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01:53:47

아군 오사

아군사격에서 넘어옴
1. 개요2. 원인3. 대책4. 분류5. 사례
5.1. 제2차 세계 대전 이전5.2. 제2차 세계 대전
5.2.1. 독일군5.2.2. 미군5.2.3. 소련군5.2.4. 영국군5.2.5. 이탈리아군5.2.6. 일본군
5.3. 한국 전쟁5.4. 그 이후
6. 유사 상황

1. 개요

서방 연합군의 모든 무기가 우리를 적기로 간주하고 있었죠. 불빛이 비치고 무장 시스템에게 조준당했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헬기에 아군이라는 걸 알려주는 센서같은 IFF 장비가 붙어있긴 하지만... 그게 제대로 작동한다는 보장이 있어야 말이죠.
- 제임스 '스쿠비' 뉴턴 영국 해군 항공대 중령 - NGC '에어파이터' <헬리콥터 VS 탱크> 편
사상자 종합조사에 의하면 (치명상과 비치명상 둘 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사상자 21%는 오사 사고였고, 베트남전의 사상자는 39%, 걸프전에는 52%까지 올라갔다. 현재 진행중인 이라크전아프간전에선 각자 비율이 41%13%라고 한다.
- 존 크라카우어, 서적 Where Men Win Glory: The Odyssey of Pat Tillman에서[1]
我軍誤射, friendly fire

착각 또는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적군이 아닌 아군사격하는 행위. 쉽게 말해 팀킬. 아군 사격이라고도 한다. 아군을 상징하는 색인 파란색끼리 공격한다고 해서 'blue on blue'라고도 한다.

전장에서 아군을 인식하지 못하고 공격하는 행위는 전략적으로 매우 큰 실책이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꽤 많이 일어난다. 한밤 중에 피아 식별이 안되어 아군 끼리 서로 교전 할 수 있고, 한 밤중에 아군이 지나가는데, 무슨 소리난다고 겁나서 바로 쏘는 경우와 공군이 아군을 향해 오인 폭격도 가능하다.

2. 원인

제일 근본적인 원인은 현실은 게임과 달리 피아식별이 자동으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근접 무기라면 눈으로 상대를 바로 볼 수 있지만 , 등 사격 무기는 적이 저 너머에 있으니 무작정 쐈다가는 아군이 맞기 십상이다.

일선 병사들 입장에서는 적과 아군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난점도 있다. 특히나 과거에는 교통통신 기술의 한계로 장군 급 되는 사람들조차도 대규모 병력의 통제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장 전장에 나와있는 병사로서는 같은 부대 단위를 넘어서면 마주치는 상대가 아군인지 적인지를 알기가 매우 어렵다.[2] 여기에 더해 인간의 본성과도 관련된 문제인데 치열한 혈전 와중에서는 '아군을 쏘지 않게 조심해야지' 보다는 '난 살고 싶다!' 가 엄청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병사들은 불확실한 표적이라도 일단 모든 화력을 동원해 처리하고 나서 상황을 본다.

레이더와 각종 전자장비가 발전한 현대에 와서도 아군 오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물론 이들 장비가 없는 것보다야는 훨씬 낫지만, 스크린/디스플레이 상에 찍혀있는 점만 보고 이것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쉽게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 위치에는 아군이 없는 것이 확실" 이라든지 전자적인 피아식별장치 등으로 확인하지만 급박한 전장에서 아무리 조심을 해도 꼭 아군 오사가 발생하기 마련이다.[3] 조기경보기의 통제와 정보를 정확히 받아서 지시대로 정확하게 날린 미사일이, IFF가 정상적으로 달리고 제대로 동작하고 있는 아군 헬리콥터에다 박아버리는 등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3. 대책

은폐 측면에서 불이익이 있음에도 역사적으로 군기, 제복 등으로 아군을 표시하는 것은 아군 오사를 피하기 위함이 크다. 적이 자길 쏘는 것은 경계를 강화하여 방비할 수 있지만 아군이 오인해서 쏘는 것은 어떻게 대처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미군은 제공권을 장악한다는 특성상 병사들의 헬멧 위쪽, 기갑차량의 상면에 적외선을 반사하는 반사판을 달기도 한다. 지상의 적에게는 안 보이지만 상공의 미 공군기가 열영상으로 내려다볼 때 머리 위에 반짝거리는 것이 있으면 아군이라는 의미인데, 정신없이 행군하다 보면 흙먼지가 뽀얗게 앉는 경우도 흔하며, 전투 중에는 발생하는 연기나 흙먼지 등으로 인해 반사가 잘 안 되기도 한다.

전투기에 크게 국적 마크를 그려넣고 독특한 무늬를 그려넣기도 했으며 심지어 위장색을 포기하고 아니면 최소한 기체 밑면이라도 빨갛거나 노란 무늬를 그려넣기도 했다.

기갑차량에는 포구 방향으로 향한 지향성 발신기와 전방향에서 반응하는 수신기가 장비되어, 전장의 안개 속에서 흐릿한 표적을 조준하면 전방으로 암호화된 질문 코드가 날아가고 받는 측에서 얼른 '아군이다! 쏘지 마라!' 라고 답변하게 배려했지만, 정비 불량이라거나 암호 코드에서 에러가 났다거나 전파교란이 심하다거나 전투중에 파손되었다거나 지형이 나쁘다거나 등등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은 다양하다.

포병사격은 특성상 명중오차가 크며, 때문에 서방측 기준 40mm 대공포급은 전시에 125m 평시에 500m 안에, 105mm 야포는 전시 200m에 평시 650m 안에 아군이 없을 때만 사격한다.

4. 분류

  • Blue on blue: 아군의 공격에 의해 발생한 상황.
  • Friendly fire: 아군오사라고 부르는게 정확한 표현이며 의미상 엄청나게 완곡한 표현이다.
  • Fratricide: 문자적으로 동족살해라는 뜻이며 군사학에서 격식 갖춘 표현으로 나오기도 한다.(라틴어 Fratri 형제(여격) + cida 살인자의 합성어)
  • Fragging: 고의적인 아군 살해/암살. 상관살해로 한정한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은 어떤 아군이든 증거를 안 남기는 수법(주로 수류탄이나 뒤통수 사격)을 써서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5. 사례

아군시체들을 잘보니 피격부분이 아군이 있던 방향에 쏠려있다거나, 지상군끼리 안개 속에서 실컷 치고받고 싸우다가 안개가 걷히고 나서 보니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있더라 라는 이야기는 창칼 맞대고 싸우는 시절부터 있던일이고 교전 거리가 늘어난 이후의 전투에서는 더 가능성이 높아진다. 태평양 전쟁의 키스카섬 상륙작전 당시에 실제 발생하기도 했을 정도니 말 다한 셈. 심지어 당시 키스카섬에 있던 일본군은 이전에 다 철수한지라 한 명도 없었다고. 심지어 전투기끼리도 정신 없이 공중전을 벌이다가 쏘고 보니 아군인 경우도 제법 많다.

