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3:36

유소(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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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 추존 · 비정통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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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 유혼 유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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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 비정통 황제
유소 | 劉劭
출생 424년
유송 양주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난징시)
즉위 453년 3월 16일
유송 양주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난징시)
사망 453년 5월 27일 (향년 29세)
유송 양주 단양군 건강현
(現 장쑤성 난징시)
능묘 미상
재위기간 비정통 황제
453년 3월 16일 ~ 453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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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F51BA><colcolor=#ece5b6> 본관 팽성 유씨
소(劭)
부모 부황 태조 문황제
모후 문원황후
형제자매 19남 12녀 중 장남
배우자 황후 은씨, 왕앵무
자녀 3남
아명 휴원(休遠)
제호 원흉(元兇)
연호 태초(太初, 453년)
}}}}}}}}} ||
1. 개요2. 행적
2.1. 초기 생애2.2. 원가북벌, 강담과의 갈등2.3. 무고의 화2.4. 문제 시해
3. 평가4. 둘러보기(계보)

[clearfix]

1. 개요

유송의 비정통 황제. 송문제 유의륭과 문원황후(文元皇后) 원씨(袁氏)[1]장남이다. 자는 휴원(休遠).

2. 행적

2.1. 초기 생애

424년, 유의륭이 제위에 오른 뒤 원제규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유의륭은 이를 매우 기뻐하였다. 다만 당시에는 무제의 삼년상 때문에 이를 공표하지 않았다가 2년 뒤인 426년에 유소가 태어난 사실을 공표했다.

원가 3년(429년) 5월, 태자로 봉해졌고 중서자(中庶子) 2명의 호위를 받으며 영복성(永福省)에 거처하였으며, 뒤에 유소를 위한 궁전을 화려하게 지었다. 438년에 황문시랑(黃門侍郞) 은순의 딸[2]을 비로 들였으며, 439년에 관례를 치렀다. 유소는 역사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무예를 특히 더 좋아했으며, 장성하면서 눈썹과 수염이 아름다웠고 키가 7척 4촌이나 되었다. 또한 동궁의 사무를 직접 보고 손님들을 직접 맞이하였으며, 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문제가 모두 따라주었다. 또한 동궁에 병사들을 두었는데, 그 규모는 황제 직속 금군인 우림위(羽林衛)와 비슷했다.

2.2. 원가북벌, 강담과의 갈등

450년, 문제가 북벌을 추진하려고 하자, 유소는 소사화와 함께 여기에 대해 간언을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북위군이 과보(瓜步)로 당도하자, 유소는 석두(石頭)로 출진하고 수군을 거느렸다. 문제가 이를 근심하자, 유소는 문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벌에 실패하여 치욕을 당하고 주군이 무너졌으니, 강담과 서담지를 참수하여 천하에 사죄하시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벌은 나의 뜻에서 나온 것이지 두 사람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뒤에 북위에서 사신을 보내서 정전을 청하자 문제가 유소와 대신들을 소집했는데, 대신들은 모두 찬성했지만 강담만은 의견이 달랐는데, 강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융적은 믿을 수 없으니 정전을 허락하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이 말을 들은 유소는 분노해서 강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세 왕이 험준한 곳에 있는데 어째서 구차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오?

이후 조회가 끝날 때 유소는 부하들을 시켜서 강담을 밀쳤고 강담은 거의 땅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유소와 강담의 관계는 매우 험악해졌으며, 유소는 문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담은 간사한 아첨꾼이니 그와 친하게 지내선 안됩니다.

유소는 문제에게 강담을 멀리하라고 조언했지만, 문제는 강담을 오히려 더 신임했고 두 사람을 화해시키고자 유소의 장남 유위지(劉偉之)를 강담의 셋째 딸과 결혼시키기도 했다.

