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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시내버스/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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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동배차
1.1. 시내일반버스1.2. 좌석버스
2. 마을버스시내버스 전환3. 국내 최초 무료환승 제도 시행4. 버스 준공영제 도입, 그 이후5. 2018년 광역버스 폐선 선언6. 현금 승차 폐지 추진

1. 공동배차

1.1. 시내일반버스

파일:incheon77old.png 파일:incheon77oldblue.png
인천 버스가 서울특별시 시내버스처럼 현 도색을 갖게 된건 2005년 4월부터이다. 왼쪽 사진의 도색은 1995년 신도색 제정 때 시범도색인데[1] 기존 구도색에서 색상만 바꾼 도색이다. 공동배차 당시에는 전면부에 시민자율버스를 기재하고 다녔다.[2][3] 오른쪽 사진은 기존에 적용하던 구도색.[4][5]

시범도색을 거친 후 1996년도에 파랑색의 지그재그 도색을 적용하게 된다.

공동 배차 시절에는 갈아 끼울 수 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행선판이 주로 사용되곤 했다. 고정배차의 완전 정착 이후에도 2년 정도는 예비차 등지에 드문드문 쓰였으나 그 이후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부성여객은 고정배차 도입 이후에도 현재까지도 예비차에 플라스틱 행선판을 사용한 인천 시내버스계의 실러캔스 같은 존재이며 현재까지 잘만 사용하고 있다.[6]

공동 배차란 공정한 수익금 분배를 원칙으로 시내버스 회사가 공정하게 모든 노선을 번갈아 가면서 운행하는 방식이다.

노선은 '인천광역시 시내버스 운송사업조합'에서 관리 하였다. 90년대 중반 차량번호판 개편 전에는 인천 5자 xxxx로 된 번호판으로 운행하였다. 번호판 개편 이후에는 '인천 70바 xxxx' 형태로 바뀌었고 업체별 가나다순으로[7] 번호판을 받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번호판체계가 어느 정도는 깨졌으나[8], 큰 틀에서 2018년 현재까지 이 번호판 체계는 유지 중이다. 이후 반납된 적자노선을 운행하는 삼환교통이 단독배차를 시행하며 번호판을 받았으며[9], 반납된 적자노선을 중형차량으로 운행하는 것이 허가된 인천버스[10]/인천여객[11]이 번호판을 부여받았다. 2001~2002년경 마을버스(현 지선버스)의 시내버스화 이후 시내버스를 인수한 마을버스 업체에 번호판을 추가로 부여하였다.[12] 또한 삼화고속[13]/용일여객[14]의 시외버스가 광역버스로 전환됨에 따라 번호판을 부여하였다. 또한 인천시 공기업인 인천교통공사가 시내버스 운행을 시작하며 번호판을 받았고[15], 이후 '인천 70바 xxxx' 형태의 새 면허 부여는 없다. 대신 그 이후에 생긴 업체나 기존 업체 증차분 면허의 경우는 각 회사의 본사가 속한 자치구에서 발급한 면허들을 사용한다.[16]
  • 공동배차 업체 순서
제물포버스 → ② 대진운수 → ③ 경향여객 → ④ 부성여객 → ⑤ 강인여객 → ⑥ 송도버스 → ⑦ 동화운수 → ⑧ 영풍운수 → ⑨ 경인여객

기본적으로 기점별로 노선을 맡아서 운행하였다.

예를 들자면 한 회사가 7번[17]을 운행 하는 게 눈에 띄면 그날 금곡동 기점의 노선은 모두 그 회사가 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좌석버스는 번갈아 가면서 운행을 했던 게 아니라 모든 회사가 참여하여 운행하였던 것이 특징이다.

보통 회사가 변경되는 시점에는 다음번에 운행될 회사와 공동으로 운행했었는데, 독특한 것은 이 시기에는 각 업체의 신차[18]가 투입되었다. 수익성이 큰 노선은 신차 위주 투입이고 수익성이 있는데 수익성이 크지 않거나, 적자 노선은 에어컨도 없는 차량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었다. 이후 2000년 2월에 2차 고정배차(제물포버스, 대진운수, 강인여객), 2001년 2월에 3차 고정배차(경향여객, 부성여객, 송도버스, 동화운수, 영풍운수)가 실시되어 공동배차 제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공동배차 시절에는 사실상 운행이 막장이었다. 신입 기사 분들은 처음 맡는 노선을 헤매서 노선이탈 하는 경우도 있었고[19], 적자가 심한 노선은 시간표 운행[20]도 아닌 랜덤운행이거나 파행 운행이 잦았다. 분명 같은 노선 같은 시간인데 운행 업체에 따라 배차 간격이 복불복이었으니 출근길 직장인과 등굣길 학생들의 고생이 특히 많았다. 2000년까지 고잔동, 논현동이 말 그대로 농어촌 시절일때 차없는 지역주민들의 카풀이 횡행했다. [21]

