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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찰스/출연자 목록/외국인 신입생/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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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반기
2.1. 48회2.2. 49회2.3. 50회2.4. 51회2.5. 52회2.6. 53회2.7. 55회2.8. 56회2.9. 57회2.10. 58회2.11. 60회2.12. 61회2.13. 62회2.14. 64회2.15. 65회2.16. 66회2.17. 67회2.18. 68회2.19. 69회2.20. 70회2.21. 71회2.22. 72회
3. 하반기
3.1. 73회3.2. 74회, 75회3.3. 76회3.4. 77회3.5. 79회3.6. 80회3.7. 81회3.8. 82회3.9. 83회3.10. 84회3.11. 85회3.12. 86회3.13. 87회3.14. 88회3.15. 90회3.16. 91회3.17. 92회3.18. 93회3.19. 94회3.20. 95회

1. 개요

본 문서는 이웃집 찰스2016년 외국인 신입생 목록이다.

2. 상반기

2.1. 48회

  • [1] : 본명은 로버트 와이머. 미국 출신. 1976년캠프 마켓에서 주한미군으로 복무를 시작한 그는 전역 후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 정보 보안 업무를 하다 1988년에 한국에서 만난 여성과 혼인했다. 20년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다 2008년에 한국으로 다시 건너온 부부는 와인 전문점을 창업했는데, 남편은 이를 위해 고국에서 4년 동안 소믈리에 과정을 배웠다. 하지만, 와인을 외상으로 사간 업소가 연락을 끊고 잠적하면서 사업에 실패했다[2]. 이후 인천 중구에서 포그시티를 창업해 운영하다 제3자에서 운영권을 넘겼다. 2013년수원여자대학교 해란캠퍼스에서 열린 제7회 캘리포니아 레이즌 베이커리 신제품 콘테스트에서 사워도우 빵을 출품해 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2015년서울 영등포구에서 밥스 브레드(밥 아저씨 빵)를 창업했다. 하지만, 입지가 영 좋지 않아[3]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홍대거리에 있는 허밍 벨라를 찾아서 빵을 살펴보고 송파구에 있는 코른베르그 과자점(위치)을 찾아 서정웅 명장한테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새해를 맞아 아내의 고향인 충남 서천에 있는 처가를 찾아 처남[4]을 만나기도 했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 두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간판을 사드렸다. 방송 이후 전국 각지에서 온 시청자들이 가게를 찾으면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는 오븐 1대로 빵 100개를 만들고 있다면서 빠른 시일에 오븐 1대를 더 사오고 직원도 더 고용할 것을 밝혔다. 최정원 아나운서와 사유리가 매장을 찾아서 근황을 다시 공개했는데, 방송 이후 수요 감당을 위해 오븐을 2대 더 들여놓고 빵을 만들게 되었다. 한 여성은 빵을 사러 왔다 점원이 되기도 했다. 거기에 그의 두 아들도 사업에 동참하게 되어 새벽부터 재료를 가지고 매장에 가서 빵을 만든다고 한다. 어떻게 세계적으로 소문이 난 건지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도 찾아왔다고 한다. 부부는 두 진행자에게 클램 차우더를 공개했다. 2020년 현재 사업을 접은 상태이다.

2.2. 49회[5][6]

  • 알렉스 : 본명은 알렉산드라 레이드. 미국 출신. 가수로는 샤넌 이후 1년 만에 출연했으며, 방송 당시 음악 그룹 BP 라니아에서 담당했다. 한국으로 건너오기 전에는 고국에서 제이미 폭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며, 고국에 남아 있는 부모를 한국으로 초대하여 서울 구경을 해 주고 김치 명인한테서 김치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KBS 신관 공개홀을 찾아 뮤직뱅크 출연자 대기실에서 동료들을 만나게 하고 방청도 해주었다. 미국 출신이라 보니 다른 구성원들과 따로 산다는 듯[7]. 2017년에 BP 라니아 활동을 포기했는데, 자세한 사유는 해당 문서를 참조한다.

2.3. 50회

  • 마르하보, 샤흘러 : 우즈베키스탄 출신. 마르하보가 이마트에 갔다가 샤흘러를 만났는데, '너도 우즈베키스탄 출신임?'이라는 물음에 대답하면서 관계를 갖게 되었다. 둘 다 자녀를 두고 있었으나, 마르하보는 남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사실상 이혼한 상태였다. 2015년 말에 고국 음식점 우즈베김 카페(위치)를 창업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폐업한 PC방 자리를 매입했음에도 인테리어 공사가 늦어져서 개업이 늦어졌다. 개업 6일을 앞두고 서울에 있는 고국 음식점[8]을 찾아서 메뉴를 맛본 다음 시장에서 전통 자기와 향료를 샀다. 마르하보의 친척집 아들이 할례(포경수술)를 받는다고 하자 삶은 달걀을 준비해 의식을 치르고[9] 수술이 끝난 다음날에 자녀들과 달걀이 들어간 밥 등으로 식사를 했다. 샤흘러가 새옷을 사러 시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갔을 때 마르하보는 어머니를 한국으로 초청하기 위해 행정복지센터에서 초청장을 작성했다. 둘이 구월동 농산물도매시장[10]에 가기 위해 인천 시내버스 35번을 타야 하는데, 정류장에서 말다툼을 하다 놓쳤다. 시장에서 농산물을 정기적으로 공급할 업자를 찾아 구매계약을 했다. 둘은 동향민 남성이 사는 곳을 찾아 향신료와 건포도 등을 사는 데 성공했다. 음식점이 개업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의 피를 출입문에 뿌리고 주변 상인들에게 을 나눠주었다.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춤판을 벌이면서 개업 일정을 마무리했다. 여담으로, 이 회차는 이방인의 고민과 불편을 제대로 다루지 못 했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이 있었다.

2.4. 51회

  • 엘마스, 아이차 : 터키 출신. 출연 당시 눈빛극장에서 공연장 청소와 소품 정리, 공연 홍보 등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대학 생활을 하다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국에 와 국민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페이스북에서 배우 문영동을 만나면서 연극 배우가 되었다. 이후 연출자의 제의를 받고 안톤 체호프의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챠이카[11]에 출연했다. 둘은 문영동에게서 연기 수업을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 챠이카 종영 이후 새해를 맞아 산에서 일출을 보고 내려갔을 때 점쟁이가 있다는 것을 보고 사주를 보기도 했다. 엘마스의 본명은 엘마스 할르즈이며, 2015년 12월한국학대학원 사회과학부에 합격했다. 2016년나온씨어터에서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아마데우스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이들이 출연한 공연의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조하자.

2.5. 52회

  • 아셈굴, 카지나 : 우즈베키스탄 출신. 전회에 나온 엘마스와 아이차처럼 단역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다. 2013년에 한국으로 건너와 방영 당시까지 여러 드라마에 출연해왔다. 둘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행 ATM에 가서 계좌조회를 했는데 아셈굴은 5,000여 원밖에 없어 26,000여 원을 가지고 있는 카지나와 함께 10,000원을 인출했다. 둘은 한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데, 아셈굴은 지하에서 살고 있고 카지나는 3층에서 살고 있다. 시장에 가서 흥정으로 싸게 옷을 사기도 했으며, 드라마 부탁해요 엄마에 아주 잠깐 출연하기 위해 KBS 별관 앞에서 출연하는 전세버스를 타고 강원도 속초에 갔다. 방송 이후 고향의 언론을 통해 주목을 받게 되고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했으며, 딜도라, 고미호와 함께 홍어회 먹기에도 도전했다.

2.6. 53회

  • 기소르, 업서라 : 네팔 출신. 기소르의 본명은 기소르 고이랄라이며, 2007년에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출연 당시 전북대학교 무역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었다. 밤에는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며, 배우자도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자녀는 2명을 두었지만, 첫째는 고국에 있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와 둘째가 고국에 있는 친정을 방문하기도 했다.

2.7. 55회

  • 딜도라 : 본명은 딜도라 하시모바. 우즈베키스탄 출신. 2008년에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방송인과 연기자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배우자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직장암 선고를 받고[12] 항문 제거 수술까지 받아 배에 장루주머니를 달게 되었다. 그럼에도 트레일러 기사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영화 출연을 위해 딸과 함께 고국을 방문한 그녀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나온 영화를 홍보했으며, 고향집에도 방문했다. 귀국 후에 배우자를 위해 딸과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방송 이후 배우자의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으며, 자신이 출연한[13] 영화 쌍둥이는 2017년 2월에 개봉한다고 밝혔다. 고미호, 아셈굴과 함께 홍어회 먹기에도 도전했다. 115회에서 배우자가 항문 복원 수술을 받고 장루주머니 대신 기저귀를 차게 되었음이 확인되었으며, 딸이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고[14] 관계자들에게 비타500을 나눠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본인은 고향에서 영화가 성공적으로 개봉한 뒤로 딸 때문에 배우 활동을 접게 되었다고 한다. 배우자가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해서 일가족이 시내의 한 상가로 찾아갔는데, 알고 봤더니 사진관을 찾은 것이었다. 이곳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것으로 근황이 마무리되었다.