2.3. 무고의 화

무고의 화로부터 12년 전인 440년, 유소의 생모인 원제규는 문제로부터 총애를 받았다가 해를 거듭할 수록 그 총애가 숙비(淑妃) 반씨(搬氏)에게로 옮겨가자, 병을 핑계로 문제를 만나지 않았고 결국 원한이 쌓여서 병을 얻어서 죽었다. 이 때문에 유소는 반씨와 반씨의 소생인 시흥왕(始興王) 유준(劉濬)을 원망했는데, 유준은 자신이 장래에 화를 입을 것을 염려해서 유소에게 굽신거리기 시작했고 유소와 유준은 점점 친해지게 되었다.

452년, 문제는 농업을 중시하여 농사와 양잠을 장려했고 궐내에서도 누에를 길러서 백성들에게 이를 권장하려고 하였다. 이때 오흥군(吳興郡) 출신의 엄도육(嚴道育)이라는 무당이 스스로 영험한 힘이 있고 귀신을 사역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3] 뒤에 동양공주(東陽公主)의 응합비(應閤婢) 왕앵무(王鸚鵡)가 동양공주에게 엄도육이 영험하고 법술을 지녔다고 이야기하니 동양공주가 문제에게 엄도육이 누에를 잘 치니 그녀를 불러달라고 이야기해서 엄도육은 궁으로 들어왔다. 엄도육이 입궁한 뒤 유소와 동양공주를 맹신하기 시작했다.

유소와 유준은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이것이 문제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해서 엄도육을 부른 뒤 기도를 올려서 문제가 이를 모르게 하려고 했다. 엄도육은 이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을 향해 간청해도 틀림없이 누설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유소와 유준은 엄도육을 공손히 섬겨서 그녀를 천사(天師)라고 불렀으며, 나중에는 옥으로 유의륭의 모습을 조각하여 함장전 앞에 묻고 유의륭을 저주했다.

당시 동양공주에게는 진천흥(陳天興)이라는 노비가 있었는데, 동양공주의 여종인 왕앵무가 진천흥을 자식으로 기르며 그와 사통하고 있었다. 왕앵무는 진천흥, 영주(寧州) 출신의 환관 경국(慶國)과 함께 유소, 유준 형제의 무고에 가담한 적이 있어서 유소가 진천흥을 대주(隊主)로 삼았다.

동양공주가 죽은 뒤 왕앵무가 시집을 가야 했는데, 유소는 주술에 대한 비밀을 지키고자 유준과 공모하여 왕앵무를 유준의 수하 관리인 심회원(沈懷遠)에게 첩으로 보내고 이 일을 문제에게 알리지 않았다. 다만 유소는 주술에 대한 것이 새어나갈까 염려해서 임하공주(臨賀公主)를 통해 문제에게 이 사실을 넌지시 언급했다. 문제는 뒤에 진천흥이 대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환관 해승조(奚承祖)를 보내 유소에게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
네가 중간에 기용한 대주는 모두 노비인가? 시집을 가려는 사람은 또 누구에게 시집을 갔는가?

다만 왕앵무는 이미 심회원에게 시집을 갔기 때문에, 유소는 겁에 질려서 급하게 유준에게 서신을 보냈고 임하공주에게는 다음과 같이 알렸다.
폐하께서 만약 누구에게 시집갔냐고 물으신다면 아직 누구에게 시집을 갈지 정하지 못했다고 대답하십시오.

왕앵무는 심회원에게 시집을 갔으나 자신이 진천흥과 사통한 것이 발각될까 두려워했고 유소는 입막음용으로 사람을 시켜서 진천흥을 죽였다. 경국은 서신을 주고받은 것은 자신과 진천흥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천흥이 죽자 자신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해서 전후사정을 문제에게 알렸다.

