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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1995)/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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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KIA 타이거즈
3.1. 2014 시즌3.2. 2015 시즌3.3. 2016 시즌3.4. 군 복무3.5. 2019 시즌3.6. 2020 시즌3.7. 2021 시즌3.8. 2022 시즌3.9. 2023 시즌3.10. 2024 시즌
4. 수상 경력5.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KIA 타이거즈 소속 내야수 박찬호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파일:장충고 박찬호.jpg

고졸 출신의 내야수 중에서는 당시 김하성과 함께 최고의 평을 받았던 선수로 2013 IBAF U-18 대회에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되었을 정도. 다만 평가받는 기량에 비해서 비교적 하위 지명에서 뽑혔는데, 이유는 대학에 진학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 이미 박찬호의 부모는 대학 진학으로 마음이 기울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박찬호를 지명하지 않았다가 모험을 걸고 KIA 타이거즈가 지명한 것이다. 당시 지명을 했던 권윤민 스카우트가 오래도록 설득을 하면서 프로 입단을 제안한 끝에 대학 진학 대신 프로 진출을 하게 된 우여곡절이 있었다. 본인은 지금 생각하면 프로 오길 잘했다고.[1]

3. KIA 타이거즈

3.1. 2014 시즌

2014 신인 중 몇 안되는 고졸 신인으로, KIA에서 안치홍-김선빈의 군입대 공백을 메워줄 영건으로 키울 계획을 가지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비교적 KIA 내에서 어린 나이에 속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 있기 때문에 팀 내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우고 있다. 그래서 루키 시즌인 2014 시즌에는 전 경기 2군에 있으면서 경기감각을 키우고 확대엔트리가 적용된 9월에 첫 1군에 들어오게 되었다.

9월 9일 LG와의 경기에서 선발 유격수, 9번 타순으로 프로 1군 데뷔전을 가졌다. 2회말 1사 1,2루에서 더블아웃이 될 수 있는 타구를 놓치면서 후속 타자 만루홈런의 빌미가 되었지만 3회초에 들어선 프로 첫 타석에서 LG 선발 우규민을 상대로 데뷔 안타를 뽑아내며 좋은 출발을 알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김원섭안치홍의 2루타에 힘입어 데뷔 첫 득점까지 기록했다. 팀은 다행히 난타전 끝에 7:10로 이겼다.

다음날 경기에서도 선발출장, 3회 첫 타석에 등장해 비록 투수강습 라이너를 날려 아웃되었으나 잡으려 했던 상대 투수 류제국의 글러브를 날려버려 류제국이 맨손으로 1루에 송구했을 만큼 위력적인 타구를 선보이며 마른 체구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파워를 지녔다는 것을 증명.

3.2. 2015 시즌

부상을 입은 최용규의 반대급부로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등록 첫 날부터 강한울과 콤비를 맞추며 멸치 키스톤 콤비를 맞추게 되었다.

7월 23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3번의 삼진을 빼앗기고 무안타에 그치는 등 타격에서는 조용한 경기였으나, 수비 상황에서는 상대 득점권 상황에서 결정적인 수비를 여러 차례 보여주며 큰 기여를 했다.

8월 1일 한화전에 9번타자 유격수로 출전하여 4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하였고 무엇보다 이날 8회말에 누워서 파울 플라이볼을 잡는 모습은 김기태를 연상케 하였다.. 그래서 눕찬호라 불리웠다

8월 2일 한화전에 9번타자 유격수로 출전하여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전 날에 이어 5회말에 호수비를 하여 정근우의 안타를 훔쳐갔다.. 정근우의 안타를 지우는 박찬호의 호수비

8월 2일까지 7월 22일 강한울 대신 1군으로 콜업된 이후로 그동안 말이 많던 유격수 수비에 대해서 많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타격 또한 점점 갈수록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객관적으로 그동안 강한울을 1군 주전으로 썼던 큰 이유는 박찬호보다 풍부한 1군에서의 경험과 안정된 수비였다. 하지만 강한울이 7월 21일 경기 전 런닝훈련 모습에서 설렁설렁 뛰는 모습을 보여 김기태 감독에게 제대로 찍혀 그 날 선발제외가 되었고 다음날 7월 22일 페이스 난조라는 이유로 2군으로 내려보낸다. 박찬호가 7월 22일 1군으로 콜업되어 점점 갈수록 우려스럽던 타격, 수비가 좋아지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강한울 와도 자리없다.라는 상황이 확실해질 수 있겠지만...

