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4 05:16:42

548일 남장 체험


도서명 Self-Made Man: One Woman's Year Disguised as a Man(英)
548일 남장 체험(韓)
발행일 2006년(원서)
2007년(역서)
저자 노라 빈센트
(N.Vincent)
공경희 역
출판사 Viking Adult(원서)
주식회사 위즈덤하우스(역서)
ISBN 97889608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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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출간 배경3. 목차 및 주요 내용
3.1. 챕터별 내용 정리3.2. 남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3.3. 남녀의 구분: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3.4. 남장여자가 바라본 연애 권력3.5. 남성의 한계와 가능성
3.5.1. 남성들의 민낯3.5.2. 열려 있는 남성들
4. 기타5. 둘러보기

"내가 처음에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남자들의 짜릿한 대형 라이브 공연을 보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공허한 가면무도회에 불과했다. 남자로 사는 것은 늘 비현실적이고, 한계가 있고, 화나고, 낙심의 연속이었다. 또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마네킹이 되려고 애쓰는 짓이었다... (중략)

...남자들이 사실은 가면 뒤에서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기의 사이즈보다 열 배는 큰 갑옷을 입고서 연기를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고통은 자신들의 노력에 의해서 조금씩 치유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여자들의 보살핌과 진정어린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p.318

1. 개요

본서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저자가 남장을 한 채로 남성의 사회적 성 역할을 수행하면서 느끼게 된 내용을 정리한 자서전적 수필이다. 저자 노라 빈센트는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인 칼럼니스트였는데, 남성들의 삶에 대해 548일 동안 남장을 하고 직접 경험하고 체득한 내용을 회고하면서, 남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갈등론적 세계관에서 단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고 토로한다.

2. 출간 배경

본서에 대해 국내 출판사에서는 '휴먼 다큐'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실제로 저자가 사회학 전공은 아니기에 사회과학적 분석이나 이론적 통찰은 하지 못했지만, 본서의 가치는 흔한 남성들과 삶의 현장을 함께하면서 그들의 땀냄새와 웃음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데 있음을 우선 들 수 있을 것이다. 본서에는 하루 종일 3D업종에서 중노동을 하고 나서 아들과 함께 볼링장에 들러 볼링 시합을 하는 노동자의 껄껄거리는 웃음이, 평생을 수도원에서 바친 고매한 할아버지 신부가 양봉을 하면서 미소짓는 모습이, 모처럼 쿠폰 북을 잔뜩 팔아치우고 돌아와서 회사 건물에 매달린 종을 신나게 울려대는 영업사원의 환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처럼 본서는 남성에 대한 현실적이고 균형잡힌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만일 페미니즘 서적들을 읽다가 남성들 전체가 막연히 악마 같은 타자로 느껴진다면, 이 책은 그때 반드시 꺼내 읽어야 할 책일 것이다.

또한 본서는 흔치 않게도 사회과학에서 '참여관찰법'이라고 부르는 방법론을 활용한 사례이다. 1960년대에 극심하던 인종차별에 대하여 존 그리핀(J.H.Griffin)이라는 한 백인 기자가 흑인 분장을 하고 자신이 경험하는 흑백갈등을 생생하게 취재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결과물인 《Black Like Me》 는 "요즘 세상에 인종차별이 어디 있어?"라고 어깨를 으쓱하는 60년대(…)의 백인들에게 경종을 울렸다고 평가되고 있다. 언론 분야에서는 이와 같은 종류의 취재를 일명 첩보 저널리즘(undercover journalism)이라고도 하며, 본서 역시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본서의 저자는 페미니스트로서 남성의 삶을 속단하지 않았고, 남성의 성 역할을 여성의 시선을 견지하되 "자기 일로" 체험했다. 이 점에서 본서의 희소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본서는 남성을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남성이 나아가야 할 길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기존의 남성 페미니즘 운동은 의식고양(conscious raising)을 방법론으로 차용했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막연히 "반성하세요", "문제의식을 가지세요", "본인의 가해자성을 받아들이세요" 같은 피상적인 메시지만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본서에서 그보다 구체적으로, "남성들이여, 가부장제의 갑옷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삶을 치유하고자 하는가? 감정을 드러내라! 풍부하게 표현하라! 남성들 간에 끈끈하게 유대감을 나누어라! 서로를 연결하라!" 의 솔루션을 제시한다.[1] 경험이 구체적이니, 그만큼 솔루션도 구체적이게 되는 것.

저자 노라 빈센트에 대한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어릴 때부터 전형적인 '톰보이'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기저귀를 떼기 무섭게 목장 일꾼처럼 옷 입기를 좋아했고, 레이스 달린 옷을 극도로 싫어했고, 나무타기를 즐기며, 사춘기 시절에는 스포츠광이었던 여성이었다고 한다.[2] 본서 1장의 내용에 따르면, 저자는 어린 시절에 드레스와 인형을 매우 싫어했고, 플루트가 아닌 색소폰을 배우려 했으며, 아버지의 면도크림을 탐내고, 7살 할로윈 때 처음으로 남장을 하면서 아버지의 중절모를 빌려 쓰고 얼굴에 수염을 그린 채 할아버지 분장을 했다고 한다. 어찌보면 어지간한 남성들보다 더 남자다운 여성으로, 본서의 취지에는 아주 타고났다고 할 수 있겠다.

이후 저자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는데, 이때 페미니즘에 제대로 심취해서 모든 남성들은 전부 가부장제에 젖어 있다고 믿었고, 본서 135페이지에서 털어놓듯이 당시에는 정말로 남성혐오증이 심해서 모든 남성들에게 벽을 쌓고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레즈비언으로서 연애를 하다 보니 남자냐 여자냐가 문제가 아니라 관계에 얽매이는 것 자체가 문제임을 깨달았다고. 이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경력이 있고, 본서 출판 이후 뉴욕에 거주하며 다양한 대중 강연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본서의 저술배경과 관련하여, 저자는 원래 레즈비언 중에서도 남성적인 역할을 맡는 것에 익숙했다고 한다. 남성으로 변장하는 것에 익숙한 친구가 있었으며, 주위에 연극 메이크업을 하는 사람들과의 인맥이 있었으며, 1장에서 이야기하듯 저자 본인의 모친부터가 직업이 배우였으며 어머니가 남장여자로 분하는 것을 어릴 때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고. 어찌보면 저자의 남장 프로젝트는 필연이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뉴욕 이스트빌리지 생활을 하면서 저자는 평소 자신에게 쏟아지던 캣 콜링과 (국내의 표현으로는) 시선 강간이 남장을 할 때에는 전혀 쏟아지지 않음을 깨달았고 이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이 생겨났으며, 2003년 겨울에 A&E 방송사의 한 리얼리티 쇼를 접하면서[3] 본격적으로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네드'(Ned)라는 가명을 쓰고,[4] 상고머리 헤어스타일을 하고, 가슴은 헐렁한 셔츠로 가리고,[5] 체육관에서 단백질 쉐이크를 먹으면서 바벨 운동을 하며 어깨를 키우고, 줄리어드 음대에서 또박또박하고 무뚝뚝한 남성적 발성법을 배우고, 심지어 인공 페니스를 국부에 부착하는 등의 변화를 거쳤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실체 없는 가짜 남성, '네드 빈센트' 가 탄생하게 된 것. 하지만 트랜스젠더 커밍아웃은 아니라고 한다. 힘들고 고역스러웠을 뿐, 결코 좋은 기억이 못 되었다고.[6] 그래도 정신적 성과 사회적 성 역할이 불일치할 때의 고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으므로, 아예 접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7]

한국에서는 뒤늦게 2017년 정도부터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2015년경부터 늘어난 여권신장의 목소리로 남녀 역차별 분쟁이 일어나면서 남자든 여자든 이쪽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미 비슷한 문제가 일어났던 해외의 사례들을 찾아보다 보니 유명해진 것으로 보인다.

