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10:18:55

브라이언 싱어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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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새턴 시상식
파일:saturn-award.png
영화 감독상
제26회
(1999년)
제27회
(2000년)
제28회
(2001년)
워쇼스키 형제
(매트릭스)
브라이언 싱어
(엑스맨)
피터 잭슨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제32회
(2005년)
제33회
(2006년)
제34회
(2007년)
피터 잭슨
(킹콩)
브라이언 싱어
(슈퍼맨 리턴즈)
잭 스나이더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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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싱어
Bryan Singer
파일:Brian_Singer__International_Competition_Jury__at_Opening_Ceremony_of_the_28th_Tokyo_International_Film_Festival_(22427114066)_(cropped).jpg
본명 브라이언 제이 싱어
Bryan Jay Singer
출생 1965년 9월 17일 ([age(1965-09-17)]세)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신체 178cm
직업 영화감독
활동 1988년 – 현재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작품의 특징들3. 활동 이력4. 주요 작품들5. 제작 무산 또는 보류중인 작품들6. 논란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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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영화 감독 겸 제작자로 자신의 영화 제작사 배드 햇 해리 프로덕션(Bad Hat Harry Productions)의 설립자이기도 한다.

2. 작품의 특징들

나치와 그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소수자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정치적 올바름이 이슈화되기 전부터 이미 싱어의 작품들은 그러한 성향이 강했다. 하드보일드하고 거친 성향과는 거리가 먼, 고독하면서도 선이 고운, 악인을 다룰 경우 차갑고 냉혹한 남성성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 경향. 가족영화로 만들어진 《잭 더 자이언트 킬러》에서 조차도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한 캐릭터는 싱어의 전작들 속 영웅적 캐릭터들과 혈연관계라고 볼 수 있다.

극장용 영화 이외에 TV 드라마에도 손을 댄 작품이 많다. 국내에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하우스》(2004년)와 《더티 섹시 머니》(2007년)가 대표적.[1]

단점은 작품별로 기복이 매우 심하다는 것. 4번 문단을 보면 알겠지만 흥행의 성공과 실패가 계속 왔다갔다하며 평론도 좋았다가 나빴다가 한다.

3. 활동 이력

1993년 《퍼블릭 액세스》의 감독을 맡아 할리우드에 입문했으며 1995년 그 유명한 《유주얼 서스펙트》를 감독하면서 유명세를 탔으며 이후 1998년 자신의 관심사를 다룬 스티븐 킹 원작의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에서 늙어빠진 구 나치 전범(이언 매켈런 옹)의 비밀을 파헤치는 소년의 파멸을 그리며 '훌륭한 스릴러'라는 평을 들었으며 2000년도에 엑스맨 실사영화 시리즈의 감독직을 맡게 되어 《엑스맨》과, 그 후속작으로서 2003년 《엑스맨 2》를 내놓았다. 이 작품들은 상당한 호평을 받고 싱어가 할리우드에서 확실히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자세한 건 항목 참고.

《엑스맨 2》 이후 2004년에 그는 엑스맨 시리즈와 20세기 폭스를 내팽개치고 워너 브라더스로 넘어가 슈퍼맨 복귀작을 만드니, 이름하야 《슈퍼맨 리턴즈》.[2] 평론가들로부터는 좋은 반응을 얻어냈으나 개봉 후 관객들의 평이 미묘하게 엇갈려서 애매한 평을 받았다. 전 세계 흥행수익을 포함하면 3억달러를 훨씬 웃돌았지만, 제작비가 무려 2억 7,000만 달러로 당대 최고 수준[3]이었기에 워너가 기대했던 성적에는 훨씬 못미치는 결과였다.

