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웃음을 찾는 사람들/문제점
1. 시즌 1
1.1. 웃찾사의 시작과 전성기
2003년부터 2009년 8월까지 쓰인 로고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로고다.
SBS는 개국 직후부터 한동안 KBS, MBC의 개그맨들을 대거 끌어 모으며 코미디에 힘을 쏟았지만,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로 대두되면서부터 점점 투자를 줄이게 된다.[1] 2001년에는 모처럼 개그 콘테스트를 개최하고 6기 코미디언들을 선발했으며 코미디쇼 오 해피데이의 방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하고 출연 중이던 6기 중 몇몇은 개그콘서트로 영입되었다.[2]
그러던 2003년 초에 개그콘서트에서 스타밸리 출신 개그맨들이 소속사 문제로 대량으로 빠져나간 사태가 있었다. 그 때 개콘에서 빠져나간 개그맨들이 SBS에서 만든 프로가 바로 이 웃찾사이다. 또한 대학로의 인기 스타인 컬투와 수습 기간이 끝나 프리랜서가 된 MBC 11~12기 개그맨들[3], 그리고 갈 곳을 잃었던 일부 SBS 출신 개그맨들[4]이 웃찾사에 합류했다. 개그콘서트에서 활약하던 멤버들과 코미디하우스가 공개 코미디를 표방하던 시절의 주축 멤버들이 한데 뭉치면서 웃찾사 역시 무대 개그를 지향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한 동안 잘 나가던 좋은 친구들이 갈수록 시청률 부진을 보이는 통에 종영하고[5] 새로이 만든 것이 바로 이 웃찾사로, 첫 시작은 일요일 오전 11시라는
초기에는 개콘 따라하기, 억지 웃음 강요 등의 이유로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이때는 박준형 사단이 이끈 개그 콘서트가 스타밸리 소속 개그맨들의 대량 이탈이라는 악재에도 끄떡없이 20~30%대의 시청률로 한참 인기를 구사하던 시기였다. 이에 개콘과 대조적으로, 웃찾사는 시간대를 토요일 오후 6시대, 일요일 오후 5시대로 마구 이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개콘에서 넘어왔던 개그맨들의 대부분은 다시 개콘으로 복귀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웃찾사는 개그 콘테스트를 통한 신인 육성, 그 밖에 지방 투어를 통한 인지도 향상에 힘썼다. 이때 들어온 SBS 공채 7기 개그맨들은 대부분 박승대의 스마일매니아 극장 출신이었고, 입사와 동시에 개그 콘테스트에서 선보였던 코너를 그대로 선보이면서 기존 개그맨들과 신구조화를 이루게 된다.
어느 정도 경쟁력이 생겼다고 판단한 SBS는 2004년 10월 14일부터 웃찾사를 목요일 밤 11시에 편성하는 강수를 보여주었으며, 개편 당시 웃찾사판 이태선 밴드였던 여성 전자현악단 'SOME'이 하차하고, 2주간은 다른 음악으로 때웠다가. 2004년 10월 28일부터 장승수 밴드가 투입되었다. 그 기대에 걸맞게 본격적으로 리즈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인기를 끌게 되었다. 초창기부터 활약한 컬투는 '먹어 배고프니까', '그때그때 달라요'로 공개 코미디에 완전히 적응하였다. 강성범, 김숙, 이병진 등의 선배급 개그맨들이 비둘기 합창단[6] 등의 코너에서 중심을 잡아주었고, 나몰라패밀리, 김태현, 김형인, 리마리오(본명 이상훈), 윤택(본명 임윤택), 정만호 등 당시의 신인 개그맨들도 활약하기 시작했다. 미녀 삼총사, 백보람[7], 김신영, 정주리 등의 개그우먼들도 활약하였다.
2004년 후반부터 2005년 초반까지는 완벽하게 웃찾사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행님아', '택아', '화상고', '그런거야', '왜 없어', '비둘기 합창단', '희한하네', '단무지 아카데미' 등의 코너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동시간대에 방송되던 해피투게더, 그리고 업계 라이벌(?)인 개그 콘서트를 시청률에서 앞서던 시기였다. 광고에는 웃찾사에 출연하는 개그맨들도 많이 나오고, 웃찾사의 유행어를 가끔씩 개그 콘서트에서 따라했을 정도. 당시 웃찾사 개그맨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박승대 홀에는 시청률 30%에 도전한다는 말이 쓰여 있었고, 실제로 최전성기에는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었다.[8] 웃찾사와 개콘이 참신한 아이디어로 시청률 경쟁을 하는 공개 코미디 전체의 리즈 시절이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그런데 사실 웃찾사의 전성기를 이끈 개그맨들은 이른바 박승대 사단이라고 불렸던 스마일매니아 소속[9] 개그맨들, 그리고 컬투를 중심으로 한 컬트엔터테인먼트 소속 개그맨 두 파벌이었고, 과거에 개콘에서 대거 이적해왔던 스타밸리 출신 개그맨은 웃찾사에서는 별로 반응이 없어서 대부분 나중에 다시 개콘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박성호, 김준호, 김대희) 개콘 출신 중에서 웃찾사에서도 히트한 개그맨들이라고는 김숙, 강성범, 이병진이 전부.[10] 오승훈은 다시 개콘으로 돌아왔다가 개인 사업을 하면서 원음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던 중 중매전문가로 대성했다.