8월 말 현재 각종 타격 성적이 강한울 정도 혹은 강한울 이하로 내려간 상태. 타율이 2할 극초반까지 떨어졌는데 앞으로 분발하지 않는다면 주전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질 수 있다. 애초에 강한울이 2군으로 내려간 것도 답없는 타격문제가 큰 걸 생각하면[2] 박찬호 본인의 분전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잔여경기 23경기 안까지 타율을 .250 이상으로 올리면 상금 백만원, 실패 시 마무리캠프 무휴일이라는 계약을 했다.

9월 10일 경기에서 귀중한 1안타를 뽑아 김기태 감독과 한 계약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수비는 그럭저럭 하는데 아무리 데뷔한 지 얼마 안되는 신인이고 또 유격수라지만 타격성적이 쳐져서 이 스탯으로 1군 주전멤버로 나오는 것이 타팀이라면 불가능할 수준.

시즌 최종 타격성적은 다음과 같다.

타율 0.182(150타석 137타수) 25안타 0홈런 6타점/ 출루율 0.233 장타율 0.234 / OPS 0.467.

3.3. 2016 시즌

타율 .250을 넘기지 못하면서 마무리캠프를 휴일 없이 실시하게 되었다.

과연 동명이인으로 더 유명한 꼬리표를 떼고 타이거즈의 내야를 책임지는 선수가 될 수 있을지 판가름 하는 시즌이 될 것이다. 2016 시즌이 끝나면 안치홍과 김선빈이 복귀할 예정이기 때문에 올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신의 잠재능력을 보여줘야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데 전반기까지 모습을 보면 영... 시원찮다.

7월 9일 두산전을 앞두고 1군에 콜업되었는데, 두산에게 승리를 헌납하는 끝내기 실책을 범했다.

7월 14일 대수비로 나와서 최정의 만루홈런을 만들어 주는 실책을 저질렀다. 대수비로 나오는데 실책이 4개나 된다.

8월 2일 한화전 당시 9회말까지 8대9로 KIA가 지고 있는 상황에서 9회말 브렛 필, 나지완, 이범호가 깜짝 마무리로 나온 파비오 카스티요에게 차례대로 안타를 쳐서 9대 9 동점 상황을 만들어 냈고, 이후 강판된 카스티요의 다음 투수로 정우람이 등판하여 폭투를 던져 무사 2,3루가 된 상황에서 서동욱을 고의사구로 거른 후, 후속타자 백용환이 삼진, 오준혁이 팝업으로 아웃된 2사 만루의 상황에서 전날까지 멘도사 라인급의 타율을 보유한 대수비, 박찬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2-2까지 가는 접전 끝에, 5구째에 모두가 기대하지 않았던 대수비 박찬호는 끝내기 안타를 때려냈다.사진 당시 인터뷰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있었다.[3]

9월 23일 NC전에서 에러로 5점을 헌납했다. 1사 1루에서 병살로 종료될 타구를 실책으로 1사 1,2루로 만들었다.

노수광이 1군에 콜업되면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시즌이 끝난 뒤 상무 야구단에 지원해 같은 팀의 이준영, 전상현, 황대인, 윤완주, 고영우 등과 함께 1차 합격했으나, 윤완주, 고영우와 함께 최종 합격 명단에 들지 못하고 말았다. 결국 현역으로 입대한다.

3.4. 군 복무

2016년 12월 4일, 강한울최형우의 보상 선수로 삼성으로 가면서 어찌 됐든 살아남았다. 물론 2년간 현역 입대가 남아있어서 미래는 알 수 없지만...

2017년 1월 31일, 6사단 신교대로 입대했다. 자대는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 1경비단은 100% 모집병만 뽑기 때문에, 6사단 신교대에서 자대를 서울로 갈 수 있다는 말에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경비단은 수방사 예하부대 중 청와대 경호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부대이기 때문에 힘들기로 유명한 부대.