전투기, 폭격기들이 지상공격 중 아군 오사를 하는 경우도 물론 적지 않다. 이런 것은 눈으로 확인해도 항공기들이 워낙 빠르다보니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전선통제기 같은 별도의 항공기들이 지상의 아군, 적군을 확실히 구별해주고 특히 어느 적군부터 먼저 공격해야 하는지 동료 아군기들에게 기관포나 연막로켓 같은 것으로 지시해주기도 한다.

아래 언급된 사건 이외에도 아군 오사 사건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애초에 현대전 이전 시대의 전투 방식은 대부분 백병전이었기 때문에 난전 중에 궁병이 보병을 오사하거나 백병전에서 아군을 공격하는 일은 모든 전투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혹은 병영 내 갈등으로 인해 쌓인 원한을 우발적으로 풀기도 했다. 그나마 현대전에서나 사고율이 줄어들었다.

한국 남성 대부분이 가게되는 군대에서도 마일즈 훈련[4]을 할때 시야가 차단되는 야간전 상황이면 아군오사를 심심찮게 겪을 수 있다. 피아 식별을 위한 암구호를 빠르게 말하지 못해 사살당하는 경우부터 정말 다양한 아군오사 상황을 겪거나 목격할 수 있다.

이렇듯 야전에서는 굉장히 자주 일어나는 상황이다 보니 명백한 고의가 아닌 한, 군법으로 처벌되는 일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이런 것까지 신경쓰려면 작전 자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 기껏해봐야 조기전역이나 심하면 불명예 전역으로 책임을 묻는 정도다.

창작물에서의 사례는 팀킬/사례 항목 참조.

5.1.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 장미 전쟁 시절 바람 방향이 급격히 바뀌는 바람에 아군이 쏜 화살에 적군 뿐만 아니라 아군까지 맞아 숨지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 남북 전쟁 - 당시 남군의 명장이던 스톤월 잭슨이 밤중에 정찰 후 귀환하던 중 그의 부대를 북군인지 알고 쏴대던 아군의 공격에 맞아 전사했다. 같은 남군의 A. P. 힐이나 제임스 롱스트리트도 아군의 오사로 몇개월 간 전장을 이탈하기도 했다.
  • 스페인의 전설적인 아나키스트 혁명가였던 부에나벤투라 두루티는 1936년 11월, 마드리드 꼼플루텐세 대학 공방전에서 건물을 점령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는 도중 아군 총기에서 오발 된 총탄을 맞고 숨졌다. 그가 속했던 전국 노동 연맹 측에서는 프란시스코 프랑코군의 저격으로 사망했다고 하나, 후일의 수기, 인터뷰, 정황을 봐도 아군의 오발로 숨진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 중일 전쟁 당시 린뱌오가 일본군에게 노획한 망토를 걸친 것을 오인한 병사가 사격을 가해 린뱌오에게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

5.2. 제2차 세계 대전

5.2.1. 독일군

  • 아르덴 대공세 당시 독일 공군은 공세 지원을 위하여 보덴플라테 작전을 발동, 수백 대의 전투기와 폭격기로 연합군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들 중 적잖은 수가 아군 대공포에 격추당했다. 당시 독일군은 수세에 몰리고 있던 중이라 제공권을 완전히 잃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공포 사수들은 "하늘에 떠있는 은색 전투기는 미군 것, 얼룩무늬 전투기는 영국 것, 안 보이는 전투기는 우리 것" 이란 농담을 할 정도였고 "하늘에 우리편 전투기가 있을 리 없다. 그러므로 저건 적군" 이란 심정으로 오사를 자행한 것. 물론 지휘부에선 사전에 대공포 진지들에게 '정해진 시간에 아군 항공기가 이동하므로 사격하지 말것'이라고 통보를 했지만, 날씨나 보급 등의 문제로 인해서 이 시간을 지키지 못한 독일 공군 항공기도 있었고, 무엇보다 앞서 말한 상황때문에 대공포 부대가 겁에 질려서 무턱대고 사격한 사례도 많았다. 과거에는 이 피해가 100여 기 가깝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최신 연구로는 30~40기 가량으로 파악되고 있다. 독일 공군은 결국 이 팀킬과 작전 자체의 피해로 인해 사실상 회복 불능이 되었고, 이후 다시는 대규모 작전을 시행하지 못했다.

