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L-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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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뮤아 기갑 박물관 소장 ARL-44 |
배치 당시 생산 및 기동 영상 |
2. 제원
ARL-44 | |
개발사 | ARL |
제조사 | ARL |
중량 | 50t |
전장 | 10.53m[2] |
전폭 | 3.40m |
전고 | 3.20m |
장갑 | 균질압연장갑, 주조장갑(포탑 전면, 후면) 차체: 전면 120mm, 측면 50mm, 후면 35mm 포탑: 전면 110mm, 측면 40mm, 후면 30mm |
엔진 | 마이바흐 HL230, 575hp 출력비 : 11.5hp/t |
현가장치 | 코일 스프링 |
최고속도 | 도로 주행 시 35.7km/h 야지 주행 시 25km/h |
항속거리 | 350km(도로 주행 시) |
주포 | 90mm SA 45 L/65 전차포(37발) |
부무장 | 7.5mm MAC31 Châtellerault 기관총 × 2 |
승무원 | 5명 |
3. 개발사
75mm 주포용 ACL 포탑을 탑재하여 제작된 시제 전차 |
1944년 8월에 프랑스 해방 후, 새로운 임시 정부는 국방력을 강화하고 프랑스가 강대국 자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 를 취하고 연합군의 완전한 파트너 지위를 재확립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전차의 개발과 생산이었고, 이에 프랑스 정부는 새 전차를 개발하기로 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프랑스는 소련 다음 가는 전차 개발과 생산 능력을 보유하였지만, 나치 독일에게 침공당하고 해방되기까지 있던 몇년간의 공백 때문에 전차 기술력이 몇 년 뒤쳐진 상태였고, 기존의 기술력과 생산 설비를 동원하여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전차들은 당시 독일, 미국, 영국의 전차보다 성능이 몇단계 아래였다. 프랑스 정부는 당장 원하는 전차를 만들지 못해도 장기적으로 기술력 격차를 줄이고 개발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래도 새 전차를 완전 국산화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기존에 개발되던 30톤 전차 계획안을 기반으로 새 전차를 개발하기로 했고, 해당 설계를 기반으로 1944년에 재설계한 것이 ARL-44가 되었다.
1944년 10월 9일에 프랑스 국방부는 과도기적인 전차의 개발을 결정하였고 동년 11월 25일 DEFA에서 설계할 500-600대의 중전차를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이 작업에는 전직 APX와 AMX 설계자들이 참여했으며 육군 조병창인 ARL에서 생산되기로 결정되었다. 이미 10월에 프로젝트 이름을 ARL-44로 지정하기로 결정되었다.
ARL-44의 개발 당시 프랑스는 연이은 전쟁으로 초토화되어 자체적인 개발능력이 제한된 상태였으므로 처음에는 고성능 스펙이 요구되지 않았다. 초기에는 SARL42에 탑재하려던 CA 32 75mm 전차포에서 파생된 SA 44 전차포를 주포로 채용하는 등 많은 부분을 구 설계에서 그대로 유용해와야 했으며 장갑도 60mm라는 평균적인 수치로 제한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35톤급 중형전차였고, 1945년 5월부터 한 달에 50대씩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전차 국산화라는 목표에 달성하기 위해 프랑스 기술자들은 차체까지도 전부 자체 개발하기로 결정하였고, 이에 전간기에 나온 르노 B1을 기반으로 차체를 설계하였다. 그러나 B1에 적용된 현가장치의 설계가 구시대적이고 내구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ARL-44의 현가장치는 관리를 자주 해줘야 했으며 고속주행에 어울리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리스티 현가장치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되었으나 100% 프랑스제 전차 개발을 위해 기각되었다. 덤으로 B1에 반영된 전간기 당시의 구식 참호돌파형 차체 설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쓸데없이 차체가 길고 높아졌다. 차체 후방은 냉각장치 등 다양한 장비가 얽히고 설켜서 난잡했으며, 기어의 신뢰성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포탑 구동은 대다수의 전차가 사용하는 전기 모터나 유압식이 아닌 소형 엔진을 이용했다.
