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이어'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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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미 어워드 7회 수상 [목록]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롤링 스톤이 2023년 250대 기타리스트를 선정한 순위다. 실제 현역 기타리스트들과 평론가들이 뽑은 순위다.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지미 헨드릭스 | 척 베리 | 지미 페이지 | 에디 밴 헤일런 | 제프 벡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시스터 로제타 사프 | 나일 로저스 | 비비 킹 | 조니 미첼 | 듀언 올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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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산타나 | 지미 노렌 | 토니 아이오미 | 프린스 | 키스 리처즈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로버트 존슨 | 메이벨 카터 | 톰 모렐로 | 프레디 킹 | 스티비 레이 본 | |||||
<rowcolor=#fff>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랜디 로즈 | 앨버트 킹 | 커크 해밋 & 제임스 헷필드 | 제임스 버튼 | 존 프루시안테 | |||||
<rowcolor=#fff>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세인트 빈센트 | 버디 가이 | 데이비드 길모어 | 에디 헤이즐 | 닐 영 | |||||
<rowcolor=#fff>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조지 해리슨 | 잭 화이트 | 브라이언 메이 | 제리 가르시아 | 에릭 클랩튼 | |||||
<rowcolor=#fff>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엘리자베스 코튼 | 피트 타운젠드 | 앵거스 영 & 말콤 영 | 쳇 앳킨스 | 존 페히 | |||||
<rowcolor=#fff>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보 디들리 | 버논 레이드 | 조니 그린우드 & 에드 오브라이언 | 조니 라몬 | 스티브 크루퍼 | |||||
<rowcolor=#fff>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프랭크 자파 | 디 에지 | 커티스 메이필드 | PJ 하비 | 엘모어 제임스 | |||||
<rowcolor=#fff> 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톰 베를렌 | 존 리 후커 | 트레이 아나스타시오 | 보니 래잇 | 믹 테일러 | |||||
<rowcolor=#fff> 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조니 마 | 서스턴 무어 & 리 라날도 | 알렉스 라이프슨 | 로버트 프립 | 스코티 무어 | |||||
<rowcolor=#fff> 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존 메이어 | 피터 그린 | 리처드 톰슨 | 스티브 크루퍼 | 캐리 브라운스타인 | |||||
66위부터는 링크 참조. |
같이 보기: 롤링 스톤 선정 100대 기타리스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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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John Mayer 존 메이어 | |
본명 | John Clayton Mayer 존 클레이턴 메이어 |
출생 | 1977년 10월 16일 ([age(1977-10-16)]세) |
미국 코네티컷 주 브리지포트 | |
거주지 | 미국 캘리포니아 주 LA 베벌리힐스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페어필드 워드 하이 스쿨(~ 1995년/졸업) 버클리 음악대학(1997년/중퇴) |
직업 |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 프로듀서 |
데뷔 | 2001년 앨범 <Room For Squares> |
레이블 | 컬럼비아 레코드 |
소속 그룹 | 존 메이어 트리오 데드 앤 컴퍼니 |
장르 | 팝, 록, 블루스, 소울 음악, 컨트리 뮤직, 포크 음악 |
악기 | 기타, 보컬, 피아노, 하모니카, 퍼커션, 옴니코드 |
활동 | 1998년 ~ 현재 |
신체 | 190cm |
가족 | 부모님, 3남 중 2남 |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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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는 거장 입니다.” |
미국의 블루스[2] 기타리스트, 싱어송라이터, 레코드 프로듀서. 젊은 세대들에게 현대 블루스의 대중화에 기여한 거장이자 롤링 스톤이 선정한 새로운 세계 3대 기타리스트[3]이며 최연소 Fender 시그니쳐 기타 라인으로 명명[4]됐고 그에게 붙여진 별칭은 그가 에릭 클랩튼의 후계자임을 지칭하는 Slow Hand Jr.[5] 이 같은 어마어마한 타이틀들을 젊은 나이에 모두 이루어낸 현재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의 한 명이다.
사생활 관련으로 몹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물이지만, 그가 이 시대의 특히 현시대의 기타리스트들의 히어로인것은 분명하다. 80, 90년대 사람들이 에릭 클랩튼을 기타히어로로 보며 자라듯, 21세기의 젊은 세대 기타리스트들은 그를 이 시대의 기타히어로로 본다 해도 무방하다.[6] 기타리스트 중에서 전세계적으로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동시에 많이 받고 있는 기타리스트임에는 이견이 없다. 블루스에 기반한 필링이 뚝뚝 묻어 나오는 연주와 리프, 울림이 풍부한 저음의 목소리가 트레이드 마크이다.
연주는 어쿠스틱/일렉트릭 양 쪽 모두 깊은 소양을 지니고 있으며, 감정선이 뚜렷하게 짜인 작곡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느낌있는 연주가 돋보인다. 곡들의 템포는 느린 편이지만 진행이 복잡하여 곡의 속도에 비해 왼손이 많이 바쁜 편, 블루스 연주자이기 때문에 크게 티가 안나지만, 기존의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커버한 영상들을 찾아보면 속주도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7] 대부분의 곡은 일반 앨범 버전이 실력 면에서 더 탁월한 법인데 어쿠스틱 버전과 앨범 버전을 들었을 때 거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멜로디메이킹과 프로듀싱 능력은 탁월한 것. 똑같이 연주한 라이브 버전을 찾기 힘들 정도로 즉흥연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주자이기도 하다.
