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6 23:18:39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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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동괵
2.1. 역대 군주
3. 서괵(북괵)
3.1. 역대 군주
4. 소괵

1. 개요

중국 서주(西周), 춘추시대의 두 왕조. 주나라(周)가 동쪽으로 천도하기 전의 수도인 호경(鎬京)[1]의 봉신국으로 주문왕의 동생인 괵숙(虢叔)과 괵중(虢仲)이 봉해진 나라이다. 각각 호경에서의 위치에 따라 동괵(東虢), 서괵(西虢)이라고 불렀다. 소주(小周), 소(召) 등과 함께 주나라의 원로 관직이었다.

가도멸괵이라는 고사에 등장한다.

2. 동괵

지금의 하남성 형양에 위치했던 나라로 작위는 후작으로 추정된다. 춘추시대 초기에 기원전 767년에 정나라 제2대 군주인 무공에 이르러 정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다. 이것을 동괵(東虢)이라고 한다. 참고로 동괵의 초대 군주인 괵중(虢仲)은 계력의 차남으로 주문왕의 동생이다. 정(鄭)나라를 상대로 마지막으로 항거한 곳은 제읍(制邑)이라는 곳으로 하북성 최남단에 위치하는 요충지였다.

2.1. 역대 군주

  • 괵중(虢仲)
  • 혜숙(惠叔) 대림(大林)
  • 려(旅) - 혜숙의 아들.

3. 서괵(북괵)

중의 나라인 서괵(西虢)은 지금의 섬서 보계현에 위치했다. 시조인 괵숙은 계력의 삼남으로 주문왕의 이복동생이다. 작위는 공작이었다.

춘추 시대 이전에 주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소주, 등과 함께 주나라의 원로 관직을 지냈다. 대대로 삼공 벼슬을 물려받는 실세였으나, 서주(西周)가 동쪽의 낙양을 수도로 천도(동주)한 이후 급격히 쇠퇴하여 춘추 시대가 시작되면서 소국으로 전락하였다. 상양성[2]으로 옮긴 이후 국호를 북괵(北虢)으로 고친다.[3] 잔류 세력이 서괵이 있던 자리에 소괵(小虢)이라는 나라를 건국한다.

소국으로 전락한 이후에도 주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라를 유지하다가 기원전 655년에 진나라(晉)의 가도멸괵 작전으로 망했으며 여기서 고사성어보거상의(輔車相依), 순망치한이 유래되었다. 둘을 묶어 순치보거(脣齒輔車)라고도 한다.

3.1. 역대 군주

  • 괵숙(虢叔)
  • 곽숙(郭叔) - 괵숙의 아들
  • 성공(城公)
  • 여공(厲公) 장보(長父)
  • 선공(宣公) 자백(子白)
  • 문공(文公)
  • 석보(石父) 고(鼓)
  • 한(翰) - 석보의 아들로 추정
  • 기보(忌父)
  • 임보(林父)
  • 추(醜) 또는 축(丑) - 멸망

4. 소괵

서괵(西虢)이 동천하고 갈라진 세 나라 중에 하나인 소괵(小虢)은 주(周) 왕실이 동천하자 같이 동천한 서괵의 잔류 세력이 강(羌), 융(戎)과 손을 잡고 재건한 나라. 기원전 687년 진(秦)나라 무공에 의해 멸망했다.

참고로 주 왕실과 함께 서쪽으로 옮겨 유지된 괵나라 공실이 남괵(南虢)과 북괵(北虢)이다. 남괵은 상양(上陽) 땅에 자리를 잡았으며, 북괵은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평륙(平陸)인 하양(下陽) 땅에 자리를 잡았다.


[1] 지금의 장안.[2] 현재의 싼먼샤시 이가요(李家窑) 지역에서 1999년 상양성 옛 터가 발굴되어 문화유적지로 지정되었다.[3] 남괵(南虢)도 따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