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3 01:18:14

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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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지중해 세계2.2. 동아시아2.3. 인도
3. 주요 사건4. 연도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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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5세기는 서력으로 401년부터 500년까지이다.

2. 역사

2.1. 지중해 세계

고대와 중세를 구분하는 가장 유명한 기준점인 서로마의 멸망이 5세기에 일어났으나,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본질적 기틀은 4세기에 마련되었고, 5세기에 일어난 사건들은 본질적이기보다는 상징적인 것들이 많다. 즉 476년 서로마 황위가 오도아케르에 의해 폐지되자마자 '우리는 오늘부터 고대가 아닌 중세 사람이다' 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단지 상징적 사건일 뿐이며 5세기는 중세로 움직이는 점진적 과정의 일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세기는 전환점으로서의 중요성을 갖는다. 4세기가 종교적 측면에서의 전환이었다면, 5세기는 유럽 역사의 구성원의 측면에서의 전환이었다. 그리스-로마를 중심으로 흘러가던 유럽의 역사에서 게르만족과 같은 기타 민족들이 중요성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유럽의 나머지 영역에서도 역사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400여년에 걸쳐 거의 변동이 없었던 유럽의 지도가 이 5세기에 이르러 가히 파격적인 분열을 보여준 것을 보면, 5세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적 전환점의 예로서 손색이 없는 시기였다.

서로마 제국동로마 제국으로의 분할통치가 이루어졌으나,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우위에 있었던 것은 동로마 제국이었으며, 황폐화되고 생산력이 약해진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과 훈족의 대이동의 풍파를 그대로 맞이해야 했다.

사실 게르만족은 이미 3세기부터 점진적으로 유입되었다. 게르만족 국가와 일어난 전투는 게르만의 이동 중에서도 아주 특수한 상황이었다. 게르만족 국가들은 강력한 국력을 지닌 동로마 제국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오히려 동로마 사회에 융합되기까지 했다. 나머지 세력은 자연스럽게 서유럽으로 진출해 서로마 영토를 차지해 세력을 구축했다.

476년 라벤나가 오도아케르의 군대에 함락되고 서로마 제위는 소멸하면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로마 문명은 여전히 동로마를 통해 지속되고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로마의 시대가 끝났으며, 이베리아 반도의 서고트 왕국, 오도아케르를 몰아내고 이탈리아를 차지한 동고트 왕국, 벨기에 인근에서 클로비스 1세가 세운 프랑크 왕국과 같은 나라들이 중세 초기를 알렸다.

2.2. 동아시아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대륙이 대혼란 시대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남북조로 나뉘어 대치했다. 한반도에서는 4세기소수림왕을 기반으로 광개토대왕장수왕을 거치면서 고구려가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5세기의 동아시아 국가들의 관계는 동아시아사 시험에 잘 나온다.

2.3. 인도

인도는 늘 그랬듯 여러 개의 소왕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는 아프리카아메리카 쪽에서도 유력한 강국은 출현하지 않아 전 지구적으로 문명권이 다소 쇠퇴하거나 분열되어 있었다.

3. 주요 사건

4. 연도 목록


[1] 내전이 아닌, 이민족이 로마 시에 입성한 것은 아직 좀 센 도시국가였던 시절 기원전 387년 켈트인들에게 허용했던 이후, 387+410=797, 즉 800년 만에 처음인 대사건이었다! 그래서 서로마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위시한 동로마에서도 이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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