5.2.2. 미군

  • 괌에 주둔중이던 미군 부대 한 곳에서 박격포 영점을 잡으려고 시험 사격을 했다. 이때 반대측에 있던 부대에서는 이것이 일본군의 공격인 줄 알고 곧 해당 방향으로 사격을 퍼부었고 이내 양측간의 치열한 교전이 이뤄졌다. 결국 이 두 부대가 서로 팀킬 중이란 것을 안 것은 두 부대 모두 똑같은 아군 포병 부대에게 서로의 위치로 지원 사격을 날려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 노르망디에서 미군 폭격기 부대가 2번에 걸쳐서 아군 지상군을 오폭, 레슬리 맥네어을 포함한 241명이 사망했고 620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2차대전 중 일어난 아군 오사 중 최대 피해기록.
  • 미국의 A-36 공격기 편대가 아군 전차부대를 계속 공격해댔다. 전차부대는 아군임을 알리는 노란색 연막탄을 황급히 뿌렸지만 A-36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공격해왔다. 별 수 없이 전차부대는 대공포로 반격하여 A-36을 격추시켰다. A-36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타고 내려와 아군에게 잡혔고 왜 연막탄을 보고도 계속 쐈냐고 추궁하자 "어라? 그게 그거였어?"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일 때문에 미 육군 지휘관인 오마 브래들리가 소환되기도 했다.
  • 미국의 신형전투기 P-51 머스탱의 초기형은 독일군의 Bf109와 닮은 형태 때문에 전쟁 초반에 아군 대공포에게 팀킬을 당하는 사례가 많았다. 심지어는 아군 폭격기 기관총 사수가 오사를 한 걸 알고서 허위보고를 했는데 그게 전과로 기록된 사례까지 있다. 이 때문에 P-51은 기체에 도장을 하지 않았고, 은빛날개 머스탱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이 때문에 독일 대공포병들 사이에 유행하던 농담 '위장색 전투기는 영국 공군 전투기고, 은빛 전투기는 미군 전투기고, 투명색 전투기는 독일 전투기이다'라는 농담이 생겼다.
  • 미군 폭격기들은 상하로 고도차이를 두고 밀집대형을 했는데 폭격 중에 대형을 잘못 맞추면[6] 위쪽 폭격기에서 떨어진 폭탄이 아랫쪽 폭격기를 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보통 폭발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지만(폭탄은 폭격기로부터 일정거리 이상 떨어져야 신관이 활성화된다) 100kg 넘는 쇳덩이에 부딪히는 셈이기 때문에 맞은 부위가 부러져 나가거나 해서 추락하는 경우도 있다.
  • 과달카날 해전에서는 야간에 전투가 벌어진 탓에 팀킬이 발생했다. 대니얼 J. 캘러헌이 탑승한 중순양함 샌프란시스코는 어둠 속에서 적이라고 생각되는 대형 구축함이 흐릿하게 포착되자 포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그 대형 구축함은 미군 경순양함 애틀랜타였고, 하필 포탄이 함교에 명중하는 바람에 애틀랜타에 탑승했던 노먼 스콧이 사망했다.
  • 아이오와급 전함 1번함 아이오와는 어뢰사격 훈련을 하던 플레처급 구축함 윌리엄 D. 포터가 발사한 실탄 어뢰에 맞을 뻔했다. 항해 중 이루어진 모의 발사 훈련인데, 어뢰 담당자가 발사관을 비워두지 않은 것이다. 당시 훈련을 위해 무선침묵이 시행중이라 윌리엄 D. 포터는 발광신호를 보냈는데, '어뢰가 아이오와 반대편으로 발사됨' , '어뢰가 전속으로 후진중' 등으로 잘못된 신호를 보내서 결국 무선침묵을 해제하고 무전으로 어뢰 발사 사실을 전했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아이오와에는 대서양을 건너 테헤란 회담에 참석하려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탑승 중이었다.[7] 일단 아이오와가 어뢰를 회피한 후, 윌리엄 D. 포터는 즉시 함대에서 쫒겨나 버뮤다의 해군 기지로 귀환해야 했고[8] 기지에 도착하자 마자 승무원 전원이 군사경찰대에서 엄격한 심문을 받아야 했고, 직접적으로 근무태만 책임을 면할 수 없던 어뢰 담당자가 노역형 14년을 선고받았지만 이외에 큰 처벌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사고일 뿐이니 관대히 처분해 달라고 탄원한 루즈벨트의 개입이 있었다고도 하는데, 이 덕에 당사자 외에 피를 본 사람은 없었지만 이후 윌리엄 D. 포터를 만나는 미군 함선들은 '쏘지 마라! 우리는 공화당원이야!'(루즈벨트는 민주당 출신)라는 드립을 쳐댔다. 윌리엄 D. 포터는 이 항해를 떠나던 날에도 닻을 다 올리지 않고 출항해서 옆에 있던 배가 닻에 걸려 파손되었고, 어뢰사건 전날에는 실수로 대잠 폭뢰를 터트려서 유보트의 습격이라고 여긴 함대 전체가 포터가 자백할 때까지 회피 기동을 하게 했으며, 이 때 터진 폭뢰로 인한 물살에 수병 하나가 휩쓸려 실종되고 엔진실 일부 침수로 속도가 저하되며 함대에서 뒤쳐지는 등, 킹 제독의 혈압을 지속적으로 올려주고 있었다. 태평양 전역에서는 아군 구축함인 USS 루스를 대공포로 쏘아 파손시키기도 했지만, 정작 윌리엄 D.포터는 카미카제의 직격을 받고도 승무원은 거의 다치지 않은 채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를 함생을 마무리했다.
  • 아르덴 대공세 당시 실전을 치렀던 M24 채피의 형상이 측면에서 볼 시에 판터와 매우 흡사했기에 깜짝 놀란 포병, 전차병들이 사격하는 바람에 아군 오사로 격파되거나 피해를 입은 차량이 많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상층부에서 노발대발하면서 벨기에, 프랑스에 배치된 인원들에게 신형 전차 교육을 실시했다.
  • 연합군이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상륙할 때 근처에 있던 연합군 지상군과 전투함들에게 독일군 전투기들과 폭격기들이 공격을 퍼붓고 사라졌다. 이후 연합군의 수송기들이 추가병력을 태우고 그 근처를 지나갔는데 "아까 그놈들인가보다!" 하고 지상과 해상에 있던 연합군은 증원된 대공포들을 아군 수송기들을 향해 발포했다. 그 결과 144대의 수송기 중 33대가 추락하고 37대가 파손되었으며 318명의 사상자가 나오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이 상황은 게임 메달 오브 아너: 에어본의 첫번째 미션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 태평양 전쟁 당시 알류산 열도의 키스카 섬을 일본군이 점령하였는데, 이후 1943년 미군이 이를 탈환하기 위해 상륙작전을 펼쳤다.이 때 미군은 313명이 사망하고 2500여명이 부상당하는 제법 큰 피해를 입었다. 문제는, 이 사상자들은 사실상 전부가 아군 오사였다. 미군이 상륙하기 전에 일본군은 이미 기무라 마사토미가 이끄는 구출 함대를 타고 완전히 철수한 상태였다. 섬에 남은 것이라곤 일본군이 매설했던 지뢰와 기뢰 약간, 그리고 개 3마리 뿐이었다.
  • 진주만 공습 당시 뒤늦게 대응에 나선 미군 항공대 전투기들 중 일부는 공습으로 혼란에 빠진 대공포들이 마구잡이로 쏜 포화에 맞아서 격추당하기도 했다. 이중에는 하와이 지상기지의 항공대 뿐만 아니라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의 함재기들도 일부 포함되었다. 당시 엔터프라이즈는 웨이크 섬에서 진주만으로 복귀하다가 공습 소식을 듣고 함재기를 띄워서 일본 함대를 수색하고 있었다. 이 함재기 중 일부는 엔터프라이즈로 복귀하지 않고 하와이 지상기지로 복귀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공포에 맞아 격추당한 것이다.

5.2.3. 소련군

  • 오사라고 보기에는 미묘하지만 과거 2차대전 때 소련은 형벌 부대라 하여 형무소나 기타 갖은 이유의 죄명으로 끌려온 인원들, 심지어 적에게 포로로 잡혀있다가 탈출한 병사까지 조국을 배신했다는 명목으로 끌려가서 형벌 부대로 편성하고 가장 위험한 곳의 총알받이로 사용했으며 만약 이 형벌부대가 전장에서 도망치기라도 하면 뒤에서 대기 중인 소련군의 독전대가 형벌부대에게 자비없이 기관총을 사격해댔다. 이로 인해 형벌부대의 6만명 정도가 아군, 즉 독전대의 손에 죽어나갔다.
  • 소련군은 독일군의 전차를 격파하기 위해 대전차 견이라는 무기를 만들었다. 폭탄을 단 개를 훈련시켜서 독일 전차의 아래에 기어들어가게 한 후 폭탄이 폭발, 독일 전차를 격파하는 대전차 병기이자 자폭 병기였는데, 개들이 격파한 것은 소련 전차였다. 소련 전차로 훈련한 탓에 소련 전차 아래로 기어들어가서 폭발한 탓이었다.
  • 소련군이 티거 전차 한 량을 멀쩡하게 노획한 적이 있는데, 이 때 소련군 병사들이 이를 타고 독일군 점령지를 박살 내고 돌아오다가 깜빡하고 아군 표식을 칠하지 않은 탓에 적군 중전차가 갑자기 기지로 들이닥치는 걸 보고 혼비백산한 소련군이 야포를 날려 파괴시킨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지만 전차장 노릇을 했던 올렉산드르 므나차카노프 소위는 급한데로 속옷을 벗고 전차 바깥으로 뛰쳐나와 막대기에 걸며 항복 의사를 표해야 했다.