경국의 보고를 들은 문제는 경악했고 곧바로 사람을 보내 왕앵무를 체포했다. 그리고 왕앵무의 집을 수색하여 유준과 유소가 저주를 담은 편지 수백 통과 이전에 함장전 앞에 묻었던 옥인형도 발견되었다. 유의륭은 대단히 분노해서 저주 사건에 대해서 추궁을 했고 이미 잠적한 엄도육에 대한 체포를 명했지만 여전히 엄도육을 찾아내지 못했다. 문제가 유소와 유준과 불러서 이들을 힐책하자, 유소와 유준은 겁에 질려서 할 말을 잃었고 단지 사과하기만 했다. 엄도육은 옷을 갈아입고 비구니가 돼서 동궁으로 도망쳤고 유준은 엄도육을 데리고 경구(京口)로 갔고 어떨 때는 장오(張旿)라는 백성의 집에 숨었다.

강하왕(江夏王) 유의공이 우이(旴眙)에서 조정으로 돌아왔을 때 문제는 유준과 유소의 저주 사건에 대해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항상 보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는데, 나는 이것이 책에서만 전해지는 허황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직접 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유소가 한 짓은 비록 도의에 어긋난 짓이지만 사직을 반드시 망치는 것은 아니니까 유소가 제위에 오를 때는 그대나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너는 아이들이 많으니 장래에 불행해질 것이다.

이듬해 정월, 도망친 엄도육이 유준의 집에 숨어있다는걸 알고 유의륭이 그를 내놓으라고 했으나 거절당하자 그들을 처리할 결정을 세웠는데, 태자 후보를 면접보느라고[4] 오랫동안 미루며 매일밤 처남 상서복야 서담지와 의논만 했다. 그 와중에 반숙비가 이 사실을 그들에게 알렸으며 결국 2월이 되자 유소는 조서를 위조하여 1,000여 명을 이끌고 황궁에 쳐들어갔다.

2.4. 문제 시해

그날 밤도 유의륭은 서담지와 날이 밝을 때까지 폐립에 관한 일을 의논하느라 잠자리에 들지 않았는데, 유소의 심복 장초지가 칼을 들고 오는 것을 보자 책상을 들고 막았으나 결국 칼에 맞아 다섯 손가락이 모두 절단된 뒤 살해되었다. 이것은 중국사 최초로 태자가 황제를 시해한 패륜이다.

이 사건은 유소가 무능한 정치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준다. 권모술수에 능하다면 유의륭을 살리고 권력을 휘두를 수 없게 하고 허수아비로 만든 뒤 겉으로나마 합법적으로 양위를 받아 황제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군주인 아버지를 아들이 죽이는 일은 이미 춘추전국시대 때는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진시황이 황제로 칭하고 나서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그 와중에 반숙비는 반란군에게 살해당하였다.

유소는 스스로 황제에 즉위해 태초(太初)라는 연호를 쓰며 3개월 동안 제위에 있었다. 그는 보병 교위 심경지에게 밀명을 내려 무릉왕 유준(劉駿)을 살해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심경지는 유준과 함께 유소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에 이복 동생이자 유의륭의 6남 경릉왕 유탄[5], 무제 유유의 6남으로 유준의 숙부인 형주 자사 남군왕 유의선, 옹주 자사 장질, 사주 자사 노상 등도 함께 유소 토벌에 나섰다. 결국 유소는 4월 신정에서 유준에게 격파되었으며, 5월 건강에 입성한 유준에 의해 본인과 시흥왕 유준 모두 목숨을 잃었고 시체는 저잣거리에 그대로 내걸렸다.

동시에 그의 처이자 잠시동안 황후였던 은씨(殷氏), 왕씨(王氏)[6]는 물론 아들이었던 태자 유위지(劉偉之), 유적지(劉迪之), 유빈지(劉彬之), 이름 불명의 아들, 딸까지 처자가 모두 멸문지화를 당했다. 황제에 즉위한 효무제 유준은 이들을 채찍으로 때리고 독주를 부어 몰살해버렸다.