이렇게 웃찾사가 잘 나가던 도중 컬투와 리마리오가 웃찾사를 떠났다. 거기에 일요일이 좋다 - X맨을 찾아라에 출연했던 김기욱이 말타기 게임 중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악재가 여기서 끝이었으면 좋았겠지만...
1.2. 노예계약 사태
2005년 5월, 윤택, 김형인등을 주축으로 한 스마일매니아 소속 개그맨들 14인이 박승대와의 이면계약 및 15년 노예계약을 폭로하고 나서며 큰 논란을 불러왔다. 당시 SBS는 SBSi라는 자회사를 이끌고 각종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려던 참이었고, 개그사업분야에서는 공채개그맨 개념 비슷한 SBSi 개그콘테스트를 열고 2003년 윤택, 김형인 등의 신인 개그맨들을 선발하게 된다. 이때 SBSi는 개그맨 매니지먼트 경험이 부족하니, 박승대와 제휴해서 당시 신인 개그맨들은 모두 박승대가 오너인 스마일매니아의 매니지먼트를 받도록 하였다. 스마일매니아 측은 매니지먼트 비용을 다 부담하는 대신에 대학로 공연에서의 수익을 챙겨갔다. 이러한 구조에서 방송사:스마일매니아:개그맨들은 35:35:30으로 부가수익을 배분했다. 당시 신인 개그맨들은 다른 기획사에 소속되었어도 어차피 7:3 정도로 수익배분받는 건 당연하고, 방송 출연이 보장되는 것이니 별 불만없이 계약했다.그런데 이런 3자 계약기간이 만료되어갈 때쯤에 웃찾사의 인기가 초 절정을 달리기 시작하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매니지먼트 비용을 일방적으로 부담하던 스마일매니아 측은 소속개그맨들과 접촉해서 술자리에서 으쌰으쌰하다가 계약서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한 '의리문서'를 만들고 계약금을 받지 않은 채 10년~15년 정도의 기간을 정해 도장을 받은 것이다.[11]
스마일매니아 측이 이렇게 애매하게 의리문서를 받아뒀던 건 SBS와의 제휴관계가 있는데 이면'계약'을 했다고 하면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였다. 어찌되었건 군기 강하기로 유명한 개그계에서 선배 개그맨이자 소속사 사장이고 방송사와 밀접한 박승대에게 쉽게 NO라고 할 수 있는 개그맨은 아무도 없었고,[12][13] 나중에 이게 걸림돌이 되자 개그맨들은 충분히 노예계약을 했다고 여길만도 했다. 그래서 나중에 방송사와 전속계약기간이 만료될때쯤 되자 개그맨들이 집단으로 폭로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 사태에서 박승대와 웃찾사 개그맨들이 이 이면문서가 계약서다 아니다 진흙탕싸움을 벌일 때쯤에 SBSi는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 있었는데, 어차피 개그맨과 기획사의 출연여부를 좌우하는 SBS가 슈퍼 갑이었기 때문에 굳이 개입할 필요를 못 느낀 것이었다. 어차피 같은 구조로 SBS와 선이 닿아있던 컬투쪽 개그맨들도 있었고... 결국 방송사의 파워를 넘지는 못했던 개그맨과 박승대는 방송사에 대한 전면전은 포기하고 1주일만에 흐지부지 화해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노예계약 사태는 결론적으로 웃찾사 몰락의 단초가 되는데 SBS와 스마일매니아에 제대로 미운털이 박힌 윤택, 김형인 등은 한동안 제대로 방송에 나오지 못하다가 개그스테이션이라는 신설 기획사에 합류한다. 김신영, 김태현 등은 결국 개그판을 떠나 버라이어티에 정착하고 말았다. 그리고 갈등을 적당히 봉합한 박승대는 아예 웃찾사의 기획작가로 들어가게 되어 프로에 출연할 개그맨의 출연여부까지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가지게 된다.[14]
그 결과 개그맨들은 개그 기획사의 수익에 도움이 될만한 행사용 개그, 유행어 남발 등의 말초적인 코너만 꾸려오게 됐고, 이를 마땅히 바로잡을 견제책이 없었던 웃찾사는 차츰 몰락하게 되었고, 게다가 노예계약 사태와는 거리가 멀었던 컬투쪽 개그맨들까지 타격을 입었다. 그 원인으로는 몰락 중이라곤 해도 어찌되었던 주도권은 박승대쪽이 완전히 잡고 있었기 때문. 그러니 자연히 컬투계는 밀려날 수 밖에 없었으니, 주도권을 쥔 박승대계는 서서히 몰락하고 있었으며 몰락하지 않은 컬투계는 주도권을 빼앗기는 바람에 둘 다 이도저도 아닌 꼴이 되어버렸다.
결국, 노예계약 사태 이후 개콘에게 시청률을 역전당하게 되고, 점점 시청률이 하락하게 된다. 물론 사태 직후 대부분 개그맨들이 복귀함으로써 개콘과 비슷한 수준의 인기는 유지하였다. 하지만 해투의 약진으로 인해 동시간대 시청률 경쟁에서 밀리면서, 예전의 개콘을 능가하던 포스는 더 이상 내지 못했다.[15] 개그 내용도, 외부적 활동도 곳곳에서 많은 문제들을 지적받게 되었다.
