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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찰스/출연자 목록/외국인 신입생/2025년 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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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찰스의 출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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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문서: 방영 목록


1. 개요2. 목록
2.1. 468회2.2. 469회2.3. 470회2.4. 특집2.5. 471회2.6. 472회

1. 개요

본 문서는 이웃집 찰스2025년 상반기 외국인 신입생 목록이다.

2. 목록

2.1. 468회

우리 주변의 정다운 이웃을 만나보는 시간 이웃집 찰스. 안녕하세요? 연정훈입니다. 아, 이 공간에서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네요. 이웃집 찰스가 2015년 1월에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벌써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는데요. 긴 시간 동안 함께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찰스들을 만나며 다양한 문화와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는데요. 이웃집 찰스를 통해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앞으로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찰스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 그럼 2025년 첫 번째 이웃집 찰스 그 주인공을 만나볼 텐데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며 온정을 배달하는 김알람 씨의 이야기 함께 만나보시죠.
- 프롤로그
  • 김알람: 방글라데시 출신. Alarm이 아니다. 6남매 가운데 첫째로 태어난 그는 1994년에 산업 연수생으로 한국을 찾아 후술할 산업체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다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으며, 자국민 여성과 혼인해 자녀 2명을 두었다. 출연 당시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행정리에서 살고 있었으며, 2012년부터 평리에 위치한 비디하우스[1]를 운영하고 있었다[2]. 아침에 일가족이 일어나서 식사를 한 다음 오전에 동생과 함께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에 위치한 수원시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가서 한 상인으로부터 채소들은 산 다음 에 싣고 자신의 사업장으로 갔다. 오후에 자국민들이 사업장으로 찾아와서 식사를 하고 가자 사례자가 동료들과 함께 산업체 근로자들이 먹을 식사를 만든 다음 시내에 있는 각 산업체들을 돌아다니면서 배급했다. 자정이 지나고 나서야 자택으로 돌아온 사례자가 식사를 했다. 다음날 오전에 사례자가 여주시 오학동에서 한 남성을 만난 다음 한 폐공장을 방문했는데, 이 때 사례자가 이 공장에서 재직한 사실을 회상했다. 자신의 사업장에서 머물고 있는 자국민들에게 선물을 나눠줬는데, 사례자는 지금까지 취업 목적으로 한국을 찾은 자국민 수백 명이 이 곳에 머물다 갔다고 밝혔다. 산업체 근로자들이 먹을 티카를 만들고 있을 때 한 자국민이 어딘가가 아프다고 하길래 그를 데리고 한 정형외과로 가서 진단을 받게 했다. 밤에 식자재들을 준비한 다음 싣고 한 산업체로 가서 직원들에게 팔았다. 얼마 뒤에 자신의 사업장에서 자국민들이 모인 가운데 피타를 만들어서 식사를 했으며, 옷가게 주인과 슈퍼마켓 직원, 노점상, 액세서리점 주인에게까지 피타를 증정한 다음 각 산업체들을 돌아다니면서 자국민 근로자들에게도 피타를 증정했다. 이후 산업체 근로자들의 포부와 사례자의 포부를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2.2. 469회

