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 이영욱의 선수 경력에 대한 문서다.2. 아마추어 시절
이영욱이 고2~3학년이던 2002~2003년은 중앙고등학교 야구부의 절정기로 두터운 투수진, 짜임새 있는 수비력, 골고루 기량을 갖춘 타력 등 밸런스가 좋아 2년 연속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 진출했으나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친다. 이영욱은 이 당시 좌익수 또는 중견수로 출전했다.동기생 김재호는 두산의 1차 지명을 받았고, 투수 남찬섭은 두산, 외야수 신동천은 고려대, 포수 이희근은 성균관대, 투수 이기화는 인하대, 이영욱과 투수 이문광은 동국대로 가게 됐다.
3. 삼성 라이온즈 시절
3.1. 2008 시즌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6순위(전체 41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개막전 엔트리에도 포함되었지만, 입단 첫 해에는 허승민에게 밀려 강명구처럼 주로 대주자로 1군 14경기에만 나왔다.3.2. 2009 시즌
2009년 시즌 초반에는 주로 박한이의 백업으로 출전했다.그러다가 5월 26일 청주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경기에서 제대로 존재감을 각인 시키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바로 연장 11회초 2:2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박한이의 대타로 들어선 진갑용이 브래드 토마스와의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걸어 나가자 대주자로 교체되어 나와서는 무려 2루와 3루를 연속으로 훔쳐낸 것도 모자라, 김창희가 볼넷으로 나갔다가 토마스의 견제에 걸려 1, 2루 사이에서 협살 위기에 몰린 틈을 타 쏜살같이 홈으로 파고들어 기어코 팀의 세 번째 득점을 올린 것. 도루 2개와 협살 수비 틈을 타 홈 쇄도까지 모두 이영욱의 빠른 발로 만들어낸 귀중한 점수이자 이 점수는 기어코 결승점이 되면서 경기가 끝났었다.#
6월 4일 히어로즈전에서는 5:5로 동점인 상황에서 9회말 2사 1, 2루 상황에서 우중간을 가르는 끝내기 안타를 터트려 또 한 번 유명세를 탔는데, 심지어 이 경기를 이기면서 히어로즈와의 3연전을 싹쓸이 한 것은 물론, 선동열 감독의 통산 300승 달성을 만들어 낸 경기라 더 뜻깊은 날이 되었다.#
그리고 6월 12일 홈에서 열린 두산전에서 7회 말 2사 2루 상황에 강봉규의 대타로 들어서서 오현택을 상대로 투런포를 쏘아올리면서 개인 통산 첫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1]
6월 24일 홈에서 열린 한화전에서는 스타팅으로 출격하여 5타수 3안타 2타점 1득점으로 빼어난 타격감도 보이면서 한화만 만나면 유독 펄펄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 날 한화전에서도 5타수 1안타 1타점을 기록하면서 팀이 한화전을 싹쓸이 하는데에 있어 존재감을 뽐낸 것은 덤.
그리고 6월 26일에는 두산전에서 타석에 있는 상황에서 포수 용덕한이 1루로 견제구를 쏘려던 것에 얼굴을 맞는(!) 사건(당시 영상)이 벌어졌는데, 맞은 당시에는 심각한 상황이지 않나 했으나 추후 들려온 이야기에 따르면 실려나가기 전에 정신은 차렸는데, 구급차도 들어온 상황에서 갑자기 일어나면 모양새가 이상해져 그냥 구급차에 실려 병원까지 갔다왔다고 한다.(...)[2] 그래도 대단한 것은 다음 날 27일 바로 6번 타자 우익수로 스타팅에 들어서서는 1회초부터 선발 김명제 상대로 선제 쓰리런을 쏘아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했고, 5회초에는 좌중간에 2루타까지 쳐내며 4타수 2안타(1홈런) 3타점 2득점의 빼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언론과 팬들 모두 이영욱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금강불괴라고 불렀을 정도. 이어 28일 두산전에도 스타팅으로 나서 8회초 2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또 솔로포를 때리면서 용덕한이 오히려 이영욱의 장타혈이라도 뚫어준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
이후에도 선동열 감독의 총애를 받아 꾸준하게 기용되면서 시즌 끝까지 1군에서 제 4의 외야수로 활약했으며, 88경기에 출장하여 193타수 48안타(2루타 6개, 3루타 2개) 4홈런 29타점 16도루 27득점 22사사구를 기록, 타율 0.249 / 출루율 0.321 / 장타율 0.363 으로 향후 주전으로도 뛰어볼만 한 외야 재목으로 주목받았다.# 선 감독은 아예 내년 시즌 톱타자로 낙점 시켜놓았을 정도.
