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4:00:25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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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원자력 사고 4~7등급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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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ruby(福島第一原子力発電所, ruby=ふくしまだいいちげんしりょくはつでんしょ)][ruby(事故, ruby=じこ)]
Fukushima Daiichi nuclear disaster
파일:Fukushima.gif
감시 카메라에 포착된 3호기가 폭발하는 모습[1]
원자력 사고 요약도
<colbgcolor=black><colcolor=white> 사고 레벨 7등급 - 대형 사고
발생 일시 2011년 3월 12일 15시 36분경(UTC+9)[2]
사고 D[dday(2011-03-12)]일
사고 유형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사고 지점
[[일본|]][[틀:국기|]][[틀:국기|]] 후쿠시마현 오쿠마마치[3] 옷토자와기타하라 22번지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원인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비상디젤발전소 침수
비상디젤발전기 가동 불가로 멜트다운 발생
누출 방사능 52경 베크렐[4] 이상
피폭자 불명
사망자 없음[5]
1. 개요2. 경과3. 오염
3.1. 방출량 및 측정 관련3.2. 피폭과 갑상선암 관련3.3. 수질-토양 오염과 식품 관련3.4. 노심용융 관련3.5. 루머
4. 반응 (일본 내)
4.1. 피난 지시 및 보상4.2. 원전 폐쇄 및 전력 부족4.3. 책임자 처리4.4. 관료주의의 병폐4.5. NPT 위반
5. 반응 (해외)6. 관련 작품
6.1. 다큐멘터리6.2. 기타
7. 관련 문서8.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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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인해 발생한 원자력 발전소 사고다.

2.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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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사건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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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ccccc,#323232> 2011년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요약
2012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요약
2013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요약
2014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요약
2015년~ 2015년 이후 (2015년 요약) | (2016년 요약) | (2017년 요약) }}}}}}}}}

아래는 사건의 간략한 요약이다.
  1. 최초 대지진 발생. 원자로 자동 셧다운.
  2. 대지진 후 외부 전원 공급망인 송전탑의 기능 상실.
  3. 외부 전원이 상실 됐지만 발전소 내 비상용 디젤 발전기와 UPS로 자가 발전하여 냉각수(이소콘)를 공급할 수 있었으므로 문제는 없었음.
  4. 대지진 이후 대 쓰나미 발생.
  5. 대 쓰나미 발생 후 발전소 침수. 변전 설비도 침수.
  6. 변전실 침수로 비상발전기로부터 전력을 못 받게 됨. 백업용 배터리 작동. 배터리 설계 용량은 8시간.
  7. 이동식 발전기 및 여분의 배터리 급파. 그러나 열악한 도로를 이용하느라 6시간 후에나 현장 도착.
  8.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동식 발전기 연결 실패. 이유는 지하실의 전원 연결부의 침수와 적절한 케이블의 부재.
  9. 결국 배터리 방전. 전원 공급 중단. 냉각 시스템 운용 정지.
  10. 순환하지 못한 냉각수가 끓어오르고 핵연료가 외부로 노출되어 온도 급상승.
  11. 그 와중에 고온 상황에서 연료봉(Zr)과 증기가 반응하여 수소 발생.
  12. 발생한 증기와 수소로 인해 격납용기 내부 압력 상승, 이에 격납용기 파손을 막기 위해 증기 배기.
  13. 이때 증기와 함께 배기된 수소가 원자로 건물 내부에 농축되어 수소 폭발 발생, 원자로 건물 파손.
    • 3월12일 오후 15시 36분 1호기 폭발.
    • 3월14일 오전 11시 01분 3호기 폭발.
    • 3월15일 오전 06시 14분 4호기 폭발.
  14. 한편 핵연료에서 계속해서 발생한 열로 노심용융 발생.(2호기)
  15. 원자력 발전소 주변 30km 지역 철수 권고 (여행경보 3단계)

2.1. 상세 경과

이 사고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으로 인한 15m[6]에 달하는 쓰나미가 원전을 덮치면서 시작됐다. 지진을 감지한 원자로는 안전을 위해 자동으로 셧다운됐고 발전소와 전력망을 잇는 송전선로가 끊어졌으며 이에 외부 전력 없이 원자로를 냉각시킬 수 있게 비상발전 체계가 작동됐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쓰나미가 원전 앞을 가로막고 있는 5m 높이의 방파제를 넘어 원전을 덮쳤고 1~4호기 원자로 지하가 침수됐다.

비상발전기는 고지대에 설치해 침수를 면했으나 변전 설비가 건물 지하에 있는 바람에 침수됐고, 그에 따라 냉각수를 공급하는 순환 펌프에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서 노심 온도가 계속 올라갔다. 3월 12일 남아있던 냉각수가 모두 증발하면서 노심의 온도가 섭씨 1,200도[7]까지 상승했으며 결국 원자로 3기가 노심용융을 일으켰고, 연료봉에 있던 지르코늄의 산화 반응을 통해 발생한 수소와 수증기로 격납용기 내부 압력이 상승하자 격납용기 파손을 막기 위해 벤트를 실시하게 되었다.[8]

하지만 벤트가 이뤄진 직후 수소 폭발로 인해 원전 건물 4개가 손상됐으며, 그와 동시에 격납용기도 손상되면서 태평양을 포함한 일대가 방사능으로 오염됐다. 다수의 원자로가 동시에 녹아내린 최초의 사고이며, [age(2011-03-11)]년이 지난 현재도 사고 수습은 진행 중이다.