참고로 인천 최초의 고정배차 회사는 삼환교통으로 1998년 1월 1일부터 조합 반납노선(14번, 23번, 62번)을 고정으로 운행하였다. 이후 기존 업체들에게 노선을 배분해 단독배차를 시행하여 2002년경 공동배차의 시대는 끝나고 단독배차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이후 공동배차는 시 차원에서 막을정도로 공동배차에 대해서는 가급적 하지 않는 방향으로 버스정책을 유지하였다. 2009년 103번이 순환방향에 따라 103번/103-1번으로 나뉘었을 때 103-1번에 한해 강인여객/청라교통 공동배차가 있었으나 2011년 청라교통이 공동배차에서 철수하였다. 다만 이는 계열사간의 공동배차이기에 공동배차가 아니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러다가 2012년 월미도~영종도 여객선 폐지로 운행되었던 306-1번의 신설로 강인교통/미래교통/청라교통 3개 회사가 공동배차 하였으나 이는 여객선 폐지로 인한 임시노선이었고, 2014년 6-2번의 신설을 통해 공동배차가 부활하였다. 다만 이후 2016년 대개편으로 인해 6-2번이 원진운수 단독운행으로 바뀌며 공동배차는 다시 사라진다.

일시적으로 공동배차제도가 살아난 적은 있었다. 2015년 10월 13일 인천여객의 면허 취소로 인해 4번, 63번 노선이 공동 배차 제도로 2016년 2월 5일까지 운행하였으며 12개 회사가 공동 배차로 운행하였다. 과거 공동 배차때와 달리 플라스틱 재질 행선판이 아닌 고정노선 차량처럼 통합행선판 스티커를 붙여서 운행하였으나 2018년 현재는 4번삼환교통, 63번 노선은 인천교통공사 단독 배차로 운행하고 있다.[22]

그러다가 2018년 9월 15일 개편으로 320번대인교통원진운수 공동배차로 변경되면서 320번에 공동배차가 부활하게 되었으며 2019년 5월 25일 개편으로 304번강인교통미래교통의 공동배차 노선이 되었다. 이외에도 2020년 개편 때 폐선된 94번도 공동배차를 하였다.

1.2. 좌석버스

여기서 90년대 초반의 좌석버스의 모습을 볼수 있다
좌석버스의 경우도 시내일반버스와 마찬가지로 초창기에는 공동배차로 운행하였다. 또한 시내버스처럼 각 업체 이름별 가나다순서로 번호판을 나누어 배분하였으며[23] 면허 체계는 시내일반버스와 마찬가지로 '인천 70바 xxxx'의 형태이다. 다만 1998년 5월에 경인여객을 시작으로 대진, 부성, 경향, 영풍 등 대부분의 회사들이 좌석버스 면허를 강인여객에 매각하였으며, 이후 동화운수가 99년 2월에, 송도버스가 99년 5월에 좌석버스 면허를 강인여객에 매각한 이후 좌석버스는 강인여객이 독점을 하게되었다. 강인여객의 좌석버스 인수 이후에는 각 회사들의 좌석버스 면허는 모두 말소처리 되었으며 59xx/60xx 번호를 신규로 발급받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좌석버스는 원래 베이지색 바탕에 남색의 라인이 그려져있는 도색을 사용하다 1996년에 신도색 제정때 일반버스와 동일한 빨강색의 지그재그 도색을 도입한다.[24]

이후 신공항여객이 출범하여 '인천70바33xx' 번호를 받아 300번대 공항좌석버스를 운행하기도 하였으나 신공항여객의 도산 이후 강인여객의 인수로 인해 이 면허는 사라진다.

시내버스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는 70바 번호판의 추가 없이 각 지자체별 증차분의 면허를 이용해 신규 번호판을 추가한다.