  • 카리미: 본명은 카리미 안왈[3]. 이란 출신. 자국내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에 파이프 대리점에서 일하다 한국산 건축 자재를 통해 한국의 존재를 알게 되어 1999년에 건너왔다. 2012년에 한 숯가마 사우나에서 일하다 사업주를 통해 한 내국인 여성[4]을 만나게 되었고, 3개월 동안 사귀다 혼인했다. 출연 당시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도신리에서 살고 있었으며, 자녀 2명을 두고 있었다. 아침에 일가족이 식사를 한 다음 자녀들이 학교로 가자 사례자가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에 위치한[5] 한 업체로 갔는데, 그는 원래 이 업체에서 건설업체들마다 거푸집을 팔아오다 건설 경기가 불황으로 접어들자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고 밝혔다. 에서 윤활유를 꺼내더니 지게차를 고치기 시작했는데, 시동을 거는 순간 연료사례자를 향해 튀는 참사가 일어났다. 가버렷! 집에서 양고기를 다듬다 자국민 남성 1명과 이라크 출신 남성 1명이 사례자의 집으로 찾아오자 항아리 구이를 만들어서 함께 식사를 했다. 부부가 안성시 보개면 양복리에 위치한 한 옹기 업체를 방문해 항아리를 산 다음 집으로 돌아와서 조리기구로 마개조했다. 마개조한 항아리가 완성되자 배우자와 그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오겹살을 구웠는데, 안에 장작불을 넣고 뚜껑을 닫았더니 뚜껑이 깨지고 말았다. 딸이 친구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자 생일 잔치를 진행했으며, 이들에게 항아리 구이를 제공한 다음 트램펄린에서 놀게 했다. 오전에 사례자가 복장을 준비한 다음 배우자와 함께 에 항아리를 실은 다음 서울특별시 강동구 둔촌동에 위치한 선진 서울사무소[6]로 가서 직원들에게 항아리 구이를 선보인 다음 사업 계획을 논의했다. 일가족이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손양면 동호리에 위치한 동호해수욕장을 방문한 다음 한 숙박업소로 갔으며, 다음날 아침에 동호해수욕장으로 다시 찾아가 해가 뜨는 걸 보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여담으로, 엔딩 크레딧에서 사례자 부부가 학교에서 개최된 큰빛콘서트를 보는 장면과 사례자의 아들이 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소개되었다.

2.3. 470회

  • 가브리엘: 본명은 가브리엘 토마스[7]. 한국 이름은 조가빈. 미국 출신. 항공사 직원이었던 부모의 막내딸로 태어난 그녀는 2014년에 한국을 다시 찾은 뒤에 도서관에서 도움을 준 한 남성을 만났고, 2017년에 혼인했다. 출연 당시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2024년부터 세인폴타운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침에 자녀에게 이유식을 먹인 다음 2층에 있는 배우자 부모의 자택[8]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오후에 학원으로 가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지도했는데, 2017년에 서울에서 창업한 공부방이 의정부로 주소를 옮긴 뒤에 학원 창업으로 이어진 것. 수강생들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사례자 부부의 지도를 받아왔다. 밤에 사례자가 부모와 영상통화를 했으며, 연말을 맞아 친척들이 사례자 가족의 집으로 찾아오자 사례자의 주도로 파티를 진행했다. 사례자가 배우자의 어머니와 함께 한 오락실을 찾은 다음 사진관에도 다녀왔으며, 한 제과점까지 찾아갔다. 밤에 사례자가 스파게티를 만들어서 일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다. 사례자 부부가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 왕십리역 인근에 있는 주거지역을 방문했는데, 둘은 혼인 이후 이 지역에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지도하다 이듬해에 주소를 의정부로 옮긴 뒤에도 학원을 창업할 때까지 공부방을 운영해왔다. 한 셀프 빨래방 운영자를 만난 다음 한 음식점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어떤 가족이 사례자 부부의 집으로 찾아오자 사례자 부부가 이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으로 안내했다. 사례자 혼자 카페로 가서 어떤 여성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사례자의 지도를 받은 학생의 어머니였다. 사례자가 자녀를 가지게 되자 병원 방문을 도와주고 태교 목적으로 여행까지 함께 다녀왔다고. 주말에 일가족이 갑자기 짐을 챙겨들더니 를 타고 양평군 용문면 덕촌리에 위치한 한 펜션으로 여행을 갔다. 이곳에 부속된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은 다음 객실로 돌아와서 식사를 했으며, 배우자의 어머니와 사례자가 상장을 주고 받은 다음 사례자의 배우자가 편지를 읽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여담으로, 학원에서 수강생들이 사례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장면이 엔딩크레딧에서 소개되었다.