자대에 가니 같은 중대에 삼성 라이온즈의 유격수이자 장충고등학교 야구부 동기인 김호재의 후임으로 들어가게 됐다. 김호재가 전역 후에 밝히기를, 현역으로 군대를 가서 야구를 할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았는데 김호재가 병장이 된 뒤 박찬호가 들어오면서 캐치볼 등을 할 수 있었다고. 휴가를 나올 때는 틈틈히 광주에 들러서 김기태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으며 개인 훈련을 했다. 결국 무사히 전역 후 2군 캠프에서 시작했다가 1군 캠프로 승격했다.

3.5. 2019 시즌

파일:박찬호3루타.jpg
6월 21일 잠실 LG전 7회초 2사 만루 5-7로 뒤진 상황에서 역전 3타점 3루타를 치는 모습.
군 제대 이후 첫번째 시즌이며 군복무 동안 매일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에 시간을 투자하며 PX 냉동식품 등을 섭취하며 몸무게를 무려 13kg이나 늘렸다고 한다.[4] 박찬호 스스로 몸을 키우고 싶었다고 한다. 상무나 경찰청이 아닌 야구를 할 기회가 적은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왔기에 야구가 매우 간절했다고 한다.[5] 그리고 그 간절함이 통했다.

4월 5일 5인의 말소 이후 갑자기 콜업되면서 갸갤이 들썩였다. 박경태, 김주형과 함께 3대 갤주 중 한 명이 등장하니 당연지사. 그런데 이날 박찬호는 믿기지가 않는 안정적인 수비를 보이면서 희망을 갖게 한다. 심지어 안타[6]도 치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안 좋은 소문이 있었던 황윤호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이 내야 백업으로 등극하는 듯한 모습이다.

4월 6일 팀은 대패했지만 환상적인 수비를 보여주었다. 타격은 무안타. 박찬호에게 타격까진 바라지 말자는 게 KIA 팬들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갑자기 일취월장한 수비 실력들을 보면서 수방사에서 상무로 파견나간 거 아니었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넓은 수비범위를 통한 수비력과 똑딱이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은 타격을 바탕으로 유격수 주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4월 10일 이후 4월 13일 하루를 제외하고 4월 17일까지 매일 같이 출루를 하고 있다. 타율도 4월 17일 현재 3할에 달할 정도.

그리고 4월 17일 롯데전에서 브룩스 레일리를 상대로 통산 1호 홈런을 때려냈다. 게다가 이전의 두 타석에서 안타와 2루타를 치면서 사이클링 히트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지만, 이후의 두 타석에서 아쉽게 삼진과 볼넷을 기록하면서 KIA의 통산 세 번째 사이클링 히트는 무산되었다. 그리고 팀은 졌다.

4월 18일 김선빈나지완이 다시 1군으로 돌아왔지만, 박찬호는 말소되지 않고 그대로 1군 주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날 경기에는 2루수로 출전해서 유격수로 출전한 김선빈과 호흡을 맞추다가 김선빈이 안치홍과 교체 되면서 경기 후반에는 안치홍과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그리고 네 번째 타석에서 1사 1, 2루 상황에서 안타를 치면서 만루를 만들면서 KIA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고, 김선빈과 최형우에 의해 KIA가 역전에 성공했다. 앞으로 박찬호의 성적에 따라 김선빈, 안치홍과 호흡을 맞추면서 교대로 경기에 나올지, 아니면 백업으로 활동하게 될지 결정이 될 전망이다.

헌데 김선빈이 유격수 외의 포지션을 맡을 수 없는 관계로[7] 박찬호는 2루수와 3루수로 출장하고 있다.

4월 28일에는 3루수로 선발 출장해 우익수 박준태의 송구를 받지 않는 척 가만히 서있는 페이크 플레이로 2루에서 태그업하는 이정후를 3루에서 잡아내면서 3루 수비도 나름 괜찮게 소화하였다. 해당 장면. 그런데 5회에 수비 강화랍시고 박찬호를 2루로 보내고 여기에 황윤호를 집어넣자마자 바로 황윤호가 실책을 저지르는 등, 수비가 엉망진창으로 꼬이면서 역전을 당하고 팀도 패배하였다.

5월 3일 NC전에서는 2회초 김영규를 상대로 높게 들어온 속구를 허리 턴과 손목힘을 이용하여 힘껏 잡아당기며 좌중월 선제 3점 홈런을 작렬했다. 시즌 2호 홈런. 팀도 8대4로 승리했다.

