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마추어 시절
성동초등학교, 휘문중학교 시절 지석훈, 서동욱과 같이 뛰었으며 지석훈은 휘문고, 서동욱은 경기고, 나주환은 서울이 아닌 지방의 천안시의 북일고를 택했다.고1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많은 경기에 출전하였고 고3이던 2002년 동기인 안영명, 남상준, 양승학[1], 1년 후배인 김창훈, 2년 후배인 김회권, 홍성용과 함께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우승[2], 황금사자기 우승[3], 화랑대기 우승[4], 봉황대기 우승[5], 전국체전 금메달을 이끈다.
졸업 후 두산 베어스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입단동기가 SK의 철벽불펜 중 한 명이었던 전병두(부산고)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두산이 아닌 SK의 주력 선수로 자리잡았다.
고교 당시 고교 4대 유격수[6]를 꼽을 때 빠지지 않던 유망주 출신이었지만, 지명 당시 상당한 슬럼프 속에 있어 예상보다 낮은 순위에 지명되었다. 어쩌면 전국체전에서의 감자 사건도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7]
2. 두산 베어스 시절
두산 베어스 등번호 9번 | ||||
유필선 (2001) | → | 나주환 (2003~2007.4.28.) | → | 이대수 (2007.4.29.~2009) |
데뷔 시즌인 2003년부터 1군과 2군을 오가며 이름을 알렸고 2005년부터 1군 상위 백업으로 자리하며 존재를 알렸다. 특히 주전 3루수 김동주의 잔부상이 부쩍 늘면서 이를 커버하기 위한 선수로 제법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김동주가 시즌 아웃에 준하는 중상을 입은 2006년에는 사실상 주전 3루수 역할을 하며 빈자리를 메웠다.
3. SK 와이번스 시절
SK 와이번스 등번호 3번 | ||||
이대수 (2005~2007.4.28.) | → | <colbgcolor=#ff6600> 나주환 (2007.4.29.~2010) | → | 모창민 (2012) |
모창민 (2012) | → | 나주환 (2013~2019) | → | 김주한 (2020) |
3.1. 2007~2009 시즌
그러나 이듬해인 2007년 4월 이대수를 상대로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었다.[8]2007년 유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정근우의 백업으로 기용되었다. 시즌이 점차 지나면서 부진한 정경배의 2루 자리에 정근우가 이동하고 나주환이 선발 유격수로 뛰는 빈도가 높아졌고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주전 유격수의 가능성을 보였다.
2008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게 되고, 2009년에는 각성. 2할 8푼 8리의 타율에 15홈런, 60타점, 21도루를 성공하면서 강정호, 손시헌과 골든글러브 후보에 오른다.
2009년 전 소속팀인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크게 뒤진 두산 베어스의 투수 금민철이 고교 선배인 정상호에게 위협구를 던지고, 나주환의 고교 선배인 지승민이 자신에게 공을 맞추는 등 경기 상황이 험악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출루 후 홈으로 쇄도하는 과정에서 두산 포수 용덕한에게 거친 슬라이딩을 하게 되면서 가루가 될 정도로 까였다.[9] 희한하게도 이전의 과정은 싹 묻히고 나주환의 슬라이딩만 기억에 남으면서 그날 이후 그의 미니홈피가 쉴새없이 맹폭을 당했고, 한국시리즈 타석에 들어섰을 때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KIA 팬들까지 야유를 보내기까지 했다.
역시 부담이 있었는지, 아니면 KIA의 투수들이 좋았는지 한국시리즈에선 해결해야할 찬스에서 찬스를 계속 날려먹질 않나. 수비에서는 당연히 잡아줘야 할 땅볼도 에러로 진루시켜 팬들에게 대차게 까였다. 아무래도 플레이오프 최종전에서 심리적인 타격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상당히 한 성질한다고 한다. 천안북일고 4번 타자 시절부터 꽤나 유명한 군기반장이었다고...팬들은 나주환이 중고참이 될때면 SK 야수진들은 다죽었다고 복창해야 할판이라고 한다.
팀 내에서 정근우, 박재상, 박정권 등과 함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듯했다. 얼굴만큼 깝죽거리는 성격도 있는듯...자신이 호수비를 했을 때나 덕아웃에서 나이스플레이를 목격하면 깨알같은 웃음을 작렬하면서 분위기를 올려놓는다.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아예 '놀부웃음'이라고 부르면서 별명도 새로 '놀부'로 붙이고는 '저자식 FA돼서 딴팀에서 저렇게 웃는 꼴은 절대 못 봐준다'면서 프런트에게 꼭 잡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뭐 그것과는 별개로 공수겸장의 유격수 FA를 놓치는 프런트라면 이미 정신이 나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수시로 치는 개드립도 팀 내에선 박정권과 함께 양대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다. 불타는 그라운드 시즌 1의 26화에서 튀어나온 FA드립만 봐도 알 수 있다.[10] 아들을 이용하여 10년에 걸친 장기 대투자 계획을 밝혀[11] 훈훈한 부성애를 자랑하고 있다.
