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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는 어두운 밤에 빛을 만난 것과 같고, 가난한 이가 보배를 얻은 것과 같다.
불유교경(佛遺敎經)[1]
불유교경(佛遺敎經)[1]
심한 병에는 계가 능히 명약이 되고, 두려울 때는 능히 지켜준다.
용수(나가르주나) 《대지도론》에서
용수(나가르주나) 《대지도론》에서
이렇게 학자들이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어디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하여 불교의 근본사상을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의 원시경전인 아함경도 대승경전도 아닌 율장(律藏)을 학자들이 많이 신빙하여 연구하였습니다. 율장을 보면 시대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나 문법학적으로나 부처님 당시부터의 사실을 그대로 기록해 내려온 것으로서 혹 중간에 오면서 가필한 내용이 더러 있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봐서는 가장 부처님 말씀에 정확하지 않은가 하고 학자들이 판단을 내렸습니다.
성철, 백일법문 중에서
성철, 백일법문 중에서
1.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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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의 금강계단. 불교 입문 의례 가운데 하나인 수계는 율장 즉 계율과 관련이 깊다. | 신라의 승려 자장(590년~658년). 현존하는 한국 불교 최고(最古)의 율학은 자장에게서 비롯된다. |
律藏, Vinaya Piṭaka
석가모니 부처 재세시 또는 입멸 뒤에 불교 교단의 계율을 집대성한 것으로, 어떠한 계율과 그 계율이 성립하는 계기가 된 사건들을 함께 수록하고 있어서 현대로 치면 일종의 법령집인 동시에 판례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계율은 석가모니 부처의 활동 당시부터 필요에 따라 제정되어 왔는데,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율장들은 불교 교단이 여러 부파로 분열된 후 특정 부파들에 의하여 전승된 것들이다. 이들 율장은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 300~400년까지 성립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동북아시아로 전해져 5세기부터 8세기까지 한자 또는 티베트어로 번역되었다. 율장에는 인도와 아시아의 문화가 스며들어 있어서 문화사적인 측면에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제1차 경전 결집 당시 계율을 결집한 것은 석가모니 부처의 제자 가운데 우팔리라고 하는 석가족의 이발사 출신 승려였다. 계율을 잘 지켰고, 계율에 관한 의심이 생기면 석가모니 부처에게 일일이 여쭐 정도로 계율에 밝은 사람이라서 마하가섭이 석가모니 부처 입멸 뒤에 불경을 결집할 때에 이 사람이 외워 기억하고 있던 계율을 바탕으로 율장 즉 비나야 삐따까를 결집한 것인다. 경장을 결집하게 되는 아난은 이때 아직 아라한에 이르지 못한 상태라서 마하가섭에게 "너는 아직 여기에 낄 수 없다"고 해서 동굴 밖에 있다가 문득 깨우쳐서 아라한이 된 뒤에야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전승을 믿는다면 석가모니 부처의 설법보다 계율이 먼저 결집된 것이 된다.
다만 율장 결집을 마치고 아난이 들어와 결집에 참석하게 되었을 때에 아난이 "부처께서 열반에 들기 전에 '내가 설법한 계율 가운데 자잘한 것(소소계)은 굳이 지킬 필요 없고 바꿔서 행해도 좋다.' 하고 말했다고 밝히면서 문제가 생겼다. 석가모니 부처가 말한 굳이 지킬 필요 없고 버리든지 아니면 바꿔서 행해도 좋다고 한 '자잘한 계율'이 대체 무엇인지를 아난이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던 것.[2] 결국 마하가섭은 석가모니께서 말하신 소소계가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석가모니께서 정하신 율장의 내용은 고치지도 바꾸지 않는다'는 불제불개변(佛制不改變) 원칙을 세웠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모든 불교에서는 율장을 바꾸거나 필요에 따라 특정 구절을 빼거나 넣는 것은 원칙적으로 절대 금지된다. 이것을 소소계 논쟁이라고 한다. ##
율장은 크게 '북전(北傳)'에 속하는 한역 율장 5부[3]와 남전(南傳) 팔리어 율장이 있으며, 이를 합쳐서 '6부율'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티베트율까지 더하면 7종이 된다. 오부율은 법장부의 사분율, 설일체유부의 십송율(十誦律), 화지부의 오분율(五分律), 음광부(飮光部)의 해탈율, 대중부의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등을 꼽는다. 성립 순서로 보면 사분율과 오분율, 팔리율과 십송율, 마하승기율 순이 되고, 음광부의 해탈율은 전하지 않으므로 나머지 넷을 일컬어 '4대 광율'이라 한다. 이 광율 가운데 팔리어 율장과 내용이 가장 비슷한 것은 사분율이다.[4]
한역 율장은 크게 지지계(止持戒)와 작지계(作持戒)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팔리율의 경분별(經分別)과 건도부(楢度部)에 해당한다. 전자는 계율 조항에 따라서 분별하고 주석을 붙인 것이며, 후자는 출가 교단의 생활 규범을 모아 주석과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전자에서는 계경(戒經)과 결계(結戒), 범계(犯戒)의 종류와 출죄(出罪) 등을 다룬다. 후자에서는 수계(受戒)ㆍ포살(布薩)ㆍ안거(安居)ㆍ자자(自恣)와 그 밖의 의식주에 관한 스무 가지 사항을 다룬다. 이밖에 후자에는 집법비니오백인(集法毘尼五百人)과 칠백집법비니(七百集法毘尼)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제1차 결집과 제2차 결집에 대한 기록이다. 특히 제2차 결집의 경우는 율의 해석 차이를 놓고 벌어졌던 상좌부와 대중부가 분기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현재 상좌부 불교는 분별설부의 율장을, 티베트 불교는 근본설일체유부의 율장을,[5] 동아시아 불교계는 법장부의 율장을 사용한다. 서로 다른 부파의 율장을 받아들였다면, 지켜야 할 율장의 조목이 세부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다른 편에서 구족계를 수계한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 불교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조계종은 구족계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보살계를 함께 받도록 정하였는데, 보살계에 상좌부 불교의 율장을 거부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상좌부와 공유하는) 구족계나 오계를 보살계와 함께 받음은 모순이라는 주장도 있다. # 대한불교천태종에서는 승려로 출가하는 이들조차도 사미계ㆍ구족계 등을 받지 않고 오직 십선계만 받는다. 따라서 전통적인 불교의 관점에 따르면, 대한불교천태종의 승려들은 사실 '출가사문'이 아니다.
상좌부 불교나 대승 불교나 율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는 다르지만, 불교의 계율은 율법이나 법령보다는 진리에 다다르기 위한 가이드라인에 가깝다고 본다. 재가인이 지키는 오계(五戒)와 사미승이 지키는 십계(十戒), 비구가 지켜야 하는 계본(戒本)은 석가모니 부처가 정한 것이지만 유사시에 열고 닫을 수 있는 것이다.[6] 그 중에서도 반드시 들어가는 불살생계(不殺生戒) 또한 마찬가지다. 불살생계는 육식도 포함되어 있지만 성장해야 하는 어린아이(사미승도 포함) 라면 허용할 수 있으며 불음주계(不飮酒戒) 또한 음주가 죄가 아니지만 주사가 죄였기에 생겨난 것으로, 사분율의 약건도에는 석가모니가 "8가지 술을 마셔도 좋다. 취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 때나 마셔도 좋고 취한 사람은 마시지 말라. 오늘 받은 술을 내일 먹지 말라"라는 부분이 나온다.