바닷물이라도 끌어와서 원자로를 식혔다면 해결됐을 것이지만 신속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소금간수를 비롯한 각종 불순물이 녹아 있는 바닷물을 원자로에 집어넣는 순간 그 원자로는 즉각 폐기 처분이 확정되며, 그 원자로를 하나 짓는 데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이 아깝다는 게 그 이유이다. 이는 그 원자로 건설 비용조차도 아득히 뛰어넘는 천문학적 피해를 고려하지 않은 소탐대실적인 판단이다. 이러한 평가는 다소 결과론적일 수 있으나 초기 대응이 신속하지 못했다는 점만큼은 확실히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실책이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현재 방출되는 방사능 물질을 차단하기 위해 석관을 만들어 원자로를 봉인한 상태지만 후쿠시마는 아직 원자로의 노심을 완전히 냉각시키지 못했으며, 여기서 지속적으로 소량의 방사성 낙진이 나오고 있다. 완전히 원전이 정지하는 Cold Shutdown 상태까지는 아직 20년 정도가 더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9]

체르노빌은 1기의 원자로가 폭발했지만 후쿠시마는 손상된 원자로 4개 중 3개가 폭발했다. 다만 전체적인 총 방사성 물질의 유출량은 체르노빌 원전에 비해 적다.[10] 악티나이트 원소의 유출량은 체르노빌의 약 0.001% 수준이며, 방사성 아이오딘은 약 10%, 세슘-137은 약 15% 정도가 유출됐다. 이러한 사실은 2000년의 UNSCEAR 보고서와 2013년에 발표된 SOTE 원자력 논문에 정확히 기재되어 있다. 이는 노심이 체르노빌과는 달리 공기 중에 노출되어 있지 않고 침수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관으로 봉인하고 수만 년에 달하는 시간에 맡겨야 할 정도로 답이 없는 체르노빌보다는 복구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존재한다.

비록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은 자연재해지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명백한 인재다. 먼저 침수 위험지인 지하에 전력 설비를 지은 것부터가 심각한 설계결함 실수이며, 이후 상황을 낙관한 도쿄전력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을 우려한 나머지 해수의 투입을 망설였다가 사태 해결의 유일하고도 절호였던 기회를 놓쳐 일이 커진 것도 큰 문제였다.

심지어 간 나오토일본 총리의 증언에 의하면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총리였던 자신에게조차도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에는 주로 '3가지 패턴'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현장 자체의 판단이 틀린 경우로 예를 들어 지금은 멜트다운(원자로 노심용융)이 언제 시작됐는지 알지만 당시에는 사고 당일 밤 10시까지는 아직 물이 있다고 생각했고, 거기다 수위를 재는 측정기가 오작동했다고 한다. '2번째'는 현장에서는 정확히 알고 있는 정보가 도쿄전력 본사를 통해 총리인 자신에게 오면서 손실되거나 잘못 전달된 경우이며 마지막 '3번째'는 도쿄전력 본사가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아예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기려고 하는 경향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은 경우 '총 3가지 패턴'으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었다고 한다. #

2021년부터 폐로 작업이 시작됐으며,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2041년부터 2051년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TEPCO에서 관련 자료와 폐로 과정을 대중에 공개하고 있다. #

일본 민주당 정권의 추락을 가속화시켰고, 이듬해 치러진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 정권을 자유민주당한테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인류 역사상 2번째 7등급 원자력 사고다. 국제 원자력 사고 4~7등급 중에서는 유일하게 21세기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첫 번째 7등급 원자력 사고는 그 악명 높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다.

2013년 일본 중의원에서 특정비밀보호법이 통과되며 더 이상의 진행 경과 정보를 얻기 어려워졌으며, 기존 인용 링크도 거의 지워졌다. 원래 일본의 언론사들은 1~2년만 지나도 사이트를 개편해서 기존의 기사를 지워 버린다. 1990년대 기사도 아직 남아서 볼 수 있는 대한민국과는 대조적이다[11]. 그래서 아카이브를 보거나 일본 국회도서관에 가서 보존되어 있는 자료를 볼 수밖에 없다.

2.2.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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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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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방출량 및 측정 관련

  • 2013년 11월 2일, 게오르그 슈타인하우저(Georg Steinhauser) 콜로라도대학교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악티나이드(플루토늄 포함) 원소의 유출량은 체르노빌의 약 1/10,000 수준으로 본다. #, 해당 논문의 해설.
  • 2014년 3월 30일, 제이 쿨렌(Jay T. Cullen) 캐나다 빅토리아 대학교 교수는 기고문으로 플루토늄의 유출 총량을 1g 이하라고 언급했다. 즉 악티나이트의 방출량이 영구적 오염을 일으켰다고 볼 수 없으며 세슘 등 경량원소도 격리되어 도쿄 광역권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 보았다. #1, #2
  • 2016년 12월 후쿠시마에서 유래한 방사성 물질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 서부 해안에서 검출됐으며, 캐나다 연어에서도 후쿠시마에서 유래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 다만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양은 아니며 (핵실험 등에 의해 방출된) 원래 존재하던 세슘 양에 비하면 극소량임에 유의해야 한다.
  • 2019년 9월, 주한 일본대사관이 서울, 후쿠시마, 신주쿠의 방사능 측정량을 비교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

