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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와 2차대회는 북조선로동당 시절 개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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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60c30><colcolor=#ffffff> 북조선로동당 제1차대회 | ||
개막 | 1946년 8월 26일 | |
폐막 | 1946년 8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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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로동당 대회의 제1차 대회.1946년 8월 26일부터 8월 31일까지[1] 열린 북조선로동당의 당대회이다. 북한의 공식 회의록 문서에는 '창립대회'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문서의 내용은 국립중앙도서관 전자도서관의 '북조선 로동당 창립대회 회의록(북조선 로동당 중앙위원회)'(이하 회의록) 문서를 참조해 회의록에 나와있는 1946년 8월 28일부터 30일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소제목이나 결정서 등 회의 중의 발언 내용이나 결정한 내용의 제목에 해당하는 항목에 대한 띄워쓰기는 회의록에 나와있는 글 그대로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 제1일(8월 28일 오후 2시 30분 개최)
김일성이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을 강제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을 창립하기로 선언하고 이에 따라 북조선 로동당의 개회를 선언하는 것으로 회의가 시작한다.장진광[2]의 건의로 주석단원의 인수를 31명으로 구성하는 것을 제안한다. 이 주석단원 31명 중에는 김일성, 김두봉, 최창익 등이 있었다.
함경북도 대표인 허국봉이 스탈린을 명예의장으로 추대하자고 건의하고 이를 전원 동의한다. 이후 회의의 대표심사위원, 회의록편집위원, 서기 등을 천거하는 형식으로 올리면서 확정하고, 다음의 순으로 회의를 진행할 것을 김일성이 선언, 이를 만장일치로 통과한다.
1.북조선로동당 창립에 대한 보고
2.당강령에 대한 보고
3.당규약에 대한 보고
4.중앙기관지에 대한 보고
5.당중앙위원회 선거
6.당중앙검열위원회 선거
후에는 당강령수정위원, 당규약수정위원 등을 천거하고, 각 정당의 사회단체대표 축사가 있었다. 북조선직업총동맹 대표 최경덕, 북조선민주녀성총동맹 평안남도위원회 대표 백경제, 북조선농민총동맹 대표 강진건, 민청대표 김욱진이 차례로 축사를 연설하고, 각 정당 사회단체에서 보내온 축하문 76통과 축전 167통, 합해 243통 중 일부를 평안남도 대표 김창민이 낭독했다.
이후 김영태가 '쯔딸린 대원수에게 드리는 편지'를 낭독한다. 이를 김일성이 만장일치 통과로 한 후 휴회를 선언하는 것으로 오후 5시 15분 제1일 회의가 종료된다.
3. 제2일(8월 29일 오전 9시 계속)
오전 9시 7분에 주석단이 착석하는 것으로 속회한다. 박일우가 대회 대표 심사위원회의 심사결과를 발표하며 합 801명의 대표가 참가하였고, 북조선 6도에서 김일성을 창립대회대표로 선거하였음을 밝힌다. 이후 801명의 구성 비율을 구체적으로 밝히며 여러 직업군과 연령, 성별로 이루어진 대표단[3]임을 설명한다. 이를 종합해 김용범이 '북조선로동당창립대회출석대표 자격심사에 대한결정서'를 낭독하고 만장일치 통과한다.제1일에서 설명한 회의 진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김일성이 북조선로동당 창립에 대한 보고를 하며
1.조선정치형세
2.민주과업을 실천하는데있어서 민주주의 민족통일전선은 그의 기본이다.
3.두당의 합동은 역사적으로 필연한것이며 또 가장 적절한 일 입니다.
4.당의 당면 임무
의 순으로 조선로동당의 대내외적 역할을 설명했다.2.민주과업을 실천하는데있어서 민주주의 민족통일전선은 그의 기본이다.
3.두당의 합동은 역사적으로 필연한것이며 또 가장 적절한 일 입니다.
4.당의 당면 임무
다음으로 조선신민당 중앙본부위원장 김두봉이 북조선로동당 창립에 대한 보고를 하며
세계민주주의발전에 팟쇼잔여의 반항첨예
조선완전자주독립은 민주민족통일이전제
민주력량을 총집결 반동파의 발악분쇄
량당원의 적극지지로 극히순조로 합동전선
좌우의 편향적 경향과 자의적 억측을버려라
역사적 새임무를띄고 북조선로동당은 탄생
순으로 소제목이 붙은 연설을 해 양당 합당을 지지하고 조선로동당의 지도에 모두가 충성해야 함을 강조한다.조선완전자주독립은 민주민족통일이전제
민주력량을 총집결 반동파의 발악분쇄
량당원의 적극지지로 극히순조로 합동전선
좌우의 편향적 경향과 자의적 억측을버려라
역사적 새임무를띄고 북조선로동당은 탄생
이후 김용범이 해당 연설에 대한 질문을 서면으로 받을 것이라 한후 5분간 휴회 후 속회한 결과, 2개의 질문이 있었고 이를 차후 답변할 것이라 밝힌다. 이후 북조선로동당 창립에 대한 여러 대표들의 토론 후 오후 3시까지 점심시간으로 휴식한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 다시 토론이 진행된 후 현칠종(평안남도 대표)이 '사실상 농촌에가면 어떤농민은 이승만이 토지를주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는 발언을 지적받은 후 취소하기도 했다. 이 토론의 결과를 김일성이 종합해 연설했다.