3. 목차 및 주요 내용

  • 1장: 남자 탐험을 시작하며
  • 2장: 남자의 우정
  • 3장: 남자의 성욕
  • 4장: 남자의 사랑
  • 5장: 남자의 삶
  • 6장: 남자의 일
  • 7장: 남성의 자아 찾기
  • 8장: 다시 여자로 돌아오기

전반적으로 서론 - 본론 - 결론의 형태를 따르는 체계적인 구성이며, 1장과 8장이 각각 서론과 결론에 대응한다.

책의 전체 내용을 세줄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남성들은 특권과 권력을 향유하는 삶을 살지 않으며, 막중한 기대와 책임 속에 늘 쏟아지는 감시와 평가에 대해 허세를 부리는 삶을 살아간다.
  • 이들은 일과 사랑의 성공을 남성성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실패와 좌절의 경험은 마치 자기 자신이 부정당하는 듯한 극단적인 위협이 된다.
  • 남성들은 비록 도덕적으로 완벽하진 않지만, 감정적 표현 및 유대감의 결핍이라는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낙관할 수 있다.

3.1. 챕터별 내용 정리

각 챕터의 내용들을 각각 세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하단에 간략히 정리할 것이다. 먼저 남성성이 지배와 특권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타인의 평가와 기대에 노출되어 있으며 남성들은 이에 대응해 허세를 부리게 마련이라는 설명을 살펴본다. 다음으로는 저자의 경험 속에서 어떻게 생물학적 남녀와 사회적 성 역할이 구분되고 인식되는지를 잠시 살펴보고, 그 다음에는 남장여자로서 여성과 연애하면서 느끼게 된 여성들의 연애 권력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는 남성들의 성욕에 대한 민낯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에게 희망을 걸어 볼 수 있는 이유를 살펴볼 것이다.
  • 1. 남자 탐험을 시작하며
    남성적인 성격의 여성인 저자는, 남성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지적 호기심에서 장기간에 걸쳐 남장 체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네드' 라는 가명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저자는 수염을 붙이고 근육을 키우며, 발성을 바꾸고 인공 페니스를 부착하는 등 철저히 준비했다. 이제부터 소개할 저자의 경험담은 주관적인 에세이에 가까우며, 전적으로 고달팠던 기억이었지만, 단지 지적인 탐구에 도움을 얻고자 했다.
  • 2. 남자의 우정
    저자는 6개월 간 백인 저소득층 남성들과 함께 볼링을 하면서, 그들이 거칠긴 하지만 매우 진실하고 솔직하며 우애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은 차별의식이 약했으며, 극도로 실용주의적이었고, 약자를 도와주는 메커니즘을 갖춘 우정과 경쟁의 고유한 문화를 갖추고 있었다. 저자의 커밍아웃 이후 이들은 놀랍도록 개방적으로 반응했고, 관계는 깨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들의 진보적인 태도가 저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 3. 남자의 성욕
    남성들은 내면의 욕망과 싸우는 고통을 경험하며, 그 해소 수단 중 하나가 클럽이지만, 이곳에서 남성들은 삶과 영혼과 품위가 파괴되고 있었다. 남성 손님들은 공중화장실처럼 욕망을 해소하려 했으며, 이를 위해 일체의 우애감이나 친밀감, 유대감, 성적 유희가 생략된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클럽의 무희들 역시 완전히 지쳐 있었고 자신의 몸을 혐오했으며, 남성들의 고통을 일시 넘겨받아 감당했지만, 양쪽의 고통은 심화될 뿐이었다.
  • 4. 남자의 사랑
    연애에 있어서 여성들의 거절이나 방어적 태도, 남성을 늑대처럼 속단하거나 너무 많은 것들을 품평하는 행동은 남성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남녀는 선뜻 일반화시키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기준들을 갖고 있으며, 저자는 연애 관련 속설들을 확증하거나 반증하는 숱한 사례들을 발견했다. 저자는 여성의 연애 권력이 남성의 모든 사회적 권력을 압도하는 것을 경험했으며, 여성들이 가부장적 남성상을 선호한다는 것 역시 확인하였다.
  • 5. 남자의 삶
    저자는 성욕을 완전히 배제한 남성중심적 집단에 소속되기 위하여 가톨릭 수도원에서 피정했지만, 남성적 대인관계의 특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사와 신부들은 성욕에 대한 거부와 배제를 위하여 극렬한 반동성애 성향을 보였지만, 실상 이들의 생활은 동성 가족의 양상에 가까웠다. 이 남성들은 정서적 유대나 보살핌을 말소함으로써 성욕을 억누를 수 있다고 믿었고, 그로 인한 상처와 아픔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되돌아갔다.
  • 6. 남자의 일
    저자는 영세한 판촉회사에 취직했으며, 면접 때 무례하고 오만한 태도로 잔뜩 허세를 부리자 면접관들이 매우 흡족해하는 것을 목격하고 놀랐다. 남성중심적 조직문화를 갖춘 회사는 실적과 남성성, 성적 매력을 동일시하며, 남성의 고압적인 전략이 실제로 실적으로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직무상 성차별은 채용이나 승진보다는 오히려 사적인 상호작용에서 나타났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성별에 따라 상이한 대본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 7. 남성의 자아 찾기
    저자는 남성주의 세션 및 수련회에 참석했으며, 이곳에서 감정적 결여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남성들의 울분과 고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수련회에서 이 남성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가부장적 책임에 억눌려 왔는지 털어놓았고, 그 억지스러운 영웅 연기를 부정하려 애썼다. 저자는 자신의 여성성을 숨기는 것에 불안과 불편함을 느꼈지만, 다른 남성들도 그런 '가면' 을 쓰고 똑같이 불편해하는 것을 알고서 놀랐다.
  • 8. 다시 여자로 돌아오기
    남성의 역할은 자신감이나 자유가 아니라 속박과 감시, 평가에 있었으며, 위축되면서도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 허세를 부리는 불행한 삶에 가깝다. 저자는 다시금 여성으로서 편안하게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왔지만, 적어도 남성들의 인생을 새롭게 이해하고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는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남성들에게는 자기연민이 아닌 연대 및 연결감으로서의 치유가 필요하다고 믿게 되었으며, 남성들을 응원하고자 한다.

3.2. 남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누군가 항상 남성성을 평가하고 있다. 다른 남자들이나 여자들,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그가 얼마나 남자다운지 평가한다. 모두들 약점이나 부족한 점을 찾으려고 혈안이다. 남자의 약한 일면이 전염병이라도 되는 듯이 감시한다."
- p.320

흔히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이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한한 특권과 혜택을 누리면서 터질 듯한 자신감과 당당함을 갖고 살아간다고 믿는다. 세상 모두가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하나도 없고, 원하는 만큼 권력을 가질 수 있으며,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필요하다면 약한 척을 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도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동안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나도 한 번쯤 그 남자라는 역할로 살아 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같은 생각을 종종 하곤 하며, 일단 저자부터가 한때 그랬다. 그런데, 저자가 막상 남성으로서 살아 본 결과는 대학 여성학 강의에서 들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요컨대, 남성들은 과도한 기대를 받고, 그 때문에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며, 그 때문에 으레 허세를 부리게 되고, 그 때문에 특권을 지녔다고 오해를 받으며, 그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대놓고 털어놓지도 못하고 끙끙 앓는다는 것이다. 남성에게는 남성의 세계와 남성의 언어가 있지만, 여성들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한다.

남성 중심적 문화 속에서 남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남성들에게 호의적인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저자는 그것을 직업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예컨대, 저자는 영세한 판촉 회사의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일종의 성차별을 경험했다. 여성 구직자였으면 대번에 면접관들의 인상이 찌푸려졌을 오만하고 건방진 허세에 대해, 남성 구직자로서 저자가 드러냈을 때에는 면접관들이 만면에 화색을 드러내며 흡족해했다는 것이다.[8] 그런데, 이런 '성차별' 은 거꾸로 뒤집어 말하면 남성들에게 그만한 성취를 자연스레 기대한다는 것과도 같았다. 이 바닥에서는 남성성이 업무 실적과 직결되었다. 직원들은 "남자답게 팔아라, 성공자는 모든 것을 갖고, 실패자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는 호된 독려에 내몰렸다. 현장에서 남성 직원들은 쿠폰 북을 판매하는 것이 '여자 꼬시기' 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직원이 자신의 남성성을 드러낼수록 잠재 고객들은 더욱 호의적으로 반응했다.[9] 한편으로는 이런 조종술이 남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의 장점이기는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는 남성들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이런 면모를 기대한다.