5.2.4. 영국군

  •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셰필드가 앞장서서 정찰하고 뒤이어 아크로열에서 소드피시 뇌격기들이 출동했는데, 셰필드에게 내려진 명령이 아크로열과 상관없다며 무시한 소드피시들이 셰필드를 비스마르크로 착각하고 그대로 뇌격을 가했으나 어뢰의 성능 불량과 셰필드의 회피기동으로 간신히 팀킬은 피하게 되었다. 만약 뇌격이 성공했다면 후드가 격침되고 이후 과정에서 아군 오사로 경순양함 하나를 또 날렸을 테니 영국 해군 입장에서는 이미 구겨진 자존심이 더 완벽히 무너질 뻔했다.
  • 프랑스 전역 이후 대립상황에서, 프랑스의 독일 항공기지를 폭격하려던 영국 공군 폭격기가 길을 잃고 헤메다가 구름이 걷힌 순간 발 아래에 활주로를 발견했다. 신나게 폭격하고 연료 부족으로 주변에 기체를 불시착시킨 뒤 소각하고, 권총을 뽑아들고 비장한 심정으로 은신했는데 머리끝까지 화가 난 영국군 장교가 잡으러 왔다고. 도버 해협도 안 건너가고 빙글빙글 돌다가 독일 공군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영국 남부의 항공기지를 폭격한 것이다.
  • 영국의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는 자기들끼리 격추시키기도 했다. 그러니깐 스핏파이어가 스핏파이어를 오인 사격한 것. 물론 타 전투기와 대공포에게도 오사당했다. 그리고 스핏파이어의 첫 격추는 적기로 오인한 아군 허리케인 2대를 격추시킨것으로 기록되었으며 이날 아군 대공포에 의해 스핏파이어도 첫 격추를 당했다.
  • 2차대전 후반의 영국의 글로스터 미티어전투기도 많이 당했다. 이는 당시 제트 전투기가 매우 희귀한 존재인데다 그나마도 독일의 Me 262가 더 많았기에 자주 팀킬을 당하자 이걸 방지하고자 도색을 다르게 하는 노력도 했다.

5.2.5. 이탈리아군

  • 이탈리아의 아프리카 군 사령관이었던 이탈로 발보는 폭격기를 개조한 정찰기에 타고 아군의 진영(리비아 상공)을 순찰하던 중 이것을 적의 정찰기로 오인한 이탈리아 순양함의 대공포의 사격에 맞아 격추당해서 사망했다. 당시 이탈로 발보와 무솔리니의 사이가 안 좋았던 때라 무솔리니의 지시에 의한 암살이라는 음모설이 돌기도 했었다.
  • 타란토 공습에서 이탈리아군은 영국군의 페어리 소드피시 뇌격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대공포를 쐈는데, 그 포탄이 이탈리아군 군함과 시설들에 떨어져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덤으로 이탈리아군이 격추시킨 소드피시는 딱 2대 뿐이었다.

5.2.6. 일본군

  • 모가미급 중순양함은 4척이 건조되었는데, 1번함 모가미는 자바 상륙작전 중 미군 중순양함 휴스턴을 잡으려고 어뢰를 쐈다가, 일본군 수송선들을 무더기로 격침시켰다. 그 중 하나는 일본 육군 소속의 강습상륙함 신슈마루였고, 자바 방면 사령관인 이마무라 히토시가 바다에 빠졌다. 겨우 살아난 이마무라 히토시는 일본 해군이 육군의 상륙작전을 헌신적으로 지원해줬다는 이유로 이 사건에 대해 크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한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모가미급 4척이 제 7전대로서 참가했는데, 일본군이 대패했으니 후퇴하라는 명령을 받고 돌아가던 중 미군 잠수함을 만났다. 기함인 모가미급 4번함 쿠마노는 변침 지시를 내렸지만, 45도 변침을 명령해놓고 90도 변침을 하는 바람에 제 7전대는 대혼란에 빠졌고 모가미와 미쿠마가 충돌사고를 일으켰다. 미쿠마는 이후 미군의 공습으로 격침되고, 모가미는 겨우 살아서 일본으로 돌아왔다. 지휘를 개판으로 했다가 아까운 중순양함 한 척을 날려먹고 한 척을 대파시킨 것이다.
문제의 쿠마노는 이후 사마르 해전에서 구리다 함대의 선두를 맡아 돌격하다가 미군 구축함 존스턴에게 피해를 입어 함수가 날아가면서 속도가 크게 떨어졌고, 쿠마노를 피하려던 모가미급 3번함 스즈야가 속도를 늦추고 선회하다가 미군 공습으로 박살났다. 이것으로 쿠마노는 3척에게 오사했다. 이 해전에서 모가미는 니시무라 함대 소속으로 참가했다가 미군 전함들의 공격으로 함대가 괴멸되고, 구축함 시구레와 함께 후퇴하던 중 시마함대 기함인 묘코급 중순양함 나치의 충각공격을 당해 침몰했다. 모가미급 4척 모두가 팀킬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라는 점에서, 실로 보기 드문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이후 쿠마노와 나치 역시 일본으로의 탈출에 실패하고, 미군의 공격으로 침몰했다.
  • 묘코급 중순양함 묘코는 엠프레스 오구스타 만 해전에서 미군의 포격을 피하다가 일본 구축함 하츠카제를 들이박아 대파시켰고, 하즈카제는 미군의 포격까지 맞고 침몰했다. 묘코의 자매함인 나치도 모가미를 충각공격으로 침몰시키고 자기도 대파된 후 미군에게 침몰했다.
  • 아라시는 제 4구축대의 일원으로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했는데, 일본 함대 주변에 나타난 미군 잠수함을 쫓기 위해 잠시 함대를 이탈했지만 잠수함 격침에는 실패하고 귀환했고 이 과정에서 큰 항적을 남겼다. 그런데 그 항적을 본 미군 급강하폭격기들이 졸졸 따라와서 일본 함대를 공격했고,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운명의 5분이었다. 아라시가 직접 포탄이나 어뢰를 일본 항모에 쏜 것은 아니지만, 차라리 그 편이 낫다 싶을 정도로 일본 함대에 입힌 피해가 막심했기에 일본군이 저지른 아군 오사 사례 중 대표가 되었다.
  • 야마토급 전함 1번함 야마토는 필리핀 해 해전에 출전해서 일본 비행기들을 팀킬했으며 2번함 무사시는 주포로 대공사격을 한답시고 자기 대공포 사수들을 날려버렸다.
  • 토네급 중순양함 2번함 치쿠마는 네덜란드 화물선을 잡는다며 함대 기함 아카기를 향해 포격을 가했다. 포탄 자체는 아카기의 함교 위를 넘어갔지만 함대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는 기겁해서 포격 중지를 명령했다. 그러나 치쿠마는 네덜란드 화물선이 격침될 때까지 계속 포격했다. 전공을 탐해서 고의로 아군의 머리 위로 포탄을 쏜 데다가 사령관의 명령까지 무시했으므로 '실수로 아군을 잡는' 아군 오사와는 의미가 좀 다르다. 그러나 미드웨이 해전에서 1번함 토네와 2번함 치쿠마 모두 정찰에 실패하면서 일본 함대를 혼란에 빠뜨린 끝에, 정말로 아카기를 포함한 4척의 일본 항공모함이 침몰하고 만다. 이 일로 두 배는 "너희들 때문에 패배했다"며 엄청나게 눈총을 받았다.

