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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리아의 문화에 대해 다루는 문서.2. 상세
국민 절대다수가 아랍인이 대부분이고 베두인 부족들도 남부 다라 주 요르단 접경지대에서 살고 있다. 이 나라에도 쿠르드족이 30만~50만 명 정도가 산다. 하지만 튀르키예나 이라크, 이란 등지에서 사는 수백만 쿠르드인들에 견주면 수가 적어서인지 커다란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며 그냥 조용히 사는 중. 하지만 차별은 이곳도 마찬가지인지라 1986년과 2004년에 몆 차례씩 시리아 중앙정부에게 반기를 드는 소요사태를 일으킨 적도 있었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변변한 직업 구하기도 어려워서인지 소매치기 같은 일로 살아갈 지경이었다.그러나 시리아 내전이 터지자 눌려 살던 쿠르드족들도 기회를 잡아 내전 와중에 북부에서 쿠르드 자치구역 로자바를 선포했다. 로자바는 정부군의 통제가 닿지 않는 곳이며 이들의 군대인 시리아 민주군은 딱히 쿠르드족을 적대하지 않는 미국 등의 지원을 두루 받으며 ISIL의 소요를 진압하는 주축 역할을 하기도 했다.[1] 허나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2019년 시리아 북동부의 미군을 철수시키면서 적신호가 켜지고, 이윽고 미국의 묵인 하에 튀르키예가 시리아 북동부로 밀고 들어오며 이는 현실이 되었다. 어찌저찌 현상 유지는 하고 있었으나 2024년에는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는 반군이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고 시리아를 장악함으로써 로자바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식당이 바로 시리아에 있었다. 다마스쿠스에 있는 바와벳 뒤마시끄(بوابة دمشق, 다마스쿠스 문이라는 뜻) 식당으로 2002년에 문을 열었다. 총 면적은 5만 4천 ㎡, 주방 면적만도 2500㎡, 좌석이 6014석에 이르며 성수기 때는 종업원이 무려 1800명, 주방 담당이 500명이 넘는다. 건립비만 4천만 달러에 달하는데 사실상 음식 공장에 가깝다라고 인정했다. 시리아 및 아랍과 아랍화된 인도와 중국 음식이 전문으로 30명이 먹을 후무스[2]를 5분 안에 만들어 올 수 있다고 한다. 여긴 2008년 기네스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레스토랑으로 등록되었다. 방콕에 있는 5천 명 좌석짜리 식당 기록을 깼다. 그러나 밑에 나왔듯이 여행금지 때문에 한국인은 갈 수가 없었다. 다마스쿠스의 경우 정부군 세력 내에 들어온 곳이라서 사실 파괴되진 않았을 것이다. 순전히 여행금지국가라 한국인의 방문이 불가능했을 뿐. 물론 손님이 안 와서 영업이 중단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다마스쿠스의 호텔들은 내전 발발로 대부분 문을 닫았다. 확인 결과, 당연하게도 바와벳 디마시크는 현재 영업을 접은 지 오래되었다.
시리아 내전 초기인 2011년 6월경 위성사진이다. 이때까지는 내전 초기인지라 그럭저럭 운영 중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내전이 일어난 지 6년이 다 돼가던 2017년 1월경 모습, 주변이 황폐해진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내전이 일어나고 1년 정도 지났던 2012년 8월 때 이미 분수대 물도 메마르고 황폐해졌다. 내전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영어 위키백과에 의하면 정부군이 다마스쿠스를 탈환한 후 2018년부터 바와벳 디마쉬크가 다시 영업을 개시했다고 한다.
2018년에도 시리아는 내전 중이지만, 시리아 관광청은 페이스북에 다시 관광홍보영상을 올려놓아서 논란을 빚었다.#
3. 언어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시리아의 아랍어 구사 환경은 매우 다채로워서 아랍어 유학하면 시리아로 보냈을 정도로 명망있는 아랍 국가였다. 주로 쓰이는 아랍어 방언은 샴 방언이나, 북동부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는 이라크 방언을 쓴다. 쿠르드족들은 쿠르드어를 사용하며 아르메니아어, 아람어 사용자도 존재한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프랑스어 사용자도 소수가 존재하지만, 레바논에 비하면 사용이 적다. 소련 시절부터 시리아는 교류와 협력이 많았기 때문에 2014년부터 러시아어가 시리아의 중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지정되었다.# 러시아어의 인기가 매우 높은 편이다.#(러시아어 원문)4. 종교
4.1. 아사드 정권 시절
"중동은 다양한 민족, 종교, 종파로 구성됐다. 그 가운데서도 시리아에는 그러한 다양성이 특히 높다. 시리아는 중동 세계의 활성단층이다. 당신이 이것을 갖고 놀고자 하면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지진이 일어난다.
바샤르 알 아사드, 2011년 12월 미국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2011년 12월 미국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시리아의 종교 분포도. 연두색은 수니파 이슬람교, 녹색은 알라위파 및 시아파 이슬람교, 주황색은 기독교, 파란색은 드루즈교, 보라색은 야지디교 우세 지역이다.
