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2. 유년기
아버지 조지(이탈리아계[1]와 독일계[2] 혼혈의 미국인)와 어머니 이멀린(독일계와 러시아계[3] 독일인)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혈통은 독일계 미국인 쪽에 더 가깝지만 부계나 이름, 성씨를 보면 이탈리아계라고 봐도 될듯하다.4살 무렵부터 CF나 TV 드라마 단역 등에 출연하면서 아역으로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남다른데 친아버지 조지와 재혼한 여성의 아들이[4] CF에 나오는 걸 보고 자극받은 것이 시발점이라고 한다. 그의 첫 CF는 우유 CF였다.
학창 시절 디카프리오는 학교를 싫어해 시간 때우기 식으로 간신히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오히려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는데 관심이 많은 문제아였다. 시험시간에 컨닝을 자주 했다고.
3. 1990년대
3.1. 전반기
1991년작인 비디오용 코믹 호러물[5]인 크리터스 3에 출연함으로써 영화계에 정식으로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이 데뷔작은 그의 경력에 그리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실 크리터스 1만 해도 흥행도 성공하고 평도 괜찮았지만 시리즈가 갈수록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고 결국 개봉도 못하고 비디오용으로 나온 3편과 이후 4편으로 시리즈를 끝마쳤다. 그래도, 골수팬들이 많아 2019년에 8부작 웹 TV드라마 시리즈 (Critters: A New Binge)로 다시 부활했다. 우습게도 잊혀지던 이 크리터스 3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알려지면서 그의 이름을 들먹이며 비디오나 DVD 표지에 장식하고 홍보하고 있다.디카프리오를 무명 배우에서 유명해지게 한 건 1992년 TV 시트콤 《성장통》(Growing Pains)의 시즌 7 출연이었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방영되지 않고 여기 출연진들이 월드 스타로 성장하진 못해 한국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는데, 당시 상당한 인기를 누린 인기 시트콤이었고 디카프리오는 여기서 노숙자 소년 "루크"역할을 맡아 주인공 시버 집안에 얹혀 살게 되어 시즌 7 막판에 하차하기 전까지 준 레귤러 정도의 역할로 이름을 알렸다.[6]
이후 영화 《이 소년의 삶》에서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출연하여 그의 명성에 기죽지 않고 반항적인 양아들 '토비' 역을 멋지게 연기하였다. 이후 《마빈의 방》에서 드 니로와 다시 함께 공연한다. 《마빈의 방》은 잔잔한 가족 드라마이고, 포스터엔 디카프리오가 마치 주연인 양 나오지만 극중 비중은 조연이다. 드 니로는 극중 디카프리오의 외할아버지 마빈과 그의 가족들의 주치의로 굉장히 선량한 인물을 연기했으므로 이 영화에선 이 두 배우들의 불꽃튀는 연기 대결은 없다. 먼 훗날 드 니로와 디카프리오는 《플라워 킬링 문》에서 또다시 함께 연기한다.
《이 소년의 삶》과 《길버트 그레이프》를 통해 시카고 영화 비평가 협회 시상식과 LA 영화 비평가 협회 시상식에서 가장 촉망받는 배우로 선정되었으며, 《길버트 그레이프》를 통해 세계 비평 협회(National Board of Review)의 최우수 조연상을 수상했다. 이외에 각종 시상식에도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1#2 여담으로 1993년부터 이듬해 1994년 제66회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이어지는 오스카 레이스 중의 각종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부분은 대부분 《도망자》의 토미 리 존스가 수상했다.
1993년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조니 뎁의 지적장애인 동생 '어니 그레이프' 역을 연기하여 어려운 캐릭터를 잘 연기하였고 6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7]
3.2. 후반기
1995년에는 《바스켓볼 다이어리》에 출연하여 방황하는 청소년을 연기하였고 《토탈 이클립스》에서는 랭보를 연기하였다. 이 영화에서의 외모가 디카프리오의 전성기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8]《로미오와 줄리엣》 |
《타이타닉》 |
《타이타닉》은 제7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11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이는 1950년 《이브의 모든 것》이 기록했던 최다 후보 기록과[9] 1959년 벤허, 2004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의 11개 부문 수상과 타이기록이다.[10]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1위 흥행 기록을 달성하였다.
디카프리오는 《타이타닉》을 통해 세계 최고의 인기 스타가 되어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것처럼 보였다. 이전까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는 등 인상적인 연기를 보인 배우가 잘생긴 외모로 인기까지 거머쥐자 다른 아이돌 스타들이 그래왔듯이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여겨진 것이다. 하지만 디카프리오는 하이틴 스타에 머무르지 않았다.
1998년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셀러브리티》에 10분 남짓한 짧은 출연임에도 보여준 빼어난 연기를 영화평론가 빌지 에비리는 극찬했다.# '브랜든 데로우'란 배역이었다.
