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232130><colcolor=#fff> 안성재 Anh Sung-jae[1] | ||
출생 | 1982년[2] ([age(1982-01-01)]세)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가족 | 배우자 에이미 안(Amy Anh) 딸 안시영(July Anh)(2014년생) 아들 안은기(Caleb Anh)(2016년생) | |
경력 | 미합중국 육군 (2001-2005)[3] 우라사와 스타지 더 프렌치 런드리 쉐프 드 파티 창립 멤버 아지자 총괄 쉐프 모수 서울 오너쉐프 | |
학력 | 서울강남초등학교 (전학)[4] 르 꼬르동 블루 LA 캠퍼스[5] (졸업) | |
신체 | 183cm | |
종교 | 기독교[6] | |
직업 | 요리사 | |
소속 | 모수 서울 (MOSU Seoul)[7] | |
취미 | 종합격투기 | |
링크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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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한국계 미국인 파인다이닝 요리사.[8]2024년 기준 국내 유일의 미쉐린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이었던[9] 파인 다이닝 '모수 서울'의 오너셰프 역임.
2. 생애
1982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안성재는 궁중 요리 전수자였던 할머니의 요리를 자주 먹으며 자랐다.[10] 1993년 만 12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가족을 따라 미국 캘리포니아 주로 이민가서 자랐다. 미국 이민 후 부모님은 어렵게 살며[11] 양말 가게 점원, 티셔츠 가게 점원, 옷가게, 미국식 중화 요리 식당[12] 등 장사일을 바꾸어가며 하셨다.# 안성재도 새벽에 나가 양말 좌판을 깔거나 방과 후 매일 식당에 들러 일을 돕기도 했다고 한다.#전직 미국 육군 출신으로, 4년 동안 정비병으로 근무하며 이라크 전쟁 파병을 간 경험이 있다.# 군 전역 후 포르쉐 정비사가 되기 위해 차량정비학교에 입학하려 학비까지 냈으나, 운전 중 지나가던 요리 학교 르 꼬르동 블루의 패서디나 캠퍼스 앞에 하얀 조리복을 입고 서있는 학생들을 보고는 셰프라는 존재도 전혀 몰랐었지만(#) 흥미가 생겨 입학 상담을 신청하고 그 자리에서 요리 학교 입학을 결정하게 된다.[13] 이때 안성재의 나이가 24세였는데, 요리를 시작하기에는 비교적 늦은 나이였다. 경험을 최대한 빨리 쌓기 위해 입학을 하자마자 인근 레스토랑에서 일을 구했다고 한다.
요리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베벌리힐스의 스시 전문점인 '우라사와'에서[14] 스타지[15]로 일을 시작하며 파인 다이닝 커리어를 시작했다.[16] 미국인은 규율을 잘 따르지 못해 쓰지 않겠다는 오너 셰프 우라사와 히로유키를 무작정 수 차례 방문해 본인은 한국인이고 월급도 안 줘도 된다고 하며 설득했다고 한다.[17] 우라사와에서 2년 정도 근무를 하다 나파밸리에 위치한 더 프렌치 런드리의[18] 수셰프로 근무하던 한인 셰프 이동민 셰프가 식사차 우라사와를 방문하고 근무 중이던 안성재를 눈여겨봐 더 프렌치 런드리로 이직을 제안한다.[19] 안성재는 제안을 수락하고, 나파밸리에 있는 한 포도밭에 있는 오두막에서 지내며 더 프렌치 런드리에서 꼬미 셰프로 시작하여 두 달 후 셰프 드 파티로 진급하게 된다.
이후에는 이동민 셰프가 미국 요리계의 오스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비어드 재단이 선정하는 올해의 주목받는 셰프가 된 이후 더 프렌치 런드리에서 독립해 샌프란시스코에 '베누'라는 레스토랑을 개업하게 되고 한인 최초로 미쉐린 3스타를 획득하게 되는데, 안성재도 오픈 멤버로 베누에 합류하게 된다. 그 후 안성재는 샌프란시스코의 '아지자'라는 모로코 레스토랑에서 총괄 셰프로 근무를 했으며 미쉐린 1스타를 받았다.[20]
2016년 2월에 오너 셰프로서 본인의 레스토랑 모수를 개업했다.[21] 안성재는 모수에서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신규 업장으로서는 신기록이었던 195달러의 디너 테이스팅 메뉴를 출시한다. 이에 샌프란시스코 유력지의 푸드 칼럼니스트 마이클 바우어는 "모든 디쉬들이 흥미로웠지만 요리가 아직 미완성인 듯 밸런스가 부족한 것들이 많았다"는 평과 함께 무명 셰프가 개업부터 너무 비싼 가격을 책정했다며 정식 리뷰를 게재하지 않았다.[22] 그 여파로 인해 매출이 급감해 모수는 폐업 위기까지 몰리지만, Eater 매거진의 유명 푸드 칼럼니스트인 빌 애디슨에게 요리를 극찬받고[23] 그 해 10월에 출시된 미쉐린 가이드에서 1스타를 획득하며 기사회생하게 된다.