2.8. 56회

  • 딴질 : 방글라데시 출신. 나히드 이후 2번째로 한 가족의 자녀가 사례자로 소개되었다. 초등학생이며, 어머니 마야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2003년에 배우자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와 출연 당시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아버지는 2014년스페인으로 추방을 당했다. 이슬람 신자임에도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여자친구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이 100회 특집에서 재조명되었는데, 촬영한 날이 자신의 생일이었기에 홍석천이 주는 손목시계[15]를 받았다.

2.9. 57회

  • 혼자 : 본명은 혼자 클라스. 체코 출신. 패널들이 그의 이름을 듣고 진짜냐는 반응을 보이자 그가 진짜라면서 고국에서 흔한 이름임을 직접 밝혔다[16][17]. 2006년에 연극 연출일을 하던 한국계 남성을 만나면서 한국에 오게 되었으며, 출연 당시 인형극 연출과 극음악 작곡일을 하고 있었다. 10년째 한국 생활을 하다 보니 한국 문화에 적응하여 한국 음식을 만들 줄 알았고 명절에 제사도 지낼 줄도 알았다. 축구를 좋아해서 30㎝짜리 축구화를 사야 하는데, 인터넷에서 팔지 않자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 운동화를 샀다. 제주도 설화를 원작으로 인형극을 준비하고 있었던 그는 전통 음악을 듣기 위해 제주도를 찾기도 했다. 그는 동업자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자기 이름대로 혼자 살아야 한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2.10. 58회

  • 아미아타 : 라이베리아 출신. 1990년대에 내전이 일어나자 가나에 있는 난민촌으로 피신해 살다 2012년에 마키시와 함께 한국으로 건너왔다[18]. 2015년에 조셉을 낳았으며, 출연 당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서울에 간 그녀는 도매상한테서 양말을 다량 구매한 다음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팔기도 했다. EBS의 '글로벌 가족 정착기 - 한국에 산다'에도 출연한 적이 있으며 이 때는 만삭이었다.
  • 마키시 : 라이베리아 출신. 아미아타의 딸로 출연 당시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 비비안 : 라이베리아 출신. 아미아타와 마키시 모녀의 친척이며, 2016년에 한국으로 건너와 두 모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미아타와 함께 양말을 판 적이 있었다.

2.11. 60회

  • 키라 : 러시아 출신. 아나스타시아의 딸로 2014년에 고국에서 선고를 받고 지인들의 추천에 따라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건너와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출연 당시 경희의료원 국제진료센터에 입원했으며, 어머니의 설명에 따르면 딸이 횡문근육종[19] 진단을 받았는데 종양이 척추근육신경에 붙어 있어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치료 상황에 따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어 처음에는 통역사의 집에서 살다 지인의 소개로 원룸을 빌려서 살아왔다. 이후 원룸을 떠나 의료원과 가까운 곳에 있는 모텔로 거처를 옮겼다. 의료원의 남직원을 좋아해서 혼인(?)을 했으며, 발레를 배워서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방송 이후 시청자들이 모녀에게 금품을 후원했으며, 어떤 사람이 모녀에게 방 두 칸짜리 주택을 무상으로 임대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100회 특집에서 근황이 다시 소개되었는데, 이미 한국에서 치료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중국으로 다시 가서 치료를 계속 받고 있음을 전했다. 하지만, 2017년 5월에 고향에서 요절했다는 소식이 홈페이지를 통해 잠시 알려졌다.

2.12. 61회

  • 욘 : 본명은 욘 스카켄라드. 네덜란드 출신. 원래 직업은 아트 디렉터[20]였으나, 2012년경상북도 경주시에서 여행을 하던 도중 내국인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 이후 1년 동안 중국 티베트 지역을 여행하고 한국으로 다시 건너와서 혼인을 했다. 출연 당시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누가 버린 물건을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서 쓰기도 했다. 고국 음식인 스트룹 와플을 만들어 코엑스몰에서[21] 시식 행사를 열기도 했다. 아내가 임신 중인 상태로 방송에 출연했기 때문에 출산 이후 육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획하는 모습이 소개되었으며, 그는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다녀야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내는 방송 출연 이후 제왕절개 수술로 아들을 낳았다고 전했다.

2.13. 62회

  • 고미호 : 본명은 코믈리바 조이아 안드리브나. 러시아 출신. 2013년에 유학을 목적으로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고국에서 본 한국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좋아서 한국식 이름을 갖게 되었다. 2015년에 내국인 남성과 혼인하고 모델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방영 당시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혼인을 앞두고 성인 토크쇼에 출연해서 시어머니와 갈등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배우자가 일정한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혼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음식점에서 일하는 것은 물론 거리에서 셀카봉을 판 적도 있었다. 방송 이후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시어머니와 함께 자신의 고향을 방문했다. 배우자는 헬스 트레이너로 취업했다. 200회 특집에서 딜도라, 아셈굴과 함께 홍어 먹기에도 도전했다. 로미나와 함께 6시 내고향에 고정 출연했는데[22], 6234회와 6239회에서 방송될 내용을 제작하기 위해 서울 어딘가에 모여서 경남 양산으로 출발했다. 원동역에 도착한[23] 둘은 이용객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사진 촬영도 했다. 한편, 마을에서 촬영을 하다 도랑에 빠지기도 했다[24]. 밤에 한 농가에서 로미나가 자고 있을 때 자신은 휴대전화로 SNS에 사진을 올리고 시어머니한테 전화를 했다. 촬영 이후 배우자와 함께 시장을 찾은 그녀는 마트에서 소주를 사와 시어머니가 사는 곳을 찾았다. 그 이유는 시어머니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서라고. 다음날에 일가가 혼인을 준비하러 예식장을 찾았다. 이 때 그녀가 웨딩 드레스를 입은 걸 보고 엄청 놀랐다고. 부부는 2017년 6월에 혼인을 했다. 2019년 현재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허수아비가 운영하는 컴퓨터 전문점을 방문하기도 했다.

2.14. 64회

  • 세바스티앙 : 본명은 세바스티앙 멜리니. 프랑스 출신.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해 아버지와 함께 살게된 그는 2012년에 자국을 방문한 한 한국 여성을 만나 혼인을 하고 함께 한국으로 건너왔다. 출연 당시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에에서 살았으며[25], 본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한 업체의 직원이었음에도 고국에서 일을 할 수 없으니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 자동차 곡예에 능통하다 보니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 송내고등학교 인근에 위치한 스프린트(위치)를 찾아 동호인을 만나기도 했다. 한 한국계 기업에 들어갔다 이틀만에 그만 둔 그는 아노 부부가 운영하는 크레이프 전문점을 찾아서 일을 한 적도 있었다. 자동차 경주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한 정비업체를 찾아서 자신의 스포츠카가 얼마나 정비되었는지를 확인했는데, 엉뚱한 부품을 받아서 원래 부품을 다시 사와야 한다는 대답을 받았다. 결국, 대회 참가를 포기하게 되었다고. 부부가 식사를 하러 부천 상동에 있는 음식점을 찾았으며[26], 며칠 뒤에 사례자 본인이 노경호 선수를 만나 전자오락실에서 레이싱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부부의 부모님이 집을 찾아왔고,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또 얼마 뒤에 대회에 겨우 참가했으나, 중도에 바퀴가 빠지는 사고를 당해 기권을 했다. 대회 이후 찜질방을 찾아간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100회 특집에서 배우자는 자신의 남편이 방송 이후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며 그가 IT 기업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전했다.

2.15. 65회

  • 레오 : 본명은 레오나르도 베스파. 이탈리아 출신. 1999년에 요리공부를 위해 자국을 방문한 8살 연상의 한 한국 유학생을 만나면서 1년만에 결혼에 골인하고 함께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탈리아 정통 방식으로 요리하는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서, 한국식으로 변형을 가하는 걸 질색하는 편.[27]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성동구에서 이탈리아 요리교실 사포리도로(위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실적 부진으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폐업 위기에 처했다. 결국, 다른 음식점을 찾아서 일하게 되었고 부부와 함께 경남 통영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위기 타개를 위해 시식회를 열기로 하고 홍석천의 도움을 받은 다음 자신의 요리교실에 손님들을 초대했다. 여담으로 건프라 조립이 취미인데, 직접 붓도색까지 할만큼 실력자. 상호가 나오지 않았지만 건담베이스에서 지온의 MS 3기를 구입하는 모습이 방송분에서 나왔다. 홍석천과 사유리가 교습소를 찾아서 근황을 공개했는데, 방송 이후 수강생이 늘어서 1주일 내내 수업을 했다가 지금은 다시 주 3일만 수업을 하고 있다고. 그리고 자기 음식에 피클을 함께 주는 것을 싫어했다가 수강생들을 생각해서 자신이 직접 만든 피클을 주게 되었다. 부부는 두 진행자에게 아티초크 카르보나라를 직접 선보였다.

