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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일 | 1949년 6월 20일(사단 예하 포병대대) 1950년 8월 (제7보병사단 재창설) 2020년 12월 1일(제7보병사단 포병여단) | |||||
상징명칭 | 박살부대 |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
상급부대 | 제7보병사단 | |||||
규모 | 여단 | |||||
역할 | 7사단 예하 여단 화력지원 | |||||
여단장 | 대령 정재성 | |||||
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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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제2군단 제7보병사단 예하 포병여단. 별칭은 박살.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일대에서 화력(포격)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2. 상세
1949년 6월 20일 제7사단 창설 때 대대 규모로 창설되었다.2010년 기준으로 105mm 3개 대대와 155mm 1개 대대로 구성되었으나 이후 105mm 대대 중 하나인 을지 56포병대대가 155mm 견인포로 전환해 105mm 2개 대대와 155mm 2개 대대로 구성되어있다가 2019년경 155mm 자주포 2개 대대,155mm 견인포 2개 대대로 개편되었다. 이후 2022년 27사단이 해체되며 휘하의 자주포 대대 2개가 7사단으로 편입되고 기존 견인포 대대 2개는 보병여단 포병대 3개로 분할되었다.
국방개혁 2.0 기본계획에 의거, 상비사단과 지역방위사단이 개편 되는데, 7사단 포병연대 역시 2020년부로 여단으로 격상되었다.
3. 예하부대
3.1. 여단 직할대
3.2. 제16포병대대 충무
1948년 11월 20일 창설. 최초창설 6개 포병대대 중 한 곳이자 춘천-홍천 전투에서 제6보병사단 소속으로 맹활약하다 이후 7사단으로 예속되었다. 또한 지금은 K-9 자주포 대대로 전환되었다.
게다가 상술한 춘천 전투 행사 때마다 정통성을 존중해선지 이 대대 장병 일부가 국군, 심지어 북한군 역으로도 차출돼 땡볕 속에 리허설을 하기도 한다.
3.3. 제57포병대대 화랑
과거에는 제8보병여단 화력지원을 담당했다.
참고로 7사단 신교대 가까이에 있고, 몇몇 교육장이 포대 너머 곳곳에 있어 조교랑 훈련병들이 포대 안으로 들어와 여기저기 왔다갔다 한다.[1]
독립포대로 수상령 인근의 안동포가 있다. 경치가 아름다운 평화의 댐 상류 고지대에 조성되었기에 최전방으로 이어지는 철교를 조망할 수 있다.
2021년 1포대와 막사를 공유하던 수색대대가 사단 본부 근처로 이주하면서 독립포대였던 2포대, 3포대가 수색대대가 쓰던 신막사로 이주하였다. 현재 본부,1,2,3포대 통합막사가 되었다.[2] 이로 인해 포상 위치도 대다수 개편되어 2포대가 옮겨갔다.
57포대의 가장 극악인 부분은 제설 구간인디, 4km정도 걸어가고 1km 제설하고 다시 돌아오며 제설을 해도 도로통제가 안풀리는 경우가 많아서 복귀때도 걸어간다(...).
2포대가 주둔하던 안동포에는 새로 창설된 8포병대 1포대가 주둔하게 되었다. 장비는 기존에 KH-179에서 K-55A1 자주포로 개편되었다.
7개의 죄를 지으면 7사단오고, 1가지의 죄를 더지으면 8여단 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8여단 피해 57포병대대로 왔다고 안심하면 안된다. 8여단 축선에 있기 때문에 이 곳도 극악의 산타기를 해야한다. 실제 포상 투입시 8여단 gop에서나 볼수있다는 네발 계단이 존재한다. 다만 8여단 gop만큼은 아니지만 10분 거리의 네발 계단을 타서 기지 투입하는 구간이 존재한다. 또한 7사단 신교대 출신이면 알만한 사격장을 가기 위해 가파른 산을 타야한다. 훈련 또한 포병 훈련+보병 훈련이다. 포병으로써 하는 훈련이 맞나 싶을정도로 훈련 또한 굉장히 많아 군 생활 내내 훈련만하다 전역할 수있다.[3] 그리고 운전병이든 행정병이든 모든 훈련을 다 똑같이 모두 받는다. 그 중에서도 57포병대대를 온다면 주특기 훈련과 포병+보병 훈련을 다 똑같이 받을 것이다.[4] 인구 절벽으로 인해 입대자원 감소로 인해 야간 근무까지 늘었다.