3. 평가

이 아이는 생김새가 이상하여 반드시 나라와 집안을 망하게 할 것이니, 기를 수 없습니다.
문원황후[7]
참으로 심하도다, 송나라의 재앙이여. 혁서(赫胥) 이후부터 황왕(皇王)의 칭호를 세우고 천하를 다스렸으나, 이런 재앙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송서

유소는 아버지를 살해한 패륜아인 데다가 재위 기간이 짧아 황제의 시호는 물론 묘호도 없다. 거기다 태자였지만 당연히 태자 시호 역시 받지 못했다. 정통 태자이자 대립 황제였지만 정통성이 없는 반역을 일으켜 비정통으로 평민 또는 그 이하로 강등된 사례이다.

애초에 황제가 되려고 아버지를 시해한 것도 아니고 폐태자가 될 위기에 앙심을 품고 저주하다가 걸려서 결국 궁지에 몰린 고양이를 물어 어쩌다가 황제가 된 경우이다. 이처럼 황제가 되면 뭘 어떻게 할지 가이드 라인이나 마스터 플랜도 전혀 없었고 아버지를 시해하고 즉위해 정통성도 전혀 없었으며 기반도 다져지지 않고 안정이 안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동생을 제거하려다가 역관광을 탄 케이스이다. 그래서 정사 <송서>와 <남사>에서는 본기 대신 열전에 들어갔는데 그것도 원흉(元兇) 소(劭)로 기록되어 역사적 심판을 받았다.

4. 둘러보기(계보)