2.4. 특집

* 최정훈: 아리랑은 그렇게 가깝지 않은 먼 노래였었는데요. 저희의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가 부르셨고 또 한민족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리고 또 재외동포 이주 역사가 120년이 넘었으니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최초의 최초의 케이팝이 아리랑 아닐까. 국경을 넘어 세대를 넘어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온 노래 700만 재외동포의 삶과 꿈을 담아 다시 아리랑을 부릅니다.
- 프롤로그
설날 연휴를 맞아 아리랑을 통해 재외동포들의 생활상을 들여다 본 700만 개의 아리랑을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재외동포협력센터의 협찬을 받아 제작했으며, 최정훈이 해설을 담당했다. 출연자는 다음과 같다.
  • 문덕영: 뉴질랜드 왕거누이[9][10] 거주. 배우자와 두 자녀를 둔 가족의 가장인데, 원래 요리사 등으로 재직하다 2010년대 초~중반에 귀농해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담으로 배우자와 딸이 식사를 만들었을 때 스프라이트로 양념장을 만들었고, 반려견과 노는 장면에서 낡은 공을 차는 등 한국의 국룰을 뉴질랜드로 들여온 모습도 보여줬다.
  • 사라 석: 캐나다 밴쿠버 거주. 소설가로 데뷔 후 메이드 인 코리아와 트러블 메이커 등을 집필했다. 그의 부모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사이에 캐나다로 이민을 왔으며, 이후에 사라가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계 캐나다인에 해당한다.
  • 김에르네스트: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거주. 고려인 2세 출신이며, 연방 하원 계열 청년의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시내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고, 전통 시장에서 한국 상품들을 판매하는 고려인 출신 상인을 만나기도 했다.
  • 마르틴 현: 독일 베를린 거주. 1970년대에 파독 근로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5살 때 아이스하키를 하기 시작했으며, 15살에 청소년 국가대표로도 활동했다. 2004년에 동양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현지 프로 리그에 진출했으나[11], 은퇴 이후 소설가로 전향해 인종 차별을 다룬 작품들을 잇따라 집필했고 조국에서 동계 올림픽 개최를 앞둔 시기에 조국을 찾아 성화봉송에도 동참했다. 부모,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은지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왔다.
중반에 최정훈이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한 공연장을 찾아 재외동포 청년들을 대상으로 아리랑과 관련한 문답과 사연을 들어봤다.
* 최정훈: 어쩌면 그 힘들었던 세월 부모님 세대 재외동포들은 아리랑이 있어 버틸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노래. 어떤 아리랑을 불러야 할까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재외동포 청년들을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참석자 전원 박수)
* 최정훈: 다들 재외동포 청년 분들이시죠? 아리랑을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언제 들어보셨어요?
* 이샤샤(우즈베키스탄 출신 동포):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들었는데, 그때는 한국어를 몰랐어도 아리랑은 알고 있었어요.
* 최정훈: 한국어로 부를때?
* 이샤샤: 네, 그때부터는.
* 이소연(에콰도르 출신 동포): 어렸을 때 항상 들었는데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나요. 그래서 한글학교던가 아니면 집에서 부모님께서 알려주셨다던가 그렇게 기억이.
* 최정훈: 언젠지 모르겠는데, 아까 이야기하신 것처럼 핏속에 막 디폴트 값으로 있는 그런 멜로디잖아요. 저희한테는 옛날에 저희 어른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또 더위에 우리 조상님들은 힘들고 막 외롭고 그럴 때 아리랑을 듣고 불렀다고 하는데, 정말 이렇게 가끔 이렇게 부를 때도 있잖아요. 아리랑을 어떨 때 입에서 막 흥얼거리게 되고 그러나요?
* 김홍군(중국 출신 동포): 저는 오히려 기분 좋을 때 흥이 날 때 이 노래가 스스로 나오는 것 같아요. 멜로디가.
* 서유나(카자흐스탄 출신 동포): 저희도 슬플 때 아니라 아무래도 어떤 셀러브레이션이 있을 때 아니면 기분 좋을 때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 최정훈: 노래 한 번 박수도 한 번 주세요. 노래 한 번 알고 있다 그러셨잖아요.
* 서유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이승빈(미국 출신 동포): 한국이 자랑스러울 때 그 때 제일 많이 부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항상 뭔가 한국에 대한 약간 자부심이나 한국이 자랑스러울 때 그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 김홍군: 한국하면 감사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 같아요. 왜냐면 지금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고 또 한국 재외동포협력센터에서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런 지원 때문에 제가 부담이 좀 덜 되게 여기서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저는 감사한 마음이 항상 있습니다.
(참석자들 박수)
* 최정훈: 신나는 아리랑 자부심의 상징 아리랑이 달라졌습니다.
  • 앤드류 김: 캐나다 캘거리 거주. 현지와 조국을 오가며 변호사로 활동하다 와우베이커리[12]를 창업해 빵을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2024년에 애비뉴가 주관한 최고의 40세 미만 경영인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여담으로, 로터스 에미라를 소유하고 있었던 사실도 밝혀졌다.
  • 토니 박: 미국 뉴욕 거주.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이며, 1998년에 미국으로 이민왔다. 시내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한편 부동산 사업까지 운영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개인와 법인의 수요를 겨냥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원래 미국 사회가 일본 제품들을 선호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 제품들을 선호할 정도로 풍조가 변했다고 언급했다[13].
  • 미영 마골리스: 본명은 설미영. 미국 시애틀 거주. 배우자를 두고 있었으며, 시내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무용을 지도하고 있었다. 배우자가 한국계 미국인과 혼인했기 때문에 그도 한국의 음식, 영화, 드라마한류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최정훈: 아리랑이 세계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잔나비의 아리랑이 완성됐습니다. 지금 연습을 많이 하셨어요?
* 김도형: 사실 그 연습이 되는 노래가 아닌 딱 그런 류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할 때마다 달라지는 노래.
* 최정훈: 이렇게도 해볼까 저렇게 해도 해볼까 하다가 그냥 잔나비스럽게 해봤습니다.
* 최정훈: 두고 온 첫사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응원하고 마음을 모읍니다. 저마다의 아리랑을 품고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재외동포가 아름답습니다.
- 에필로그
잔나비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위치한 페포니뮤직에서 리메이크된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2.5. 471회