이것이 문제가 될 때는 결국 이 남성들이 영업에 실패했을 때다. 남성성을 업무 실적과 연결시킨 결과, 실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남성들은 필요 이상의 패배감과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직장에서 "여자치고는 곧잘 하네?" 라는 식으로 차별을 받듯이, 남성들은 "쓸모없는 멍청이 같으니, 그냥 고추 떼라!" 는 식으로 차별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들에게 처음부터 그런 과도한 기대를 거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남성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위 'A급' 사원이기를 강요 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 결과 남성들은 남성중심적 조직문화에서 한껏 펄펄 날아다니기는커녕 도리어 속 빈 강정이 되고 만다. 저자가 "모든 면은 과장되어 있었다"(p.253)고 말했던 것처럼, 이 남성들은 양복이라는 거대한 갑옷 속에서 잔뜩 움츠러든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거짓으로 허세를 부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거만하게 굴어야 했다. 저자는 이를 이해한다. 저자 본인부터가 그런 전략으로 면접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그런 남성들의 필사적인 허세를 바라보면서 그것이 남성들의 오만한 특권이라고 오해해 버린다.

저자가 7장에서 남성성 치유 모임에 함께하면서 목격한 것을 소개하면 이렇다. 그 모임에서는 크레용으로 "마음 속 영웅 그리기" 를 하고, 그 영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을 나눈 뒤, 마지막으로 그 영웅으로 대변되는 '사회가 주입한 남성성' 을 거부하기 위하여 영웅 그림을 찢어버리는 시간이 있었다. 이때 저자는 강하고 완벽해 보이는 남성들의 불안과 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미녀를 여친으로 둔 어떤 남성은 자기보다 더 돈 많고 권력 강한 남성에게 여친을 빼앗길까 늘 두려워했고, 굉장한 근육질의 몸매를 갖춘 어떤 '깍두기 형님' 유형의 남성은 자신이 그 몸 때문에 타인에게 두려움을 사고 폭력배로 오해받는 것을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영웅은 아킬레우스 같은 호색한이 아니었다. 천상을 홀로 떠받치는 아틀라스, 영원히 바위를 굴리는 시지프스였다. 남성들은 일상을 유지해야 했고, 여성들이 걱정하거나 힘들어하거나 아프지 않게 노력하면서 자기 자신을 취약하게 하는 것까지 자처했다. 이들은 남을 지켜주기 위해 피해를 입는 역할을 맡은 피해자들이었고, 여성들은 남성들만의 고통과 삶의 무게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장 거친 하류층 남성들의 삶에서도 이 점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저자가 억척스럽고 우악스러운 남성들과 '남자다운' 우정을 다지기 위해 참여한 볼링 팀에서, 저자는 남성들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세계를 보았다. 거칠고 굳은 행동은 정복자와 지배자의 면모가 아니라,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가르치려던"(p.38) 바로 그 끈끈한 연대의식과 동지애 및 애정의 표시였다. 직설적인 화법은 상대방의 권력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자신의 진의와 의중을 숨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확실하게 표현하려는 표시였다. 이들은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었다. 극도로 실용주의적이었기 때문에 그저 타인이 정직하고 도움이 되면 존중하고, 타인이 기만적이고 도움이 안 되면 의심할 뿐이지, 피부색은 의미가 없었다. 종종 흑인이나 게이, 부유층에 대한 농담이 돌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거 참 재밌는 양반들이야!" 정도의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었고, 오히려 평소 이들의 농담들 중 많은 것이 자학개그였다. 이들은 성차별주의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페미니즘에서 그렇게 강조하던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갔으며, 설령 스트립 클럽에 놀러 갈지언정 자신의 아내를 진정으로 아끼고 결혼에 행복해했다. 자기들끼리 모이면 서로 자기 아내 칭찬을 늘어놓고, 누군가의 아내가 암이 재발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다같이 슬퍼하곤 했다.

남은 이야기로, 볼링 팀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남성 간 경쟁의 의미 깊은 양상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볼링에 상대적으로 초보였기 때문에 자신을 대상으로 남성들의 위계질서와 힘겨루기가 나타날 거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은 실력이 떨어지는 저자를 격려하고 너그럽게 대했으며, 심지어 '패자는 20달러를 낸다' 는 규칙도 당분간 예외로 해 주었다. 충분히 친해진 이후에야 비로소 저자의 실력을 놀려대긴 했지만 이조차도 친밀감의 표시에 가까웠다. 이런 우호성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약자를 배제하고 착취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아들을 가르치듯 약자를 훈육한다" 의 논리였다. 저자처럼 뒤처지는 남성이 있으면 경쟁에서 탈락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일처럼 답답해하고 마음아파했다. 이것이 남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경쟁이었다. 여성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저자가 평생 경험한 바에 따르면, 여성들은 뒤처진 동료에게 비법을 가르쳐주는 특강 같은 개념이 없으며, 거꾸로 혼자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약점을 들추고 끌어내려서 우월함을 제거하려 했기 때문.[10] 이런 가르침의 전수는, 저자에 따르면, "부족의 생존이 거기 달려 있던 시절이나 되는 듯이"(p.56)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경쟁 관계에 있는 상대편 볼링 팀의 팀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본 상대팀 팀원들까지 와서 저자를 코치해 주려고 했다는 사실을 회고한다. 상대 팀에서 못 하는 사람이 있으면 "때는 이때다" 싶어서 마구 짓밟고 한껏 이용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다가와서 자신이 도와주려 하고, 저자가 도움을 요청하면 은근히 자신이 존경 받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저자는 굉장히 중요한 통찰을 얻는데, 남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약자를 무참히 짓밟는 것이 아니다. 남성들은 도리어 그 약자를 자신과 겨룰 만한 강자로 키워주고, 서로 대등한 관계가 된 이후에 비로소 정정당당한 승부를 보길 원한다. 때로는 상대방을 강자로 키워내는 실력조차 여러 '코치' 남성들 간에 경쟁이 붙기도 한다! 그래서 남성은 자신보다 명백히 약한 상대를 이기고도 기뻐하지 않고, 좋은 싸움에서 패배했을 때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축하해 주는 것을 남자답다고 여긴다. 그런 싸움이 끝나면 오히려 서로 더욱 친해지고, 선의의 경쟁이 붙으며, 마침내 기진맥진해진 채 함께 드러누워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여간 이런 남성들만의 세계는 여성들이 쉽게 포착하기 어려운 것으로, 남성들은 자기들만의 인간미를 드러내고 있으며, 무조건적으로 권력, 폭력, 지배, 정복의 아이콘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3.3. 남녀의 구분: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어쩌면 일부 독자들은 본서를 읽으면서 저자가 "이 사람 이상한데? 목소리도 높고 피부도 곱고 말이야, 여자 아니야?" 같은 주변의 의심을 사게 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저자가 본서의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일 걱정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특히나 7장에서는 프로젝트의 거의 마지막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성 치유 모임에 참석하려 할 때 심지어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했을 정도였다.[11] 하지만 막상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저자는 남성 연기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외모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자라는 확신을 갖는 것임을 알고 놀라게 되었다. 저자가 자신이 남성이라고 믿으면, 사람들도 자신을 남성으로 보아 주었다. 하지만 저자가 자신이 여성이라고 믿으면, 사람들도 저자를 여성으로 대했던 것이었다.