3.3. 2010 시즌
선동열 감독에게 주전 중견수로 낙점받았다. 박한이를 밀어내고 1번타자 자리를 꿰찼다. 시즌을 앞두고 주저앉은 듯한 타격폼으로 바꿨다. 개막전에서는 그다지 신통치 않더니 다음 경기는 3안타를 휘둘렀다. 그 뒤로는 계속 롤코를 탔다. 이러나저러나 선동열 감독의 양아들로 무한신뢰를 받으며 성장해 갔다. 2009년 김상수와 신명철의 경쟁이 그랬듯, 순식간에 벤치로 전락한 박한이도 이영욱에 자극을 받아서인지 이후로 맹타를 휘둘렀다. 어쩌면 2009년에 김상수가 그랬듯이 이영욱도 박한이 부스터가 될 가능성도 제법 있는 편.5월까지 롤코를 탄 것과 다르게 이후에는 꾸준하게 준수한 타율과 출루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빠른 발에 비해 도루에 소극적이어서 팬들 마음을 답답했다. 또한 1번 타자로서는 너무 공격적이었다. 상대 투수를 물고 늘어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공격적이라 초구를 건드리는 본능이 심한 편이었다. 팬들이 오죽하면 "영욱아, 초구 다음에도 공은 온단다."라는 소리를 할까. 삼성 팬들 사이에서 초덕후라고 불리기도 했다. 선구안도 떨어져, 볼넷으로 나가는 것을 본인은 그냥 기다렸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래도 볼넷은 상당히 많이 얻는 편이었다.
2010년 기록은 120경기 479타석 타율 .272 출루율 .360 장타율 .358 4홈런 42타점 68득점 4사구 58개에 삼진 86개로 리드오프치고는 볼넷 대 삼진 비율이 좋지 않았다. 거기다 좌완투수 상대로 타격이 좋지 못한 편이었다.
이영욱은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3타수 4안타 3볼넷 2몸에 맞는 공 2타점 3득점, 타율 .308, 장타율 .385, 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이영욱은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0타수 2안타 3볼넷 2몸에 맞는 공 1희생플라이 2도루 2타점 2득점, 타율&장타율 .200, 출루율 .438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이영욱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23타수 6안타 6볼넷 4몸에 맞는 공 1희생플라이 4타점 5득점, 타율 .261, 장타율 .304, 출루율 .471를 기록했다.
3.4. 2011 시즌
2011 스프링캠프부터 갑툭튀한 배영섭에게 1번타자, 중견수 자리를 뺏겼다. 좌익수 자리에는 최형우가, 우익수 자리에는 박한이가 있어서 아예 백업으로 밀려날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4월 2일 시즌 개막전에는 선발출장했지만 다음 경기에는 백업으로 밀려났다.그래도 류중일 감독이 경쟁 체제를 유지하고 싶은 모양인지 배영섭과 플래툰으로 번갈아 선발 출장했다. 그리고 5월부터는 라이언 가코가 1루수로, 최형우가 지명타자 포지션으로 가면서, 배영섭이 좌익수, 이영욱은 중견수로 출장했다. 거기다가 박한이는 올시즌 2번타자에 적응하지 못하며 부진했는데, 5월 중하순부터 오정복이 1군에 복귀하면서 외야는 다시 혼돈 속으로 빠지는 듯했으나 배영섭이 워낙 잘 하고 있는 데다가 이영욱은 2할 초반대[3]에서 허덕이며 결국 이영욱은 대수비, 대주자로 밀려났다. 그러나 9월 말 배영섭이 손등 골절로 이탈하면서 다시 주전으로 기용되었다. 무안타 기록을 끝내고 다시 주전으로 기용된 이후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타율도 어느정도 회복을 하면서 정규 시즌을 마쳤다.
2011년 4월 10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동명이인 투수 이영욱으로부터 3점 홈런을 쳤다. 동명의 투수와 타자간의 대결에서 홈런이 나온 것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이다.
SK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5경기에 전부 대수비로 출장하는 와중에 1타석 1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였다. 2차전에서 팀이 1:2로 앞서던 8회초 2사 1, 2루에서 오승환이 최동수에게 안타를 맞았는데, 완벽한 홈 송구로 2루 주자 최정을 홈에서 아웃시켜 이닝을 종료함으로써 대수비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3.5. 군 복무
2011시즌이 끝나고 팀 동료 임현준과 함께 상무에 입대하였다.상무 입대 첫 해인 2012년에는 주전 중견수와 1번타자로 자리잡아 3할대의 타율을 기록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시즌 중 부상이 있어 도루는 10개 밖에 하지 못했다.
