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22:52:22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프리드리히 가우스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0 -15px 0"
※ 2003년 11월 독일의 공영TV인 ZDF가 독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독일인 1백인’을 발표한 명단이다.
TOP 10
1위2위3위4위5위
콘라트 아데나워 마르틴 루터 카를 마르크스 한스, 죠피 숄 남매 빌리 브란트
6위7위8위9위10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오토 폰 비스마르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1위~100위
11위12위13위14위15위
아돌프 콜핑 루트비히 판 베토벤 헬무트 콜 로버트 보쉬 다니엘 퀴블뵈크
16위17위18위19위20위
콘라트 추제 요제프 켄테니히 알베르트 슈바이처 카를하인츠 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21위22위23위24위25위
헬무트 슈미트 레진 힐데브란트 알리체 슈바르처 토마스 고트샤크 허버트 그로네메이어
26위27위28위29위30위
미하엘 슈마허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귄터 야우흐 디터 볼렌
31위32위33위34위35위
얀 울리히 슈테피 그라프 사무엘 하네만 디트리히 본회퍼 보리스 베커
36위37위38위39위40위
프란츠 베켄바워 오스카 쉰들러 네나 한스 디트리히 겐셔 하인츠 뤼만
41위42위43위44위45위
하랄트 슈미트 프리드리히 대왕 임마누엘 칸트 패트릭 린드너 하르트무트 엥겔
46위47위48위49위50위
힐데가르트 폰 빙엔 헤이노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마를레네 디트리히
51위52위53위54위55위
로베르트 코흐 요슈카 피셔 카를 마이 로리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56위57위58위59위60위
루디 푈러 하인츠 에르하르트 로이 블랙 하인츠 하랄트 프렌첸 볼프강 아펠
61위62위63위64위65위
알렉산더 폰 훔볼트 피터 크라우스 베르너 폰 브라운 디르크 노비츠키 캄피노
66위67위68위69위70위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세바스티안 크나이프 프리드리히 실러 리하르트 바그너 카타리나 비트
71위72위73위74위75위
프리츠 발터 니콜 프리드리히 폰 보델슈윙흐 오토 릴리엔탈 마리온 돈호프
76위77위78위79위80위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로미 슈나이더 스벤 하나발트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여공작
81위82위83위84위85위
빌리 밀로위치 게르하르트 슈뢰더 요제프 보이스 프리드리히 니체 루디 두치크
86위87위88위89위90위
카를 레만 베아테 우제 트뤼머프라우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헬무트 란
91위92위93위94위95위
알브레히트 뒤러 막스 슈멜링 카를 벤츠 프리드리히 2세 라인하르트 메이
96위97위98위99위100위
하인리히 하이네 게오르크 엘저 콘라드 두덴 제임스 라스트 우베 젤러
출처
같이 보기 :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colbgcolor=#000><colcolor=#fff,#ddd>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Carl Friedrich Gauss
본명 요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Johann Carl Friedrich Gauß
출생 1777년 4월 30일
신성 로마 제국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령 브라운슈바이크
사망 1855년 2월 23일 (향년 77세)
독일 연방 하노버 왕국 괴팅겐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직업 수학자
학력 괴팅겐 대학교
수상 랄랑드 상 (1809)
코플리 메달 (1838)
부모 아버지 게프하르트 디트리히 가우스[1]
배우자 요한나 오스토프 (1805년 – 1809년, 사별)
프리데리카 빌헬미네 월덱 (1810년 – 1831년, 사별)
자녀 6명
제자 리하르트 데데킨트[2]
베른하르트 리만
프리드리히 베셀[3]
소피 제르맹
종교 표면상 루터교회, 실제론 이신론 추정[4][5]
서명 파일: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서명.svg

1. 개요2. 상세3. 생애4. 주요 업적
4.1. 정십칠각형 작도의 증명4.2. 소수 정리4.3. 그의 이름을 딴 것들
4.3.1.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 이름이 붙은 것
5. 주요 저서6. 관련 문서

[clearfi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44px-Stamps_of_Germany_%28DDR%29_1977%2C_MiNr_2215.jpg
1977년에 발행된 동독(DDR)의 우표에 그려진 가우스 초상[6]

1. 개요

Die Mathematik ist die Königin der Wissenschaften, und die Arithmetik ist die Königin der Mathematik.
수학은 과학의 여왕이고 정수론은 수학의 여왕이다.