이후 북조선로동당 창립에 대한 보고를 종합한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이 합동하여 북조선로동당을 창립함에 대한 결정서'를 발의한다. 다음으로 최창익이 북조선로동당강령에 대해 발표를 했다. 이에 대해 토론을 진행하고 '북조선로동당강령에 대한결정서'를 결의한다. 이것으로 제2일 회의가 종료된다.
4. 제3일(8월 30일 9시 10분 계속)
주녕하의 선언으로 속회한다. 김용범이 규약초안에 대해 보고한다. 이에 대해 주녕하가 질의를 서면으로 받고 5분간 휴회한다.이후 김용범이 질문에 대해 답변한다. 내용은 대한민국의 국어에 일부 맞추어 조정해 작성한다. 도당, 시당, 군당, 면당 등은 각각 행정구역 도, 시, 군, 면의 당 부서를 의미한다.
공장위원회는 세포를 둘 수 있는가?
반드시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나 가능하다.
반드시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나 가능하다.
20세 미만 당원은 어떻게 되는가?
당원 자격을 유지한다.
당원 자격을 유지한다.
면(面)당부에서는 당원 몇 명 이상이면 대회를 가질 수 있는가?
300명 이상을 기준으로 할 것을 제의한다.
300명 이상을 기준으로 할 것을 제의한다.
가정부인(주부)의 당비는 어떻게 되는가?
가정부인도 직장을 가져야 하고 당비도 똑같이 납부해야 한다.
가정부인도 직장을 가져야 하고 당비도 똑같이 납부해야 한다.
도당상무위원이 못 되는 부장이 있는데 도당상무위원 수를 11~13명으로 함이 어떠한가?
부장이 무조건 도당상무위원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규약 초안을 유지함이 낫다.
부장이 무조건 도당상무위원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규약 초안을 유지함이 낫다.
32조의 '대도시'의 범위는?
평양, 원산, 신의주 등.
평양, 원산, 신의주 등.
시군당부에 문화인부 로동부를 둘 수는 없는가?
도당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둘 수 있다.
도당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둘 수 있다.
39조 '어떠한당단체'는 무엇인가?
도당, 시당, 군당, 세포 등.
도당, 시당, 군당, 세포 등.
노동자들이 직업동맹회비, 당비를 모두 내야 하는 건 부담이 과하지 않은가?
문제 없다.
문제 없다.
타당에서 들어올 때의 수속 문제는 특별한 경우엔 중앙위원회에서는 결정할 것.
이후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해 역설했다.
로동당규약에 대한 결정서를 윤공흠이 낭독했다. 중앙기관에 대한 보고는 태성수가 했다. 보고가 끝나고 질문과 토론이 있었다. 여기서 로동신문이 당기관지로 결정된다. 이를 '북조선로동당기관지에 대한결정서'로 결의한다.
다음으로 남한의 삼당합동[4]에 대해 정형보고와 논의를 하였다. 미군의 '반동행위'로 인해 뚜렷한 성과를 보지 못했고 삼당합당이 빨리 이루어져 단결된 사회주의활동이 되기를 기원하는 것을 성명했다. 이를 '남조선에서 삼당이 통일당으로 합동하는 사업진행에 대한 북조선로동당 창립대회 결정서'로 결의하고 점심시간을 가졌다.
이후 김일성은 스탈린의 '간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스탈린주의적인 간부의 역할에 대해 역설했다. 김일성의 발언이 끝난 후 검열위원회원을 결정했다. 그 다음에는 '조선동포들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통해 북한 인민들에게 북조선로동당의 의의를 강조하였고, 김일성이 민주주의의 인민에 의한 승리를 약속하며 대회에 참여한 전원이 북조선로동당대회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만세삼창을 하는 것으로 오후 6시 폐회했다.
5. 의의
북조선로동당 창립대회는 북한이 이전의 양당정치를 종료하여 김일성의 집권체제를 확립하고, 당시 사회주의 진영을 주름잡던 스탈린주의를 모토로 하여 사회주의의 체계를 짰음을 알 수 있다.[1] 북한에서는 현재 이 날짜를 조작해 1945년 10월에 개최되어 김일성이 당선되었다는 선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2] 최창익이 몸담았던 조선독립동맹에서 선전부장을 맡았던 인물로 북한의 195~60년대 예술 간부로 이름이 종종 나온다.[3] 위키백과의 통계 항목을 참조하면 로동자 계급 183명, 농민 계급 157명, 인텔리겐챠(지식인) 계급 385명, 기타 76명[4] 현재 대한민국에서 3당 합당이라고 하면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민주자유당을 결성한 3당 합당을 주로 가리키나 여기서 말하는 3당은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을 의미한다. 후에 합당해 남조선로동당을 결성하고 이것이 북조선로동당과 합쳐져 현재의 조선로동당을 결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