2.16. 66회

  • 제롬 : 본명은 제롬 글로리. 라이베리아 출신. 2003년에 내전이 일어나면서 부모와 형이 찰스 테일러 대통령한테서 학살을 당하자[28] 2007년에 한국으로 망명을 오게 되었다. 망명 당시 자녀로 마사와 제롬을 두고 있었으나, 그 뒤에 페이트, 러브, 엔젤, 데이비드가 태어나 자녀 수가 6명으로 늘었다. 마사가 미용실에서 일했던 관계로 페이트가 집안일을 책임지고 있었으며[29], 제롬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생활정보신문에서 직접 찾기도 했다가 음식점 업주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가락시장에서 수산물 상인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다만 내전 때 고문을 당했던 후유증으로 팔에 장애가 생겨서, 물건 옮기는 걸 어려워했다. 페이트가 늦은 시간까지 친구의 집에서 놀다 온 것에 마사가 혼내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13 ~ 15살이 돼야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 특이하게도 일가족이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고.

2.17. 67회

2.18. 68회

  • 밀젠코 : 본명은 밀젠코 마티예비치. 크로아티아 출신. 록 그룹 스틸하트의 보컬로 활동해온 그는 1992년에 미국에서 공연을 하다 조명탑이 무너져 자신을 덮치는 사고를 당했고, 몇 달 뒤에는 어머니와 지인도 목숨을 잃는 불행을 겪었다. 1996년에 공연을 하러 한국을 찾은 그는 이후에도 한국을 찾아와서 공연 활동을 해왔다. 동료들이 한국으로 왔을 때는 혼자 한식당으로 간 다음 매니저와 함께 한식을 먹기도 했으며, 호텔에서 살다보니 아파트 전세 매물을 찾기 위해 공인중개사를 찾기도 했다. 춘천에서 밴드 페스티벌이 열렸을 때는 참관객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노래를 불렀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남이섬에 다녀왔다. 변호사 션 헤이즈를 만나서 식사를 한 그는 얼마 뒤에 망원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사온 다음 케밥을 만들어서 동료에게 대접했다. 한국 대중가요를 편곡해서 부르는 등 전형적인 지한파의 모습을 보였다. 여담으로, 시청자들은 방송 이후 사례자의 고민보다 한국 생활을 많이 보여줘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을 했다.

2.19. 69회

  • 줄리앙 : 본명은 줄리앙 파바리오. 프랑스 출신. 한국으로 건너온 뒤에 프랑스로 유학을 가려던 어느 내국인 여성과 사귀게 되었으며,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에서 가토 드 보야주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었다. 논현역 상권의 활성화를 위해 모임을 세워서 활동하기도 했다. 2018년 11월 26일에 사업을 접었다.
  • 다비드 : 프랑스 출신. 줄리앙과는 친척 관계이며, 그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 내국인 여성과 혼인할 예정이었기에 그녀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울산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최정원 아나운서와 파비앙이 매장을 찾아서 근황을 공개했는데, 방송 이후 손님들의 요청에 힘입어 강좌를 열게 되었고 내국인 남성 2명과 함께 일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부부는 두 진행자에게 오페라를 직접 선보였다.

2.20. 70회

  • 마리오 : 멕시코 출신. 원래 부잣집 아들이었으나, 2006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자신보다 나이가 7살 많은 한 한국 여성을 만나 고국에서 혼인을 했다. 이후 아버지가 하는 일을 도와주다 배우자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출연 당시 충청남도 서산시에 있는 배우자 어머니의 집에서 살고 있었으며, 자녀 3명을 두고 있었다. 첫째는 고국의 전통에 따라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았으며, 딸은 스튜디오에서 셀프 판치라를 시전했다. 배우자의 어머니는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특설 장터에서 기름 등을 팔고 있다. 외국인 대상 한글 교육을 이수하고 있으며, 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했다. 예방접종을 위해 자녀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고, 새집으로 이사를 간 자신의 부모와 영상통화를 했다. 한밤에 PC방으로 가서 아버지가 할 일을 도와주었고,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가 폐점하자 CU에서 도시락을 사먹었다.

2.21. 71회

  • 방대한 : 본명은 칸 모하마드 아사드주만. 방글라데시 출신. 한국 이름의 의미는 글라데시와 대한민국의 합성어[31]. 8남매 가운데 일곱째로 태어난 그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1996년로스쿨 진학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으로 건너왔다. 2009년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그는 방가방가1박 2일, 강연 100℃ 등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32]. 2015년에 고국에서 20살 연하 여성 수헤칸과 혼인을 했으나, 자신은 이미 2008년에 한국 국적으로 귀화했기에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기러기 아빠 신세를 졌다. 같은 해에는 가수 박상철이 만든 노래 비빔밥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해 전국 각지에서 공연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매니저도 코디도 없이 혼자 현대 쏘나타를 타고 다녀 주행 거리가 25만 ㎞에 육박했다고... 이거 때문에 정비소에 갔더니 엔진뜯어고쳐야 한다는 직원의 설명에 자신이 번 돈을 주겠다고 했다는 듯. 가수 뿐만 아니라 상인건축업자보험설계사 종사까지 포잡을 뛰고 있었으며, 바리스타에도 도전했다. 출연 당시 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는 한 시장에서 살았는데, 방만 딱 하나 있다 보니 주방과 욕실은 음식점에 딸린 곳을 썼다고 한다. 배우자와 딸을 겨우 한국으로 데려와서 자신이 사는 곳을 보여줬더니 배우자가 한국 드라마에서 본 것과 많이 달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공연 활동을 하러 김해에 다녀오겠다면서 배우자에게 돈 10만 원을 줬다. 그가 떠난 뒤에 배우자가 우유가 없다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남편은 내가 준 돈으로 사오라고 대답했다. 배우자는 그가 일하는 상점에 가서 쌀음료를 우유로 오인하고 구매하려다 점원이 우유가 아니라고 하자 다른 상점으로 갔다. 그곳에서 우유를 사는 데 성공한 그녀는 점원에게 몸짓까지 쓰면서 설명한 끝에 기저귀까지 구매해 왔다.

2.22. 72회

  • 방새미 : 미국 출신. 원래 종합병원에서 일했으나, 2013년에 인터넷에서 만난 한 한국 남성과 혼인하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후 이름을 남편의 성에 맞춰 방새미로 개명했으며, 출연 당시 충남대학교 수의과대학에 다녔다. 동물에 관심을 갖고 있어 수의사가 되고자 진학을 결심했다고. 그러다 보니 유기 동물들의 보호는 물론 행사에 참석해 강아지 공장의 반대와 실험 동물의 입양을 촉구하는 활동도 했다. 강의실에서 기말고사를 치렀는데, 혼자 끝까지 남아서 문제를 풀었다. 집안에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어 털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고국에서 가족들을 데려와 전통 혼례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1] 방송 출연 이전까지의 자세한 사연은 여기로 들어가서 읽어보자.[2] 물품을 구매했음에도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 행위는 엄연한 범죄임을 알아두자.[3] 주변에 아파트 단지들이 있기는 하나, 공업사들이 밀집되어 있는 데다 근처에 경인고속도로로 가는 길목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유동 인구가 적은 편이다.[4] 그의 말에 따르면 1990년에 사고를 당해 25년 넘게 누워 있게 되었다고.[5] 초반에 국방TV 위문열차와 OBS에서 진행한 V 라이브도 나왔다. 심지어는 OBS 사옥 전경도 등장했다. 하지만, 2013년에 국방홍보원이 로고를 바꾸면서 국군방송이 국방TV와 국방FM으로 바뀌었음에도 스태프 롤에서는 국군방송으로 나왔다. 라니아가 출연한 방송분은 2016년 2월 8일에 방송되었다.[6] 여담으로, 이 회차는 방송되는 동안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아 방송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뒤까지 네이버다음의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7] 이는 소속사 사장이 내린 조치로 알렉스가 아직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공연 전부터 팀원들과 말이 안 통해 오해와 불화를 일으켜서 분열이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옳은 조치였는데 이 덕분에 알렉스는 팀원과 천천히 접촉해가며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조금씩 배워가며 오해를 줄여가고 있다. 처음부터 합숙했으면 라니아를 보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8] 중구 광희동 1가에 위치한 사마르칸트.[9] 이는 장성해서 자녀를 많이 가지라는 의미로 하는 거라고. 거기가 건강하라고가 아니며 어쨌든 맞긴 하다.[10] 2020년 3월남촌동으로 이전했다.[11] 러시아어로 갈매기를 의미한다.[12] 담당 주치의는 이 사람이다.[13] 1인 2역을 맡았다고 한다.[14] 키즈플래닛 소속으로 들어갔다는 듯.[15] 티쏘(Tissot)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16] Honza라는 체코 이름은 ''의 변형으로 영미권의 , 독일의 한스에 해당하는 이름이다.[17] 그래서인지 방송 이후 인터넷에서 우스갯소리로 엮이기도 했다.[18] 이 프로그램에서는 이렇게 대충 설명했지만 진짜 사연은 이렇다. 자기의 고향에서 여성할례를 당할 위기에 처했고 부모님이 그것을 반대했다. 때문에 아버지는 살해당했고 남은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가나의 난민캠프에 도착해서 마키시를 낳고 2012년에 한국으로 건너왔다.[19] Rhabdomyosarcoma. 근육 등에서 발생하는 종양을 가리킨다(참조).[20] 사진 촬영과 광고 제작을 담당했다. 작품으로는 컨버스, 이케아, KLM 등등의 광고가 있다.[21] 영상에서는 서초구에 있다고 자막으로 고지했으나, 엄연히 강남구에 위치하고 있으니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한다.[22] 전술했듯 2019년 들어 남성 패널들의 일회성 출연으로 인해 출연 횟수가 줄기도 했다.[23] 6234회에서 둘이 무궁화호에서 내리는 장면이 나왔으나, 실제로는 연출된 장면이었음이 107회에서 밝혀졌다.[24] 도랑에 무엇이 흐르고 있는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5] 자막으로 거주지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부제가 나왔을 때 영상 가운데에서 오른쪽으로 부평역이 보였다. 이외에도 만월산터널 위에서 찍은 부평구 전경과 부평역 상공에서 바라본 경인선도 등장했다. 이로써 세바스티앙이 부평구민이었음을 알 수 있다.[26] 이 장면에서 투나가 나오는 것을 봤을 때 송내역 북광장 인근 상권을 찾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27] 이외에 파스타에 피클을 곁들여 먹는것도 진정한 맛을 느끼 는걸 방해한다고 싫어한다.[28] 라이베리아 내전의 자세한 내용은 라이베리아찰스 테일러 문서를 참조하자.[29] 마사의 말에 따르면 라이베리아에서는 여자가 집안일을 담당해야 한다고.[30] 서상전(徐?田). 광둥어로는 저우셩틴이라고 읽는다.[31] 강연 100℃에서도 이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32] 방가방가, 전국노래자랑과 1박 2일에서는 본명인 칸으로 출연했으며, 강연 100℃에서는 한국 이름으로 출연했다.

