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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구국영웅 잔 다르크의 특징이다.2. 외모
살아있을 때 그려진 스케치[1] Clément de Fauquembergue, 1429 | 상상화 | 상상화 |
1485년에 그려진 잔 다르크 그림.[2] | 1505년에 그려진 잔 다르크 그림 | 기도하는 잔 다르크, 페테르 파울 루벤스, 1620 |
샤를 7세의 대관식의 잔 다르크,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854 | 프랑스 잡지 Figaro Illustre magazine에서 그려진 잔 다르크 판화, 알베르 랭슈, 1903[3] | 잔 다르크는 프랑스를 구했다, 미국 재무부, 1918[4] |
잔 다르크의 초상화는 전해지지 않으나, 잔의 외모를 묘사한 기록들은 간간히 남았다. 잔의 개인 시종 장 돌롱과, 이단 재판 당시 잔을 직접 심문한 보페르 등이 잔에 대해 기록을 남겼다. 또 잔 다르크와 동행했던 알랑송 공작이 잔에 대해서 묘사한 문장이 있다. 대체로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다.
그녀는 아름답고 몸매도 좋은 젊은 여성이었는데다가, 또 내가 그녀가 무장하거나 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그녀의 맨가슴을 보거나, 부상을 처치하는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맨다리를 보는 일도 있으며 내게는 그녀와 가까이 있을 만한 기회가 꽤나 많았다. 또한 그 당시에는 나는 강인했고, 젊었으며 정력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성녀의 어떤 모습을 보거나 접촉을 하더라도 결코 내 육체가 저속한 욕망에 휘둘리는 일은 없었으며, 다른 시종과 병사들도 입을 모아 그와 같은 말을 했다.
장 둘롱이 전한 알랑송 공작의 증언.
장 둘롱이 전한 알랑송 공작의 증언.
여성스럽고 섬세하며 목소리는 굉장히 부드럽다.
재판관 보페르가 잔 다르크의 외모에 대해 묘사한 기록
재판관 보페르가 잔 다르크의 외모에 대해 묘사한 기록
야전에서 그녀는 언제나 병사들과 함께 있었고, 그는 곧잘 잔의 시종들이 자기들은 절대 그녀에게 욕망을 느끼지 않았노라고 단언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그들은 속으로는 가끔씩 저속한 욕망을 느끼지만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털어놓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녀를 함부로 탐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종종 육욕에 대해서 언급을 하면서 음탕한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들을 사용할 때가 있었는데, 그녀가 눈에 뜨이거나 근처에 다가갈 제는 갑작스레 성적인 생각들이 떠나갔기 때문에 감히 이런 말들을 입에 담지 못하게 되었다.
고베르 시볼트, 왕의 시종
고베르 시볼트, 왕의 시종
Jeanne had a short neck and a little bright red mark behind her right ear.
잔은 짧은 목과 조금 밝은 붉은 반점이 오른쪽 귀 뒤에 있었다.
Eugelide, 헝가리 왕국의 공주
잔은 짧은 목과 조금 밝은 붉은 반점이 오른쪽 귀 뒤에 있었다.
Eugelide, 헝가리 왕국의 공주
종합하면 동그란 흑발머리[6] 소녀에 얼굴도 아름다우며, 당시 프랑스 또래 소녀들에 비해 키가 컸었던 것으로 보인다.[7] 그리고 당시 잔 다르크를 본 적이 있는 헝가리 왕국의 공주 Eugelide는 잔이 짧은 목과 조금 밝은 붉은 반점이 오른쪽 귀 뒤에 있다고 말했다. #
그러므로 현대의 각종 창작물에서 금발로 묘사되는 잔 다르크는 전부 오류. 그래도 매력이 넘친다거나 아름답다는 등 외모에 대해 칭찬 일색인 기록들이어서, 대개는 키가 작지 않고 용감하면서도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생김새였음은 확실해 보인다. 검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건강미 있는 여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의 1999년도에 제작된 영화 '잔 다르크'에서는 잔 다르크가 당시 프랑스 여성치고 키가 크다는 고증을 잘 살려서 키가 175cm나 되는 밀라 요보비치를 잔 다르크로 캐스팅해서 촬영했다.
