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NBA 서부 컨퍼런스 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의 역사 및 시즌 기록을 정리한 문서이다.2. 초창기
1970/71 시즌에 사용된 로고.
1971~1978년까지 사용한 로고.
1970년에 뉴욕 주 버팔로의 향토 부동산업체 '스나이더 코퍼레이션'의 창업주 폴 스나이더의 주도로 버팔로 브레이브스라는 이름으로 창단됐는데,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및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같은 확장 프랜차이즈 동기들 중 하나였다. 창단 당시 초대 감독은 시라큐스 내셔널즈의 레전드 센터였던 돌프 쉐이즈, 코치는 조니 매카시, 선수진은 네이트 보우먼, 에멧 브라이언트, 마이크 데이비스, 프레디 크로포드, 밥 카우프먼, 돈 메이, 조지 윌슨, 존 허머 등이었다.
초창기에는 신생팀들이 다 그렇듯 성적이 나빠 1972/73 시즌까진 도합 65승밖에 못 했다. 1972년에 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감독 잭 램지를 모신 후, 드래프트에서 노스캐롤라이나대 출신 밥 맥아두를 전체 2번으로 뽑아 새 출발을 하기 시작했고, 램지 체제의 첫 시즌에는 성적이 21승 61패로 7등을 찍었으나 맥아두가 탁월한 득점실력으로 신인상을 받아 농구계의 주목을 받았다.
1973/74 시즌에 밥 맥아두의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평균 30득점을 상회하며 첫 득점왕 자리를 차지했다. 팀은 42승 40패로 처음 5할 승률을 찍어 플레이오프에 첫 진출을 했고, 1차전에서 데이브 코웬스-존 하블리첵-조조 화이트 3인방이 이끄는 강호 보스턴 셀틱스를 만나 2승 4패로 무릎을 꿇었다. 1974/75 시즌에는 49승 33패를 기록하며 플옵 진출을 했고, 맥아두도 여전한 득점력으로 MVP까지 땄지만 웨스 언셀드-엘빈 헤이즈의 워싱턴 불리츠에게 3승 4패로 패배했다.
1975/76 시즌에는 맥아두가 득점머신 기질을 여전히 발휘했음에도 전 시즌보다 덜한 46승 36패를 찍어 플옵 1라운드에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꺾고 2라운드에서 또 보스턴 셀틱스를 만났지만, 2승 4패로 컨퍼런스 파이널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위와 같이 성적은 괜찮았으나 연고지인 버팔로가 스몰 마켓이라 티켓 판매만으로도 적자를 메꿀 수가 없어서 1976년에 스나이더 구단주는 켄터키 주 출신 유명 정치인이자 ABA팀 켄터키 콜로넬스 구단주이던 존 Y. 브라운(1933~2022)[1]에게 620만 달러라는 싼 가격으로 매각했다. 왜 이렇게 싸냐 하면, 새 구단주 브라운이 짠돌이인 까닭에 기존 구단주인 폴 스나이더에게 양해를 구한 뒤 추후 구단 운영에서 생기는 수입을 그에게 나눠주는 조건으로 싼 가격에 매입했기 때문이다. 브라운은 먼저 팀을 3시즌 연속 플옵 진출에 성공시킨 잭 램지를 해고하고 테이츠 로크 코치를 감독으로 승진시켰는데, 여기서부터 재앙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중계권이나 광고 수입이라는 개념이 없었던지[2] 적자만 계속되자 결국 브라운 구단주는 선수를 팔아 돈을 마련하고자 했는데, 먼저 ABA 합병으로 인한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모제스 말론을 사들였으나 단 2게임만에 팔았고, 두 번째로 1974~76년까지 NBA 득점왕을 3년 연속 차지한 밥 맥아두를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하게 되었다.
3. 암흑기
3.1. 버팔로에서 샌디에이고로
두 개의 심장을 잃은 브레이브스는 결국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로크가 감독을 처음 맡던 1976/77 시즌에는 30승 52패로 굴러떨어졌다. 이 시즌 당시 감독이 2번이나 바뀌었는데, 특히 시즌 후반에 지휘를 맡았던 조 멀라니(Joe Mullaney, 1924~2000)[3]는 ABA 팀 켄터키 콜로넬스 시절 브라운 구단주와 친분이 있어서 '낙하산' 소리까지 나왔다.1977년 오프시즌부터 피닉스 선즈와 애틀랜타 호크스를 지휘했던 베테랑 지도자 코튼 피츠시몬스를 감독으로 앉히고, 트레이드 시장에선 신인왕을 차지했던 애드리안 댄틀리를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스윙맨 빌리 나이트랑 맞바꿨다. 나이트도 나름 기량은 있었으나 별 족적 없이 1시즌만에 보스턴 셀틱스로 떠났다. 그 사이 리더 자리도 1971년 드래프트 7라운드 104번 출신 슈팅가드 랜디 스미스가 이어받아 고군분투했음에도 1977/78 시즌에는 최종적으로 27승 55패로 서부 컨퍼런스 10위를 찍었다. 이러한 구단의 잘못된 운영은 팬들을 화나게 만듦으로써 같은 경기장을 쓰는 NHL팀 버팔로 세이버스나 NFL팀 버팔로 빌스로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이렇게 되자 팀에 싫증이 난 브라운 구단주는 마침 보스턴 셀틱스의 구단주인 어브 레빈(1921~1996)[4]이 구단을 트레이드하자고 제안하자[5] 그는 귀가 솔깃해져 둘은 구단을 바꾸게 되었고, 레빈이 사들인 브레이브스는 1978년에 샌디에이고로 연고를 이전했다.[6]
어브 레빈 시절에 사용한 로고.