2022년 이슬람교가 62%다. 가장 큰 종파는 수니파로 48%로 다수를 차지하는 아랍계 수니파와 9% 남짓한 쿠르드족 수니파로 나뉜다. 또 시아파 인구는 14%인데, 시아파 대다수인 12%가 이 나라의 기득권층인 알라위파이며, 주로 시리아 중부와 북부 해안가에 몰려 있다. 또 이스마일파 같은 소수 시아파 분파도 있다. 그외에 종교학적으로 일단은 이슬람으로 분류하는 드루즈교 인구도 3% 있다.
또 시리아는 아랍 지역에서도 유달리 기독교 신자[3]가 많다. 2022년 시리아 국민의 13%가 기독교인이며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이들을 합치면 대략 2백만 명이 더 있다. 따라서 총 인구 비율이 약 25% 정도인 이 숫자를 모두 합치면 아랍권 제2의 기독교 나라다. 첫 번째는 약 7백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콥트 기독교도가 사는 이집트로 인구의 8~9% 정도가 기독교다. 비율로 따지면 인구의 40% 가량이 기독교도(마론파 가톨릭, 정교회,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등 다양한 종파가 있다)인 레바논이 중동 1위 기독교 나라다.
시리아는 초대 교회 시절부터 동방 기독교의 중심지 중 하나며 수도 다마스쿠스는 사도 바오로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회심한 역사적인 기독교의 성지급 도시다. 340년 안티오키아가 로마 제국의 다섯 총대주교좌 중 하나가 되면서 정교회가 크게 융성한다. 시리아 교회는 이집트 교회와 더불어 동방에서 가장 권위있는 교회 중 하나나 5세기경 합성론 논쟁으로 인해 합성론을 거부한 정교회와 합성론을 수용한 오리엔트 정교회로 분열한다. 기타 다른 기독교 종파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있으며 이는 십자군 전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리아에는 추기경도 있다. 중동에서 추기경이 있는 나라는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등 총 3곳이다.
그래도 이웃 레바논과 달리 기독교도와 무슬림 간에 두드러지는 갈등은 없고 현재도 무슬림 극단주의자가 많은 반군이 장악한 곳에서는 소수종교 박해가 있지만 수도 다마스쿠스 대부분 구역을 비롯해 아사드 정부군이 완전히 장악한 지역에서는 내전 이전과 똑같은 종교 공존이 이뤄진다. 시리아 지방의 기독교도는 아랍 민족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다지는 데 적극 참여했다. 바트당의 초기 창립 멤버를 보면 정교회와 시리아 정교회 신자가 상당히 많다. 바트당 초기 이론가인 미셸 아프라크도 다마스쿠스 출신 정교회 신자다.
기독교도가 많은 것도 아사드 정권의 영향이 크다. 아사드 일가는 이슬람에서도 극소수 종파인 알라위파이다. 시아파에 속하는 종파인데 전 세계적으로 고작 3백만 명이라는 극소수 종파로서 이슬람 대다수인 순니파(8억~9억 명)와 알라위파를 제외한 나머지 시아파(1억 정도)에게도 절대적으로 밀린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시리아에서도 알라위파 신도 수는 전체 인구 2300여만 중 고작해야 1백만 명이다. 알라위파가 자기네 종파로만 정권을 다 장악하는 건 무력이나 선거로 힘들다. 덕분에 아사드 정권은 종교적으로 세속적 정책을 취하고 다른 극소수 종교들도 인정하면서[4][5]그들의 지지를 받아내고 이를 계기로 과격파를 피로 응징한다.
이 와중에 터줏대감이지만 오랫동안 숨어서 믿어야 하던 오리엔트 정교회신도들도 당당하게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군이나 정치인, 공무원 요직에도 오리엔트 정교회 기독교인 수가 꽤 많고 공식적인 국법 상으로도 기독교와 이슬람을 동등하게 취급하며 특정 종교에 대한 우대와 차별을 금지한다. 물론 주류인 알라위파가 이슬람이라서 이슬람에 대한 실질적 우대가 있다.
또 비슷하게 세속적인 국가인 이웃 레바논과 더불어 아랍 지역 이슬람권 나라로 드물게 여군 장교가 있다. 사실 여성들을 몸 수색하려면 여성이 해야 돼 이라크나 이란도 여군 특수부대가 있고 막장인 아프가니스탄도 여군 특수부대와 여경이 있지만 시리아와 레바논은 일반 여군 장교를 인정하기에 상황이 꽤 다르다. 더불어 문화적으로 여성에게 매우 개방적이라 아랍권에선 드물게 교향악단이 있으며 여성 연주자도 얼마든지 받는다. 물론 히잡을 쓰든 말든 일절 상관하지 않아 서구적인 차림의 여성이 많다. 그런데 대다수가 알라위파 및 기독교인이다.