3.2. 2010 시즌
2010년 5월 11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사이클링 히트 달성에 안타 하나가 부족했다. 본인도 아쉬웠는지 마지막 타석에서 볼넷으로 나가면서 지은 표정은 제대로 오묘했다.2010 시즌 초반 연일 맹타를 휘둘르며 팬들의 기대를 모았으며 커리어 하이와 유격수 골든글러브, 광저우 국대 입성을 동시 달성하는 겹경사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나 갑작스런 어깨 통증을 호소하면서 7월 4일에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그동안 유격수는 타율 1할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인 최윤석과 3:4 트레이드로 LG에서 데려온 권용관이 대신하였다. 이 시기에 박정권마저 올스타전을 앞두고 발목에 실금이 가면서 이탈해 타선에 구멍이 뚫리면서 SK 팀 상황 또한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8월 3일 부로 박정권과 동반 1군 등록하면서 컴백했으나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강정호가 초반보다 에러를 줄이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나주환으로서는 한 달 동안의 공백이 치명적으로 작용, 결국 광저우행 최종 명단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결국 2010 시즌 후 2년 동안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를 하게 될 듯하다. 자기 몸관리도 결국 실력의 일부라고는 하지만 부상 없이 선수 생활 끝마치는 선수가 어딨는가. 그저 시기가 안따라줬을뿐.
2010 시즌 성적은 타율 0.269 출루율 0.332 장타율 0.393, 7홈런 42타점 14도루에 유격수 최소 실책(13개), 병살타 3개의 기록으로 2009 시즌보다 성적이 하락했다. 시즌 막판 부진하며 기록을 많이 까먹은게 아쉽다. 그래도 괜찮은 컨택과 적당한 장타력, 준족으로 고르게 성적을 냈고 유격수의 본분인 수비도 훌륭했지만, 시즌 막판 부상크리로 국대승선이 물 건너갔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5타수 3안타 1볼넷 1득점, 타율&장타율 .200, 출루율 .25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3.3. 군복무
경찰청 합격 통보까지 받았지만, 입대를 프런트 단독으로 결정한 듯했다. 김성근 감독은 사후 보고를 받은 후 상의없이 일처리 했다고 꽤나 노했다는 후문이다.[12] 하지만, 어차피 곧 있으면 나이가 차니까 해외 출국 허가(스프링캠프 출국)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육군훈련소 입소 직전에 고관절 부상이 악화되어 결국 사회복무요원으로 전환, 병역을 해결하기로 했다.2011년~2012년 SK의 유격수 공백이 커 와이번스 갤러리에서 재평가가 일어나기도 했다. 2010 시즌 후 고향 팀으로 이적한 박진만은 늙어 가고 있고, 최윤석과 김성현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상황이라 가교 역할을 할 유격수가 없었으니...
그런데 뜬금없이 복무지가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으로 알려졌다.
3.4. 2013 시즌
2013년 2월 14일에 소집 해제되었고, 2월 18일 SK 2차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오키나와로 출국했다. 기존 유격수 후보인 박진만, 김성현, 최윤석과 경쟁하게 될 전망. 하지만 본인은 성급하지 않고 천천히 몸을 만들어 올라오겠다는 각오.이후 시즌 중 1군 합류에 성공했지만 1군 복귀전에 출장하자마자 햄스트링 부상으로 김성현으로 교체된 후, 2군에 내려갔다 올라왔다. 가끔씩 출전하고 있지만, 타격 능력이 완전히 상실된 듯 타율이 0.059에 그치고 있다. 2군에서도 타격이 2할대에 못미치는 극도의 부진에 빠져 있다.
9월 17일 LG 트윈스전에서는 유격수로 출장하였는데, 박재상과 더불어 실책성 플레이를 함으로써[13] 팀의 패배에 일조하였다. 이러한 영 좋지 않은 모습 때문에 이날 경기 후 박진만같은 선수는 왜 안 쓰고 저딴 듣보를 쓰냐며 이만수를 까는 뉴비들도 있었다.
9월 20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박진만의 유격수 대수비로 출장했는데, 10회말 2사 1,3루 상황에서 이재영이 이대수를 유격수 땅볼로 잘 유도했는데, 1루수 키를 훌쩍 넘어가는 끝내기 수비실책으로 경기를 내줬다. 어디로 보나 쉽게 처리할 수 있는 타구를 실책을 내줬고, 결국 SK가 한화 이글스에게 시즌 첫 끝내기 승리를 조공하게되었다. 한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쉬운 플레이를 처리하지 못하는등 유격수 수비가 안정되지 못한데다 타격도 타격대로 23타수 2안타라는 8푼이의 타격을 보여주며 공수 양면에서 어이없는 플레이가 계속되고 있다. 군대 가기 이전의 안정된 수비는 어디로 가고 부정확한 송구에 유격수 플레이 자체를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도원아재들의 후예들은 나주환이 쏘아올린 작은 공, 일명 나쏘공 사건이라며 나주환을 대차게 조롱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상무에 입단하여 계속 야구를 했던 모창민과 이재원과 달리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쳐 운동 능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을(2013년의 김태완도 그랬다) 나주환을 2군에서 급하게 올린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냐는 말이 종종 나왔다. 실제로 루키군 김원형 코치는 나주환의 콜업 직전에 아직 몸이 다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몸이 다 만들어지면 직접 올려 보내겠다는 말을 했다.