5.3. 한국 전쟁

  • 6.25 전쟁 초반 춘천-홍천 전투 중 춘천을 점령한 북한군 2, 7사단 병력들끼리 교전한 일이 있다. 이는 서로의 총기가 달라[11] 야음 속에서 난 오발을 국군 특작조가 낸 것으로 오인해 벌어진 일이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조.
  • 전의 전투 당시 미 전투기들은 미 24사단 장병들을 향해 기총사격을 가했고, 이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비가드 종군 기자에게도 목격되었다.
  • 청주 전투에서도 미 전투기들은 공산군을 한바탕 쓸어버린 뒤 국군 진지에도 날아와 공평하게 공격을 가했다. 그것도 한두번도 아니고 수차례를 가했다.
  • 영천·신녕전투 당시 칠보산 곤제봉의 국군 17연대 2대대의 특공대가 정상부를 확보할 때 관측반이 포격을 곤제봉 정상부에 집중시키는 바람에 특공대가 전멸하고 만다.
  • 인천 상륙 작전 당시 압도적인 화력 속에 노출된 북한군들의 실적은 아군 오사 1명이 전부였다.
  • 평양 탈환작전 당시 1사단 11연대가 자기네 영역을 멋대로 침범해온[12] 7사단 8연대를 향해 대전차포를 난사해 피해가 났다.[13]
  • 백석산 전투 당시 7사단 3연대를 화력지원하던 미군 전차의 전차포가 백석산 정상부를 공략하던 8연대 2대대 행렬을 덮쳐 폭심지에 있던 7중대를 포함해 많은 사상자가 났다.
  • 1951년 6월 한국계 미군인 김영옥의 부대는 진격 도중 같은 미군 포병대대의 포격을 받고 김영옥 자신도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는데, 너무 북쪽에 있어서 아군으로 위장한 적군인 줄 알았다고 했다.
  • 이것 말고도 한국군과 미군(+유엔군) 사이에선 팀킬이 빈번했다. 전쟁 초기 국군은 주간 뿐만 아니라 야음을 틈타 이동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미군의 오인 사격을 당하곤 하였다.[14] 게다가 영어에 능숙한 장교도 적었고, 설령 그런 이들은 통역을 위해 상급 부대에 배속되었기에 일선 부대들은 윗선으로부터 지시받거나 문의해 타군과 협동 작전을 해야 했다.