3.2. 피폭과 갑상선암 관련

  • 2014년 4월 2일, 유엔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UNSCAER)의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피폭에 의해 사망한 인원은 0명이며 암 발병률도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았다. #[12]
  • 2014년 5월 18일, 교도통신이 후쿠시마 갑상선암 확진 아동이 50명이나 생겼는데 이는 10대 평균 발병률을 웃돈다고 지적했지만, 방사선 노출에 의한 갑상선암 발병은 노출 후 4-5년에서 몇십 년이 걸리는 일이라 1년만에 발병률이 늘어날 리도 없고 후쿠시마 피폭 사고와는 연관성이 적다는 것이 의료 전문가들의 견해다. #
  • 2015년 1월, 도쿄대학 연구진은 2013년 일대 초등학생-중학생을 전수조사했으나 세슘 피폭이 없었다고 밝혔다. #
  • 2016년 1월 22일, 국제환경역학회가 (160여 명의 아동 갑상선암 발병 사례를 들어)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현은 후쿠시마 지역 어린이들의 갑상선암과 원전사고의 인관 관계를 밝혀내라"고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현에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환경역학회는 쓰다 도시히데 오카야마대학 교수의 2015년 9월 연구 결과를 인용해 "후쿠시마 아동의 갑상선암 비율이 일본 내 타 지역의 12배에 달한다"며 "이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
  • 2016년 8월, 나가사키 대학 연구진이 약 36만 명의 피폭 검사를 진행했다. 평균 피폭선량은 0.8 mSv로 일반인 연간 피폭 허용선량 이하였고 피폭에 따른 신체 영향은 없었다. 아동 갑상선암 발병률은 후쿠시마 사고 때문이 아니라 전체 주민을 초음파 검사하며 더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았다. #
  • 2016년 9월, 후쿠시마현이 약 205만 명의 피폭 검사를 진행했다. 아동의 갑상선 결절 또는 낭종 발견률은 41.2%였고, 이들 중 0.6%가 일정 크기 이상으로 정밀검진 대상자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야마나시현, 아오모리현, 나가사키현의 아동의 갑상선 결절 혹은 낭종 발견률은 56.6% 정도, 이들 중 정밀검진 대상자는 1% 정도로 후쿠시마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다. #
  • 2017년 8월 7일, 한국원자력학회는 유엔방사선과학위원회와 국제전문가(John D. Boice, Abel J. González 등)들의 연구를 인용해 후쿠시마 일대 청소년들의 갑상선암은 대규모 선별 검사에 의한 과잉 진단으로 많이 발견됐기 때문이며 방사선 피폭에 의한 영향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
  • 2019년 2월, 앞서 2011년 4월 8일 경제산업성 특별팀이 "원전 재해에 있어서 피난 주민의 방사선량이 적어 건강상의 문제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 원전 주변 30km 권외 1800여 명을 대상으로 해서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
  • 2019년 7월, 후쿠시마현이 현민의 갑상선 전수 검사를 했으나 피폭자는 미미했다. #
  • 2020년 1월 21일, 사이토 오사무 후쿠시마의료생활협동조합 와타리병원 의사는 "피폭보다 그에 대한 염려, 사회적 시선으로 오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