결국 1군과 2군을 오가며 타율 8푼 7리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만수 감독의 지시로 2013 시즌 종료 직전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린 교육 리그에 참가하는 굴욕을 맛보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그것도 후발대로....[14]
야구 시즌이 진행 중이어서 미뤘던 결혼식을 12월에 했다. 한 살 연하인 아내 사이에선 이미 4월에 딸 채빈 양을 본 상태.
3.5. 2014 시즌
교육리그에서 돌아온 나주환은 2013 시즌 후 FA를 선언한 2루수 정근우가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자, 본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 자리를 김성현에게 넘기고 2루수로 전향했다. 타격감이 살아난 건 덤. 팬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활약을 보였다. 유격수를 맡은 박진만이나 김성현과의 키스톤 연계도 준수해 울프같은 땅볼 유도형 투수들에게도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며 정근우의 공백을 충분히 메워 줄 것으로 기대받았다.4월 1일 경기에서 3안타 5타점을 기록하는 등 최정-스캇-박정권을 잇는 하위타선의 공격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기세라면 병역이행 전에 보여 준 모습은 충분히 다시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4월 29일 한승혁의 공에 손등을 맞았다. 하지만 카메라상으로 봤을 때 배트에 맞고 손등에 맞은것 처럼 보여 연기한거 아니냐며 까였다. 결국 다음날 본인이 기자들을 찾아가 진짜로 맞은 거였고 통증까지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결국 이 부상 때문에 4월 30일 경기에서는 선발출장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진짜로 맞았는데 연기한 거냐며 손가락질까지 받았으니 해당 기자를 직접 찾아갈 만큼 정말정말 억울했던 듯. 나주환마저 제외되면서 당분간 2루수는 신현철이 맡게 될.. 줄 알았으나 다음날인 1일에 2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그리고..
시작은 좋긴 했지만 이후 타격부진에 빠지면서 4월 한달동안 1할 8푼 7리라는 극악의 타격을 보였다. 이후 5월에 약간씩 살아나는 중.
2014년 7월 2일 3회초에 친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면서 시즌 2호 홈런을 기록하나 했으나 비로 인해 게임이 없던 일이 되면서 홈런 역시 날아갔다.
8월 15일에는 연타석 홈런[15]을 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후반기 버닝으로 타율도 2할 8푼대로 많이 끌어올린 모습. 팬들 사이에서 나주환을 FA 때 잡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평가가 지배적이었는데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의 대활약으로 평가를 뒤집고 있다.
2009년 자신의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넘어섰다.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임을 감안하면 잘 한 성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발이 빠르다는 점, 2루수로 전향하여 정근우의 공백을 나름 잘 메워 줬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만했다.
3.5.1. FA
원소속구단 협상 마지막 날인 2014년 11월 26일, SK와 재계약 우선 협상은 결렬되었다는 보도가 올라왔다. 최정과 김강민의 계약이 최우선이었던 구단 입장에서 박계현을 비롯한 대체 요원이 충분히 있는 2루수 자리에서 나온 FA를 굳이 오버페이하면서까지 붙잡을 필요성은 적었던 만큼 나주환과의 결별은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그러나 타 구단 협상기간 마지막 날인 12월 3일까지 이적할 팀을 찾지 못하며 헐값에 유턴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유력한 후보였던 KT는 박경수와 박기혁을 영입하며 갈 가능성이 사라졌고, 대부분의 팀이 주전 2루수들이 확보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주전 키스톤 두 명이 모두 군입대한 KIA 타이거즈를 제외하면 딱히 갈 곳이 없어진 상황인데, 이쪽 김기태 감독은 외부 영입은 없을 것이라 못을 박았다.
본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내야수 외국인 선수를 구하려던 SK에서 외야수 제이슨 프라이디와의 계약이 임박했다는 후속 보도가 나오면서 복귀하면 최소 주전 경쟁은 해볼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약물 복용 전력으로 이 계약이 백지화되었다... SK 프런트는 이렇게 된 김에 내야수 포지션의 외국인 선수를 다시 알아보기로 하면서 상황은 나주환에게 극도로 불리하다. 2루수 외국인 선수 영입이 현실화되면 유턴으로 인한 헐값 계약+주전 박탈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를 마주하게 된다.
뒤늦게 나주환과 구단이 우선 협상 기간 교환했던 서로의 제시 금액들이 밝혀졌는데, 구단은 초반에 10억 후반대의 금액을 제시했고 마지막에 20억 초까지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나주환은 그보다 최소 10억 아니면 최대 50억은 더 받고 싶어 했다고.
이에 구단에서는 단장 회의때 사인 앤 트레이드를 타구단에 문의 해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결국 헐값 계약 아니면 선수 생활 지속도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였다.
국립자유계약고등학교 솩실고라는 나주환의 현 FA 상황을 간단히 요악한 만화가 SK 와이번스 갤러리에 올라왔다. 제목에서 보이듯이 국립자유경제고등학교 세실고를 패러디하였다. 이륙이 SK 구단 역, 서다미가 나주환 얼빠 역이다.
게다가 구단이 첫 제시한 액수보다 80%이상 감액된 금액을 제시하였다고 하는데 사실이라면 연봉 동결수준.