송서(宋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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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무제기(武帝紀)」 4권 「소제기(少帝紀)」 5권 「문제기(文帝紀)」
유유(劉裕) 유의부 유의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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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劉駿) 유자업 유욱(劉彧)
9권 「후폐제기(後廢帝紀)」 10권 「순제기(順帝紀)」
유욱(劉昱) 유준(劉準)
※ 11권 ~ 40권은 志에 해당. 송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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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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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권 「삭로전(索虜傳)」 96권 「선비토욕혼(鮮卑吐谷渾)」
삭로 토욕혼
97권 「이만전(夷蠻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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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 · 저거몽손 유소(劉劭) · 유준(劉濬)
100권 「자서전(自序傳)」
심약
(1) 본명이 사유(謝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인(景仁)으로 표기되었다.
(2)본명이 저유지(褚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숙도(叔度)로 표기되었다.
(3) 본명이 장유(張裕)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무도(茂度)로 표기되었다.
(4) 본명이 왕유지(王裕之)로 유유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홍(敬弘)으로 표기되었다.
(5) 본명이 왕욱(王彧)으로 유욱의 휘를 범하여 자인 경문(景文)으로 표기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3f51ba><tablebgcolor=#3f51ba>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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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송본기상(宋本紀上)」 2권 「송본기중(宋本紀中)」 3권 「송본기하(宋本紀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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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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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19권 「사회등전(謝晦等傳))」
조륜지 · 소사화 · 장도 사회 · 사유 · 사방명 · 사령운
20권 「사홍미전(謝弘微傳)」 21권 「왕홍전(王弘傳)」 22권 「왕담수전(王曇首傳)」
사홍미 왕홍 왕담수 ,왕훈,
23권 「왕탄등전(王誕等傳)」 24권 「왕유지등전(王裕之等傳)」 25권 「왕의등전(王懿等傳)」
왕탄 · 왕화 · 왕혜 · 왕욱 왕유지 · 왕진지 · 왕소지 · 왕열지 · 왕준지 왕의 · 도언지 · 원호지 · 장흥세
26권 「원담전(袁湛傳)」 27권 「공정등전(孔靖等傳)」 28권 「저유지전(褚裕之傳)」
원담 공정 · 공림지 · 은경인 저유지
29권 「채곽전(蔡廓傳)」 30권 「하상지전(何尙之傳)」 31권 「장유전(張裕傳)」
채곽 하상지 장유 ,장승,
32권 「장소전(張邵傳)」 33권 「범태등전(范泰等傳)」 34권 「안연지등전(顔延之等傳)」
장소 범태 · 순백자 · 서광 ·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안연지 · 심회문 · 주랑
35권 「유담등전(劉湛等傳)」 36권 「양흔등전(羊欣等傳)」 37권 「심경지등전(沈慶之等傳)」
유담 · 유열 · 고침 · 고기지 양흔 · 양현보 · 심연지 · 강이 · 강병지 심경지 · 종각
38권 「유원경전(柳元景傳)」 39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40권 「노상등전(魯爽等傳)」
유원경 은효조 · 유면 노상 · 설안도 · 등완 · 종월 · 오희 · 황회
41권 「제종실전(齊宗室傳)」
소도도 · 소도생 · 소요광 · 소요흔 · 소면 · 소경선 · 소적부 · · 소탄 · 소탄지
42·43권 「제고제제자전(齊高帝諸子傳)」
소억 · 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44권 「제무제제자·제문혜제자·명제제자전(齊高帝諸子·文惠諸子·明帝諸子傳)」
소장무 ·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
45권 「왕경칙등전(王敬則等傳」 46권 「이안인등전(李安人等傳)」
왕경칙 · 진현달 · 장경아 · 최혜경 이안인 · 대승정 · 환강 · 초도 · 조무 · 여안국 · 주산도 · 주반룡 · 왕광지
47권 「순백옥등전(荀伯玉等傳)」 48권 「육징등전(陸澄等傳)」
순백옥 · 최조사 · 설연 · 우종 · 호해지 · 우완지 · 유휴 · 강석 육징 · 육혜효 · 육궐
49권 「유고지등전(庾杲之等傳)」 50권 「유환등전(劉瓛等傳)」
유고지 · 왕심 · 공규 · 유회진 유환 · 명승소 · 유이 · 유규
51·52권 「양종실전(梁宗室傳)」
소경 ,소매 소발 소앙 소욱, · 소의 · 소부 · 소창 · 소융 · 소굉 ,소정인 소정의 소정덕 소정립,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53권 「양무제자전(梁武帝諸子傳)」
소통 · 소종 · 소적 · 소속 · 소윤 · 소기
54권 「양간문제자·원제제자전(梁簡文帝諸子·元帝諸子傳)」