3.3. 수질-토양 오염과 식품 관련

오염수 → 처리수, 오염토 → 제염토로 물과 흙은 처리 과정을 거친다. 과학적 처리 전과 후의 용어를 혼용하는 것에 유의할 것. 그리고 처리수/제염토는 최대한 희석/분산시키는 것이 방사능 농도를 자연 수준까지 낮추는 방안이다.
파일:153892916.jpg 파일:0195cb7c7d220b80c75aa2e2f4fc4128.jpg
2012년, 제염 전 오염토에서의 샘플 채취[13] 2018년, 제염 후 오염토 옆에서의 벼 수확[14]
  • 2018년 4월 3일, 뉴스타파에 따르면 제염토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운동장에도 매설되었다. 일본 정부는 주민을 돌아오게 하려고 교통비, 교복비, 식비, 교재비 등을 전액 지원한다고 하지만 2018년 기준으로 아직도 후쿠시마 인근 이와테 마을에서는 일본 내 피폭 기준치의 수 배에 달하는 방사능이 여기저기서 검출되었고, 목장의 동물들에게서는 십 수 배에 달하는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출처
  • 2019년 3월, 후쿠시마 농수산물의 신뢰도-가격이 급락하여 원산지를 가려서 편의점/프랜차이즈로 판매하여 논란이 되었다. #
  • 2019년 9월, 제염을 거친 오염토를 사고 현장 및 쌀 농사를 짓는 논 옆에 방치해 둔 것이 지적되었다. #
  • 2019년 9월, 일본 정부가 노숙자들을 제염에 동원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
  • 2020년 2월, 일본 정부가 모든 후쿠시마현 어패류의 출하 제한을 해제했다. #
  • 2020년 6월 1일, 두릅나무류 순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1kg당 210베크렐(Bq)의 세슘이 검출됐으며, 인터넷 거래 사이트인 메루카리와 야후 옥션에서 구입한 두릅나무류 순 15건을 조사해 보니 야마카타현 산으로 표기된 3건과 미야기현 산으로 표기된 1건에서 기준치를 넘은 kg당 109~163Bq 세슘이 검출됐다. #
  • 2020년 8월 8일, 일본 정부가 전국에 분배한 제염을 마친 오염토에 식물을 재배하자는 주장을 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
  • 2021년 2월, 후쿠시마 앞 어장에서 잡은 조피볼락을 검사한 결과 1kg당 500베크렐(Bq)의 세슘이 검출됐다. 이는 일본 정부가 정한 식품의 허용 한도(1kg당 100Bq)의 5배다. #
  • 2021년 4월,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 앞 수심 37m 어장에서 잡힌 우럭에서 세슘 농도가 1kg 당 270Bq 검출됐다. 이는 일본 정부 기준치인 1kg 당 100Bq의 약 3배 수준이다. 이에 일본 원자력재해대책 본부는 19일부터 후쿠시마현 앞바다 해역에서 잡힌 우럭의 출하를 제한했다. #
  • 2021년 5월, 오염토의 제염 작업 일부가 엉터리로 진행됐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일본 회계감사원은 사고 당시 피난 지시가 내려졌던 후쿠시마현 내의 11개 시정촌(市町村)의 제염 대상 지점 중 2.2%에서 제염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

3.4. 노심용융 관련

  • 반핵단체 등은 노심이 지하수에 닿아 오염을 확산할 것을 우려했다.
  • 2016년 2월 24일, 도쿄전력이 사고 즉시 멜트다운임을 안 것은 3일 후였지만, 책임 회피를 위해 언급을 미룬 후 2개월이나 지나 노심용융을 인정했으며 그 과정에서 은폐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또한 사내 매뉴얼에 노심용융에 대한 매뉴얼이 있었고, 그 존재 자체도 5년이나 지나서 알게 됐다고 한다. NHK기사
  • 2017년 2월, 2호기 손상이 예상보다 심했고, 원자로 내부 방사능이 너무 높아서 사고 원전 해체가 기술적으로 상당히 짜증나는 일(로봇이 못 버팀)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오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에 유의할 것.[15]
  • 2022년 2월 11일, 제1원전 1호 원자로 격납용기 내부 조사에서 핵연료로 보이는 퇴적물이 처음 발견됐다. #

3.5. 루머

  • 13일 16시경 한국으로 방사성 물질이 날아온다.
    3월에 인터넷으로 퍼진 유언비어. 이 계절의 한반도에는 편서풍이 계속 불기 때문에 다다를 확률이 낮으며 방사능 물질의 확산 영역도 그렇게 크지도 않다. 즉 방사능 물질이 날아올래야 날아올 수 없다. SNS 문자 서비스로도 날아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소문이다. 이 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추적해 최초 유포자를 적발했으나 본인은 잘 모르고 한 일이라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다. # 물론 결국 지구를 한 바퀴 돈 방사능 물질이 소량 유입됐고, 극선풍이나 편동풍 대를 거쳐서 들어오는 등 다양한 유입 경로를 통해 2011년 5월이 넘을 때에는 이미 한반도로 후쿠시마발 방사능 물질이 소량 유입됐으며 전국 각 도시의 수돗물에서 미량이나마 방사능 세슘도 검출된 바 있다.
  • 쓰나미 파고 진행 지도를 방사능 오염 지도로 탈바꿈시킨 루머
    쓰나미 파고가 태평양을 건너 남아메리카 해변까지 도달하는 모습을 방사능 오염이라면서 태평양은 이미 끝장났다는 주장이 같이 따라다녔다.
  • 핵 폭발이 일어났고, 또 일어날 것이라는 루머.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은 수소 재결합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비등경수로의 특성으로 인해 물이 고온에서 수소와 산소로 분해되어 폭발한 것이 원인이다. 이는 핵폭발과 다르다.
  • 원전 사고의 방사능 물질의 99.98%는 사고 1개월 이내에 모두 붕괴되어 소멸한다.
  • 2019년 1월 31일, 일본 후생노동성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피폭으로 인해 사망이 인정된 인원은 1명이라고 인정했다. #
    라는 루머가 있지만, 보고서 원문을 보면 "The first claim for case of lung cancer was approved by MHLW in August 2018, and this was also the first case involving death.", "such cases shall be approved as an industrial accident unless non-work-related factors are clear" 를 보면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요인으로 생긴 질병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면" 산업재해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방사선 관련으로 사망한 사람이 아직 없다는 것은 전 세계 원자력공학과의 교재로 널리 쓰이는 Introduction to Nuclear Engineering, 4th edition. Published by Pearson (July 1, 2022) © 2023. John R. Lamarsh 의 챕터 11.8 후쿠시마 다이이치 사고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4. 반응 (일본 내)