2. 커리어
2.1. 데뷔 전, 그리고 1집, 2집
1977년 10월 16일 코네티컷 브리지포트에서 교장 선생님이었던 아버지 리처드 메이어와 중학교 영어 교사였던 어머니 마가렛 메이어 사이에서 3남 중 2남으로 태어났다. [8] 이후 근교 페어필드에서 비교적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지미 헨드릭스, 스티비 레이 본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정작 기타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백 투 더 퓨처의 마티의 기타 플레이가 멋져서. 백 투 더 퓨처를 보고 크게 감명 받은 13살의 나이에, 아버지에게 졸라 렌트한 기타를 가지고 연주를 시작하였고, 그 후 고등학교 밴드 동아리등을 만들어 활동을 하는등 다소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렵에 이웃으로부터 스티비 레이 본 테이프를 선물받는데, 이 사건이 결국 그를 블루스에 심취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테이프를 늘어질 때까지 들었다고.
그리고 그가 프로뮤지션으로 전향을 꿈꾸게 되는 것은 17살 무렵, 심근경색으로 졸도한 이후에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음악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평가해보게 되는 계기를 통해 부모님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에 자신의 삶을 걸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하고, 주변에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자, 자신이 직접 노래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자신의 창법을 개발했고, 고등학교 졸업 뒤 바를 전전하며 기타를 연주해 조그마한 명성을 쌓던 찰나, 더 높은 수준의 음악적인 공부를 위해 보스턴으로 터전을 옮겨 명문 버클리 음악대학에 진학[9]하지만 2학기만에 자퇴[10][11]를 하게된다.
자퇴후 친구 Clay Cook (현 Zac Brown Band 기타리스트)와 같이 애틀랜타로 이사, Lo-Fi Masters라는 이름의 듀오로 시작하나 서로 음악적 견해차로 갈라선뒤, 혼자 독립하여 활동하기 시작한다. [12] 참고로 이 듀오가 같이 합동 작사/작곡한 노래가 몇곡이 메이어의 1집 Room for Squares에 수록되었는데, 그 노래들이 바로 1집 대박을 내게 해주었던 No Such Thing 그리고
이 때 메이져 데뷔 이전에도 명성을 쌓아가던 차기 기타히어로 재목이었던 그가 정작 데뷔는 아이돌로 하게 되면서 말들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듬 해인 2002년 1집 싱글 Your Body is a Wonderland로 그래미시상식에서 최우수 보컬 퍼포먼스상[14]을 수상하고 성공적인 행보를 계속 이어가게 된다. 데뷔하자마자 성공을 거둬 뮤지션으로서 가장 성공적인 첫 해를 보내게 된 셈이다.
1집 활동을 종료하고 휴식기를 가진뒤, 거처를 뉴욕으로 이사한뒤, 2003년에는 정규 2집, Heavier Things를 발매하게 되는데, 1집의 어쿠스틱적인 요소를 그대로 있지만 점점 자신의 정체성은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써의 자아 역시 조금씩 드러내게 된다. 팝 넘버 Bigger than My Body도 있고,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넘버인 Come Back to Bed도 있지만 정작 크게 히트친곡은 1집의 첫 싱글 Your Body is a Wonderland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도 되는 트랙인 Daughters. Daughters로 그래미를 한번 더 수상하게된다. 이때 자신의 레이블인 콜롬비아 레코드와의 갈등이 있었는데, 자신은 Daughters가 싱글 컷이 되는 것을 반대했다. 그 이유는 Daughters가 히트를 칠 경우 자신은 평생 감수성 깊은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라는 딱지가 붙는것이고, 자신의 음악적 역량에 제동을 거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 반대로 자신이 쓴 블루스곡 Come Back to Bed는 히트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음반사에서는 메이어의 의견을 무시하고 Daughters를 첫 싱글로 컷한뒤 대중적인 성공을 이루었고, 반대로 메이어 자신이 히트가 되길 원했던 Come Back to Bed는 그저그런 성적으로 받았다. 조금더 자신이 좋아하는 블루스 색채를 더하며 어느정도 아티스트로써 역량을 보여줬지만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메이어의 이미지는 아직까지는 감수성 짙은 가사에 어쿠스틱기타를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였던것이다. 이때를 분기점으로 2집 활동을 종료한뒤 긴시간 공백기를 가지고 Herbie Hancock, Buddy Guy, Eric Clapton 등 블루스/재즈 음악의 거장들과 협연 및 세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조금더 블루스 기타리스트 및 싱어송라이터로써 더 필요한 역량을 쌓아나가기로 한다.
