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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white> 평양지하철도 平壤地下鐵路 | Pyongyang Metr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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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02589> 명칭 | 정식: 평양지하철도 한자: 平壤地下鐵路 영문: Pyongyang Metro |
국가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개통 | 1973년 9월 9일 |
총 거리 | 22.5km |
노선 수 | 3개 |
역 수 | 17개 |
운임제도 | 단일요금제(150원)[1][2] |
운영기관 | 사회안전성/평양지하철도 관리국 |
연간 수송 | 1억 950만~2억 5,550만(추정치) |
궤간 | 표준궤 1,435mm 철차륜 |
전기방식 | 직류 825V |
집전방식 | 제3궤조집전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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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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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지하철도 노선도 (2024년 9월 기준)[3] |
지하철 건설을 주제로 한 선전화. 김일성 주위가 빛나고 있다. |
영광 → 개선 주행영상 | 페이스北 영상 |
공식 소개영상
1973년에 개통된 북한의 수도 평양의 도시철도. 북한의 유일한 지하철이기도 하다.[4] 정식 명칭이 평양지하궁전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한데, 지하궁전이라는 명칭은 지하철의 장식이 화려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일 뿐 정식 명칭은 아니다. 정식 명칭은 '평양 지하철도'이며, 관할 기관은 평양지하철도관리국이다.[5]
[vimeo(102051605)]
위의 영상은 평양의 모습을 타임 랩스 기법으로 촬영·편집하여 제작한 것으로, 도중에 평양 지하철 역사 및 전동차 내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역 입구부터 개찰구, 역 내부 구조 등 많은 면에서 구소련 지하철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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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기지는 붉은별역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서포역 인근에 존재한다. 바로 옆에는 평라선이 달리고 있다. 차량기지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전반적으로 서쪽과 북서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남동쪽이 터널 입구다. 평라선과 직결이 가능한 인입선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먼 이유는 평양 지하철의 깊이가 평균 100m에 달하는 극대심도[6]라 지상으로 올라오는데 많은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철/전철을 제외한 지하철 노선은 2개이며 환승역은 전우역-전승역 하나로, 남한의 주요 도시철도들에 비해서는 매우 단촐[7]하다. 매월 첫 주 일요일에는 유지보수를 위해 모든 노선의 운행이 중지된다. 지하철 노선의 규모가 매우 작기 때문에 가능한 것.
2. 운행 노선
1968년 착공하여 1973년 9월 6일 천리마선 봉화역에서 붉은별역까지, 1975년 10월 혁신선 혁신역에서 락원역까지 개통하였다고 전한다. 1978년 9월에는 혁신선 혁신역에서 광복역까지 추가로 개통하고, 1987년 4월 10일 천리마선의 연장선인 만경대선이 부흥역까지 완전 개통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다만 이후 경제난에 시달리며 북한의 경제가 과거보다도 더 악화되면서 무려 36년째 신규 구간이 개통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장 오래 신규 개통 소식이 없는 지하철은 아니다. 글래스고 지하철[8], PATH, RTA(클리블랜드 지하철),[9] 필라델피아 지하철(SEPTA, PATCO)가 평양지하철도보다 더 신규 개통이 없다.
1974년 8월 15일 개통된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 수도권 전철 1호선보다 1년 일찍 개통되었다. 즉, 한반도 최초의 지하철이며[10] 아시아의 도시 가운데는 7번째로 개통되었다.
다만 서울 지하철 건설 계획 자체는 1960년대 후반부터 논의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북한과는 별로 상관없이 결정된 것이기는 하다. 물론 체제 경쟁이 심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북한이 먼저 건설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더욱 자극될 수밖에 없던 시절이기에 재빠르게 개통한 느낌도 아예 없지는 않다.
물론 서울 지하철의 개통이 평양보다 늦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서울시장을 지낸 김현옥이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답게 하도 공사를 벌려서 개발하다보니까 막상 지하철 건설에는 쓸 돈이 없어지는 바람에 건설이 늦어진 것이 가장 크며, 후임 양택식 시장이 여의도 땅을 팔고 외국 차관도 좀 얻어오고 나서야 서울 지하철 건설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개통이 늦어진 것이다. 1기 지하철 계획이 처음 나온 게 1967년(최종 확정은 1971년), 심지어 그때 수도권 전철 5호선 계획도 미리 세워져 있었다. 1974년이면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초창기 계획(1971년)[11]도 나왔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평양 지하철 직후, 서울 지하철 직전에 개통된 지하철은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 메트로(1974년 5월 9일).