그리고 사료에서 교차검증이 가능한 특징으로 가슴이 아주 컸다고 한다. 알랑송 공작이 잔의 가슴을 콕 집어서 묘사한 기록을 비롯해 가슴이 풍만하고 아름다웠다는 동시대 사람들의 증언들이 다수 있고, 포로 생활 당시 잉글랜드의 어떤 못된 기사 한 명이 잔 다르크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성추행해 잔이 소리를 지르며 밀쳐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함께 종군한 프랑스 군인들은 대부분 잔을 대상으로 육체적 욕망을 느끼지 않는다는 내용이 같이 서술되어 있는데, 사실 잔이 별 거리낌 없이 전우들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등, 신체를 노출했다는 여러 기록들을 보면 다소 우스운 이야기일 수 있다.
함께 종군한 샤를 7세의 시종 시볼트는 잔에게 성적인 욕망을 품지 않았다고 딱 잡아뗀 다른 전우들에 비해, 매우 시니컬하게 보일 정도로 잔에 대한 전우들의 반응을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즉, 모두가 "잔에게 더러운 욕망을 느끼지 않았다"라며 강한 어조로 주장했던 건 "다들 그런 생각은 해봤다는 소리다"라는 것이 시볼트의 증언이다. 군인들도 스스로 감히 잔에게 손을 댈 엄두도 못 낼 신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성녀라는 잔의 신분이 종교적으로 무시무시한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에, 모두가 속내를 억누르기 위해 "그렇지만 육체적 욕망은 느끼지 않았다."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데 아마 이 기록이 가장 실제와 가까울 것이다.
가슴이 컸다거나 아름답다는 등의 당대 기록 상의 신체적 묘사를 현대적인 외모 품평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전근대에는 사람의 외모와 그 사람의 뛰어남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웅적인 인물이 신체적으로도 무언가 뚜렷한 특징이 있다면 그 신체적 특징도 더 부각되어서 묘사된다. 뛰어난 정치인이 잘생겼다면 기록에는 그 잘 생김이 특별히 부각되어 기록되는 식으로, 기 드 뤼지냥 같은 사례가 있다. 한국사에서도 지증왕은 성기가 크다고 매우 과장으로 보이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관념 때문에 반대로 신체적으로 볼품없는 사람이 뛰어나면 오히려 매우 의외라는 식의 기록이 많이 남을 때도 있다. 이 사례론 지독하게 못생긴 걸로 유명해져 버린 소크라테스, 대머리로 후대까지 알려지고 있는 사도 파울로스 등이 있다. 성스럽고 영웅적인 인물에 대해 외모(전반적인 체격이든 특정 부위든)의 크고 아름다움을 영웅상으로 연결짓는 시도는 동서고금으로 흔했다. 이걸 고려하고 다시 검토하면, 잔 다르크의 외모를 찬사하는 기록 역시 잔 다르크가 대단한 인물이었기에 과장된 면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아예 없는걸 반대로 날조할 순 없을 테니 당시 기준에서도 긍정적인 편이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당시에는 매우 종교적이고 신성한 군대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종교적인 리더인 '성녀'이자 아름답고 발랄한 어린 여성이 닳고 닳은 거친 남성들을 지휘한다는 진기한 상황이었다 보니 진중에서는 제법 인간적이고 유쾌한 장면도 연출된 모양이다. 군인들이 평소처럼 음담패설을 나누다가도 잔이 가까이 오면 입을 꼭 다물었다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또한 잔이 갑옷이나 옷가지를 갈아입는 도중 아무렇지도 않게 풍만한 몸을 드러내다 보니, 수하 군사들도 사람이기에 대부분 그렇고 그런 생각 정도는 했지만 이를 필사적으로 부정해야만 했다는 것이다.[8][9]
잔 다르크의 실제 얼굴을 복원한 영상도 있다. 그리고 해당 영상에서 나오는 당시 기록되어 있는 잔 다르크의 외모는 키가 157cm. 근육질 몸매에 짧고 검은 머리. 햇볕에 그을린 피부. 어두운 안색이었다고 전해진다. 해당 영상
잔 다르크의 실제 얼굴을 복원한 영상은 여러 개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포토샵으로 복원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얼굴로 묘사한 것 (5:44 참조)이다.
3. 성격
This girl is reasonably good-looking, and with something virile in her bearing; she speaks but little, and is remarkably prudent, in what she does say. She eats little, and drinks wine still less; manages both her horse and her arms superbly well; greatly likes the company of knights and soldiers; scorns the company of the rabble; sheds many tears; has a happy expression; so great is her strength in the endurance of fatigue that she could remain completely armed during six whole days and nights.
