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22:51:14

이낙연/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이낙연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제21대 대통령 선거/대권주자
,
,
,
,
,

{{{#!wiki style="margin:-10px"<tablebordercolor=#45babd> 파일:NY투명1.svg이낙연
관련 문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17253e,#45BABD> 생애 및 활동 <colbgcolor=#fff,#1f2023>생애 및 정치 경력 (국무총리 시절 행적 · 당대표 시절 행적)
가족 아버지 이두만 · 아들 이동한
20대 대선 대권주자로서의 장단점 · 필연캠프
비판 및 논란 비판 및 논란 (국무총리 시기 · 당대표 시기)
옵티머스 사태 · 더불어민주당 재보선 무공천 당헌 수정 논란 · 남성 군복무 피해의식 발언 논란 · 이명박·박근혜 사면 발언 논란 · 노무현 탄핵소추안 찬반 논란 ·이낙연 지지자 민주당 경선 선관위 결정 불복 시위
관련 단체 새로운미래
기타 별명 · 친낙 · 극문 · 똥파리 · 뮨파 · 더레프트 · 이낙연 마이너 갤러리 · 백브리핑 · 정치신세계 · 문을 여니 조국이 보인다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00467f,#005ba6 20%,#005ba6 80%,#00467f); color:#ffc224"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진보 민주 제3지대 보수 종교
파일:녹색정의당 흰색 로고.svg 파일:더불어민주당 로고 화이트.svg 파일:조국혁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파일:새로운미래 흰색 로고_좌우.svg 파일:개혁신당 신 로고타입(반전).svg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_가로.svg 파일:국가혁명당 흰색 로고타입.svg
심상정[1] 김동연 조국 이낙연 이준석 안철수 허경영
박용진 오세훈
이재명 원희룡
추미애 유승민
한동훈
홍준표
[1] 정계은퇴
}}}}}}}}}}}} ||

1. 개요2. 강점
2.1. 다양한 입법·행정 경험
3. 약점
3.1. 얇으면서도 극성인 코어 지지층3.2. 호남 민심의 외면3.3. 당대표 시절의 각종 실책
3.3.1. 이명박, 박근혜 사면 발언3.3.2. 재보궐선거 참패 책임론
3.4. 경선 불복 논란3.5. 무리한 의원직 사퇴3.6. 민주당 지지자들의 비토정서3.7. 아군과의 잦은 갈등3.8. 고령의 나이3.9. 사법리스크3.10. 민주당 내 영남후보론3.11. 상대적으로 순탄했던 삶3.12. 22대 총선 참패
4. 복합적
4.1. 대선주자가 없는 친문 세력4.2. 보수 진영의 상대적으로 낮은 반감

1. 개요

이낙연새로운미래 대표의 대권주자로서의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서술한 문서.

1.1. 21대 총선까지

이낙연은 국무총리 퇴임 후에도 이전의 국무총리 출신 대권주자들과 달리 큰 존재감을 보였다.[1] 전남지사 시절의 좋은 평판과 품격있는 언행, 호남의 열혈한 지지로 대권주자로 하마평에 올랐고 실제로 21대 총선 승리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민주당의 대권주자로 부상하게 된다.

일례로 2020년 4월 뉴스1이 엠브레인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30%를 돌파하며 1위 자리를 더욱 확실히 하기도 하였다.# 이 지지세는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이한동, 고건, 정운찬등의 많은 국무총리 출신 정치인들이 대권주자로 입에 올랐으나 얼마 안가 나가떨어진 것을 보면 대단한 기록이라 볼 수 있다.

이후 제21대 국회가 개원했고 2020년 8월 더불어민주당 제4차 전당대회에 출마하여 비록 7개월짜리라도 당대표[2]를 거칠지 아니면 책임감이 부족한 이미지가 씌어지거나 다른 거물급 인사와의 마찰이 생길 것[3]을 피해 대권으로 직행할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서 당대표와 최고위원의 임기를 분리하는[4] 당헌·당규 개정안이 확정되면서 당 대표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전국대의원 투표(45%)와 권리당원 투표(40%), 국민 여론조사(10%), 당원 여론조사(5%) 합산을 통해 당 대표를 선출하며 2020년 8월 29일, 이낙연 후보는 60.77%의 득표로 신임 당대표에 선출되면서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지는듯 했다.

1.2. 20대 대선에서

그러나 당대표 취임이후의 행보는 당장 단기적인 요소에만 집착한 나머지 장기적인 요소를 외면하였고, 이는 이낙연의 대권가도에 적잖은 타격을 입혔다. 본인의 지지세력 확장을 위해 했던 이명박, 박근혜 사면발언은 정작 중도층에게선 반응이 미지근했고, 되려 기존 지지층을 등돌리게 한 악수로 돌아왔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 단체장인 박원순, 오거돈의 성추행으로 인해 치러진 2021년 재보궐선거서울특별시장, 부산광역시장 수성에 눈이 멀어 당헌을 개정하는 꼼수를 쓰면서까지 후보를 내려해 많은 당시 야당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낙연 지도부로서는 여당으로서 수도 서울과 제 2 도시인 부산의 행정을 포기할 수 없었고 당헌 개정 또한 전당원 온라인투표로 동의를 얻었으므로 명분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서울과 부산에서 모두 참패하면서 결과적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이낙연 지지율 하락의 결정적 원인은 2021년 1월 한 언론과의 신년인터뷰에서 발언한 박근혜 사면론을 시발점으로 본다. 당시 청와대와의 교감설이 있는데 본인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상황. 그러나 지지율이 며칠만에 10여 퍼센트 하락해 치명적인 결과로 돌아가게 된다. 결국 이러한 실책의 연속으로 인해 이재명에게 밀려 대선후보가 되는데 실패하였고, 경선 결과 볼복을 넘어 부정선거까지 주장하면서 화룡점정을 찍고 말았다. 이러한 행보로 인해 민주당 내 핵심 코어 지지층들 절대 다수가 등을 돌리게 된 점은 큰 숙제로 남은 상황이다.