실제로 대한민국 매체에서 평양 지하철이 서울 지하철보다 빨리 개통되었다는 것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만 놓고 본다면) 1985년 동아일보 방북 기사다. 사실 1985년 정도가 되면 평양은 2호선 정도가 개통된 반면에 서울은 4호선, 부산에도 1호선이 뚫려서 지하철 스펙 경쟁에서는 완전히 승리한 시점이었고, 수해가 났을 때 북한에서 쌀도 받아먹을 정도[12]로 꽤 유화책을 쓰던 시기이니 별 신경 안 썼을 듯하다. 다만 평양에 지하철이 있다는 것 자체는 자수 간첩의 폭로 기사를 통해 지나가는 말로나마 1976년 10월에 언급되기도 했다.#
원래 계획은 천리마선 봉화역 아래로 대동강을 하저터널로 지나서 강 동쪽 지역까지 지하철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1971년 봉화역 건설 도중 하저터널이 붕괴되어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이후 5번에 걸친 시도 끝에 하저터널안은 폐기되었고, 대동강 건너편 시가지는 지하철 대신 평양 궤도전차를 만들어서 커버하고[13], 지하철은 그 대신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맞아 김일성의 생가인 만경대 방향으로 2개 역을 추가로 개통하는 만경대선을 신설하게 된다. 그래서 동평양 개발 계획이 김정은 이전까지는 대한민국의 1970~1990년대 강남 대개발처럼 의욕적으로 진행되지 못해서 현재도 동평양이 서평양보다 뒤떨어지는 동네라는 이미지를 만들게 되었다.[14] 참고로 평양 지하철이 가장 많이 참고한 구 소련 모스크바 지하철의 경우, 냉전 시절에 지어진 노선 역시 미국과의 핵전쟁을 대비해 깊게 짓긴 했지만 모스크바 강을 지날 때는 지상으로 올라와 다리로 건넌다(보로비요비 고리 역). 소련 초창기에 지어진 노선은 모스크바의 지형과 관련이 있다.
노선은 혁신선(20km), 천리마-만경대선(14km) 이 있으나, 환승역은 천리마선 전우역/혁신선 전승역 하나밖에 없다.[15] 유사시 방공호로 쓸 수 있도록 깊게 건설했다.
1995년 김일성의 관저였고 김일성의 엠버밍된 시체가 보관된 금수산태양궁전 앞의 광명역이 폐쇄되었고, 인근의 삼흥역에서 출발하는 셔틀 노면전차를 운행하고 있다.
2.1. 연장 계획
김정은대에 들어서 만경대선 연장 계획이 세워졌다. 일부 탈북민들의 증언으로는 실제로 붉은별역에서 룡성 방면으로 연장할 계획이 대략 80년대쯤부터 세워졌지만 련못동 북부 지하에 수맥이 흐르고 있어서 그냥 손 놓은 상태다. 평양 북부의 평성시와 은정구역은 과학 단지로 많은 과학자들이 이곳에 몰려있으니 북한 당국으로서도 유사시 신속한 대피 수단인 지하철 건설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리 없을 것이다.일부 안내기는 연장을 감안한 듯하다. 저 기준이라면 혁신선은 광복역에서 서쪽으로 광복거리를 따라 2개역, 천리마선은 붉은별역에서 북쪽으로 2개역이 연장될 예정.
3. 운행
출퇴근 시간에는 5분 간격으로, 평시에는 10분 간격으로 4량 1편성의 열차를 운행하는데 첫 차는 5시 반, 막차는 9시 반이다. 9시 반이 되면 군인이 지하철 입구를 차단한다. 막차의 출발은 9시 45분에 하는데, 9시 반에 입구를 통과한 사람이 승강장까지 오는 시간을 배려한 것이다. 그리고 환승역에서는 다른 노선의 막차를 타고 온 환승객을 기다린다고 또 20분을 대기한다. 그러다 보니 환승역 쯤에서는 11시가 다 되어서도 잘하면 탑승이 가능하기 때문에, 입구를 차단하고 있는 군인에게 몇 푼 주면 슬쩍 열어준다고 한다.전력난이 심각할 때는 출퇴근 시간대에만 운영하기도 했는데, 남한도 1970년대 오일 쇼크 당시 전철 운행 편수를 줄였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전동차가 가속을 하면 무려 100여 가구의 전기를 사용하다 보니 어쩔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운행하는 열차도 최대한 전력을 아끼려는지 객실 내 조명을 일부만 켜놓고 운행했다고 한다.
북한 정권이 공식적으로 운용하는 고려여행사 평양 관광 코스에 포함되며, 이를 통해 외국인들이 평양의 지하철 체험을 하게 된다. 다만 전 구간을 모두 이용할 수는 없고, 천리마선 부흥~개선역 사이의 구간만 탑승할 수 있다. 천리마선 잔여 구간이나 혁신선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외국인 이용 금지이며, 특별 여행을 통해서만 승차할 수 있다.