다만, 이 계율들은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모두 사건이 터지고 난 이후에 "헐… 님들 다시는 이러면 안됨;;" 하는 식으로 만들어 진 계율들이다. 범하는 순간 승려 자격을 잃게 되는 4바라이죄 역시,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라 누군가 범하고 난 이후에 제정된 것들이다. 율장을 보면 각 계율마다 제정된 이유가 달려 있는데, 잘 읽어보면 신도들이 "부처님! 스님들이 저러니깐 꼴보기 싫어요!"하고 건의한 내용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체적으로 대승불교에서는 본질적으로 금지사항과 관련된 이러한 계율은 그 자체로 교조적으로 따를 것이 아니라 그 계율이 생겨난 맥락적인 의미를 따져서 지킬 것을 강조하는 편이며, 오히려 교조적으로 이를 강요하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이를 두고 흔히 '방편'이나 '개차'라고 표현한다. 현대에 와서는 불교 그리고 승려에 대해 가지는 대중적 이미지 때문에 이러한 계율이 점차 교조적으로 강요되는 편이고, 종파들도 대중과 괴리될 수는 없기 때문에 이에 어쩔 수 없이 얽메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불교계 내부에서도 '방편'이라느니 '개차'라느니 하는 명분으로 명백한 범계나 허물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있다. 링크 반대로 상좌부 불교에서는 이러한 '방편'이나 '개차' 등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튼간에 범계(계율을 어김)했다면 범계라는 것. 따라서 참회하거나 절차에 따라 벌을 받을지언정, 범계를 잘못이 아니라고 부정하려는 것을 금한다.
사실 계율을 곧이곧대로 지키자는 목소리가 교조주의, 근본주의에 빠지기 쉬운 위험한 주장임에는 틀림없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가 계속 경계하던[7] 바이다. 원래 석가모니는 계율보다는 계율을 지킴으로서 깨달음을 얻는 걸 강조했으므로, 깨달음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융통성은 필요했다. 그 예가 타락죽 설화로, 석가모니는 그로서 중도의 길을 깨달았다. 만약 자이나교처럼 불살생 계율만 고집하다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아사하는 종교가 된다면 불교는 이처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교는 의도를 중요시하는 종교이며, 어떤 길을 걷든 간에 적멸만 이루면 상관없을 만큼 유연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계율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불경의 하나인 논장은 경장뿐 아니라 율장의 내용에 대해서도 승려들이 해석하고 주석을 붙인 것도 포함되어 있다. 요컨대 법령 해설서이다. 사분율의 주석서인 《비니모경(毘尼母經)》 [8]과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 [9] 십송율의 주석서인 《살바다비니비바사(薩婆多毘尼毘婆沙)》, [10] 십송율과 설일체유부율의 주석서인 《살바다부비니마득륵가(薩婆多部毘尼摩得勒伽)》, [11] 그리고 정량부(正量部) 율장에 대한 계율 해석서 《율이십이명료론(律二十二明了論)》[12]를 '오론(五論)'이라고 하며, 4대 광률과 합쳐서 '사율오론(四律五論)'이라고도 부른다.
율장을 주요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를 율종(律宗)이라고 해서 한국에서는 신라 시대에 고승 자장이 처음 창시한 계율종(戒律宗)을 율종의 시작으로 꼽는다. 미륵불광사사적에 나오는 백제의 승려로 성명왕 4년(526년) 중인도 상가나대율사(常伽那大律寺)에 유학해 5년 동안 율부(律部)를 공부하고 범승(梵僧) 배달다삼장(倍達多三藏)과 함께 범본 아담장(阿曇藏)과 오부율문(五部律文)을 가지고 귀국해 이를 번역했다는 겸익으로 올려 잡기도 하는데, 문제는 미륵불광사사적이 현재 전해지지 않고 인용문만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전해지고 있어서, 애초에 기록 자체가 전해지는 게 없는 겸익이라는 승려를 실존인물이라고 볼 수 있긴 하냐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판이다. 고구려의 경우는 삼국유사에 동진 효무제 태원 9년(384년) 말에 담시(曇始)가 경장과 율장 수십 부를 가지고 요동 즉 고구려 땅에 들어와 불교의 가르침을 전했다고 하고 있어서 고구려에도 율장이 전래되었음은 틀림없다.
이 율장을 전문적으로 배운 승려를 율사(律師)라고 하는데, 자장을 '자장 율사'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들 율사는 계율을 배우고 연구할 뿐 아니라 출가하는 승려나 재가자들의 수계식에서도 계를 주는 역할을 맡는다. 자장이 승려들에 대해 율장에서 정한 계율에 따라 구족계(具足戒)를 받게 하기 위하여 통도사에 세운 금강계단(金剛戒壇)[13]을 한국 불교사에서는 율장에 대한 전문 교육의 시초로 보고 있다.
2. 율원
한국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총림의 사격을 갖춘 큰 사찰에 율원(律院)이 설치된다. 율장에 적시된 율전을 연구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강설하고 실천하는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이자, 율장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연구하는 '율사'를 양성하는 불교 전문교육기관이 율원이다.한국 불교에서 율원이라는 용어 자체는 6·25 전쟁 직후 자운 스님이 통도사에서 율장을 공부하면서부터 구체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 율원의 책임자를 율주(律主)라 부르며, 보통은 강원에서 대교과를 마친 비구승 가운데 특별히 계율 연구에 뜻을 둔 승려들이 입학하고 있고, 여기서 『사미율의요로(沙彌律儀要露)』, 『범망경』, 『사분율』 등을 배우게 된다.
지관, 일우, 석암, 일타 스님 등 5∼6명이 통도사에서 처음 공부하던 때에는 천화율원(天華律院)이라고 했는데, 이름을 사용했다. 천화율원은 이후 자운 스님이 수행처를 옮기는 과정에서 곳곳에 붙여졌고, 해인사에도 천화율원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고, 전문교육기관의 틀을 갖춘 건은 아니라 그냥 율장 공부하는 스님들 있는 데를 지칭하는 관용구 정도였던 듯하다.
천화율원 이후 한국에 현존하는 율원 가운데 가장 먼저 생긴 곳이 합천 해인사의 율원이다. 1977년 당시 해인사의 방장 성철 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의 후원으로 일타를 율주로 한국의 총림 안에 공식적으로 설립된, 정부 수립 이래 최초의 율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해인율원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율원 설립 이전인 1962년부터 율장에 명기된 자자와 포살을 발의하고 진행해 왔다는 점이다. 해인율원은 지금은 '해인총림 율학승가대학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한국 불교 최초의 비구니 율원은 1999년에 수원 봉녕사에 세주당 묘엄이 개창한 금강율원이다. 한국 외에 비구니 계단을 세운 곳은 동아시아에 대만을 제외하면 없다.