5.4. 그 이후

  • 1963년 6월 26일, 영국군이 박격포 훈련 도중 실수로 위를 지나던 벨기에군C-119를 명중시켜 38명이 사망했다. 자세한 내용은 데트몰트 벨기에 공군 C-119 추락 사고 참고.
  •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VS 계엄군 간의 오인 교전이 두 차례 발생하였다. 당시 광주에 있던 여러 진압 부대들 간의 지휘체계가 일원화되어 있지 않았던데다가 이들 부대의 통신 주파수도 서로 달랐기 때문에 여러 부대들이 서로의 존재 및 다른 부대들의 현재 위치와 작전상황 등을 파악하지 못하여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두 사건 다 전투부대가 아닌 전교사(전투교육사령부)[15] 소속의 미숙한 인원들이 당황하여 저질러버린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첫번째는 1980년 5월 24일 토요일 오전 09시 55분 호남고속도로 광주인터체인지 부근에서 부대로 복귀하던 육군 31사단 96연대 3대대 병력이 무장시위대의 사격을 받자 이제 대항하여 응사하면서 고속도로로 진행하던 중 이들 31사단 병력을 시위대로 오인한 전교사 예하 기갑학교 병력이 오인사격을 가하여 사병 3명이 사망하고 민간인 2명과 군인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 두번째는 같은 날인 5월 24일 오후 1시 55분, 남평 효천역으로(현재는 나주시로 편입) 이동하던 11공수여단 63대대 병력을 근처에 매복하고 있던 전교사 보병학교 소속 교도대 병력이 군 차량을 탈취한 시위대로 오인하여 대전차 파괴무기인 90mm 무반동총 4발을 포격하여 선두 장갑차와 후속 트럭에 명중시켰고 곧바로 소총과 수류탄에 의한 기습공격도 가했다. 이로 인해 장갑차와 트럭이 폭발하면서 거기에 탑승하고 있던 병력 중 9명이 즉사하고 33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를 무장시위대의 공격으로 생각한 생존 대원들이 포격이 날아온 매복지로 쳐들어가 1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했으나 이들을 신문해보니 시위대가 아니라 국군 전교사 예하 교도대였다. 결론적으로 같은 국군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오인사격이 되어버렸지만, 원래 의도는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소속의 군인들도 시민 시위대들을 포격과 수류탄 등으로 공격하려 했었다는 점에서도 충격적이다. 광주 서방시장 부근에서도 오인교전이 있었다는 목격담이 있으나, 사실 여부와 사상자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 F-15 전투기는 공중전에서 딱 1번 격추당한 적이 있다. 바로 팀킬에 의해. 자위대 소속 F-15J 전투기 1대가 아군 F-15J가 발사한 AIM-9에 맞아 격추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다행히 조종사는 비상탈출에 성공). 처음에는 안전장치의 전기적 결함으로 의심되었으나 미사일을 발사한 전투기의 조종사를 계속 추궁한 끝에 이 조종사가 규정대로 하지 않고 안전장치를 푼 상태로 미사일을 조작하다가 실수로 발사버튼을 눌러버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베트남 전쟁 당시 대략 8000명이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1967년 7월 베트남전이 한창일때 있었던 일화로 샘 지대공 미사일을 제압하는 4대의 A-4 스카이호크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F-8 크루세이더들의 이야기이다. 방공망 제압을 하던 스카이호크들은 곧 8대의 MiG-17과 맏딱뜨리게 되었고, 그들을 엄호하던 크루세이더들은 미그들과 교전에 들어가게 된다. 도중 커크우드 소령과 그의 윙맨인 필립스 뎀페울프 대위가 미그기의 꽁무니를 같이 쫒아가게 된다. 커크우드는 미그기에게 미사일을 발사하여 맞추는데 성공하였으나 불발이였는지 미그기는 그대로 날아가게 된다. 문제는 그의 뒤에 있던 뎀페울프 또한 미사일을 발사하였는데, 뎀페울프의 미사일은 커크우드의 크루세이더를 따라가게 되었다고 한다. 뎀페울프의 사이드와인더가 커크우드의 크루세이더의 배기구를 향해 곧바로 따라가자 뎀페울프는 당황하여 곧바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조준, 사이드와인더에 또 다른 사이드와인더를 발사하게 된다.''' 잘못하면 커크우드의 비행기에 2기의 미사일이 꽂히는 대형사고가 터질수 있었으나 다행히도 처음에 커크우드를 따라가던 미사일은 근접신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폭발하진 않았지만, 커크우드의 크루세이더의 우현 엘레베이터를 날려 버림과 동시에 주익 아래로 스쳐가며 큰 상처를 내버리고, 두번째 미사일은 뜬끔없이 커크우드가 쐈던 미사일에서 살아남은 미그기를 향해 날아가 폭발하여 미그기를 격추시키게 된다. 이들은 모두 귀환에 성공하였으며, 그 광경을 지켜봤던 슈워츠 중령은 커크우드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보고하였으나 커크우드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너그럽게 넘어갔다. 그리고 뎀페울프는 0.5킬을 주장하였다고 하며, 이는 받아들어졌다고 한다.
  • 터키는 1974년 키프로스를 침공할 당시 구축함 한 대를 아군 항공기의 오사로 잃었다. 54명이나 죽었으며 게다가, 아군이라고 다급하게 통신을 보냄에도 그리스군이 터키군으로 위장한 것으로 오인하여 욕으로 응답했다. 이 사건으로 군사재판을 벌여 발포 명령을 내린 장성들, 장교들이 대거 처벌받고 군에서 내쫓겨났다. 그런데 적군이던 그리스군도 아군이던 남키프로스군의 오발로 수송기 2대가 격추되었다. 당황해서 적군인지 알고 확인도 안하고 쏴서 격추했더니 그리스군이었다고. 덕분에 33명 그리스군 특공대원이 아군에게 죽었다. 이건 남키프로스군이 벌여서 터키랑 달리 처벌도 하지 못했다.
  • 포클랜드 전쟁 중 아르헨티나 소속 A-4 공격기 1대와 미라지3 전투기 1대가 동시에 격추당했는데 둘 다 아군 대공포에 의한 것이었다. 게다가 미라지3 전투기는 영국군의 전투기와 교전 중 심각한 손상을 입은 채로 겨우겨우 도망오던 중이었다.[16]
  • 아르헨티나 소속 A-4 공격기 1대가 같은 아르헨티나 소속 함정에게 폭격을 가했다. 다행히 폭탄은 불발되어 사상자는 없었는데 사실 아르헨티나 함정의 대부분은 전쟁 상대인 영국 해군 소속 함정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으며 아마 전쟁 전에 AV-8까지 도입되었다면 공중에서의 오사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 걸프 전쟁 당시 사막의 폭풍 작전기간 동안 M1A1 에이브람스가 적 기갑부대를 보이는 즉즉 고철로 만들었는데, 문제는 이 '적 전차' 중엔 에이브람스를 지원하기 위해 온 M2 브래들리도 상당했고 종종 같은 에이브람스끼리 오사했던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 1994년 4월 14일 이라크에서는 E-3의 관제를 받으면서 비행금지구역을 초계비행하던 미군 F-15C 전투기가 암람으로 이라크군의 러시아제 Mi-8 헬기가 아니라 UN 직원들과 쿠르드족 지도자 일행을 태운 UH-60 블랙 호크 헬기를 격추시켜 버렸다. 당연히 F-15C는 E-3의 명령에 따라서 암람을 발사했을 뿐이다. 이 관제를 맡은 E-3는 다음 해인 1995년 캐나다기러기와의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추락해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약 오십일간의 작전기간 동안 다수의 장교, 병사, 예비군이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희생된 사례가 있다.
  • 1999년 얼라이드 포스 작전 당시 NATO 소속의 마이크 샤워 대위가 몰던 F-15CF-117을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유고슬라비아 소속의 MiG-29가 해당 공역을 침범해서 교전했는데 당시 F-15C가 MiG-29를 향해 AIM-120을 2발 쐈지만 둘 다 빗나갔으며 이 때 둘 사이에는 F-117이 끼어 있는 바람에 하마터면 F-117을 격추할 뻔했다. 결국 F-15C 측에서 F-117에게 교전 중이니 앞에서 비키라는 말을 했고 3발째 쐈을 때 겨우 MiG-29를 잡을 수 있었다. 미사일 만능주의를 반박할 때 자주 거론되는 예시.
  • 2000년 체첸에서는 러시아군이 임무 교대를 위해 온 아군 부대를 적으로 오인하여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체첸군의 소행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가 나중에 발각됐다.
  • 2003년 3월 23일 영국 공군 소속 파나비아 토네이도 전폭기가 미군 패트리어트 미사일 포대에서 발사한 미사일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 다음 날 미 공군 F-16 전투기가 패트리어트 포대를 향해 對레이더 미사일을 발사, 파괴해버렸다. 열흘 후 또 다른 패트리어트 포대가 미국의 F/A-18을 격추해버렸다.
  • 2003년 이라크 침공이 한창일 때 미국 주방위군 소속 A-10이 영국군 장갑차를 오폭한 것이 2007년 영국 언론지를 통해 유출된 적이 있었다. 다음 동영상 참고. 해당 사건에서 미국이 사고조사에 상당히 비협조적으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FAC자격이 있는 영국군 조사관이 참여한 사고 조사에서 사고의 원인은 조종사들의 착오 및 독단적인 의사결정과 업무태만, 식별 및 교전절차 미준수[17] 비롯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사고를 일으킨 POPOV36 조종사 Gus Kohntopp[18]에 대한 재판이 영국에서 열렸지만 미국측 증인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미 국방부는 별 다른 군법회의나 징계조치 없이 자체 조사 후 "비극적 사고"라고 결론짓는 성명만 내놓았다.#