결국 1년 옵션 계약을 더 얹어서 1+1 총액 5억 5,000만 원의 조건으로 SK와 재계약하였다. 선수 본인으로선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10억이 날아간 셈. 물론 자신의 가치를 너무 과대평가한 나머지 구단과 팬을 등지고 당당하게 나갔다 들어온 것이라 동정 여론은 적지만, 그와는 별개로 KBO FA 제도에 손을 봐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 사례로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16]
시간이 꽤나 지난 2024년에 언론을 통해 사건의 전말이 공개됐는데 당시 나주환은 비수도권 팀과 총액 30억원 가량의 FA 계약을 구두로 약속받았다고 한다. SK에서 제시한 제시액에 눈에 찰 리 없었고 배짱 행보에 나섰으나 해당 팀 감독이 갑자기 경질되면서 계약이 없던 일이 되었다.[17] 결국 나주환은 1+1년 5억 5000만원이라는 헐값에 계약하게 된 것이다.
3.6. 2015 시즌
4월 중순까지 박계현과 번갈아 선발 출장하였으나 타율 .167 0홈런 2타점 3득점으로 부진했다. 결국 최정민이 대신 1군에 올라오면서 2군행.5월 14일 두산전을 앞두고 다시 1군에 콜업되어, 경기 도중 실책을 범한 김성현과 교체되어 유격수로 출전,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특히 1타점은 7대0으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역전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이 된 첫 득점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
박진만과 함께 대타 및 내야 백업요원으로 활약하다가, 최정이 엔트리에서 말소된 이후에는 꾸준히 주전으로 나오고 있다. 더불어 본인의 타격감도 점점 올라오는 상태.
6월 6일 LG전에서는 4타점을 올리며 팀의 8대5 승리에 크게 공헌했다. 특히 9회초 5대5 상황에서 봉중근을 상대로 끈질기게 10구까지 끌고가며 쓰리런을 친 장면은 이날의 백미.
드디어 9월 29일 kt전에서 4타수 4안타(2루타 2개, 홈런 1개 포함) 1홈런으로 맹 활약하며 SK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날 마지막 타석 전까지 사이클링히트에 3루타 하나만 남겨놓고 있었는데 우측 담장을 때린 장타성 타구에 3루에서 아웃되면서 생애 두 번째 사이클링히트 기회를 날려먹었다.
10월 3일 NC와의 정규 시즌 최종전, 8회 말 3:3상황에서 솔로포를 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 날 지면 기아가 올라갈 가능성이 컸기에 굉장히 값졌던 한 방. 이후 KIA가[18] 두산에 연패를 당하며 SK가 5위를 지켜 와일드카드전에 진출 성공.
3.7. 2016 시즌
야덕일지의 SK 와이번스 전력분석 편에서 잠깐 2루수로 올라왔으나 몇 시간 뒤 김성현으로 교체되었다.정규 시즌이 시작했으나 4월 10일까지도 출장기록이 전혀 없다.
선수 등록은 되어있으나 1군 2군 모두 출장 기록이 전혀 없고 근황기사도 전혀 올라오지 않는중. 4월 13일 자로 독립 야구단인 연천 미라클과 3군에서 경기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4월 28일 기준 시즌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1군은 물론 2군조차 출장 기록이 없다. 구단의 공식적인 발표가 없는 이상 팬들은 징계성인 듯 추측할 뿐.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5월 7일에 퓨처스 리그에 대타로 출장해서 2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6월이 다 되어가는데도 1군 소식이 없다. 2군 성적은 준수하기 때문에 못올라 올리가 없고, 핫성현과 헥터 고메즈의 눈이 썩는 수비 때문에 못 올라올리가 없는데 시즌이 시작한지 2달이 되가는데 소식조차 없다. 솩갤에선 트레이드 설이나 징계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공식적인 발표는 결국 끝까지 없었기에 후일 뒤돌아보면 징계성이었다고 추측할 뿐이다.
6월 22일 박정권과 1군에 전격 콜업되었다. 그러나 팬들의 시선은 곱지 못하다. 그 후 슬라이딩 중에 부상을 당했다. 나주환을 콜업한 것이 최정에게 휴식을 주려고 데려온 건데 정작 자기가 먼저 다쳐서 최정이 경기에 나와야 한다.
9월 1일 확대 엔트리를 통해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선발 출장은 하지 않고 대타로 출장해 시즌 마수걸이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팀이 8대0으로 지고있는 9회에 첫 득점을 만들어낸 홈런. 시즌 성적은 6경기 출장 8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 남은 시즌 동안 경기 후반 대타로 요긴하게 쓰일 전망이다.
9월 25일 문학 한화전에 1번 타자로 선발 출장해 4타수 3안타 2홈런 5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9연패를 끊어냈다. 경기 종료 후 데일리 MVP에 선정되었다.
1군 콜업 후 나주환의 타격감은 그야말로 최절정을 달리고 있다. 9월 열린 15경기에서 0.486(37타수 18안타)로 거의 5할에 가까운 맹타다. 최근 고메즈, 이명기 등 테이블 세터진이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1번이나 2번 타자로 출장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선구안이 굉장히 좋아졌다. 기본적으로 공 세 개 이상을 보고 들어가기 때문에, 유리한 카운트에서 좋은 타격을 선보이고 있다. 비록 팀은 6연승 후에 거짓말 같은 9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가을 야구의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만, 그런 SK에서 최정과 함께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존재 중 하나.