독일의 수학자. 수학사에서 이 사람을 빼놓고서는 수학 이야기를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수학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위대한 수학자이다. 대수학, 정수론, 해석학, 기하학, 통계학 등 여러 수학 분야뿐만 아니라, 물리학, 천문학에도 기여했다.

2. 상세

철저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내용이 완벽하게 정리되기 전에는 절대 발표를 하지 않아서, 누군가가 최초로 발견해서 발표했는데 알고보니 가우스의 노트 한쪽에 이미 끄적여져 있었다든가 하는 일화가 많다. 참고로 이 내용은 분량이 노트 19페이지밖에 안 되는데 하도 내용이 암호처럼 적혀있어 아직도 완벽하게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사후에 그가 남긴 자료를 분석하던 학자는 '그의 연구가 제때 발표되었다면 수학 역사가 50년은 앞당겨졌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가우스도 풀지 못한 난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이다. 해당 문제는 20세기 말에서야 간신히 증명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알려지기로는 주변에서 이 페르마가 제시한 난제를 가우스라면 풀 수 있을 것이라며 도전할 것을 권하자 "그런 문제는 전혀 관심 없다.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도 안되는 명제를 만들라면 나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당시로서는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눈치챘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수세기가 거치고 나서야 현대수학의 최신 이론을 총동원한 끝에 겨우 증명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학계에선 대체로 그 당시의 수학적 도구로는 애초에 증명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우스는 에바리스트 갈루아의 논문을 읽지도 않고 버려 나중에 비난을 들었지만 많은 논문을 보고 개차반이 많아 보는 게 쓸데없는 것이라고 여겨 그랬다고 변명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갈루아의 논문을 읽어보고 가우스나 많은 다른 수학자들도 뒤늦게 '왜 읽어보지 않았던 건가!' 라며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래서 가우스는 이전과 달리 오는 논문을 무조건 버리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 마디 더 하자면 가우스는 갈루아의 논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진짜 몇 안 되는 천재 중 하나였다. 코시 같은 대가도 갈루아 논문을 읽고 "이거 설명도 제대로 없고[7] 너무 뭣같이 써서 도저히 못 알아처먹겠다"면서 포기한 거 보면[8]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 지 알 수 있다.

3. 생애

불과 5살쯤에 자기 아버지가 직원들의 월급 계산을 다 끝마쳤을 때 아버지는 틀렸고, 자신의 답이 맞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훗날 가우스는 "나는 글을 배우기 전부터 이미 계산을 할 줄 알고 있었다."라는 농담까지 하였다. 또한 학교 선생님이 낸 "1부터 100까지의 숫자를 모두 더하면?"이라는 문제를 등차수열의 합 공식으로 순식간에 풀어냈다는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그러한 원리를 최초로 고안한 것은 아니지만 그 나이에 그것을 스스로 생각해냈다는 것이 대단하다. 참고로 답은 5050이다.[9][10]

많은 천재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불우하게 살다 요절한 것과 달리, 가우스는 어린 시절부터 부각된 뛰어난 재능으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재정적 후원을 받았고 생전에 위대한 수학자로 이름을 날리며 학문적, 사회적 성취를 모두 누렸다. 그러나 그 역시 개인적인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24세 때 최소제곱법으로 소행성 세레스[11]의 궤도를 예측하여 수학계, 천문학계를 넘어 과학계 전체에서 유명해진 이래로, 30세부터 거의 50년간 괴팅겐 대학교의 천문학과 교수와 천문대장으로 재직했지만 큰 직업적인 열정은 없었으며 종종 지인들과 나눈 서신에서 가르치는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는 했다. 첫 아내인 요하나 오스토프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으나 아내는 셋째 출산 후 곧 사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막내 아들 루트비히마저 세상을 떠났다.

미나 발데크와의 재혼에서 역시 2남 1녀를 얻었지만 두 아들들과의 사이는 소원했고[12] 아내 미나가 오랜 투병 끝에 사망한 후 77세에 사망하기까지 24년간의 생애를 홀몸으로 살았다.

사망하기 얼마 전에는 손자에게 자신의 삶이 불행했다는 고백의 글을 남겼고, 이후 가우스는 괴팅겐대의 자신의 교수실의 의자에 앉은 채 심근경색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 글을 받아 본 손자마저 가우스 사후에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4. 주요 업적

가우스의 업적은 너무나도 많아서 하나하나 다 나열하다가는 끝이 없으나,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대수학의 기본정리의 증명일 것이다. 사실 최초로 증명했다고 하기에는 논란이 조금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네이버캐스트-대수학의 기본 정리를 참고하자. 상술한 수열의 합 공식도 어릴 때 만들어냈으며, 정 17각형이 작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19세의 나이에 발견했다.