  •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당시 러시아군은 자국 Su-25를 조지아 공군 소속으로 오인해 최소 2기 이상 격추시켰다.
  • 군사 작전의 오발 사고보다는 방범 활동에서 가끔 벌어지는 실수로 경찰견이 다른 경찰을 무는 일이 있다. 성격이 다급한 경찰견의 경우 급박한 상황에서 흥분하면 공격성이 발동되어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물어버리기 때문. 다행히 (흥분했기 때문에) 목을 노리고 제대로 무는 게 아니고 방범 활동을 하는 경찰은 방호구를 착용하기 때문에 사망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해외 토픽을 보면 이런 사례가 드물게 올라온다. 오발보다는 과실에 가까운 행위이지만 실수의 한 종류로 간주하는 듯. 동물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고 피해가 크지 않아서 농담거리로 많이 쓰인다.
  • 대체적으로 미 공군에서 오폭사고가 잦은 이유가 각성제 복용, 즉 마약 복용 때문이란 이야기가 있다. 실제 걸프 전쟁 당시 미군과 연합군의 사망자 가운데 1/4이 오폭사고였으며 이때 절반이 넘는 미군 조종사들은 과도한 약물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렸다고. 규정보다 많은 비행 이유도 있고 군의관들은 알면서도 각성제를 처방. 아예 #, 군의 수뇌부들이 요구하기도 했다.
  • 또 이라크 침공 때의 사건. 이번에도 가해자는 미 공군 소속 A-10 공격기. 이번의 희생자는 미 해병대로, 길을 잘못들어서 습격당했던 육군 정비중대를 구출하고 원래 작전 목표인 나시리아 점령을 위해 반군과 교전을 벌이다가 3개 중대로 갈라져서 시가전에 말려들었다. 그러다가 B중대 항공통제관이 공군 A-10 공격기를 호출했는데, 중대간의 통신상황이 좋지 못하여 A-10은 해병대 C중대를 반군으로 판단했고, 역시 C중대가 그 지점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B중대 항공통제관이 공격 허가를 내리고 말았다. GAU-8의 공격을 받은 C중대는 순식간에 큰 피해를 입었으나, 겨우 통신상황이 호전되어 A-10의 마무리 공격은 피할 수 있었다.
  • 미국은 1992년 터키와 합동 군사 훈련 중 실수로 항공모함 새러토가에서 시스패로우 미사일을 발사하여 터키측 알렌 M. 섬너급 구축함 무아베네트의 함교를 직격, 함장을 포함한 사망자 5명을 내는 피해를 입혔다. 미군은 곧 사과하고 개별 보상금과 별도로 터키에게 당시 퇴역하고 있었던 녹스급 호위함(그래도 197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2차대전 때 만들어진 구형 무아베네트보단 훨씬 좋았기에 이 호위함이 무아베네트 이름을 이어받았다)을 무상으로 건네주었다.[19]
  • 별의별 곳에서 미군이 하도 많은 아군 오사를 일으킨 탓에 오죽하면 같은 동맹인 영국에서조차 '미군기는 우리가 동맹군임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오기 전까지는 미친 카우보이놈들마냥 우리를 공격한다' 라는 쓴소리까지 했다. 하지만 사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사고는 많다. 사실 이는 미군의 화력이 압도적이라 한번 발생하면 피해도 많고, 또 세계급으로 전쟁도 여기저기 많이 하다보니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일 뿐.
  • 매우 당연하게도 상기 사례들과 같이 오인사격은 정형화되고 잘 조직된 전문적인 군대일지라도 충분히 발생 할 수 있는 문제임을 알려주고 있다. 즉, 바꿔 말하면 상호연계 체계도 부실하거나 없다시피한 급조 무장 세력들 간에 발생하는 오인사격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백 번의 전투 중에 열 번의 오인 사격이 발생하는 쪽과, 열 번 중에 예닐곱 번을 발생시키는 쪽을 비교할 때, 단순한 횟수 차이가 아닌 비율적 차이를 기준으로 삼고 판단해야 한다.
  • 아직 미국이 이라크와 친하던 시절인 1987년 이라크의 미라지F1 전투기 1대가 미국의 전투함에게 엑조세 대함미사일 두 발을 날렸다. 미 해군 호위함을 이란의 배로 잘못 알았던 것. 다만 해당 조종사에게 징계는 커녕 잘했다면서 훈장과 같이 1계급 진급까지 준 점 등을 이유로 들어 계획된 일이 아니었냐는 의견도 있다. 이 미군 전투함인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호위함은 미사일 접근 사실을 알고 요격하려 했으나 하필 이 배가 저가형으로 만든 것이라 CIWS로 사용하는 팔랑스의 사각지대에 미사일이 접근한 것. 이 사고로 37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부상당했으나 당시 미국으로선 이라크가 주요 우방이었기에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이라크는 어머 미안해라면서 6천만 달러가 넘는 돈을 보상금으로 주었지만 1989년 미 해군 순양함이 이란 여객기를 군용기로 오해하고 격추시킨 USS 빈센스 함 사건에 그 돈을 덧붙여서 6180만 달러를 이란에게 보상금으로 내줘야 했다. 뭐 나중에 미국은 이라크와 4년 뒤면 서로 치고받고 싸우게 된다.
  • 지상전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해상에서도 발생했다. 야간에 소속불명 선박이라고 해서 공격했는데 해가 뜨니 한국기를 단 한국 군함(6.25 전쟁 이전 고생고생해서 사온 백두산함 3척 가운데 1척)이었다. 미국은 나중에 사과하면서 훨씬 좋은 군함을 무상제공하여 보상하긴 했다.
  • 환태평양 국가들간의 공동훈련인 림팩96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구축함이었던 유우기리함은 표적기 대신 표적기를 예인하던 A-6 인트루더를 팰렁스 CIWS로 격추시켰다(승무원 4명은 모두 무사히 탈출했다). 일본이 기록한 태평양 전쟁 이후 최초의 미군기 격추 전과. 나중에 이 사실을 조사해보니 포술장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함장이 무시하고 발포명령을 내려서 벌어진 사고였다.
  • 시리아 내전 공중전에서도 전후무후한 팀킬이 벌어졌는데 2018년 9월 20일 시리아 반군을 압박하던 러시아 공군소속 II-20 전자전기가 시리아 정부군의 S-200에 격추되었다. 원인은 다름아닌 이스라엘 공군 F-16 4기 편대가 시리아의 라타키아 지역을 공습 중이었고 이에 대응하던 시리아군의 방공 시스템에 애꿏은 러시아군 전자기가 격추된 것. 뭔가 말이 안 맞는다 싶지만 그 원인은 이스라엘 F-16 전투기가 S-200의 레이더에 포착 당했으나 전투기 편대는 재빨리 옆에 있었던 러시아 공군의 II-20 근처로 이동하여 프렌드 실드 삼아 S-200의 사격통제 레이더에 더 크게 나타난 IL-20이 락온되게 냅둔 후 자국 공군기지로 재빠르게 도망쳤고 아무것도 모르는 시리아 방공군은 F-16이 도망간 걸 파악 못한 채 애꿏은 동맹군의 II-20만 격추시켜 15명의 사망자를 냈다. [20] 격추 이후 푸틴은 매우 격노했으나 즉시 이스라엘 총리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애도를 표했다.
  • 2017년 필리핀군이 반군 토벌 과정에서 마라위에서 공습을 가했는데 구형 공격기로 공습을 가했으나 오폭으로 아군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결국 FA-50을 동원해 재공습에 나섰다.
  • 2016년 자위대 소대 30여명이 훈련을 나가면서 실수로 공포탄 대신 실탄을 장전해서 79발을 쏴댄 사례가 있다. 불출받아 장전해서 쏴댈 때까지 공포탄이 아니라는 걸 몰랐다고 했다. 덤으로 사상자는 파편에 의한 경상 2명뿐이라 다행이긴 한데 한발도 못맞춘 거냐는 말도 나왔다.