4. 2000년대
이 무렵부터 디카프리오는 마틴 스코세이지, 제임스 카메론, 리들리 스콧, 스티븐 스필버그, 우디 앨런, 쿠엔틴 타란티노, 클린트 이스트우드, 샘 멘데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크리스토퍼 놀란, 대니 보일 등등의 명감독들 작품 출연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2002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 출연했다. 1860년대 초 뉴욕의 격동기 시대를 다룬 영화이며 작품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윌리엄' 역을 맡은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연기가 단연 돋보였다. 이 영화는 7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다.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 출연했다. 이 영화를 통해 6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남우 주연상-드라마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2004년에는 《에비에이터》에 출연했다. 하워드 휴스의 전기 영화로 휴스 역을 훌륭하게 연기하고 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에비에이터》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함께 77회 시상식의 최대 라이벌이었으나 주요 부문에서 모두 밀렸다. 다만 케이트 블란쳇이 여우 조연상을 수상했고 스태프 부문에서 4관왕을 달성했다.
2006년에는 스코세이지 감독의 차기작이었던 《디파티드》에 출연했다.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 있는 장면들을 연출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는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을 수상했다.
이후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출연했다. 피의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액션 영화로 아프리카의 독재와 인간들의 욕심으로 고통받는 평민들의 아픔을 잘 표현해냈다. 이 영화는 흥행과 작품성 면에서 인정받았고 의미 있는 결말을 만들기도 하였다. 디카프리오는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라스트 킹》에 출연했던 포레스트 휘태커에게 밀리며 수상에 실패하였다.
2008년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바디 오브 라이즈》에 출연하였고 샘 멘데스 감독이 연출한 《레볼루셔너리 로드》에도 출연하였다.
5. 2010년대
2010년에는 《셔터 아일랜드》와 《인셉션》에 출연해서 좋은 평을 받았다. 인셉션의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미 주연 배우로 디카프리오를 낙점하고 있었다고 한다. 디카프리오와 톰 하디, 마리옹 코티야르, 조셉 고든레빗, 와타나베 켄, 엘리엇 페이지 등 화려한 출연진들의 연기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 수준 높은 영화의 완성도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태프 부문 4관왕을 이루었다.2012년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 악역인 '캘빈 캔디' 역으로 출연해서 인상적인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11] 어찌나 악랄한 캐릭터를 연기했는지, 디카프리오는 지금까지 해 봤던 악역 캐릭터 중에서도 이 '캘빈 캔디'가 특히 싫은 캐릭터였다고. 오죽하면 제이미 폭스, 새뮤얼 잭슨 등 함께 제작에 참여한 다른 흑인 배우들이 디카프리오를 달래주며 촬영을 이어갈 지경이었다. 같이 출연했던 크리스토프 발츠는 남우 조연상에 노미네이트돼서 수상했다.
2013년에는 고전소설을 영화화한 《위대한 개츠비》에 캐리 멀리건과 출연했다. 이후 디카프리오의 역대 최고의 연기라는 찬사를 받았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 출연하였다. 이로 인해 86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 주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그리고 마침내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88회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마틴 스코세이지, 제임스 카메론, 리들리 스콧, 스티븐 스필버그, 우디 앨런, 쿠엔틴 타란티노, 클린트 이스트우드, 샘 멘데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막강한 할리우드 감독들과 작업하면서 과거 최고의 하이틴 스타에서 진정한 성인 연기자이자 동시대 최고의 배우로 거듭났다. 온갖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을 연기하였으며 오랜 기간 예술 영화에 헌신하고 있다. 또한 디카프리오는 '감정적으로 병든 인물을 표현하는 일은 나에게 진정으로 연기할 기회를 준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티켓 파워를 인정받는 탑배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경우 드라마 장르의 특성상 개봉 초기 흥행성에 의문이 제기됐지만 이 또한 흥행시키면서 티켓 파워를 다시 한번 입증하며 흥행성과 작품성 등을 장악하는 할리우드 1순위 배우 중 한명으로서 다시 한번 입증했다. 배우 개인의 티켓파워로는 동시대 배우 중에서는 사실상 할리우드 최고 수준이다.[12]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하고 난 후로는 환경운동가 활동에 전념하다 2018년에 이전에 같이 작업을 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9번째 신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캐스팅됐으며 2019년 개봉되었고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남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됐다.