2.2. 3집, 4집
그렇게 2집 활동을 종료하며 블루스 기타리스트들과의 협연으로 블루스 기타리스트 및 블루스를 기반으로한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를 잡아가던 그는 허비 행콕과 Stitched Up이란 노래를 작업할때 자신의 2집에서 같이 연주한 드러머 Steve Jordan과의 재회한다. Steve Jordan의 소개로 베이시스트 Willie Weeks와 만나고, 서로 음악공감대가 형성되며 트리오로써 데뷔를 준비하다가 Willie Weeks가 개인사정으로 참여를 못하게되자 프렛레스 베이스의 달인으로 유명한 베이시스트 Pino Palladino와 트리오를 결성 1년간 John Mayer Trio라는 이름안에서 활동을 하게되는데, 이것이 팬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로만 알았던 그의 이미지를 파괴하고, 음악적으로 다방면으로 접근할수있는, 그만의 영역을 천천히 만들어 나가게된 셈. 참고로 John Mayer Trio라는 이름아래 발표한 유일한 앨범인 Try에는 팝 적인 요소를 최대한 줄이고 블루스한 색채를 극대화하고 일렉트릭기타 플레잉에 중점을 맞추게 되며 자신이 원하는 블루스 기타플레이어 그리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아를 대중들에게 보여주게 되었다.그리고 트리오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 Steve Jordan과 3집 Continuum을 작업하게 된다. 전체적으로는 블루스적인 색채가 더 강해졌고, 어쿠스틱 곡의 비중이 다른 앨범보다는 낮아서 대중성이 약간 떨어지는 듯 했지만 결과는 초대박. 존 메이어의 본인이 가장 하고자 했던 음악적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난 앨범이라 평단과 대중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는 앨범이다. Stop This Train 같이 덤덤하게 읆조리는 가사와 기타가 움직이는 듯한 기타워크부터 강렬한 블루스 색이 드러나는 Slow Dancing in the Burning Room과 Belief, 그리고 콘서트에서 항상 피날레를 장식하는 노래이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노래인 Gravity가 이 앨범에 들어가있다. 미국의 유명 음악 잡지 롤링 스톤에서도 이 앨범을 미국 음악역사에 가장 위대한 앨범중에 하나로 지목했으며, 그해 그래미 시상식에도 올해의 앨범 후보로 지목되었고, 첫 싱글로 나온 Waiting on the World to Change는 남자 팝 보컬 퍼포먼스 부분에서 수상을 차지하는등 평단과 대중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게되었다.
3집의 성공이 엄청난 나머지, 3집 이전의 곡들을 베스트 히트식으로 모아서 편곡하여 진행된 2008년 라이브 콘서트의 앨범 "Where the Light Is"는 존 메이어의 팬이 아니더라도 음악을 좋아한다면 꼭 한 번쯤은 꼭 들어봐야할 명반중의 명반. 이 앨범에는 I Don't Need No Doctor, Wait Until Tomorrow, 톰 페티의 Free Fallin' 와 같은 커버곡들과 함께 미발매곡인 In Your Atmosphere 도 수록되어 있다. 유튜브에서도 HD화질의 영상들과 함께 볼 수 있으니 한 번쯤 들어볼 것을 추천한다. 자신이 아티스트로 보여줄수 있는 세가지 색(솔로 어쿠스틱, 트리오 밴드, 그리고 풀 밴드)을 골고루 잘 나타낸 명반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애틀랜타에서 음악인생을 시작했을때 느낌을 가장 잘 드러난 솔로 어쿠스틱 세트, 그리고 Steve Jordan과 Pino Palladino와 함께 합을 맞추며 협연하며 일렉트릭기타의 끝을 보여준다고도 과언이 아닌 John Mayer Trio 세트. 마지막으로 존 메이어의 콘서트를 가본 사람들이면 가장 눈에 익숙한 팝 밴드까지, 2008년까지 존 메이어의 아티스트로써의 역사를 가장 잘 추합한 앨범이라고도 말할수있는 그런 라이브 앨범이다. 참고로 3집 Continnum 앨범의 노래들은 아직도 미국 라이오스테이션에서 가끔씩 틀어준다. 그만큼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성이 있다는 증거. 그래미수상은 물론이고, 프로듀서로서의 역량까지 제대로 발휘한, 존메이어의 음악성을 잘 나타낸 음반이라고도 할수있다.
하지만 3집의 성공에는 큰 그림자가 뒤따랐는데, 그 3집의 성공이 어마어마한 나머지 존 메이어 자신은 이제 새로운 앨범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껴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Continuum이라는 앨범은 너무 완벽했고, 그 앨범을 뛰어넘을 새로운 음악을 만들 자신이 없었던것. 하지만 어느정도 공백기를 가진 뒤, 2010년, 4집 Battle Studies가 나오는데, 자신의 앨범 중에서 가장 테마적으로 대중적인 주제인 사랑과 전쟁을 중심으로 만든 새로운 음악이다. 즉 사랑하는 사람과의 싸움, 다툼, 이별 그리고 그 이후의 느낌을 주로 만든건데, 책을 읽다가 영감을 얻고, 사랑이라는 것을 전쟁으로 착안시키는 아이디어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고. 앨범을 만드는 동안에는 존 메이어 트리오 멤버인 Steve Jordan, Pino Palladino, 그리고 1집부터 같이 작업해온 사운드 엔지니어 Chad Franscoviak과 함께 LA의 집을 스튜디오 겸 집으로 개조해 거기서 먹고, 자고, 살고, 4집 녹음을 다 했다. 메이어 자신도 3집의 큰 성공이 어느정도 부담으로 작용한것이 있었음을 인정했고, 3집의 큰 성공과 앨범에 대한 큰 만족감 때문에 새로운 음반을 만들어야하나 하는 고민도 수없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정한게 3집 Continuum의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것보다 거기서 끝내고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접근하자는 것에 동의를 했고, 그러면서 자신의 3집 Continuum을 다시 들어봤을때 자신이 생각했던 완벽한 음반이었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거기서 뭘 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차트성적에서는 Continuum, Heavier Things 그리고 Room for Squares 보다는 조금 저조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성공 한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첫 싱글인 Who Says, 몽롱한 사운드의 Heartbreak Warfare, 로버트 존슨의 Crossroads 커버곡, 캘리포니아의 느낌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Half of My Heart 등이 수록되어있다.
