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536349> 제3차 그라파산 전투 Terza Battaglia del Monte Grappa Third Battle of Monte Grappa Dritte Schlacht am Monte Grappa | |||
날짜 | |||
1918년 10월 24일 ~ 1918년 11월 4일 | |||
장소 | |||
이탈리아 왕국 피아베강 서편, 그라파산 일대 | |||
연합군 | 동맹군 | ||
교전국 | [[이탈리아 왕국| ]][[틀:국기| ]][[틀:국기| ]]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틀:국기| ]][[틀:국기| ]] | |
지휘관 | [[틀:깃발| | ]][[틀:깃발| ]][[틀:깃발| ]]아르만도 디아츠[[틀:깃발| | ]][[틀:깃발| ]][[스베토자르 보로예비치 폰 보이나| ]]|
병력 | 134,000 | 143,000 | |
피해 | 17,000 | 34,000 | |
결과 | |||
이탈리아군의 결정적 승리, 오스트리아군 붕괴와 후퇴 | |||
영향 | |||
이탈리아군의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 승리에 기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항복과 해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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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중 이탈리아 전선의 그라파산에서 벌어진 세번째 전투로, 이탈리아 왕국군의 대반격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최후 저항이 충돌하였다.2. 배경
1918년 10월, 이탈리아군 총사령관 아르만도 디아츠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대한 총반격 작전인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를 계획하였다. 이 작전의 첫번째 목표는 그라파산의 탈환이었다. 디아츠는 보병 8개 사단과 기병 1개 사단 등 총 9개 사단을 동원해 대규모 공세를 준비했다. 보병 사단은 주로 정예부대인 알피니 부대와 베르사리에리 부대로 구성되었다. 공격 전 며칠 동안 이탈리아 공군의 폭격이 있었고, 최신예 포병의 지원사격 준비도 이루어졌다.이를 눈치챈 오스트리아군 사령관 스베토자르 보로예비치 폰 보이나도 예비 병력을 최대한 끌어모았다. 그는 전선에 배치된 9개 사단을 12개 사단으로, 다시 15개 사단으로 증강하였다. 마지막 결전을 위해 제국 전역에서 가용한 모든 전력을 그라파산에 투입한 것이었다. 9월 이후 물자 공급의 차질로 병력들의 전투력은 예전같지 않았으나, 그래도 방어에는 충분할 것으로 보였다. 험준한 산악지형을 이용한 방어진지 구축에도 공을 들였다.
3. 전투
1918년 10월 24일 새벽, 이탈리아군은 거대한 포격을 시작으로 총공세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직후 보병 부대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이미 참호와 벙커를 구축하고 대기하던 오스트리아군은 기관총 사격과 야포 공격으로 이탈리아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며 저항했다. 하루에 수천명씩 쓰러지는 피비린내 나는 접전이 계속되었다.그러나 지속적인 물자 부족으로 탄약과 식량이 바닥나가던 오스트리아군으로서는 이탈리아군의 밀어붙이는 공세를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게다가 포병전에서 열세인데다, 점점 늘어나는 사상자와 피로누적으로 전투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반면 이탈리아군은 풍부한 보급과 예비대 투입, 공군과 포병의 강력한 지원 아래 고지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쟁탈해 갔다. 이 와중에도 오스트리아군은 지형을 이용해 후퇴하며 최대한 저항을 이어갔다.
10월 27일부터는 오스트리아군 방어선에 붕괴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날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공격에 물러서고 있었다. 11월 1일, 그라파산 남동쪽의 솔라롤로산(Monte Solarolo) 등 보조 고지군이 이탈리아군에 점령당했다. 11월 3일에는 북쪽의 전략적 거점 페라라산(Monte Ferrara) 고지까지 함락되었다. 이제 그라파산 정상은 포위 직전에 놓였다. 설상가상으로 오스트리아군 사령부는 이탈리아군이 피아베강을 넘어 빠르게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결국 포위를 우려한 보로예비치는 그라파산 방어를 포기하고 총퇴각을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11월 4일 새벽, 서서히 무너지는 오스트리아군의 저항이 마침내 끝나고 그라파산 정상에 이탈리아군의 국기가 꽂혔다. 이날 오전, 빌라주스티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전투는 종료되었다. 1년 가까이 계속된 그라파산에서의 혈전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이탈리아군은 전략적 거점 탈환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에서도 대승을 거두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라파산 전투는 연합군에게 결정적 승기를 안겨주며 제1차 세계 대전 종전에 한걸음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