2013년에도 주전 중견수 및 1번타자로 시즌을 시작해 3할대의 타율을 꾸준히 기록했지만, 5월 말 손목 부상을 당해 결국 6월달에 수술을 받으면서 이후로 출장하지 못한 채 그대로 시즌을 마치며 제대했다.
3.6. 2014 시즌
스프링 캠프에는 참가했지만 위에서 말했던 수술받은 부위인 손목에 통증이 재발하면서 닷새만에 짐을 꾸려 귀국해야 했다. 이후 1월 21일부터 STC에 입소했다. 3월 말에 경산 재활군에 합류했고 4월 중순부터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다. 2군 경기에서 1번 중견수로 5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4월 22일에 부진한 정형식[4] 대신 1군으로 올라왔다.1군으로 올라온 4월 22일에 7번 중견수로 선발출장했는데 1회 초에는 긴장했는지 실책을 저지르며 삼팬들을 불안하게 했지만, 3회 초에는 호수비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4월 23일에는 3안타에 도루도 3개를 기록하는 등, 올라오자마자 중견수로써 맹활약하며 정형식이 생각나지 않는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다. 그러나 점점 갈수록 군복무 전 안 좋았던 모습으로 돌아왔고 정형식이 다시 1군에 올라오면서 백업으로 밀려났다. 대수비나 대주자로는 박해민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에서 팀내 외야수 모두 좌타자다 보니 결국 5월 12일 2군으로 내려갔다.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형식이 2군으로 내려가면서 대신 6월 3일 다시 1군에 올라왔다.
6월 7일 한화전에서 덕아웃에 있다가 나바로가 놓친 방망이에 무릎을 맞는 황당한 사태가 일어났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고, 그냥 얼음 찜질만 했다. 박해민이 주전 중견수로 자리를 잡고, 김헌곤도 나름대로 활약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활약이 저조해 6월 30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30일 1군으로 올라왔고, 대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정형식이 2군으로 갔다. 8월 초에는 잠깐이나마 주전으로 기회를 받기도 했으나 최형우가 복귀하면서 백업이 됐다. 8월 15일 SK 와이번스전에서 8회초 채태인 대신 대주자로 출장해 중견수를 맡았는데, 8회말 팀이 역전당한 후 김성현의 타구를 잡기 위해 다이빙 캐치를 시도했으나 공을 놓치면서 2루타를 내줬고 점수차만 더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8월 16일 2군으로 내려갔고, 박찬도가 대신 올라왔다.
전반적으로 팀내 외야 경쟁에서 완전히 하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14시즌 주전 중견수는 박해민이 꿰찼고 김헌곤이 우타 외야로 네번째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섯번째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데, 14시즌 제대로 헤메고 있는 그 정형식한테도 밀렸으니 말 다한 셈. 그런데 정형식은 음주운전 때문에 임의탈퇴가 돼버렸기에 마지막 기회가 왔는데, 정작 본인은 8월 29일 2군 경기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치고 바로 교체된 후 소식이 없다.
결국 부상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제는 팬들도 큰 기대를 하기보다는 시즌 후 KT 20인외 특별지명에 갔으면 하고 바랄 정도.
3.7. 2015 시즌
1군 전지훈련 명단에 들었으나, 오키나와 전지훈련에는 불참했다. 이 때 괌 2군 전지훈련에 참가한 김정혁이 이영욱과 같이 찍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걸 보아 부상 등의 이유로 괌에 남은 듯 하다. 시범경기에는 백업으로나마 출장했지만, 박찬도에게 밀려 개막전 엔트리에는 빠지면서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옆구리 통증이 있는 박한이를 대신해 4월 22일 1군에 올라왔다. 그동안 2군에서 주전 중견수로 활동하면서 .421의 타율을 기록했으나 볼넷/삼진 비율은 여전히 나빴다. 박한이 대신 우동균이 주전 우익수로 나오면서 대수비나 대주자로 나오다가 채태인과 김태완의 복귀가 다가오자 그 대신 5월 11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6월 9일 1군에 다시 올라왔다. 역시 대수비나 대주자로 나왔고, 6월 19일에는 7번 중견수로 선발 출장했으나 4타수 1안타 2삼진을 기록했다. 7월 1일 출산휴가로 빠졌던 타일러 클로이드가 1군 엔트리에 등록되면서 대신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11일 부진한 권오준을 대신해 2군에 간지 열흘만에 1군에 올라왔다. 마찬가지로 대수비나 대주자로 나오다가 8월 11일 LG전에서 오랜만에 우익수로 선발 출장했는데, 2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유강남의 안타가 된 타구를 펌블한 것에 이어 중계 플레이를 위해 던진 공마저 2루수 야마이코 나바로 앞에서 바운드되면서 나바로가 공을 놓쳤고 결국 이로 인해 1루 주자가 득점해 선취점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8월 15일 박한이가 1군에 복귀하면서 대신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2군 경기에도 출장하지 못한 채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기에 주목받지는 못했는데, 이전 시즌들과 달리 좌타자임에도 양귀 헬멧을 썼다.
