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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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張彌생몰연도 미상
후조의 인물. 자는 거진(巨秦). 사주(司州) 급군(汲郡) 출신.
2. 생애
영가의 난이 일어나 천하가 혼란에 휩싸였을 때, 장미는 사마모의 장수인 양신(梁臣)과 더불어 무덕성(武徳城)에 수자리를 놓아 지켰다. 이후 석륵이 무덕성을 공격하자 장미와 양신의 군대는 궤멸당했고, 적에게 사로잡힌 장미도 관례대로 처형될 위기에 놓이니, 그는 저항하며 큰소리로 외쳤다."귀관은 마땅히 건아(健兒)를 살리지 않고 어찌 죽이려 하는가!"
석륵이 물었다."그대는 건아를 자처하면서 어찌하여 살기를 구하는가?"
이에 장미가 답했다."무덕의 서성(西城)에 올라 큰 소리로 전투를 독려하였고, 경비를 삼엄하게 하여 도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던 게 바로 이 장미요."
이를 들은 석륵은 장미의 당당함을 기특하게 여겨 웃으면서 그를 사면시켜 주고 아문장군으로 삼았다.건무 2년(336년) 정월, 후조의 천왕 석호가 장미를 낙양(洛陽)으로 보내, 그곳의 종거(鐘虡), 9룡(九龍), 옹중(翁仲), 동타(銅駝), 비렴(飛廉)을 모두 가져와 업으로 옮기게 하였다. 장미는 이것들을 바퀴가 4개인 수레로 옮겼는데, 그 무게가 워낙 무거워 지나간 바퀴자국이 2척 깊이로 파일 정도였다. 그리고 옮기던 중 종 1개가 황하에 빠지자, 장미는 300명의 잠수부를 모집해 대나무 줄로 종을 감게 하고, 소 100마리와 녹노(鹿櫨)를 이용해 겨우 강에서 끌어냈다. 이후 1만 석도 능히 실을 수 있는 배를 구해 낙양의 기물들을 모두 싣고 황하를 무사히 건너 업에 도착하였다.
건무 2년(336년) 12월, 장미가 낙양에서 기물들을 가지고 올 동안, 석호는 양국(襄國)에 태무전(太武殿)을 짓고 업(鄴)에는 동궁과 서궁을 지어 과거 급상이 불태웠던 업궁(鄴宮)을 재건하였다. 이윽고 장미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석호는 무척 기뻐하며 경내에 사면령을 내려 2년간의 형벌을 모두 면제하고 백관들에게 곡식과 비단을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