3. 하반기

3.1. 73회

  • 알리나 :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이 되기 위해 2010년에 한국을 찾았다가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를 만나 5달 만에 혼인을 했다. 출연 당시 아들과 애완동물을 두고 있었으며, 한국 생활을 위해 한국어 공부와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했다. 한국어 강좌는 김포에서 수강하고 있으며, 운전면허 시험은 학과 시험에서 36점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둔 상태. 모델 활동을 하다 소속사에서 사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3.2. 74회, 75회

  • 바티스트 : 본명은 바티스트 지블랑[33], 프랑스 출신. 어렸을 때부터 유도를 배웠다가 재미없어서 관두고 가라테를 배웠다가 심심하다고 또 관두고 그러다 중국 영화에 나오는 무도를 보고 대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중국에 가기로 결심해서 2003년에 베이징 체육대학에 들어가 2년 6개월 동안 우슈를 배웠다 춤같다는 이유로 또 다시 관뒀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아버지를 따라 소방관으로 근무하다 가스 폭발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을 뻔 했다. 2010년에 한국계 체육관장을 만나면서 한국의 무도를 알게 되었고, 2013년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합기도택견을 배우기 시작해 지금은 각각 2단과 두 동까지 실력을 높였다고. 출연 당시 충청북도 제천시에 위치한 을지관[34]에서 원생들을 지도하는 것은 물론 청소와 사무, 심지어 주부들을 대상으로 줌바 강좌까지 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마을회관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경찰서에서 무술지도를 했는데, 훈련을 받다 보면 밤 늦은 시간에 귀가하게 되었다. 해외에 있는 수련생들의 대회 참가를 위해 초청장을 작성했는데, 이름을 이상하게 쓰는 것에[35] 관장이 지적했다. 하지만, 자신은 한글이 쉽다는 것에 놀랍다는 듯[36]. 관장은 도장 윗층에서 살고 있었지만, 자신은 월세 주택에서 따로 살고 있었다[37]. 관장과 함께 시청을 찾아 체육진흥과 관계자에게 자신이 동생과 함께 고국에 합기도협회를 세워서 운영하고 있다며 시가 주최하는 택견대회에서 합기도 종목도 함께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수련생들과 함께 단체로 전지훈련을 다녀온 그는 집에서 어머니와 영상통화로 아쉬 파르망티에를 만드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그런 다음 밀린 집안일을 하고 비빔면[38]을 먹었다. 동네 의원에 가서 진단을 받은 그는 승급 심사를 받기 위해 산에 가서 연습을 했다[39]. 협회 부회장과 관장, 학부모들이 참관한 가운데 열린 심사에서 상장을 받았다. 제작진이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가 보이지 않고 통조림 하나만 보이자 상점으로 가서 그를 찾았다. 알고 보니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말한 음식을 만들려고 상점에 간 것이었다. 그는 관장의 자택에 가서 30분이면 된다며 아쉬 파르망티에를 만들었으나, 2시간에 걸쳐서 겨우 만들었다. 100회 특집에서 자신은 멀쩡하다면서 관장님이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으니 한국을 떠날 수가 없어 도장을 직접 운영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관장과 함께 합기도 시범을 보여주었다. 2017년 여름에 제작진이 그의 근황을 취재한 사실이 130회에서 뒤늦게 알려졌다[40]. 1년 사이에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과 함께 신문지로 유리를 닦을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또한, 관장이 되기 위해 3단 심사를 준비하고 있음을 밝혔는데 이에 앞서 제천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제천국제무예대전[41]의 진행을 담당한다고 전했다. 여성 진행자와 함께 행사를 진행했다는데, 우려와 달리 대사를 똑바로 읽었다. 진행을 마친 다음 이탈리아 선수단을 지도하고 자신도 택견 종목에 참가해 전승 우승으로 상을 받았다. 행사가 열리는 동안 어린 수련생들의 인기를 많이 받았다. 폐막 이후 덕동리 생태숲펜션 앞에서 세미나에 참석한 외국 수련단을 만나 훈련을 했으며,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절[42]에 가서 기도를 했다. 충북 지역 외국인 수련생들을 위해 열린 심사에서 그는 혼자 3단 심사를 받았으며, 이후 세미나의 마지막 일정으로 송별 파티를 열고 외국 수련생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며칠 뒤에 그는 관장에게서 20여 분 동안 심사평을 들은 다음 3단으로 승급되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 그리고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단증을 받았기 때문에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현지 협회에 가입하고 수련생들에게 합기도를 지도할 수 있게 되니 그의 차후 행보가 주목되는 대목이었다.

3.3. 76회

  • 트로이 : 본명은 트로이 지첼스 버거. 미국 출신. 자신의 조상이 독일계였던 탓에 맥주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시서론(Cicerone, 공인 맥주 전문가) 자격을 받고 한국으로 건너와 강남에 맥주 전문점 합스를 창업해서 자신이 만든 맥주를 팔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한국에 자신이 찾는 맥주가 없기 때문이라고[43]. 맥주 사업 이외에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었으며, 그의 배우자는 대학교에서 전통 무용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2015년에 배우자 가족이 고국에 있는 부모와 상견례를 했고 혼인은 2017년에 할 것임을 밝혔다. 업소 내부를 단장하기 위해 페인트칠을 해야 했는데, 어떤 색으로 칠해야 하는지를 놓고 갈등을 일으킨 적이 있었으며, 업소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한 적도 있었다. 친척들 앞에서 영화 300과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나온 적이 있다고 자랑했다. 방송 이후 홉머리 브루잉 컴퍼니로 상호를 변경해서 운영하다 2019년 이후에 폐업했다.

3.4. 77회

  • 캐빈 : 본명은 캐빈 로페스, 스페인 출신. 아일랜드에서 유학을 하던 도중 한 한국계 여성을 만나 혼인을 하고 2015년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자녀로는 리암을 두고 있으며, 배우자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신당식당에서 일을 하다[44] 배우자와 함께 동성로에서 미스터 힐링 가맹점을 창업했다. 방송 이후 주말마다 바쁠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고. 다만, 시부모님은 이제 더 이상 식당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둘째는 자신이 한국어를 잘 알게되는 날이 되면 갖자고 밝혔다.