이때부터 메이어는 자신의 메인 장르와는 다른 뮤지션 및 아티스트들과 협엽을 하게되는데, 가장 큰 이름은 아무래도 현재 미국 대중음악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테일러 스위프트. 4집의 Half of My Heart를 공동 작사/작곡을 하며, 컨트리 뮤직으로도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했다. 지금은 헤어졌고, 테일러는 "Dear John"이라는 디스곡을 남겼지만, 어찌되었건 메이어가 뮤지션으로써는 어느정도 영향을 미친것은 사실인듯하다. 참고로 이 앨범이후 롤링스톤즈와의 인터뷰 및 인종차별 코멘트[15], 그리고 여자친구인 제시카 심슨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그녀를 "Sexual Napalm"이라고 부른것 등등 대중적인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받으며 모두가 그에게서 돌아서는 계기가 된다. 이때부터 자신의 경거망동함을 돌아보며 자신을 재충전 및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게되며 동시에 5집 앨범을 준비하게된다.
2.3. 5집, 6집
4집 활동 종료및 개인적인 홍역을 치른뒤, 2012년 5월, 'Born and Raised'를 발표, 이전의 블루스[16] 보다는 포크 성향이 짙은 컨트리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였다.[17] 타이틀곡인 Shadow Days는 성대문제와 여성편력 문제 등 같은 고생을 겪었던 과거에 대해 토로하는 내용. 특히 Dear John이라는 곡까지 썼던 테일러 스위프트와의 불거졌던 문제를 의식했는지 이에 대해 언급하는 가사가 나온다. 전체적으로 앨범의 분위기가 어두운 편에 속하며, 4집과 5집 발매 사이에 겪었던 모든 사건사고 및 부모님의 이혼등등을 덤덤하게 풀어내는 느낌이 강한 앨범이다. 짧게나마 5집을 활동할 당시 완전 컨트리스러운 복장에 수염, 장발, 그리고 컨트리스런 모자를 쓰는 사진이 나오는 바람에 팬덤에서 머리 잘라라, 수염 밀어라, 무슨 동네아저씨가 앨범을 냈냐 등등 달리진 모습에 조금 충격을 먹기도 했다. 팝적은 색채가 있는 트랙이 한, 두개 정도있던 다른 앨범들과는 달리, 5집 Born and Raised는 대부분 차분한 분위기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과거사 및 힘들었던 시간을 다 우려내어 만든 앨범인듯하다. 이때 다시 자신의 건강문제로 홍역을 치르는데, 그 홍역 때문에 앨범 마무리작업에 차질이 생겼고, 결론적으로 앨범 홍보를 위한 전국투어를 준비하다가 취소를 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밑에 기타사항을 참조할것.2012년에 있던 건강문제에서 극복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은뒤, 2013년 7월, 정규 6집 'Paradise Valley'를 발표하고, 이전 앨범이었던 'Born and Raised'에서보다 심화된 컨트리 감성을 선보이며 컴백하였다. Paradise Valley라는 앨범 이름은 몬태나 주에 있는 지형을 따온것인데, 이곳에서 2~3년 지내면서 자신의 경험을 소소하게 담아낸 앨범이다. 전작 Born and Raised와는 다르게 더 밝은 분위기의 노래가 많다는것이 특징인데, 이것은 5집과 6집의 노래들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확실히 알수있는데, 가사나 음악전개 및 기타 톤 등등에서 확실히 더 밝아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나 5번 트랙의 Call me the Breeze는 컨트리음악에 한 획을 그었던 J.J.Cale의 곡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2013년 J.J.Cale의 장례식에서 헌정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2번 트랙의 Dear Marie는 'Continuum'앨범의 Stop This Train이 생각나는 비슷한 리프로 가다가 뒤에서 떼창을 불러일으키는 곡으로 내한공연에서도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이외에도
2014년에는 에릭 클랩튼 사단의 일원으로 에릭 클랩튼에게 큰 영향을 끼친 J.J.Cale의 헌정앨범 Eric Clapton & his Friends의 4번 트랙 Lies, 7번 트랙 Magnolia, 15번 트랙 Don't wait에 참여했다. 특히나 7번 Magnolia를 녹음하기 한 시간 전에 처음 듣고 바로 녹음해버려, 그의 천재성에 감탄했다는 에릭 클랩튼의 인터뷰도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팝스타 Barbra Streisand의 앨범 Duets에서 Come Rain or Shine에 보컬 및 세션 기타까지 참여하는등, 연애설 및 개인처신 문제보다 음악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개인처신 문제로 돌아섰던 매스컴 및 대중들이 자신의 음악을 다시 찾게되는 계기가 된다.
2010년 초 즈음 내한 떡밥이 돌기도 했으나 자신이 어릴때부터 동경해온 일본에서만 월드투어에 갔을뿐 방한은 결국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현대카드에서 진행하는 컬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2014년 5월 6일 드디어 첫 내한 공연을 가지기로 확정했다. 내한 공연 당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19] 그 날 공연 수익 일부와 MD 수익을 모두 세월호 사건에 기부하는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였다.