2. 마을버스시내버스 전환

기본적으로 '인천71바 xxxx'의 형태의 차량 면허를 사용중이다. 도색의 경우 살색에 연두색 바탕을 적용했으나 부평구 일부 차량은 부평구 자체 도색을 쓰기도 했었다. 색상은 회색에 빨간색이었다.

비효율적인 시내버스 노선 덕분에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던 마을버스 회사들은 예전부터 시내버스 진출을 호시탐탐 노렸지만, 당시 공동배차로 똘똘 뭉친 시내버스 조합의 벽을 깨고 진출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시내버스 적자노선을 인수하고 겨우 진출하는 게 전부였는데[25], 2001년경 시에서 갑자기 마을버스의 시내버스 전환을 추진하게 된다.

인천의 마을버스 노선은 외곽 지역의 주거지에서 경인선 전철역을 잇는 노선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다른 지역 마을버스보다 장거리 노선이 많은 편이었다. 이러한 노선들이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거나, 직선, 직통화로 최적화된 노선들이 대부분이었고, 굳이 수익성 나는 동네랍시고 이곳저곳 쑤시고 다니는 데다 요금과 배차 면에서 약세였던 시내버스가 마을버스와 경쟁에서 밀리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내버스 회사들이 불쌍하다고 무작정 편들어 줄 수도 없는 게, 이러한 지역의 노선신설을 시내버스에 권유하면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노선신설을 거부하거나 파행운행을 일삼았다. 또한, 마을버스가 특정 지역을 경유라도 하면서 신설하려고 하면 반대를 하는 등.. 사실 시내버스 회사들의 반대로 마을버스 노선들이 직선화가 된 것이 크다. 예를 들자면 송도역~동인천 구간은 시내버스(9, 16, 99번)와 좌석버스(107번)는 무조건 토지금고(용현5동) 지역을 경유하였지만, 마을버스인 연수구 11번은 과감히 이곳을 생략하고 대로를 경유한 직선형으로 운행했다.

수익이 나는 노선은 계속 수익이 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노선 개편에 인색하여 보수적인 인천 시내버스의 운영 방식이 오히려 시내버스가 적자가 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인 셈이다.

결국, 마을버스의 시내버스 전환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지만, 기존 이용객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사실상 마을버스의 요금인상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적극 반대를 하였고, 결국 마을버스 요금만 유지한 채 2002년 2월 1일, 마을버스 회사들의 시내버스 전환이 이뤄지게 되었다.

마을버스 노선들은 500번대로 노선번호가 변경되고, 차량도 시내버스 도장을 적용하고 운행되었다. 501~510번(동구), 511~520번(미추홀구), 521~530번(미추홀구, 연수구[26]), 531~540번(남동구), 551~580번(부평구, 계양구), 581~590번대(계양구), 591~599번(서구) 식으로 노선번호가 부여되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규칙이 깨지고 있다.

참고로 위의 말한 문제점은 2017년 현재까지도 어느 정도 남아있어 대체로 지선버스가 간선버스보다 강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3. 국내 최초 무료환승 제도 시행

말 그대로 환승무료.

보통 서울 시내버스가 무료환승 제도를 처음 시작한 걸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당시 서울은 교통카드를 이용해 환승하면 50원 할인해 주는 정책만 시행하고 있었다. 또한 2003년 이전 인천에서도 같은 제도를 시행하였다. 그러다가 2003년 12월 30일, 국내 최초로 인천시가 시내버스 무료환승 제도를 도입 하였다.

지선버스↔간선버스↔시내좌석버스 상호간에 승차 기준으로 1시간 이내무한으로 무료 환승이 가능하였다. 다만 시내좌석버스의 경우는 첫 시행당시 제외되었다가 추후 추가되어 환승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인천광역시 종특상 언론에만 단신으로 홍보만 했기 때문에, 정작 가장 홍보효과가 있을 법한 버스 내부에도 이 제도에 대한 안내문 하나 없었다. 당시 분위기는 환승이 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고, 카드단말기에 0원으로 찍히면 다시 찍으라고 하는 기사분이 있을 정도로 개판 오분전으로 시작되었다. 심지어 일부 업체들의 경우는 일부러 교통카드 단말기에 변경사항을 적용하지 않았던 업체들도 있었다.