3.5. 79회

  • 아바디 : 예멘 출신. 원래 말레이시아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해왔으나, 고국에서 내전이 일어나자 이를 피해 2014년에 한국으로 건너왔다[45][46]. 아마니를 배우자로 두고 있었는데, 이유는 남예멘에서 북예멘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만났을 때 그녀가 자녀들의 어머니인 줄 몰랐다고. 어쨌든, 이름이 부모로서 적절하다. 가족들이 파주시에 정착해서 살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은 광주시에 있는 직장에 다녀야 하는 관계로 직장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47]. 파티마는 어릴 때 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쳐 2년째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자는 동안 기도를 막아 죽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돈이 없어서 검진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일가족이 돈을 벌기 위해 시장에 가서 빵을 팔기도 했고, 하미드가 알라와 하밀라의 한국어 공부를 위해 받아쓰기를 시키기도 했다. 며칠 뒤에 일가족이 거주지를 광주시로 옮기면서[48] 가장과 따로 사는 문제가 해소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과 미두가 화물차를 타고 가는 바람에 아마니와 나머지 자녀들이 대중교통으로 새집까지 가야 했다. 하지만, 전철역의 자동판매기에서 곤지암역을 찾지 못 해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고[49], 요청을 받은 시민은 전화로 확인한 끝에 양재역까지 가라고 설명을 했다. 양재동에서 500-2번 노선으로 갈아타고[50] 광주에 도착한 일가족은 새집을 보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중고매장을 찾은 가족이 필통선풍기, 청소기 등을 사왔으며, 밤에 알라한테 필통을 주고 화해를 했다. 자녀의 전학을 위해 공영버스를 타고 광일중학교[51]를 찾아 전학 절차를 밟고 교과서를 받아왔다[52]. 아미라가 아버지를 위해 동생들을 불러 깜짝 파티를 열기로 하고 제과점[53]을 찾아 케이크를 사왔다. 초콜릿 케이크를 사려다 매장에 없어서 고구마 케이크를 사온 그녀들은 집에 돌아와서 편지를 쓰고 촛불을 켜 아버지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자 자녀들이 편지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방송 이후 KB증권사 임직원들로부터 의류를 후원받았다고 전했다.

3.6. 80회

  • 제냐 : 본명은 예브게니 사프로노프[54]. 우크라이나 출신. 어머니1979년부터 댄스 스포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12살 때부터 댄스 스포츠를 하게 되었으며, 5년 만에 국가대표가 되었다. 2008년에 학업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학원에서 자신보다 7살 많은 내국인 여성을 만나게 되었고, 5년 만인 2013년에 혼인했다. 출연 당시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위치한 투플레이 댄스 아카데미[55]를 직접 운영하고 있었으며, 수도권 일대에 있는 학원들을 돌아다니면서 출장 강습도 하고 있었다. 그는 여러 대회에서 상을 받았음에도 한국에서 파트너를 구하지 못 하자 고향에서 파트너를 데려오기 위해 서류를 썼다 배우자에게 걸렸다. 배우자와 함께 그녀의 부모님이 사는 부산 덕포동 자택에 다녀온 그는 정신과를 찾아 전문의의 상담을 받았다. 2016년 여름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 제목은 《한국 관광산업의 활성화을 위한 댄스 스포츠의 역할에 관한 연구》, 부제는 〈선진국 사례와 한국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중심으로〉이다. 방송 이후 배우자의 허락을 받아 파트너를 구하게 되었고, 그녀가 대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며 2017년 3월에 한국으로 찾아올 것임을 전했다. 앞으로 파트너와 함께 국내대회에 참가한다는 계획이었다. 부부는 댄스 스포츠 시범을 보여주었다.

3.7. 81회

  • 박조안나 : 방글라데시 출신. 양어머니[56]임신을 하지 못 하자 외국에서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하고 2008년에 방글라데시에서 직접 입양해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에서 양부모 가족과 함께 살았다. 양어머니 안진서는 그녀를 입양하고 몇 달이 지나서야 쌍둥이를 출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쌍둥이의 이름도 입양한 딸의 이름처럼 3글자(이루안, 이지안)로 지어줬다. 방송 당시 수도여자고등학교[57] 2학년생이었으며,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았던 것을 보니 한국 생활에 완전히 적응된 것으로 보인다[58]. 여름방학을 맞아 6년 만의 고향 방문을 했는데[59][60], 제소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친가족들이 그녀를 맞이했고 친동생이 꽃다발을 주었다. 외삼촌댁에 도착한 그녀가 반바지에서 원피스로 갈아입은 이유는 이 나라에서는 너무 짧은 복장이라고. 다음날에 친가족들에게 복숭아와 한국 상품들을 선물로 주었다. 자신이 다니다 만 학교를 찾아가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후배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다. 할아버지 댁에 찾아갔을 때 할아버지가 개안수술을 받아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저녁이 되자 친동생과 함께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신라면을 넣어서 라볶이를 만들었다. 168회에서 그녀의 근황이 공개되었는데, 2018년에 수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호서직업전문학교로 진학해 호텔식음료를 전공했다[61]. 또한, 거주지도 서울 상도동에서 경기도 시흥시 도창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2018년 4월에 유튜버 활동하기 시작했다[62]. 자신이 요리쪽으로 진로를 결정했기에 에드가의 노하우를 전수받고자 소브레메사를 방문해 일일 주방 보조 체험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이 관심을 갖게 된 스페인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게 되었는데, 먼저 타파스를 만들기로 했다. 에드가가 타파스를 먹고 호평을 하자 그녀에게 메뉴판을 보여주며 어떤 메뉴를 파는지 기억하고 오라고 주문했다. 다음날에 영업장을 방문해 재료를 손질하다 손가락을 다치자 마이크의 도움을 받았으며, 도구 사용법을 지도받았다. 손님이 주문을 하자 주방이 분주해졌는데, 이 때 사유리가 영업장을 방문해 어떤 요리를 제공하는지 설명했다. 설명하는데 애로사항을 겪자 에드가가 나서서 직접 설명했다. 결국, 에드가의 갈굼을 당한 사례자는 에그 카탈라냐를 똑바로 설명하는데 성공했다. 에드가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 '사례자는 음식 서빙이 단순히 음식을 옮기는 게 아님을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식과 식당 상황에 대해 이해하면서 질문하고 배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유리는 식당에서 나오면서 '음식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 몰라서 당황했음에도 셰프에게 바로 물어보는 모습이 예뻤다'고 밝혔다. 저녁이 되자 긴박한 주방 분위기에도 익숙한 자세로 일을 마쳤으며, 에드가가 사례자를 불러서 소감을 물었다. 이에 사례자는 '정말 좋았다. 학교에서 배울 때와 식당에서 실제로 일하는 건 많이 달랐다.'며 평가하자 에드가는 '학교에서는 편한 분위기에 많은 시간을 주고 한다 해도 실전에서는 훨씬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사례자는 '남아시아 음식을 한국인에게 퓨전 음식으로 소개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히자 에드가는 '퓨전 요리를 성급히 시도하지 마라. 우선 그 요리의 기본을 배우고 퓨전을 시도하라. 초보자가 기본을 모르면 정작 퓨전을 시도할 때 어떤 걸 만들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며 조언했다. 그리고 사례자에게 칼과 칼갈이 세트를 증정하면서 '사례자는 셰프가 될 자질이 많이 있다. 사례자가 자신에게 보여준 요리에 대한 헌신과 노력을 계속 기울인다면 반드시 좋은 셰프가 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로써 사례자는 일일 주방 보조 체험을 마무리했다. 153회, 157회, 158회에서 패널로 출연한 한현민과 손을 잡고 멘토 활동을 하는 내용이 168회에서 소개되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153회 패널의 근황 부분을 참조.

3.8. 82회

  • 앤서니 : 미국 출신. 7살 때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여러 가지 운동으로 거구가 되었고, 혼인 뒤에는 거주지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자녀가 먹을 이유식완두콩후추 등을 넣어서 괴식으로 만들고 시아버지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적도 있었다. 방송 이후 시아버지에게 예의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3.9. 83회

  • 호세 : 본명은 호세 파리난고 레마. 에콰도르 출신. 1997년에 한국에서 중남미 음악 그룹 활동을 시작한 그는 한 여성과 혼인했다가 2008년에 이혼을 했다. 그 뒤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자신이 공연 활동을 하러 밖에 나가는 일이 많다보니 사이가 영 좋지 않다는 듯. 아들은 말키라는 에콰도르식 이름을 갖고 있으며, 방영 당시 주엽초등학교에서 학급 총무를 담당하다 100회 특집을 즘하여 졸업을 하고 한수중학교로 진학했다. 스페인어 실력은 회화가 가능한 수준이며, 아버지의 고향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 한 음악 공부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온라인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송 당시 세자르, 마이클과 함께 음악그룹 가우사이(Kawsay)[63][64]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다[65] 2017년에 페루 출신 윌리엄, 앙헬, 아벨을 영입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말마다 남이섬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공연을 하러 간 동안 아들은 집[66]에서 친구들과 함께 논다고 한다. 공연을 하지 않는 날에는 소속된 기획사에서 연습이나 음반 제작을 하지만, 요새는 수요가 줄면서 공연 일정도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도 고향에 돈을 빠짐없이 보내고 있다. 세자르가 공연을 앞두고 동료들과 소맥을 마신 게 문제가 됐는지 공연 당일에 공연장에서 내국인 연주자들과 함께 연습을 하다 구토 크리를 당한다. 결국,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고. 방송 이후 아들과의 관계가 개선되었으며, 100회 특집에서 아들이 악기 연주에 참여했다. 아들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밝혔다. 5개월 뒤에 제작진이 경북 구미에 있는 비오비아트홀[67]을 찾아서 엄청난 열기 속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을 공개했다. 공연을 기획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구미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했는데 환호가 큰 것은 처음이었다'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호세도 '방송 이후 우리한테 관심을 보여준 것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집으로 돌아온 이들이 강 군과 함께 식사를 만들었으나, 강 군이 이번에도 하라는 상차림은 안 하고 온라인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충남 당진에서 단독 공연을 할 것이라 성사동에 있는 루프 댄스 스튜디오(위치)에서 연습을 했다. 그가 연습실에 찾아온 주한 에콰도르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소개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음날에 쓸 전통 악기 안타라를 만들었다. 학교를 찾은 그는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자신의 아들이 속한 학급에서 남아메리카 전통 음악 교육을 진행했다. 당진문예의전당을 찾은 그룹과 강 군은 단독 공연을 했으며, 공연이 끝나고 교촌치킨 읍내점에서 회식을 했다. 여담으로, 스태프 롤 초반에 ANG이라고 쓰인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은 학생(23번)이 등장했다[68].