2.4. 7집
2015년에는 미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그레이트풀 데드와 협연을 하게되며 Dead & Company의 멤버로 참여, 7집 앨범 제작에 잠깐 스톱을 걸고 현재 그들과 같이 리허설 및 투어를 하는중이며, 2016년 출시를 목표로 7집 정규 앨범 작업에 한창이다. 데드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자 중심이었던 제리 가르시아의 포지션을 맡아 처음에는 골수 데드헤드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은 호평속이 투어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렇게 Dead & Company의 일원으로 투어를 돌며 자신에게도 음악적 성장을 이루어낸 계기라며 그들과의 협연에 만족했고, Grateful Dead 멤버들 역시 젊은 기타 거장이 자신들의 투어에 참여해준 것에 고마워하며, 서로 음악적인 교감을 이루어내며 서로가 윈윈한 성공적인 투어가 되었다. 밥위어와 기타 두대로 곡의 그루브를 진행해나가는 새로운 방법들을 배워가는것 같다며 마치 데드앤컴퍼니 활동은 예술수업을 듣는것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다.일단 MSNBC와의 인터뷰에서 7집 앨범이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소중한 앨범이 될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때는 앨범에 관한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일단 리드 싱글로 "Love on the Weekend"가 미국 시간으로 2016년 10월 18일 금요일에 출시되었다. 며칠 뒤에 앨범 이름도 공개되었는데, 앨범의 제목은 "The Search for Everything."[20] 아직 어떤 성향의 앨범일지는 모르겠지만, "Love on the Weekend"만 들어볼 경우 일단 블루스에 기반을 둔 앨범이 될 것이라는 추리는 가능하다. 앨범 홍보는 앨범 전곡이 나올 때까지 한 달에 4곡씩 푸는 방식으로, 팬들은 아직까지는 앨범 전체가 몇 곡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의 SNS에 의하면 매월 4곡씩 풀어내는 방식으로 앨범을 홍보한다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7집 The Search for Everything은 48곡이라는 엄청난 양의 될 수도 있고[21], 다른 앨범들처럼 12곡내지 20곡 정도가 나올 수도 있는 법. 이해를 못하겠다면 윤종신이 매월 새음악을 만드는 그의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과 빅뱅의 정규 3집 MADE 앨범의 마케팅방식을 약간 섞은 방식을 떠올리면 된다.
2017년 1월 20일에는 일단 첫 4곡을 풀었다. 그 노래들은 바로 "Changing," "Moving On and Getting Over," "You Are Gonna Live Forever in Me." 그리고 정규앨범의 첫 싱글 컷을 한 "Love on the Weekend" 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지 시각 2017년 1월 20일에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이었는데, 현 미국 정치판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평단 및 대중들은 그냥 다 때려치우고 그가 새 음악을 들고와서 그의 음색에 힐링을 한다며 호평을 하는중. 아직까지는 대중 및 평론가들의 찬사를 가장 많이 받은 3집 Continuum의 색채가 가장 짙으며, 대중들도 3집의 메이어가 돌아왔다며 호평하는 중. 앨범이 나온 첫 주 빌보드 200에 첫 날 판매량 13만장을 기록하며 2위에 오르며 복귀를 알렸다. 그는 자신의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할수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준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2.5. 8집
동년 10월에는 8집 'Sob Rock'의 수록곡 'Last Train Home'을 발라드 버전으로 내놓았다.
가끔씩 혼자서 어쿠스틱 기타하나들고 서프라이즈 콘서트 형식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최근에만 해서 애틀랜타의 Eddie's Attic, LA에 위치한 Hard Rock Cafe나 다른 공연장에 깜짝 서프라이즈로 나타날때가 있다. 그때는 대부분 혼자서 루핑페달과 이펙터몇개 혹은 어쿠스틱 기타 딸랑하나만 가지고 오는데, 밴드의 웅장함은 없지만 독주만이 가진 매력을 잘 표현해내는 편이기도 하다. 특히 4집 Battle Studies의 Heartbreak Warfare는 앨범버젼과 어쿠스틱버전의 느낌이 상당히 다른데, 둘다 잘 어울린다. 팬들은 차라리 어쿠스틱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오기도 한다.
그 염원이 이루어졌는지, 2023년에는 존 메이어 혼자서 무대에 나와 기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솔로 투어를 하는 중이다.
2023년 10월에는 2024년 유럽/영국 솔로 투어 후 앨범 제작을 한다 밝혔다.