1.3. 잠깐의 중흥기, 그리고 다시 쇠퇴
상황이 이렇게 되자 2005년 11월, 컬투의 복귀를 기점으로 한동안 밀려나있던 컬투 사단이 돌아왔고[16], 2006년 상반기부터 10월까지 나름의 중흥기를 맞게 된다. 이 시기에는 잠시 웃찾사를 떠났다가 돌아온 강성범과 김늘메가 중심을 잡은 가운데, 컬투 사단이 다수의 코너(쪼아, 나몰라패밀리, 형님뉴스, 퀸카 만들기 대작전, 맨발의 코봉이 등)를 히트시키면서 10%대 중후반까지 시청률이 상승했다.[17]한편 2006년 하반기, MBC의 개그야의 런칭과 성공으로 공개 코미디 방송의 삼국지가 완성되었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SBS는 개콘에 다시 한 번 도전하기 위한 노력으로 웃찾사를 아예 일요일 오후 6시 40분으로 편성이동하였다. 하지만 미녀 삼총사의 교통사고와 김형은의 사망[18], 소속 개그맨들의 점진적 이탈로 인해 10%대 시청률도 차차 깨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2007년 하반기부터 무한도전과 1박 2일 등 많은 리얼 버라이어티 방송들의 도래로 인해, 비단 웃찾사 뿐만 아니라 개콘, 개그야 등의 시청률도 이 당시엔 부진했다.[19] 공개 코미디의 최고 전성기가 이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2007년 11월, 다시 시간대를 목요일 밤 11시대로 옮기고, 2008년 5월에 다시 금요일 밤 9시대로, 3개월만에 다시 10시대로 이동했다. 이 시기(2008년 ~ 2009년 초)는 그나마 암흑 시간대 편성은 아니어서 10%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했고, 이상준의 믿거나 말거나, 초코보이[20] 같은 코너가 약간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사실상 웅이 아버지 하나 보려고 웃찾사 본다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1.4. 1차 종영
2009년 8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쓰인 로고 |
2009년 8월 13일에, "이름 빼고 다 바꿨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코너들도 대폭 물갈이하고 로고까지 바꾸는 등의 초강경 개편을 했지만, 그 실체는 그저 컬트 엔터테인먼트 소속 개그맨들의 대폭 퇴출 및 박승대의 전권 장악에 불과했다. 강압적이고 전근대적인 개그맨 육성 시스템을 유지했던 박승대 사단은 한때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 해병대에 가서 특훈을 했다고 언플을 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해병대 특훈과 개그는 일체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도 웃찾사 멤버들과 해병대 특훈을 했다. 당연히 시청자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짝이 없었고 오히려 그 직전에 7%의 시청률이 10%대까지 오르면서 장수 코너였던 웅이 아버지를 필두로 조금씩 부활을 하는가 했었지만, 이것마저도 종영되고 코너가 개편되면서 시청률은 반토막나고 아예 2% 시청률까지 내려갔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의 개편이 웃찾사 종영의 결정타가 되었다. 전성기 때만큼은 아니지만 웅이 아버지와 초코보이가 방송되면서 조금씩 부활을 하고 있었는데, 개편을 했던 것이야말로 웃찾사의 마지막 매니아들마저 등을 돌린 결정적 원인이자 최악의 한 수였다.
실제로 홍보하는 방식을 보면 비슷한 다른 프로그램들보다 언플로밖에 안 보여질 정도로 언론에 유독 많은 노출을 하려 하며, 개그와는 전혀 상관 없는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알리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2009년에는 컬투가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기획작가로 있던 박승대와의 갈등으로 이내 하차해버렸다. 스케쥴 조정 등의 이유로 하차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긴 했지만, 이내 MBC의 하땅사로 갔으니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옮겨간 하땅사도 망했다.
2010년 2월부터 시즌 1 종영 때까지 쓰인 로고 |
결국 2010년이 되자마자 시간대를 토요일 오후 4시 10분으로 변경했으나, 이 시간대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야외 활동을 할 시간대이니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보니 방송사들도 정규방송보단 특정 프로 재방송을 편성할 시간대였고, 그나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같은 시간대의 정규방송 프로그램인 MBC의 쇼! 음악중심을 조금이나마 더 많이 보는 통에 현시창은 여전했다.
결국 2010년 5월 29일, 기어이 시청률 2.5%라는 애국가 시청률 급의 엄청난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최전성기와 비교하면 10분의 1토막. 참고로 2010년 3월 20일 방송된 웃찾사는 3.2%를 기록하여 같은 날 방송된 KBS 1TV '황사 이렇게 대비합시다'의 5.2%에도 뒤졌다. "웃음 잃은 '웃찾사', 백약무효일까?"
결국 백약이 무효였던 웃찾사는 2010년 9월 24일 녹화를 끝으로 종영이 결정되었다. 마지막 방송인 357회 방송분은 2010년 10월 2일 자정이 지나 방영됐다. 이 시간대의 경쟁 프로는 같은 코미디 프로인 KBS의 개그스타인데[21], 시청률로는 이겼지만 한 때 전성기의 개그콘서트를 위협하던 시대와 비교해 보면 몰락의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가 있다.