4.1. 피난 지시 및 보상

  • 소수 일본 언론들이 수도 이전론까지 거론했으나 해프닝으로 끝났다.
  • 2013년 8월 14일, 미국 국립아르곤연구소 '후쿠시마 그리고 체르노빌: 통념 대 사실'. 전문가들은 사고 후 실제 피해는 크지 않았으며 과학자들과 시민들 간 소통의 중요성이 간과되어 실제 피해보다 혼란이 왔다고 주장했다. 영상(링크 삭제됨).
  • 2014년 4월 1일, 피난지시가 해제되었지만 2017년까지도 주민의 13%만 복귀했다. #
  • 2014년 8월 27일, 원전 사고 후 자살한 주민에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
  • 2016년 12월, 후쿠시마에서 전학 온 아이들에 대한 이지메가 사회 문제로 크게 대두되었다. #
  • 2019년 8월 22일, 경향신문은 원전 인근만 대피가 이뤄졌고 충분히 사고 여파가 있을 수 있는 지역에 대한 대피가 미흡했다는 증언들을 보도했다. #
  • 2020년 12월,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사고 당시 인근 12개 시정촌에 살지 않았던 사람이 여기에 이사할 경우 가구당 최대 200만엔(약 2,098만원) 지원 방침을 세웠다. 이주 후 5년 이내에 창업하는 경우 400만엔(약 4,196만원) 한도 내에서 필요한 경비의 75%를 지급한다. #
  • 2020년 12월 30일, 사고 직후 아키히토 덴노를 도쿄에서 수백 km 떨어진 곳으로 피난시키는 것이 검토되었다고 밝혀졌다. #
  • 2022년 3월 4일, 후쿠시마현에서 피난해온 피난자 3건에 대해서 도쿄전력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
  • 2022년 6월 17일, 최고재판소가 후쿠시마 등지의 피난 주민이 원전 사고로 피해를 봤다며 정부를 상대로 낸 4건의 손해배상 집단소송에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
  • 2022년 12월, 일본 정부가 사고 피해자의 배상 규모를 확대했다. #
  • 2023년 5월, 일본 경찰이 출입 통제 지역의 집에서 여성 속옷을 훔쳤다. #

4.2. 원전 폐쇄 및 전력 부족

  • 사고 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6기 중 4기의 폐기가 결정되었으며 전력 부족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대도시마다 3시간씩 돌아가면서 수 개월간 계획 정전을 실시했고, 주변국(대한민국, 중국, 러시아)으로부터 석탄을 긴급히 지원 받아 화력발전소를 가동했다.
  • 2013년 5월 23일, 일본 후쿠이현의 쓰루가 원전 지하에 활성단층이 있는 것이 확인되어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의 만장일치로 폐쇄를 결정했다. #
  • 2017년, 아베 신조 정권이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원전 재가동을 시행해 상당수가 재가동되었다. 추가 사고 위험이 아닌 반원전 여론의 확산의 정치적 역풍 리스크였기 때문이다.

4.3. 책임자 처리

  • 2011년 4월 11일, 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요네쿠라 히로마사 회장은 "도쿄전력은 잘못한 게 없으며 잘못된 것은 정부의 안전 기준", "이번 사고는 어디까지나 천재이므로 국가가 보상하는 것이 당연하며, 정치인들의 국유화 발언으로 도쿄전력의 주가가 떨어진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 등을 말했다. (링크 삭제됨).
  • 2011년 6월 14일, 일본 정부가 '원자력 손해배상 지원기구 법'을 통과시켰다. 도쿄전력이 내야 할 막대한 배상금을 빌려주겠다는 것으로, 이 소식으로 도쿄전력의 주식이 반등했다. (링크 삭제됨).
  • 2012년 6월 27일, 일본 정부가 도쿄전력을 국유화했다. 기존 경영진은 모두 쫓겨나고 정부에서 임명한 새 경영진이 들어섰으며 10년 정도는 국유화 상태를 유지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 2013년 9월 9일, 사건에 대한 결과가 2년이 지나서야 나왔다. 일본 검찰은 사건 관계자 40명을 전원 불기소 처리, 즉 처벌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결론을 냈다. #
  • 2014년 7월 31일, 일본의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검찰심사회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책임자들을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해야 한다고 의결했다. 책임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도쿄전력 회장 카츠마타 츠네히사(勝俣恒久)[16]를 포함한 3명의 경영진이며 도쿄전력의 전 상무 1명에 대해서는 '불기소는 부당하다'고 의결했다. 일본 검찰은 이 4명을 재조사한 후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만약 검찰이 불기소 의견을 내더라도 검찰심사회가 카츠마타 츠네히사 전 회장을 포함한 3인에 대해 '기소'라는 의결을 또 한다면 강제로 기소를 해야 한다. 다만 간 나오토 전 총리는 불기소가 타당하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애초에 간 나오토 총리는 원전 버리고 도망가려던 도쿄전력에게 "원전 버리면 도쿄전력 문 닫아버린다"고 하면서 그나마 사태 처리에 도움을 준 인물이다. 일본 기사(삭제됨), 한국 인용 기사.
  • 2015년 8월 1일, 검찰심사회가 2차 심사에서도 도쿄전력의 전 경영진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의결함에 따라 전 경영진 3명이 강제로 형사재판을 받게 됐다. 전 회장이자 모든 사태의 주범이신 카츠마타 츠네히사, 전 부사장이자 간 나오토로부터 원자로 폭발 대책을 질문 받자 "웅얼웅얼웅얼"이라고 대답한 무토 사카에 전 부사장, 그리고 총리관저에 있으면서도 사고 수습을 전력으로 방해하신 타케쿠로 이치로 전 펠로우, 이들의 행적은 도쿄전력 문서도 참고할 것. 일본 기사(삭제됨), 한국 인용 기사.
  • 2016년 2월 26일, 일본 검찰이 도쿄전력 전 경영진들을 강제 기소하겠다고 발표했다. #
  • 2019년 9월 19일, 형사재판로 치러진 도쿄지방재판소가 전원 무죄를 선고했는데, 재판 4시간 전인 9시 35분~50분 사이에 아베 신조 총리와 오타니 나오토 최고재판장(대한민국의 대법원장)이 만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 기사(삭제됨), 한국 인용 기사.
  • 2023년 1월 18일, 항소심에서도 도쿄고등법원이 도쿄전력 前경영진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