3. 투어링 밴드
앨범 홍보를 위한 전국투어 및 월드투어를 돌때는 밴드를 꾸려서 하는데, 존메이어의 밴드에 참여했던 세션 뮤지션들 역시 경력이 뛰어나다. 미국현지에서 이들의 이름은 앨범을 잘 들여보면 세션뮤지션으로 참여한 앨범양으로는 엄청난 수준이다. 트리오를 한 Steve Jordan는 드러머, 또 음반 프로듀서로써 역량이 상당하며 에릭 클랩튼의 세션 드러머로 활동하기도 했고, 트리오의 베이시스트인 피노 팔라디노는 영국의 락밴드 The Who의 세션 베이시스트로 활동한 경력이있다. 1집부터 3집까지 함께한 David LaBuryere 혹은 DeLa 역시 현재는 솔로음반도 몇장 냈다. 4집 투어 때 Steve Jordan의 대타로 들어온 드러머가 Keith Carlock. 이분은 참고로 재즈밴드의 거장 스틸리 댄의 드러머로 참여한 경력이 있다. 4집부터 참여한 버클리 음악대학 출신 베이시스트 Sean Hurley는 수많은 팝 아티스트 앨범에 베이시스트로 참여한 경력이 있다. 존 메이어와 같이 다니는 투어링 뮤지션들은 엄청난 실력파 뮤지션들이다. 3집 투어 및 Where the Light Is에 기타 세션에 참여하신 Robbie McIntosh는 슬라이드 기타 및 기타세션뮤지션으로서 엄청난 유명세를 치르는 기타리스트인데 이런 사람들과 벌써 40대가 되기전에 손발을 맞춰봤다는 것 자체가 뮤지션으로서 아니 기타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런 실력파 뮤지션들과의 조우덕에 존메이어 콘서트가 다른 아티스트보다 한단계 높은 이유이기도 한다.4. 사용 장비
자세한 내용은 존 메이어/사용 장비 문서 참고하십시오.5. 디스코그래피
자세한 내용은 존 메이어/디스코그래피 문서 참고하십시오.6. 여담
- 1집 Room for Squares로 성공적으로 데뷔한뒤, 그의 블루스를 기반으로한 음악성보다는 사생활문제로 몹시 말이 많았다. 일단 여성편력이 매우 화려하다. 그동안 스캔들이 있었던 여자만 해도 제니퍼 러브 휴잇, 제시카 심슨, 제니퍼 애니스톤, 르네 젤위거, 테일러 스위프트, 케이티 페리 등 엄청 많다(...). 그의 사생활 문제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플레이보이 잡지와의 인터뷰를 들 수 있는데, 문제가 된 인터뷰 내용을 짤막하게 옮기자면, 당시 교제하던 여자친구 제시카 심슨과의 관계가 너무 좋다며(...) 그녀를 네이팜탄 (sexual napalm)에 비유했다. 이에 대해 심슨은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서 "정말 화가 난다. 난 내 침대 생활에 대해 누가 알기를 원치 않는다"라며 불쾌감을 표시했고, 영국 매체 '더선'은 "존 메이어가 발표한 앨범보다 더 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고 전하며 그를 비꼬았다. 이렇게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다가 결국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마는데, "나는 성관계에 관해서는 백인 우월주의자이며, 흑인 (n*****) 여자들에게는 매력을 느낄수 없다"는 발언으로 미국 내 매체와 포털로부터 무척 욕을 먹었다.
그러고 며칠 뒤 콘서트에서 눈물 흘리면서 사과했다.혹자는 이르길 "신은 존 메이어에게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작곡 능력, 감성적인 목소리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손가락을 주셨지만, 동시에 최악의 패션센스 [22]와 바람둥이 기질, 그리고 트위터도 함께 주셨다." 고도 평한다.
- 하지만 이러한 사생활 문제도 언제부턴가 사그라들고 있다. 위의 흑인비하발언에 대해서는 공연 도중 연주를 멈추고 자신을 "오만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칭하며 그렇게 말하면 멋있는 줄 알았다, 자신이 비난받아 마땅하고 다른 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그로인해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며 눈물을 흘리면서 사과했다. 2015년 경 케이티 페리와 완전히 결별한 후로는 더 이상 이렇다 할만한 열애설도 나지 않았다. 본인은 이제 어서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는 듯. 4집 이후 슬럼프가 오면서 뉴욕과 LA를 왕복하며 살다가 인적이 드문 몬태나주의 작은마을 Bozeman으로 이사. 콘서트나 전국투어를 안할때에는 그곳에서 조용히 지낸 적도 있다. 2018년 부로는 베벌리힐스에 위치한 집[23]을 구매해 다시 LA에서 거주 중이다.
- 영국에서 비디오 관련업에 종사하는 Eastwood Allen 이라는 팬이 2014년까지 그의 연대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상이 유튜브에 있는데, 상당히 고퀄로 만들었다. 자신도 직접 그걸 보고 너무 잘 써줘서 고맙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고는 엄청 늦게 답을 보내서 미안하다고했다...다큐멘터리 링크는 여기있다. 직접 보자. 상당히 디테일있게 유년기부터 Paradise Valley가 나온 2013년 여름 시점까지 잘 짜여진 다큐멘터리다. 영어능력자이고 존메이어의 팬이라면 한번 보는것도 추천한다. 참고로 이 팬은 4집 Battle Studies에 있는 Assassins이란 노래의 뮤직비디오도 자체제작으로 만들었는데 상당히 고퀄이며, 이 영상은 4집 투어때 쓰여졌다. Asasassin 팬제작 뮤직비디오 링크
- 4집 앨범 이후, 성관계 발언, 플레이보이 인터뷰, 인종차별 발언등등으로 각종 크리를 먹고, 조용히 5집앨범 녹음하는 중에 성대에 육아종이 발견되었는데, 그것 때문에 앨범 발매 그리고 녹음 작업이 지연되었고, 어찌어찌 수술을 받아서 제거한 뒤 앨범 작업을 끝내고 출시하고 투어 준비 중에 다시 육아종이 같은 곳에서 발견, 5집 투어를 완전 취소해야 했다. 참고로 육아종의 치료 방법은 육아종을 잘라낸뒤 성대부분에 보톡스를 주입, 성대를 완전히 마비시켜서 회복하는 것인데, 이것 때문에 노래를 부를수가 없었다. 이는 휴식을 목적으로 산 몬태나 주에 사놨던 별장으로 한동안 이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육아종 때문에 활동을 쉬는 동안 말을 못하는 바람에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소통을 아이패드와 키보드로 하고 레스토랑에서 음식 주문할 땐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해결해야했는데, 그때 만난 여자친구가 바로 케이티 페리. 그녀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회복에만 집중하게 해주는 덕분에 성공적인 6집 컴백을 할수 있었다. 특히 6집 활동 당시에는 커리어 초반부터 4집때까지의 존 메이어와는 다른 좀더 성숙해진 모습이 종종 보였고, 케이티 페리와는 "연예인 공개연애의 느낌이 아니라 정말 사람 대 사람으로 사랑하는 느낌이다"라는 발언도 하여 멀어진 팬심도 돌리게 되며, 둘이 행복하게 결혼까지 하는 듯하였으나
천조국 가십거리에서는 그딴거 없다.결국 헤어졌다.