1.3. 22대 총선에서

2024년 총선 시즌에 들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제3지대를 모색하던 이준석 세력과 힘을 합쳐 개혁신당을 창당하며 민주당계 진영과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다. 이낙연이 개혁신당 창당을 통해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지만, 정치적인 재기는 몰라도 대권의 꿈은 사실상 좌절되었다고 보는 여론이 많다. 그의 본진인 범민주진영에서는 완전히 정치적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보수진영에서도 그에 대해 호의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는 데다가 제3지대로 뭉친 개혁신당 에서도 그의 입지와 발언권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결국 이준석과의 갈등으로 인해 합당이 무산되어 개혁신당과의 연합은 없던 일이 되었다.

결국 이런저런 이미지 소모가 너무 심했던 나머지 이낙연 본인의 홈그라운드인 광주에서 고작 13%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으며 몰락에 쐐기를 박았다. 5선에 국무총리까지 지낸 정치인이 이 정도 득표율을 기록 한 것은 굉장히 치명적이며 결정적으로 친문 진영에선 조국이라는 강력한 대체제가 등장함에 따라 낙선한 이낙연은 친문 주자로서의 위치까지 상실 해 버림으로 더 이상 민주당에 돌아 갈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5] 나이를 생각하면 향후 정치적 재기는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2. 강점

2.1. 다양한 입법·행정 경험

5선 의원을 역임하며 입법 경험을, 전남지사국무총리직을 역임하며 행정 경험을 쌓았다. 일례로 제6회 지선에서 당선된 광역단체장 평가에서 광주광역시장 윤장현부산광역시장 서병수는 꽤 높은 지지율로 당선됐음에도 임기 중 평가는 꼴찌를 다투었다. 반면 이낙연은 꽤나 높은 도정 평가를 유지했었다. 이낙연이 전남지사로 재임 할 때 # 이낙연의 도정 평가 긍정률은 60%를 넘나들었으며, 김관용 경북지사와 함께 최상위권에 랭크됐었고, 여야에서 모두 50%를 넘는 지지율을 유지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가 된 뒤로는 안정감 있는 국정 운영 능력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야당 의원들을 향한 달변을 보여주며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호감을 쌓았다. 그리고 21대 총선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본인의 선거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음은 물론이고[6] 당의 대승을 거두는 데에도 공을 세웠다는 평가가 있다.# #

3. 약점

3.1. 얇으면서도 극성인 코어 지지층

박근혜문재인과 같이 콘크리트라 불릴 만한 두터운 지지층이 없다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콘크리트 지지층이 없다고 당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에게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면 확실한 디버프가 된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이, 문재인은 노무현의 친구라는 점이 지지층들의 결집을 높이고 대통령 당선의 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현재 이낙연의 코어 지지층은 주로 강성 친문이다. 문제는 친문이 이낙연을 지지하는 것은 문재인에 대한 지지로부터서 나오며, 친문이 친노를 계승한 뒤 단순히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아닌 문재인에 대한 지지로서 독자적 세력을 공고히 구축한 것과는 달리 이낙연을 향한 정치적 결집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낙연 본인이 가진 매력이나 정치적 서사가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점으로 거론된 낮은 비호감도와 같은 선상에서 거론되는 점이다.

또한 이낙연은 총리 지명 전에는 친문으로 분류되지도 않았던 만큼[7] 단순히 정치적 연고와 인맥에 따른 구시대적 계파 분류에서는 친문 직계로 여겨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며,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명백한 비문 정치인들까지도 친문을 자처할 정도로 계파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만큼 사실상 친문 직계로서 수혜를 받지는 못했다.

게다가 참여정부 시절 민주당 원내대표로 재직하면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강경하게 비판하는 논평을 내었던 점이나 노무현 탄핵 투표에는 반대표를 내었지만 당시 원내대표로서 "노무현 정권의 민주당 죽이기 규탄대회"까지 열어가면서 활동했던 점 등은 친명 세력에 의해 공격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당대표 이후의 행보를 보면 보수 야당과의 협치를 논하는 등의 태도가 민주당 지지층 내에 개혁과 선명성을 중시하는 세력 및 진보 야권에게는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인상을 주었고, 이는 당내 지지층이 중요한 경선에선 약점으로 와닿을 수밖에 없다.

더더욱 문제인 것은 소위 뮨파로 불리는 이낙연의 극단적 지지층이 이낙연 본인과 마찬가지로 민심과 괴리되어 외연확장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평소 이낙연의 '깨끗함'[8]에 집착하여 대통령 경선 상대였던 이재명을 '찢', '전과 4범' 등의 멸칭으로 부른다. 문제는 상대 당도 아닌 같은 민주당의 후보에게 이런식으로 비난을 하니 평범한 민주당 지지층에게는 그저 내부총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낙연의 지지층은 이낙연 본인만의 매력을 어필하기보다는 상대 정치인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만 하여 오히려 일반적인 유권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고, 그 결과 이낙연 패배에 크게 일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일부 극성 지지자들의 패악질은 이낙연이 22대 총선에서 대패한 이후로도 고쳐지지 않고 오히려 심해졌는데, X(구 트위터)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낙연 지지자들은 서구 갑(광주)지역에 옥중출마했던 송영길보다도 낮은 득표율을 올린 것[9]과 같은 광산 을 지역구에서 경쟁했던 민형배에게 5배 이상의 격차로 패배했다는 사실에 열폭하여 유권자인 광주 시민들에게까지 온갖 지역드립을 일삼고 있다.[10] 아무리 가능성이 낮아졌다지만 한때 대통령을 목표로 했던 정치인의 지지층 치고 역대급으로 낮은 질을 보여주는 중이다.

3.2. 호남 민심의 외면

일단 이낙연 본인은 호남 출신이며 전남에서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지냈고 전남지사까지 지냈던 만큼 호남지역 정계 및 주민들으로부터의 어느정도 지지를 기본적으로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11] 그러나 실제로는 기대와 달리 호남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2023년 12월 들어 이낙연이 신당 창당 추진을 시사했는데, 2023년 12월 KBS광주가 광주와 전남 지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12월 정례 여론조사에서 5% 남짓한 지지율을 기록해 42%를 기록한 이재명에 크게 밀리는 수치를 보였다. # 2024년 1월29일~2월2일 KBS전주와 전북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북 지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이낙연 신당 지지 의향을 묻는 설문에서 79%는 '의향 없음(별로 그렇지 않다 23%·전혀 그렇지 않다 56%)'으로 답했다. '의향 있음'은 16%(매우 그렇다 6%·대체로 그렇다 11%)로 나타났다. #