더불어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경쟁 프로그램이었던 하땅사의 종영 때와 똑같이 제작진과 개그맨들 전원이 마지막 녹화 때까지 이게 막방이라는 것도 몰랐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 제대로 된 인사도 못 한 채 종영하여서 허탈감이 상당히 크다고 한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시 개그맨들도 종영이 임박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녹화를 마친 후 대기실에서 개그맨들이 올린 '제발 무대를 지켜 달라'는 편지를 이창태 CP가 읽어나가면서 모두가 함께 울었을 때는 개그맨들도 모르는 사이 이미 종방이 결정되어 있었고, 그 녹화가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 이 일로 책임감을 지게 된 이창태 CP는 후속 프로그램을 올리기 위해 일년동안 노력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종영이 발표된 당일날 소속 개그맨인 강준은 결혼 청첩장을 돌리는 짓을 했고 그걸 주체할 수 없는 개그 본능이라는 개드립으로 엮었다. 날짜를 좀만 더 일찍 잡았으면 하객 상당수가 졸지에 백수로 전락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7년 6개월이라는 장기간 방영했던 프로그램 치고는 여러모로 씁쓸한 결말이였다.
종영되고 1년 뒤인 2011년에는 개그맨 최성민이 2009년에 웃찾사의 메인 작가가 된 박승대와의 외압설 논란에 휩싸이면서 또다시 부정적 의미로 재조명이 되고 있었다. 여기에 이승주[23], 정일진, 이동규 등 자신들도 피해를 봤다고 밝힌 개그맨들이 최성민 지원 사격에 나선다. 가뜩이나 죽은 프로그램이었는데 안 좋은 이야기로 재언급되는 부관참시를 겪으니 끝나도 편하게 눈을 못 감고 있었다.
1.5. 종영 이후
웃찾사가 문을 닫은 후 풀빵 장사나 주차요원 등으로 연명하는 개그맨들이 많았으며, 정용국은 KBS 공채에 지원하기까지 했다고 한다[24]. 뿐만 아니라 데뷔를 준비하던 예비 개그맨들도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웃찾사가 없어지면서 SBS에서의 개그맨 공채 자체도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이다. 2011년 10월 기준으로 개그맨을 공채하던 방송사는 KBS와 MBN 둘 뿐이었다. 2011년 12월, SBS는 2009년 이후 중단된 개그맨 공채를 다시 시작했다. 이창태 CP는 그동안 공백기가 있었음을 감안해 적어도 1년은 방송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참고로 대학가에서 공연을 하던 인물들도 있었는데, 몇몇은 무개념 개그로 욕을 퍼먹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 콜센터에 전화하여 욕질과 인격 모독을 하며 지들끼리 웃던 장난전화 개그는 도지삽니다를 쌈싸먹을 정도로 무개념의 극치 자학개그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다. 부랴부랴 2012년 1월 11일 이게 조작된 것(그 콜센터 여직원도 개그맨.)이라고 뒤늦게 해명에 나섰었다. 하지만 이딴 걸로 사람 웃기냐는 비난과 콜센터 종사자들의 비난은 당연할 듯.
2. 개그투나잇
개그투나잇 로고.
2011년 11월 5일부터 후속 프로그램 개그투나잇이 방영됐다. 제작발표회에서 이창태CP가 웃찾사가 문을 닫은 이유를 밝혔는데, 초반 30%였던 시청률이 3%대로 추락하였으며 회사에서 5년간 20억씩 투자했지만 시청률이 회복되지 않아 경영상의 이유에서 중단 결정이 내려졌다고... # 또 같은 자리에서 정용국은 "안 웃겼고, 틀만 그대로 가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
2011년 10월 28일, 첫 공개 녹화를 하였고, 11월 5일 밤 12시 10분부터 전파를 탔다. 첫방송을 시작하여 약 1시간 10분 정도 방송되었다.[25]
시청률 7%를 달성하면 평일 밤 시간대로 옮겨질 예정이었으나 지나치게 늦은 시각에 방송되어서인지 인터넷상의 반응은 그리 크지 않은 편. 마침 동시간대에 방송된 해외축구 중계시간과 겹쳐서 검색순위에도 들지 못하였다. MBC의 웃고 또 웃고의 예에서 보듯이 말이다. 다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듯... 하였는데 반응은 금방 뜨거워져 사실상 TV를 보지 않는 사람이 많은 심야에 방송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방송 3회만에 5% 후반대 시청률을 찍으면서 목표치에 근접하더니, 2012년 1월 7일 방송은 8.5%의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여 목표를 달성하게 되었다.[26]
SBS 측에서는 사전 약속대로 방송시간대 변경을 고심 중이라고 했었다. # 그러나 2012년 11월이 되어서도 시간대 변경이 없었다.(...)
하지만 심야시간대에 방송된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웃찾사가 망해갈때에 비해서는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사실 웃찾사 2군 선수들의 꾸준한 출연보장을 통한 웃찾사의 회생 프로젝트의 성격에 가까웠던만큼 웃찾사의 부활은 어느 정도는 예견되어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부활한 웃찾사의 주축 출연진들은 개그투나잇부터 출연하여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기존 웃찾사 시절의 선배 개그맨들 상당수는 코미디빅리그로 이탈한 상태이다. 물론 몇몇 고참 개그맨들은 웃찾사 시절부터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2012년 SBS 연예대상에서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 우수상, 신인상에 출연 개그맨 5명을 배출하는 성과를 올렸었다. 하지만 이들 중 정현수가 최우수상 소감에서 방송 시간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경쟁 프로그램이 프리미어리그 경기라는 언급을 했는데, 이때 '기성용 선발 출전 여부에 따라 시청률이 달라진다. (기성용이) 부상을 당해야 하는데 같은 한국인이라 그렇게 좋아할수도 없다', '박지성은 QPR로 이적하길 잘한것 같다'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축구 팬들의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27] 결국 기성용이 12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강이 부상 사진을 올렸고, 정현수는 이 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사과문을 올려야만 했다.
