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12:56:06

귀산



삼국사기(三國史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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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나마
귀산 | 貴山
<colbgcolor=#191970> 관등 나마(奈麻)(추증)
직위 소감(小監)
이름 귀산(貴山)
아버지 무은(武殷)
출생지 서라벌 사량부
생몰연도 ?~602년


1. 개요2. 생애3. 여담4.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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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신라아막성 전투에 참전한 장수.

2. 생애

서라벌의 사량부 출신에서 아찬 무은(武殷)의 아들로 태어났다. 귀산은 어릴 적부터 같은 부의 사람 추항(箒項)과 벗이 되었는데, 두 사람은 서로 말했다.
我等期與士君子遊 而不先正心修身 則恐不免於招辱 盍聞道於賢者之側乎
“우리가 선비나 군자와 함께 교유하기를 기대하면서도,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지 않는다면 욕됨을 면치 못할까 두려우니, 어찌 어진 사람 곁에서 도를 배우지 않겠는가?”
당시 원광법사수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뒤 가실사(加悉寺)에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높은 예우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귀산 등이 그 문하에 이르러 옷자락을 여미고 나아가 말하였다.
俗士顓蒙 無所知識 願賜一言 以爲終身之誡
"속세의 선비가 어리석고 몽매하여 아는 것이 없사오니, 한 말씀 해주시어 종신토록 계율로 삼게 해 주소서."
원광이 말했다.
佛戒有菩薩戒 其別有十 若等爲人臣子 恐不能堪 今有世俗五戒 一曰事君以忠 二曰事親以孝 三曰交友以信 四曰臨戰無退 五曰殺生有擇 若等 行之無忽
“불가의 계율에 보살계(菩薩戒)가 있어 그것이 열 가지로 구별되어 있으나, 그대들이 남의 신하로서는 아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세속오계가 있으니, 첫째 임금을 섬기는 데는 충성으로 하고, 둘째 부모를 모시는 데는 효성으로써 하고, 셋째 벗과 사귀는데 신의로써 하고, 넷째 전쟁에 임하여서는 물러서지 않으며, 다섯째 살아있는 것을 죽일 때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니, 그대들은 이를 실행함에 소홀함이 없게 하라!”
귀산 등이 말했다.
他則旣受命矣 所謂殺生有擇 獨未曉也
“다른 것은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만, 이른바 ‘살아있는 것을 죽일 때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만은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원광이 대답했다.
六齋日春夏月不殺 是擇時也 不殺使畜 謂馬牛雞犬 不殺細物 謂肉不足一臠 是擇物也 如此 唯其所用 不求多殺 此可謂世俗之善戒也
“육재일(六齋日)과 봄, 여름에는 살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는 시기를 택함이다. 부리는 가축은 죽이지 않는 것이니 말ㆍ소ㆍ닭ㆍ개를 이르는 것이며, 작은 생물은 죽이지 않는 것이니 고기 한 점도 되지 못하는 것을 이르는 것으로, 이는 대상을 택함이다. 이와 같이 오직 필요한 경우에만 하고 그 이상으로 많이 죽이지 말 것이니, 이는 세속의 좋은 계율이라고 할 만하다.”
귀산 등이 말했다.
自今已後 奉以周旋 不敢失墜
“지금 이후로는 이 가르침을 받들어 두루 실행하고, 감히 어기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602년 8월에 백제좌평 해수무왕의 명을 받들어 4만의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와서 아막성을 포위했고, 진평왕은 장군 파진간 건품(乾品), 무리굴(武梨屈), 이리벌(伊梨伐)과 급간 무은(武殷), 비리야(比梨耶) 등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막게 하였다. 귀산과 추항도 함께 소감(少監) 직으로 전선에 나갔다.

좌평 해수의 백제군이 패하여 천산(泉山)의 못으로 물러나 병사를 숨겨두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라군이 천산으로 도망간 백제군을 추격을 하다 너무 깊숙히 들어갔다고 판단해 되돌아 가던 중 무은의 군대가 복병의 기습을 당했고 복병이 갈고리로 무은을 잡아당겨 낙마시켰다. 누군가가 어서 후퇴하자는 말을 하자 귀산이 큰 소리로 말했다.
吾嘗聞之師曰 士當軍無退 豈敢奔北乎
“내 일찍이 스승에게 듣기를 ‘무사는 적군을 만나 물러섬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어찌 감히 달아나겠는가?”

그는 혼자서 적군 수십 명을 쳐 죽이고 자기 말에 아버지를 태워 탈출하게 한 다음, 추항과 함께 창을 휘두르며 힘껏 싸웠다. 신라군이 이를 보고 사기가 올라 세차게 공격하니, 백제군의 시체가 들판을 메우고 말 한 필, 수레 한 대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귀산과 추항은 온 몸에 창칼의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도중에 죽었다.

진평왕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아나(阿那)의 들에서 그들을 맞이해 그들의 시체 앞으로 나아가 통곡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 지냈으며, 귀산에게는 나마를, 추항에게는 대사를 추증하였다.

3. 여담

  • 마산에 존재하는 지명인 귀산동때문에 검색을 해도 아래창으로 계속 내려야지 발견할 수 있다.

4.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