3.10. 84회

  • 그레고리 : 본명은 그레고리 드프레즈. 프랑스 출신. 2006년에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그 전에 만난 한국계 여성과는 2014년에 혼인했다. 2016년 3월에 서울특별시 마포구 연남동에서 앙 프랑뜨를 창업했다. 앙 기모찌와는 상관이 없다. 동료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 한다고 불만을 제기했지만, 고깃집에서 직접 사과를 했다고. 종로구에 있는 토탈미술관에서 듣기나라의 앨리스 전시회가 열린 것을 기념하기 위한 만찬에 참석한 부부는 더운 날씨에 얼음을 사러 차를 타고 상점에 가게 되었으나, 근처에 상점이 없어 한참 떨어진 곳까지 가야 했다. 그리고 참석자들이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끝난다.
  • 록산 : 본명은 갈리 록산. 프랑스 출신. 고등학생한국사를 배우게 되면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13년에 한국으로 건너와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강의를 하지 않는 날에는 봉사활동도 하며,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다. 2학기가 시작한 이후에 거처를 옮겼다지만 짐을 정리하지 못 했다고. 방송 출연을 앞두고 임진왜란 1592를 본 적이 있었다.

3.11. 85회

3.12. 86회

  • 마니 : 본명은 마니 달리왈, 인도 출신. 수키 달리왈의 아들. 성인이 되자 마자 한국을 찾은 그는 2014년에 향토 음식점에서 일하다 자신보다 12살이나 많은 손님을 만나게 되었고, 2달 만에 혼인을 했다. 출연 당시 딸을 두고 있었으며, 2016년 7월에 어머니를 한국으로 데리고 왔다. 일산에서 향토상품점 JH 인디아 마트(페이스북)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택배 기사와 친한 편이었다. 모자가 시크교 신자여서 포천에 있는 시크교 사원[70]에 다니고 있었다. 아들이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식사를 만들었는데, 한 번 만드는 데 3시간이나 걸렸다고. 3달 전에 나온 누구와 비슷하다. 아내가 로 이유식을 만들자 이를 본 어머니가 '왜 우유를 안 넣음?'이라고 묻자 아내가 '우유는 1년 3개월이 지나면 먹일 수 있음.'이라고 대답했다. 남편이 대신 만들어주다 어머니가 '왜 설탕을 안 넣었냐'며 망고맛 가루, 설탕, 건포도, 바나나, 우유로 이유식을 만들었다. 1달 전에 나온 누구보다 낫다. 결국 이유식에 설탕을 넣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3.13. 87회

  • 유스라 : 이라크 출신. 자신은 원래 초등학교 교장이였고, 배우자는 경찰관이었다. 하지만, 2011년에 배우자가 기독교 신자인 자신의 친구를 도와줬다가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되어 호주로 망명했다. 이후에도 첫째 아들이 납치를 당할 뻔하자 결국 2014년에 한국으로 망명을 하여 난민 비자(G-1)를 받고 인천광역시 서구 신현동에 정착했다. 배우자는 방영 당시에도 호주에서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었다[71]. 자녀들은 출연 당시 신현북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장래희망은 첫째가 축구선수, 둘째가 경찰관, 막내가 가수라고. 그리고 자신은 매주 인천서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막내가 소풍을 가야 하는데[72] 배우자가 돈을 보내주지 않자 슈퍼마켓에 가서 돈을 빌려오기도 했다[73]. 시장[74]에 간 모녀가 생선을 샀는데, 막내가 값을 깎아달라고 조르자 주인이 진짜로 10%를 깎아주었다. 신발가게에도 가사 신발을 둘러보았지만, 사지 않고 그냥 나왔다. 그 사이에 집에서는 두 아들이 싸움을 저질렀다(...). 금수저였던 가족이 한 순간에 흙수저가 돼서 서럽다는데, 이유는 배우자가 돈을 보내주지 않아서 생활고를 겪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어려움을 고백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75]. 결국, 자신이 직접 시장에 가서 일자리를 찾다가 채소가게에서 일을 하게 된다. 이 때 가게 주인이 중국인을 고용한 적이 있었기에 취업이 성사되었다. 그런데도 한국어가 서툴러서 손님을 접하기가 벅차다고 한다. 다음으로 음식점[76]을 찾아서 주인이 한 시간에 7천 원을 준다는 조건을 받아서 일을 하게 된다. 그 사이에 집에서는 딸이 혼자서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일을 마친 자신은 주인한테서 일급과 새우튀김을 받자 만족감을 드러내었다.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후원을 받았다고 전했다.

3.14. 88회

  • 브라이언 : 본명은 브라이언 던[77]. 캐나다 출신. 2010년에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대전에 갔다가 시립미술관에서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게 되었고, 3년 뒤인 2013년에 혼인한 다음 고향으로 돌아갔다 2014년 5월에 다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으로 건너오기 전까지 바이트TV[78]에서 브라이언의 인생 제작과 진행을 전적으로 책임졌고, 한국에서 책 읽어주는 브라이언을 제작한 데 이어 다시 고향에서 맷 필립스 쇼[79]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출연 당시 서구 탄방동에서 살고 있었으며, 방송 당시 둔산동에 위치한 현대아이텔에 스튜디오를 세워서 브라이언의 세계 한국이라는 영상을 정기적으로 제작했으나 조회수 부진으로 인하여 연재를 포기했다[80]. 그런데, 이 사업은 비영리 사업이라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 다른 일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사정리 소재 시아버지의 농장에 가서 감을 딴 다음 자신의 집과 가까운 목련사거리[81]로 가서 행인들에게 팔고 롯데백화점 대전점에 있는 문화센터를 찾아 원어민 강사로 영어 수업을 진행했다. 심지어 충북 옥천한 농기계 제작사[82]를 찾아 해외 판매용 농기계 모델의 홍보용 사진을 찍기도 했다. 파티용품점에서 비싼 돈을 주고 각종 물건들을 사서 배우자에게 깜짝 파티를 한 적도 있는데, 풍선을 들고 도시철도를 이용하는 민폐를 저지른 적이 있었다[83]. 배우자가 소머리 국밥을 먹고 싶다며 직접 가서 사오라고 하자 간판을 살펴본 끝에 국밥집에 가서 소머리 국밥을 사오고 김치까지 받아왔다. 한 친척이 돌잔치를 열었을 때는 친척에게 축의금을 줄 정도로 한국의 경조사에도 익숙하게 대응했다. 대전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간 그가 재능TV 본사에서 신규 프로그램 진행자 오디션에 참가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1년 6개월만에 그의 근황이 공개되었는데, KBS가 직접 나서서 TV유치원의 액션 잉글리시 출연자로 섭외했으며, 여러 매체에서도 섭외 제의가 들어와(심지어는 중화권에서까지) 출연을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KBS 월드 라디오원 파인 데이 2018년 4월 18일 방송분에 출연해서 박정현과 인터뷰를 한 그는 녹음실로 이동해서 TV유치원 제작에 쓰일 노래를 녹음했으며, 별관 스튜디오에서 8시간 동안 방송분 촬영을 했다. 방송 당시 임신 4개월째였던 그의 배우자는 2017년 4월 12일에 루나 던을 낳아 사례자가 육아를 책임지게 되었다. 딸은 2018년 5월 당시 둔산동에 위치한 짐보리에 다니고 있었다. 딸이 아프다고 하자 월평동에 있는 선사소아청소년과의원을 찾아서 진료를 받았는데, 의사가 수두로 진단하고 예방접종 여부를 물어보았다. 사례자는 배우자에게 전화로 예방접종 여부를 물어봐야 했다. 다행히 예방접종을 해서 며칠만에 나았다고. 시아버지와 함께 신랑각시방(블로그, 인스타그램)에 가서 돌잔치 때 입을 한복을 사왔다. 논산에 있는 시부모의 자택[84]에 가서 돌잔치[85]를 하는 것으로 근황 소개가 마무리되었다.