놀랍게도 외계인의 존재를 믿어 다른 별에 생물이 살 것이라고 자신했기에 지구에서 거대한 횃불을 신호로 그들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지인들이 '설마?' 라고 하자 그는 '저 많은 별을 빈 채로 쓸데없이 창조했다면 신은 역사상 최악의 수학적 낭비를 하는 것'이라면서 반드시 무언가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죽고 160여년이 지난 2018년, MIT우주에 조명을 설치하여 외계인과 대화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4.1. 정십칠각형 작도의 증명

19세 때, 정17각형(hepta-deca-gon(17-gon) 또는 septadecagon)이 작도 가능한 다각형임을 증명하였다.[13]

파일:attachment/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Gaus.gif
가우스가 실제로 정17각형의 작도법을 찾아낸 것은 아니다. 단지 작도가 가능하다는 사실만을 증명했을 뿐이며 실제 작도법이 나온 것은 이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이다. 가우스가 증명한 것은 아래의 식이다.

[math(\cos({2 \pi \over 17}) = \frac{- 1 + \sqrt {17} + \sqrt {34 - 2 \sqrt {17}} + 2 \sqrt {17 + 3 \sqrt {17} - \sqrt {34 - 2 \sqrt {17}} - 2 \sqrt {34 + 2 \sqrt {17}}}}{16} )]

야코프 베르누이가 묘비에 로그 나선을 새긴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묘비에 정17각형을 새겨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요청은 사람들이 과 혼동할 것을 우려하여 받아들여지지 않고 17개의 점으로 된 별을 대신 조각하였다. 맨 위의 사진에 나온 우표에 인쇄되었으니 나름 해피엔딩.

같은 방법으로 정257각형, 정65537각형 또한 작도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입증했다. 이들은 모두 페르마 소수인데, 가우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n의 소인수가 2 또는 페르마 소수 뿐이고 홀수인 제곱수를 인수로 가지지 않을 때만 정 n각형이 작도 가능하리라는 추측을 1801년에 제시하였다. 이는 1836년에 증명되어 Gauss-Wantzel 정리라고 부른다.

4.2. 소수 정리

[math(\displaystyle \lim_{x \to \infty}\frac{\pi(x)}{\left(\dfrac x{\ln x}\right)} = 1)][14][15]
가우스는 동시대의 수학자인 아드리앵 마리 르장드르와 함께 소수에 대해 연구를 하던 중, 이것이 자연로그와 연관성이 있다는 추측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가우스는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하였고, 이후 후대의 수학자들이 이 문제에 몰입하여 마침내 이 추측이 사실임을 증명해냈다. 자세한 내용은 소수 정리 문서 참조.

참고로 이 정리는 가우스가 가장 아끼던 제자 베른하르트 리만이 제시한 21세기의 수학 난제 리만 가설로 이어졌다.