본서 21페이지와 325-326페이지에서 저자가 설명하는 것을 살펴보면 우리가 어떤 사람의 성별을 인식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상대방의 외모가 보여주는 생물학적 특성을 토대로 성별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성별 정체성에서 자연스레 풍겨져 나오는 눈빛과 태도, 분위기를 토대로 성별을 인식한다. 저자가 자신의 변장술과 남성 연기에 차츰 자신감이 붙고 익숙해지자, 남성적인 생물학적 요소들을 추가하기 위해 동원하던 갖가지 소품들이 필요없어졌다. 프로젝트 말미에 저자는 가짜 수염을 떼고 안경도 벗고 브라 없이 꽉 끼는 셔츠를 입고서 밖으로 나갔지만, 사람들은 저자를 남자로 인식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끝나고 몇 개월이 지나서 다시 정신적으로 여성으로 돌아오자, 검은 털모자를 쓰고 남성용 한겨울 코트를 입고 나갔는데도, 사람들은 저자를 여성으로 인식했다. 적당히 남성적이라는 전제 하에 남성의 심리를 드러내는 정도가 아니라, 일단 남성의 심리를 드러내기만 하면 심지어 저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파악할 단서가 아예 없을 때에도 남성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본서를 쭉 읽어보았다면 느꼈겠지만, 본서에서는 볼링 팀이건 가톨릭 사제들이건 심지어 남성성 치료 모임에 참석한 남성들이건 간에 저자가 여성이 아닐까 의심한 사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커밍아웃을 했을 때 오히려 주변에서 실없는 농담 하지 말라고 반응하다가 점차 아연실색하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어쩐지 그때 그랬더라니..." 같은 식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반응이 나올 정도. 수도원에서도 저자가 은연중에 드러낸 여성성을 한 명이 포착해 내긴 했는데, 그 사람조차 저자를 여성이라고 정확히 알아맞힌 게 아니라, "나는 '게이 레이더' 가 있는데, 내가 보니 당신은 게이군요" 라면서 저자를 소위 여성적인 남성으로 오해했다(…). 물론 남성들도 저자의 커밍아웃 후에는[12][13] 이런저런 해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쩐지 이상하게 피부가 부드러워 보이더라", "이상하게 동안이더라" 같은 느낌은 받았었다고 말해 주긴 했다. 그러나 이런 생물학적 단서들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일단 '나는 남자다, 나는 남자다' 를 되뇌이며 그들과 함께하자, 이들은 여성적인 몸의 징후들에는 관심을 끄고, 저자가 보여주는 '남자다우려는 모습' 을 근거로 저자가 남성일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늘 남성들과 어울리기 직전에는 '내가 여자라는 걸 들키면 어쩌지? 땀이 흘러서 변장용 수염이 갑자기 떨어지면 어쩌지? 나를 칼로 찌르거나 하진 않을까? 이 집단에서 가장 위험해 보이는 사람은 누구지?' 같은 것으로 걱정하다가, 막상 남성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뒤에는 거꾸로 '이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남자라고 너무 철석같이 믿어주고 있어서 내가 죄책감이 느껴지잖아.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나중에 어떻게 사실대로 다 털어놓지?' 의 고민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저자가 커밍아웃을 한 이후의 반응을 정리하자면, 연애 상대였던 여성들은 자신이 실제로는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대체로 당혹해하고 불편해한 반면, 함께 우정을 나누었던 남성들은 처음에는 당황해했지만 이윽고 저자를 '여자사람 친구' 로 대해 주었다고 한다. 심지어 볼링 팀에서 친해진 노동자 중 한 명은 집필 후에도 계속 만나면서 술을 함께 마시게 되었다고... 이 사람 말에 따르면, 저자에게는 남성들만의 우애를 다지는 방식으로 음담패설 비슷한 농담까지도 편안히 던질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저자는 여성이기 때문에 동료 남성들에게는 차마 드러내지 못하던 속 깊은 이야기까지 털어놓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아무튼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남녀가 서로 만날 때 중요한 것은 몸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생물학적 결정론을 부정하고 사회적 결정론을 추종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생물학적 성별의 영향력을 인식하면서도, 사회적 규범과 역할의 힘이 그것과는 별개로 작동함을 잘 분리해 냈다고 할 수 있다.[14] 평생을 "여자애가 저렇게 사내아이 같아서야 원..." 같은 끌끌거림을 들으면서 살아왔던 저자로서는 놀랍게도, 남성들 사이에 끼어들자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타고난 여성성의 잠재의식"(p.28)이 드러났다. 비단 고운 피부 외에도, 사람들은 저자의 행동거지와 옷차림에서 어딘지 모르게 여성적인 낌새를 느꼈다. 단지 그것을 바탕으로 게이라고 오해했을 뿐.

특히 저자는 볼링 팀이나 수도원 생활 도중에 여러 차례 자신의 본능적인 여성성이 뛰쳐나오려는 것을 억눌러야 했다. 예컨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무뚝뚝하게 인사하는 것을 여성의 시각에서 '뭐야, 날 못마땅하게 보는 건가?' 라고 오해하기도 했으며, 상대방 남성이 개인적인 아픈 기억을 털어놓을 때 마치 어머니처럼 그를 가슴에 안고 울게 해 주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고,[15] 수도원에서 매력적인 신부를 보고 "귀엽다" 고 지나가듯 칭찬했다가(…) 좌중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든 적도 있었다고. 남성성 치유 모임에서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저자는 자해까지도 생각했지만, 이내 자해 그 자체가 여성이 선호하는 자기처벌적 행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자는 분명히 자신의 타고난 여성성을 억누르면서 남성의 생활을 익혀 가는 과정을 거쳤다. 따라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는 생물학적인 영향력이 분명 존재하되, 우리가 타인을 인식하고 함께 교류할 때에는 사회적인 성 역할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나누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3.4. 남장여자가 바라본 연애 권력

"나는 남자가 되어 여자들과 데이트를 하면서 여성의 권력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일시적이나마 여성혐오자로 변했다. 나는 여성을 남성의 각도에서 보았고, 한동안은 비이성적으로 여성들이 싫었다. 그들의 우월감, 비난하는 듯한 미소, 손끝으로 남자를 고르고 끌어당길 자격을 가진 점이 미웠다. 느긋하게 애쓰지 않고 남자를 괴롭혀서, 남자로서는 패배하든 성공하든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느끼도록 하는 게 못마땅했다. 비교하자면 전형적인 남성 권력은 뭉툭한 도구였다. 그런 도구로 일제 사격을 하고 전략을 세워도, 여성이 '싫어요' 란 한 마디로 입힐 수 있는 손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p.156