이 소녀는 꽤나 아름다우며, 뭔가 남성적인 몸가짐이 있다. 그녀는 이야기해도 짧게 하고 자신의 말에 대해 놀랍도록 신중하다. 음식을 많이 먹지 않으며 와인 또한 그러하다만, 말과 무기는 대단히 잘 다룬다. 기사들이나 병사들과 함께 있는 것을 크게 좋아하지만 폭도들과 함께 있는 것은 경멸한다. 눈물을 자주 흘린다. 기쁜 표정도 보인다. 대단한 점은 그녀가 완전 무장한 채로 6일 밤낮을 있으면서 피곤을 견디는 힘이다.
퍼시발 드 불랑비예, 샤를 7세의 시종장 #
이 소녀는 꽤나 아름다우며, 뭔가 남성적인 몸가짐이 있다. 그녀는 이야기해도 짧게 하고 자신의 말에 대해 놀랍도록 신중하다. 음식을 많이 먹지 않으며 와인 또한 그러하다만, 말과 무기는 대단히 잘 다룬다. 기사들이나 병사들과 함께 있는 것을 크게 좋아하지만 폭도들과 함께 있는 것은 경멸한다. 눈물을 자주 흘린다. 기쁜 표정도 보인다. 대단한 점은 그녀가 완전 무장한 채로 6일 밤낮을 있으면서 피곤을 견디는 힘이다.
퍼시발 드 불랑비예, 샤를 7세의 시종장 #
잔의 거처에 잔을 보러 갔는데, 내게 와인을 가져다주더니 곧 파리에서 마시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녀의 외관과 목소리에는 자못 거룩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기 드 라발
기 드 라발
종합하면 고향 마을 동레미에서 도덕적이고 상냥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고 프랑스 왕국 원정군 활동 당시에도 불량한 무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잔 다르크를 관찰한 샤를 7세의 시종장에 의하면 표정은 감정이 풍부해 울거나 웃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외모는 아름다웠으며, 행동거지에 남성적 면모가 있다고 한다. 여성답지 않은 행동거지는 양치기 출신이기 때문이겠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아마 꽤 씩씩한 성격으로 추측된다. 6일 밤낮을 완전 무장한 채로 버텼다는 일화를 보면 시종장은 잔 다르크의 튼튼한 신체와 정신력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다. 기 드 라발은 외모나 목소리에서 풍기는 종교적 카리스마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시종장에 따르면 대단히 신중하게 말을 했다고 하니 아름다운 성녀의 짧은 말 한 마디가 종교적 카리스마로 당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4. 식습관
...From her youth Jeanne often fasted with great piety and devotion for the suffering of the people.
...잔은 어렸을 때부터 자주 엄청난 경건함과 헌신을 가지고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금식했습니다.
잔 다르크의 모친 이자벨 로메의 증언
...잔은 어렸을 때부터 자주 엄청난 경건함과 헌신을 가지고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금식했습니다.
잔 다르크의 모친 이자벨 로메의 증언
I saw her eat nothing during a whole day but a morsel of bread. I was astonished that she ate so little. When she was in her lodging she ate only twice a day.
저는 잔이 하루 종일 빵 한 조각만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아주 조금 먹은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처에 있을 때 그녀는 하루 두 끼만 먹었습니다.
Louis de Contes의 증언[10]
저는 잔이 하루 종일 빵 한 조각만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아주 조금 먹은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처에 있을 때 그녀는 하루 두 끼만 먹었습니다.
Louis de Contes의 증언[10]
Jeanne was very frugal in eating and drinking. There was nothing but modesty in her conduct, in her actions, and in all her manner of life.
잔은 먹는 모습과 마시는 모습이 매우 검소했습니다. 그녀의 삶의 처신, 행동, 그리고 예절에는 겸손함밖에 없었습니다.
Colette Milet의 증언[11]
잔은 먹는 모습과 마시는 모습이 매우 검소했습니다. 그녀의 삶의 처신, 행동, 그리고 예절에는 겸손함밖에 없었습니다.
Colette Milet의 증언[11]
Jeanne was taken to her house, to receive the care which her wound required. When the surgeon had dressed it, she began to eat, contenting herself with four or five slices of bread dipped in wine and water, without, on that day, having eaten or drunk anything else.