또한 2023년 12월 20일 YTN이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골수 지지층에서 긍정 여론이 높고, 민주당 골수 지지층에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높은 결과가 나왔다.[12] 국민들이 좌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신당 창당 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시사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광주·전남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지방의원 전원은 이낙연이 추진하는 신당 창당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

이낙연은 제22대 총선에서 광주 광산을에 도전했지만, 선거비 전액 보전을 받는 15%선 득표에도 실패하면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큰 차이로 패배했다. 이에 따라 이낙연의 향후 정치적 미래도 암담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이낙연이 창당한 새로운미래의 비례대표 득표율은 광주 2.9%, 전라남도 2.27%, 전북특별자치도 1.55%로 호남 지역에서 3% 선도 넘지 못 했다. '호버남'(남이 자)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3.3. 당대표 시절의 각종 실책

애초에 이낙연이 대선 출마를 위해 당규까지 바꿔가면서 6개월짜리 당대표를 하는것도 과욕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이낙연이 전당대회에 출마할 당시에는 아직 박원순, 오거돈 성범죄 사태는 터지지도 않은 상태인지라, 선거도 지휘도 하지 않을거면서 당규까지 바꿔 가면서 고작 6개월만 하고 그만둘 당대표를 왜 하냐는 말이 많았는데,[13] 결국 이낙연에게는 이 당대표 시절이 향후 자신의 정치행보에서 악영향을 지대하게 끼치고 만다.

3.3.1. 이명박, 박근혜 사면 발언

이낙연 대표가 2021년 신년사에서 했던 이명박, 박근혜 사면 발언은 민주당 지지층에게 큰 반발을 샀고 이후 지지율이 급락하여, 결국 문재인 정부 내각에 있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 보다도 지지율이 밀리게 되었다. 이는 이낙연 대세론의 붕괴에 크게 일조했다. 심지어 윤석열은 이 당시 정치행보를 보이지도 않았던 검찰총장 신분이였다.

아마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보복은 커녕, 화합의 메시지를 이끌어낸 것처럼 보수층에게 환심을 사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김대중은 대통령 당선 이후에 한 것이고, 이명박, 박근혜는 전연령층이 크게 반대하는 사안이라서 최악의 악수로 돌아왔다.

3.3.2. 재보궐선거 참패 책임론

이낙연 대표가 상임선대위원장으로서 지휘한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자당 소속 전임 서울, 부산시장추문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자당 소속 지자체장들의 실책으로 발생한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당헌[14]을 따르지 않고, 전당대회를 열어 당원 투표에 따라 후보를 내기로 결정하는 무리수를 두었다.[15]

결국 두 도시에서 모두 압도적인 표차로 대참패하여 시장직을 국민의힘에게 넘기게 되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웠다고는 하나, 당시 당대표 이낙연은 LH사태 대응에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계속 이겨왔던 선거에서 민주당이 첫 패배를 맛보게 했고, 무엇보다도 수도인 서울의 시정을 다시 보수정당에 넘어가게 한 책임으로 이낙연의 대세론은 붕괴되며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16]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에 출마하자, 민주당 내에서 이낙연에 대한 평가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날로 험악해졌다. 이러한 행위는 문재인이 만든 당헌을 지키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고[17], '죽어도 문재인을 지키겠다'라는 발언을 하는 등 문재인 계승 포지션을 내세우는 명분에 타격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 박주민, 전재수가 이재명 캠프로 넘어갔고, 훗날 이재명 당대표 시기에는 친낙으로 여겨졌던 박광온 원내대표가 이재명과 특별히 각을 세우지 않는 행보를 보이는 등의 타격을 입어[18] 계파 자체가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박지원을 필두로 한 민주당 내 보수계열조차도 이낙연과 활동을 같이 하지 않으며, 친낙의 입지는 상당히 위축됬다.

이렇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높은 지지율을 모두 깎아먹어버렸고, 자신을 지지하던 지지자들은 떠나 버렸다. 당장 20대 대선 경선에서 전남만 진땀승으로 이기고, 광주는 석패하고 전북은 아얘 참패하는 등, 자신의 지지 기반인 호남 조차 이재명에게 밀리는 등으로 자신의 지지도를 거의 잃어버렸다.

여기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패배를 두고 비판을 했으나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미국에 출국하자, 죽어도 문재인을 지키겠다더니, 문재인이 있는 곳이 아닌, 미국으로 도주했다며, 아예 오지말라는 민주당원들의 엄청난 비판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후 치러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재명이 당대표에 77.7%의 득표율로 압도적으로 당선되었고, 최고위원 선거에서 본인 계열이였던 송갑석이 낙선[19]하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이 때문에 4.7 재보궐선거 참패 책임론은 상당한 약점으로 와닿을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인지 신당창당을 공식화한 지금도 윤영찬처럼 이낙연을 따라하지 않고 잔류의사를 밝히거나[20] 아예 최측근 중의 최측근인 이개호는 이낙연을 손절 해버리기까지 했으며, 박광온, 홍익표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원내대표로 당선되며 친이낙연 색채를 탈피해버리는 등, 친낙계가 추가 이탈하는 모습을 보이며, 본인의 입지를 완전히 말아먹어버렸다.[21]

이제는 대선후보로도 잘 언급되지 않는 미미한 수준. 어느 정도냐면, 단지 윤석열 정부 내에서 브레인에 속하는 원희룡과 비슷하고, 홍준표는 고사하고 심지어 이준석에게 조차도 밀리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3.4. 경선 불복 논란

20대 경선시기 친낙 vs 친명 계파 간의 경선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양측 지지 세력간의 비방과 마찰이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 경선 후보였던 정세균김두관이 사퇴하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무효표 규정 논란이 발생했다. 이낙연 후보 측은 해당 해석이 경선 조항의 상위법인 공직선거법이나 결선제도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중앙당의 유권 해석 검토를 요청했다. 이를 이재명 지지측에서는 경선 불복이라 비난하였으며, 언론들도 사실상 경선 불복이라고 보도했다.# 게다가 경선 결과 불복을 넘어 경선 규정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였다. 결국 경선 결과에 승복하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일련의 언행으로 인해 이낙연의 핵심기반인 호남마저도 서서히 등을 돌리게 되었으며, 후술할 친명계 지지자들에게 경선불복으로 인한 배신자, 프락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점은 당내 코어지지층 결집이 중요한 대선 경선에서 상당한 핸디캡이 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경선 불복 자체가 이낙연의 욕심이 드러난 사건이니만큼 이 사건으로 인해 이낙연은 당이 어떻게 되든 말든, 나라가 어떻게 되든 말든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3.5. 무리한 의원직 사퇴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대권을 위해 주위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원직 사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종로구가 대한민국 정치 1번지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 중요한 곳인데다가 국회의원의 경우 사퇴하지 않고도 대선 출마가 가능했기 때문에 무리수라는 반응이 당 내에서 쏟아졌다.