그 후 안성재는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본인의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도전을 하기를 원한다며 2017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 한남동으로 모수를 이전하였다. 한남동 모수는 흔히 '모수 서울'로 불린다. 서울에서도 미쉐린 1스타와 2스타를 차례대로 획득하고, 2023년에는 한국의 유일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으로 등극한다.[24] 모수는 2024년 초에 CJ와의 파트너십 종료[25]로 휴업을 하였고 2024년~2025년 겨울 즈음에 재오픈 예정이라고 한다.
레스토랑 오픈을 위해 2024년 10월 기준 공사 진행 중이며 건축가 조민석이 맡았다고 한다. 아직 업장을 준비 중인 터라 미쉐린 평가원들이 잠행하는 기간에 영업하지 않아 별을 잃을 예정이라고 한다. #
3. 활동
3.1.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1
만약에 제가 심사를 본다고 했을 때 대한민국에서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제작 전 김학민 PD와 섭외과정에서 나눈 대화
제작 전 김학민 PD와 섭외과정에서 나눈 대화
대한민국 유일의 3 스타 셰프로 백종원과 함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요리 자체의 맛뿐만 아닌, 요리의 과정과 의도 또한 심사 기준에 포함하며 각 요리사의 계급에 상관없이 평가에 엄격하고 까다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를 두고 맛의 대중성을 중점으로 평가한 백종원과는 반대로 요리사의 기본기와 요리의 맥락을 중점으로 평가했다는 의견이 많다.[26]
이후 백종원의 유튜브 채널에서 후일담을 살짝 내놨는데, 흑수저 결정전에서 평가를 혹독하게 하는 것과는 별개로 참가자분들의 노력을 합격과 불합격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것에 매우 힘들어했다고 한다. 특히 참가자분들의 감정이 다 보였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마음이 아팠다고.. 이는 백종원도 마찬가지.
3.1.1. 어록
서울 방언이 살짝 섞인 말투에[27] 프로그램 이후 심사 장면의 수많은 패러디와 밈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는 채소의 익힘 정도거든요(덩여).
간이 아주 타이트하게 들어갔어요.
잠시 보류하겠습니다.
돼지고기를 먹고 좋았던 점보다 그쪽 요리가 더 싫었어요.네.이건 진심이에요.(중략)완성도가 없는 테크닉은 테크닉이 아닌 거예요.
참가자 최현석의 1대1 대결 장 트리오 심사평 中
참가자 최현석의 1대1 대결 장 트리오 심사평 中
뭔가 지금 달달하게 하려고 과일 같은 걸 넣었는데 이게 지금 은은하게 향이 나서 지금 뭔지 모르겠어. 근데 그 과일이 지금 킥이거든요 저한텐? 단맛이 올라오는 게.
마늘을 빼셨다..?
안성재: 되게 특이한 점이네요. 이거 근데 뭐가 막 이렇게 막~~~~~~~~~~~~~~~이렇게 입안에서 소용돌이 치듯이 막...
백종원: (약간 정신없네요.)
안성재: 되게 그 확~~~~~~~~~~~~~~~~~~~~~~ 확~~~~~~~~~~~~~~~~~~~~~~[28]
참가자 최현석의 마파두부 밀라네제 심사평 中
백종원: (약간 정신없네요.)
