바타르가 부활시킨 간달프에 의해 다시 부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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