게다가 사임 이후 첫 경선 유세를 전 지역구였던 종로구가 아닌 본인의 지역 기반이었던 전남에서 했는데, 이는 총선에서 자신을 지지한 종로구 유권자들을 외면한 결과라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민주당은 보궐 선거에서의 패배를 의식하여 대선과 병행된 2022년 3월 재보궐선거에서 종로구에 후보 공천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고, 그 결과 국민의힘 최재형 후보가 손쉽게 지역구를 가져가게 되었다. 해당 선거에서 정의당배복주 후보는 선거비가 전액 보전되는 15% 득표율을 넘겼으며, "종로 지역구가 중앙정계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여겨지는 데에 염증을 느끼는 주민들이 많다"는 의견을 남겼다.# 반 국민의힘 성향 주민들이 상당수 그에게 투표한 것이다. 심지어 종로구 내에서 민주당 후보 지지 성향이 가장 강한 창신2동이 최재형 후보의 손을 들어주기까지 했다.

결국 이러한 이낙연의 행보는 자충수가 되어 호남 기반도 잃고, 종로 기반도 잃는 최악수가 되었고, 덤으로 원내에 진입한 이재명에 대항하여 뭉칠 구심점마저 잃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대권에 도전하려면 지역 기반과 원내 구심점 모두 필요한 만큼 이 부분 역시 상당한 핸디캡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선 불복 논란과 이 논란이 합쳐져서 이낙연은 그 동안 숨겨왔던 본심을 드러냈다고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의원직을 사퇴한다는 것은 당이나 나라가 어찌 되더라도 무조건 대통령이 되겠다는 심산이고, 경선에 불복했다는 것은 대통령은 무조건 나여야만 하며 아무리 아군이라 하더라도 나 이외의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라는 속셈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민주주의란 상호간의 의견을 존중해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쪽이 리더가 되는 것이 기본 전제인데 이낙연의 이 두 가지 행보는 민주주의가 아닌 전제군주제황제같은 태도를 보인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 국가에서 본인을 황제라고 생각하는 이를 사람들이 지지해줄 리가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대통령이지 황제가 아니다.[22]

3.6. 민주당 지지자들의 비토정서

이낙연이 대권 도전을 하는 데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요소들 중 하나도 바로 민주당의 신주류가 된 친명계의 비토정서다. 이재명이 당대표로 선출될 당시 77.7%의 득표를 얻을 정도로 더불어민주당 당원의 대다수가 친명성향이라는 것이다. 당내 코어지지층 결집이 중요한 대선 경선에 상당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재명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이낙연은 경선 불복을 하는 등 이재명을 전혀 도와주지 않아 끝내 윤석열이재명을 누르고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이 일어나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친명계에게 있어서 이낙연은 이미 비토를 초월한 존재로, 국민의힘 정치인과 이낙연 중 누굴 더 싫어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우선 당장 친명 성향의 지지자들부터 당내 원외인사들까지가 정운현이민구, 이상이, 백광현 등 소위 뮨파, 똥파리로 지칭되는 최측근 인물들의 해당행위[23]뿐만 아니라 경선 당시 대장동 문제와 관련된 과도하리만큼 지나친 네거티브와 친낙계 의원들의 내부총질 등으로 인해 내부총질러에 배신자 등의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음은 물론 이재명의 대선 낙선과 사법리스크를 초래하고 대선 이후로 이재명이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게 만든 최대 원흉이자 장본인으로 여기고 있는 마당이다.

그런데다가 이후 2023년 2월 말에 이재명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아슬아슬하게 부결되자마자 민주당 청원게시판에 이낙연을 당에서 영구제명을 시켜버리자는 청원이 올라오고, 그 청원에 무려 7만 명이 넘는 당원들이 서명을 했었을 정도로 대선 이후로 이낙연과 민주당 내 비명계와 반명계, 더 나아가 친낙에 대한 친명 원외인사들과 친명 지지자들의 증오심과 적개심도 전반적으로 당 내외에 어마어마하게 막강한 수준으로 고착화가 되어 있다. 심지어는 친명 지지자들은 더 나아가 이번 22대 총선에서 비명계와 반명계, 그리고 친낙계 인사들을 공천에서부터 완전히 제거해 버리겠다는 의지마저 결연해져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향후 이재명 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할 22대 총선에서 비명친낙 성향의 의원들과 원외인사들이 공천에서부터 어마어마한 불이익을 볼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인데, 만약 비명친낙 의원들과 원외인사들이 정말로 대거 공천학살을 당하거나, 아니면 일부 몇몇 비명친낙 인사들이 공천을 받는데 성공하더라도 정작 본선에서 낙선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러지 않아도 이미 대선 이후로 축소되어 있는 이낙연 자신의 정치적 기반과 자신의 당내 입지 등이 더욱 약해질 여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이낙연이 신당 창당을 공식화하자 정작 친낙 인사들과 심지어 문재인 마저도 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친낙계의 핵심 인사인 이개호 등은 아예 이낙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고 선언하는 등, 격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때문에 본인의 지지자를 결집시켜서 친명계에 대항하기는 커녕, 되려 친낙계 전반에 내분이 일어나고 있으며, 신당 창당론때문에 다른 비명계 인사들 사이에서도 이낙연에 대한 비토 정서가 퍼지고 있다.[24]

2024년 1월 결국 이낙연이 민주당을 탈당하자 MBC 패널 여론조사 결과 이낙연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호감도가 20%에서 한 자리수로 추락하고 비호감도는 90%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낙연에 대한 반감과 비토정서를 민주당의 신주류인 친명뿐만 아니라 범민주당계 진영 전체가 공유하게 된 것이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60%가 넘는 민주당 지지층들의 지지를 받고, 진보/보수 진영의 대권주자 중 압도적으로 1위를 달렸던 정치적 입지를 생각하면 말 그대로 급전직하한 것이다.