3. 율장 관련 용어
“증상계(增上戒)를 어기지 않고, 증상행(增上行)을 어기지 않고, 증상견(增上見)을 어기지 않고, 많이 배우고[多聞], 지혜를 갖춘 자이다.”
상좌부 율장 비나야 삔디까(Vin. Ⅰ. 64) '승가의 지도자(saṅgha-pariṇāyaka)'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상좌부 율장 비나야 삔디까(Vin. Ⅰ. 64) '승가의 지도자(saṅgha-pariṇāyaka)'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계를 잘 지키고, 빠띠목카(pātimokkha, 戒目)를 수호하고 단속하면서 머문다. 올바른 행위의 경계를 갖추고, 사소한 허물에도 두려움을 느끼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배운다.”
앙굿따라 니까야(AN. Ⅲ. 113) '장로 비구'에 대하여
앙굿따라 니까야(AN. Ⅲ. 113) '장로 비구'에 대하여
율장에 등장하는 용어들을 간략하게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
- 바라이(波羅夷)/빠라지까(Pārājikā)
한역하면 단두죄(斷頭罪), 구빈죄(驅擯罪)[14] 혹은 불공주(不共住) 등으로 번역된다. 불교 계율 중 가장 무거운 죄로 문자 그대로 목이 날아가는, 승적이 박탈되고 더 이상 승려로 인정되지 않는 죄를 말한다. 바라이죄는 참회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발각 즉시 승적이 박탈되지만, 사찰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는 건 아니고, 사미들 사이 작은 모퉁이에서 계속해서 수행하는 것은 허용되며, 수행을 쌓아서 아라한이 될 경우 바라이죄를 사면받을 수 있다. 이를 '진형학회갈마'라고 한다. #
사분율에는 바라이에 해당하는 죄는 네 가지가 있는데, 음계(婬戒),[15] 도계(盜戒),[16] 단인명계(斷人命戒),[17] 대망어계(大妄語戒)[18]로 이 네 가지를 통틀어 ‘사바라이죄(四波羅夷罪)’라고 한다.
구족계를 받은 사람이 바라이죄를 범하게 되면 바라이죄를 범한 상태로는 다시 구족계를 받을 수 없는데, 이러한 경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가 환계(還戒)제도이다. 바라이죄에 해당하는 범계를 저지르기 전에 미리 대중 스님에게 ‘나는 계를 바치겠다’고 하거나 ‘계속해서 수행할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환계가 이루어진 뒤, 이런 절차를 거치고 파계한 사람은 바라이를 범한 것이 아니라고 간주해서 다시 구족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환계하지 않고 바라이를 범하게 되면 구족계 수계가 성립되지 않게 된다. 남방에서는 잘 활용되는 이 제도가 북방불교에서는 보편화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 승잔(僧殘)/상가바셰사(saṁghāvaśeṣa)[19]
바라이죄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수위의 범계이다. '잔'이라는 글자에서 볼 수 있듯이, 승려로써의 목숨만 붙어 있다는 뜻으로, 승려라는 자격은 유지해도 승려로서 갖게 되는 36가지 권한이 모두 정지된다. 일종의 '자격정지'인데, 무기징역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승잔죄에 해당되는 범계가 이루어졌을 경우에 바로 발로참회(즉시 자수)를 하면 6야(이레)에 걸친 마나타(mānatta, 意喜)를 행한다. 그 다음에 스무 명 이상의 청정대중이 모여서 참회[20]에 관한 출죄갈마를 하고 나야 승잔죄에 관한 참회가 원만히 성취된 것으로 인정되어 승려 자격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승단에서 이루어지는 어떠한 일에도 참여할 수 없고, 갈마도 함께할 수 없다. 요컨대 '자격정지'이다.
승잔죄를 범하고 바로 참회하지 않은 채 범계 사실을 감추고 지낸 경우를 부장(覆藏)이라 하고, '부장' 상태에서 자신이 범계한 것을 스스로 드러내거나 누군가의 제보로 밝혀지게 될 경우 감추고 지낸 기간만큼 대중과 떨어진 곳에서 따로 거처하면서[21] 참회하는 기간을 더 거쳐야 한다. 이를 파리파사라 하며, 파리파사를 하고 나서야 마나타를 행하고 출죄갈마도 가능하게 된다. 이를 파리파사라 한다. 파리파사나 마나타 중에 또 승잔죄를 범하게 되면 본일치라 해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또한 파리파사든 마나타든 모두 행한 뒤에라도, 출죄갈마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스무 명의 청정비구가 없는 상태라면 출죄갈마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로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한다.
율장에서는 승잔에 해당하는 범계가 13가지[22]이다. 이 가운데 여덟 번째 무근방계(無根謗戒)는 근거없이 비방하는 것을 말하고, 여기에는 여성의 성기에 대해 여성에게 말하는 것과 음욕 공양의 공덕을 찬양하는 것도 포함된다. 아홉 번째는 가근방계(假根謗戒)라고 해서 비슷하지만 아닌 것에 가탁한 비방이다. 열 번째와 열한 번째 승가바시사는 각각 파승위간계(破僧違諫戒)[23]와 조파승위간계(助破僧違諫戒),[24]라고 해서, 승가 즉 불교 교단을 분열시키고 싸우게 하는 자나 혹은 그것을 적극 동조하는 자들에 대한 범계 규정이다. 여기에 대해서 율장에서는 세 번의 '경고'를 선행하도록 하고 있고, 세 번의 경고를 거쳐서도 저러면 가차없이 상가바셰사로 처리한다.
위 발언에서 바라이와 승잔을 아울러 말한 것이 증상계, 바라이와 승잔을 제외한 바일제, 사타, 투란차(미수죄) 등을 증상행이라고 한다.
- 부정(不定)/아니야타(Aniyata)
'결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비구가 계율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을 경우, 그 행위가 바라이가 될지 승잔이 될지 바일제가 될지 결정하지 않은 경우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에 따라 세 가지 법 중에서 어느 하나로 결정한다. 이는 사건 당시의 정보나 정황만을 가지고 결정할 수 없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공정성과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승가의 결정 방식으로 해석된다.
율장에는 병처부정(屛處不定)과 노처부정(露處不定) 이렇게 두 가지가 있는데, 모두 여성과 관련된 것이다. ‘비구가 어두운 장소나 막힌 곳[25]에서 여인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병처부정, ‘가려진 곳은 아니지만 비구가 여인에 대한 태도에서 다른 이의 의혹을 살 만한 짓을 하는 것’이 노처부정이다. #
- 사타(捨墮)/닛삭기야(nissaggiya)[26]
진사타(盡捨墮), 기타(棄墮)라고도 번역되는데, 여기서 타는 '바일제'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소유를 금지하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었을 때 죄에 저촉되는 물건을 내놓고, 파타얀티카(pātayantika, 墮)[27]해야 하는 범계이다. 탐심으로 모은 것은 상실될 수 밖에 없으므로 상가에 가져와 참회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즉 죄에 저촉된 물건을 내놓고 참회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부정 취득한 물건이나 돈을 4명 이상으로 구성된 승가에 내놓고 참회함으로써 출죄하게 된다.