3.8. 2017 시즌
7월 5일 경기에서 역전 싹쓸이 적시 3루타를 친 후의 모습이다.
시즌 시작후 안타하나 치고 부진하다가 13일 3점 홈런과 다음날 14일에 솔로홈런을 때려냈다. 13일 경기부터 3일 연속 멀티히트 & 4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팀의 5연승에 쏠쏠하게 도움이 되었다.
4월 28일에는 무려 만루홈런을 쳐냈다.
그후 워스의 방출과 박승욱의 부진으로 사실상 주전 유격수로 출장중이다. 쏠쏠한 장타력과 3할대의 컨택을 보여주며 맹활약중.
그리고 2017년 6월 4일 한화전에서 2회 초 선제 솔로포를 날렸다.
자신의 생일인 6월 14일 한화와의 홈 경기에서는 선발 7번타자 2루수로 나왔다가 8회초 유격수로 수비위치를 옮겨갔는데, 포수 이홍구가 부상을 입어 예비 포수가 없게 되자 포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김주한의 떨어지는 변화구나 바운드성 볼을 블로킹 없이 안정적으로 잡아내면서 차일목, 정범모, 허도환보다 낫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19] 포수 출전은 두산 시절이던 2005년 5월 1일 현 소속 팀인 SK와의 경기 이후 처음이다.[20] 이 과정에서 투수 김주한이 타석에 등록되는 것도 모자라서[21] 전유수가 1루수로 타석에도 들어가고 호수비 1개를 기록하는 등의 진기명기가 있었다.
6월 23일에는 정성곤에게 노히트를 깨는 솔로홈런을 날렸다. 그후 김동엽과 정의윤의 홈런으로 팀은 4:2로 승리했으며, 나주환은 시즌 10호포를 날리며 2009년 이후 오랜만에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게 됐다.
7월 5일 8연속 10득점 이상 기록을 만들던 기아를 상대로 8회 말 2사 만루에 싹쓸이 역전 3루타로 활약했다.[22]
전반기를 마치면서, 데뷔 첫 전반기 규정타석 3할 14홈런과 OPS 8할 이상을[23] 기록하며 타자로써 김동엽과 함께 팀내 넘버3 타자[24]로 올라섰다.
후반기 두산, NC, KIA와의 각 3연전 중 8경기에 출장하여 27타수 7안타 3타점 0홈런으로 타율 0.259, 출루율 0.355를 기록하며 전반기의 기세가 한풀 꺾인 느낌이다. 7월 26일 기아와의 경기 첫번째 타석에 몸에 맞는 공으로 타박상을 입어 교체되었고 그 영향인지 27일 경기에도 결장했다.
8월 9일 NC전에서 1회에 구창모를 상대로 15호 홈런을 치며 개인 최다홈런 타이기록[25]을 달성하였다.
8월 13일 kt전에서 4회 투런 홈런을 치며 개인 최다홈런 신기록을 달성하였다.
8월 25일 라팍 삼성전에서 시즌 18호 투런 홈런 포함 5타수 3안타 3타점으로 훨훨 날았다.
8월 31일 문학 삼성전에서는 2번 타자 유격수로 출장하며 통산 12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고, 타석에서도 2안타 1홈런으로 맹활약하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결국 2017시즌 SK에서 최정과 함께 단 둘뿐인 규정타석 타자가 되었다.[26]
9월 13일 KIA 타이거즈와의 홈 경기에서 종아리에 사구를 맞았고, 이후 수술을 받기 위해 1군에서 말소되었다.[27] 남은 일정을 생각하면 페넌트 레이스는 사실상 시즌 아웃.
하지만 3주 정도의 치료 재활 후 10월 3일 정규리그 최종전 출전을 계획하였고, 실제로 최종전에 선발 출전했다. 무안타 경기였지만 수비를 소화할만큼 건강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팬들을 안도할 수 있게 해 줬다.
시즌 중 많은 활약을 하였고, 팀흐름에 많이 중요한 경기들에서도 활약하면서[28] 팀 전체 베테랑 중 SK팬들에게 베테랑으로서의 모습으로 가장 좋은 인상을 심어 준 시즌. 그 덕에 내년 시즌 연봉도 100% 인상된 3억원에 계약했다. 지난 FA 실패를 어느정도 만회하는 액수라고 봐도 될 듯.