4.4. 관료주의의 병폐

일본관료주의도 이 사태의 수습에 큰 지장을 주었다. 도쿄전력은 물론 사기업이지만 일본 정부에 맞먹을 정도로 조직의 관료주의가 심각한데 이 사태 수습에도 심각한 모습을 보여줬다. 파도 파도 나오는 도쿄전력의 비리와 삽질과 은폐는 일본 언론은 물론 전 세계 언론에게도 집중적인 까임 대상이 되었다.

일본 정부는 상대적으로 무시당하는 분위기였지만 일본의 관료 조직의 보신주의와 책임 회피, 비밀주의가 맞물려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 사태는 결국 맹신에 가까운 일부 일본 국민의 신뢰를 깎아 버렸으며, 애당초 안 믿던 사람들은 더더욱 못 믿게 됐고 후쿠시마 사람들은 물불 안 가리고 분노했다. 더욱이 IAEA의 권고를 무시하고 반경 40km의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않는다든가, 자국 국민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들에도 실제 사태의 심각성을 계속 숨기는 듯한 태도 등등 복지부동의 절정을 보여주면서 까였다.

하다못해 공산 국가인 소련도 비록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터진 직후의 크렘린은 관료 장벽으로 사태 파악도 못 하고 있었지만 이틀 정도가 지나 일단 상황을 알게 된 다음에는 나름대로 민첩하게 움직였다. 예컨대 프리피야트 주민 소개는 일당독재 국가라는 점을 감안해도 놀라운 속도로 이루어졌는데, 짐을 싸는 데 2시간을 준 다음 나머지 3시간 반만에 주민을 차량으로 실어 날랐다. 짐을 싸는 시간이 짧은 것은 이미 오염이 심각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필수품 외에 모든 가재도구와 재산은 버려져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대피 지시도 어영부영 늦은 데다 출입 금지도 제대로 안 되어 주민들이 짐을 챙기기 위해 자꾸만 금지 지역으로 들어갔다. 사실 이들을 탓하기만 할 수가 없는 게,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긴급 피난을 하는 바람에 귀중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지금 와서 그걸 챙기러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련은 1986년 당시에도 다양한 로봇을 많이 투입해서 고방사능 지대를 청소했다. 그러나 로봇 강국에 인권을 중시한다는 선진국 일본은 매뉴얼에 없었으니 만들어 둔 로봇도 없고, 개량해서 투입할 수 있는 로봇도 없고, 러시아미국이 지원해 준다는 로봇도 체면 때문에 거부하다가 결국 미국 로봇을 쓰기로 하는 등 추태를 보였다.

더욱 큰 문제는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다른 나라에도 피해가 가는데도 일본 정부는 여전히 정보를 공개하기를 꺼리는 눈치라는 것이다. 일본이 원전 방사능에 오염된 폐수를 무단 방출해 한국이 "미국에게는 알렸으면서 왜 우리에겐 알리지 않았느냐"고 항의하자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우리는 미국에도 방류 사실을 사전 통보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

4.5. NPT 위반

일본이 원전에 핵무기를 제작할 수 있는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을 숨겨 놔서 감추려고 했다는 의혹이 다수 국가의 언론에서 제기되었다. 실제로 미국이 구조 및 방제 작업을 도와준다고 하자 거절했는데 이게 증식로가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도 있으며, 무려 4톤의 농축 우라늄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 이는 명백히 핵확산금지조약에 위반되는 행위다.