후술할 빠찟디야(바일제)의 일종으로 분류해서 닛삭기야 빠찟디야(니살기바일제)라고도 하며, 서른 가지(30사타)가 있다.
- 바일제(波逸堤)/빠찟띠야(pācittiya)
한문으로 번역하면 타(墮) 또는 단타(單墮)이다. 바일제는 속죄가 필요하며 속죄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는 범계를 가리켜서 바일제라고 한다. 최소 2 - 3명의 비구 앞에서 참회함으로써 출죄하게 된다. 계율 가운데는 비교적 가벼운 조항으로 분류된다.
바일제는 아흔 가지가 존재한다(90단타). 전술한 사타(니살기바일제)와 비교하면 상실속죄냐 단순속죄의 차이가 있다. 상실속죄는 실체가 있는 물품을 탐욕을 일으켜 모은 것에 대해서 그 탐욕으로 모은 것을 도로 내놓음으로써 속죄가 성립된다고 할 때, 후자는 버려야 할 재물이라는 실체가 없고 대신 범계의 상대에게 사죄하고 참회하는 것이 필요한, 요컨대 망어(妄語)나 악구(惡口) 같은 기타 가벼운 죄를 모아 놓은 것이 바일제이다.
- 바라제제사니(波羅堤舍尼)/빠띠데사니야(pāṭidesanīya)
줄여서 제사니(堤舍尼)/데사니야(desanīya)라고도 한다. 한문으로 번역될 때는 현시(顯示) · 대타설(對他說) · 각대응설(各對應說) · 설죄(說罪) 및 향피회(向彼悔), 회과법(悔過法)으로 번역된다.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하며, 참회하는 것을 말한다. 한 사람의 비구 앞에서 참회하면 되는 비교적 가벼운 범계이다. 주로 탁발 음식의 수용에서 부적절한 일이 있었을 경우 발생한다.
바라제제사니는 비구에게는 네 가지[28], 비구니에게는 여덟 가지[29]가 존재한다.
- 중학(衆學)/세키야(sekhiya)
중학의 중(衆)은 '많다'는 뜻이다. 승려의 복장과 식사와 의식 등의 행의작법(行儀作法)의 규정으로, 숫자가 많고 항상 배워서 익혀야 할 것이므로 중학(衆學)이라고도 하고, 한 가지 조문에 다수의 개조(箇條)가 있어서 중학이라고도 한다. 응당학(應當學)[30]이라고도 하는데, '수가 많은 관계로 범하기 쉽고 지키기 어려우므로, 항상(마땅히) 학습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옷 및 열반승의 착법 2조, 속가에 갈 때의 행의 23조, 식사의 행의 23조, 설법의 행의 22조, 대소변의 행의 3조, 상과인수계 1조, 불탑에 관한 행의 26조[31]로 이루어져 있다. 중학의 범계는 한 명의 비구 앞에서 혹은 스스로 마음속으로 참회하면[32] 되는, 앞에서 언급된 범계들에 비하면 꽤 널널한 범계다.
율장에는 중학에 해당하는 범계가 백 가지가 나온다. 이 가운데 상과인수계는 출가자가 일정한 높이 이상의 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금지한 항목이다. #
중학의 경우에는 ①악작(惡作)[33]과 ②악설(惡說)[34]가 있다.
- 멸쟁(滅爭)/아디까라나사마사(adhikaraṇasamathā)
승가에서 쟁사[35]가 일어났을 때, 비구 가운데 멸쟁의 원리를 아는 비구가 상가의 규칙을 적용하여 쟁사를 그치게 해야 하며, 이것을 어기면 악작(돌길라)가 된다.
멸쟁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4. 율장과 성별 : 불교는 성차별적인가?
율장의 계율들은 비구와 비구니, 즉 남자 승려와 여자 승려가 서로 지켜야 할 계율의 수가 차이가 나는데, 조항은 똑같지만 비구에 대한 계율에 비해 비구니에 대한 계율이 훨씬 더 많다. 전재성 박사의 <빅쿠비방가-율장비구계>와 <빅쿠비방가-율장비구니계>를 보면 계율을 어겼을 때 적용되는 죄법의 경우 비구는 227개, 비구니는 311개 조항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 사분율의 경우도 비구율이 250조, 비구니율은 348조로 비구니율이 비구율보다 37개가 더 많다. 다른 율장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오분율 - 비구 251계, 비구니 380계
- 십송율 - 비구 257계, 비구니 355계
- 근본설일체유부율 - 비구 249계, 비구니 357계
- 마하승기율 - 비구 218계, 비구니 390계
때문에 불교가 평등을 말하고 여성의 출가를 허락했다지만 실제로는 남녀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석가모니 부처가 자신의 계모(이자 이모) 마하파자파티(대애도)의 출가를 허락한 것은 이른바 팔경법이라 불리는, 현대 기준에서는 분명히 남성 출가자와 여성 출가자의 차등을 둔 여덟 가지 조건이 붙어서 성사된 것이었다. 그 조건이라는 것이[36]
1. 백세 비구니일지라도 새로 계를 받은 비구를 보면 마땅히 일어나 예배해야 하고
2. 비구니는 비구를 욕하거나 꾸짖거나 비방해서는 안 된다.
3. 비구니는 비구의 죄를 드러내거나 기억해서도 안되며
4. 비구로부터 구족계를 받겠다고 청해야 하며(즉 비구니는 계율을 줄 수 없다)
5. 승잔죄를 범하면 보름 동안 마나타를 행해야 하며
6. 보름마다 비구에게 교수해 주기를 청해야 한다.
7. 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곳에서 하안거를 해서는 안되며
8. 하안거를 마치면 마땅히 비구 승가 가운데서 보고, 듣고, 의심한 것에 대한 삼사를 자자할 비구를 구해야 한다.
라는 것이었다.
문제의 비구니팔경법이 정말 석가모니 부처 당대에 제정된, 석가모니 부처의 '친설'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불교학계에서 조금 논쟁이 있었다. 대체로는 후대의 가필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지만, 팔리문헌연구소 마성 소장은[37] 「불교학연구」15호(2006.12)에 기고한 「비구니팔경법에 대한 고찰」에서 각 부파의 율장과 경장은 물론 비구니계의 바일제법에도 비구니 팔경법이 명시되어 있는 것을 들어 팔경법은 부파로 분열되기 이전 이미 시행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비구니팔경법은 석가모니 부처의 '친설'이 틀림없다고 보았는데, “이는 당시 인도의 사회, 문화적 상황 속에서 승가를 유지시키기 위한 석가모니 부처의 고육책”이었다고 해석했다.
그에 따르면 일단 석가모니 부처 본인은 여성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깨달음의 주체임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당시 인도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매우 낮았고[38]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출가를 허락할 경우 당시 바라문교가 주류이던 인도 사회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을 넘어 승가 전체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39] 그들의 반대를 잠재우기 위해서 부득이 사회적 관습을 따르도록 하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비구니 팔경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해주는 팔경법이 부파 불교 말기 비구 중심의 승단에서 석가모니 부처의 친설인 것처럼 꾸며낸 것이며, “정각을 이루고 당시 불합리한 사회 관행 및 제도를 부정하며 승가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었던 석가모니 부처께서 사회적 관습에 연연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더욱이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낮은 계급인 불가촉천민(수드라) 출신의 출가도 허락한[40] 석가모니 부처가 당시 대부분 왕족(크샤트리아) 출신이었던 여성의 출가는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이다.