개발 당시 처음 요구된 성능으로는 타 교전국들의 전차들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없는 노릇이라서 업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44년 12월 28일에 75mm 전차의 주문량을 200대로 대폭 줄이고 나머지 분량은 신형 90mm 전차포가 결정난 다음에 고려하기로 했다. 동시에 ACL 1 포탑도 200대 주문되었다. 신형 90mm 포는 포구탄속 840m/s의 90 mm CA modèle 1939 S와 포구탄속 1000m/s의 Canon de 90 mm SA mle. 1945 중 하나로 결정될 예정이었다.
이렇게 주포 문제가 시간을 끄는 동안, 1945년 2월에는 M4 셔먼보다도 성능이 떨어지는 전차를 연합국에서 쓰겠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차체 전면장갑은 120mm로 증강되었고 90mm 주포를 위한 신형 포탑의 탑재도 예정되면서 전체 중량이 예상된 43톤에서 48톤을 웃돌게 되었다.
개발 과정에서 처음 요구사항보다 지속적으로 성능을 올릴 것이 요구되면서 개발은 난항을 거쳤고, 유럽 전선 종결까지 Maurice Lavirotte 장군이 이끈 설계팀이 나무로 만든 목업 차량 1대만 완성되었다. 그러나 연합국 기갑 전력에 기여하려는 목적이 무의미해졌음에도 프랑스 정부는 국민 사기 향상과 기술력 발전을 위해 전차 개발을 계속 추진하였고, 1945년 5월 23일에는 150대를 일단 생산하기로 정했다가 6월 23일에 최종적으로 목표 생산량을 60대로 줄였다. 이 중 두대는 1946년 상반기에 완성될 예정이었다.
전후 개발이 계속되면서 시제차도 제작되었는데, 1946년 3월에는 여전히 60mm 장갑을 갖춘 첫 프로토타입이 테스트되었다. ARL는 미국제 76mm 주포가 장착된 프로토타입에 사용된 ACL1 포탑을 제작했는데, 이것은 나중에 FCM F1용으로 설계된 포탑을 기반으로 한 슈나이더 포탑으로 대체되었고, 포구초속이 AP 1130m/s, HE 1000m/s인 90mm DCA 해군용 함상 대공포 기반의 슈나이더 SA 45 전차포와 포구제퇴기가 장착되었다.[3] 사격 시험은 1947년 6월 27일에 시작되었고 주포는 비교에 사용된 5호 전차 판터의 7,5cm KwK 42보다 정확도가 높은 것으로 입증되었다.
개발 도중의 무장 변경으로 인해 포탑의 개발과 생산은 한동안 밀려났다가 1949년이 되어서야 1946년에 생산했던 차체에 포탑을 장착할수 있게 되었다. FAMH에서 40대의 차체를 완성했고 르노에서 추가로 20대를 완성했다. 당초에는 탈보, 파나르에서 만든 각각 400마력, 450마력을 내는 자국산 엔진을 사용하기로 했으나 이 정도 출력으로는 최종 무게를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에 1945년 여름에 Joseph Molinié 장군이 이끄는 임무를 통해 확보한 티거 2에 장착되었던 독일제 마이바흐 HL230 엔진 노획품들을 탑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과부하가 오는 것을 방지할 수는 없어서 5호 전차 판터와 마찬가지로 엔진 수명 연장을 위해 출력을 제한하여 사용하였다.
변속기는 차체의 기반이 되었던 르노 B1처럼 후방에 장착되었으며, 전진 6단에 후진 2단으로 구성된 자국산 수동변속기였다. 연료 탱크는 B1 전차처럼 차체측면 후방에 위치하며, B1 전차의 작전반경이 지독하게 짧아 아르덴 방어전 당시 결정적인 순간에 연료문제로 운용에 난항을 겪었던 전훈을 살려 연료탑재량을 늘린 덕분에 350km라는 괜찮은 항속거리를 가지게 되었다.
4. 문제점과 최후
ARL-44를 생산할 때 프랑스의 용접기술이 부족해서 포탑을 생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상대적으로 방호력이 낮아지는 문제가 있었다.[4] 결정적으로 베이스가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르노 B1 기반인데다 장갑 강화와 주포 업건으로 중량이 첫 계획보다 상당히 늘어나면서 주행력이 떨어지고, 변속기와 현가장치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카탈로그상으로는 성능이 그럴싸했지만, 중전차 개발에 대한 기술력이 전체적으로 미흡한 초기형 프랑스 중전차이기 때문에 60여대만 저율생산되었고, 이후 조용히 퇴역하였다. 그래도 당시에 프랑스가 자체개발한 전차라고 대중앞에 공개되었으며, 1951년 7월에 열린 바스티유 감옥 습격일 기념 열병식에도 10대가 동원되었다.