저자는 '네드' 로서 살아가는 동안 남성들이 어떻게 연애를 하는지 이해하고자 수많은 여성들에게 작업(…)을 걸었고, 그 경험의 결과를 4장에 모아 정리했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저자는 여성들이 휘두르는 연애 권력을 절감했으며, 기존에 저자가 배워서 알고 있던 그 수많은 '가부장적 남성 특권' 들은 아무리 긁어모아 봐도 그 권력 앞에 일거에 무력화되는 것을 느꼈다.[16] 처음에는 그런 여성들이 싫게 생각되었지만, 성찰 끝에 결국 여성들의 본질을 용서하고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때 페미니스트로서 인정할 수 없었던, "여성들은 내심 자신이 의지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전통적인 남성상을 원한다" 는 것을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저자는 수많은 데이트 시도를 통해서 온갖 남녀의 본질에 대한 속설들을 확증하거나 반증하는 사례들을 전부 만나보았다고 한다. 예컨대 저자는 "여성은 상대방의 경제력부터 본다" 는 속설에 해당되는 여성도 목격했고, "여성은 (상대방의 경제력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과 정서적인 몰입을 할 수 있는지를 본다" 는 정반대의 속설에 해당되는 여성도 목격했다고. 146페이지의 서술을 통해 보면, 남성과 여성은 유독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일반화가 어려울 정도로 각양각색이라는 것을 실감해야 했다. 그렇지만 대개의 여성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특징들도 있었다. 나무위키에 한하여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동성 간에는 "반증되기 전까지는 선한 사람" 이라면, 여성이 남성을 대할 때에는 유독 "반증되기 전까지는 악한 사람" 으로 대한다. 그 결과, 여성들은 낯선 남성이 다가와서 말을 걸거나 혹은 합석을 하자거나, 혹은 전화번호를 달라고 할 때 자신을 해치려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여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고 한다.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여성 서넛쯤 되는 테이블에 저자가 함께 앉아서 대화를 시도했을 때 대화가 툭툭 끊기고 분위기도 매우 어색했다고. 하지만 저자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 주자, 일단 상대방 여성들의 앉아 있는 자세부터 바뀌었다고 한다(…). 일순간에 분위기가 반전되어, 이 여성들이 먼저 꺅꺅 꺄르륵 웃어대면서 쉴새없이 대화를 이어갔다는 것. 결국 이 차이는 화술이 문제여서가 아니라, 여성들이 기본적으로 남성을 의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7] 여성들은 그래서 낯선 남성의 대쉬에 대해 곧잘 쌀쌀맞게 거절하곤 하지만, 그런 간단한 거절의 표시가 남성에게는 얼마나 큰 모멸감과 자괴감, 절망감, 수치심을 안겨주게 되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18] 저자는 페미니스트 여성으로서 평소 자신이 진실된 남성을 존중한다는 것에 근거하여 상대방에게 진실한 태도로 접근해 보았지만, 이것으로도 여성들의 경계심을 풀 수 없었다고 한다. 즉, 페미니스트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도 경계심을 못 풀었다는 것이다.
  • 남녀를 불문하고, 사회적 기술이 부족하고 불행한 사람들일수록, 첫 데이트 때 무례하게 행동하고 자신의 아픔과 괴로움만을 쏟아낸다. 첫 데이트 현장에서 유독 첫인상이 좋지 않거나, 상식에 비추어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30대 미혼 여성들을 저자는 "상처받은 여성" 이라고 지칭한다. 이런 여성들의 행동패턴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어울릴 만한 자격이 있는지를 심사하기 위해 매우 높은 허들을 두며, 이 때문에 첫 데이트 때부터 사회통념상 납득하기 어려운 온갖 '테스트' 를 한다.[19] 둘째, 이 사람들은 이전에 다른 남성에게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첫 데이트 때부터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온갖 비난을 늘어놓는다. 이처럼 여성이 상처를 안고 남성을 대할 때, 그 남성은 여성이 아니라 그 여성의 상처를 감당해야 하게 된다. 이 두 특성이 결합하면서 이들은 첫 데이트에서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괴팍한 사람으로 비치게 된다고.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은 자존감 낮은 남성들의 여성혐오와 비하와 멸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불행한 여성들 역시 남성에 대해 무작정 비난을 퍼붓는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 여성들은 남성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기대하고 바라며, 여성인 저자조차도 이들의 요구를 전부 만족시키려다 기진맥진해질 지경이었다. 여성들은 남성이 여성의 외모에 대해 바라고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남성의 성격에 대해 수많은 기준들과 높은 조건들을 바라고 있었다. 문제는, 이 기준이라는 것이 서로 양면적이고 모순되며 상반되는 것들이라는 점이었다. 페미니스트로서 저자 역시 일명 "성녀-창녀 이분법" 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적어도 남성들은 성녀와 창녀를 한 여성에게 동시에 요구하지는 않는 반면, 여성들은 일명 "전사-시인 이분법" 이라 불릴 만한 이중적인 모습을 상대방 남성이 모두 갖길 원했다. 자신의 남친만큼은 때로는 "듬직한 전사" 이면서 때로는 "다정한 시인"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여자들은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모든 면에서 여성을 동등하게 대하는 현대적인 남성상을 기대하면서, 동시에 여성을 숙녀 대접하고 앞장서서 처리하고 계산을 치르는 전통적인 남성상을 기대한다"(p.139). 풀어 말하자면, 여성들은 자신감 있으면서도 어딘가 약한 구석이 있고, 때로는 과묵하면서도 때로는 표현적이고, 한편으로는 자신을 좌지우지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조화로운 면모까지도 갖춘 남성을 선호한다(…).[20] 이 지점에서, 백인 남성 행세를 하던 저자는 그야말로 탈진해 버릴 정도로 힘겨웠다고 한다.

4장에서 저자가 회고하는 데이트 상대 여성들 중 두 명을 언급할 만하다. 첫 여성은 30대 중반의 전형적인 '상처받은 여성' 이었는데, 장기간의 깊은 내적 교류를 할 역량 자체가 없었던 안타까운 사람이었지만 저자가 남성으로서 평가 받는다는 목적에는 아주 잘 부합했기에 의도적으로 3주 동안 연애를 지속한 사례였다고 한다. 이 사람은 소위 "부적절한 남성" 을 걸러내기 위한 자기만의 수단으로, 첫 데이트 때 수북이 쌓인 사진들을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여기에 남성이 화를 내면 심사 탈락(?)인 셈. 여성인 저자가 보기에도 이 사람은 아주 교과서적으로 피곤한(…) 성격이었는데, 누가 봐도 뒤집어쓰면 안 되는 곤경을 뒤집어쓰기 위해 가시밭길로 부주의하게 뛰어들고는, 그로 인해 자신이 겪게 되는 괴로움에 대해서는 남성을 탓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여성은 동성애 혐오가 있었지만, 저자는 그녀와의 관계가 충분히 깊어지자 자신이 남장여자라는 커밍아웃을 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보았다. 사적인 자리에서 둘이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저자는 '네드' 가 아닌 '노라' 임을 정식으로 밝혔다. 상대방은 적잖이 놀라기는 했지만, 그 놀람의 이유는 "안 그래 보여서" 가 아니라 "어쩐지 이상해 보여서" 였다고 한다(…). 이미 주변의 자기 친구들에게는 "이번에 사귄 애인은 게이 같아" 라고 말하고 다녔었다고. 이후 이 여성과는 저자가 레즈비언 섹스까지 함께 해 봤는데, 동성애 혐오자치고는 놀랍도록 쉽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그녀는 소위 꽃미남 타입의 남성이 취향이었지만, 실제로 피부도 곱고 반반한 인상의 저자 '네드' 에 대해서는 남자다운 매력이 부족해서 아쉽다고 느꼈다는 점이다. 여기서 저자는 여성들이 아무리 꽃미남 선호를 보이더라도, 막상 이상형이나 배우자감으로는 가부장적인 것들을 포함하여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기준들을 추가로 끌어온다고 정리했다.

다음으로 언급할 만한 데이트 상대는 저자가 "최악" 이라고 평가했던 케이스였는데, 전형적이다 못해 아주 극단적일 정도의 SJW였다고 한다(…). 이 사람은 아이비 리그 출신의 대학원생이었는데, 매사 지적인 우위를 뽐내는 오만한 성격이었다고. 그 여성은 저자를 자신보다 노는 물(?)이 한참 떨어지는 순진한 백인 남성으로 삐딱하게 바라보았고, 저자가 자신과 같은 여성이며 한때 자신처럼 극렬 페미니스트로 활동했었고 지금은 뉴욕에서 칼럼을 쓰는 저널리스트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저자의 행동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분석하고 비평하느라 아주 정나미 떨어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특히 그녀가 여성인권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에 대해 저자가 듣고 있다가 "음... 흥미롭군요" 라고 한 마디 맞장구를 쳐 주면, "그걸 단지 '흥미롭다' 고만 생각하고 넘기는 남자들의 그 오만한 특권의식이 문제라는 거예요!" 라는 식으로 물고뜯기도 했었다고.[21] 대체 누가 누굴 가르치는 건지... 저자는 처음에는 그녀가 도대체 어디까지 남성적 서구문화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을 표출하는지 지켜볼 요량이었지만, 하도 들들 볶아대는 바람에 자기 프로젝트 사상 처음으로 그 자리에서 옷을 다 벗고 커밍아웃을 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진짜로 그러지는 않고 그냥 꾹 눌러 참았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인간과 인간이 동시에 서로에 대해 특별한 호감을 갖는다는 것이 말처럼 항상 쉬운 것은 아니므로, 연애라는 것도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흔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지점에서, 유독 남성들은 늘 평가받는 위치에 서고, 여성들은 남성들의 적격 심사를 하는 위치에 서는 권력의 불균형을 포착한다. 그리고 남성들이 이 평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 때문에, 여성이 퇴짜를 놓으면 자신의 남성성이,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듯한 우울감과 자괴감, 무력감을 느낀다는 것도 경험했다. 심지어 '남자 연기' 를 할 뿐인 저자조차도 첫 대쉬에서 칼같이 거절당하자 도저히 연애를 시작할 엄두 자체가 나지 않았다고 하니... 그러나 이런 경험은 이 땅에 남성으로 태어난 모든 이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일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주변에 수많은 여성들을 끌고 다니거나, 만날 때마다 늘 곁에 끼고 있는 여자친구의 얼굴이 바뀌는 남성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은 단지 다른 남성들보다 더 포기하지 않고 많은 여성들에게 구애를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과연 연애에 있어 얼마나 특권이 될 수 있을까?