안성재: 되게 그 확~~~~~~~~~~~~~~~~~~~~~~ 확~~~~~~~~~~~~~~~~~~~~~~[28]
참가자 최현석의 마파두부 밀라네제 심사평 中
3.2. 방송
<rowcolor=#fff> 날짜 | 방송사 | 방송명 | 비고 |
<rowcolor=#fff> 2015년 | |||
2월 24일 ~ 3월 17일 | 올리브쇼 2015 | 5, 7, 8회 | |
<rowcolor=#fff> 2017년 | |||
1월 1일 | [청춘 세계로 가다] 한식의 '파인 다이닝' 꿈꾸는 미슐랭 셰프 | ||
<rowcolor=#fff> 2024년 | |||
3월 25일 | Inside South Korea's only three-Michelin-starred restaurant | [29] | |
9월 17일 ~ 10월 8일 |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1 | 심사위원 | |
10월 20일 | JTBC 뉴스룸 | 인터뷰이 | |
<rowcolor=#fff> 2025년 | |||
?월 ?일 | 굿데이 | 게스트 | |
?월 ?일 ~ |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 | 심사위원 |
3.3. 광고
<rowcolor=#fff> 연도 | 브랜드명 | 품목 | 비고 |
2024년 | 샌드위치 | ||
가나 초콜릿 | |||
LG DIOS | |||
제미나이 |
3.4. 화보
<rowcolor=#fff> 월호 | 잡지명 | 참고 자료 | 비고 |
2024년 | |||
11월호 | | 📰 |
3.5. 수상 내역
<rowcolor=#fff> 수상일 | 시상식명 | 수상내역 | 비고 |
2024년 | 엘르 스타일 어워즈 2024 | TRAILBLAZER OF THE YEAR |
4. 기타
- 대부분의 “안” 씨 성을 가진 한국인들은 영문 이름을 ‘Ahn’으로 표기하지만, 안성재는 ‘Anh’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레스토랑의 이름인 '모수'의 유래는 본인이 미국으로 이민 가기 전 가족들과 함께 집 뒤쪽 들판에 갔는데 코스모스가 엄청나게 많이 피어 있었다고 한다. 그 뒤로 가게 오픈 전 이름을 생각할 때, 손님들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본인이 생각한 행복을 레스토랑 이름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민을 가기 전에 보았던 코스모스가 머릿속에 뚜렷이 남아 있어서 코스모스로 생각하고 디자인도 하였지만 코스모스 자체가 레스토랑에는 잘 맞지 않는 작명 같아서 고민하다가 '모수'라고 본인이 지어서 로고도 만들고 창작해 냈다고 한다. #
- 과거 자신이 일하던 미국의 일식당 '우라사와'에 야구 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수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그 중 한국과 일본이 격돌한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 직전에 이치로가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게 연달아 패배해 굉장히 분해하는 이치로가 안성재를 앞에 두고 심한 욕설을 섞어가며 한국 대표팀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치로는 그 레스토랑에 이미 여러 번 방문을 하면서 안성재가 한국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안성재는 운동선수로서 이치로가 승부사 기질을 가진 선수라는 것은 알겠으나 그래도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 스시야 전통 복장을 하고 요리를 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일식만을 연마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맞지 않다고 느꼈다고 한다.[30] 그리고 안성재는 곧 나파밸리의 더 프렌치 런드리로 이직하게 된다.
- 2024년 한국의 유일한 3스타였던 모수 서울이 무기한 휴업에 들어가면서 한국에는 3스타 레스토랑이 모두 없어졌다. 서울 모수의 투자를 맡고 있던 CJ가 투자를 철수하면서 운영이 어려워진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31] 이전까지 3스타 개근을 했던 곳은 라연과 가온인데, 라연은 2023년 2스타로 강등#, 가온은 2022년을 끝으로 폐업하였다. # 원래 모수도 2024년에 휴업에 들어가면서 별을 반납해야 했지만 6월 재오픈을 조건으로 3스타를 유지했으나, 투자자 유치에 난항을 겪었는지 6월 오픈에 실패하였고 결국 별을 반납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완전히 폐업하지는 않은 상태로 여전히 투자자를 찾고 있으며 언젠가는 다시 영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한다. 백종원의 유튜브에서 언급한 바로는 2024년 겨울에 오픈을 준비하고 있지만 내년으로 밀릴 수 있다고 한다.