여성 출가를 시키면서 왜 그런 걸 붙여놨느냐, 이건 성차별 아니냐라는 문제는 충분히 지적 가능한 점이지만, 그것이 석가모니 부처는 겉으로만 남녀 평등을 외친 위선자였다라는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은 석가모니 부처에 대한 지나친 비방에 가깝다. '여성은 붓다가 될 수 없고 남성보다 떨어지는 존재'라는 사고방식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인도 사회에서 "여성도 얼마든지 성불할 수 있다"라는 발언을 과감하게 하면서 (한계는 있었을 망정)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는 것만으로도 석가모니 부처는 충분히 시대를 한 발 앞서 생각하고 바라본 개명한 인물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41] 애초에 기원전 5세기에 세계 인류 역사에서 '여성 수도자 집단'이 공식적으로 성립하고 수행하였으며,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아라한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여성과 비구니들에게도 남성과 비구에 대해서처럼 차별없이 법을 설파한 것만으로도 석가모니 부처가 지닌 '혁명성'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일이다. #
중요한 것은 율장에 남녀 차별 내지 인권 침해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계율 조항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계율 조항을 내세워서 남녀 차별을, 나아가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려는 목소리가 발생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2,600년 전에, 그것도 한국도 아닌 인도에서 제정된 율장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숱하게 발견되는[42]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 점은 석가모니 부처나 승가의 문제라기보다 '시대상의 한계'라고밖에 할 수 없다. 문제는 어떤 사회적, 시대적 한계로 인한 오류임이 명백한 부분마저도 '종교적 가르침'이라며 무오류성을 밀어붙이고 그로 인해서 야기되는 사회적, 윤리적 마찰이다. 유대교의 하레디나 기독교 혹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그토록 욕을 먹는 것은 그들이 믿는 종교나 그 종교에서 내세우는 교리, 계율보다도 그것을 21세기 현대에 지나칠 정도로 팍팍하게, 융통성 하나 없이 적용하면서 헌법에 명시된 기본적인 인권 내지 사회적 규칙조차도 '종교'의 이름으로 무시해 버리면서 사회적, 문화적 충돌을 일으키고 온갖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아난에게 "내가 열반한 뒤에 소소한 계율은 굳이 다 지킬 필요 없이 바꾸거나 아예 없애도 좋다"라는 유교를 남겼던 것은 석가모니 부처 본인도 계율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고수하는 근본주의, 원칙주의가 가져올 문제점을 석가모니 부처 본인이 가장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보아도 무방하다. 계율은 사람이 정한 것이지만, 필요한 경우, 주로 사회적으로 얻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가 있을 경우, 관련 계율을 의도적으로 회피 또는 위반함으로써 사회적 이익을 달성, 성취하는 것은 권도(權道)이자 방편으로써 어느 정도는 정당화될 수 있다는[43] 인식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서나 존재했으며[44] 이런 관점에서 계율을 바라보면서 근본주의에도 허무주의에도 빠지지 않도록 중도를 추구하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물론 천년 전, 혹은 2천 년 전에 제정한 율법을 바꾸는 것은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사회적 분위기를 완전히 거스르면서 존속할 수 있는 종교란 인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45] '사회적 이익'을 이유로 종교의 계율을 어기는 것이 언제나 정당화되는 것만도 아닌 것이 그것을 이유로 종교의 계율을 어기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종교 자체가 성립이 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종교적 가르침과 사회적 공익 추구는 결국 양날의 칼이라는 얘기다.
5. 번역
한역 율장들은 모두 불교 아카이브를 통해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다. 단행본으로도 번역 출간되어 있다.6. 같이 보기
[1]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임하여 제자들에게 계율을 존중할 것을 당부하고 법요(法要)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한 것이다. 넓게 보면 열반경의 이본(내지 결경)으로 분류된다. 선종(禪宗)에서는 불조(佛祖) 3경(經)의 하나로 간주하여 중시되며, 대각국사 의천의 경우는 신편제종교장총록에서 대승율 끝부분이자 소승율(상좌부율)의 시작인 사분율(四分律) 앞에 배열하고, 어버이가 장차 목숨을 거둘 때 유언을 하는 것에 비유해 설명하기도 했다(대각국사문집 권3 '유교경파강사').#[2] 마하가섭이 이를 지적했을 때 아난의 대답은 자신이 그 말을 들었을 때에 석가모니 부처께서 입멸을 앞두고 계셨기에 너무 슬퍼서 경황이 없었다는 것이었다.[3] 흔히 '광율(廣律)'이라 불린다.[4] 중국 불교계에서는 불교가 전파된 이래 오랫동안 사대광률이 병행되었다. 그것도 종단이나 법맥에 따라 특정한 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는 십송율, 저기서는 사분율 하는 식으로 혼합해서 사용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다가 북위의 율사로서 율장을 연구한 법총(法聰, 468-559)은 중국 승려들이 구족계를 법장부의 사분율로 받음으로써 계체를 얻고 있다며 사분율을 통일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이후로 조금씩 사분율이 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나라 때까지 중국 강남 지역에선 십송율이 흔하게 쓰였지만, 700년대에 당 중종이 십송율 사용을 금지하여 결국 중국 불교계는 사분율로 통일된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사분율 계맥은 한국이나 일본으로도 전파되었다.[5] 티베트 불교에 전승되는 율장은 한역 율장 가운데 설일체유부의 신율(新律)로 8세기에 의정(義淨)이 한문으로 완역한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와 기본 체계는 유사하지만 분량이나 서술 방식, 세부 사항 등에 차이가 있다. 티베트 불교에 설일체유부 계통의 율장이 많이 전해졌던 것에 비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삼국에서는 법장부의 율장인 사분율이 좀 더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 다만 '근본설일체유부'와 '설일체유부'가 같은 부파인지는 불교학계에서도 논쟁이 있다. 일단 중국에 전해진 설일체유부의 십송율과 (티베트 불교가 사용하는) 근본설일체유부의 율은 매우 유사하긴 하지만 똑같지는 않다.[6] 사실 이 반론은 전형적인 대승불교의 논리를 따랐다. 