3.15. 90회

  • 비카 : 러시아 출신. 미국사이판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 2010년에 같은 지역의 한 해변에서 구조요원으로 근무하던 한 한국계 남성을 만나게 되었고, 3년 뒤인 2013년에 혼인을 하고 한국에서 살게 되었다. 그 전까지 그녀는 1달에 한국돈으로 천만 원 정도를 벌어왔으나, 혼인 이후로는 주부가 되었다. 배우자는 출연 당시 코웨이에서 생활가전제품을 판매하고 있었으며, 판매 실적이 직원들 가운데 가장 높아서 본사가 주는 상을 여러 차례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입사 이후 영업팀장으로 승진하기까지 몇 년 안 걸렸다고. 그녀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나, 발음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심지어는 내국인 어린이가 '한국인이 맞냐?'는 질문까지 해서 대답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듯. 같은 외국 출신들끼리 현장학습을 하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과거에 무용인이었기 때문에 한 댄스 학원에 들어가서 줌바 강사로 일하기로 하고 면접을 보았다.

3.16. 91회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이웃집 찰스/출연자 목록/외국인 신입생/2024년 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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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레이즈 : 코트디부아르 출신. 2002년에 예술인마을의 초청을 받아 한국에 와서 공연활동을 했으나, 당시에 고향에서는 내전이 일어났기 때문에 동료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국에 남았다가 2006년에 동향민 여성과 혼인을 했다. 한국에서 아프리카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점과 자녀들이 한국 문화에 익숙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출연 당시에도 공연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겨울에는 활동을 할 수 없어 걱정이 많다고 했다. 자녀로는 3명을 두고 있었으며, 첫째 아들인 사무엘은 축구교실에 들어가서 축구를 배우고 있었다[86]. 배우자는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레게 머리를 만드는 데 4 ~ 5시간이 걸릴 정도로 힘든 일을 하고 손님 1인당 4만 원씩을 받았다. 그는 100회 특집에서 민속 공연을 선보였는데, 지금도 겨울이 되면 공연을 할 수 없다며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음을 밝혔다. 1주일 동안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녀들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아들은 아빠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3.17. 92회

  • 아드리아나 : 에콰도르 출신. 2010년에 사업을 하러 에콰도르를 찾은 한국계 남성을 만나게 되었고, 5년 뒤에 혼인을 했다. 2014년에 부부가 키토에서 커피 전문점을 창업하여 한류 문화의 성지로 자리를 잡나 싶었으나, 2016년에 지진이 일어나면서 약탈까지 당하는 피해를 입어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출연 당시 단국대학교에 다녔으며, 성정동에서 배우자의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외식을 많이 하다 보니 을 만든 지 4일이 지났고, 냉장고가 상당 부분 비어 있는 데다 찬장에 참치 통조림만 있었다. 그럼에도 주부의 역할을 잘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으며, 남편의 도움을 받아서 이력서를 쓰고 커피 전문점에서 일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옷가게에 가서 옷을 사고, 신발가게에 가서 신발을 사고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방송 이후 시부모와 따로 살게 됐다며 남편이 서울 소재 모 호텔의 취업 제의를 받았으나, 통근 거리가 멀어서 거절했다고 밝혔다. 무궁화호 정기권 요금이나 고속도로 통행료가 아까웠나 보다. 135회에서 근황이 다시 한 번 소개되었는데[87], 2017년 1월에 거처를 두정동으로 옮겼고 12월에 아들이 태어나면서 주부로서의 자부심이 강해졌다고 밝혔다. 남편은 삼성화재에 입사해 아산시 배방읍 소재 천안사옥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아들이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은 그녀는 의사가 출생 당시 체중을 물어보자 현재 체중을 대답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들에게 에콰도르 지도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고향에 친척들이 살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2017년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할아버지의 성함 세자르는 그녀의 아들이 물려받았다.[88] 남편이 배우자에게 육아 커뮤니티 사이트를 소개하다가 고객의 제보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하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4시간 동안 남편을 기다려야 했다. 출산 이후 처음으로 피부 관리를 받고 식사를 했는데, 이 때 남편이 아들과 함께 놀아주었다. 그가 카페에 가서 에콰도르에 사는 친척에게 영상통화로 전통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본 다음 아버지가 사는 곳에 가서 엠파나다를 만들었다. 천안축구센터 북쪽에서 사례자를 다시 만나 함께 식사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3.18. 93회

  • 모하메드 : 본명은 모하메드 아브라힘(참조). 몰디브 출신. 고향에 있는 리조트에서 일하다 2007년에 한 한국계 여성을 만나게 되었고, 3년 동안 연애한 끝에 2010년에 혼인을 하게 되었다. 이후 서울에서 살다 자녀[89]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전북 남원시 대강면 월탄리[90]에 있는 시어머니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하여 한 집에 4대가 살게 된 것[91]. 자신의 고향을 한국인들에게 알리려고 여행사 리얼 몰디브(블로그)를 창업했다[92]. 여기까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를 참조하자.
    1년 7개월 뒤에 그의 근황이 소개되었다. 2018년 당시에도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내부를 재단장했다고 밝혔다. 배우자는 2016년 11월에 시내의 한 산부인과에서 셋째를 임신한 사실을 진단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듬해 봄에 셋째가 태어났다[93]. 그리고 첫째와 둘째는 초등학생이 되어 전세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일가족이 집 바로 옆에 있는 밭을 갈고 감자를 캤는데, 이유는 할머니가 농사를 하다 다쳐 남원의료원(홈페이지, 위치)에서 치료를 받았기 때문. 마당에서 두 아들의 그림일기 작성을 도와주고 창고문에 그림을 그렸는데, 두 아들이 원하는대로 상어 그림을 그렸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 가고 나서 자신도 승용차를 타고 여행사로 출근했다. 밤이 되자 일가족이 마당에서 러시아 월드컵 중계 방송을 보았다[94][95][96]. 순창공용버스정류장[97][98]에 간 그는 시외버스[99]를 타고 온 동향민 슈메이스를 만나게 된다. 그를 데리고 인근에 있는 한 안경매장[100]에 가서 선글라스를 사왔다. 집에 온 둘은 밤에 대화를 했는데, 사례자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어땠나?'라고 묻자 슈메이스는 '친구 사귀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어학당에 있을 때는 친구들이 모두 외국인이라서 괜찮았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사례자는 '언어 장벽 때문에 그럴 수 있다면서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 할 때 자신한테 친절하지 않음으로 오해할 수 있어도 실제로는 친절한 사람일 수 있다. 만약 한국말이 아주 능숙하면 한국인을 훨씬 빨리 사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둘이 밭에 가서 마늘을 캐고 온 다음 슈메이스가 사례자의 집에서 대추야자 케이크를 만들어 이웃들에게 나눠주었다. 슈메이스는 사례자 가족이 준 마늘 등을 가지고 남원고속버스터미널[101]에 가서 사례자와 헤어지고 안산으로 돌아왔다. 여담으로, 남원시민도예대학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장면이 스태프 롤에서 나왔다. 167회에서 니하트에게 육아 비법을 전수한 적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150회 근황 부분을 참조.

3.19. 94회

  • 김하종 : 본명은 빈첸시오 보르도. 이탈리아 출신. 천주교 오블라띠 수도회 소속의 수도사제이다. 대학 시절에 동양 철학을 전공했고, 1987년사제서품을 받았다. 1990년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후 국적까지 한국으로 바꾸고 '김하종'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지었다.[102] 1992년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안나의 집[103]에 부임해 출연 당시까지 노숙인들에게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다마스를 타고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상담까지 하고 있었다. 자신이 난독증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글을 읽을 때 단어별로 중요도를 정해서 외워야 할 정도이며, 이는 2002년협회를 세우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104]. 그는 건물 소유자와의 계약이 2018년에 만료됨에 따라 소재지를 옮겨야 했으나, 이전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고 밝혔다. 방송 출연 이후 1달 만에 강연 100도씨 라이브에도 출연했으며, 100회 특집에서는 진행자들에게 시청자들이 4억 원을 후원한 것과 함께 신축 부지를 매입한 사실을 직접 전했다. 1년 뒤인 2017년에는 인간극장에도 출연했다.

3.20. 95회

  • 에리카 : 본명은 한에리카(에리카 한). 필리핀 출신.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어학원에 다니던 한국계 남성과 혼인을 해 5년 동안 살다 2016년 7월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 때까지 고향에서 KBS 월드를 통해 이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출연 당시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유니컴즈[105]의 개통 전담 부서[106]에서 일하고 있었다. 시장에서 삼겹살 2줄을 사온 다음 된장찌개에 넣고 끓여먹는 괴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누가 버린 가구를 주워다가 쓰던 도중 배우자가 다시 내다버려 갈등을 일으켰다가 갑자기 병원을 찾아서 진단을 받아보니 A형 독감 판정을 받게 된다. 나중에 배우자가 새 가구를 사주고 고향에 있는 가족의 영상편지를 보여주었다. 각종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유치원 교사 자리를 구하려고 했으나, 북미식 발음을 구사해야 한다는 점이 걸려 발길을 돌렸다.