2012년 11월 16일 MBC 코미디에 빠지다가 오후 11시 25분으로 시간대 변경 후 시청률 3.5%를 기록, 2012년 11월 17일 개그투나잇의 시청률 4.1%를 턱 밑까지 쫓아오고 있던 상황.
그러나 2012년은 공교롭게도 MBC 예능 프로그램이 시망하고 있는 사이 SBS의 예능 프로그램이 나름대로 주가를 올리던 때라 신설 개그 프로그램이 끼어들만한 시간대 슬롯이 좀처럼 나오지 않던 시기였고, 때문에 곧 시간대가 옮겨질 거라 예상되었던 개그투나잇은 방송 이후 1년 6개월 동안이나 시간대를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초반의 동정여론 및 신선한 개그에 대한 호평도 너무나 접근이 어려운 시간대의 방송이라는 한계 때문에 곧 사그라들어서 후발주자인 코빠에도 밀리는 형국이 되었다. 한편 신동엽, 유재석, 컬투 등은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개그투나잇의 시간대 변경을 요청하는 등 개그계 안팎에서는 나름 SBS 개그 부활에 힘을 실어주는 훈풍이 불고 있었다.
3. 웃찾사 시즌 2
2013년 4월부터 9월까지 쓰인 로고.[28]
이에 SBS는 사실상 웃찾사의 부활 발판으로 여겨졌던 개그투나잇을 다시 웃찾사로 이름을 바꾸고, 2013년 4월 14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 45분으로 시간대를 옮겨 방송한다고 밝혔었다. 위의 역사 소개에도 나와있지만, 웃찾사라는 브랜드는 SBS가 자회사를 통해 직접 만들어낸 것이라 이런 저런 미운정이 있어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던 모양.
물론 일요일 오전시간대는 주말 심야시간대만큼이나 개그프로그램이 그리 재미를 보지 못하는 시간대임은 분명했지만,[29] 월~금 황금시간대 슬롯의 SBS 예능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최소한의 성의는 보였다는 평가.
2013년 10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쓰인 로고.
2013년 11월부터 금요일 오후 11시대로 옮기고 로고도 바뀌었다.
3.1. 부활 이후
2014년부터 시즌2 종영 때까지 쓰인 로고. 참고로 시즌1이 종영한 2010년에 쓰인 로고에서 글자마다 나사만 붙였다.
2015년 3월 22일부터 방영시간이 일요일 20시 45분에 방송을 시작해 22시에 끝난다. 개그콘서트가 일요일 밤 21시 15분에 시작해서 23시에 끝나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정면대결을 벌인 것이다.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컸으나 시간대 조정 이후의 시청률이 개콘과 웃찾사 양쪽 모두 조정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상태다. 2015년 7월에도 웃찾사는 4~5% 정도의 시청률이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다. 좋게 보면 개콘과 맞붙어서 시청률을 지켰다고도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보면 프라임 시간대로 옮기고도 시청률을 끌어 올리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는 애매한 결과다.
2015년 10월 기준으로 약 6~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개콘을 3% 차이까지 좁히며 위협하고 있다. 웃찾사의 시청률이 많이 올라갔다기 보다는 개콘의 시청률이 많이 내려와서 격차가 좁혀진 측면이 크지만 남자끼리의 경우 네이버 TV캐스트에서도 개콘 최다 조회수와 비등한 수준을 보여주는 등 재미있다는 반응이 최근 많아졌다. 앞으로도 이런 격차가 유지될지는 지켜볼일.
그런데 김수현 작가의 신작 그래, 그런거야로 9시대 주말 드라마가 부활이 확정되면서 다시 금요일 심야 방송 시간대로 옮기게 되었다.
2월 12일 밤 11시 25분으로 이동했는데, 시청률이 5.4%로 시청률 2위라는 나름 좋은 위치에서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이 기록을 어떻게 잘 끌어가느냐에 따라서 올라가느냐 떨어지느냐가 갈릴듯. 다음 주에는 황현희와 손헌수가 합류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다음 주 시청률이 4.3%로 1.1% 하락하고 말았다.
최근에 MBC 출신 개그우먼인 맹승지가 3월 17일 녹화분에 출연을 했다는 기사가 떴다. 그리고 시청률이 조금이나마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금요일로 옮길 때의 우려와는 다르게 제법 잘 굴러가고 있다. 물론 경쟁 프로그램들의 부진으로 잘 올라온 것이지만, 그래도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한 땀에 대한 보답이 매우 달콤하다.
요즘 새롭게 합류한 손헌수[30]와 맹승지, 그리고 황현희의 기량과 새로운 코너에 대한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일부 코너들을 격주로 돌리고 있다. 3월 18일 방송에서는 '호찬아'가, 3월 25일 방송에서는 '전설의 무대'와 '세기의 대결 알파코'가 방송되지 않았다. 그리고 반응이 미지근한 '말이오 말이지'는 2주 연속으로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금요일 밤 예능 시청률은 2등이다.
4월에 KBS 2TV에서 새 예능 프로그램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시작하면서 웃찾사의 시청률이 급속도로 하락하기 시작했는데 급기야 5월 27일에는 2.6%로 최악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말았다. 5월 20일 파일럿 프로그램 <좋아요>의 방영으로 1주 결방에 따른 타격과 언니들의 슬램덩크의 상승세의 영향을 받은 거로 보인다.