상좌부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정한 계율을 열고 닫을 권리, 즉 계율의 어떤 구절을 유효화하고 말고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본다. 혹시 석가모니와 마찬가지로 여래의 경지에 든 사람이 나타난다면 모를까. 그래서 승려는 자신이 수계한 모든 계율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며, 어기면 참회하거나 율장이 정한 대로 벌을 받아야 한다.[7] 안 그랬으면 아난에게 "내가 입멸한 뒤에 자잘한 계율은 안 지켜도 된다고 해라"라고 했을까.[8] Vinaya-matrika-sastra. 비니모론(毗尼母論)이라고도 한다.[9] Samantapāsādikā. 선견론, 선견비바사율, 비바사율이라고도 한다. 팔리 율장이 사분율과 매우 유사하다.[10] Sarvāstivādavinayavibhāṣā. 살바다론, 살바다율광설이다.[11] Sarvāstivādavinayamātṛkā, Sarvāstivāda-nikāya vinaya-matrika[12] Vinaya-dvavimsati-prasannartha-sastra. 명료론이라고도 한다.[13] 자장이 중국 오대산에서 모셔온 석가여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곳이기도 하다. 통도사에 모셨던 진신사리는 임진왜란 때에 묘향산으로 옮겨 보관했다가 나중에 통도사로 모실 때에 일부를 달성군의 용연사에 모셨고, 용연사에도 금강계단이 세워져 있다.[14] '내쫓아 물리친다'는 것이다.[15] 음행하지 않는 것이다.[16]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다. 바라이죄에 해당하는 범계자가 승려들 사이에 수행하면서 승려들이 공양받은 물품을 같이 쓰고 공양받은 음식을 받아먹는 것을 율장에서는 승가의 물품을 훔친 것으로 분류한다. 승려 자격 박탈된 사람이 승려들에게 공양된 물품에 손대는 것이니까.[17]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다.[18] 큰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여기서 큰 거짓말이란 '깨닫지도 못했으면서 깨달았다고 거짓말하는 것'을 말한다.[19] 한문으로 음차하면 승가바시사(僧伽波尸沙)이다.[20] 불교의 참회는 손해를 입힌 상대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가 범한 죄를 타인 앞에서 고백하고 거기에 따라 죄를 깨끗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손해를 준 상대에게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계율을 범한 경우에 죄에 물들지 않은 ‘청정한 비구’ 앞에서 참회를 한다.[21] 이를 별주(別住)라고 한다.[22] 1. 일부러(故意) 정수(靜水)를 내지 말라(漏失戒)
2. 여자의 살을 만지지 말라(摩觸戒)
3. 여자와 추악한 말을 하지 말라(麤語戒)
4. 여자에게 자신의 몸을 칭찬하면서 공양을 요구하지 말라(歎身戒)
5. 중매하지 말라(媒人戒)
6. 시주 없이 집을 짓되 처분을 받지 않은 채 지나치게 짓지 말라(無主房戒)
7. 지주가 있어 집을 짓되 대중의 처분을 받지 않은 채 짓지 말라(有主房戒)
8. 근거 없이 '바라이죄'라 비방하지 말라(無根謗戒)
9. 다른 근거로 바라이죄라 비방하지 말라(假根謗戒)
10. 대중을 파괴하면서 이를 말리는(諫) 말을 막지 말라(破僧戒)
11. 대중을 파괴하면서 이를 말리는 말을 막는 이를 돕지 말라(助破僧戒)
12. 집을 더럽혔다고 가라는 것을 비방하지 말라고(汙家擯謗戒) 말리는 말을 막지 말라
13. 나쁜 성질로 스님들을 어겨서 이를 말리는 말을 막지 말라(拒僧諫戒)이다.[23] 승가를 분열시키고 다투는 것이다.[24] 파승을 기도하는 비구를 돕는 것을 말한다.[25] 다른 이가 볼 수 없거나 보이더라도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장소[26] 한문으로 음차하면 니살기(尼薩耆)이다.[27] 참회를 말한다.[28] 종비친니취식계(從非親尼取食戒) · 식니지수계(食尼指授戒) · 학가수식계(學家受食戒) · 난야수식계(蘭若受食戒)이다.[29] 무병걸소식계(無病乞酥食戒) · 무병걸유종식계(無病乞油從食戒) · 무병걸밀식계(無病乞蜜食戒) · 무병걸흑석밀식계(無病乞黑石蜜食戒) · 무병걸유식계(無病乞乳食戒) · 무병걸낙식계(無病乞酪食戒) · 무병걸어식계(無病乞魚食戒) · 무병걸육식계(無病乞肉食戒)이다.[30] '마땅히'라는 말을 한자로 적은 '응당'이 여기서 말하는 '응당'이다.[31] 불탑에 관한 행의 26개조는 『사분율』에만 나오는 것이다. 『사분율』이 법장부의 율장이라는 점에서 법장부과 불탑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32] 주로 고의가 아니었을 경우[33] 둑카타(dukkaṭa). 이를 음역하여 돌길라(突吉羅)라고 한다. 부정, 중학, 멸쟁은 모두 돌길라에 속한다.[34] 두바시따(dubbhāsita)[35] 크게 네 가지가 있다.
① 논쟁사(論諍事) - 논쟁으로 인한 쟁사
② 비난사(非難事) - 비난으로 인한 쟁사
③ 죄쟁사(罪諍事) - 범죄로 인한 쟁사
④ 행쟁사(行諍事) - 절차로 인한 쟁사.[36] 사분율, 오분율, 십송율, 마하승기율,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및 율장 소품 같은 율장은 물론, 불경 대애도비구니경과 중아함경 권28 '구담미경', 증지부 경전에 거론된다.[37] 승려이다.[38] 브라흐마나 시대(기원전 10세기~기원전 8세기)에는 "여성과 주사위와 수면은 파멸과 관계되어 있다"고 해서 여성을 거의 도박이나 잠과 동일시해서 취급했다. 마누 법전에는 "여성은 항상 독립하지 않는다"(5:147~149, 9:2~3), "여자는 원래 악성이다"(2:213~215) "(여자는) 베다를 독송할 수 없다"(9:18)라고 해서 여성의 인간성 자체를 열성으로 규정했고, 가정 안에서 아내의 권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이 점은 현대라고 다를 건 없다.[39]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급진적 개혁은 오히려 사회로부터 배척을 당하기 일쑤다. 그게 내부에서의 개혁이든 외부로부터의 변화이든, 기존의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단시간에 완벽하게 부정해 버리고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숭유억불을 외쳤던 조선조차 불교를 사회에서 완벽하게 뿌리뽑지 못했고, 개신교는 기존 한국 사회의 무속을 배격, 타파하려 들면서도 (완벽한 타파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존의 한국 무속이 지닌 샤머니즘적 행위들을 역으로 흡수했으며, 해방 이후 아무리 서구 문화가 많이 수입되었어도 한국 사회의 기존 유교적 관습을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한 채 일부는 유교적 관습과 융합하기도 했다.[40] 이것도 상당히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일이었다.[41] 달리 생각하면 석가모니 부처 같은 '깨어있는' 한 사람의 결단만으로 견고한 한 시대적 사고방식과 그 흐름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42] 왜 '발견'이라고 하느냐면, 그 시대에는 여러 가지 이유, 요컨대 시대적 혹은 문화적 분위기로 '그게 뭐 어때서? 무슨 문제 있나?'