90년대 말 울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방북할 당시 몇몇 기자들이 북측 가이드를 따돌리고 시내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이때 가본 지하철은 운행이 중단되어 있고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평양 지하철이 평상시엔 가동을 중지해있고 외국인이 올 때만 공개용 전동차를 운행한다는, 그리고 열차에 타고 있는 승객들은 전부 연기라는 설까지 나돌았다. 그래도 운행 시간에는 개방은 하는 듯. 그러나 2000년 초, 중반 북한 주재 영국 대사였던 존 에버라드는 지하철이 꽤 다닌다고 하였으며, 가끔씩 아무의 제지도 없이 타고 다녔다고 하였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평양을 제외하면 지하철이 일절 없기 때문에 지방 사람들이 평양에 들릴 때마다 방문하는 일종의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이건 대한민국도 지하철 개통 초창기에는 지방 사람들이 지하철이 뭐냐면서 구경하려 오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승차권은 남한에서 쓰던 버스 회수권처럼 10개가 붙어 있는 방식이다.[16] 토큰형 승차권, 종이형 승차권, 카드형 승차권.
운임은 2002년 경제 개혁 조치 이전에는 10전, 이후 5원. 2010년대 들어 평양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취재에 의하면 NFC카드 인식 개찰기를 도입하고 있다. 사진. 일부 역에서 시범으로 도입하다가 얼마 후 모든 역으로 확대했다. 카드 가격은 5천원인데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탑승료는 5원. 카드 살 돈이면 지하철 천 번은 타는데 누가 사겠나 싶겠지만, 실질 환율이 1달러에 8천원이 넘기 때문에 큰 돈이 아니라서 자주 타는 사람은 대부분 구입한다고 한다. 아직 카드 충전기 같은 장비는 없고, 매표소에 직접 카드와 돈을 제출하면 역무원이 충전해주는 식으로 되어 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상시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카드를 구비하고 있고 이는 다시 말해 1회권으로 승차하는 사람들은 외지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라서 검문 등으로 상당히 귀찮다고 한다. 외국인이나 교통카드 미소지자는 역무원이 확인하는 별도 통로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소지품 검사라든지, 절차가 상당히 귀찮은 모양이다. 남한도 고속도로 하이패스 장비를 구비할 돈(10~25만원)이면 고속도로 통행료를 수십 번에서 많은 경우 100번까지도 지불할 수 있지만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귀찮아서 하이패스 장착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 듯 하다.
선전 수단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평양의 주요 지점을 통과하고 다니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만 되면 사람이 붐비는 풍경은 남한의 여느 지하철과 유사하다. 덧붙여서 평양에서는 일반 주택에서 에어컨 쐬는 것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기도 하고, 평양 근교 지역에서는 전력이 끊기는 상황도 벌어지니 무더운 여름철이나 추운 겨울철에는 무더위나 추위를 피하려고 사람들이 많이 붐비기도 한다.[17]
2010년대 말에는 조명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하고 구내 매점도 생기고 스크린 TV로 열차 출발, 도착 시간을 알리는 등 이전보다 많이 화사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4. 전동차
투입된 열차는 자체 개발하여 중국에도 수출을 했을 정도라고 북한 당국에서 선전해왔지만, 실제로는 2024년 현재, 1950~60년대 서베를린에서 사용하던 전동차를 중고로 구입한 것이 주력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도입한 전동차가 동독 해체 후 베를린 지하철에서 사용한 열차였다. 평양 지하철의 모든 차가 전부 독일 차는 아니고, 이 문서를 보면 중국에서 만든 차도 있는 듯하다. 베를린에서 사용하던 차의 최고 속도는 70km/h이며, 중국 장춘에서 만든 차는 90km/h까지 낼 수 있다는 듯하다. 전동차는 매우 낙후된 수준이다. 4량 운행이며 문은 닫히는 것은 자동인데 베를린 U반처럼 여는 것은 수동이다.[18] 출입문에 손잡이가 달려있는 것이 이것 때문이다. 출근 시간이나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평양 행사가 있는 날에는 사람이 너무 꽉 차서 문을 열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독일 지하철 중에서도 구형에 해당한다. 1950년대 개발된 차량으로 1960년대 중반 서베를린에서 퇴역한 전동차를 중고로 구매하여 아직까지 굴리고 있는 것. 동력은 직류 1500V, 교류 25000V 가공전차선이나 경전철의 직류 750V 제3궤조집전식으로 달리는 남한과 달리 모스크바 지하철 및 구 소련의 영향을 받아 직류 825V로 달리는 제3궤조집전식이다. 근데 꼴에 1, 2차분이 있는지 1차분은 상부 개폐식 창문이고 2차분은 2분할 통유리 창문이다.