  • 유나리: 베트남 출신. 하우장에서 태어난 그녀는 이스라엘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의 주재원으로 재직하던 한 남성을 SNS로 만나 2년 동안 사귀다 2014년에 혼인하고 자녀 1명을 두었다. 출연 당시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2015년부터 우림플라스틱에서 재직하고 있었다. 사례자가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서 일하러 나갈 준비를 한 다음 전기자전거를 타고 사업장으로 갔다. 배우자가 딸의 식사를 도와준 다음 반미로 식사를 했다. 오후에 배우자가 식사를 만든 다음 사례자가 돌아오자 함께 식사를 했다. 주말을 맞아 강남시장으로 가서 한 업소 주인을 만난 다음 다른 업소들을 돌아다니면서 사업주들을 만났다. 오후에 집에서 사례자가 배우자에게 까오요를 했으며, 몇 일 지난 뒤에 중동에 있는 한 돌잔치 업소로 가서 기념 사진을 찍었는데, 이후에 금팔찌를 분실한 사실을 확인해 직접 찾아 나섰다. 다행히 사진사가 직접 찾아서 사례자의 배우자에게 돌려줬다고. 친족들과 자국민들이 모인 가운데 돌잔치를 진행했는데[14], 부부는 혼인한 지 3년만에 자녀를 유산하는 아픔을 겪다 시험관 시술을 통해 간신히 자녀를 낳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저녁에 집에서 일가족과 자국민들이 모여서 식사를 했는데, 이들은 한 기숙학원에서 만나 한국의 공용어와 문화를 배우고 한국으로 건너왔다고 밝혔다. 2025년 1월 1일이 되자 일가족이 원미동 원미산으로 가서 해가 뜨는 걸 봤다. 일가족이 한 공인중개사를 만나 도당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한 공동주택을 알아보았는데, 부부는 자녀가 태어난 만큼 보다 넓은 집에서 살아야 해 새집을 알아보게 되었다고 밝혔다. 다른 주택들까지 알아본 다음 보다 넓은 집에서 살기로 결정하고 매물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소사구 심곡본동과 원미구 심곡동 경계에 있는 부천역지하도상가상동 웅진플레이도시 소재 의류 매장들을 찾아서 의상들을 산 다음 강남시장에서 식자재와 조화를 샀다. 설날을 앞두고 한 여성이 각종 재료들을 들고 사례자 가족의 집으로 찾아와서 반쯩과 반뗏을 만들었으며, 자국민 여성까지 찾아오자 함께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찾아온 여성이 일터로 향하자 나머지 여성들이 차례 음식을 만든 다음 맥주캔까지[15] 차렸으며, 아오바바를 입고 제사를 지냈다. 이후 이들이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2.6. 472회