제도 시행 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리가 잡혀지자 환승을 하면 무임처리 되기 때문에 기존에 갈아 타면서 교통비 부담을 느꼈던 서민들에게 크게 각광받으면서 덕분에 버스 이용률이 높아 지는 등 나름 긍정적인 효과도 가져 왔다.

하지만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밑도 끝도 없이 무료라는 점이다.

심지어 지선버스 ↔ 간선버스 ↔ 시내좌석버스 간 환승에 차액조차 붙지 않았다. 즉 지선버스를 타고 1시간 이내에 시내좌석버스를 타면 차액도 없이 0원이 찍힌다![27][28]

또 다른 문제는 동일 노선(번호)도 무한으로 환승이 가능 했다는 점이다!! 이 덕분에 교통카드 한장에 지선버스 요금만 있어도 무한으로 승하차가 가능 했다.

위와 같은 허점으로 인해 악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교통카드를 빌려서 찍고 탄 다음에 창문으로 던져서 다시 건네는 행위도 빈번 하였고, 중·고등학생들의 등하굣길의 집단행동으로 앞에 지선버스가 있고 뒤에 간선버스가 있으면 정작 지선버스에는 카드만 찍고 바로 내린 다음에 뒤에 있는 간선버스를 타는 일이 빈번 하였다. 선인재단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제물포역 북부 정류장이 이 제도의 폐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었는데, 도화오거리 방향 버스가 모두 동일하게 선화여상 정류장(현재의 상수도사업본부 정류장)에 정차하는 점을 이용하여 모든 학생들이 먼저 인천 버스 510에 승차한 후 선화여상 정류장에서 원하는 버스로 갈아타는 식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덕분에 510번 버스는 하교 시간만 되면 엄청난 가축수송을 하기 일쑤였는데, 정작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다 내려버리니 정작 정말로 510번 버스를 이용해야할 주안 북부역 방향 승객들이 피해를 봤었다.

일부 업체들도 불법으로 다수의 교통카드를 돌려 찍으면서 불법 수익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특성상 맨 처음 이용하는 버스 종류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이용료가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가장 요금이 저렴한 지선버스 이용이 더 선호되었고, 이는 곧 지선버스 이용 쏠림 현상으로 심화되었다. 즉, 이 때가 용현운수, 부일운수 등 지선버스 보유 업체들의 리즈시절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피해를 본 업체는 가장 요금이 비쌌던 좌석버스를 전문으로 굴리던 강인여객. 특히 이 환승제도의 첫 시행 당시에는 좌석버스는 대상에서 빠졌으며, 강인여객 노선 중에는 공항으로 가는 좌석버스도 있었는데 이 노선의 경우엔 영종도로 넘어가면 시내요금 외에 구간요금을 추가로 받아왔고, 시내~공항으로 이동할 경우 3000~4000원대 요금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무료환승에서 제외된거나 다름없었다.

이런저런 비양심적인 악용사례 근절과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2006년부터 등급이 다른 버스를 이용하면 차액이 지불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결정적으로 수도권 통합 환승제에 포함되면서 횟수도 초승 포함 5회로 제한을 두는 것으로 바뀌었다.

2017년 현재 환승제한시간은 07시~21시 까지는 30분, 21시~익일 07시 까지는 60분이 적용되며 간선/지선/시내좌석/급행간선 노선의 경우 단일승차이고 환승을 하지 않는다면 뒷문에 있는 하차 단말기에 카드를 찍지 않고 내려도 된다. 다만 환승여부를 까먹거나 거리비례요금제 노선을 이용한 후 하차시 태그를 하지 않아 추가요금을 지불하게 될 경우 민원이 폭주해 시에서는 무조건 찍고 내리라고 홍보를 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것이 훨씬 편하다. 이것저것 따지기 싫으면 그냥 무조건 카드 찍고 내리자.

4. 버스 준공영제 도입, 그 이후

인천광역시도 다른 지자체처럼 2009년 부터 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하였다.[29] 다만 아직까지 완전한 버스 준공영제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는 도시이다.[30] 인천광역시가 적자노선만 보전해주고, 지선버스는 준공영제서 빠지는 인천식 버스 준공영제 실시가 2008년에 합의가 되었다(#관련기사). 이에 따라 2009년 2월에 버스노선도 개편하면서 준공영제를 실시하였지만, 위와 같은 조항에다가 애초에 반대하는 업체도 제법 있었다. 이에 따라 지선노선도 적자보전을 하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31][32][33]

전체적으로 대중교통 및 요금체계는 서울을 많이 참조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적인 경향도 있는데, 그 때문에 수도권 대중교통 통합요금제에 인천이 포함되지 않았었다. 이는 인천이 버스카드를 도입하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무제한 환승무료를 시행했던 것과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 수도권 대중교통에서 사용하고 있는 거리비례요금제와는 완전히 체계가 다르기 때문.