라고 넘어갔을 조항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그리스도교만 봐도 출산 과정에서 여성이 겪는 고통을 창세기 3장 16절을 근거로 '아담을 꾀어 선악과를 먹게 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보아서, 1591년 에든버러에서 쌍둥이 분만 중에 견딜 수 없던 산고를 겪던 여성이 진통제를 썼다는 이유로 영국 국왕 제임스 1세의 명으로 산 채로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250년이 지난 1853년에 런던에서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슨(James Simpson)이 클로로포름을 이용해 무통분만을 성공시켰을 때도 보수적인 교단에서 "여성이 해산의 고통을 겪는 것은 성경에 명시된 하나님의 섭리이며, 심슨이 해산의 고통을 고의로 없애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중대한 월권행위이다"라는 반대에 부딪혔다. #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진 축구선수 이영표가 셋째 출산 당시 "주님께서 주신 해산의 고통이라면 피하지 말자"는 이유로 아내에게 무통주사를 사용하지 말자고 권유한 사실을 2018년 그가 쓴 자서전 <생각이 내가 된다>에 썼고 이것이 알려지면서 "그러면 수술할 때 마취는 뭐하러 하냐?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데 본인은 일요일에도 축구 잘만 뛰더니?"라는 여론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 물론 출산시 무통주사가 필수가 아니고 오히려 분만을 지연시킬 수 있으며, 이영표 부부가 첫째, 둘째 아이를 낳을 때도 무통주사를 사용하지 않았고 아내도 '무통주사를 쓰지 말자'는 남편의 말에 동의했다고는 하지만# 하필 그 이유라는 것이 아내의 건강에 대한 남편으로써의 걱정이나 의학적 전문가의 지적에 입각한 소견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해산의 고통이니 피하지 말자", "말씀에 따라 살려는 노력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노력을 통해 느껴지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내와 나는 앞으로도 쉽게 사는 방법과 말씀대로 사는 방법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라는 식이었으니 비판 여론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이영표/논란 및 사건 사고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이영표는 자신의 종교와 관련해 지나친 근본주의 성향을 보였으며 이로 인한 비판도 많았다.[43] 당장 위에서 서술한 무통분만도, 창세기 구절을 이유로 반대하는 보수적인 교단에 대해 제임스 심슨은 1854년 "하나님이 아담을 깊게 잠들게 하고 갈비뼈를 빼내서 이브를 만들었다."란 창세기 구절을 근거로 들며 (하나님도 아담에게서 갈비뼈 뽑을 때에 아담을 재우셨으니) 수술시 고통을 없애기 위해 재우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다라는 논리로 반박했다. 결정적으로 6년 뒤인 1853년에 빅토리아 여왕이 레오폴트 왕자를 무통분만으로 출산한 뒤에 4년 뒤에 베아트리체 공주를 낳을 때에도 무통분만으로 낳았고, 또 2년 후에는 여왕의 맏공주로 프로이센 왕국으로 시집간 빅토리아도 무통분만으로 출산하게 되었는데, 이는 친정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조언에 의해서였다. 심지어 여왕은 1866년 제임스 심슨에게 ‘통증을 정복한 자’라는 글자가 새겨진 문장과 작위를 내렸다. 한 나라의 여왕과 공주가 모두 무통분만으로 순산을 했고, 또 그 공적으로 왕에게 문장과 작위까지 수여받은 의사를 두고 "무통분만은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불경한 짓이다"라고 대놓고 떠들 만큼 간 큰 사람은 당시 교단에 없었던지, 이후 무통분만은 성공적으로 자리잡아 차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게 된다. ##[44] 마태오의 복음서 12장에 예수와 그 제자들이 안식일 날에 밀밭을 지날 때에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먹는 것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보고 “지금 당신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예수는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성전에 들어가서 사제가 아니면 누구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은 일(삼상 21:1-6)과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율법 조항(레24:5~9)을 들면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45] 그 이슬람조차도 '음주' 금지 계율을 두면서도 "주님께서 술을 마시지 말라 하신 것은 포도로 빚은 술 같은 걸 마시지 말라는 거지, 낙타의 젖이 발효되어 술이 되었거나 대추야자로 빚은 술을 두고 한 말은 아니다"라며 스리슬쩍 낙타유주나 대추야자술 같은 발효주 정도는 넘어가는데# 이는 이슬람이 발흥한 곳이 물이 부족한 사막 지대로 이런 곳에서 신이 술 마시지 말라고 하셨답시고 낙타유주나 대추야자술 같은 사막에서 물 대신 마실 수 있는 대용품까지 싸그리 금지해 버렸다가는 "아니 그놈의 신은 우리더러 목 말라 죽으라는 거냐!"라는 대대적인 반발에 이슬람 자체가 절멸해 버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술은 술'이라며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없는 건 아니다만. # 에탄올 같은 의료용 알콜도 이슬람권에서는 허용된다.[46] 수계의식 자체가 율장과 관련이 깊다.
2. 여자의 살을 만지지 말라(摩觸戒)
3. 여자와 추악한 말을 하지 말라(麤語戒)
4. 여자에게 자신의 몸을 칭찬하면서 공양을 요구하지 말라(歎身戒)
5. 중매하지 말라(媒人戒)
6. 시주 없이 집을 짓되 처분을 받지 않은 채 지나치게 짓지 말라(無主房戒)
7. 지주가 있어 집을 짓되 대중의 처분을 받지 않은 채 짓지 말라(有主房戒)
8. 근거 없이 '바라이죄'라 비방하지 말라(無根謗戒)
9. 다른 근거로 바라이죄라 비방하지 말라(假根謗戒)
10. 대중을 파괴하면서 이를 말리는(諫) 말을 막지 말라(破僧戒)
11. 대중을 파괴하면서 이를 말리는 말을 막는 이를 돕지 말라(助破僧戒)
12. 집을 더럽혔다고 가라는 것을 비방하지 말라고(汙家擯謗戒) 말리는 말을 막지 말라
13. 나쁜 성질로 스님들을 어겨서 이를 말리는 말을 막지 말라(拒僧諫戒)이다.[23] 승가를 분열시키고 다투는 것이다.[24] 파승을 기도하는 비구를 돕는 것을 말한다.[25] 다른 이가 볼 수 없거나 보이더라도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장소[26] 한문으로 음차하면 니살기(尼薩耆)이다.[27] 참회를 말한다.[28] 종비친니취식계(從非親尼取食戒) · 식니지수계(食尼指授戒) · 학가수식계(學家受食戒) · 난야수식계(蘭若受食戒)이다.[29] 무병걸소식계(無病乞酥食戒) · 무병걸유종식계(無病乞油從食戒) · 무병걸밀식계(無病乞蜜食戒) · 무병걸흑석밀식계(無病乞黑石蜜食戒) · 무병걸유식계(無病乞乳食戒) · 무병걸낙식계(無病乞酪食戒) · 무병걸어식계(無病乞魚食戒) · 무병걸육식계(無病乞肉食戒)이다.[30] '마땅히'라는 말을 한자로 적은 '응당'이 여기서 말하는 '응당'이다.[31] 불탑에 관한 행의 26개조는 『사분율』에만 나오는 것이다. 『사분율』이 법장부의 율장이라는 점에서 법장부과 불탑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32] 주로 고의가 아니었을 경우[33] 둑카타(dukkaṭa). 이를 음역하여 돌길라(突吉羅)라고 한다. 부정, 중학, 멸쟁은 모두 돌길라에 속한다.[34] 두바시따(dubbhāsita)[35] 크게 네 가지가 있다.