위의 상황이 아랍의 봄 때도 작용했다. 이집트는 토착 기독교인 콥트 정교회 신도들이 온갖 차별을 받았기 때문에 민주화 시위에 꽤 동참하고 튀니지는 원래 기독교도가 극소수라서 큰 영향을 못 끼쳤다. 시리아는 기독교인 수가 상당하며 차별이 다른 이웃나라에 견주면 훨씬 적었다. 그래서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면 시리아 기독교인에겐 이웃 강성 이슬람 국가와 다를 바 없는 끔찍한 박해가 시작될 것이 불보듯 뻔해 아사드를 지지한다. 내전이 해를 거듭할수록 이슬람 극단주의화된 시리아 반군들이 들어찬 지역에서 기독교인들이 아예 인간취급 못 받고 노예화되고 죽임당하는 걸 보게 된 뒤로는 더더욱 그렇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군부 엘리트들 다수가 알라위파이긴 하지만 무조건 알라위파=지배층, 수니파=피지배층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알라위파가 극소수라서 기독교도들과 연합해 봤자 소수파다. 당장 아사드의 부인도 수니파고[6] 시리아 내전기인 2012년부터 4년간 총리를 지냈던 와엘 나데르 알할키(Wael Nader al-Halqi)도 그렇다. 친정부 수니파들은 대체로 세속주의 성향의 도시 거주민이다. 특이점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수니파지만 아사드 지지 성향이 강고해 민병대를 조직해 반군과 싸운다. 만에 하나 반군이 내전에서 승리한다면 이슬람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아 이들도 코란에서 말하는 '위선자'라는 이름으로 학살당할 것이 뻔하다.
여담으로 시리아는 이슬람 때문에 일요일은 그냥 평일이다. 주말은 금요일, 토요일이다.
부활절과 크리스마스가 모두 공휴일이다. 부활절은 두번 보내고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만 지낸다. 다만 부활절은 일요일이라 항상 공휴일이지만 크리스마스가 금요일이나 토요일일 경우는 공휴일이 하나 날아간다.[7]
5. 스포츠
축구가 인기가 많다. 전북 현대 모터스가 2006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 2차전 이 나라의 알 카라마 SC와의 원정 경기에서 골득실차 우세로 우승했는데, 이때 시리아 관중의 열기가 대단했으며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가 직접 관전해서 알 카라마팀을 격려했다. 전북이 극적으로 우승했지만 아사드는 직접 시상대를 찾아가 전북팀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는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이때 원정 응원을 간 몇 명 안 되는 전북 서포터들은 이날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무용담 비슷하게 말한다고 한다. 참고로 알 카라마는 이후로 리그 랭킹 추락으로 AFC컵에 참가하고 있다. 참고로, 내전으로의 아픔을 축구로 평화를 꿈꾼다는 희망의 의지가 강해보인다. # 이 나라의 축구에 대한 자세한 것은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를 참조.
또한 시리아는 육상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는데 가다 쇼우아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7종경기에서 시리아 역사상 유일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농구 역시 인기가 많은 나라이다. 현재는 축구에 비해 인기가 많이 하락했지만 20세기까지만 해도 열기가 대단했으며, 이따금씩 국제대회에서 아시아 강호들을 잡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었다.
6. 영화
1908년, 알레포에서 첫 시리아 내 영화가 상영되었다. 1960년대 초반부터 문화부에서 직접 영화 관련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 때 시리아 영화계가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6일 전쟁의 여파로 민족주의적인 영화로 노선을 틀면서 정부는 영화 협회에 영화 제작 및 배급 통제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주었고 결국 1970년대 초반에 영화 관련 사기업들은 모두 문을 닫게 된다.2019년, 시리아 내전 당시 기자로 활동하던 와드 알카팁이 제작한 사마에게가 국제적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여러 큰 규모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7. 애니메이션
시리아의 첫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2005년에 나왔다. 전세계적으로 자국 극장 애니를 만들기라도 한 나라는 유럽권의 선진국들을 포함해서 정말 얼마 안되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것이다. 세계에서 애니를 가장 많이 만드는 일본과 그 다음인 미국의 애니들이 많이 수입되고 마음껏 볼 수 있는 한국에서 상상도 못하겠지만 아랍에서는 2000년대 와서야 생긴 일이다. 그동안 대중 문화를 금기시한 사우디아라비아까지도 자국 애니를 제작하고 있는 중. 제목은 The Thread of Life이며 2008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1] 악명 높았던 IS의 자칭 수도 락까를 해방시킨 주역도 시리아 민주군이었다.[2] 콩을 으깨 마늘, 고기, 채소, 올리브유를 넣어 만드는 음식이다.[3] 주로 정교회(아랍인)와 오리엔탈 정교회(시리아 정교회는 아시리아인,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아르메니아인)[4] 다만 개신교 같은 서방의 기독교는 예외라서 선교를 철저하게 막았다. 또 와하브파같은 이슬람 근본주의나 유대교의 선교도 엄격하게 금지된다.[5] 단 서방교회들중 하나인 가톨릭은 개신교와 다르게 막히지 않았는데 이유는 동방 가톨릭교회들 처럼 시리아에는 원래 가톨릭 교회 자체가 개신교와는 다르게 존재했기 때문이다.[6]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세속적이라 베일을 쓰지 않고 서구적인 차림이다.[7] 2021년은 한국과 시리아 모두 크리스마스 휴일이 날아가는데 크리스마스가 토요일이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