3.9. 2018 시즌
주전으로 시작하진 않았지만, 본 포지션인 유격수는 물론이고 최정을 대신해 3루수, 제이미 로맥을 대신해 1루수, 그리고 상황에 따라 2루수도 보며 이재원 부상 때는 이성우의 백업으로 포수 포지션도 대기했다. 그야말로 내야의 만능 유틸리티. 백업도 아닌 것이 팀 50경기 기준 44경기에 출전해서 37경기 선발 출전했다. 주로 유격수로 선발 출전하고 3루수, 1루수로도 나설 수 있으며, 경기 후반에 대타 작전이나 수비 강화 때문에 타 포지션 선수들이 교체되어 나갈 때는 그 포지션으로 그냥 옮겨서 플레이한다. 주전 유격수지만 유격수만 보는 선수는 아니다.타격에서는 4월 중순까지는 부진해서 2할 아래로도 내려갔으나 득점권 타율은 3할 후반대를 기록하며 꾸준히 하위 타선 클러치 히터로서 SK의 초반 상승세를 이끌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부재한 2번 타자 역할도 맡기도 했다. 특히 4월 2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2번 타자 1루수로 출장,[29] 3점 홈런을 포함해 1경기 7타점을 몰아치면서 강한 2번타자로서의 저력을 보여줬다. 5월 27일까지 득점권 타율은 .421으로 리그 2위[30][31] 이때를 기점으로 상승세를 타며 2할 후반대 타율까지 복귀해서 SK의 6연패 기간에도 잘 이끌어 주었다.
6월 14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는 7회 초 상대의 선발 투수인 윤석민을 상대로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는 3점 홈런을 쏘아올렸다.
8월 15일 메릴 켈리와 함께 엔트리에서 말소됐다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휴식기 종료 후 다시 1군에 콜업됐다.
9월 26일 LG 트윈스전 8회말 2:2 동점 상황에서 승부를 뒤집는 3점홈런을 때려냈다.
11월 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 7회 박정권 타석에 대타로 나와서 7-3으로 달아나는 1타점 적시타를 때렸다.
11월 12일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 정진기 타석에 대타로 나와 기술적인 타격으로 선두타자 안타를 쳤으나 주루플레이 미스로 이후 득점을 하지는 못하였다.
3.10. 2019 시즌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1차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유격수와 3루수 훈련을 하고 있다고.오키나와에서 열리는 2차 스프링캠프에도 참가했다.
4월 7일 삼성전 9회말 1사 1, 2루 상황에서 끝내기 안타를 터뜨렸다.
4월 20일 NC 김영규를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터뜨렸다.
5월 16일 NC전 8회 초에 배재환에게 147km의 빠른공으로 머리를 맞았다. 맞자마자 쓰러져서 목 보호대까지 착용한 후 구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고 선수본인이 어지럼증을 호소한다고 한다.
다음날 말소됐다.
5월 24일 NC 다이노스 2군과의 경기에 출장했고 5월 29일 콜업됐다.
6월 16일 NC전에서 3안타 4타점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후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6월 27일 말소됐다.
7월 9일 1군에 등록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SK 와이번스전 8번 2루수로 출전.. 3회 4구 삼진, 6회 5구 우익수 플라이, 8회 이재원의 안타로 김재현 대주자로 바뀐 다음 희생번트, 10회 유격수 왼쪽 내야안타로 3타수 1안타 1삼진을 기록하였다.
7월 28일 제이미 로맥의 1루 대체 선수로 나왔다.
8월 4일 한화전에 8월달 들어 첫 선발 출전해 2회말 실점을 막는 호수비를 선보였다.
8월 17일 1군에서 말소됐다가 8월 27일 복귀했다.
9월 28일 삼성전에서 10회초 7:7인 1사 만루상황에 나왔다. 팬들은 안타는 바라지도 않고 희생타만이라도 바랐으나 맥아리없는 스윙으로 커트조차 하지 못하며 삼구삼진을 당했다. 팀은 10회말 정영일이 끝내기 홈런을 맞으며 패배했고, 이날의 패배로 SK는 승차없는 2위로 시즌을 끝냈으며, 플레이오프마저도 탈락하며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렀다. 만약 나주환이 희생타를 쳐서라도 타점을 올렸다면 10회말 하재훈이 등판했을 확률이 거의 100%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다. 솩갤에선 이날 2실책을 한 제1 역적, 1이닝 3볼넷 3피안타 4실점 4자책으로 완벽히 털린 제2 역적과 더불어 까였다.
4. KIA 타이거즈 시절
KIA 타이거즈 등번호 6번 | ||||
홍재호 (2019) | → | 나주환 (2020~2021) | → | 김태진 (2022) |
시즌 후 두 번째 FA가 됐지만 신청하지 않았고, 얼마 뒤인 11월 24일 무상 트레이드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원래는 KBO 시상식이 끝나고 야구 소식이 조용해질 26일 발표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미리 기사가 풀려버리는 바람에 그냥 발표하게 된 듯, 25일 공식 홈페이지에서 보도자료로 발표하였다. 부모님 고향이 전남 나주인데다가 부인도 광주 출신이라 집안에서는 은근 좋아했다고 한다.
4.1. 2020 시즌
자세한 내용은 나주환/선수 경력/2020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 |
4.2. 2021 시즌
4월 4일 개막전에서 9회초 무사 1루의 찬스에서 김호령의 대타로 등장해 병살을 쳤다. 이후 줄줄이 나온 대타들이 모두 출루했기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4월 6일 키움전에서 최정민의 대수비로 나와 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4월 7일 키움전에서 류지혁의 대타로 나와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4월 9일 NC전에서 류지혁의 대수비로 나와 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4월 10일 NC전에서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4월 11일 NC전에서 선발 7번타자로 나서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4월 14일 롯데전에서 박찬호의 대타로 나와 루킹 삼진으로 물러났다.
