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당시 KBS 뉴스당시 MBC 뉴스
당시 YTN 뉴스
2009년 2월 9일(음력 정월 대보름) 오후 6시 15분경 경상남도 창녕군 화왕산 정상에서 억새를 태우는 행사를 하던 중 해발 742m 높이에 있는 골짜기 배바우 근처에서 갑자기 역풍이 일어 불길이 방화선을 넘고 관람객 쪽으로 번져 관람객들이 불길에 휩싸이거나 도망가다 절벽에서 밀려 떨어지는 등 총 7명이 사망하고 81명이 부상을 당한 사고.
2. 상세
화왕산 억새 태우기는 화왕산 정상 화왕산성 내 억새밭 18 헥타르를 불태우는 행사로, '화왕산에 불기운이 들어야 다음 해 풍년이 들고 모든 군민이 평안하며 재앙도 물러간다.'[1]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창녕군과 창녕 배바우산악회가 1995년 처음으로 억새를 태웠으며 1996년 두 번째 행사 후 생태계 파괴를 우려해 취소됐다, 2000년부터 매 3년마다 다시 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2009년 행사는 2003년과 2006년에 이은 여섯 번째 행사였다.그리고 당시 뉴스 보도 자료를 보면 불길에 휩싸여 버둥대던 희생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부 사람들에겐 트라우마로 작용할 수 있는 영상이었다.
사실 축구장의 24배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억새밭에 불을 붙여 태워 버리는 만큼 안전관리에 미흡하면 대단히 위험해질 수 있는 행사였다. 따라서 행사 전 남부지방산림청 양산국유림관리소에선 너비 50m 안팎의 방화선 2km 구축, 안전요원 320명 배치, 산불 진화 헬기 대기, 뒷불 감시조 운영, 확산 예방을 위한 사전 물뿌리기 등 산불 예방을 위한 안전조치를 이행하는 조건으로 억새 태우기를 허가했다.
사고 후 경찰 조사에서 방화선 너비는 평균 15~40m였고 특히 배바우 인근 참사 현장 부근의 방화선 너비는 고작 15~16m에 불과했다고 밝혀졌다. 사전 물뿌리기도 이행되지 않았고 안전 요원 320명 배치도 지키지 않아 현장에는 257명의 요원이 있었을 뿐이다. 그날 안전요원으로 참가했던 인원에 따르면 소화 장비는 물펌프였다고 한다.
한 가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창녕군이 2003년 행사에서는 방화선 구간 내 억새를 모두 태워 없애 버렸고 2006년 행사에서는 방화선 구간 내 억새를 모두 베어낸 뒤 그 위에 흙을 덮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던 것에 반해 2009년 행사에서는 베어내기만 해서 땅 위에 남은 억새의 밑둥 부분과 잡초 등을 통해 불이 번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대참사 속에서 단지 술을 마시고 하산 중에 다쳤을 뿐이면서 구급차를 타고 치료를 받아 보상금을 청구해 3,000여만원을 받은 사기꾼이 적발된 적이 있다.
결국 이 참사를 계기로 화왕산 억새 태우기 축제는 6회만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현장에는 추모비 하나 세워져 있지 않으며 그 어떤 추모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창녕군 측은 좋은 일도 아니거니와 유가족이나 부상자들의 아픔을 다시 건드리는 것 같아서 추모 행사를 계획하지 않았으며 요구도 없었다고 한다. 다만 유족들과 해당 사고의 부상자들이 아쉬움의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볼때 이는 창녕군의 독단적인 결정에 가까워 보인다. 또 사고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으나 이에 대한 내역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논란이 되었다.#
논밭을 태우는 것은 1년 농사를 짓기 전에 해충을 없애거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정작 이 행위는 농사에 도움이 되는 익충까지 소각하는 등 농사에 별 효과가 없다고 하며 오히려 논/밭을 태우는 일은 이 사건과 마찬가지로 산불의 주요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매년 봄/가을에 논이나 밭을 태우다가 불이 큰 산불로 번지거나 밭을 태우던 농민에게 불이 옮겨붙어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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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누전, 장비 고장 | E: 그 외 | H: 사람에 의한 실화 | V: 고의적 방화 | ?: 원인 불명/조사 중 |
4. 관련 문서
[1] 화왕산뿐 아니라 정월 대보름엔 여기저기서 대형 불피우는 행사가 지역별로 있다. 제주도에선 오름 하나를 태우기도 하고 하남에서도 갈대밭을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