5월 7일 두산전에서 좋은 호수비를 몇 차례 보여줬으나 9회말 3루 땅볼 타구를 잡고 1루에 악송구를 하면서 끝내기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

5월 19일 대전 한화전에서는 5타수 4안타로 개인 한 경기 최다 안타 기록을 갱신했다.

5월 21일 광주 롯데전에서는 5타수 2안타에 승리의 쐐기를 박는 2타점 적시타를 치며 활약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5월 26일, 6타수 3안타 5타점으로 개인 한 경기 최다 타점을 갱신함과 동시에 규정 타석을 채우는 데 성공했다. 타율 0.329를 기록하며 전체 타율 6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박찬호 보다 타율 순위가 높은 선수는 양의지, 호세 미겔 페르난데스, 이대호, 김하성, 고종욱 뿐. 그 중 고종욱과는 0.329로 사실상 동률이고, 김하성, 이대호와의 타율 차이도 1푼이 채 안된다.

하지만 40경기 이상을 주전으로 나와서 많이 지쳤던 것인지 28일 경기 두번째 타석을 시작으로 6월 2일 경기까지 19타수 연속 무안타라는 지독한 부진에 빠졌다. 부진에 빠지면서 3할 타율도 무너지고 말았다.[8] 다행히 6월 3일 경기서 멀티히트를 치며 연속 무안타 기록은 20타수에서 멈췄다. 지금은 3할대 초반 타율을 유지하고 있는 중.

현재 KIA 타이거즈 팬들에게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선수이다. 박찬호 유니폼도 모두 완판되었다고 할 정도.

6월 21일 기준으로 도루 17개로 선두이다.

6월 23일 LG전에선 6타수 5안타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뽐내며 게임을 지배했다.

7월 2일 ~ 7월 4일 KIA 챔피언스 필드 NC 다이노스전 2번 3루수로 나와 7월 2일 경기에서는 1회 플라이, 3회 파울플라이, 5회 안타, 8회 안타로 4타수 2안타 1득점 1타점을 기록. 7월 3일 경기에서는 1회 땅볼, 3회 2루타, 5회 땅볼, 7회 땅볼, 9회 안타로 5타수 2안타 1득점 1타점을 기록. 7월 4일 경기에서는 1회 삼진, 4회 삼진, 5회 땅볼, 8회 2루타로 4타수 1안타 1득점 2삼진을 기록하였다.

7월 5일 ~ 7월 7일 KIA 챔피언스 필드 LG 트윈스전 2번 3루수로 나와 7월 5일 경기에서는 1회 땅볼, 3회 안타, 4회 플라이, 7회 땅볼로 4타수 1안타를 기록. 7월 6일 경기에서는 1회 땅볼, 3회 플라이, 5회 볼넷, 6회 플라이로 3타수 1득점 4사구 1를 기록. 7월 7일 경기에서는 2번 유격수로 나와 1회 플라이, 4회 땅볼, 5회 안타, 7회 안타, 8회 땅볼로 5타수 2안타 2득점 2타점을 기록하였다.

7월 9일, 7월 11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삼성 라이온즈전 2번 3루수로 나와 7월 9일 1회 플라이, 3회 플라이, 5회 땅볼, 8회 안타, 9회 땅볼로 5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 7월 11일 1회 라인드라이브, 3회 파울플라이, 5회 파울플라이, 7회 땅볼, 9회 땅볼로 5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였다.

7월 12일 KIA 챔피언스 필드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2번 3루수로 출전. 1회 땅볼, 3회 땅볼, 5회 플라이, 7회 안타로 4타수 1안타를 기록하였다.
파일:2019071400063_0.jpg

7월 14일부터 등번호가 종전의 4번에서 25번으로 바뀐다. 은퇴하는 이범호의 번호를 물려받으며, 7월 13일, KIA 챔피언스 필드 한화 이글스전 7회초 이범호와 교체되어 3루 대수비로 나왔고, 이어 8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6구 땅볼아웃을 기록했지만 경기가 끝나고 이범호의 은퇴식에서 등번호 전달식이 진행됐다. 앞서 은퇴 기자회견에서도 후배의 모습에 3루수를 내주는것이 맞다라고 언급했다.