그러다가 김정은의 지시로 신차가 개발된 듯하다. # # 사용하던 전동차가 너무 낡아서 중국에 신차를 주문하라고 했는데, 중국에서 대당 100만 달러를 부르자 자체적으로 그만한 돈이 없었던 기관에서 김정은에게 결재를 올렸고, 김정은이 200만 달러를 주면서 그럼 이 참에 개발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차가 투입되었다. 그러나 신차 투입 이후 촬영된 구글 지도 파노라마나 외국인들의 영상을 보면 십중팔구는 구형인데, 제작비라고 준 게 200만 달러라서 몇 량 못 만들었다고 한다. 신차에는 LCD로 역이나 일기예보 등을 안내하는 등 신문물이 있어서 도입 초기에는 일부러 신차를 기다렸다가 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나라처럼 차량 끄트머리의 좌석은 특정인들을 위해 지정되어 있지만 노약자나 임산부, 환자, 장애인이 아니라 공화국영웅이나 로력영웅 같은 영웅 칭호 소지자나 영예군인(상이군인), 전쟁로병(한국 전쟁 참전 경력이 있는 노인)들의 자리로 지정되어 있다. 노약자보다 전쟁 용사를 우대하는 정책은 프랑스 등의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 최근에는 노약자석과 아기 어머니석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노약자나 아기 어머니가 없을 때는 다른 사람도 앉을 수 있다고 한다.
4.1. BVG D (서독)
평양 지하철에서 운용하는 모습 | |
베를린 지하철에서 운용중인 모습 | |
차내 | |
열차 형식 | 도시철도 입선용 통근형 전동차 |
구동 방식 | 전기 동력분산식 열차 |
급전 방식 | 직류 750V → 직류 825V (제3궤조) |
최고 속도 | 70km/h |
기동 가속도 | 4.14km/h/s |
제작 회사 | DWM, O&K |
제작 년도 | 1957-1965년 |
도입 년도 | 1999년 |
제동 방식 | 전자 직통 공기 제동 |
제어 방식 | ? |
편성 | 2 + 2량 |
현재 평양 지하철에서 많이 쓰이는 차량이며 평양 지하철의 얼굴마담이기도 하다. 서베를린 지하철에서 사용되던 차량으로 무려 1950~60년대에 제작된 차량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서독에서 개발되었고, 1957년부터 베를린 지하철에 사용되었다. 서베를린에서는 60년대 이후 퇴역하고 신형 모델로 대체되었으나 동베를린에서는 오랫동안 계속 운행되었다.[19] 1980년대 초 동베를린 지하철 연장 노선 때문에 초기형 편성 일부가 동독으로 매각되었다가, 독일 통일 이후 신차 도입으로 인하여 영업 운행에서 제외되었다. 1997~99년 북한에서 이를 다시 중고로 구매했다. 당시 독일에서 차령 40년이 넘은 폐품으로 내놓은 전동차를 들여왔다고 하나, 차령 20년밖에 안 되었던 중국산 전동차보다는 훨씬 월등했다고 한다.
다른 차량들처럼 일부가 평의선에서 통근열차로 운행 중이라는 말이 있다.
참고로 베를린 지하철에서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3년 동안 5호선의 U55 구간에서 부활 운행을 한 적 있는 차량이다. 이 당시에는 5호선에 차량이 워낙 부족했기 때문.
4.2. 자주호 (북한)
조선우표에 그려진 모습.
프로토타입 차량이다. 1974년 김정일이 탔으나 더 이상 운행하지 않고 박물관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에서는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우표에 있는 외형은 소련 시기에 생산된 Е형 지하철 전동차와 전두부 및 4비차 구성이 유사하다. 실제로 Е형 전동차는 소련 외에 부다페스트 지하철 2호선 및 3호선, 프라하 메트로에도 도입되었고, 이들의 개통 시기도 평양지하철도보다 살짝 앞선다.