운전병들에겐 지옥이다.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길에 운전하기 힘들며 길 폭까지 매우 좁아 K711 한대로 폭이 꽉차버린다. 그래서 잘못하면 가드레일 긁기 십상이다. 또 수동 차량밖에 없어 운전 경험이 많아야하며, 기동 순찰 시에 경사 60-70도가 되는 길을 두돈반으로 올라가야하는데 엔진 힘이 딸려 스로틀로 rpm을 강제로 올려서 올라갈정도로 험악하다. 죄다 가파른 오르막길 밖에 없어 저단 기어로 운전하는 게 일상이다.
3.4. 제239포병대대
27사단 출신. K55A1 운용.27사단에서 7사단으로 넘어온 부대이다. 3포병대와 함께 같은 주둔지를 공유하며 K-55A1을 보유하고 있다. 2개 대대를 수용할 만큼의 넓은 주둔지를 자랑하며, 막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1포대는 매일 일과 투입을 위해 상당한 거리를 걸어야 하는 고역이 있어 악명이 높다. 포병대대이지만 병사들은 훈련 시 차단선 봉쇄선 같은 보병 작전에 함께 투입되며, 2023년부터 산악행군, 급속행군 등 행군 훈련도 진행한다.
포대 단위의 훈련이 잦으며, 이에 우스개 소리로 지휘관이 병사들의 생활관 청소를 시키고 싶을 때 화스트페이스 단계를 건다는 이야기가 있다.
4개의 포병대대중 시설은 가장 좋은 축에 속하지만 주둔지가 넓은 만큼 근무를 나갈 때 걷는 시간도 길다
3.5. 제251포병대대
27사단 출신으로 27사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251포병대대도 같이 사라질 예정이였지만, 239포병대대와 같이 7사단에 편입 되었다. 251포병대대는 현재 구막사이며, 전국에 손에 꼽힐 정도로 시설이 정말 좋지않다. 그 수준이 어느정도나면,바람이 많이 불면 건물에 정전이 일어나고,가끔이지만 시도때도 없이 국방부 인터넷이 먹통이 되거나,화장실의 변기가 시도때도 없이 막히며,비나 눈이 오면 식당 천장에 물이 샌다. [5] 또한 바닥 보일러를 기름으로 때우며 보일러를 돌리기 위해 매번 유조차를 이용해 기름을 채운다. 또 여름에는 쓰레기장에서는 뱀이 자주 나오며, 새벽에 고양이 두 마리가 지붕 안쪽에서 뛰어다니다가 천장이 무너지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다. 생활관에 쥐가 돌아다니는건 기본이며 새벽에 자는 도중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 일어나보니 관물대에서 개구리가 떨어지거나 한 병사가 포상으로 올라가다가 구렁이를 목격했다는 소리도 있다.2023년 현재 신막사 공사 중이며, 자주포는 K55A1 운용 중이다.
4. 과거부대
4.1. 제637포병대대 왕자
사단 주요화력이라 할 수 있는 왕자 637포병대대는 연중 훈련수는 적지만 한번 훈련에 들어가면 살인적인 훈련강도를 체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최전방의 155mm 대대가 그렇듯 훈련이 적은 대신, 상시 대응사격준비를 갖추고 비사격훈련을 해대기 때문에 복무 중에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과 같은 북한측의 도발이 발생한다면 당분간 막사생활은 포기하는 게 좋을 정도였다고 한다.
일단 연평도 포격전 당시에도 생활관에 들어가지 못한 채 포상에서 실사격 및 진지이동 준비를 갖춘 채, 먹고 자며 두 달간 대기했었다. 사실 이는 이 부대만이 아니라 전방사단 155mm 운용부대의 공통적인 상황인데, 각자 담당한 보병부대를 포격 지원하기만 하면 되는 105mm와는 달리,155mm는 최장 18~20km라는 사거리와 강한 화력으로 GP의 지원사격 및 적 도발원점 타격을 주임무로 맡기 때문에 105mm보다 담당 범위와 임무도 많고 빠른 대응을 위해 언제든 실사격이 가능하도록 대비하고 있었어야 했다고 한다. 게다가 연평도 포격 이후로 조금만 대응사격이 늦어도 거센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뒤로는 더욱 부대 내 긴장감이 높아졌었는데, 최전방 보병부대를 지원하는 105mm 견인포 부대들은 제일 최전선에 배치한 포대 즉, 추진포대를 제외하고는 1달도 안 돼서 포상대기 태세를 풀어버렸다는 걸 감안하면 이들의 압박감이 얼마나 심한지를 잘 알 수 있었다고 한다.