3.8. 2016 시즌
시범경기 첫날부터 우익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해 NC 다이노스의 투수 재크 스튜어트를 상대로 1회 쓰리런 홈런을 포함한 4타수 2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백업 외야수로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됐고, 4월 28일 LG전에서 6회말에 안타를 때려내 무사 1 3루를 만들어 팀의 역전승에 기여했다. 5월 19일 포항 한화전에서 팀이 9대 5로 뒤진 9회말에 시즌 첫 홈런을 신고했다.
이후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대수비, 대주자로만 나오고 대타로 나와선 꾸준히 삼진 적립을 하고 있다[5]. 경기에서 수비는 수비대로 타격은 주제 모르게 풀스윙으로 일관하며 생각을 하지 않고 타격에 임한다고 TBC라디오 서석진위원에게 제대로 디스를 당했다.
6월 1일 넥센전에서는 중견수 대수비로 출장해 4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홍성갑의 타구를 잡지 못하고 펜스에 부딪히면서 3루타를 내줬고, 7회말 1사 1,2루 상황에서 박동원의 평범한 외야 플라이를 놓쳤다. 4회말 홍성갑의 타구는 박해민 정도 되는 선수나 잡을 수 있을 정도의 깊숙한 타구였다지만, 7회말 플라이 실책 때는 괜히 점프를 해 공도 못 잡고 그대로 그라운드에 누워버리면서 볼썽 사나운 모습만 보였다. 결국 6월 2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타구단 선수들도 고척돔에서 뜬공을 종종 놓쳐서 이영욱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이 건 뿐만 아니라 그동안 쌓였던 게 있다 보니 삼성 팬들 사이에서는 진작에 2군으로 내려야 했다는 반응이 나왔다.결국 6월 2일 말소됐고 대신 이상훈이 1군에 올라왔다. 6월 13일 말소된 이상훈을 대신해 14일 다시 1군에 올라왔다.
6월 18일 마지막 타석에서 삼진을 당하며 경기를 마무리했고 마침 팀은 9회에 4점을 준 터라 추격사자의 원인이 되었다.
6월 21일 넥센과의 원정경기에서 8회초 대주자로 나와 도루자를 기록하면서 동점까지 바라볼 수 있었던 상황에 찬물을 끼얹었다. 6월 28일 롯데전에서는 배영섭을 대신해 대주자로 교체 출장했다가 공수교대 시간 중 캐치볼을 하다 얼굴에 공을 맞고 입 안쪽이 찢어져 그대로 경기에서 빠졌다[6]. 결국 6월 29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7월 12일 구자욱, 이흥련과 함께 1군에 올라왔다. 8월 5일 조동찬이 복귀하면서 대신 1군에서 제외됐다. 8월 16일 전날 말소된 이상훈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3.9. 2017 시즌
3월 2일 SK와이번스와의 연습경기에서 솔로홈런을 기록했다.3월 8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연습경기에서 4타수 1안타 3타점 1볼넷 2삼진을 기록했다.
시범경기 타격페이스가 매우 좋아 외야 백업으로 1군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4월 2일, KIA 타이거즈와의 홈경기에서 팀이 크게 앞선 상황에서 1타수 1삼진을 기록. 다음날 3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4월 13일 열흘만에 다시 1군에 올라왔다. 그나마 대주자로는 가치가 있지만 거의 경기에 나오지 않은 채 엔트리 1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가 4월 26일 다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2군으로 내려간 후 2달 넘게 결장한데다 김성윤, 이현동 등 새로운 외야수들이 1군에 올라오면서 잊혀졌다. 2군 성적은 23경기 20안타 7타점 14득점 5도루 타율.308.