설상가상으로 슈퍼맨의 복귀작은 여러 감독과 여러 스타 배우들의 손을 거치면서 제작비가 엄청나게 불어버린 상태. 애매한 흥행성적으로 인해 고민중이던 워너는 《배트맨 비긴즈》의 후속작 《다크 나이트》가 대박을 터뜨리자 '맨 오브 스틸'이라는 이름으로 《슈퍼맨 리턴즈》 속편을 감독중이던 싱어를 가차없이 잘라버렸다. 이후 《맨 오브 스틸》은 놀란이 제작을, 잭 스나이더가 연출을 맡으며 개봉하게 됐고 흥행에 성공하게 된다. 반면 평론가들의 평가[4]는 싱어의 슈퍼맨보다 낮은 편이었다.

싱어는 결국 워너를 나와 자신의 관심사였던 나치 이야기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2008년에 아돌프 히틀러 암살 기도를 소재로 한 영화 《작전명 발키리》를 감독했다. 전반적으로 야심작이라기 보다는 순수 장르물을 의도한 소품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미 알려진 역사를 소재로 능수능란한 서스펜스를 펼쳐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흥행에서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거둬들였다. 톰 크루즈와 같이 시사회 때 내한했는데 이쪽에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2010년에 엑스맨 시리즈를 다시 맡기로 했다. 하지만 《잭 더 자이언트 킬러》 일정 문제로 싱어 본인이《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감독으로 《킥애스》 영화판으로 유명한 매튜 본 감독을 추천하며(사실 본 감독은 브렛 래트너 이전에 시리즈의 3편 감독으로 내정되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은 제작자와 스토리 작가로 나섰다.

액션 연출에 약한 싱어의 단점을 본이 메꾸어주면서 본과 싱어의 장점을 잘살렸다는 평.[5] 하지만 흥행은 관계자들에게는 생각보다 저조했다.[6] 시리즈의 제작자인 로런 슐러 도너와 본의 의견차 문제로 인해, 후속작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로 시리즈에 다시 복귀하게 되었다(이번엔 본인이 각본과 제작에 참여했다.). 이에 대해선 싱어의 1, 2편을 선호하는 팬들과 《퍼스트 클래스》를 선호하는 팬들의 의견이 갈리는 편이다.

2013년 잭과 콩나무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 영화 《잭 더 자이언트 킬러》의 감독을 맡았다. 그러나 무려 1억 4,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으며 흥행에서 쪽박을 찬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비평과 흥행 모두 시리즈뿐만 아니라 싱어의 전체 필모에서도 최고 수준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각본까지 맡은 엑스맨: 아포칼립스 개봉 후엔 평이 애매해지는 중이다.[7]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의 영화화를 준비 중이었고 프레디 머큐리 전기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촬영까지 했지만 잦은 지각으로 결국 해고되었다. 이에 싱어 본인은 "일방적으로 해고당했으며, 창작 의견만 있을 뿐 촬영했을 때 문제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설상가상으로 2003년 시애틀에서 17세 소년을 강간한 혐의로 소송에 걸렸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촬영 2주 분량을 빼고 촬영했기에 미국감독협회 규정에 따라 보헤미안 랩소디 감독으로 인정받아, 인터뷰, 프로모션 등에도 참여한다고 한다.

4. 주요 작품들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81818><tablebgcolor=#181818>
브라이언 싱어 감독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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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제목활동제작비극장 흥행국내관객수흥행
1995유주얼 서스펙트감독/제작600만달러23,341,568달러자료없음성공
1996죽음보다 무서운 비밀감독/제작1,400만 달러8,900,000 달러자료없음실패
2000엑스맨감독/각본7,500만달러296,339,527달러120만명성공
2003엑스맨 2감독/각본1억 1,000만달러407,711,549달러150만명성공
2006슈퍼맨 리턴즈감독/제작2억 6,000만달러391,081,192달러204만명실패
2007트릭 오어 트릿제작1,200만달러5,107,736달러미개봉실패
2008작전명 발키리감독/제작7,500만달러200,276,784달러180만명성공
2011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제작/각본1억 6,000만 달러353,624,124달러253만명성공
2013잭 더 자이언트 킬러감독/제작1억 9천 5백만 달러197,687,603달러105만명실패
2014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감독/제작2억 달러746,045,700달러430만명성공
2016엑스맨: 아포칼립스감독/각본/제작1억 7,800만 달러534,619,896달러293만명성공
2018보헤미안 랩소디감독/제작5,200만 달러902,251,089달러994만명성공

5. 제작 무산 또는 보류중인 작품들

6. 논란

사생활이 추잡하기로 유명하다. 동성 성추문으로 꾸준히 소송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때문에 9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차기작도 문제없을 대흥행을 거둔 싱어의 커리어는 끊겨버렸다.