4월 16일 SSG전에서 8번타자로 출전해 4타수 1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4월 17일 SSG전에서 최정민의 대수비로 나와 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4월 18일 SSG전에서 류지혁의 대타로 나와 삼진으로 물러났다.
4월 20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4월 30일, 1군에 등록되었다.
4얼 30일, 터커와 교체 출전해 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5월 2일 KT전에서 최형우와 교체 출전해 삼진으로 물러났다.
5월 9일 두산과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5월 12일 LG전에서 8번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2안타 1타점으로 매서운 타격감을 보여주었다.
5월 14일 NC전에서 황대인의 대타로 나와 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5월 15일 NC전에서 박찬호의 대타로 나와 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나지완이 부상 및 부진으로 2군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자 팀의 임시주장직을 수행 중이다.
이후 6월 6일 경기 전에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대신 올라온 선수는 당일 선발인 이민우. 37일간 11타석에 그칠만큼 철저하게 백업 위주였던 탓에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퓨처스로 내려가는 점도 포함됐다. 16일 SSG와의 더블헤더 당일에 올라올 예정이다.
6월 16일 SSG와의 더블헤더 1경기에서 김규성의 대타로 나와 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6월 19일 LG전에서 박민의 대타로 나와 삼진으로 물러났다.
6월 22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5. 은퇴
2021년 10월 29일, 은퇴식에서의 나주환 |
백신 접종자 한정으로 관중 입장이 재개되면서[32] KIA 구단에서 나주환의 은퇴식 진행을 하기로 결정되었고, 10월 29일, 본인의 데뷔 당시 소속팀이었던 두산 베어스와의 홈 경기에서 은퇴식이 치러지며 19시즌의 선수생활을 마쳤다. 은퇴사를 통해 "그동안 프로야구 선수 나주환을 응원해 주신 KIA 팬과 프로야구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얄궂게도 나주환이 은퇴식을 치른 지 2개월도 안되어 705 대첩의 또다른 주역인 또다른 나씨가 KIA로 이적했다.
[1] 북일고 합숙소에서 나주환과 둘이서 빙그레 라면을 끓여먹는데 그 자리에서 10봉지 가까이 먹었다는 말이 있다. 양창의 공주고 감독의 아들로 양창의의 제자가 박찬호다. 그런 인연으로 박찬호 야구장학금을 수여받았다.[2] 결승전에서 광주일고에 13-2로 패했다. 시합 전 날씨가 오락가락하여 결승전 시합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일정대로 진행하기로 하면서 북일고 응원단 버스가 천안으로 돌아다가다 다시 컴백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광주일고는 대통령배 우승 후 바로 다음 대회인 청룡기에서 우승하며 2관왕을 달성했다.[3] 송은범의 동산고에 승리를 거뒀다.[4] 정우람의 경남상고에 승리를 거뒀다.[5] 김재호의 중앙고에 승리를 거뒀다.[6] 박경수(성남고), 지석훈(휘문고), 서동욱(경기고), 나주환(북일고). 김주호(광주일고)까지 포함하면 5대 유격수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4대 유격수들 중에서는 평가가 높지 않았다. 당시에는 박경수가 나주환보다 훨씬 더 평가가 좋았었다.[7] 이에 대해 박경수 나비효과의 영향이라고 보기도 한다. 원래 두산은 박경수를 1차 지명하려고 했는데, 박경수가 LG로 가는 바람에 다급해진 두산은 나주환을 지명한 것. 감자 사건은 전국체육대회 동산고 전에서 편파판정과 빈볼시비 속에 나주환이 동산고 관중석을 향해 감자를 먹인 것. 본인은 감자가 아니라 단순히 손을 흔든 것이라 주장했다.[8] 당시의 나주환은 툴은 좋지만 안정성이 떨어지는 수비를 보여주는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직전 시즌까지 안정감 있는 내야를 구축하는 데 핵심이었던 손시헌의 상무 입대로 인해 내야에 공백이 생긴 두산은 나주환으로 그 공백을 메우려 했으나 내야 라인의 수비력이 약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김경문 감독은 어떻게든 나주환을 써보려 하였으나 나주환이 범하는 클러치 에러에 결국 건실한 수비를 보여 주는 동시에 SK에서 사실상의 잉여 전력이던 이대수와 교환하게 된다. 결론적으로는 양 팀 모두에게 윈윈이 된 트레이드. 두산은 이대수를 잘 써먹으며 당시 상무에서 복무 중인 손시헌/김재호가 제대하기 전까지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고, SK는 나주환을 좋은 유격수로 만들어 냈다.