-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출연 이후로는 "채소의 익힘 정도"라는 표현이나 "고기가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라는 표현들이 인기를 얻어 유행하고 있다. 여기서 even은 균일하다는 의미로, 골고루 익히다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 흑백요리사에서 최현석과 은근히 마찰을 빚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보여 혐관 밈이 생겼다. 2라운드에서 최현석의 장 트리오 스테이크를 먹을 때 "그쪽 요리가 더 싫었어요"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최현석을 투표했던 백종원과 싸우기 직전까지 장장 40분에 걸친 토론을 했다고 한다.# 4라운드에서는 최현석의 전략을 듣고 크게 와닿는 게 없다는 극딜을 넣기도 했다. 최현석이 실수로 마늘을 넣지 않은 봉골레 파스타를 먹으며 "마늘을 안 넣으셨다...?"라며 탄식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후 무한 요리 지옥 1차 라운드에서 최현석을 탈락시키기 전 요리 심사평을 할 때 방송 처음으로 굉장히 신난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 화제가 되었다.[32] 극도로 정갈하고 완전한 레시피를 구사하는 안성재와 달리 실험 정신이 투철하고 자유분방한 최현석과의 성향 차이로 생긴 갈등인 듯. 다만 어디까지나 방송에서 보인 모습이고 실제로는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 흑백요리사에서 철저한 정리정돈을 하는 '통제형 인간'의 모습이 화제가 되고 있다. 최고급 파인 다이닝 오너로서는 적절한 습관이라는 반응이 많다.# 모수에서 일했던 트리플 스타 강승원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나 한국식 억양과 미국 서부 억양이 섞여있다. #
- '사람들이 노력해도 안 된다는 말을 할 때가 있지만,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노력'이라는 말을 했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면 싫어한다고 덧붙였다.
- 2024년 11월 8일, 서울시의회 행정 사무감사에 국민의힘 김규남 시의원의 증인 신청으로 출석했다.## 최근 폐업한 '모수'가 서울미식 주간 선정 음식점에 4년 연속 뽑힌 것과 관련해 서울시 '서울 미식 100선' 사업의 공정성을 질의한다. 안성재는 "미식의 위상 올라간다면 서울시든 정부든 정책을 서포트하겠다"고 밝혔다.#
- 현재는 그의 동년배 사이에선 거의 소멸되다시피한, 노년층에서나 존재하는 서울 방언 구사자이다. 무언가를 설명할 때 "~거덩요." 하는 말투가 대표적이다. 90년대 초반에 이민을 갔고 미국에 정착 후에는 한국어보다 영어를 사용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한국어 말투가 이민을 떠나오던 그 당시에 한국에서 쓰던 말투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예전에 한국을 떠나 외국에 오래 정착한 다른 교포들에게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1] Sung Anh을 사용하기도 한다.[2] 정확한 생일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빠른년생 또는 초등학교 조기입학으로 추측된다. 안성재의 생애를 보면 '1993년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했는데, 일반적인 1982년 생은 1993년에 초등학교 5학년이기 때문이다.[3] 정비병 출신이었으며, 이라크 전쟁에도 참전했다. 이라크 참전 이외에는 캠프 험프리스, 동유럽 등지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출생하였지만 미국 이민 후 한국 국적이 말소된 미국인으로, 미군에 자원입대하였다. #[4]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93년에 미국으로 이민[5] 파리에 있는 본교가 아닌 현재는 폐교한 미국 LA 패서디나 캠퍼스 출신이다. 르꼬르동블루는 호주, 한국 등 전 세계에 분교를 두고 있다.[6] https://m.news.nate.com/view/20241101n33830?mid=e01&list=recent&cpcd=[7] 미쉐린 가이드 2024년판에서 3스타를 부여받았던 국내 유일한 레스토랑. 참고로 역대 대한민국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은 현재는 2스타인 호텔신라의 라연, 그리고 지금은 폐업한 가온, 그리고 모수까지 총 세 곳이다.[8] # #[9] 현재는 무기한 휴업으로 인해 미쉐린 가이드 스타를 반납한 상태다.[10] 이북 출신이셨던 안성재의 할머니가 개성 약과를 만들기 좋아했는데, 안성재는 훗날 모수에서 할머니의 레시피로 개발한 개성 약과를 디저트 메뉴로 차용하였다. 모수의 디저트 메뉴 중 유일하게 개업부터 단 한 번도 교체되지 않았던 메뉴다. 안성재는 어릴 때 할머니 집에서 나던 생강과 계피 냄새를 싫어했었는데 지금은 너무 그립다고 한다.[11] 자동차를 샀더니 은행 잔고가 0이었다고 한다.#[12] 판다 익스프레스와 비슷한 컨셉의 레스토랑이었으며 로컬 브랜드였다.