2009년 이동진 평론가와의 인터뷰 중 이스라엘가자 지구 공격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굉장히 애매모호한 대답을 남겨서 논란이 되었었다. 이 때문에 유대인제일주의를 내세우는 시오니스트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014년 후속작 개봉을 앞두고 1999년 17살 청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거기다 더해 또 다른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제작자 게리 고더드와 같이 고소 당했다. 물론 싱어와 고더드는 펄쩍 뛰며 부인하는 중.# 싱어 측은 고소건에 대해 반박증거를 확보/제출했다고 하지만, 폭스 측에선 스캔들 자체가 끼칠 악영향을 고려해 엑스맨 후속작에서 싱어를 제외시킬 수 있다고 한다.# 2015년 12월 8일, 그를 고소한 남자가 거짓말이었음을 인정하고 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19년에는 미성년자 소년 4명을 성폭행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로 인해 영국 예술 아카데미(BAFTA)는 최우수 영국 영화상 BAFTA Award 후보에서 싱어의 이름을 삭제했다.

그의 영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1998년)'에 출연했던 아역배우 브래드 렌프로[9]를 14살 남자아이와의 성관계 자리에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브래드 렌프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봐 감독이 부른 장소에 나갔다가 성관계 장면을 목격하고 아무말도 못한채 자리를 떠났다고. #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 샤워장 장면에서 학부모들과의 동의도 없이 남성 아역배우들의 나체를 노출시키는 바람에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7. 여담

1994년 유주얼 서스펙트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배드 햇 해리 프로덕션이라는 제작사를 설립해 영화TV 프로를 제작하고 있다. 제작사의 '배드 햇 해리'는 스티븐 스필버그죠스의 브로디 서장 역인 로이 샤이더의 대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엑스맨 유니버스, 작전명 발키리 등 싱어의 영화에서는 5명의 남자가 머그샷으로 걸어온 뒤, 로고가 뜨는 낯익은 오프닝 크레딧을 볼 수 있는데, 저 로고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머그샷 장면에서 따온 것이다.
파일:external/media.tumblr.com/tumblr_lqyldbVVum1r00t0r.jpg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과 친하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으로 같이 사진을 공유하기도 한다. 또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역시 게이이다.

케빈 스페이시 성추문이 터지자 트위터를 탈퇴했다. 그리고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기소당했다.

퀴어애즈포크로 유명한 배우 미셸 클루니와 2015년도에 아들을 가졌다.


[1] 하우스 시즌 1, 에피소드 #12에서는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2] 나는 슈퍼맨을 사랑합니다(I love Superman!)라고 적힌 피켓을 든 사진을 찍기도 했다.[3] 이건 2020년대 기준으로도 엄청난 수준이다.[4] 《슈퍼맨 리턴즈》의 로튼토마토지수는 76%, 메타크리틱 점수는 72점. 반면 《맨 오브 스틸》의 로튼 토마토 지수는 56%, 메타크리틱 점수는 55점이다.[5] 다만 전작에 비하면 섬세한 연출의 측면에서 부족한 부분도 있다는 평도 있다.[6] 흥행에 성공하긴 했으나 이전 시리즈에 비하면 북미 흥행이 가장 저조하다.[7] 그러나 그 후속작인 엑스맨: 다크 피닉스가 시리즈를 말아먹은 최악의 쓰레기 작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적어도 본작은 엑스맨 시리즈의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재평가를 받고있다.[8] 첫 번째 시리즈는 1959년에 나왔고 두 번째 시리즈는 1989년에 나왔고 세 번째 시리즈는 2002년에 나왔다.[9] 2008년 25세에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