3.7. 아군과의 잦은 갈등

사실상 이낙연의 최대 아킬레스건. 이낙연은 이재명과 멀어진 이후,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이후 새로운미래를 창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준석과 연합했다.[25] 하지만 이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준비를 이준석에게 전권을 부여한다는 이유로 인해 얼마 못 가 와해되었으며# 이렇게 이낙연은 아군을 만날 때마다 믿고 맡기지 못하며 계속 동맹을 결렬하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덤으로, 이낙연이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나간답시고 그 황금같은 지역구인 종로구를 버림으로 인해[26], 종로구 주민들과도 척을 지게 되어 결국 보궐선거에서는 국민의힘최재형을 당선시켰다.[27] 이렇게 이낙연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척을 지고 있다. 그리고 이낙연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주광역시 광산구 을 지역수에 자신이 창당한 새로운 미래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그 동안 이낙연이 아군과 너무 갈등을 일으킨 것을 광산구 구민들이 잘 알고 있어서 표를 전혀 주지 않았고 결국 낙선했다. 2위 낙선인 게 문제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에서 출마해서 당선한 민형배에게 76%나 되는 엄청난 몰빵을 해줬기 때문에 이낙연의 낙선은 엄청나게 뼈아픈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이낙연의 행동에 대해 차라리 이재명에게 협력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승승장구했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기까지 했다. 이재명은 더불어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고 이미 그 당의 중심인물인 셈인데 이낙연은 이런 인물과 굳이 척을 진 것이다.

참고로 이낙연이 지 성격을 못이겨서 동맹을 결렬한 이준석노원구 출마라는 고집을 버리고 현실에 맞게 화성시 을에 출마해서 당당히 당선해, 뒤늦게라도 초선의원이 되었는데 이낙연은 뒤늦게라도 이준석의 의견에 따랐더라면 그닥 안 좋은 지역구라 하더라도 어찌어찌 국회의원에 당선은 되었을 것이다. 이낙연은 자꾸 눈 앞에 보이는 욕심만 쫓아가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한 때 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되었던 사람의 현실 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어느 당의 누구이든 간에 이렇게까지 다른 정치인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성격 역시 이낙연의 가장 큰 결함인데 이게 나머지를 다 합친 것보다 월등히 크다. 순탄했던 삶은 박근혜부친상을 당한 것 이외에는 엄청나게 순탄한 인생을 살았던 사례가 있고, 고령의 나이 역시 이승만김대중 등 실제로 고령의 나이에 당선된 대통령이 있어 그렇게까지 큰 단점은 아니지만 이렇게 자꾸 동맹과 척을 지는 행동은 사람 머릿수 싸움인 선거에서 한없이 불리해지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3.8. 고령의 나이

2027년 21대 대선 시점에서 만 74세로 상당히 고령이다. 취임 당시의 나이를 기준으로 이명박(만 66세)보다 8세가 많다. 김대중이 같은 나이에 당선되긴 했지만 김대중의 경우 이미 40대 기수론부터 시작해 수십년간 막대한 정치 경력을 쌓았고 확고한 기반[28]이 있었는데 이게 이낙연에게는 부족하다.[29] 적어도 김대중은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거의 당선될 뻔하다가 간발의 차이로 낙선했다. 평균수명이 높아진 현재는 엄청나게 고령도 아니기에 득표율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은 적지만 만약 대선에서 낙마할 경우 22대 대선 같은 다음 도전은 더 힘겨워질 가능성이 있다.[30] 이것이 '이번에 당선에 실패하면 다음은 없다.'는 지지자들의 다급함을 결집하여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낙연 지지층의 외연이 얇디얇은 것이 문제. 2027년 21대 대선에 당선되면 79세가 되는 2032년에 퇴임하게 된다.

미국의 경우 비슷한 시기에 조 바이든이 이보다 3살 더 고령인 78세 2개월의 나이로 대통령이 되었으나, 바이든 역시도 고령의 나이가 주된 약점으로 꼽혔다. 2024년 대선에서 상대측 후보인 트럼프가 사법리스크와 비호감이미지가 남아 있어서 바이든 쪽에 유리함에도 바이든이 선거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유가 나이 때문이 가장 크다. 재선 시 86세인 2029년에 퇴임하기 때문.

3.9. 사법리스크

이낙연은 도덕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본인도 사법리스크에서 자유롭지가 않다.

전라남도지사 시절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동원한 당원들의 당비를 측근이 대납해준 논란부터, 종로구 국회의원 시절 옵티머스 측에서 이낙연의 종로구 사무실 복합기 임대료를 대납해주고, 옵티머스 사태 연관의혹과 관련하여 검찰수사를 받던 측근이 사망하기까지. 결코 본인도 사법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이낙연 전 대표도 검찰이 돌변하여 옵티머스 사태 관련 압수수색 등 수사만 하면 어떻게 하려느냐? 이낙연 전 대표 측근의 극단적 선택은 설명이 다 끝났느냐?”고 되물으면서 이낙연의 도덕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 하기도 했다. #

3.10. 민주당 내 영남후보론

상술하다시피, 전라도 출신이기 때문에 김대중에 이어 새로운 호남 출신 대통령이 배출되길 고대하는 전라도 민심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오랫동안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 출신 후보를 내세워야 이길 수 있다는 영남후보론이 공식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호남에서 단지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압도적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전라도 출신 대통령 후보라는 점은 정치공학상 크게 득이 되지 못한다는 반론이 있다.