아직 자세한 사양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의 지하철 박물관 격인 지하철혁명사적관에 북한산(북한 입장에서는 국산) 최초의 전동차가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 차량일 가능성이 있다. #
4.3. DK4 (중국)
평양 지하철도에서 운용하는 모습 | |
원본인 베이징 지하철에서 운용하는 모습 | |
차내 | |
열차 형식 | 도시철도 입선용 통근형 전동차 |
구동 방식 | 전기 동력분산식 열차 |
급전 방식 | 직류 750V → 직류 825V (제3궤조)[20] |
설계 최고속도 | 90km/h |
기동 가속도 | 3.6km/h/s |
제작 회사 | 창춘 궤도객차 |
제작 년도 | 1972-1973년 |
도입 년도 | 1973년 |
제동 방식 | 전자 직통 공기 제동 |
제어 방식 | ? |
편성 | 3량 |
평양 지하철이 개통하던 당시부터 사용되던 기종이다. 1972년부터 1973년까지 중국에서 제작되었다. 2007년에 평양 지하철에서 전량 퇴역하였고, 상당수가 개조되어 지방 도시에서 통근열차 비슷한 걸로 굴러다니고 있다. 위 문서의 사진 속 차량도 이 차량이다. 여담으로 일부 차량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서 베이징 지하철 13호선에서 잠깐 운행한 적이 있었는데, 얼마 못 가서 전부 퇴역했다. 그 차량들이 다시 평양으로 갔는지 폐차됐는지는 불명이다.
4.4. 영광호 (북한)
지하철 박물관에 있는 모형.
415호, 즉 딱 1편성만 제작된 전동차. 현재는 운행되지 않는다. 여담으로 KBS 뉴스에 운행되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
자주호와 마찬가지로 아직 자세한 사양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4.5. BVG GI (동독)
BVG G형 전동차 모델이다. 원본 차량은 여전히 베를린 지하철에서 일부 운용 중이라서 북한에 못 가는 남한인들도 독일에 가면 타 볼 수 있다. 동독에서 개발했으나 동서독 통일로 인하여 잉여차가 되어 폐차가 예정된 편성을 북한 상황에 따라서 저렴하게 들여왔으며, 도입 시점에서 최대 차령은 19년으로 그나마 D형 차량보다는 새로운 차량이다.평양 지하철도에서 운용 중인 모습[21] | |
베를린 U반에서 운용 중인 모습 | |
차내 | |
열차 형식 | 도시철도 입선용 통근형 전동차 |
구동 방식 | 전기 동력분산식 열차 |
급전 방식 | 직류 750V → 직류 825V (제3궤조)[22] |
설계 최고속도 | 70km/h |
기동 가속도 | 4.14km/h/s |
제작 회사 | LEW 헤니히스도르프[23] |
제작 년도 | 1978-1982년 |
도입 년도 | 1997년 |
제동 방식 | 전자 직통 공기 제동 |
제어 방식 | ? |
편성 | 2 + 2량 |
독일민주공화국(동독)에서 1978년부터 1982년까지 제작된 차량을 1997년부터 중고로 120량을 반입한 차량이다.
당시 퇴역이 시작되던 DK4 차량을 잠시 대체할 목적으로 도입한 차량으로, 열차 폭이 다른 열차보다 30cm나 좁았고,[24] 그 때문인지 도입된 지 얼마 안 되어 BVG D형 차량이 도입되기 시작하자 2001년에 씨가 바싹 말라버렸다. 대신 지방 도시에서 통근열차로 쓰는 중. 집전장치를 달고 다닌다. #1, #2
4.6. 지하전동차 1호 (북한)
외부 | |
내부 | |
열차 형식 | 도시철도 입선용 통근형 전동차 |
구동 방식 | 전기 동력분산식 열차 |
급전 방식 | 직류 825V (제3궤조) |
설계 최고속도 | ?[25] |
기동 가속도 | ? |
제작 회사 | 김종태 전기기관차 연합기업소 (추정) 또는 중국산 |
제작 년도 | 2015년 |
도입 년도 | 2015년 |
제동 방식 | ? |
제어 방식 | 지멘스제 VVVF-IGBT |
동력장치 | 영구 자석 동기전동기 |
편성 | 4량 |
2015년에 도입한 신차로 북한에서는 김종태 전기기관차 연합기업소에서 개발한 것이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과거 독일제 차량을 선전했듯이 실제로는 중국제나 인도산, 러시아산 차량인데 북한 자체 개발이라고 우기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26] 구미권 사이트에서는 기존의 베를린 지하철 Class D 차량의 리뉴얼 버전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지멘스 사의 VVVF 인버터가 장착되었으며, 이는 북한 최초의 VVVF 철도 차량이다. 승차 가능 인원은 TC칸(운전실이 있는 칸) 210명, T칸(무동력객차)은 240명이라고 적혀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중국산 차량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차량의 특이한 점으로는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전동차에서 잘 쓰이지 않는 조괘 구동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것도 조괘 구동 방식에 VVVF 인버터 제어 조합이라는 상당히 희귀한 조합이다 보니[27] 구동음 또한 굉장히 특이하다. 일부에서는 남조선 지하철도 전동차[28]의 소리와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다.
아래는 일본의 교도통신이 취재한 북한의 신형 전동차 운행 영상.