게다가 2016년 8월 개편으로 수요일 오후 11시로 다시 이동을 하면서 13년동안 16회나 시간대 이동을 하는데 다가 MBC 라디오 스타와 동시간 경쟁을 해야 하는 어려운 전망을 보이고 있었다.
다만, 이 경우엔 시간대가 자주 바꾸다 보니 시청자들이 방송 시간대 자체를 잘 몰라서 생길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시청률은 2 ~ 3%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SNS에 올라온 영상들은 조회 수가 많고 몇몇 코너는 화제가 되기도 한다.[31]
2016년 11월부터는 관객의 선호도 제도라는 간접 경연제를 도입하고 있다. 매회 공연이 끝나면 관객이 재밌는 코너를 골라 선택을 한다. 그리고 관객의 선택을 받은 코너들은 대부분 먼저 한다.[32]
2016년 12월 16일에는 종영된 코너와 현재 진행중인 코너 몇 개를 대결하는 왕중왕전 특집을 했다. MC는 정찬우와 걸스데이의 유라.
4. 레전드 매치 개편
4.1. 개편 전 정보
웃찾사도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었는지 2월 말에 개편을 예고했었고, 몇 주 후 경연제로 개편한다고 확정되었다. 그 후 웃찾사-레전드 매치라는 이름으로 아예 프로명이 변경되며 코미디빅리그처럼 경연제로 꾸릴 예정이다.[33] MC로는 컬투의 정찬우가 섭외되었으며, 첫 녹화는 2017년 3월 16일에 진행되었다.3월 15일, 기존의 코너들은 대부분 사라졌고, 일부 코너만 레전드 매치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기존에 코너를 하고 있는 대부분의 개그맨들은 졸지에 백수가 되고 말았다. 물론 일부는 금방 새코너로 복귀했지만...
개편하면서 정만호와 장유환[34] 등이 복귀했고, 그 외에도 KBS 출신의 김원효나 김재욱, 윤형빈 등까지 새롭게 합류했다.
참고로 개편 직전까지 시청률이 점점 떨어져 2.1%로 마무리를 지었다.
4.2. 개편 이후
개편 후 일단은 2.9%로 개편 전보다 0.8%를 찍는 등 순조롭게 시작하였다. 하지만 불호가 많아 개편 전 포맷이 좋다는 평이 많다. 또한 개편 이후 시청률이 상승하여 4월 13일 방영분에선 3.2%로 상승하였다.하지만 4월 19일 방영분에선 타 방송국이 대선 토론을 한 관계로 때문인지 2.3% 감소되었다. 또한 지난 주에 홍현희의 분장 논란의 영향이 있었지만 2.5%로 약간이나마 상승하였다.
5월 3일, 5월 10일 2주 연속으로 결방하였다.
4.3. 또 다시 종영
5월 말에 끝나면 시즌제로 변경되며 재정비를 갖을 겸 휴식기를 가진다고 알려졌다. 기사.하지만 말이 좋아야 휴식기지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코미디에 대한 사람들의 낮은 관심도[35]와 낮은 시청률과 저조한 화제성[36], 거기다가 최근에 생긴 논란 등으로 사실상 종영되었다고 보면 된다.[37] 많은 개그맨들은 실업자가 되고, 더불어서 수많은 신인 개그맨들의 등용문이 사라진 상황이다. 기사.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웃찾사 개그 자체는 2013년에 재시작한 이후로는 반응이 좋아서 이 프로그램이 재개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단 거다.
하지만 시즌 1 때도 그랬듯이 개그맨들한테 미리 사실을 말해 이해했다는 방송국의 말과 달리 웃찾사 개그맨들은 이 사실을 불과 일주일 전에 알아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공연 도중에 종영된다는 소식을 알았고 설상 재개한다고 해도 언제인지도 통 알 수 없는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웃찾사 소극장까지도 문을 닫게 되어 150여명이나 되는 많은 개그맨들은 모두 실업자가 된 상황. 특히, 16기 개그맨[38]들은 방송국 소속이라 1여년간 강제 은퇴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논란에 빠졌다.
해당 개그맨들을 비롯하여 정종철이나 정찬우와 같은 선배 개그맨들이나 김기리[39]나 허안나 등 타 방송국 개그맨들도 종영을 반대했다. 특히, 이용식은 1인 시위까지 했고, 코미디 협회장인 엄영수(당시에는 엄용수)는 직접 방송국 관계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까지 했다고 한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지만, 대체로 종영하는 게 낫다는 쪽으로 여론이 높은 상태.[40] 그러면서도 개그맨들과 웃찾사 팬들은 종영을 반대하는 동시에 다음 아고라에 웃찾사 종영 반대 서명운동을 열렬히 펼치기도 했지만 결국 여론을 뒤집지 못했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닐슨에선 2.1%로 매우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TNMS에서는 이보다 좀 높은 3.1%를 기록했다.