즉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라도 출신이라서 호남에서 그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낸 것이 아니라, 그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과 희생에 '그런 인물이라면 타 지역 출신이였어도 호남에서는 압도적 지지를 보냈을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김대중이 처음 대선 후보에 나왔을때만해도 오히려 영남권에서 지지도가 매우 높았고, 호남에서는 그에 대한 비토 정서가 컸다[31]. 그것을 오랜 기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공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정치적 이념은 신념의 문제이고,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는 목숨도 걸 수 있으므로 이는 곧 혈연, 학연, 지연을 초월한다. 영호남 투표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도 지역 감정을 기반으로 자기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밀어 준다기 보다는 정치적 신념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실제로 경선에서도 광주 및 전남에서 근소하게 우위를 차지하기는 했으나 다른 지역에서의 열세를 뒤집기에는 부족했으며, 전북에서는 다른 지역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을 보면 이런 출신지 요소는 이낙연의 경쟁력으로 작용하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3.11. 상대적으로 순탄했던 삶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민주당계 정당 지지자들은 대권후보를 볼 때 과거에 역경을 견뎌낸 사람들을 선호하고 역경이 없던 사람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민주화 이후 재임한 대통령들이 살아왔던 삶들을 보면 대체로 역경을 이겨낸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이낙연은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제외하면 삶 속에서 남들에게 인상을 남길 만한 부분이나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서도 특별히 주목할 만한 고난이나 역경 같은 것은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민주당계 출신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유독 어려운 삶을 살았다. 우선 김대중은 박정희와 전두환에 의한 오랜 정치적 탄압으로 여러 번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고, 노무현은 1990년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민주당계 정당 깃발을 내걸고 부산에서 선거에 나갔다가 연전연패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32]

문재인은 오랜 동지였던 노무현을 떠나보내고,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분당 사태을 포함한 온갖 내부 분열을 겪었고, 이재명은 소년공 시절 사고로 장애인이 되고 자살마저 시도할 정도로 험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이낙연은 1980년대 버블경제시절 언론사내부의 최고의 꿀보직으로 평가받던 일본 특파원을 하다가 민주당계의 텃밭인 호남에서 매우 손쉽게 국회의원과 도지사가 되어 굉장히 순탄한 인생과 정치 생활을 보낸 편이었다.

그래서 이낙연은 좋게 보면 무난하고 안정적으로 살아왔지만, 나쁘게 보면 큰 도전 없이 현상 유지에만 몰두하는 기성 정치인으로 비춰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당을 막론하고 한국의 정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정치 외적인 부분에서 역경을 많이 겪은 정치인들이 지지를 많이 받는 편이다[33].

일례로 이명박만해도 가난한 흙수저에서 출발해 성공한 대기업의 중역을 거쳐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꼽히는 인물이고, 김영삼김대중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주역이며, 이회창홍준표는 각각 권력자들의 압력에 맞서싸운 인물로서 운동권 인사들의 존경을 받았던 이들이었다.

위의 노무현문재인도 운동권 출신으로 군사정권과 그 후신인 보수 정당들의 탄압과 박해로부터 역경을 견뎌냈으며, 특히 노무현은 영화 변호인으로도 잘 알려진 부림사건의 주인공으로 불의에 맞서싸운 정의로운 변호사로서, 대통령 취임 이전에도 세간의 무수한 존경과 찬사를 받았던 이들이다[34].

이재명도 소년공에서 변호사를 거쳐 유력 대권주자로 올라섰다는 서사가 있으며, 정계 진출 이전에는 네임드 노동변호사로서 세간의 칭송을 받았던 사람이다[35]. 마찬가지로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다소 순탄한 삶을 살아왔다고 평가받는 윤석열과 한동훈도 검사~검찰총장 시절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다 좌천 되었다는 서사라도 있다.

때문에 이낙연처럼 그런 고난을 겪지않았던 이들은 고평가받기 힘들다.

3.12. 22대 총선 참패

이낙연은 이런저런 이미지 소모가 너무 심했던 나머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홈 그라운드라고 자부한 광주 광산구 을에 출마했으나 고작 13%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완전히 몰락했으며[36][37] 선거비용 전액 보전에도 실패했다.(반액 보전) 똑같이 광주 내 지역구에 출마했지만 구속수감 중인 상태라 선거 운동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던 송영길보다도 더 처참한 득표를 얻었고[38] 심지어 심상정보다도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39] 과거 새로운미래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바른미래당, 국민의당, 민생당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호남을 기반으로 했던 5선 정치인이 광주 정도의 탄탄한 텃밭에서 이런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굉장히 치명적이다.[40] 또한 이낙연은 이재명에게 반발하여 신당 창당을 시사하자 문재인이 김대중 탄생100주년 기념식에서 우회적으로 비판했음에도# 무시하고 신당을 창당했지만 이렇게 처참한 성적표를 받음에 따라 더 이상 민주당계 정당 복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끊겼다는 분석이 대다수다.[41] 민주당 탈당 이후 보수 세력에게도 주목을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42][43] 굉장히 초라한 결과를 맞은 셈이다. 송영길이나 심상정보다도 개인기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위에서도 언급된 극성 지지층의 행태로 이미지까지 더 나빠진 것은 덤.

4. 복합적

4.1. 대선주자가 없는 친문 세력

현재 친문 세력에서 이낙연 외에 별다른 대권주자가 없다. 이낙연이 친문 직계는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라는 상징성이 있어 범친문, 친문 방계 정도로는 여겨지고 있다. 기존에 범 친문 진영의 유력한 후보로 여겨졌던 안희정은 성추문 때문에, 박원순은 성범죄로 인한 자살 때문에, 그리고 조국은 가족 논란도 모자라, 조국 본인의 논란 때문에 대선 후보로 나서기 어려워진 상태이다. 또 김경수는 드루킹 사건에 연루되어 지사직을 박탈당함과 동시에 교도소에 수감되다가 겨우 사면되었다. 이재명, 김동연, 박용진, 추미애 등 다른 더불어민주당 내 대권주자는 친문 성향이라고 보기에는 거리가 있다. 이광재도 있지만 이광재 역시 선거법 위반 리스크가 있는데다가 세력이 굉장히 약한 편이라 경쟁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친문 계파가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라는 이유만으로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한계는 있다. 이재명계는 2021년 이전에는 불과 9명에 불과했지만, 범친문 세력을 흡수하면서 당내 최대 계파가 되었다. # 문재인 전 대통령 본인은 야권 통합을 강조하면서 이낙연의 신당 창당 움직임에 사실상 부정적인 뜻을 피력했다. # 2024년 1월 11일 이낙연이 탈당했지만, 이낙연과 동반 탈당 의사를 밝힌 친문 현역 의원은 없었다. [44]

그런데 친문 세력에서 사실상 조국을 친문 쪽 대권주자로 점지해놓고 있는 기류를 띠고 있어서, 이낙연의 낄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4.2. 보수 진영의 상대적으로 낮은 반감

비록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로서 막중한 책임을 졌지만 보수층에서도 '이낙연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평을 듣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서는 '엄중낙연'이라며 우유부단하고 보수에게 유화적이라고 비판을 받았지만 보수층은 이낙연을 민주당 주류보다 상식적이고, 덜 급진적인 정치인이라 생각한다. 안티페미니즘 성향의 2030 보수 커뮤니티에서도 이낙연 정도면 민주당에서 가장 나은 정치인이라고 평가하는 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이들은 추미애나 이재명을 이낙연보다 더 비판하는 경향이 크다.# [45]