25번을 달고 뛴 첫 경기인 7월 14일 경기에서 4타수 2안타 2타점의 활약과 함께 8회 초 홈보살 호수비로 재역전의 발판을 마련하였으나 4회초 송구 실책을 기록했다.

8월 7일 LG전 8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여건욱의 143km/h의 빠른 볼에 헤드샷을 맞았다. 다행히 헬멧에 맞아서 바로 일어났고, 2루 도루까지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8월 9일 한화전 5타수 2안타 2타점 활약하였고 데뷔 첫 100안타를 달성했다.

8월 25일 SK전 2안타를 쳐냈고 한 점 차 리드 상황 2사 3루에서 기습번트 안타로 1타점을 기록하였다. 결국 2점을 지켜내며 승리. 아쉬운 점이 있다면 5회 무사 1,2루에서 희생번트 작전이 나왔는데 두번 다 실패하며 결국 강공전환. 여기서 병살타를 치면서 찬물을 뿌렸던 것.

그 이후 타율이 수직하락해서 9월 7일 현재 0.266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출루만 했다 하면 도루를 시도해 9월 7일까지 37개의 도루를 기록 중이다. 2위 그룹 김하성, 고종욱과는 10개 차이가 나고 남은 경기도 많지 않아 다소 극단적인 비유이긴 하지만 박찬호가 느닷없이 시즌아웃되고, 2위 그룹이 매 경기 도루를 추가하지 않는 이상 도루왕은 거의 확정적이다.

그리고 9월 28일, 시즌 최종전에서 안타 한 개와 도루 한 개를 추가하면서 2019 시즌을 타율 2할 6푼, 도루 39개로 마무리 지었다.

시즌 초 반전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타나 3루수 주전을 차지했고, 은퇴한 이범호의 공백을 지워주었다. 전반기 어마무시한 타격 능력과 빠른 발로 상대 팀 배터리를 뒤흔드는 허슬 플레이로 KIA 팬들에게 많은 희망과 행복을 준 시즌이었다. 아쉬웠던 점은 풀타임 경험이 없어 후반기에 급락한 타율과 세부지표들, 떨어진 체력만큼 수비에서도 불안한 모습들을 보였다. 다행히 전반기에 쌓아둔 도루들이 있어서 도루왕 경쟁자인 김하성을 따돌리고 생애 첫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체력문제와 좀 더 발전된 타격을 보여준다면 정상급 내야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보여준 2019 시즌이었다. 또한 도루왕 타이틀도 따냈는데 역대 도루왕들 중 최저 출루율을 기록했다.[9]

다만 도루왕 시상식 소감에서 언젠가는 드래프트 동기 김하성을 홈런으로 이겨보고 싶다며 다음에는 홈런왕으로 이 자리에 있겠다는 포부를 밝혀 KIA팬들을 쎄하게 했다.

3.6. 2020 시즌

파일:20박찬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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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홍의 이적에 따라 김선빈이 2루로 가면서 본인도 덩달아 유격수로 옮겼다. 수비는 기대대로 준수한 편이었으나 타격이 완전히 바닥을 뚫고 내려가면서[10] 원성을 샀다.

3.7. 2021 시즌

파일:21박찬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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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준수한 수비와 처참한 타격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있다. 타격은 작년에 비하면 나아진 편이지만 계속 주전으로 쓰기에는 무리라는 평가도 많고, 시즌이 끝날 때쯤 실책이 갑자기 많아지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체력적인 문제가 여전히 작용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 감독이 대안을 찾으려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아서 양아들 사랑이라는 비난도 많이 들었다.