그리고 재원 확보문제도 작용을 했다. 실제 환승무료제가 시행되던 시기에 인천시가 손실분담금을 제 때 지급못하는 바람에 열받은 버스회사에서 교통카드 단말기를 뽑아버리려고 한적도 있다.

2020년 현재에도 인천만의 요금체계는 그 흔적이 남아있다. 300번대 공항좌석의 존재로 인한 공항좌석버스 요금, 시외좌석버스의 거리비례요금, 경기도 마을버스보다 저렴한 인천 지선버스의 요금, 일부 지역의 공영버스 등이 있다.

5. 2018년 광역버스 폐선 선언

2018년 8월 21일부로 인천광역시청의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인천광역시 시내버스 회사들이 광역버스를 전면 폐선하겠다고 신고한 상태이다. 최저임금 인상 및 주 52시간 노동제도때문에 불법적으로 인천시 광역버스를 운행하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할 묘책을 제시해달라는 것이다. 기사 2018년 8월 13일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인천광역시 시내버스 업체나 버스 기사, 인천광역시청 모두 다 제대로 상황 진척 파악 자체가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8월 16일까지 협상이 완료되어야 하나 8월 13일8월 14일 모두 제대로 된 협상이나 사태 진척 파악 자체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기사

2018년 8월 16일, 시에서 폐선 시 광역버스 노선을 공영제로 운영하겠다는 초강수를 두자 버스 업체들은 폐선 신고를 철회하며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참고로 이 카드를 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미 시에서 직접 일부 버스노선을 운행하기 때문. 물론 인천교통공사는 명목상으로는 준공영제 참여 업체 가운데 하나이지만(노선현황 첨부파일의 준공영 여부 참고), 실질적으로 그 회사의 주인이 어디인지 보면 사실상 완전공영제 노선이 일부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6. 현금 승차 폐지 추진