속도 표시기에 43km/h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아 평시에는 시속 40km/h 정도로 운전하는 모양이다.
북한에서 올린 신형 전동차 홍보 영상(삭제됨) 현재는 영상 자체가 삭제되었다.
N'rail에 2016년 10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일본인 멤버가 올린 북한 철도 여행기에 찍힌 사진에 의하면 각 객차 후방부는 다음 객차와의 연결 통로 자체가 없어서(카페 가입 필요) 다른 칸으로 이동하지 못한다.
이 글에 따르면 원핸들 마스콘이고, 윈도우 XP의 작업 표시줄이 보이는 LCD 화면이 장착되어 있다고 한다.
본 영상은 2018년 9월 4일 게시된 영상으로 부흥역~영광역 구간의 운행 영상이다. 차 내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차 내 출입문 상단 LCD판에는 다음 역 연계 노선과 노선도, 환영 문구, 속도·온도·습도까지 나타내며 출입문 옆에도 TV 방송이 나오는 모니터가 추가로 장착되어있다. 대한민국의 수도권 전철과 대전 도시철도에서 볼 수 있는 임산부 배려석 자리에 교통약자석을 설치했으며, 분홍색인 다른 좌석들과 달리 주황색 커버를 씌워 구분하였다. 안내 표시를 보면 남쪽 지하철과 똑같이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유아 동반자 전용이라고 되어 있다.
다소 특이한 좌석도 있다. 미국에서 항공기에 제시된 입석용 의자로 보인다. #[29]
4.7. 2020년 공개 도안
열차 형식 | 도시철도 입선용 통근형 전동차 |
구동 방식 | 전기 동력분산식 열차 |
급전 방식 | 직류 825V (제3궤조) |
설계 최고속도 | ? |
기동 가속도 | ? |
제작 회사 | ? |
제작 년도 | ? |
도입 년도 | ? |
제동 방식 | ? |
제어 방식 | ? |
편성 | 4량 |
북한 국영 언론이 공개한 전동차이다. 사진의 배경을 봐서는 천리마선이나 혁신선에 투입되는 전동차인 듯하다.
내부는 100형 전동차와 유사하지만 좌석이 파란색이다. 아직은 도안만 나온 상태. 2020년 첫 관련 정보 공개 후 추가 정보는 없다. 애당초 고속철도 시안까지 포함한 컨셉아트에 가까운 개념이다.
5. 기관차
5.1. GKD5B
CRRC 다롄에서 제작한 입환용 디젤 기관차로, 지하 터널에서 차량기지까지 전동차를 끌고 오는 역할을 한다.
6. 시설
각각의 역사는 유사시 방공호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무조건 깊게 팠으며(깊이가 150m가 넘어가는 곳도 있다)[30], 이런 이유로 서해선 김포공항역이나 GTX처럼 깊숙이 내려가는 수준이다. 그나마 에스컬레이터라도 있으니 망정이었지, 너무 깊게 파서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나면 지옥의 등반 & 교통마비 확정이기 때문에 모든 역을 순회하면서 역당 한두 달 정도 역내 장비를 총 점검한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어느 역인가는 점검 중이라서 쓸 수 없다고. 층수로 따지면 대부분의 역이 지하 20층은 넘어갈 것이다.사실 평양 지하철이 건설된 가장 큰 이유는 교통 문제 해결이 아닌 군사적 목적으로, 주석궁과 순안공항을 잇기 위한 수단일 것이란 설이 있다. 김일성 사후 주석궁은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바뀌었으며, 이에 맞춰져 혁신선 광명역도 폐쇄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단순히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되었다고 하기에는 어폐는 있는 게 지하철이 건설되었을 당시의 평양도 서울만큼은 아니라도 한창 인구가 활발히 증가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자가용 보급은 별로 되지도 않은 데다가 버스는 증차해도 콩나물 시루 소리가 나왔을 정도로 터져나왔기 때문에 분명 지하철이 필요했다. 다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깊게 팠던 게 문제일 뿐. 거기다가 순안공항은 평양 시내에서 20 km가 넘게 떨어져 있는데 북한이 이런 긴 구간을 지하철로 연결할 의중이 있었는지도 불명이고, 무엇보다 순안공항 옆으로는 바로 평의선이 지나가고 순안역도 있는데 굳이 지하철을 여기까지 뚫을 필요가 있었는지는 미지수.
또한 북한에 수출된 전동차 수와 실제로 운행하고 있다는 전동차의 수가 다른 점을 들어 군사적 목적의 비밀 노선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탈북자들 증언 가운데에는 평양시 아래에 거대 지하 구조물이 건설된다는 증언을 한 경우도 있다. 다만 이건 북한이 일부 전동차를 개조해 지방 노선에서 통근열차로 사용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역사(驛舍)가 매우 화려한데, 역사 안에 상들리에를 달아놨고 엄청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는 소련이 만든 모스크바 지하철의 초호화 역사들을 참고했기 때문이다.[31] 먼저 개통한 베이징 지하철 1호선보다 훨씬 화려하다.