ARL-44에 만족하지 않았던 프랑스군은 이 전차를 대체할 프로젝트를 1945년부터 계획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AMX M4[5]이다. 프랑스 육군은 자국산 현가장치의 성능과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티거와 판터같은 대전기 독일 전차에 사용된 오버랩식 토션바 현가장치[6] 설계를 도입하였는데, 결국 이런 설계 때문에 오버랩식 보기륜이 적용된 대전기 독일군의 전차들이 겪은 문제들도 AMX-50에서 똑같이 겪게 되었다.
ARL-44는 1951년 10월부터 1953년 11월까지 2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무르멜롱르그랑에 주둔한 제503 전차 연대에 배치되어 그동안 운용중이던 노획 판터들을 대체했다. 배치되기 전인 1950년 10월 26일에는 구축전차로 재분류되었다.[7]
1954년에는 ARL-44를 퇴역 처리하기로 결정을 하게 됨으로써 ARL-44의 퇴역과 폐기처분이 시작되었고, 일부 차량은 박물관에 보존되거나 사격 표적으로 활용되었다. ARL-44의 자리는 1950년대에 미국이 공여한 M47 패튼으로 대체되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곤 하나, ARL-44의 개발은 프랑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성공한 첫 전차 개발이었으며 이는 좋은 선전거리가 되었으며, 이러한 점이 ARL-44가 가진 가장 큰 의의였다. 그리고 애초에 계획한 과도기적인 전차라는 목적에 부합하였고 프랑스의 전차 개발 기술력 회복에 기여했다.
60대의 차량중 현재 5대의 차량이 프랑스 각지에 남아있고, 그 중 하나는 소뮤아 기갑 박물관 실내에서 AMX-50 최종 시제차와 함께 전시중이다.
5. 미디어
5.1. 게임
5.1.1. 월드 오브 탱크
ARL-44 |
5.1.2. 워 썬더
ARL-44 (ACL-1) |
ARL-44 |
5.1.3. 강철의 왈츠
3성 5도면중전차로 등장하며 나탈리 조자르의 무장으로 사용되고 있다.5.1.4. 도미네이션즈
자세한 내용은 중전차(도미네이션즈) 문서 참고하십시오.원자력 시대의 두 번째 중전차인 중전차 MK5로 등장한다.
5.2. 만화
5.2.1. 걸즈 앤 판처
걸즈 앤 판처의 ARL-44 |
6. 모형
6.1. 프라모델
7. 둘러보기
기갑차량 둘러보기 | ||
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1950년에 재분류되었다.[2] 차체길이는 7.15m[3] 이렇게 ARL-44는 프랑스 전차 최초로 포구제퇴기를 장착했다.[4] 장갑의 문제가 아닌, 용접부위가 취약하다는 뜻이다. 90mm 포를 달기 위해 설계한 대형 포탑을 한번에 주조 장갑으로 생산하기에는 기술적으로 무리라서 어쩔 수 없이 앞과 뒤만 주조로 만들고 용접하는 공정을 택하게 되었다. 포탑 전면은 두께 110mm였다.[5] 이후 1950년대 초에 AMX M4는 AMX-50 프로젝트로 이어진다.[6] 보기륜을 겹쳐서 배치하는 방식. 독일은 '샤흐텔라우프베어크(Schachtellaufwerk)'라고 불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반기 이후 독일 전차의 상징적인 방식으로 접지압을 낮추는데 효과적이었지만, 정비 난이도를 급격하게 높혀 보기륜이 차지하는 중량이 과도하게 커져서 전후 거의 사장된다.[7] Marest, Michel; Tauzin, Michel (2008). COMHART L'armement de gros calibre (Division Histoire ed.). Centre des hautes études de l’armement. p. 165.[8] 다만 오래된 모델링이 교체되지 않은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에는 저 포탑이 남아있다.[9] 전후 전차지만 작중 설정 상 설계가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종료된 차량이면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설정충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