[9] 어찌됐든 걱정하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모를까, 나주환이 그러고서는 뒤도 안돌아보고 씩씩 거리면서 들어가는 모습이 방송으로 고스란히 중계되는 바람에 저런 반응은 아니지 않느냐는 의견이 다수였다.[10] 야구팬들 사이에 나주환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했다.[11] 사실 저 장면을 자세히 보면 나주환이 말하고 있는 도중에 누군가 나주환의 뺨을 때리고 가는데, 정근우다.[12] 비슷한 시기에 상무에 합격한 이재원과 모창민도 그랬다. 김성근 문서에도 있지만, 김성근은 병역미필 선수들의 입대를 최대한 늦출 수 있을 때까지 늦췄다. 그러나 선수들의 군입대를 미뤄놓고도 정작 게임에서 별로 활용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13] 이날 정상호도 누의공과를 하였다.[14] 그 전에 내야수 박승욱이 교육 리그에 참가했다가 어깨를 다쳐 SK 쪽 야수진이 부족해 박승욱의 대타로 나주환이 참가하였기 때문이었다.[15] 데뷔 첫 연타석 홈런이라 한다.[16] 후에 스톡킹에서 회고하길, 보상선수가 그대로 있다는걸 그때 알았고, FA만 알았지 법적인 절차마저 몰랐다고 말했다.[17] 2014-15당시 스토브리그에서 감독이 경질된 비수도권 팀은 단 한 곳이다.[18] SK가 이 마지막 경기를 이기며 5위로 리그를 마쳤기 때문에 잔여 경기가 있던 KIA는 5위를 하기 위해서는 남은 경기를 전승해야 5위를 할 수 있었다. 한번이라도 지면 탈락하는 불리한 상황. 만약 SK가 마지막 경기를 졌다면 KIA는 1경기를 져도 되기 때문에 여유로울 수 있었다.[19] 내야수라서 바운드볼에 더 익숙할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다.[20] 당시 SK 와이번스 소속이던 정근우의 도루를 저지하기도 했다.[21] 사실 이는 이홍구 부상과는 무관하게 원래 들어가 있었다. 이홍구가 부상당하기 전에 이미 감독이 지명타자 노수광을 외야수로 배치했기 때문이다. 이미 8회초에 SK 2번타자는 원래 있던 한동민이 아니라 당시 계투로 나온 투수타자 서진용이었다. 이후 투수를 김주한으로 교체하면서 2번 타자가 투수타자 김주한.[22] 당시 방송 중 흥분한 한명재 캐스터가 실수로 나주환을 최주환이라 불렀다.[23] SK의 전반기 규정타석 타자는 최정, 한동민, 김동엽, 나주환까지 4명 뿐이다. 특히 나주환은 나이와 최근 1군 경기수 때문인지, 힐만 감독이 원래 17시즌에 박승욱-김성현 주전에 나주환은 원칙적으로는 키스톤 플래툰이지만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 백업용에 가까운 내야수로만 계획해서 4월에는 경기 출장과 타석이 적었던 선수인데, 키스톤 뿐만 아니라 3루수, 1루수까지 내야수들의 공백을 항상 잘 메워주며 나올 때마다 워낙 뛰어난 활약을 보여 5월 중순부터 꾸준히 주전 기용하기로 변경하여 후배들을 제치고 주전이 되어 규정타석을 채우는 쾌거를 보인 경우다. 그야말로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스스로의 실력으로 극복하여 성공한 멋진 케이스.[24] 넘버1, 2는 OPS 10할을 넘기는 최정과 한동민. 김동엽과 나주환은 8할 후반대로 OPS가 비슷하여 세번째 자리를 경쟁 중이다. 장타 능력쪽이야 당연히 김동엽이 위지만, 교타 쪽은 오히려 나주환이 더 위다.-[25] 2009년 15개.[26] 한동민과 김동엽 정도가 함께 규정타석 타자 후보로 유력했으나, 한동민은 부상으로 시즌을 마치게 되면서 30타석 정도 차이로 기록하지 못했고, 김동엽은 후반기 부진으로 많은 경기에서 출전이 제외되어 400타석은 넘겼지만 규정타석까지는 못 채우게 되었다. 또한 힐만감독은 17시즌에서 전구단에서 가장 플래툰 활용을 적극적으로 했던 감독이라 팀내 100타석 이상 타자가 18명이나 되어 한화와 함께 전구단에서 가장 많아, 그만큼 규정타석을 채우는게 SK 타자로써 어려운 일이었다. 600타석 타자가 리그에 10명이나 되는 144경기 체계에서 팀내 타석, 타수 1위 최정마저도 500타석을 겨우 넘긴 정도. 그러니 규정타석을 채운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어려움에도 나주환이 그걸 이뤘다는 건 팀내에서 얼마나 대단한 비중을 차지한 활약을 했는지 알 수 있다.[27] 시즌 전체 규정타석(446타석)은 이 경기 전에 이미 넘겼기 때문에 규정타석 채우는 것과는 무관하다.[28] 포수 출전도 했고, 기타 여러 어려운 경기들에서도 활약하게 된 경우가 많아서 더욱 팬들의 호감을 받게 되었다. 결승타도 8번이나 쳐서 최정(12회)에 이어 팀내 2위. 대표적인 결승타는 이 경기의 역전 3루타.[29] 이 날 주전 1루수였던 제이미 로맥과 최승준이 각각 벤치와 지명타자를 맡으면서 나주환이 그들의 자리를 대신했다.[30] 1위는 안치홍의 .429. 3위 김현수까지가 득점권 4할 타자다.[31] 팀의 클린업을 맡아 타점이 높은 최정과 제이미 로맥도 홈런과 장타가 많아서 그렇지 득점권 타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32] 다만 광주는 델타변이에도 불구하고 관중 입장이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