2012년 2월 3일에 유튜브에 업데이트 된 영상. 촬영은 일본인이 부흥역에서 한 듯하다.[32] 고풍스럽고 멋있는 내부와 깊이로 세계 10대 지하철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소련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와 동구권, 중앙아시아, 중국의 지하철에는 플랫폼 끝부분에 시계와 배차 간격을 알려주는 장치가 있는데, 평양 지하철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다른 곳은 대부분 디지털 시계인데 여기는 아날로그 시계다.
통신 등 제어 설비는 1970년대 이후 업데이트가 안 된 모양.
천장에 설치되는 역명판은 이렇게 생겼다. 대부분 역 공통.
각 역에는 이런 노선도가 붙어 있다. 혁신선 삼흥역과 락원역 사이에 간격이 좀 길게 나 있는 것으로 광명역의 흔적을 알 수 있다. 아래의 버튼을 누르면 경로가 표시된다.[33]
충전식 플라스틱 교통카드가 도입되었다. 노인석과 애기어머니석[34]이 운영되고 있다. 출처.
보통 지상에는 지하 역사로 내려가는 계단만 존재하는 남한의 지하철과 다르게 대부분 지상 역사가 있다.
7. 여담
- 안내방송이 없다. 그냥 열차 내 화면에 어떤 역인지만 보여준다.
- 역의 로마자 역명은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을 지키나 반달표(˘)를 제거한 표기법을 사용한다.
8. 매체에서
- 1974년 북한의 영화 '잔치날(도시편)'에서 등장한다.
-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제작된 민족과 운명 어제 오늘 그리고 래일 편에서도 등장한다.
- 2011년 '행복의 수레바퀴'에서 BVG GI로 보이는 전동차와 함께 나왔다.
9. 관련 문서
[1] 출처 원래는 5원이었으나 2024년 북한이 근로자 월급을 기존의 20배 이상으로 인상하며 인상된 것으로 보인다.[2] 북한 원 기준.[3] 편의 상 일반철도의 역도 표기하였다.[4] 지하철에 한정하지 않는다면 함경북도 청진시에 트램이 운행 중이다.[5] 이름만 보면 일반 공공기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북한 국무위 소속 치안기관인 사회안전성 참모부 휘하 부대이다. 사회안전성 조직원과 조선인민군의 순환근무와 전배가 빈번한 것을 감안하면 거의 군대나 다름이 없으며, 규도도 여단 규모에 예하에 전동차, 에스컬레이터, 안내 등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대도 대대 규모라고 한다. 남한의 지하철 공익이 공익계의 해병대라 불리며 기피 보직으로 꼽히는 것과 반대로 북한의 지하철관리국은 땡보직에 속하는지 고위층의 자제들이 부대원의 70%를 차지하며, 특히 그 중에서도 딸은 여기로 보내려고 하는 집안이 많아서 여군이 엄청 많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복무 중 사랑에 빠지는 남녀가 많은지 임신률도 모든 부대 중에서 최고라고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요즘은 북한의 사회 의식도 많이 서구화되어 연애 결혼도 많이 늘었다.[6] 현대의 지하철도는 50m만 돼도 대심도로 분류되며, 100m의 이례적인 시설은 극대심도로 별도 분류한다.[7] 수도권 전철은 말할 것도 없고, 비수도권인 부산과 대구에도 각각 6개, 3개 노선이 있어 평양보다 규모가 크다.[8] 1896년 노선망 그대로이다.[9] 여긴 그럴 만 한게, 클리블랜드 자체가 도시권 인구수 200만 정도로 평양 시내 인구보다도 작은데다가 워낙 철도망을 훌륭하게 깔아뒀기 때문에 연장할 동기가 적다.[10] 참고로 남북한의 경제 규모에 있어 수치적으로 역전된 해가 1974년이다. 정확히는 UN 통계 기준으로 1974년 기준 남한의 1인당 GDP는 571$였고, 북한은 515$였다.[11] 물론 이후로 사정상 이래저래 변경하여 1985년에 겨우 개통되었다.[12] 당시 전두환이 각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으로부터 지원 물자를 받기로 결정했는데 받아보니 그 질이 굉장히 조악했고 먹지 못해서 버린 쌀도 많았다고 한다. 답례로 당시 남한에서 생산하던 TV 등을 잔뜩 북으로 보내주었고 그렇게 역관광했다.[13] 평양 전차 4개 노선 중 3개 노선이 대동강 건너편 강남 시가지를 커버하는 노선들이다. 유일한 예외 금수산선은 일반적인 대중교통이 아니라 금수산태양궁전 전용 셔틀이기 때문에, 평양의 노면전차는 사실상 하저터널 공사 실패 때문에 도입한 대중교통수단인 셈이다.[14] 여담이지만 이 당시에 신의주를 관문 도시로 개발하는 김에 지하철도 지으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한계에 봉착했고 결국 계획은 백지화된 채로 흐지부지되었다.