  • 찰스: 캐나다 출신. 노바스코샤주 야머스에서 7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2006년에 한국으로 건너와 2021년까지 울산광역시에서 영어 강사로 재직했으며, 2011년 10월에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핼러윈 데이를 기념하는 파티에 참석한 한 내국인 여성을 만난 다음 2015년에 혼인했다. 그럼에도 교통체증 등으로 인해 회의감을 느끼게 되어 제주도에서 창업을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출연 당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살고 있었으며, 2023년 12월 22일부터 구좌읍 송당리에서 캐나다 삼춘[16]을 운영하고 있었다. 업소에 손님들이 찾아오자 랍스터 떡볶이, 푸틴, 치킨 윙, 파인애플 김치 등을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제공했다. 손님들이 업소에서 나가자 사례자 빵을 먹었는데, 그는 어머니가 각종 요리법들을 써서 사례자에게 물려줬다고 밝혔다. 사례자의 어머니는 2015년에 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했으며, 사례자가 2년 동안 일시 귀국해서 어머니를 보살펴줘야 했다[17]. 자택에서 제습기에 찬 물을 비우고 수건을 널어놓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음식점과 숙박업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는 것. 객실을 정리한 다음 세화리에 위치한 세화민속오일시장으로 가서 각종 식재료들을 샀다. 오후 3시에 식당 업무를 시작했음에도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는데, 11월까지만 해도 손님이 많이 찾아오다 12월이 되면 연말연시를 제외하고 찾아오지 않는다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업무를 마친 뒤에 상인 두 명이 사례자 앞으로 찾아오자 이들과 장사 얘기를 했다. 사례자가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동에 위치한 배우자의 집을 찾았는데, 배우자는 직장 생활 때문에 서울에서 따로 살고 있었음을 밝혔다. 사례자가 감자전을 만든 다음 배우자의 부모가 찾아오자 배우자의 어머니가 준비한 갈비찜까지 차려서 식사를 했다. 부부가 이태원동에 위치한 한 음식점으로 가서 대학교 영문과 동문 두 명을 만났다. 업소 휴무일에 부부가 옥수수 베이컨 수프를 만든 다음 한 카페로 가서 사업주를 대상으로 시식을 진행한 다음 편의점피아노학원까지 찾아가서 시식을 진행했다. 밤에 사례자가 닭 마늘 수프를 만든 다음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했는데, 사례자의 누나가 1998년에 남매들 가운데 처음으로 외국을 방문했는데, 처음 찾은 나라가 한국이었던 것. 3년 뒤에 그녀가 사례자에게 한국 방문을 권유해 자신도 한국에 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다음날 아침에 부부가 수프와 메뉴판을 만든 다음 손님들이 찾아오자 이들에게 수프를 대접했다. 배우자가 서울로 돌아간 뒤에도 사례자가 계속해서 업무를 이어갔으며,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1]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650미터 떨어진 곳에 1997년 당시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 촬영지 가운데 한 곳이었던 화성고등학교가 있다.[2] 자녀들이 태어나면서 거처와 사업장을 모두 옮기게 되었다고 밝혔다.[3] 2023년에 방송된 인간극장생로병사의 비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바 있다.[4] 출연 당시 대광초등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5] 자막은 연천군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양주시가 맞다.[6] 최대 주주가 하림그룹의 지주회사이다.[7] 후술할 영상통화 장면에서 부모의 성이 토마스임이 밝혀졌다.[8]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살다 사례자 부부 때문에 경기도 의정부시로 주소를 옮겼다.[9] 북섬에 위치한 소도시로, 웰링턴뉴 플리머스 사이에 있다.[10] 영상에 큰 글씨로 나온 지명 자막은 지역 (줄 바꿈) 국가 순으로 표기했다.[11] 이 때 쓴 등번호 71은 부모가 독일로 건너온 년도를 의미한다.[12] 와우홀딩스 계열 체인이며, 2024년에 모기업이 우송정보대학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13] 이 장면에서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코나,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가 뜬금없이 등장했다.[14] 영상을 보면 365일이라고 나와 있는데, 2024년이 윤년이기 때문에 366일이 맞다.[15] 카스테라, 이슬톡톡을 준비했다.[16] 2021년에 축사로 쓰던 건물을 매입한 다음 2년 동안 자체적으로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건물로 개수했다.[17] 이 때 사례자가 임종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후술할 내용을 보면 방영 당시를 기준으로 완치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