잔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집에 보내졌습니다. 의사가 상처를 처맸을 때 그녀는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포도주와 물에 찍은 네 조각 혹은 다섯 조각의 빵으로 만족하고 그 날 다른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뒤노아 백작 장의 증언[12]
잔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집에 보내졌습니다. 의사가 상처를 처맸을 때 그녀는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포도주와 물에 찍은 네 조각 혹은 다섯 조각의 빵으로 만족하고 그 날 다른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뒤노아 백작 장의 증언[12]
잔 다르크의 식습관에 대해서는 1455년 잔 다르크의 복권재판 당시 증언들에서 언급된다. # # 당시 복권재판에 참석한 인물들의 말[13]을 종합하면 잔 다르크는 어렸을 때부터 금식을 자주 했으며 음식을 많이 먹지 않고 하루에 두 끼로 해결할 때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뒤노아 백작 장의 말에 의하면 잔은 전투 이후 부상을 입었을 때 "와인과 물에 찍은 네 조각 혹은 다섯 조각의 빵"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가톨릭에서는 식탐을 7가지 죄악 중 하나로 보는 만큼, 잔의 소식하는 습관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매우 경건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기록의 신빙성이나 과장됨이 의심될 수 있으나, 거처에 있을 때는 두 끼를 먹었다고 하는 것처럼 평소에는 두 끼를 먹었다고 보면 큰 문제는 없다. 항상 빵 한 조각이나 몇 조각으로 살았다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건 맞지만 어쩌다 한 번씩 빵 한 조각으로 때우는 날이 있었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현대에도 하루이틀 정도는 금식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기도 하다.
[1] 초상화를 남기지 못했다. 살아 있을 때 그려진 스케치도 적진인 파리에서 남장을 한 처녀가 군대를 이끌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린 상상화라고 한다. 생전에 스코틀랜드인 용병이 잔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2] 그나마 가까운 시대에 그려진 15세기 화풍의 그림이다. 제일 오래된 그림은 1451년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이 그림과 달리 그다지 유명하지 않고 잔 다르크임을 얼른 알아보기는 힘들다. #[3] 가장 최근에 프랑스인이 그린 잔 다르크의 그림이며, 가톨릭 매체에서 최근에 가장 많이 쓰이는 그림 중 하나이다. 실제 고증에 맞춰서 흑발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4] 미국 재무부에서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를 지지하는 선전물로 그린 그림이다. 20세기 초 화풍이 특징이다.[5] 그 당시 기준이다. 잔 다르크의 신장은 약 158cm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현대 기준으로는 한국 여성의 평균 신장에도 좀 못 미치는 작은 키이다.[6] 당시에는 편지를 밀랍으로 밀봉하는 과정에서 머리카락 한 올을 첨부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때 잔 다르크가 편지에 남긴 머리카락의 색깔도 검은색이었다고 한다.[7] 현대의 프랑스인 전기작가 Adrian Harmand가 추리한 바에 의하면 왕족이자 시인이던 오를레앙 공작 샤를 도를레앙이 잔에게 선물로 보낸 남성용 의복의 사이즈가 정확하게 남아 있는데 그 남성복의 사이즈 80cm에서 추리한 잔의 신장은 약 158cm라고 한다. #[8] 뒤노아 백작 장은 심지어 이렇게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전우의 대열에 끼어서 잔의 명예회복 재판에서 "당시의 내가 진중에서 성욕을 느끼지 못했던 건 기적이다!"(그러므로 잔은 성녀가 맞다)라고 주장했다.[9] 이 두 가지 상반된 얘기는 아마 둘 다 사실일 것인데 남녀가 섞여 있고 여자의 가슴 같은 것을 본다 해도 상황에 따라 남자가 별로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런 상황에서 항상 성욕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하는 얘기는 또 아니다. 또 잔 같은 경우 종교와도 얽혀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억눌렀을 수도 있고 또 설사 잠시잠깐 느꼈다 하더라도 열심히 합리화를 해서 안 느꼈다고 본인이 생각하거나 부지불식간에 기억을 조작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성욕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한 사람들도 나름대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10] 잔 다르크의 휘하 기사이다. 잔 다르크가 프랑스 주민들에게 편지를 쓸 때 도와준 인물이다.[11] Pierre Milet는 잔 다르크의 오를레앙 해방 당시 오를레앙에 거주한 파리 세무서 직원이었다. Colette Milet은 Pierre의 아내로, 오를레앙 해방 당시 남편과 같이 잔 다르크를 목격했다. #[12] 오를레앙 공작 루이 1세의 사생아 아들. 잔 다르크를 보좌한 휘하 프랑스 원정군 장군이었다. #[13] 위 증언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