[13] 졸업하면 취업이 100% 보장된다는 말을 듣고 바로 결정했다고 한다.[14] 미쉐린 2스타. 현재는 폐업했다.[15] Stage, 무급으로 요리를 배움. 일종의 도제다.[16] 안성재에 의하면 우라사와는 그 당시 미국 서부에서 가장 비싸고 평이 좋은 레스토랑 중 하나로, 요리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아무나 못 들어가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그럼 내가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17] 우라사와는 진지하게 요리를 배우려는 안성재의 자세를 확인하고 몇 주 뒤에 월급을 주기 시작했다.[18] 토마스 켈러 셰프가 운영하는 미국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이며 미쉐린 3스타이다.[19] 당연히 무작정 빼간 게 아니라 이동민이 우라사와 히로유키에게 영입을 해도 괜찮은지 물어봤다고 한다.[20] 당시 안성재 본인은 모로코에 가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모로코에 가보지 못한 요리사가 모로코 요리로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셈이다.#[21] 이 오픈 날짜가 기사와 정보마다 다른데, 모수 사이트와 본인 인터뷰로는 2015년에 오픈했다고 말을 하는지라 국내에서는 2015년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소프트오픈이었고 정식 오픈은 2016년 2월이었다고 관련 정보들이 나온다.# 거기에 인터뷰마다 오픈 후 8개월 만에 미쉐린 1스타를 얻었다고 말하는데 당시 미쉐린을 받은 시점이 2016년 10월이니 계산상 2월에 오픈한 게 타당하다.[22] 정식 리뷰를 게재하려면 세 번을 방문해야 하는데 두 번만 방문하고 말았다고 한다. 모수 개업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고급 일식당이 모수의 신기록을 경신했는데, 바우어는 신규 업장들은 가격을 점진적으로 올려야지 처음부터 이런 가격을 책정할 자격이 없다며 두 레스토랑의 정식 리뷰를 거부한다는 칼럼을 썼다.[23] 모수에서 먹은 송어알, 게살, 오크라, 무가 들어간 계란찜을 "spectacularly gorgeous"라고 평하며 그 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먹었던 12가지의 가장 인상 깊었던 요리 중 하나로 꼽았다. 매거진의 동료 기자에 의하면 빌 애디슨이 모수의 요리는 엄청난데 왜 이렇게 인테리어가 비어있고 간판을 안 달았는지 의아해했다고 한다. 마이클 바우어 또한 레스토랑의 인테리어가 초라하다는 뉘앙스로 서술했다. 안성재에 의하면 그게 최대한 자금을 긁어모아 했던 최선이었다고 한다.[24] 코로나19 방역 시기에 홍콩에도 자매 레스토랑을 개업했다.[25] 안성재 본인은 모수 홍콩 운영 등 개인 활동과 병행을 원했지만, 3스타 유지를 목표로 하던 CJ가 난색을 표하면서 재계약이 불발되었다고 한다.# 기사와 당시 반응은 CJ가 실적 악화로 인해 파인 다이닝 사업에 손을 떼려 하려는 게 아니냐고 추측했지만, 모수와의 결별 이후 CJ가 독자적으로 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바로 오픈한 것을 보면 안성재와의 의견 차이가 주된 이유인 게 맞다.[26] 흑수저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지만 백수저 참가자들도 안성재의 평가를 더욱 두려워했다.[27] 대표적으로 '~거든요'를 '~거덩여'에 가깝게 발음하는 습관이 있다.[28] 시종일관 냉철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던 안성재가 드물게 텐션이 올라간 장면으로 기분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29] 한글 자막 버전은 다음 영상 참고. [30] 물론 개인적인 선택이고 한국에서 일식과 스시를 전공하는 요리사들을 존중한다고 한다.[31] 파인 다이닝 문서에도 나오지만 파인 다이닝은 일반적인 음식점들에 비해 고급화로 차별화를 두는 특성상 인테리어부터 식기 하나하나까지 최상급의 세팅을 갖춰야 하며, 높은 재료값과 인건비로 인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에도 수익률이 5% 미만으로 적자에 가깝다. 그래서 3스타 정도 되면 거대 투자자가 스폰서를 맡거나 아예 적자 감당이 가능한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영업이 어렵다. 게다가 3스타를 유지하기 위해선 비용이 점점 더 커지는 구조인데다, 이득이라 할 것도 미미한 마케팅 효과 외엔 없어서 어지간한 기업들은 시도하지도 않고 투자자 유치도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라연은 신라호텔이 운영하고 가온은 화요를 가진 도자기 기업 광주요가 운영했으나 6년 연속 완전 자본잠식과 더불어 모기업의 실적이 악화하자 바로 철수했다. 모수도 풀무원의 접촉이 있었던 듯하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불발된 듯.[32] 한 인터뷰에서는 '최현석 셰프를 떨어트릴 생각에 신난 밈'에 대해 억울하다며 그런 생각을 하고 한 행동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