4.3. 그의 이름을 딴 것들

직접 이름 붙은 것만 이 정도고, 실제로 기여한 것은 수없이 많다. 이과로 대학에 입학할 경우 가우스의 이름을 심심하면 전공서에서 볼 수 있다.
  • 가우스 함수: 가우스 함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개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아마도 아래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 가우스 기호 [] (floor function)
    • 가우스 분포 (Gaussian distribution): 도수 분포 곡선이 평균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인 종 모양을 하는 분포 함수를 말한다. 정확히는 정규분포로 넘어가기 전에 튀어 나오는 일반 함수이지만, 최종 결과인 정규분포 말고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 가우스 적분 - 위 정규분포의 확률값을 계산하기 위한 적분.
      • 가우시안: 이건 포토샵등에서도 튀어나오기 때문에 미술/디자인쪽도 듣게 된다. 가우스 분포를 응용하여 만드는 필터 효과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어 있다.
  • 가우스 소거법(Gaussian elimination)
    연립 1차 방정식의 기본적인 해법. 미지수를 하나씩 소거해 가서 어느 미지수를 결정하고, 그것을 반대로 대입해 가서 전 미지수를 구한다.
  • 가우스 사상
    곡면위의 한 점에서의 단위법선벡터를 평행이동시켜서 곡면에서 단위구면에의 사상을 정의할 수 있다. 이를 가우스사상 또는 구면사상이라고 한다.
  • 가우스 미터
    자속 밀도의 CGS 전자기 단위로, 기호는 G이다. SI 단위테슬라(T)의 1만분의 1.
  • 가우스 정수
    '복소정수'라고도 하며, 두 정수 a, b 에 대해서 [math(a + bi , (i^2 = -1))]로 표현되는 수를 의미한다.
  • 가우스 정리(Gauss's Theorem)
    발산 정리라고도 한다. 물리학의 가우스 법칙과도 관련이 있다. 미분위상수학의 스토크스 정리의 특수한 경우이기도 한데, 대학 미적분학에서 보통 스토크스 정리라고 하면 켈빈-스토크스 정리를 뜻한다.
  • 가우스의 평균값 정리(Gauss's Mean Value Theorem)
    함수 [math(f)]가 닫힌 원 [math(\left|z-z_{0}\right|\leq r)]에서 해석적(Analytic)이라고 하면, [math(f(z_{0})=\displaystyle{\frac{1}{2\pi}}\int_{0}^{2\pi}f(z_{0}+re^{i\theta})d\theta)]이다. 코시 적분 공식에서 유도된다.
  • 그 외
    • 가우스상 (Carl Friedrich Gauss Prize for Applications of Mathematics) - 국제수학연맹에서 공학, 비즈니스 등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수학적 발견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4.3.1.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그 이름이 붙은 것

5. 주요 저서

  • <Disquisitiones Arithmeticae>(산술에 관한 연구): 정수론대수학에 대해 다루는 책으로, 가우스의 모든 저서와 논문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는 저서이다. 실제로, 이 책 하나 때문에 당대의 수학자들이 모두 대수학과 정수론 분야로 관심을 기울였고, 아벨이나 디리클레 등의 수학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저서를 출판할 때 가우스의 나이가 겨우 24세였다는 점이다.

6. 관련 문서



[1] Gebhard Dietrich Gauss.[2] '데데킨트 절단'으로 유명한 수학자[3] 베셀 함수을 정립한 수학자.[4] G. Waldo Dunnington, Jeremy Gray, Fritz-Egbert Dohse, Carl Friedrich Gauss: Titan of Science (MAA, 2004), 300.[5]Carl Friedrich Gauss,” Celebrity Atheist List, 2013년 8월 22일 수정됨.[6] 오른쪽 그림은 자와 컴퍼스만으로 17각형을 작도한 것을 의미.[7] 갈루아가 살아 생전 인정받지 못한 게 개차반 같은 성격과 더불어 이런 설명도 없이 "나는 아는데 너는 왜 모르냐? 알아서 봐라"라는 태도를 취한 점이었다. 누구에게나 이래서 대학 면접에서도 탈락하고 다른 선배나 수학자들에게도 건방지다며 인정받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8] 다만 코시 같은 경우에는 갈루아를 인정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갈루아 문서에 나오듯이 여러가지 설이 전해질 뿐이다.[9] 1+100=101, 2+99=101……50+51=101, 따라서 1에서 50까지의 101을 더하면 101*50=5050[10] 여담으로 고지능자들의 공통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학습이 아닌 본인의 사고만으로 원래 존재했던것을 혼자서 깨달은 셈, 더구다나 학생이었던 그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신이 내린 재능이 아닐 수 없다.[11] 당시에는 소행성으로 분류됐지만 현재는 왜행성으로 분류되고 있다.[12] 아들한테 "너희들은 수학하지 마라. 어차피 나를 뛰어넘지 못할테니"라고 하는 아빠였다. 대신 이건 아들들이 수학자의 삶을 택한다면 매번 자기와 비교될 것 같기 때문에 걱정하는 뜻으로 이랬다는 설도 있다.[13] 기하학에서 작도 가능하다는 것은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만을 가지고 도형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14] [math(\pi(x))]는 소수 계량 함수이다. [math(x)]보다 작거나 같은 소수의 개수를 뜻한다.[15] [math(\dfrac x{\ln x})] 대신 로그 적분 함수 [math(\displaystyle \mathrm{li}(x) = \int_0^x \frac{{\rm d}t}{\ln t})]를 쓰기도 한다.[16] 라이벌인 공자의 이름을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인 공자에서 따왓듯이 서양에서 다양한 수학 분야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그에게서 이름을 따온 걸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