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17:03:11

블라디미르 트리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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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연방 제8대 발트함대 사령관
블라디미르 필리포비치 트리부츠
Влади́мир Фили́ппович Три́буц
Vladimir Filippovich Tributs
파일:트리부츠제독.png
출생 1900년 7월 28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現 러시아 북서 연방관구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망 1977년 8월 30일 (향년 77세)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現 러시아 모스크바)
묘소 노보데비치 묘지
재임기간 제8대 발트함대 사령관[1]
1939년 4월 ~ 194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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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0000><colcolor=#ffe400,#ffe300> 배우자 무자 트리부츠[2]
자녀 딸 이리나
복무 소비에트 연방 해군
1918년 ~ 1961년
최종 계급 상장 (소비에트 해군)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 내전
독소전쟁
주요 서훈 레닌훈장 (2회)
우샤코프 훈장 1등급 (2회)
적기훈장 (4회)
적성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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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출생성장2.2. 독소전쟁2.3. 전후
3. 여담4.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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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트리부츠 초상화.jpg
해군 군관 예복을 입은 초상화
소련 해군제독. 대조국전쟁 중 발트함대 사령관.

2. 생애

2.1. 출생성장

190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경찰관을 하던 아버지 필립 트리부츠의 아들로 태어났다. 트리부츠 가문은 민스크 지방의 농노 출신으로, 영주의 명령에 따라 그곳 농노의 대부분이 트리부츠라는 성이었다고 한다. 농노제가 폐지된 후 제국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했지만 형편이 좋지 않고 가난했다고 한다.

1908년부터 1911년까지 3년제 초등학교에서 공부하고, 1911년부터 4년제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1년을 마치지 못하고 1914년에 페트로그라드 군사 의료 학교에 입학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공짜 밥과 공짜 옷을 줘서 입학했다고 한다. 제1차세계대전에서 군의관 보조로 실습을 나갔다. 1918년 1월 학교를 졸업하고 페트로그라드 니콜라예프 군병원에서 의료 보조로 복무했다.

1918년 붉은군대에 입대해 내전에 참전했다. 볼가-카스피 소함대에 파견된 트리부츠는 해군병원, 구축함 '데야텔니'[3], 포함 '레닌'의 승조원으로 복무했다.

1922년 카스피해 해군 군사 위원의 추천으로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해 동기였던 미래의 해군 원수 니콜라이 쿠즈네초프와 단짝 친구가 됐다.[4] 1926년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전함 '파리즈스카야 콤무나'에서 복무를 시작했다.[5]

1929년 해군대학에 입학했다. 1932년 졸업해 전함 '마라'의 부함장이 되었다. 1934년 구축함 '야코프 스베르들로프'[6]의 함장으로 임명되었다.

1937년 발트함대 사령부로 전출된 뒤 1938년 2월 발트함대 총참모장, 1년 뒤 1939년 4월에 발트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2.2. 독소전쟁

파일:발트함대 트리부츠.jpg
발트함대 참모들과 트리부츠(가운데)
발트함대 사령관으로서 발트해 전역과 레닌그라드 공방전에 참여했다.

2.3. 전후

1946년 스탈린이 발트함대를 북발트함대와 남발트함대로 나눠버렸다. 트리부츠는 1947년 5월까지 북발트함대 사령관으로 지냈다.

1947년 5월부터 극동 해군 부사령관으로 복무하고, 1948년 9월엔 소련 해군 훈련국장, 1949년 3월엔 소련 해군 수로국장으로 임명됐다.

1952년부터는 각종 교육 및 연구기관의 학과장을 전전하다 1957년 해군 제독 감찰관을 지내고 1961년 은퇴했다.

은퇴한 트리부츠는 과학 기술 정보 연구소의 책임자로 지내며 해군의 역사를 연구했다. 4권의 책을 포함하여 200여권의 출판물을 집필한 그는 연구 업적을 인정 받아 1972년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7년 8월 30일 향년 77세에 사망해 노보데비치 묘지에 묻혔다.

3. 여담

  • 그를 기리기 위해 우달로이급 구축함 4번함이 아드미랄 트리부츠(Адмирал Трибуц)로 명명됐다.
  • 보로실로프의 후임으로 레닌그라드전선 사령관으로 임명된 주코프가 발트함대에 불만을 표하며 발트함대 사령부 전체를 날려버리려고 했으나 스탈린을 설득한 쿠즈네초프 덕분에 무산되었다. 이때 트리부츠와 함께 짤릴 뻔 했던 발트함대 총참모장 판텔레예프 제독[7]은 '쿠즈네초프가 막지 않았다면 우리 경력은 그때 다 끝났을 것'이라며 전후 정치 탄압때 쿠즈네초프를 배신한 트리부츠[8]배은망덕하다고 비판했다.

4. 대중매체

파일:드라마 트리부츠.jpg
  • 2024년 드라마 <쿠즈네초프 제독>에 나온다. 친한 친구 설정답게 쿠즈네초프를 콜랴라고 부르며 한탄이나 비꼬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배우는 알렉세이 마카로프.





[1] 창설일 기준 20대[2] 성별 구분이 없는 성씨.[3] 이때 함장이 이반 이사코프였다. 트리부츠는 그를 능력있고 멋있는 함장이었다고 회상했다.[4] 다른 동기의 회고에서 쿠즈네초프는 모든 동기들과 두루 잘 지냈지만 트리부츠와 특히 친밀했다고 언급된다.[5] 원래는 쿠즈네초프와 같이 가려고 했지만 마지막에 쿠즈네초프가 마음을 바꿨다.[6] 전 이름은 노빅(Новик)[7] 우달로이급 구축함 12번함 아드미랄 판텔레예프의 어원되시는 분.[8] 쿠즈네초프를 비난하는 연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