이낙연의 비호감도 자체가 낮은 건 아닌데, 한국갤럽 2022년 9월 3주차 정치인 호감 여부 여론조사에서 이낙연의 비호감도가 57%로 나타나 비호감도 순위가 조사 대상 8명 중 3위를 기록했다. # 결국 이낙연을 보수 진영에서 극렬하게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다. 국민 통합 차원에서는 유리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달리보면 보수진영의 이낙연에 대한 호감은 역선택으로 볼 여지도 다분하다. 일례로 과거 이낙연 정계복귀에 대한 여론조사의 세부지표를 들여다보면 지지정당별 결과의 경우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27.3% : 68.2%로 이낙연 전 대표의 정계 복귀 반대 여론이 2배 이상 더 높았고 거의 70%에 육박했다. 반면에 국민의힘 지지자들 사이에선 44.1% : 49%로 나와 찬성 여론이 오히려 민주당 지지들보다 더 높았고 모든 계층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이낙연 전 대표 입장에서 결코 좋은 신호라 할 수 없다. 민주당계 정당 지지층에게는 버림 받고 보수 정당 지지층들이 반기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지지층들이 유독 이낙연 전 대표의 정계 복귀 찬성 정도가 높다는 건 그만큼 국민의힘 지지자들 사이에서서 이낙연이 만만해 보이는 인물이라는 증거로 해석될 수도 있다.#