3.5. 남성의 한계와 가능성

3.5.1. 남성들의 민낯

"이런 광경을 관찰하면서 혼자 서 있으려니 와락 겁이 났다. 온갖 환상을 지닌 여성으로서 남성들의 획일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광경에 맞닥뜨리니 절망감이 느껴졌다. 내가 이성애자가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보통 여자였다면 극복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중략)... 나는 그 장면을 보았고 모욕감을 느꼈다.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감정이 개입된 성욕을 가진 사람으로도 초라해진 기분이었다...

...몇 주에 걸쳐 정기적으로 클럽에 다닌 끝에 더 이상은 갈 수 없는 시점이 왔다. 너무 과하다 싶었다. 달리 갈 곳이 없는 비열한 손님의 고통, 절망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처받은 댄서들의 고통, 더럽게 팁을 받는 바텐더들의 고통이 잔뜩 쌓여 있었다. 모든 것이 와르르 쏟아져 내 주변에 쌓여 잿더미와 술 냄새를 풍겼다."
- p.95; 112

저자는 3장에서 남성들의 성욕의 밑바닥(…)을 체험해 보기 위해 스트립 클럽을 드나들었고, 이로부터 느낀 점들을 정리해 놓았다. 물론 저자는 이런 곳은 초짜였기에, 스트립 클럽에 익숙하다는 33세 전문직 남성이자 두 딸의 아버지인 동료를 구해다 가이드를 요청했다.[22] 저자 역시 남성이라면 누구나 내면에는 추잡한 욕망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런 곳에 드나드는 남성들이 대개 기혼남으로서 아내 한 명으로는 도저히 욕망을 충족할 수 없어서 아내 몰래 들어오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저자는 날것 그대로의 남성들의 욕망을 마주해야 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이런 클럽에 가면 우울해서 한 번 다녀오면 회복하는 데 며칠씩 걸렸다"(p.104)고.

흥미로운 것은,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에는 여성들이 흔히 상상할 법한 달콤한 유대감이나 친밀감, 안달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완전히 생략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곳에 모이는 남성들은 차라리 공중화장실에 모여드는 남성들과 같았고, 그저 욕구를 한 번 충족하고 가기 위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창가에 다녀오는 것을 저속하게 "코 좀 풀고 온다" 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저자가 목격한 남성들은 정말로 딱 그 정도였다. 클럽에서 목격하고 경험한 스트립 쇼, 나체 봉춤 댄스, 마사지 룸 등은 그야말로 정서적 교감이 완벽하게 소독되어 있었고, 어떤 전희나 후희도 없었다. 유희적이고 인간적인 상호작용이 전혀 없어서, 심지어 레즈비언인 저자가 클럽 무희에게 애무를 받고 있는데도 도저히 이입이 안 되어서 고생했을 정도였다고.

저자는 처음에는 이런 인위적인 형태의 대상화되고 기호화된 여성의 몸을 선호하는 취향에 대해 여성혐오라고 막연히 생각했었지만, 클럽에 드나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남성들은 직접적으로 죄의식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가능한 한 인형 같고 인위적으로 보이는, '자연미가 전혀 없는' 무희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보면 자신의 행동에 자괴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남성들은 자신의 짐승 같은 욕망을 드러내 보일 때 목격자가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상대방 여성이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말하자면 백주대낮에 자신의 가장 더러운 모습을 들키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격자로서의 '마음' 을 갖지 않은 인위적인 육체, 가짜 인간, 인형 같은 상대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23] 그렇다면, 이 남성들은 여성을 혐오하기 때문에 여성을 자꾸 비인간적인 물체로 격하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자신의 극단적이고 수치스러운 욕정을 해소할 수 있을 만큼 함부로 대하더라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비인간적인 "여자를 닮은 무언가" 를 선호함으로써 진짜 여성들은 존엄한 개인으로서 존중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24] 이것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들의 심리에 대한 저자의 추론이다.

이런 자괴감은 무희들로서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저자가 클럽에서 목격한 무희들은 말 그대로 신산하고 비참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그나마 거짓 웃음이나 애교 역시 진정한 행복이라고 보이진 않았다. 이들은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여러 신체 부위들을 쓰레기처럼 이야기하고, 질과 자궁은 지저분한 물건처럼 취급했으며, 남성을 찬양하고 여성을 경멸했다. 그들의 눈빛에서 삶의 만족이나 직업적 보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어찌나 무미건조하고 무감동한지 무희의 음부 마찰 서비스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맡지 못할 정도로 질이 건조했다고 한다. 이들은 여성으로서 남성들과 마음을 나누고 우애를 전하는 것이 아닌, 그저 줄 서서 기다리는 남성들의 육욕만을 채워주기 위한 오나홀로서 존재하는 동안 인간성이 파괴되어 갔다. 그리고 그런 여성을 탐하는 남성들 역시 똑같이 인간성이 파괴되어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이 비참한 쌍방혐오의 현장[25]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남성의 성욕은 갖고 다니기 무거운데, 내려놓을 곳은 상처받은 타인의 무릎밖에 없다고 할까. 그것도 고작 5분간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서로 괴롭히는 5분이 지나면 다시 기분이 더러워진다"(pp.112-113). 남성은 여성을 대상화해서 쟁취하고, 겁탈하고, 즐기고, 승리를 맛보고 있지 않았으며, 모두가 피해자였고 모두가 괴로움을 겪으며 모두가 손을 더럽히고 있었다.

그렇다면 양쪽 모두를 비참하게 만드는 '정신적 연결과 감정이 소독된 육욕' 이 없다면 어떨까? 저자는 이번에는 아예 정반대의 세계를 향했다. 육체적 욕망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남성들은 여성들에 대해서, 동료 남성들에 대해서 감정을 표현하고 유대감과 우애를 나누고자 할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저자가 향한 곳은 수도원이었다.[26] 그리고 수도원에서 깨달은 바는, 남성들은 욕정을 억누르는 와중에도, 아니, 욕정을 억누르기 위하여 다시금 감정표현을 억누르고 있었다. 남성들은 서로의 독립적 영역을 존중하고자 했으며, 저자가 부지불식간에 이 선을 넘는 순간 게이 취급을 하고 갑분싸(…)를 공공연히 조성했다. 오죽하면 "나이에 비해 멋지시군요", "저 사람의 배를 보고 있었습니다" 같은 말조차도 좌중을 매우 불편하게 했을 정도. 수도원에서 수사 간의 호감은 심지어 플라토닉한 수준에서도 허용되지 않았다.