5. 종영 이후
종영 후의 분위기는 시즌 1 종영 당시와 다를 바가 없다. 홍윤화나 황영진의 말로는 몇몇 개그맨들은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지방의 집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심지어 이재훈과 김민재 등 일부는 기업에 취업했지만 적응을 못 한다고 한다. 또한 일부는 코빅으로 가거나 KBS 공채 시험도 준비하지만, KBS도 개그맨들의 사정이 안 좋은지[41] 2017년은 공채 채용을 아예 안 했고[42], 코빅도 홍윤화를 제외하고는 모두 탈락했다고 한다.그래도 시즌 1때와 다르게 개그맨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 덕택에 일부 개그맨들은 인터넷 방송으로 넘어가서 1인 라이브 방송이나 예능, 웹드라마로 진출하거나 개팟스타라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개그맨들끼리 경쟁한다.[43] 물론 여전히 웃찾사에서 했던 공연을 지방에서 공연하기도 하고 개그맨끼리 팀을 이뤄 웃찾사 소극장에서 따로 공연을 한다. 또한 문과이과, 흔한남매 팀은 웃찾사에서 해 왔던 소재를 이용하여 유튜브에 개설했다. 황영진은 연예부 기자로 취업했고, 홍윤화는 코빅으로 이적했다. 또한, 이호찬은 신인 그룹인 바이칼에 합류해서 아예 아이돌로 전업했다.
유튜브에서 채널을 개설해서 계속 개그를 이어나가는 개그맨들도 있는데, 뽀샵사진관(송인호, 김영구)이나 말이오 말이지(이준형, 장홍제), 흔한남매(장다운, 한으뜸), 배꼽빌라(유룡, 김승진, 이재훈) 등이 있다.
한편, 웃찾사 종영 이후 싱글와이프와 여사친 남사친을 파일럿으로 방영했다.[44] 그 후 그나마 시청률이 높은 싱글와이프가 웃찾사 시간대에 정규 편성되었다. 시청률은 웃찾사보단 높았으며, 방영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막을 내렸다.
9월부터 한국 코미디 타운에서 일부 웃찾사 개그맨들이 공연하거나 * 인천광역시에서는 9월 16일, 웃찾사-라스트콘서트를 개최했다. # 다만, 진짜 라스트인지는 모른다.
또한 10월부터 김민기와 이정수가 코빅으로 이적했다. 다만, 김민기는 한주만 나오다가 코너가 잘렸고, 대신 김영, 임준빈, 한송희, 박형민과 함께 개그 공연을 짰다.
11월 달에 인천의 모처에서 다른 공연을 했다. 이를 보아 웃찾사 라스트 콘서트라는 건 그냥 이름으로 보인다. 그 후에도 웃찾사의 이름을 빌려 종종 공연을 한다.
2018년부터 김민기는 다시 새 코너로 코빅에 돌아왔고, 강재준 - 이은형 부부도 코빅에 복귀했다. 또한 홍현희, 졸탄, 나몰라패밀리, 박영재 등도 코빅에 합류했다.
또한 2018년에 전수희와 송이지는 KBS 32기 공채 개그맨에 합격해 개그콘서트에 합류했다.
레전드 코너 때 잠시 합류했던 김원효는 다시 개콘으로 돌아갔다. 웃찾사 시즌 2 때 웃찾사로 옮겼던 KBS 개그맨 중에서는 유일하게 개콘에 복귀했다.
현재는 다수의 웃찾사 개그맨들이 코미디빅리그에 들어가고, 남은 웃찾사 개그맨들은 절반도 안 남아 부활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45] 그나마 희망적이라면 2023년 11월 12일에 개그콘서트가 부활함으로써 만약 이 프로그램이 흥행한다면 부활될 가능성이 있다.[46]
종영후 2018년 2019년에 웃찾사 콘서트를 한번씩 진행했었다
[1] 그 이유는 코미디 전망대가 시청률 부진으로 인해 종영된 데다가 그 뒤에도 방영되고 있던 웃으며 삽시다마저 IMF로 공영성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인해 종영된 것도 한 몫 했다.[2] 조세호, 최국, 엄경천 등.[3] 11기 - 정용국, 장재영, 이우제, 유재원, 12기 - 양철수, 조인기.[4] 김늘메, 최승태, 김경욱, 김범용, 김한배, 박재석.[5] 이쪽은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 밀린 것이 큰 원인이었다.[6] 개그 콘서트의 봉숭아 학당과 유사한 포지션.[7] 당시 백보람은 모닝의 멤버로 활동했으나 소속사 문제로 팀이 해체된 후였다.[8] 최고 시청률은 2005년 1월 6일의 TNMS 기준 27.2%.[9] 90년대 말,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캠퍼스 영상가요에 소속 개그맨들을 출연시키기도 한 적도 있었다. 과거 "갈갈이" 박준형이 2003년까지 스마일매니아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시절 캠퍼스 영상가요의 패러디 PV에서 간혹 얼굴을 내밀었던 것.[10] 웃찾사에서는 김숙은 난다김, 강성범은 럭셔리 강과 형님뉴스, 이병진은 한시간 느린 뉴스로 히트를 쳤다. 참고로 강성범은 원래 SBS 공채 출신. 문세윤, 김늘메, 최승태도 개콘에 출연했지만 레귤러 멤버는 아니었다.[11] 윤택이 밝히길 계약서만 만들었고 사인은 안받았다고 한다.[12] 이는 박승대에게 반대하는 개그맨은 강제로 퇴출시키겠다고 협박을 한 것도 한 몫했다.[13] 당시 박승대에게 대들 만한 개그맨은 KBS의 박준형 밖에 없었다고 한다. 박준형은 비록 박승대의 후배였지만 함께 스마일 매니아를 창립한 비즈니스 파트너였기에 따질 수 있었던 것.[14] 당시 웃찾사에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진 대다수의 개그맨들이 박승대 라인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잘 알 법한 양세형, 이진호, 이용진, 양세찬 등도 박승대 라인 출신이다.