[1] 국무총리 출신이 대권주자로 거론된 경우는 김종필, 고건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게다가 김종필은 1987년 대선 이후에는 줄곧 캐스팅보트 역할만 했고 고건은 국무총리 퇴임 이후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만 됐을 뿐 실제 출마까지 한 적은 없다.[2] 더불어민주당 당헌·당규의 따른 당권·대권 분리 조항으로 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대선 1년 전인 2021년 3월 직을 사퇴해야 한다.[3] 전당대회 맞대결 경쟁자인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당대표 당선 시 대선출마를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4] 원래의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 대표 사퇴 시 최고위원들도 동반 사퇴해야 한다.[5] 제 아무리 탈당했어도 무소속으로라도 당선만 되면 1석이 아까운 정당 입장상 복당이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낙선했다면 도저히 받아 줄 이유가 없다.[6] 이낙연은 21대 총선에서 종로구에 나와 대권 후보 1, 2위를 다투던 황교안 후보를 20% 가까운 득표율 차(이낙연 득표율 58.38%, 황교안 득표율 39.97%)로 압승을 거뒀다. 다만 이당시 실질적인 선거 계획은 이해찬이 했다.[7] 원래 이낙연은 손학규계로, 18대 대선 민주당 경선 국면에서는 손학규를 지지하였다.[8] 사실 이낙연도 완전히 깨끗한 사람은 아니다.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미 전과 2범이고, 그러한만큼 다른 정치인들을 함부로 욕하는 것은 적만 만들 수 있기에 바람직하지 않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만 일삼는다.[9] 이때 송영길은 약 17퍼센트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선거비를 전액 보전받았으나 이낙연은 겨우 13퍼센트대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반액보전밖에 받지 못하였다.[10] 하지만 이낙연이 공동 대표로 있던 정당 새로운미래는 전국적으로 매우 낮은 득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그나마 광주전남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였다. 어찌보면 배은망덕하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11] 특히 군사정권기를 지나서 현 체제인 6공 이후 호남 출신 대통령은 김대중이 유일하며, 민주당 내 대권주자들 중 이재명, 추미애 등 절반 정도가 영남 출신이기에 호남 출신 대선후보에 대한 열망이 있을 수 있다.[12] 조사의뢰 : YTN, 조사실시 : 엠브레인퍼블릭, 조사일시 : 2023년 12월 17~18일[13] 이당시 전당대회에서 경쟁자로 나온 김부겸은 만약 자신이 당대표가 된다면 대선에 불출마 하겠다고 공약했다.[14] 이 당헌은 문재인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에 당시 새누리당이 재보궐선거에 고성군수를 공천하는 걸 비판하며 제정한 것이다.[15]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민주당에게 엄청난 손실이고 감내하기 어렵겠지만, 공당이 문서로 규정까지 하고 국민과 약속했으면 약속을 지켜 무공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라며 우려를 표명했으나, 친문 유권자(ex. 문빠) 등 내부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저는 서울, 부산시장 무공천을 '주장'한 바가 없습니다."라고 에둘러 입장을 철회해야 했다. 결국 이재명 지사의 우려는 선거결과로 현실이 되었고, 이는 향후 민주당 3연패의 서막이었다.[16] 여담으로 이 선거 이후 민주당은 20대 대선, 8회 지선에서 연이어 패하게 된다.[17] 문빠들한테 '반문'이라고 손가락질받던 이재명 지사가 오히려 당헌을 더 잘 이해하고 지켰다는 평가가 많다.[18] 그 박광온마저도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의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났다.[19] 전지역에서 진 것도 모자라, 전남/광주에서는 정청래한테 지는 등, 입지를 제대로 잃어버렸다.[20] 정확히 말하면 윤영찬은 이원욱, 김종민, 조응천원칙과 상식과 함께 탈당하려 했으나 자기 선거구 경쟁자인 현근택이 성비위 혐의로 날라가려고 하자 황급하게 탈당을 철회하고 당으로 회군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21] 이후로 민주당 내에서 수박이라는 말을 듣는 인물들도 종종 있긴 하지만 그들도 딱히 이낙연을 지지하지는 않고 있다.[22] 즉, 이낙연은 본인이 경선에서 탈락한다면 정권이 교체된다 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 것이다.[23] 심지어는 이들의 행태들을 그저 방관방치하기만 했다.[24] 오죽했으면 설령 이재명이 몰락한다 해도, 이낙연에게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까지 있을 정도이다.[25] 이 과정에서도 이낙연은 전직 대통령인 문재인과 갈등이 생기고 말았다.[26] 대통령 선거 후보 등록하기 전까지는 사퇴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장과는 달리, 국회의원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 자동 사퇴 처리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이재명은 대통령 최종 후보로 선출된 뒤에도 국정감사까지 모두 임하고 나서 도지사 직을 내려놓았다.[27]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낙연이 말아먹은 종로구를 탈환하기 위해 노무현 前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둬 최재형과 맞붙게 했고, 곽상언이 종로구를 되찾아오는데 성공했다. 사실 종로구 주민들은 이낙연에게 배신을 당한 게 화가 난 것일 뿐이지 더불어민주당을 미워한 게 아니었다.[28] 김대중의 기반은 호남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서울특별시와 충청권에도 어느 정도 있었다. 괜히 DJP 연합이 결성된 것이 아니다.[29] 다만 김대중의 기반이 넘사벽인 것이지 이낙연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30] 경선에서 밀릴 것 같다기보다는 그 때쯤이면 고령으로 정계은퇴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에 가깝다. 윤석열의 임기가 탄핵, 사망, 사퇴 등으로 앞당겨지지 않는 이상 2027년 21대 대선에는 74세가 되는데, 70대 중반의 5선 국회의원이면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은퇴를 앞두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정계 원로이기 때문이다.[31] 당시에는 되려 박정희호남에서 지지도가 높았고, 영남 지역에서 반정부여론이 강했다. 박정희가 자기 고향이라면서 구미시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키운 것이나, 집권 말기에 부산마산에서 부마민주항쟁이라는 대규모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것이 괜히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늘날과 같은 정치 지형이 만들어진 것은 80년대 말에 5.18 민주화운동의 참상이 만천하에 공개된 이후의 일이다.[32] 노무현의 정치 인생 중 총 7번의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단 3번(13대 총선·1998년 보선·16대 대선) 뿐이다. 특히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출마했던 선거는 13대 총선 빼고는 전패했으며 13대 총선 마저도 PK의 대부 김영삼의 후광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33] 애초에 이 부분은 어느 나라든 다 똑같다. 미국만 예로 들어도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정치인으로서 대성했던 버락 오바마나, 불우한 가정사를 딛고 인생역전을 이루어낸 빌 클린턴의 사례가 있다. 금수저 출신 대통령이라도, 태평양 전쟁 당시에 전우들을 구하고 심각한 척추 부상을 입어 평생을 고생했던 존 F. 케네디나, 젊은 나이에 하반신 마비가 되어 일생을 절름발이로 살았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같은 사례가 있다. 오히려 한국 이상으로 이런 고난의 서사를 중시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가 그런 고생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 발목을 잡혀서 유력 대선 후보임에도 비토 정서가 강한 것이고, 같은 이유로 조지 W. 부시가 역대 최악의 대통령 순위에서 반드시 최상위권에 들어가는 것이다.[34] 이 당시 노무현은 흔치않던 세무 전문 변호사로서 무척 잘 나가는 상황이었다. 이미 탄탄대로를 걷던 사람이 모든 걸 내던지고서 비인간적인 고문에 시달리던 학생들을 구하기위해 공권력과 맞서 싸운 것인 만큼, 당대에도 그의 이런 행적은 긍정적인 의미로 놀라움을 안겨준 바 있다.[35] 노동변호사들은 노동조합이나 기타 비정규직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기득권층을 상대로 맞서싸우는 입장이다보니, 변호사로서 출세하기에는 상당히 불리한 이력으로 간주되는 만큼, 당연히 인권변호사들 못지않게 세간의 칭송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노조의 힘이 상당히 미약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노동변호사들의 삶은, 노조가 확실하게 사회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가시밭길이 되므로, 이런 이재명의 과거 이력은 높이 살 만 하다.[36] 더군다나 국회의원 5선, 전남지사 초선 등 본인이 출마한 모든 선거에서 당선됐던 이낙연이었는데 이번에는 정계 입문 후 처음으로 낙선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심지어 원희룡처럼 자진해서 험지에 출마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지역기반이라 볼 수 있는 호남권에서 처참한 득표율로 낙선했으니 더더욱 타격이 크다고 봐야 한다.[37] 현역의원 시절 대선후보 경선에 올인하기위해 의원직 사퇴를 감행했는데 이것조차 현역 지역구인 종로가 아닌 뜬금없이 광주에서 진행했었다. 광주에 모든걸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13%라는 처참한 결과뿐이였다.[38] 송영길은 17% 정도를 받아 선거비 전액을 돌려받았다.[39] 하다못해 심상정도 선거비 전액보전에는 성공했다.[40] 반면 당시 보수의 대권 잠룡 중 하나였던 홍준표21대 총선에서 황교안의 공천 파동으로 인해 컷오프당하자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본인의 홈그라운드인 대구 수성구 을에 출마, 당시 보수정당 후보였던 이인선을 꺾고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하는데 성공하였다.[41] 나이가 많아 20대 대통령 선거가 실질적으로 마지막이였고 실제로 본인이 마지막이라 발언하였지만 이후 본인의 발언을 뒤집고 22대 총선에 뛰어들었다가 대참패를 겪었다. 영향력으로나 나이로 인한 시간적으로나 사실상 정치생명은 끝났다고봐도 무방한 수준.[42] 실제 보수 일각에서 이낙연이 광주에서 낙선하더라도 30~40% 정도만 받으면 영, 호남을 결합해 정권재창출이 가능하다는 계산을 했던 경우가 있었다. 개혁신당과의 합당역시 이를 염두에둔 행보가 아니었냐는 얘기도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 당시에는 보수 내부에서 한동훈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대권주자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감안해야한다. 거기에 국민의힘 역시 한동훈이 몰락한 대신 나경원, 안철수 같은 대권주자들이 22대 총선에서 살아돌아오면서 보수쪽에서 이낙연을 부를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졌다.[43] 오히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계양구 을이재명을 끌어 안고 동귀어진 해야했다며 실컷 조롱 하고있다.[44] 전날 탈당한 김종민 의원은 범친문으로 분류될 수도 있지만 원칙과 상식의 일원으로 탈당하는거지, 이낙연을 위한 탈당은 아니라면서, 이낙연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45] 다만 2030보수들은 페미니즘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낙연은 이재명, 추미애보다도 더 페미니즘에 우호적이다. 추미애는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밝혔으며, 이재명은 20대 남녀 양쪽 모두의 목소리를 참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낙연은 "남자는 아이 안 낳아서 철이 없다",'남성이 군복무에 따른 피해의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등 남성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물의를 빛은 전적이 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424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424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