- MSNBC와 인터뷰도 했는데, 자신은 "Recovered Ego Addict"(회복한 자기애 중독자)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래미 시상식등이 끝난 뒤에는 뒷풀이 파티 등에 가지 않고 그냥 조용히 집에 간다고 한다.#
- 문신이 꽤 많다. 그의 오른쪽 팔에는 그를 블루스 세계로 이끈 그의 히어로, SRV의 스펠링이 새겨져 있고, 왼팔 전체엔 2008년 일본에서 체류할 때 받은 이레즈미 문신이 있다. 거의 두 달간 매일 타투샵에 가서 받았다고.
- 비즈빔 의류들을 즐겨 입는 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약 55,000(..) 달러 어치의 비즈빔 의류들을 소유하고 있다.비즈빔 이외에도 하이엔드 스트릿 브랜드에 관심이 아주 많다. Off-White, 슈프림 등등.. 특히 일본 브랜드들인 더블탭스, 네이버후드등의 브랜드를 즐겨입는다. 아크로님 같은 테크웨어등도 소화하며 예전과 달리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 열성적인 시계 수집가로 정평이 나 있다. 2001년 1집 발매 후 제대로 된 수입이 생기기 시작한 후부터 모으기 시작했으며 가지고 있는 컬렉션만 1000만 달러 이상을 호가한다고 한다. 시계 수집가가 많은 할리우드에서도 가장 시계를 사랑하는 수집가 중 한 명으로 통하며, 그의 새로운 컬렉션이나 시계에 관한 평 하나 하나가 시계 업계에서는 관심의 대상이다. 2013년에는 시계 업계의 오스카라 불리는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 (Grand Prix d’Horlogerie de Genève)의 심사위원을 맡은 적도 있다! 당연하겠지만 공연, 시상식 등 공식 석상에도 항상 시계를 착용하고 나타난다. 그의 컬렉션과 시계 철학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시계 매거진 호딩키 (Hodinkee)와 진행한 인터뷰 영상을 참고하길. [24] 2024년에는 오데마 피게와 협업을 했다.
- 달변가이다. 인터뷰 영상 등을 보면 말을 할 때 더듬거나 허사(filler word)를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수준급의 어휘를 구사한다.[25] 플레이보이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인지 이런 그의 모습을 의외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성장배경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중학교 영어 교사였던 어머니가 아들들이 밥상에서 뜻을 정확히 모르는 단어를 사용하면 당장 사전을 가지고 와서 정확한 뜻을 직접 찾아 알려주셨다고. 본인이 직접 자신을 달변으로 만든 사람은 어머니라고 밝혔다.#
- 헤일로 2의 음악 디렉터인 마티 오도넬이 애니버서리 발매 기념 인터뷰에서 한 말에 따르면, 헤일로: 전쟁의 서막의 광팬이었으며, 헤일로 2가 제작 중이라는 소식이 듣자 에이전트와 마이크로소프트를 통하지 않고 직접 번지에게 찾아와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간곡히 요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 곡의 기타리스트로 참여했지만, 그 사실은 에이전트가 알게 되면 노발대발할 게 뻔했기 때문에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고 한다. 그 곡이 어떤 곡인지는 밝히지는 않았으나, 그 때 배경으로 흐른 곡은 Vol.2에 수록된 Epilogue였다.
- 음악 듣는 폭이 꽤 넓은 듯 하다. The Police의 Message In A Bottle #[26], 라디오헤드의 Kid A # 등 그의 음악과 멀어보이는 영국 밴드들을 커버한 이력이 있다. 존의 팬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부분이겠지만, 특유의 음색과 창법 덕분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그의 노래라고 생각하기 쉽다.
- 2021년 현재는 트위터는 공식 홍보용으로 쓰이고 코로나 19로 인해 공연을 못여는 만큼 팬들과는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자주 소통을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으로 라이브를 들려주거나 틱톡을 통해 잼, 듀엣 등 챌린지도 자주 하는편.
- 1월 15일, 본인의 인스타그렘을 통해 자신이 참여중인 프로젝트인 Dead & Companey의 전신이자 전설적인 록밴드 Grateful Dead의 리더, 제리 가르시아의 기타 'Wolf"의 빌더 Bill Asher에게 직접 레플리카를 의뢰한 후, 수령하였다는 것을 알렸다.
존메이어는 이미 2019년도에 Wolf의 원본으로 Dead & Companey 공연에서 직접 연주한 경험이 있는데, 이 레플리카는 그 Wolf의 원본을 충실히 재현해내는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 10월10일 어니볼에서 시그니쳐 스트링을 발매하였다.