소대기 · 소대심 · 소대관 · 소대림 · 소대련 · 소대춘 · 소대성 · 소대봉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훈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대원 · 소방등 · 소방제 · 소방구 · 소방략
55권 「왕무등전(王茂等傳)」
왕무 · 조경종 · 조의종 · 석천문 · 하후상 · 길사첨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 장혜소 · 장징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56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57권 「심약등전(沈約等傳)」 58권 「위예등전(韋叡等傳)」
장홍책 ·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 악애 심약 · 범운 위예 · 배수
59권 「강엄등전(江淹等傳)」 60권 「범수등전(范岫等傳)」 61권 「진백지등전(陳伯之等傳)」
강엄 · 임방 · 왕승유 범수 · 부소 · 공휴원 · 강혁 · 서면 · 허무 · 은균 진백지 · 진경지 · 난흠
62권 「하창등전(賀瑒等傳)」 63권 「왕신념등전(王神念等傳)」 64권 「강자일등전( 江子一等傳)」
하창 · 사마경 · 주이 · 고협 · 서리 · 포천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강자일 · 호승우 · 서문성 · 음자춘 · 두즉 · 왕림 · 장표
65권 「진종실제왕전(陳宗室諸王傳)」
진의 · 진상 · 진혜기 · 진창 · 진담랑 · 진백무 · 진백산 · 진백고 · 진백공 · 진백인 · 진백의 · 진백례 · 진백지 · 진백모
진숙릉 · 진숙영 · 진숙견 · 진숙명 · 진숙경 · 진숙헌 · 진숙제 · 진숙문 · 진숙달 · 진숙탄 · 진숙표 · 진숙웅 · 진숙중 · 진숙엄 · 진숙신 · 진숙우 · 진숙평 · 진숙오 · 진숙흥 · 진숙선 · 진숙목 · 진숙검 · 진숙징 · 진숙소 · 진숙광 · 진숙순 · 진숙모 · 진숙현 · 진숙륭 · 진숙영
진심 · 진장 · 진윤 · 진억 · 진언 · 진경 · 진건 · 진념 · 진지 · 진전 · 진번
66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두승명 · 주문육 · 후진 · 후안도 · 구양위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오명철
67권 「호영등전(胡穎等傳)」
호영 · 서도 · 두릉 · 주철무(1) · 정령세 · 심각 · 육자륭 · 전도집 · 낙문아 · 손창 · 서세보 · 주부 · 순랑 · 주경 · 노실달 · 소마하 · 임충 · 번의
68권 「조지례등전(趙知禮等傳)」
조지례 · 채경력 · 종원요 · 한자고 · 화교 · 유사지 · 사기 · 모희 · 심군리 · 육산재
69권 「심형등전(沈炯等傳)」
심형 · 우려 · 부재 · 고야왕 · 요찰
70권 「순리전(循吏傳)」
길한 · 두기 · 신념 · 두혜도 · 완장지 · 견법숭 · 부염 · 우원 · 왕홍궤 · 심우 · 범술증 · 손겸 · 하원 · 곽조심
71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엄식지 · 사마경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공자구 · 황간 · 심수 · 척곤 · 정작 · 전완 · 장기 · 고월 · 척곤 · 왕원규
7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최위조 · 조충지 · 가희경 · 원준 · 유소(昭)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협 · 하사징 · 임효공 · 안협 · 기소유 · 두지위 · 안황 · 잠지경 · 하지원 · 서백양 · 장정견 · 완탁
73·74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瑜) · 가은 · 곽세통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구걸 · 사각수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인 · 손극 · 하자평 · 최회순 · 왕허지 · 오경지 · 소예명 · 소교처양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 구관선 · 손담 · 화보 · 해숙겸 · 한영민 · 유풍 · 봉연백 · 오달지 · 왕문수 · 악이지 · 손법종 · 유도민 · 등담공 · 도계직 · 심숭소 · 순장 · 길분 · 견염 · 조발호 · 한회명 · 저수 · 장경인 · 도자장 · 성경준 · 이경서 · 사린 · 은불해 · 사마고 · 장소
75·76권 「은일전(隐逸傳)」
도잠 · 종소문 · 심도건 · 공순지 · 주속지 · 대옹 · 적법사 · 뇌차종 · 곽희림 · 유응지 · 공기 · 주백년 · 관강지 · 어부 · 저백옥 · 고환 · 두경산 · 장영서 · 오포 · 서백진 · 심인사 · 완효서 · 등욱 · 도홍경 · 제갈거 · 유혜비 · 범원엽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77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서원 · 완전부 ·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 여법진 · 주석진 · 육험 · 사마신 · 시문경 · 심객경 · 공범
78·79권 「이맥전(夷貊傳)」
임읍 · 부남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 백제국 · 신라 · · 부상국· 하남왕국 · 탕창 등지 · 무흥국 · 형옹주·예주만 · 고창 · 쿠처 · 우전국 · 파사국 ·연연
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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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의 역대 황제
3대 태조 문황제 유의륭 (비정통) 원흉 유소 4대 세조 효무제 유준

[1] 이름은 원제규(袁齊嬀).[2] 이름은 은옥영(殷玉英)[3] 엄도육의 남편은 이전에 약탈을 저질러서 해관(奚官)이 되었다.[4] 4남 유삭, 6남 유탄, 7남 유굉. 이 셋은 모두 제명에 죽지 못했다.[5] 유의륭이 후계로 점찍었던 아들이었지만 유의륭의 죽음으로 인해 태자가 되지 못했다.[6] 이름은 왕앵무(王鸚鵡).[7] 이 말을 한 문원황후는 유소를 죽이려고 했으나 문제가 이를 말려서 결국 죽이지 못했다. 하지만 원제규가 한 말은 결국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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