남성들은 사회화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호감과 친애, 친밀감, 우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며, 감정은 분노를 제외한 모든 것을 말소당한다. 분노는 이 사회가 남성들에게 허용한 마지막 단 하나의 감정표현 방식이어서, 남성이 분노를 드러내어 여성들이 공포에 떤다고 하더라도 실상 이 남성의 분노에는 온갖 복합적인 미묘한 정서들이 미분화된 채 섞여서 발산되는 것에 가까웠다. 처음 저자의 추측처럼 성욕이 남성들을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남성이 남자다우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남성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초 집단에서는 서로가 이러한 규칙을 잘 지키자는 확인차 반동성애적인 (게이혐오적인) 농담이 수시로 오가게 되었다. 서로의 선을 넘는 것은 여성적인 것이고, 남성이 그런 여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곧 게이라는 것이니, 그런 짓은 하지 말자는 차원에서 호모포비아적인 발언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도원에서는 볼링 팀에서 느꼈던 것보다도 더욱 심하게 서로의 남성성을 평가하고 감시했다. 그 피해는 모두 신부들과 수사 본인들에게 되돌아갔다. 한 신부는 장엄서원을 한 뒤 50-60년 간 수도원에서 평생 함께 지낸 다른 동료들에게 '당신이 좋다' 는 간단한 말 한 마디조차 들어보지 못했다고...

3.5.2. 열려 있는 남성들

가장 저속한 남성과 가장 고결한 남성 모두가 이처럼 "감정 표현의 결핍" 이라는 똑같은 문제로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며 고생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여전히 남성들에게 희망을 품는다.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남성들은 변화에 마음을 열 수 있으며, 실제로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눈 가리고 귀 막은 채 빽빽거리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며, 저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마음을 열었다. 자신의 남성성에 대해 고민하고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남성들은, 거짓으로 그 자리에 함께하는 저자가 죄책감을 느낄 만큼 진솔하게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 보였다. 저자의 커밍아웃을 통해서 지금껏 자신들이 알고 있던 성별이라는 개념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남성들은, 평생 진보적인 관점에 헌신해 온 저자조차 놀랄 정도로 순식간에 진보적인 삶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특히 여기서 거론할 만한 놀라운 변화는 볼링 팀에서 일어났다. 저자가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볼링 팀의 남성 노동자들은 잠시간의 혼란을 거친 뒤 저자를 여자사람으로 받아주었는데, 이 이후로 이들의 젠더 관념과 남녀관은 놀랍도록 뒤바뀐 것으로 보였다. 저학력 저소득 백인 남성으로서 지금껏 수많은 성차별적 농담들을 가볍게 주고받으며 넘기던 이 사람들이, 그런 그들을 시혜적으로 내려다보던 저자를 부끄럽게 할 정도로 유연한 사고를 보여주게 되었다는 것.[27] 저자에 따르면, "나는 그들이 거칠게 나올 거라고 오해했는데 정작 심판한 자는 나였음을 알게 되었다"(p.72)고 한다. 사실 이런 저학력 저소득층의 주변화된 남성성(marginalized masculinity)이 구체적으로 표명하거나 정체화하지 않았다 뿐이지 의외로 젠더적인 평등을 쉽게 체화한다는 사실은 래윈 코넬(R.W.Connell)의 《남성성/들》 이라는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다. 이때 저자가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아래의 인용구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볼링 팀원들은 진보 정당회의에서 나올 법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여주는 지지가 고마웠고 그들을 과소평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들은 나를 끼워주었는데 나는 그들을 속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를 받아들였다. 나는 내내 우월감을 느끼면서 친절한 척 굴었고, 그들은 속물근성을 보이지 않고 나를 감싸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심 그들 위에 군림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나를 낮추어 그들의 애정을 받고 마음을 내주는 자신을 축하했다. 어리석게도 스스로 그들을 이해한다고 자축했다. 계급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가짜 지식인이라도 원시인과 손을 잡은 자신을 대견해한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런 면에서 그들이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 pp.74-75

하지만 사실 본서에서 과연 남성들이 얼마나 변혁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저자도 말미에서 아직 진정한 남성 운동은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너나할 것 없이 남성들은 감정적 표현의 결핍으로 인하여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이런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쓰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으므로, 점점 더 많은 남성들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받게 되는 무거운 짐을 거부하고 그들의 감정을 자연스레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여기에는 물론 남성들 본인들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이를 여성들이 괄시하지 않고 세심하게 배려하고 응원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제안한다.