5. 반응 (해외)

5.1. 대한민국

  • 2011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이 국내 원전들에 대한 검사를 실시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 2011년 4월 13일, 고리 원자력 본부 1호기가 전기설비 고장으로 가동 정지되자 공포가 확산되었다. 원자력 발전소는 건설비가 비싸지만 유지비가 낮아 연장 운용의 이익이 큰데 후쿠시마 원전도 고리 1호기도 연장 운용 케이스다. 고리 1호기가 6년 전에도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에 가동 중지 여론이 커졌다.
  • 2011년 4월 19일, 운행을 멈춘 고리 4호기가 몇 분간 정전되었다. 3호기의 안전 점검을 하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매뉴얼에 따라 비상발전기와 자동정전 중에 자동으로 정전 복구를 기다리는 케이스를 선택했고, 이후 전원이 빠르게 공급되면서 일각에서 우려하는 최악의 상황에는 미치지 않은 케이스다.
  • 2011년 4월 20일, 계속되는 불안 여론 때문에 정부는 1호기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가동을 멈추고 1달 간 안전 점검에 들어간다고 밝혔으며, 일본 서부의 지진으로 동해쓰나미가 일어날 것을 대비하기 위해 동해안 지역 원전에 방파제를 추가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 2017년 6월, 고리 1호기의 폐쇄 조치가 최종 결정됐다. 37년만에 폐쇄 결정.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은 회의 안건 중 하나로 후쿠시마 발전소 사고를 교훈삼아 원자력 발전소의 방호와 핵안보의 상관관계에 대한 내용을 상정하여 회의에서 논의하기도 했다.

5.2. 미국

  • 2011년 3월 15일, 미국 전문가들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와 비슷한 위험도로 보고 피난 거리를 15마일이 아닌 30마일로 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데이터 수집을 일본에 의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밀 대기 측정 장치를 장착한 군용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를 동원하여 자체적인 정보 수집에 나섰다. #
  •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30년간 금기였다가 오바마 정부가 모처럼 원전 건설을 선언했는데 해당 정책이 어그러졌다. 뉴욕과 가까운 원자력 발전소가 지진에 취약하다는 점도 알려졌다. 이 해 미주리 강에 홍수가 일어 인근 지역 원자로들이 침수되기도 했으며, 감사 결과 노후 원자로의 냉각수들이 수십 년간 유출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 서구 기성 언론들에겐 아랍의 봄을 외면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의 대다수의 뉴스 방송들은 지진이 터지자마자 카메라 앵글을 아랍권에서 일본으로 전부 돌렸고, 카다피가 이 틈을 노려 반격을 시작하기 전까진 아랍의 봄에 대한 뉴스는 보기 힘들었다.

5.3. 중국

  • 2011년 4월, 중국은 에너지 부족으로 계속 원전을 짓기로 했고 특히 백두산 앞 원전 건설이 화제가 되었다. 백두산 폭발 시 방사성 물질 누출의 우려가 생겨났고, 미국 측에선 "북한한테 폐연료봉/폐기물을 넘기기 위함이 아니냐"는 시각도 생겨났다.
  • 2011년 5월 15일, 중국이 그래도 급히 원자력 안전 확보 예산을 편성했다. 2010년까지는 없었던 예산이다.
  • 2015년 12월, 중국의 황해안 수십 기의 원전에 대한 대한민국의 불안감이 커졌다.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경우 황사처럼 12시간 이내 대한민국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

5.4. 유럽연합

프랑스는 전기 74%를 원자력 발전소가 공급하는 나라라서 그런지 제일 난리였다. 가장 먼저 사고 레벨을 6등급으로 올려 잡고 정부 차원에서는 일본 내 프랑스인들을 가장 강경하게 대피시켰으며 언론들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독일은 이 시점까지 원자력 발전소가 절반 정도 문을 닫았다. 2000년대 초반 사민-녹색당 연립정권(적녹연정) 시절 '2030년까지 원전을 모두 폐쇄하고 친환경 재생 에너지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기민당이 집권하면서 이 방침을 뒤엎었다. 특히 기한이 지난 노후 원자로 수십 개를 연장 운영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이 사고가 하필 지방 선거를 불과 1달 앞둔 시점에 일어났다. 집권 여당이었던 기독교민주당은 하루 아침에 입장을 뒤집어 노후 원자로의 중단 방침을 밝혔으나 이에 야당은 "부랴부랴 선거용 제스처를 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결국 지방 선거에서 기민당은 대참패하고 녹색당, 독일 사민당이 싹쓸이했다. 특히 기독교민주당이 58년동안 차지해오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회도 녹색당한테 넘어갔다. 한국으로 치면 대구광역시장대구광역시의회를 진보 정당이 싹쓸이한 수준.

이탈리아는 앞서 1987년 11월 국민투표에 따라 1990년에 모든 원전 가동을 멈췄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원전 재가동을 목표했으나 이 사고가 터졌고, 2011년 6월 12~13일에 원전 재개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자 투표율 57%에 95% 반대가 나왔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국민의 뜻에 따라 원전 재개 공약을 폐기했다. #