6. 유사 상황

위에서 다루었듯 포병은 아군 오사의 위험이 많아 적이 접근하면 공격을 멈추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적군이 아군 거점을 포위하거나 돌파해 진내가 위태로울 경우 데인저 클로즈 신경쓰지 말고 쏟아부으라고 요청하는 '진내사격'도 있다. 물론 이것도 현장에서 요청하면 숭고한 희생으로 평가받지만, 상부가 멋대로 해버리면 결과를 떠나서 상당히 잔혹한 행동으로 평가받는다. 창작물 뿐만 아니라 실제 전쟁사에서도 있었고 여론도 비슷했다.

파손 혹은 보급부족으로 사용할 수 없는 장비나 운용인원을 초과하는 잉여장비를 가지고 갈 수 없을 때 적에게 넘겨주느니 스스로 파괴하는 경우는 본문에서 설명하는 '팀킬'이나 '아군 오사'라고는 볼 수 없다.



[1] 통계적 오류에 빠질 염려에 첨언하자면, 군인들이 오인사격을 점점 더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미군사의 입장에서 보면 향상된 방탄장구 및 의료체계의 보편화(이전에는 100% 죽을 상황의 환자를 팔다리 잘라 놓는 선에서 살려놓는다던가)로 인해 적의 사격에 의한 피해는 줄어들고 있어서 전시 사상자 중 오인 사격에 의한 비율이 올라가는 것 뿐이다.[2] 그래서 아무리 병력을 많이 모아도 통제에 실패하면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갈팡질팡하다가 기껏 모은 대군이 와해되는 경우도 많았다. 전근대 전투에서 병력이 많은 쪽이 황당할 정도로 대패를 하는 때가 적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3] 그래서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F-4 전투기들은 아군 오사가 여러번 나서 AIM-7 스패로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하고도 "반드시 눈으로 적기를 확인한 후 발사할 것" 이란 명령을 받는 통에 AIM-7의 사거리 상의 이점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기술을 신뢰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판단한 예라고 할 수 있다.[4] 총과 몸에 레이저 센서를 달아 공포탄을 장착하고 실제로 교전을 해보는 훈련.[5] 이중 1대는 포탄이 터진 구덩이에 빠져 기동불능되었다.[6] 초기에는 호위기없이 독일본토로 들어가야하는 탓에 컴뱃박스와 윙박스의 간격이 머스탱 등장 이후 보다 빽빽하게 편대를 이루었다.[7] 루즈벨트는 태평하게도 어뢰를 보고 싶으니 그 쪽 갑판으로 가자고 했다고 한다. 또 루즈벨트의 일기에 따르면 아이오와 2.7km쯤 뒤에서 어뢰가 터졌다.[8] 킹 제독은 윌리엄 D. 포터의 함장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어뢰를 쏘고도 맞추지 못한것도 질책했다고 한다.[9] 공고는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던 중 잠수함 씨 라이온의 공격을 받아 대만 지룽반도 인근에서 격침되었다.[10] 초카이의 승조원이 전멸한 탓에 초카이를 대파한 공격의 진위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11] 북한 2사단은 모신나강, 7사단 조선족 부대는 국공내전 때 쓰던 99식 소총을 그대로 들고 왔다.[12] 이 이유는 해당 항목 참조.[13] 물론 이런 일 뿐만 아니라 이게 발생한 경위도 불미스러운 일이기에 대다수는 이를 생략한다.[14] 어느 정도였냐면 중대가 이동하는데 미군에게 포격을 그만두라고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죽을 위험 무릅쓰고 'Korean soldier, You Amerian soldier, No BBang BBang No No!' 라는 세 마디로 간신히 포격을 멈추기도 했다 한다. 그나마 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어서 자칫 몰살당할 뻔했다 한다. 더불어 미군은 미안하다면서 레이션과 장비를 잔뜩 건네줬다.[15] 나중에 '육군교육사령부'로 개칭되었고. 위치도 광주에서 대전으로 옮겨갔다.[16] 해리어가 쏜 미사일이 근접폭발 했었다.[17] 영국군 장갑차의 주황색 식별패널을 로켓발사대로 착각하는 확증편향에 빠졌으며 교차검증 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아군 FAC에게 정보를 정확하게 물어보지 않았으며, 작전지역에 있는 영국군 좌표확인을 게을리 하였고, 아군기가 포병에게 식별용 포탄을 요청했을때 이를 무시하고 먼저 공격했다.[18] 1985년 이후 비행훈련을 받고 A-10 조종사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수원에도 배치된 적이 있다고 한다. F-117의 시험비행 조종사이자 교관이기도 했으니 보통 비범한 인물은 아니다. 민항사 보잉737의 조종사이기도 했으며 2003년 사건당시 이미 20년차인 군 조종사였지만 이라크전이 첫 실전투입이었다. 이라크 자유작전 공로로 동성훈장이 수여되었다고 한다.#[19] 흔히들 이 경험을 통해 미군이 대공미사일의 대함공격 가능성을 알아챘다고들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군은 이미 1988년 이란 해군을 상대로 한 '프레잉 맨티스' 작전에서 기동부대를 향해 달려드는 이란의 고속정을 SM-2 대공미사일로 해치운 적이 있다(일단 3발을 쏘아 무력화시킨 뒤 하푼 및 5인치 함포로 마무리). 대공미사일은 발사 반응 시간도 빠르고 탄두가 작은 대신 운동 에너지가 높아 일루미네이터로 표적을 비춰줄 수 있는 가시거리 내에서는 심지어 함포보다도 즉응성이 높고 효율 역시 매우 높다. 이 점은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인식되어 있어서 스탠더드를 대함 목적으로 사용하는 고속정이 개발되어있었으며 한국 해군 역시 하푼 도입 이전에 이를 운용했다. 한국군 최초의 미사일 고속정인 백구급 초기형 3척이 바로 그것.[20] 원래 시리아 내전당시 미군과 러시아군이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군사적 핫라인을 개설 했었고 이스라엘과 러시아 간에도 핫라인을 구축한 상태였었다. 이스라엘 측은 핫라인으로 미리 통보를 했으나 몆분 전 기습 통보였기 때문에 실 전장에 전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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