3.8. 2022 시즌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22 KBO 리그 도루 1위

파일:박찬호의 부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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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알린 시즌. 스탯티즈 상으로 유격수 WAR 3위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팀의 주전 유격수다운 모습을 보여준 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본인 만큼은 존재감을 뽐내며 내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3.9. 2023 시즌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23 KBO 리그 수비상 (유격수)
개막전에서 김광현을 상대로 초구를 공략해 안타를 때려내 2023 KBO 리그 첫번째 안타를 때려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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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기대치를 넘어선 시즌이자 커리어하이 시즌. 개인 통산 첫 규정타석 3할을 기록하며 KBO 최악의 타자에서 2년만에 유격수 골글 후보까지 성장했으나, 후반기 두 번의 부상으로 아쉽게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3.10. 2024 시즌

파일:1000019813.jpg
10월 28일 KS 5차전, 8회말 쐐기를 박는 1타점 2루타를 쳐내며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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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우승에 일조한 시즌. 작년보다 세부 지표와 도루 개수는 작년보다 다소 떨어졌지만[11], 개선된 선구안을 앞세워 2년 연속 3할 타율과 150안타 달성 및 개인 최다 타점 + 최다 득점, 최다 홈런 등 주요 스탯에선 커리어 하이급 성적을 달성하면서 유격수 골든글러브 후보에 오르게 되었다. [12]

그리고 대망의 생애 첫 한국시리즈에서는 1,2차전까지는 공-수 양면으로 최악의 모습을 보이다가 3,4,5차전에선 반대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까와 빠를 미치게 한 활약을 펼쳐 데뷔 이후 첫 우승을 경험하는 등 본인에게도 있어서 매우 의미있는 시즌을 보냈다.

4. 수상 경력

  • KBO 도루왕 2회 (2019, 2022)
  • KBO 수비상 유격수 부문 2회 (2023, 2024)
  • 나눔 올스타 베스트 11 (2024)
  • 한국시리즈 우승 (2024)

5. 연도별 주요 성적

  • 푸른 글씨는 KBO 최다,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박찬호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14 KIA 17 23 2 1 0 0 3 0 0 1 10 .091 .130 .136 .266 -53.5 -0.27
2015 69 150 25 5 1 0 13 6 3 9 37 .182 .233 .234 .467 8.2 -1.23
2016 69 46 7 0 0 0 9 3 2 3 9 .167 .222 .167 .389 -10.9 -0.41
2017 군 복무
2018
2019 133 541 131 15 4 2 60 49 39
(1위)
26 83 .260 .300 .317 .617 67.3 1.05
2020 141 531 107 16 0 3 63 36 15 36 87 .223 .276 .275 .551 40.3 -1.11
2021 131 483 103 15 5 1 51 59 9 54 73 .246 .331 .313 .644 77.2 1.54
2022 130 566 134 22 0 4 81 45 42
(1위)
57 67 .272 .344 .341 .685 94.1 3.42
2023 130 507 136 18 4 3 73 52 30
(3위)
40 56 .301 .356 .378 .734 109.5 4.09
2024 134 577 158 24 1 5 86 61 20 48 44 .307 .363 .386 .749 95.7 2.78
KBO 통산
(9시즌)
954 3424 803 116 15 18 439 311 160 274 466 .262 .322 .327 .649 77.4 9.88


[1] 진학예정이었던 대학은 동국대학교였다고 한다.[2] 그런데 2군 생활이 길어진 건 강한울이 갑작스런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기 때문에 재활중이었던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3] 다만 동료들은 저거를 에러로 취급한다. 링크[4] 실제로 15시즌, 16시즌과 비교했을 때 몸이 굉장히 커졌다.[5] 사실 군대에선 캐치볼보다 축구와 풋살, 탁구를 주로 했다.[6] 실책성 플레이가 겹쳤다.[7] 정확히는 유격수 외의 포지션을 맡아 본 적이 없다. 가끔 1루수도 맡는 안치홍과는 대조적.[8] 실제로도 박흥식 감독대행이 인터뷰에서 박찬호가 지친 것 같다고 말 한 적이 있다.[9] 그리고 이 기록은 다음 해 심우준에 의해 바로 깨지게 되었다.[10] 심지어 2020시즌은 리그 전체적으로 타고투저였다.[11] 사실 도루를 제외한 누적 스탯이나 비율 스탯은 2023년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나, 리그가 타고투저 성향이 강해지면서 세부 지표 등에서 손해를 본 편. 아무래도 홈런을 많이 치는 타자가 아닌 것도 있고...[12] 유력한 경쟁자인 박성한과 비교하면 객관적인 개인 스탯 면에서는 박성한에 비해 열세이지만, 팀 성적이나 팀의 인기도가 수상에 영향을 주는 KBO 시상의 특징 덕에 수상 가능성이 낮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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