6. 2020년대
2024년 기준, 영화 52편에 참여했다.[1] 나폴리가 있는 캄파냐 주 출신의 이탈리아인이라고 한다.[2] 바이에른 주 출신의 독일인이라고 한다.[3] 디카프리오의 외할머니는 독일로 이민온 러시아인이고 외할아버지는 독일인이라고 한다.[4] 이름은 애덤 패러. 그러나 디카프리오와 성이 다른 것을 보면 알겠지만, 그의 아버지와 재혼한 여성이 재혼 전 낳았던 아들이기 때문에 그와 피가 섞인 혈육은 아니다. 이 의붓형은 어릴 때만 잠깐 활동했을 뿐 연기 쪽으로 나가지는 않았다.[5] 우주 교도소를 탈출해 지구로 온 식인괴물 크리터 무리랑 이 크리터를 잡고자 지구로 온 외계인 사냥꾼들이 벌이는 소동을 그린 작품으로 1편만 해도 거의 무삭제로 1995년 2월 17일 KBS2에서 오전 11시 50분에 일요특선 외화로 더빙 방영될 정도였다. 1편은 당시 우리나라 등급으로 쳐도 중학생 이상의 수준이었다. 크리터들이 자기들 언어로 말도 하고 우주선도 몰고 이걸로 빔 무기도 쏘며 ET 인형을 보고 건방지다며 물어 뜯는다든지 여러 코믹 요소들이 많았지만 2편 이후 코믹 설정을 제거하고 심각한 호러물로 가려다가 평이나 흥행에서 말아먹고 이후 3,4편은 비디오용 영화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모두 미개봉하고 비디오로 4편까지 다 나왔는데 비디오 등급으로는 전 시리즈 모두 연소자불가 등급이었다. 2편부터 제법 피투성이 장면이 연출되었고 이후 한국 지상파로 방영된 바 없다. 참고로 크리터스 1편은 바로 람보 1이나 101 달마시안 영화판이나 엑설런트 어드벤쳐를 감독해 흥행에 성공한 스테판 헤렉 감독 데뷔작이다.[6] 이 시트콤은 미국 롱아일랜드의 시버 가족의 이야기인데, 캐나다의 국민 배우 앨런 씨크가 아버지 제이슨 시버 역할을 맡았으며, 캐스트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아들 역할의 커크 캐머런은 80년대 후반 미국에서 손꼽히는 10대 스타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 골든 글로브에도 두 차례나 수상 후보로 오르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참고로 이 작품에는 당시 무명이던 브래드 피트가 두 번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각각 다른 역할로 한번은 학교에서 인기를 끌기 위해 풋볼팀 주장과 사귀던 버 집안의 딸 캐롤을 꼬시는 찌질이로, 다른 한번은 록스타지만 인기에 취해 어린 팬에게 욕하고 푸대접하는 찌질이로 나왔다.[7] 참고로 이 당시 국내 비디오 가게에 비치되어 있던 주간지(신작 비디오 출시를 알려주는 잡지)에 길버트 그레이프 출시와 겸해서 특집이 실렸는데 "연기력이 좋은 것도 죄가 되나요?"란 카피가 붙을 정도였다.[8] 《바스켓볼 다이어리》는 리버 피닉스가 출연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의 죽음으로 그 배역은 디카프리오에게 갔고 국내에는 리버를 모델로 그려졌다고 잘못 소문이 나있던 《토탈 이클립스》도 리버가 아주 큰 흥미를 보이던 작품이라고 한다. 리버 피닉스는 어린 디카프리오의 우상이었고 운명의 장난처럼 리버가 사망한 날 디카프리오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파티장에서와 바이퍼룸으로 가는 그를 목격했다고 한다.[9] 1950년 영화 이브의 모든 것은, 여우주연상에 후보 2명, 여우조연상에도 후보가 2명 올랐다. 수상은 6개 부문 수상이다. (여우주연, 여우조연상은 받지 못한다.)[10] <타이타닉>은 음향상과 음향편집상을 모두 수상했는데, 음향편집상은 1963년에 추가된 부문이다. 두 상이 같은 작품에 주어진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당시에 음향편집상이 있었다면, 음향상을 수상한 <벤허>가 음향편집상까지 받아서 12개 부문 수상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수상한 11개 부문은 모두 1959년에도 있었던 수상부문이다.[11]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한스 란다 배역의 후보로 거론됐었지만 언어적인 요인 때문에 무산됐다.[12] 이와 견줄만한 배우로는 톰 크루즈와 윌 스미스 정돈데, 톰 크루즈는 미션 임파서블 3이 겨우 본전치기의 흥행을 거두자, 톰은 이제 한물 갔다고 평한 파라마운트 글로벌 간부들에게 발끈해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전례가 있고(다만 이후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성공과 탑건 2로 보란 듯이 자신의 흥행력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윌 스미스는 2010년대도 수어사이드 스쿼드, 알라딘 등을 흥행시키고 심지어 코로나19 시기에도 나쁜 녀석들: 포에버를 흥행시키는 저력을 보여줬으나 폭행 사건으로 앞날이 불투명해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