7. 수상 목록
7.1. 그래미 어워드
19회 후보 지명 총 7회 수상 # | |
2002년 | Best Male Pop Vocal Performance (Your Body Is A Wonderland) |
2004년 | Best Male Pop Vocal Performance (Daughters) |
2004년 | Song Of The Year (Daughters) |
2006년 | Best Pop Vocal Album (Continuum) |
2006년 | Best Male Pop Vocal Performance (Waiting On The World To Change) |
2008년 | Best Solo Rock Vocal Performance (Gravity) |
2008년 | Best Male Pop Vocal Performance (Say [27]) |
8. 관련 문서
[목록] 자세한 내용은 이곳 참고[2] 전반적으로 모던 블루스/텍사스 블루스/컨트리/로커빌리/팝 블루스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3] 이 호칭은 미국의 음악지 롤링스톤의 1020호(2007년 2월)에서 "New Guitar Gods"라는 특집 기사이다. 나머지 두 명은 존 프루시안테와 데렉 트럭스인데 이 둘도 사실 걸출한 기타리스트들. 다만 언급했다시피 이 3대 기타리스트라는 게 공식적인 직함이 아니라 그저 한 음악 잡지의 선정이라는 것은 알아두자. 기존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중 에릭 클랩튼의 싱어송라이터 포지션을 이어받았다.[4] John Mayer Signature 라인이 나오는데, 펜더 시그니쳐 모델 중에 제일 쓸만하다는 평도 있다. 일단 스티비 레이 본 시그네쳐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모델이라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픽업도 텍사스 스페셜 픽업의 개량형인 Big Dipper 를 장착하고 있는데, 상당히 비싼 픽업이라서 중고로 사려면 픽업만 50만원을 호가한다(...). 또한 넥감이 끝내주기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에릭 존슨 시그니쳐를 더 쳐주는 분위기도 있다.[5] 에릭 클랩튼의 그 별칭을 클랩튼 본인으로부터 물려 받았다.[6] 심지어 전연령대로 넓혀도 무방하다. 한국 연기판의 하정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듯. 젊지만 노년의 연륜과 비등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7] 애시당초 롤 모델이 지미 헨드릭스/스티비 레이 본이다.[8] 아버지는 1927년생, 어머니는 1947년생으로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즉 존은 아버지 나이 50세에 태어난 셈(...). 부모님은 이후 2009년에 이혼했다.[9] 이 때문에 후에 존 메이어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머쥐자 버클리에 스트라토캐스터로 블루스를 연주하며 목소리를 내리 까는 기타리스트들이 속출하였다고 한다.[10] 자퇴했지만 학교와의 관계는 매우 좋은듯, 토모 후지타(존이 Neon 에서 쓰는 핑거 피킹 스타일은 이 사람의 슬랩 기타와 찰리 헌터의 연주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와 합연하는 동영상이 올라오기도 하고, 비정기적이지만 버클리에서 클리닉 강의를 하기도 한다. 또한 존 메이어의 현재 베이시스트가 버클리음대 출신 음악가인 션 헐리(Sean Hurley)다.[11] 전 각주에서 토모 후지타가 존메이어 시그니처를 쓴다했지만 이 분은 스티비 레이 본 시그니처를 쓰신다.https://youtu.be/AZ1HQEBhqbE?t=248 이 기타는 존메이어가 고교 졸업 후에 주유소기름냄새 맡아가며알바로 돈을 모아 산 기타이기도 하다.[12] 참고로 Clay Cook은 컨트리 성향이 꽤 짙은 뮤지션이었다. 이 당시 어쿠스탁팝 방향을 지향하던 메이어와는 확실히 안맞은 면이 있는편. 하지만 여전히 서로 교류도 하며, 서로 투어때 깜짝게스트로 출연해 같이 합주도 몇번했다.[13] 이 재녹음 과정에서 노래 3x5가 추가 되었다.[14] 신인상이 아니다.[15] 본인 왈, "나는 여자를 사귀는데 있어서 백인우상주의자이며, 흑인여성들에게는 잘 끌리지않는다..."[16] 사실 어쿠스틱보다 블루스 곡들이 존 메이어의 색감을 잘 나타내기 때문에 상징성을 띠고 있을 뿐 정식으로 오버클래스 데뷔 후에는 일렉트릭기타를 사용한 블루스 곡의 발표 횟수가 눈에 띄게 적다.[17] 3년만의 발매인데도 당연하다는 듯이 발매 첫주부터 음반 판매량 1위[18] 테일러 스위프트를 겨냥한 디스곡이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19] [20] 이것도 원래 비밀에 붙일려고 했는데, 같이 작업한 프로듀서 Steve Jordan이 인터뷰 중에 제목을 말해버렸다. 아 씨바 할말을 잃었슴다...[21] 2017년 12월까지 매월 4곡씩 꼬박꼬박 푼다는 가정하에...[22] 언젠가부터 패션센스가 많이 나아져서 꽤 세련되게 입고 다닌다. 본인도 패션에 꽤나 관심이 많으며 본인만의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는 평.[23] 이 집의 전 주인은 애덤 르빈과 그의 아내 베하티 프린슬루였다고 한다.[24] 2019년에 업로드된 이 영상에서 존은 그 동안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시계였던 롤렉스 데이토나 그린 골드 에디션을 소개하며 언젠가는 수집가들이 그 진가를 알아봐 줄 시계 중 하나로 평했는데, 이런 그의 평이 무섭게 영상이 올라가자마자 이 시계의 값이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린 골드 에디션이 'John Mayer Daytona'로 통하게 된 것은 덤. 그가 시계 업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25] 이러한 특징은 그의 곡들에서도 드러나는데 존 메이어 곡들의 가사는 은유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26] 특히 이 곡 같은 경우는 폴리스의 2007년 Live Earth 무대(feat. 카녜 웨스트) 무대에서 함께 협연한 적도 있다.[27] 영화 버킷리스트 삽입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