4. 기타

해당 책은 2007년에 정식 출간되었고 현재는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 2017년즈음에 갑자기 이 책 내용이 루리웹, 디시인사이드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장 체험한 페미니스트 이야기로 요약되어 떠돌았는데,예시 책의 결론이 저자가 여성혐오자가 되었다는 식의 악의적 왜곡이 되어 있다. 여성혐오자가 되었다고 한 것은 여성들과의 힘든 연애 후 잠깐 동안 그랬다고 한 것이고, 책의 전체적인 결론은 남성들을 이해하고 남성 운동을 응원하겠다는 것이므로 이는 사실과 다르다. 참고로 캡처된 글은 위키백과의 해당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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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무위키 한정으로 생각하자면, 사실 이는 많은 남성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구권 남성들이 유독 그렇다지만, 국내에서도 남성들은 감정을 드러내거나 심금을 건드리는 것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뭇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소위 '감성팔이'가 되고, 남성 집단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목적으로 거리로 나서게 하기 위해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소위 '선동'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들이 냉정한 판단자, 합리적 행위자, '군중에 휩쓸리지 않는' 냉철한 이성으로 자처한 결과, 집단으로서의 남성은 정치적으로 무력화(탈정치화)되었으며 파편화되어 각자도생을 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정계에서 잊을 만하면 나오는 20대 남성 비하 발언이나, 당당위 집회의 확장성 부족과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겠다.[2] 주변 사람들은 저자를 보자마자 여성이 아니라 게이, 즉 여성처럼 생긴 남성이라고 여겼다고.[3] 이 쇼는 남성 출연자들과 여성 출연자들을 반대 성별로 꾸며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4] 이 가명은 저자의 둘째오빠 '테드' 가 지어준 별명인데, 원래는 저자의 여성으로서의 2차 성징이 늦는 것을 조롱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었다고 한다.[5] 저자는 처음에는 가슴을 누르기 위해 붕대로 꽉 조이는 방법을 택했지만, 너무 불편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단순한 방식, 즉 헐렁한 남성용 셔츠를 입는 것이었다. 이는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특히 동아시아의 여성들은 더욱 그렇겠지만) 소위 '탈코르셋' 을 하다가 놀라는 것인데, 별도의 특수한 방법을 쓰지 않더라도 그저 남성들처럼 옷을 입기만 하면 가슴과 엉덩이의 굴곡이 대부분 숨겨진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원래 여성들의 몸에서 "아찔한 S라인" 은 눈에 띄는 요소가 아니며 얼마든지 가려질 수 있는 것인데, 여성용 의류의 디자인이 그 S라인을 강조하고 도드라지게 만들어 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6] 저자가 1장에서 동원한 표현들을 모아 보면 다음과 같다: "즐겁지 않았고, 성취감이 전혀 없었고, 불편했고, 쓸쓸했고, 나를 발견할 수 없었고, 나의 본질과 다르게 느껴졌고, 자연스럽지 않았고,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었고, (타인을 속이는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7] 저자는 자신의 본질과 괴리된 사회적 성 역할을 감당하면서 신경쇠약 내지는 정신적 파탄이라고 표현할 만한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으며, 따라서 본서는 트랜스젠더 이슈에도 일정 부분 통찰을 제공한다. 게다가 트랜스젠더가 단순히 옷차림만 바꾸고 상대편의 성 역할만 따르는 존재가 아님도 암시한다. 그러나 저자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을 본서에서 드러내지 않았다.[8] 물론 수직적인 우리나라의 조직문화에서 완벽히 똑같을 거라고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저자가 술회한 내용을 대화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자 네드, 어째서 우리 회사에 지원하시게 된 건가요?" / "한 영역에서 꼭대기에 올라갔으니, 이제 다음으로 정복할 대상을 바꾸고자 합니다." / "좋습니다. 그럼 자기 자신을 세 단어로 정리할 수 있나요?" / "자신감. 경쟁력. 야망." / "아주 좋아요! 우리 회사에서 무엇을 추구하실 생각이시죠?" / "도전이지요."[9] 저자가 자신의 실적을 높인 비결이 바로 이것이었다. 대놓고 "물건 좀 팔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여성에게 다가가서 "오늘 같이 잘래요?" 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았다. 미리부터 움츠러들어서 애걸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아니었다. 남성 판촉사원은 (마치 저자가 면접 때 그랬듯이) 으레 거만하고 여유로워야 했고, 소비자들도 그런 판촉사원에게 마음을 더 잘 열었다. 판촉사원이 소비자에게 주도권을 잡고 상황을 통제하는 느낌을 준다면, 소비자는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 통찰이 영업을 뛰는 일부 위키러들에게도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지만.[10] 실제로 자신이 시험에서 1등을 하는 등 혼자 잘 나가는 상황에 처할 때 여성들은 자부심이 아니라 도리어 불안을 느끼고, 또래들로부터 보복을 당할 거라고 우려하는 경향은 70년대의 여러 학술논문에서 보고되었던 바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캐롤 길리건(C.Gilligan)의 저서 《다른 목소리로》 에서도 다루고 있다.[11] 실제로는 아무도 적대적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저자는 남성주의 수련회에 참석하기 전에 먼저 절친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행적과 소재, 그리고 해당 모임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이메일로 쭉 뿌렸다고 한다. 그래야 저자가 숲 속 어딘가에서 칼침(…)을 맞더라도 경찰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수사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나.[12] 본서에서 저자가 제대로 커밍아웃을 한 것은 볼링 팀이나 몇몇 연애 상황 뿐이었다. 수도원이나 남성성 치료 모임과 같은 금녀의 구역에서는 오히려 그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보다 직접적으로는 신변상의 위협을 우려하여) 굳이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고, 직장에서는 저자가 커밍아웃을 하든 하지 않든 그런 것에는 신경쓸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커밍아웃 없이 퇴사했다.[13] 남성성 치료 모임의 리더와는 이후 ABC방송의 도서 소개 영상 말미에서 다시 만났다. '네드' 가 유독 말수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처음 온 사람이라 그렇겠지" 라며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며, 저자의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혁명적인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노라' 로서 다시 만난 저자와도 훈훈한 분위기에서 회포를 풀게 된 모양. 방송 앞쪽에는 볼링 팀과의 인터뷰도 나온다.[14] 사실, 본서의 저술방식 자체가 남성들의 펜에서는 쉽게 나오기 힘든 섬세한 카메라와 같은 서술에 가깝다. 예컨대, 3장에서는 스트립 클럽 남성 손님들의 입장에는 막연한 추론에 그치는 반면, 무희들의 입장에는 감정을 더 잘 이입하여 서술하는 걸 볼 수 있다.[15] 저자 역시 머리로는 남성 간에는 그저 진지하게 들어주고 공감해 주면 충분하고, 그 이상은 서로의 자존심을 해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느낌, 즉 심정만큼은 상대방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는 쪽으로 이끌렸다는 것이다.[16] 위에서 남성이 업무 현장에서 남성성을 연결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듯, 남성은 똑같이 연애에 있어서도 실패를 겪으면 남성으로서의 무력감과 우울증에 빠지곤 한다.[17] 저자에 따르면, 이렇게 남성을 의심하는 여성들은 "새로 만나는 남자마다 늑대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그래서 만나는 남자마다 늑대로 만들었다"(p.135). 결과적으로 남성들은 그 여성에게 질려 떠나가고, 그들의 확증은 더욱 강화되는 것. 물론 저자는 일부 남성들이 위험한 범죄적 목적을 갖고 접근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123페이지에서 인식하지만, 그들로 인해 남성 일반에 대해서 잔뜩 경계부터 하고 의심하는 것에 대해 긍정하지는 않는다.[18] 저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런 쌀쌀한 거절은 어쩌면 남성들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만일 여성이 미소와 함께 정중한 태도로 거절한다면 이를 남성 쪽에서 "잘하면 넘어올 수 있겠다" 는 잘못된 의미로 받아들일 위험이 있어서, 이를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딱 잘라 거절하는 것일 수 있는 것. 한때는, 제발 좀 꺼지라며 짜증내는 여성의 집 앞에서 장미꽃 한 송이 들고 며칠 동안 오들오들 떨면서 구애를 했더니 마침내 여성이 마음을 열어주더라... 하는 이야기가 낭만주의적으로 포장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이런 집착은 여성의 행복을 해칠뿐더러 남성 본인도 더 가능성 높은 다른 여성에게 투자할 기회를 잃는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에게 좋지 않다.[19] 남성을 불신하는 적잖은 여성들이 "이 남자가 과연 내 수준에 걸맞은 남자인가" 를 판단하기 위한 자기 나름의 '테스트' 를 갖고 있으며, 이를 동료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당장 20대 여성들끼리 모여서 하는 잡담들 중의 상당수가 그런 종류라는 것은 이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Firestone) 같은 다른 사람들도 언급한 바 있다.[20] 색정증 환자나 치녀가 남성향 창작물 밖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듯이, 이런 남성들도 여성향 창작물 밖에서는 사실상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환상은 환상일 뿐이다. 저자는 그나마 이와 유사해 보이는 남성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그 남성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연기, 허세, 가장일 뿐이라고 한다.[21] 영어권에서는 이 정도면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수준의 추임새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심지어 진짜배기 여성이 취하는 태도조차도 일단 작정하고 트집잡기 시작하면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22] 참고로 이 남성은 자기가 만12살 때 아버지에게서 "여자를 대할 때는 4F만 기억하면 된다. 찾아서(Find), 느끼고(Feel), 박고(Fuck), 잊어버리는 거야(Forget)" 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그것이 자신이 남성으로서 여성을 대하는 것에 대한 유일한 조언이었다고.[23] 이 지점에서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남성들은 성매매 여성보다 일관되게 섹스돌을 더 선호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남성들은 그렇게 마냥 사물과도 같은 여성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정력을 칭찬해 주고, 자신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자신과의 섹스를 무조건 기뻐하고, 무조건 웃어주고, 자신의 테크닉으로 극상의 쾌락에 도달하는 여성을 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철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 논의한 바 있다.[24] 저자의 언급을 바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 "...순전한 성교와 육욕의 해방이라고 볼 때 (남자의 성욕은 기본적으로 그렇다) 그 자리에 목격자가 있는 걸 원치 않는다. 진정으로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과 더럽고 무분별한 동물이 되고 싶지 않다. 환한 대낮에 상대 여성이 그의 일부를 보는 게 창피할 것이다. 마음이란 '환한 대낮' 같은 게 아닐까? 진짜 여성은 '마음' 이고 마음은 목격자이다. 남자들은 수치스러운 순간에 목격자가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가짜이고 마음이 없는 상대와의 성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가짜일수록 더 나을 수밖에 없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성애 남자들이 여성혐오증의 반대였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상대를 진짜 여자와 최대한 닮은 '사물' 정도로 보고 대할 것 같았다. 그래야만 본능을 충족시킬 만큼 상대를 함부로 대하고도 견딜 수 있을 테니까"(pp.99-100).[25] 흥미롭게도 우에노 치즈코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에서 일본의 성매매에 대해 분석한 내용 역시 이와 거의 동일하다. 치즈코와 저자 모두, 성매매 현장에서는 여성에게도 똑같이 성적 권력이 주어진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26] 저자는 냉담자이지만 가톨릭 전통에 익숙하기 때문에 적응이 쉬웠다고 한다. 비슷한 환경으로 저자가 떠올렸던 곳은 군대교도소였지만, 둘 다 비현실적인 방안이라 곧바로 포기(…).[27] 본서에서 언급한 두 가지를 소개하자면, 한 팀원은 저자의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었는데 그 딸이 "게이들이 보통 그렇지" 라고 반응했고, 그때만큼은 그 단순하고 억척스럽던 아버지가 딸을 제지하고는 그런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다른 사례로, 저자와 절친해진 어떤 팀원은 다른 사람이 "난 게이는 괜찮지만, 그냥 어두운 데서 조용히 살 것이지 자꾸 나와서 시끄럽게 하는 건 보기 싫다" 고 말하자, "세상에 '게이는 괜찮지만' 따위는 없다, 게이가 괜찮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라면서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