[15] 이 역간의 환승 통로가 없다고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환승 통로가 있다고 한다. 월간 '북한'에도 관련 내용이 실려있고 탈북자들의 증언에서도 전승역 환승 통로가 있다고 한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환승 통로가 사람으로 너무 붐벼서 걸음도 더디고 숨 막힌다고 한다.[16] 영상의 39초부터, 영상의 2분 36초부터 꽤 오랫동안 승차권이 없다고 서술돼 있었다.[17] 평양 외 지역에서는 방공호가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을 보인다.[18] 베를린 지하철은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리는 반자동식으로 개조되었다. 유럽의 지하철 문은 대부분 버튼을 눌러야 열리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19]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생길 때까지는 동서베를린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었다.[20] 중국에서 북한으로 넘어오면서 개조된 것으로 추측된다.[21] 1998년 어느 독일인이 찍은 사진으로, 운용 당시 모습이 찍힌 거의 유일한 사진이다.[22] 동독에서 북한으로 넘어오면서 개조된 것으로 추측된다.[23] 현재 봄바디어에 인수됨.[24] 베를린 지하철의 규격은 2.65m의 대형 규격과 2.3m의 소형 규격 두 가지가 있는데, BVG D형이 대형 규격인 것과 달리 이 열차는 소형 규격이다.[25] 속도계는 100km/h까지 표시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26] 혹은 차체와 부품을 수입한 후 조립만 했을 가능성도 있다.[27] 조괘 구동 방식에 VVVF 인버터를 장착한 사례는 전기기관차에 많다. 당장 한국에서 굴러다니는 8200호대 기관차가 그 사례 중 하나. 하지만 전동차에 적용된 사례는 몇 없다.[28] 한국철도공사 전동차 중 현대로템제 4세대 및 우진산전제 1세대 전동차, 서울교통공사 4000호대 VVVF 전동차 3차분, 우이신설경전철주식회사 UL000호대 전동차, 남서울경전철주식회사 SL000호대 전동차, 신분당선 D000호대 전동차, 김포 골드라인 1000호대 전동차, 공항철도주식회사 1000호대 전동차, 공항철도주식회사 2000호대 전동차, 대구교통공사 2000호대 전동차 등이 거론된다. 이 열차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일제에 기반한 인버터를 사용한다는 점이다.[29] 참고로 라이언에어가 이 의자를 실제로 채용한다 했을 때 유럽 각국에서 욕을 먹을 대로 먹고 철회했다.[30] 또한 승강장 입구에는 아연 재질 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다양한 터널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모스크바 지하철도 깊은데, 방공호 용도도 있지만 주 원인은 연약한 지반 때문이다. 모스크바 지하철이 첫 개통한 년도는 핵무기가 나오기 한참 전인 1935년이다.[31] 건설역에는 전후 복구 모습 벽화, 건국역에는 평양시 전경 모자이크화가 있다고 한다.[32] 원본 영상 링크는 삭제되어서 다른 유튜브 링크로 변경[33] 대한민국 수도권 전철의 역사 내에도 1999년까지는 북한의 이 노선도와 비슷하게 사이로 당역 위치에 불이 들어오는 점 등 노선도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보량이 너무 작아서 수도권 전철 5호선이 개통한 1996년에 5호선에 도입되지 않기 시작하여 1997년부터 1~4호선에서도 서서히 교체되다 서울 지하철 6호선이 개통한 2000년에 전면적으로 폐기되고 스티커식 벽붙이 노선도가 붙었다. 그러다가 스티커식 종이 노선도로도 역 정보량이 부족해지자 2012년 분당선 왕십리역~선릉역, 서울 지하철 7호선 온수역~부평구청역 구간이 개통할 때쯤부터 터치스크린식 노선도가 역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다만 이건 광고를 따면서 진행하는 사업이라 서울특별시 내 역들에만 보급되고 광고가 부족한 경기도·인천광역시 노선도들에는 여전히 스티커식 종이 노선도가 붙어있다.[34] 영유아 동반석인지, 임산부 전용 좌석인지, 아니면 어머니인 사람은 그냥 다 앉게 하는지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