2022년 27사단 이기자부대가 해체되면서 251대대와 239대대가 7사단 포병여단 예하로 들어오자 56대대와 함께 637포병대대는 해체되었다. 637포병대대는 3보병여단 소속 3포병대로
KH179 155mm 견인포를 운용했었다.
4.2. 제56포병대대 을지
5보병여단 화력지원을 담당했다.
전투부대, 특히 포병으로는 거의 드물게 인명사고 20년 이상 무사고 부대이다.[7] 물론 온갖 위험물과 중량물을 다루는 곳인 만큼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없을 리는 없고, 2010년 차량 전복 사고라든지, 유격 훈련 행렬을 따라가던 구급차가 절벽 쪽으로 굴러떨어진다든지[8], 화재가 발생한 적도 있고, 105mm 견인포 가신에 찍힌다든지 해서 부상을 입는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게 레알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덕분인지 2006년경에는 포병 부대임에도 사단선봉 부대로 지명되기도 했다.[9] 하여간 모범 부대로 이쁨받아선지 사단 FEBA 부대로는 최초[10]로 신막사 건설이 되었다.
독립포대로는 민통선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북진포(2)포대와 3포대가 있고 민간인 통제선에 걸쳐있는 1포대, 그 밑 지역에 본부포대가 위치하고 있다.
155mm 견인포를 운용 중이다.
2022년, 27사단 이기자부대가 해체되면서 251대대와 239대대가 7사단 포병여단 예하로 들어오자 637대대와 함께 해체된 뒤 5보병여단 예하 제5(을지)포병대로 재편되어 3포대는 기존 주둔지에서 지내고, 본부와 2포대는 16포병대대 주둔지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1포대는 8보병여단 8포병대 1포대로 떨어져 나가 현재 57포병대대 2포대가 빠진 안동포에서 주둔중.
5. 출신인물
5.1. 여단장
역대 제7보병사단 포병여단장 | |||||
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비고 | 기타 |
초대 | 방경원 | 예) 대령 | 육사 00기 | 前 연대장 | |
26대 | 김희상 | 예) 중장 | 육사 24기 | 前 수도군단장 | |
39대 | 이진원 | 예) 소장 | 육사 39기 | 前 육군미사일사령관 | |
40대 | 박경수 | 예) 준장 | 육사 40기 | 前 1포병여단장 | [11] |
41대 | 배종길 | 예) 준장 | 육사 41기 | 前 1포병여단장 | |
43대 | 윤창식 | 예) 대령 | 前 연대장 | ||
48대 | 이재영 | 대령 | 前 여단장 | ||
49대 | 김현주 | 대령 | 前 여단장 | ||
50대 | 정재성 | 대령 | 現 여단장 |
5.2. 장교/부사관
- 천용택 - 중령시절 57포병대대장 역임.
6. 기타
-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당시 피해주민을 위해 150만원을 모아 기부한 적이 있다.#
[1] 이러다보니 신교대 훈련병들 사이에선 박살포병이라며 빡세다는 악명으로 소문이 돈다.[2] 2,3포대가 쓰던 구막사는 컨테이너 박스였을정도로 열악했으나 통합막사로 이주하며 신막사가되었다. 7사단 포병여단 예하 포병대대 통틀어 시설이 가장 좋다. 단 7사단 포병여단 예하에서만 좋은 축이다.[3] 사격,행군 등 보병들이 하는 훈련을 매달하거나 심한경우 매주한다. 포병인데 포병 훈련대로 다 받고 하는 것이다. 시간이 잘 갈 것이다[4] 그나마 신막사 쓴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수있다만, 훈련은 훈련대로 하는데 휴가도 많이 안준다.[5] 식당은 임시 건물로써 컨테이너를 개조해 사용중이다. 컨테이너 지붕에 방수포를 설치했지만, 그래도 물이 샌다.[6] 출처: http://himnanum.tistory.com/219[7] 정확하게는 '자살과 사망사고가 없다'는 것이지만, 저 기간 동안 이걸 지켜낸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8] 당시 구급차에 탔었던 의무병의 증언에 의하면 탑승했던 군의관, 운전병, 의무병 모두 무사했으며 구급차도 무사해 견인 후 2011년 2월 당시에도 현역으로 운용되고 있었다.[9] 그래서 2011년 당시에도 대대본부 정문에 28년 무사고 전통 수립이라는 글귀가 대대에서 나가는 방향에 쓰여 있었다.[10] 2006년도부터 터파기 공사에 들어갔다.[11] 친딸이 육사 66기 출신으로 현재 소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