2022년 1월 10일부터 62번, 535번 2개의 노선 35대의 버스에서 현금 승차 폐지가 시범으로 적용되어 6월 30일까지 현금 승차가 제한된다. 버스 전면 LED에 '현금 없는 인천 버스'가 표출되기 때문에 이로 구분이 가능하다. 관련 기사 이 기간동안 교통카드가 없는 승객은 차내에서 교통카드를 구입하거나 ARS 통신과금, 캐시비 모바일카드 발급으로 요금을 지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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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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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색이 확정나기 전 기존 구도색으로 출고한 냉방버스 차량들도 있었다. 해당 차량들은 도색이 확정된 후 가장 우선적으로 재도색되었다.[2] 시민자율이라는 것은 요금을 기사가 직접 징수하지 않고 시민들이 요금함에 스스로 넣는 다는 뜻이다. 안내양이 있던 시절 안내양이 직접 요금을 받는 버스와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명칭으로, 안내양이 없어지고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굳이 별도의 구분 용어를 쓸 필요가 없어서 거의 쓰지 않는다. 전부 시민자율버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3] 보통 시민자율버스, 인천시민버스라 기재하고 다녔지만 경향여객, 강인여객은 생략하고 다녔다. 다른 지역의 경우 당시 행선판 수납공간을 사용하던 서울과 부산을 제외한 모든 광역시 지역에서 2000년 이전까지 볼 수 있었으며, 지금도 창원에서 이런 형식이 존재하고 있다.[4] 왼쪽 차량은 현재 대차되어 2번에 투입중이며, 오른쪽 차량은 현재 말소되었다.[5] 충청남도 시내버스 구도색과 비슷하지만 밑에 띠가 하나 더 있다.[6] 심지어 여기는 공동배차때 쓰던 행선판이 낡아 못쓰게되자 아예 동일한 디자인으로 다시 만들어 사용하고있다.[7] 강인여객이 10xx/11xx, 경인여객이 12xx/13xx, 경향여객이 14xx/15xx, 대진운수가 16xx/17xx, 동화운수가 18xx/19xx, 부성여객이 20xx/21xx, 송도버스가 22xx/23xx 등의 순서로 받았다.[8] 제물포버스 폐업 후 선진교통이 제물포버스의 면허체계를 그대로 사용중이며, 영풍운수는 잦은 노선매각으로 주면허대인 24xx/25xx는 타 회사 노선에서 자주 보인다. 또한 경향여객은 폐업하고 15xx의 주면허는 경향여객 최후의 노선인 15번을 인수한 시영운수에서 사용 중이다. 경인여객과 대진운수는 폐업.[9] 31xx/32xx[10] 43xx[11] 34xx[12] 용현운수가 35xx/36xx, 신동아교통이 37xx를 부여받았고, 부일운수가 38xx, 도영운수가 39xx, 서해운수가 40xx, 스위트버스가 41xx 등을 부여받았다.[13] 45xx/46xx/47xx[14] 61xx, 한때 영종도 시내버스 운행했을 때는 29xx를 사용했다.[15] 49xx[16] 청룡교통이 서구 증차면허인 73아 10xx번호를 받아 운행중이며, 삼환교통이 4/63/320번 노선을 입찰받고 중구 증차분 면허인 72아 12xx 번호를 발급받았다.[17] 현재의 7번 노선과는 무관하다. 금곡동~동암역~만수동 구간을 운행하다가 동암역으로 단축된 노선이다.[18] 보통 차량은 부품 수급이나 정비 소홀 때문인지 와이퍼를 승용차 형태로 부속품을 떼어 마이너 체인지하였으며 라디오는 간데 없고 비어있거나 그 구멍을 나무판으로 막아놓았었다. 심지어 하차벨이 모두 고장나 정류장을 지나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차량과 신차의 차이는 정말 컸다.[19] 이 시절 인천 시내버스 운행 업체 입사를 위해서는 노선별 기·종점 및 주요 운행 노선을 모두 외워야(!) 운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20] 운전석과 앞유리 사이에 출발시각과 주요 정류장 경유 시각, 종점 도착 시각이 기재된 운행시간표를 클립보드에 끼워 수시로 확인하는 방식의 운행이었다.[21] 당시 인천의 시골이라 불릴 만큼 열악했던 연수구, 논현동, 고잔동, 계양지구 일부동네는 버스가 많아야 2대정도 였었으며, 버스가 끊겨 택시를 타고 이 동네들을 가려하면 택시기사들이 승차거부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가지 선택을 하는데, 전자는 그냥 가는걸 포기하거나(...), 후자는 요금을 따따불로 불러서라도 가는 경우였다. 그때에 비하면 교통편이 상당히 좋아졌다.[22] 320번의 경우는 영풍운수가 단독으로 임시운행을 하여 공동배차 자체를 하지 않았었다.[23] 강인여객 50xx, 경인여객 51xx, 경향여객 52xx 등의 순서[24] 좌석버스도 마찬가지로 기존 구도색과 동일한 패턴에 색상만 다른 시범도색이 있었다.[25] 1998년 삼환교통, 2000년 인천버스, 인천여객[26] 다만 526번은 예외다.[27] 이런 꼼수를 이용해서 출발지 근처에 지선버스가 있다면, 목적지가 어디든 일단 지선버스를 먼저 탄 다음, 적당히 간 다음 환승해서 교통비를 아끼는 플레이가 가능했었다.[28] 차액없이 0원이 찍혀도 인천 시경계를 벗어나면 얄짤없이 구간요금(시계외요금)을 추가로 받았다.[29] 인천시내버스는 2001년 1월까지 시내버스 공동배차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시내버스 노선을 각 버스회사가 순번제로 운행하는 방식. 분명 같은 노선인데 오늘은 A회사, 며칠 뒤에는 B회사...이런 식으로 운행하였다.[30] 광역버스 제외[31] 다만 한정면허 노선과 급행간선 노선, 그리고 광역버스 노선은 아직도 준공영제 대상이 아니다. 또한, 신동아교통66번삼환여객533번, 534번도 준공영제가 아니다.[32] 참고로 인천광역시는 1990년대에 버스 공영제 시범도시로 지정됐었고, 실제 버스회사가 모든 노선을 공동으로 운행하고 그 수익금을 분배하는 형태로 운영된 적이 있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아이러니.[33] 이 노선들은 2020년 대개편 이후 준공영제로 편입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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