[33] 75회에서 나온 상장에 본명이 기재되어 있다.[34] 옆에 여호와의 증인이 있다.[35] 원어발음대로 썼다는 듯.[36] 100회 특집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운동 때문에 한국어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37] 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38] 팔도 비빔면이 아니라 오뚜기 메밀 비빔면이다.[39] 백운면 덕동리에 수련원을 따로 운영하고 있는 것을 봐서이곳 인근에서 훈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40] 이유는 129회와 마찬가지로 파업으로 인해 2017년 9월에 방송할 예정이었던 내용이 2018년 2월로 늦어졌기 때문이다.[41] 원래는 전국구 대회였다가 세계구 대회로 한 단계 올라갔다. 이 행사가 열린 게 2017년 7월 중순이었기 때문에 제작진이 근황을 취재한 시기가 2017년 7월임을 알 수 있다.[42] 백운사에 간 것으로 보인다.[43] 세계인의 90% 이상이 라거를 마시는데, 자신은 이를 싫어한다고.[44] 사례자가 음식을 배달하는 장면을 잘보면 신문지에 듀오정보광고가 인쇄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2016년 7월 13일동아일보실린 내용으로 보인다. 신성 모독이다![45] 미두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에 끌려갈 뻔 했다고 밝혔다.[46] 여담으로 이분과 가족들은 부인과 딸들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다. 결혼식도 교회에서 올렸다. 딸들도 인터뷰에서 한국이 예멘보다 좋은 점을 "성차별이 심하지 않고 히잡 강요가 없다는 점"이라고 밝혔다.[47] 직장에서 자택까지 가려면 곤지암터미널에서 500-2번 광역버스를 타고 모란역까지 간 다음 구파발역까지 수도권 전철을 이용하고 다시 703번 간선버스를 타고 파주까지 가야 했다. 이렇게 가면 4시간 정도 걸렸다. 그래서 1달 교통비로 50여만 원을 지출했다. GTX의 개통이 시급하다.[48] 방송에서 곤지암읍으로 옮긴다고 그랬으나, 후술하는 내용을 봤을 때 도척면으로 옮겼을 것으로 보인다.[49] 이 때는 수도권 전철 경강선이 개통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곤지암역이 목록에 나오지 않은 건 당연했다.[50] 2017년 1월에 노선이 변경되면서 더 이상 양재역을 경유하지 않는다.[51] 공교롭게도 일가족이 살던 파주시에도 광일중학교가 있다(월롱면 소재).[52] 전학 전에는 광탄중학교로 통학했다는 듯.[53] 특이하게도 제과점 안에서 피자도 판다는 듯(위치).[54] 대학에서 학위기를 받았을 때 본명이 나왔다.[55] 방송 이후 제이모션 댄스 아카데미로 상호를 변경했다.[56]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57] 2000년용산에서 동작으로 옮겨오면서 한 동안 구교사에서 각종 영상물의 촬영이 이루어지기도 했으며, 서울특별시교육청 신청사 건립을 위해 2020년에 철거되었다.[58] 그녀의 Ask.fm 계정에 게시된 글만 봐도 알 수 있다.[59] 영상을 잘보면 그녀가 준비한 물건들 가운데 수입과자 오레오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60] 2010년에 방영한 러브 인 아시아에 출연했을 때 고향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혼자서 고향을 다시 방문했다고. 참고로 2010년 당시 해당 프로그램을 더빙한 사람이 바로 남지현.[61] 제작진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고등어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62] 2018년 3월까지는 양어머니와 그 자녀들의 생활상을 다룬 채널로 운영해왔으며, 2017년 10월에 세 편(123)을 시범적으로 제작한 적이 있다.[63] 스페인어로 "인생에 꽃이 핀다"는 뜻이다.[64] 현재 네이버 지도에서 가우사이가 검색이 되는 것으로 봐 거처와 녹음실이 한 건물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65] 2014년까지만 해도 프레드, 세르히오, 라울, 페르시가 그룹에 참여했다가 소속사를 떠나면서 3명만 활동해왔다.[66] 이 집에서 아버지와 아들 및 그룹 동료, 소속사 대표가 함께 살고 있다.[67] 비오비학원이 운영하는 공연 시설이다.[68] 이 때 강 군은 등번호 6번을 달고 축구 시합에 참여했다.[69] 경산에 있는 한 교회를 찾아서 상담하는 내용도 나왔다.[70] 이름은 구루드바라 시리 싱 사바 사헤브(위치).[71] 가족이 거주 비자(F-2)를 받고 호주로 간다 해도 후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하며, 배우자를 한국으로 데려온다고 해도 두 나라의 출입국 관리 제도가 달라서 성사될 수 없는 상황이다.[72] 부천종합터미널이 아니다.[73] 살짝 보이는 간판을 보니 나나마트에서 빌려왔다고.[74] 가정동에 위치한 정서진중앙시장으로, 2015년 12월에 방송한 6시 내고향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곳이다.[75] 커피 전문점 앞(이 지점)으로 지나가는 급행간선버스903번이고(2020년에 폐선.) '달려라 우리 엄마'라고 부제를 고지할 때 바로 맞은편에서 자막과 동시에 지나가는 지선버스584번이다. 블러 처리를 해도 몇 번인지 다 안다.[76] 앞서 모녀가 찾은 신발가게가 이 음식점 옆에 있는 가게인 듯하다.[77] 농기계 제작사 관련 주석에 링크된 블로그 게시물에 본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전직 베스트 바이 CEO와 동명이인이다.[78] 2015년 8월에 메이크풀로 변경(영문 위키백과 참조).[79] 대략 이 사람인 듯하다.[80] 사과 아저씨도 함께 만들다가 연재를 포기한 뒤에 홈페이지를 폐쇄했다.[81] 사례자가 차를 세워두었던 자리는 현재 볼라드가 설치되어 있어서 차량이 진입할 수 없다.[82] 옥천역 뒤에 위치하고 있는데, 방송을 9시간 앞두고 자사의 네이버 블로그 계정으로 우리 회사가 방송에 소개되었다며 자랑했다가 방송이 나가고 한참 지난 뒤에 비공개 처리했다.[83] 은박 풍선을 들고 광역전철을 이용하는 행위 자체가 매우 위험한 행위이니 절대로 하지 말자. 승강장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어도 열차 안에서 풍선이 터지면 엄청난 인명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84] 2016년 당시에는 사례자 가족의 자택과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가 방송 이후에 농촌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85] 이를 위해 충남 예산에 있는 대행 업체(홈페이지)에서 돌잔치 세트를 빌렸다.[86] 2024년에 방송된 425회를 통해 근황이 밝혀졌는데,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87] 이 때 '1년 후'하고 자막이 나간 장면의 배경은 쌍용동 사거리 일대이다.[88] 이는 대가족이 많은 남부 유럽에서 흔한 일이다.[89] 쌍둥이로 둘 다 2011년생이라고 한다.[90] 마을에서 직선 거리로 1킬로미터 떨어진 대풍교를 건너면 순창군 풍산면이 나오기 때문에 순창군 생활권에 속해 있다.[91] 2016년 가을 기준으로 몰디브 출신 유학생 3명이 한국 영주권을 갖고 있었으며, 시민권까지 가지고 있는 경우는 자신밖에 없었다고 밝혔다.[92] 한 때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에서는 소재지가 전주시로 표기되어 있었으나, 방송 이후에 남원시 금동 휴먼시아 상가로 바로잡힌 상태이다.[93] 2016년에 태어났다는 최원정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이 나왔는데, 임신을 진단받은 해와 출산한 해를 헷갈린 실수로 보인다.[94] 2018년 6월 19일KBS가 중계한 대한민국대 스웨덴 경기.[95] 자막으로는 첫째와 둘째가 월드컵을 처음 봤다고 하는데, 2011년생이므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이 첫 번째로 본 월드컵이어야 맞다. 하지만, 한국과 브라질의 시차가 12시간이나 되어 두 아들이 중계방송을 실제로 봤는지 의문이라서 러시아 월드컵을 첫 번째로 본 월드컵이라고 한 듯.[96] 이 장면이 자세하게 다뤄지지 않은 것은 경기 영상의 저작권 문제와 한국 선수단의 패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97] 터미널로 가는 장면을 보면 표지판에 군청 방향이 보이는 걸 눈치챌 수 있는데, 유등로를 거쳐서 순창읍으로 간 것이다. 전술했듯 사례자 가족의 거주지는 남원시내보다 순창읍이 더 가까워 사실상 생활권이 순창군에 속한다.[98] 사례자가 차를 세워둔 장류로 359 앞은 주 · 정차가 허용되는 구간이다.[99] 동광고속의 차량을 타고 온 것으로 보아 유스퀘어에서 대구 서부정류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온 것으로 보인다.[100] 자막으로는 '남원시내'라고 나왔으나, 순창공용버스정류장에서 중앙로사거리 방향으로 150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101] 2022년 3월에 폐장했다.[102] '김'은 한국 가톨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에서 따온 것이고, '하종'은 '하느님의 종'이라는 뜻이다.[103] 2019년 현재 성남동 성당 뒤로 이전.[104] 자세한 사연은 홈페이지를 참조할 것.[105] 본사는 경기도 군포시에 있다.[106]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직원들이 외국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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