① 논쟁사(論諍事) - 논쟁으로 인한 쟁사
② 비난사(非難事) - 비난으로 인한 쟁사
③ 죄쟁사(罪諍事) - 범죄로 인한 쟁사
④ 행쟁사(行諍事) - 절차로 인한 쟁사.[36] 사분율, 오분율, 십송율, 마하승기율,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및 율장 소품 같은 율장은 물론, 불경 대애도비구니경과 중아함경 권28 '구담미경', 증지부 경전에 거론된다.[37] 승려이다.[38] 브라흐마나 시대(기원전 10세기~기원전 8세기)에는 "여성과 주사위와 수면은 파멸과 관계되어 있다"고 해서 여성을 거의 도박이나 잠과 동일시해서 취급했다. 마누 법전에는 "여성은 항상 독립하지 않는다"(5:147~149, 9:2~3), "여자는 원래 악성이다"(2:213~215) "(여자는) 베다를 독송할 수 없다"(9:18)라고 해서 여성의 인간성 자체를 열성으로 규정했고, 가정 안에서 아내의 권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이 점은 현대라고 다를 건 없다.[39]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급진적 개혁은 오히려 사회로부터 배척을 당하기 일쑤다. 그게 내부에서의 개혁이든 외부로부터의 변화이든, 기존의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단시간에 완벽하게 부정해 버리고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숭유억불을 외쳤던 조선조차 불교를 사회에서 완벽하게 뿌리뽑지 못했고, 개신교는 기존 한국 사회의 무속을 배격, 타파하려 들면서도 (완벽한 타파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존의 한국 무속이 지닌 샤머니즘적 행위들을 역으로 흡수했으며, 해방 이후 아무리 서구 문화가 많이 수입되었어도 한국 사회의 기존 유교적 관습을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한 채 일부는 유교적 관습과 융합하기도 했다.[40] 이것도 상당히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일이었다.[41] 달리 생각하면 석가모니 부처 같은 '깨어있는' 한 사람의 결단만으로 견고한 한 시대적 사고방식과 그 흐름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42] 왜 '발견'이라고 하느냐면, 그 시대에는 여러 가지 이유, 요컨대 시대적 혹은 문화적 분위기로 '그게 뭐 어때서? 무슨 문제 있나?'라고 넘어갔을 조항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그리스도교만 봐도 출산 과정에서 여성이 겪는 고통을 창세기 3장 16절을 근거로 '아담을 꾀어 선악과를 먹게 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보아서, 1591년 에든버러에서 쌍둥이 분만 중에 견딜 수 없던 산고를 겪던 여성이 진통제를 썼다는 이유로 영국 국왕 제임스 1세의 명으로 산 채로 화형을 당하기도 하고, 250년이 지난 1853년에 런던에서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슨(James Simpson)이 클로로포름을 이용해 무통분만을 성공시켰을 때도 보수적인 교단에서 "여성이 해산의 고통을 겪는 것은 성경에 명시된 하나님의 섭리이며, 심슨이 해산의 고통을 고의로 없애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중대한 월권행위이다"라는 반대에 부딪혔다. #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진 축구선수 이영표가 셋째 출산 당시 "주님께서 주신 해산의 고통이라면 피하지 말자"는 이유로 아내에게 무통주사를 사용하지 말자고 권유한 사실을 2018년 그가 쓴 자서전 <생각이 내가 된다>에 썼고 이것이 알려지면서 "그러면 수술할 때 마취는 뭐하러 하냐?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데 본인은 일요일에도 축구 잘만 뛰더니?"라는 여론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 물론 출산시 무통주사가 필수가 아니고 오히려 분만을 지연시킬 수 있으며, 이영표 부부가 첫째, 둘째 아이를 낳을 때도 무통주사를 사용하지 않았고 아내도 '무통주사를 쓰지 말자'는 남편의 말에 동의했다고는 하지만# 하필 그 이유라는 것이 아내의 건강에 대한 남편으로써의 걱정이나 의학적 전문가의 지적에 입각한 소견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해산의 고통이니 피하지 말자", "말씀에 따라 살려는 노력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노력을 통해 느껴지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내와 나는 앞으로도 쉽게 사는 방법과 말씀대로 사는 방법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라는 식이었으니 비판 여론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이영표/논란 및 사건 사고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이영표는 자신의 종교와 관련해 지나친 근본주의 성향을 보였으며 이로 인한 비판도 많았다.[43] 당장 위에서 서술한 무통분만도, 창세기 구절을 이유로 반대하는 보수적인 교단에 대해 제임스 심슨은 1854년 "하나님이 아담을 깊게 잠들게 하고 갈비뼈를 빼내서 이브를 만들었다."란 창세기 구절을 근거로 들며 (하나님도 아담에게서 갈비뼈 뽑을 때에 아담을 재우셨으니) 수술시 고통을 없애기 위해 재우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다라는 논리로 반박했다. 결정적으로 6년 뒤인 1853년에 빅토리아 여왕이 레오폴트 왕자를 무통분만으로 출산한 뒤에 4년 뒤에 베아트리체 공주를 낳을 때에도 무통분만으로 낳았고, 또 2년 후에는 여왕의 맏공주로 프로이센 왕국으로 시집간 빅토리아도 무통분만으로 출산하게 되었는데, 이는 친정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조언에 의해서였다. 심지어 여왕은 1866년 제임스 심슨에게 ‘통증을 정복한 자’라는 글자가 새겨진 문장과 작위를 내렸다. 한 나라의 여왕과 공주가 모두 무통분만으로 순산을 했고, 또 그 공적으로 왕에게 문장과 작위까지 수여받은 의사를 두고 "무통분만은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불경한 짓이다"라고 대놓고 떠들 만큼 간 큰 사람은 당시 교단에 없었던지, 이후 무통분만은 성공적으로 자리잡아 차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게 된다. ##[44] 마태오의 복음서 12장에 예수와 그 제자들이 안식일 날에 밀밭을 지날 때에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먹는 것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보고 “지금 당신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예수는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성전에 들어가서 사제가 아니면 누구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은 일(삼상 21:1-6)과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율법 조항(레24:5~9)을 들면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45] 그 이슬람조차도 '음주' 금지 계율을 두면서도 "주님께서 술을 마시지 말라 하신 것은 포도로 빚은 술 같은 걸 마시지 말라는 거지, 낙타의 젖이 발효되어 술이 되었거나 대추야자로 빚은 술을 두고 한 말은 아니다"라며 스리슬쩍 낙타유주나 대추야자술 같은 발효주 정도는 넘어가는데# 이는 이슬람이 발흥한 곳이 물이 부족한 사막 지대로 이런 곳에서 신이 술 마시지 말라고 하셨답시고 낙타유주나 대추야자술 같은 사막에서 물 대신 마실 수 있는 대용품까지 싸그리 금지해 버렸다가는 "아니 그놈의 신은 우리더러 목 말라 죽으라는 거냐!"라는 대대적인 반발에 이슬람 자체가 절멸해 버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술은 술'이라며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없는 건 아니다만. # 에탄올 같은 의료용 알콜도 이슬람권에서는 허용된다.[46] 수계의식 자체가 율장과 관련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