4. KIA 타이거즈 시절
2017년 11월 29일 투수 한기주를 상대로 KIA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됐다. 양 팀에 남는 자원들을 교환해서 기회를 주는 측면이 강했다.4.1. 2018 시즌
스프링캠프에 참여하는 40인에 선발되었다. 기존 주전선수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유일한 외야 참가자[7]인데 팬들은 어째서 같은 중견수 백업요원인 박준태, 유재신[8]은 빠졌는데, 이영욱만 들어갔는지 의아해 했다.다만 연습경기에서 타격에서 소질을 드러냈다.
3월 13일 첫 시범경기에서 두산 린드블럼의 공을 받아쳐 결승 2루타를 만들어냈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결승타의 전말이 밝혀졌다. 사실 벤치에서는 기습번트 사인이 나왔는데 이영욱은 이를 잘못 읽고 강공으로 대응한 것. 그래서 안타를 치고 나서도 마냥 기뻐하진 못했다고 했다.[9]
1군 14경기에 나서서 홈런 없이 타율 0.125에 그쳤고, 시즌 후 방출자 명단에 올랐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8 | 삼성 | 14 | 7 | .000 | 0 | 0 | 0 | 0 | 0 | 1 | 0 | 1 | .000 | .125 |
2009 | 88 | 220 | .249 | 48 | 6 | 2 | 4 | 29 | 27 | 16 | 22 | .363 | .321 | |
2010 | 120 | 408 | .272 | 111 | 19 | 2 | 4 | 42 | 68 | 30 | 58 | .358 | .360 | |
2011 | 111 | 234 | .232 | 47 | 9 | 3 | 3 | 20 | 37 | 14 | 25 | .350 | .312 | |
2012 | 군 복무 (상무 피닉스 야구단) | |||||||||||||
2013 | ||||||||||||||
2014 | 40 | 53 | .208 | 11 | 3 | 0 | 0 | 6 | 16 | 12 | 9 | .264 | .363 | |
2015 | 38 | 22 | .227 | 5 | 2 | 0 | 0 | 2 | 8 | 0 | 8 | .318 | .386 | |
2016 | 104 | 49 | .163 | 8 | 1 | 0 | 1 | 4 | 16 | 12 | 3 | .245 | .272 | |
2017 | 6 | 4 | .000 | 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18 | KIA | 14 | 16 | .125 | 2 | 0 | 0 | 0 | 1 | 0 | 1 | 0 | .125 | .125 |
KBO 통산 (8시즌) | 555 | 1010 | .243 | 285 | 40 | 7 | 12 | 103 | 173 | 105 | 122 | .341 | .369 |
[1] 다만 팀은 선발 에르난데스의 1이닝 5실점 대참사급 피칭을 시작으로 올라오는 투수들마다 두산 타선에게 떡이 되도록 맞아나가면서 7회초에 이미 14:1로 크게 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경기 또한 15:3으로 삼성이 크게 졌었다.[2] 병원에서 CT 촬영 결과 단순 타박상 진단을 받아 당일 경기 후반에 덕아웃에 복귀도 했었고, 용덕한 또한 경기 직후 이영욱에게 전화통화로 사과하여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고.[3] 한때 38연타석 무안타를 기록할 정도로 부진했다. 최다 연타석 무안타라는 불명예를 얻을지 심수창의 개인 최대 연패와 함께 주목받았었다.결국엔 심수창은 역대 개인 최다연패인 18연패를 기록했고,이영욱은 다행히도 연타석 무안타 기록을 38연타석에서 끝냈다.[4] 정형식은 하루 먼저인 4월 21일에 2군으로 내려갔다.[5] 6월 1일까지 29타수 13삼진으로, 타석에서 절반 정도는 삼진으로 물러났다.[6] 지명타자였던 박한이가 우익수로 들어갔다.[7] 최형우, 나지완, 이명기, 버나디나의 주전 라인업을 제외하면 유민상과 이영욱이 유이한 외야 참가자인데, 유민상의 원 포지션은 내야수(1루)다. 즉 순수 외야자원은 이영욱 뿐.[8] 다만 유재신은 넥센시절에 중견수로는 부적격이라는 평가가 강하다. 박준태 또한 코너 외야수로는 좋아도 중견수는 무리가 있다는 평.[9] 2010 플레이오프에 5차전에서도 6회말 고창성의 밋밋한 슬라이더를 번트에서 강공으로 기습 전환해 1루 주자 강명구를 홈에 불러들인 적도 있다. 몇몇 올드 두산팬들은 그날의 악몽을 떠올리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