[15] 실제로 2005년 초 최고 27%를 찍었던 시청률이 그해 연말에는 10% 안팎까지 떨어졌다.[16] 그 전에 MBC의 코미디쇼 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일부 컬투 사단 개그맨들이 출연했었고, 이를 계기로 컬투 사단 개그맨들은 MBC와 SBS로 분산되어 출연하기 시작했다.[17] 반면 그 전까지 웃찾사의 주류였던 스마일매니아 사단은 대부분 2부 리그 격인 '개그1(원)'으로 빠지면서 웃찾사에서는 극도의 부진을 겪었다.[18] 이 사고로 인한 여파인지 장경희는 희극계에서 완전히 은퇴했으며, 이때부터 연극배우로 전향. 현재까지 활동하는 멤버는 심진화만이 유일하다.[19] 다만, 개콘은 2010년 가을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개콘이 본격적으로 좀씩 맛이 가기 시작한 건 뭐니뭐니해도 이 사람이 새로 오면서부터이다. MBC는 뭐...[20] 코너 제목은 몰라도 코너에서 밀던 유행어 'That's very hot'은 알 정도로 당시 엄청나게 유행했었다.[21] 개그스타에는 웃찾사의 맏형님이자 기둥 노릇을 하던 강성범이 고정 출연하고 있었다.[22] 이 장면이 유행하자 '웃찾死'라는 드립이 나왔던 게 자랑. 하지만 그 이후 웃찾사가 진짜로 웃찾死가 됐던 건 안 자랑.[23] 이 사람은 저격글을 지우고는 입장을 바꿨다.[24] 비록 선발되지 않았지만, 이후에도 웃찾사 출신들의 KBS행은 계속되어서, 이수지나 김승혜의 경우처럼 KBS 공채 개그맨 시험을 치러서 KBS로 간 웃찾사 출신 코미디언들은 많다.[25] 실제 방영 시각은 11월 6일 0시 10분. TV편성표상 자정이 넘었어도 정파 전까지의 방송은 전날로 표기하기 때문.[26] 이 정도 시청률은 월요일 밤 황금시간대 슬롯에 편성되었던 개그야가 중흥기를 누릴 때의 시청률에 근접한 수준이다. '2011 S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여러모로 호평을 받은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27] 이는 EPL을 중계하고 있는 자회사 SBS Sports를 디스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당분간 스포츠계에서 일을 받기는 어려울 듯.[28] 초대(2003년 ~ 2009년) 로고를 변형했다.[29] 웃찾사가 시간대를 마구 널뛰기하던 시절에도 일요일 오전슬롯에 편성되던 시절은 흑역사 취급한다.[30] 상술했듯 동기들 따라서 초창기 웃찾사에 출연한 적 있다.[31] 대표적으로 붕어빵과 문과이과. 두 코너 모두 인기에 비해 상당히 빨리 끝난 코너로 종영된지 1~2개월만에 SNS에 퍼져 화제가 되었다. 그 중 문과이과는 레전드 매치에서 다시 부활했다. 그 외에도 오마이갓 걸이나 부장아재가 있다.[32] 다만 하땅사의 방영 시기를 보아, 간접 경연 자체는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으나 방송에는 나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33] 해당 경연제는 이미 2016년 왕중왕전에서도 선보인 방식이다.[34] 장유환의 경우에는 2013년에 KBS 공채 28기 개그맨이 되었는데, 별 성과도 없이 쓸쓸하게 웃찾사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사실 1월에 한 흙사랑으로 복귀했지만 1회성에 그쳐서 논외.[35] 사실 이건 개콘 쪽도 마찬가지며 사정이 좀 나은 코빅도 도찐개찐인 수준.[36] 물론 웃음을 찾는 사람들/문제점 문서에서도 봤듯이 웃찾사는 자주 시간대를 옮겨서 사람들의 관심을 매우 못 받는다. 사실상 방송국의 문제인데 이걸 시청률로 탓하고 있다는 게 문제. 반성해라 SBS![37] 지금까지 SBS에서 성공한 시즌제 예능은 판타스틱 듀오와 K팝 스타 등 극히 일부 프로 뿐이며 전체로 넓혀도 성공한 프로그램은 얼마 되지 않는다.[38] 웃찾사가 종영됨에 따라 해당 기수가 SBS의 마지막 코미디언 공채가 되었다.[39] 다만 개콘에 가기 전에 웃찾사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40] 주장은 '개그가 재미없다.', '회사가 언제까지 능력없는 사원들을 품어야 되냐?' 등의 식.[41] 여기에는 파업 사태도 한몫했다.[42] 대신 2018년에 새로운 공채 코미디언들을 뽑았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공채가 되었으며, 개그콘서트도 2020년에 종영했다가 3년만에 다시 공채를 뽑기 시작했다.[43] 12주 동안 했으며, 지금은 종영되었다.[44] 사실 김용만과 정형돈의 파일럿 프로가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일각에서는 후배들에게 미안함에 관뒀다는 설이 떠돌고 있으나, 방송국에서는 부인했다.[45] 현재 이들은 모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유튜브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46] 실제로 15기 박형민,정승우,16기 김지영을 시작으로 많은 SBS 개그맨들이 개그콘서트에 출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