6. 관련 작품

6.1. 다큐멘터리

  • 2016년 3월 18일, 일본 NHK '3월 11일 그 후 5년: 원전 멜트다운 위기의 88시간'. 2016년 일본 방송문화기금상 다큐멘터리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영상.
  • 2017년 1월 6일과 13일, 대한민국 한국교육방송공사(EBS) '하나뿐인 지구 - 나쁜 원전'. '1부 후쿠시마의 일그러진 사람들' 1부, '2부 주인을 찾습니다' 2부.
  • 2018년 7월 20일, 미국 넷플릭스 '다크 투어리스트'. 현지 식당을 찾았는데 일하는 할머니들은 현지 주민이 아니고 기자 완장을 한 여행자는 현지 식당에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처음 걱정해야 한다고 결정한 수치 0.2를 한참 넘어선 9까지 올라가자 투어를 포기하고 종료했다.
  • 남겨진 가축과 반려동물들의 비참한 실상이 오타 야스스케라는 프리랜서 사진 작가에 의해 촬영됐다. 대피령이 내려질 때 주민들은 금방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개들을 묶어놓거나 축사를 단단히 잠근 채 떠났기 때문에, 먹을 것을 찾아 움직일 수조차 없어 죽었다고 한다. 야스스케가 사진을 찍으러 갈 때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먹이를 주고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후쿠시마의 동물들' 참고.
  • 2024년 3월, JTBC의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방영됐다. 기존 사람들의 인식과 다르게, 현재 후쿠시마 지역에서는 발전소 인근 (반경 1 km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잘 살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핵심은, 후쿠시마의 피해가 발전소 사고가 아닌 대부분 쓰나미 피해라는 것과, 원자력발전소사고는 인류가 충분히 감당 가능한 사고라는 것이다(사고 수습이 불가능하지 않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충분히 극복이 가능함).https://vod.jtbc.co.kr/player/program/ep20231218

6.2. 기타

  • 게임
    • 폴아웃 3 후쿠시마 원전 MOD: 제작자가 일부러 해당 사건을 비판하기 위해 블랙 유머로서 만들었다고 한다. 마침 폴아웃 시리즈의 세계관이 핵전쟁으로 인해 망한 세계관이니 심히 적절하다. 하지만 지금은 옹호자들의 항의를 받고 다운로드 불가 처리되었다.

7. 관련 문서

8. 링크


[1] 자세히 보면 버섯 형태의 구름이 보인다. 오해할 수 있지만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이 아니고 수소 폭발로 일어난 것일 뿐이다.[2] 1호기의 수소 가스가 폭발하는 시점이다.[3] 후쿠시마현 하마도리의 중심 마을이다.[4] 520페타 베크렐이며,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에서 누출된 총량의 10%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5] 2018년 일본 정부 발간 문건을 출처로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가 1명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으나, 원문의 "The first claim for case of lung cancer was approved by MHLW in August 2018, and this was also the first case involving death.", "such cases shall be approved as an industrial accident unless non-work-related factors are clear" 를 보면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요인으로 생긴 질병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면" 산업재해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방사선 피폭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아직 없다는 것은 전 세계 원자력공학과의 교재로 널리 쓰이는 Introduction to Nuclear Engineering, 4th edition. Published by Pearson (July 1, 2022) © 2023. John R. Lamarsh 의 챕터 11.8 후쿠시마 다이이치 사고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6] 컴퓨터 분석 결과는 약 13.1m.[7] 원전 운용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마지노선. 120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우라늄을 감싸고 있던 지르코늄이 물과 만나 급격히 산화되면서 열과 수소를 내놓아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냉각할 수 없다. 지르코늄 참고.[8] 이 시점에 원전 건물 내부에는 이미 방사능이 누출되어 있었다.[9]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2000년경에 정지했다.[10] 체르노빌은 2000년 기준 약 5,300PBq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고 후쿠시마는 2014년 기준 약 520PBq이 유출됐다.[11] 한국도 웹사이트 개편 등으로 URL이 바뀌어서 기존 링크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기사 자체는 대부분 바뀐 URL에 남아 있어서 검색 등으로 다시 찾을 수 있다.[12] 같은 7등급 원전 사고인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의 경우 사고 관련 근로자는 28명이 사망했고 UNSCEAR 및 WHO의 사고 후 18년 동안 피폭 후 세대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18명이 더 확인되어 총 4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Sources and effects of ionizing radiation—UNSCEAR 2008 Report. Volume II_ EFFECTS. Scientific Annexes C, D and E.).[13] 한편 한국의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사진을 두고 "후쿠시마 주변에서 시중에 판매할 쌀을 채취하는 모습"이라며 거짓 선동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배우인 토머스 맥도넬트위터에 해당 사진을 올리면서 "일본 후쿠시마에서 방사능 벼를 추수하는 현장이다. 일본에 오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주로 먹인다."와 같은 글을 올려서 여러 비난을 받기도 했다.[14] 이렇게 수확된 쌀은 일본 식품안전검증과정을 거쳐 실제로 출하돼서 일본 전역에서 판매된다.[15] 해당 문단 편집본의 소스 : 기즈모도, 캐나다 CTV (상기 2건은 일본 영자지 Japan Times를 인용함) RT 보도 / 영어권 회의주의/팩트체크 블로그인 snopes.com의 평가.[16] 아버지는 요요기제미날의 창립자 중 한 명이며 남자 5명 형제인데 이 중 장남 타카오는 신일본제철 부사장과 규슈석유 회장, 4남 츠네히사는 도쿄전력 회장, 5남 노리오는 마루베니 사장을 역임하여 삼형제가 상장기업의 사장을 역임한 유례 없는 사례다. 이 셋은 산업계의 카츠마타 3형제로 유명하며 차남도 일본도로공단 이사, 3남은 도쿄대학 명예교수를 맡아 형제가 모두 대단히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