도날드 스털링이 인수한 뒤인 1982년 이후부터 사용한 로고.
샌디에이고 이전 후 새 구단주인 어브 레빈은 브라운 전임 구단주가 싸 놓은 똥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팀 이름도 '클리퍼스'[7]로 바꾸고 명장인 진 슈를 감독으로 영입한 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부터 프리스타일형 선수 월드 B. 프리를 사서 팀을 재편했다.
첫 시즌은 프리의 자유로운 농구와 랜디 스미스의 관록에 힘입어 43승 39패로 5할을 찍어 무난하게 시작했다. 1979년에는 2년 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우승의 주역인 빌 월튼을 트레이드로 영입했고, 커미트 워싱턴 외 2명과 드래프트 1라운드 픽 등을 팔았다. 그러나 1979/80 시즌에 부상으로 68게임이나 빠져 망조가 시작됐고, 프리는 선수들과 갈등을 일으키며 부상으로 신음하던 월튼을 비난하는 등으로 팀 분위기를 해쳤다.
1980년에는 전년도 시애틀 슈퍼소닉스 우승멤버이던 폴 사일러스를 감독으로 부르고, 프리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팔고 필 스미스를 사들였다. 그럼에도 월튼은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 못해 프리맨 윌리엄스와 스웬 네이터가 분전을 했음에도 성적은 더 오르지 못했다. 더군다나 재정난까지 겹쳐 선수들의 임금도 제때 지급하지 못했으며, MLB 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NFL 팀 샌디에이고 차저스에게 흥행에서 밀렸다.
결국 레빈 구단주는 1981년 로스앤젤레스 지역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스털링에게 구단을 매각했고[8], 드래프트 1라운드 8번으로 백인 센터 톰 챔버스(유타대)를 뽑았다. 챔버스가 루키 시절 평균 17.2점으로 랭킹 1위를 차지했지만 네이터마저 무릎 부상으로 드러누우면서 정규시즌 성적은 17승 65패였다.
1982/83 시즌 들어 월튼이 수차례 걸친 수술 끝에 돌아왔으나, 1주일에 1번씩 뛰라는 의사의 권고 탓에 33경기밖에 못 뛰었다. 다른 한편 신인 테리 커밍스와 챔버스가 폭발적인 득점력을 지녔으나 25승 57패에 그쳤다. 1983/84 시즌을 앞두고 감독을 짐 라이넘으로 갈고 스웬 네이터와 챔버스, 바이런 스캇 등을 시애틀 슈퍼소닉스 등지에 팔며 제임스 도널드슨과 놈 닉슨[9] 등을 샀으며, 월튼이 55경기를 소화했으나 시즌 성적은 30승 52패에 그쳤다. 이 시즌을 끝으로 로스앤젤레스로 연고이전했다.
3.2.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정착기
도날드 스털링 구단주 시절을 상징하는 로고. | |
1989~2010 | 2010~2015 |
LA에서 첫 시즌은 원정 1승 1패로 순조롭게 시작했고, 11월 1일 첫 홈경기에서 뉴욕 닉스를 107대 105로 이겼다. 이후 잠깐 주춤하다가 12월 중순 들어 14승 14패로 5할에 도달했으나 11연패를 당하며 내리막을 찍었다. 도중에 짐 라이넘 감독이 쫓겨나자 돈 체이니 코치가 급히 지휘봉을 잡아 데릭 스미스의 활약으로 남은 시즌을 9승 12패로 만회해내 31승 51패를 찍어 전 시즌 대비 1승을 더 올렸다.
1985년에 드래프트에서 전체 3번으로 벤와 벤자민(크레이튼대)을 뽑고 월튼을 보스턴 셀틱스의 스타 PF 세드릭 맥스웰과 맞바꿨다. 정규시즌 초반에는 5연승으로 시작했으나 스미스가 부상으로 11경기나 빠지는 등의 악재로 인해 8연패를 당했고, 이에 마퀴스 존슨이 고군분투하여 최종적으로 전 시즌 대비 1승만 더 오른 32승 50패를 기록했다.
1986년에 시어 단장이 CBA 총재가 되자 앤디 로저(Andy Roeser) 재무부장을 경영부사장으로 승진시킨 후, 레이커스의 레전드 엘진 베일러를 운영부사장 겸 단장으로 발탁해 뭔가 해 보려고 했지만, 주전 PG 놈 닉슨이 소프트볼을 즐기던 도중 무릎 부상을 당해 시즌아웃 판정을 받자 데릭 스미스와 주니어 브릿지맨 등 3명을 새크라멘토 킹스로 팔아 마이크 우드슨과 래리 드류, 1라운드 픽 등 드래프트 카드 2장을 받았다.
그러나 우드슨과 드류는 존슨 등의 공백을 메우기엔 기량이 딸렸고, 마퀴스 존슨마저 정규시즌 10번째 경기 도중 벤와 벤자민과 세게 부딪혀서 부상을 당해 잠정적으로 NBA를 떠나야 했다. 결국 1986/87 시즌은 팀 역사상 최악의 성적인 12승 70패로 끝냈는데, 1972/73 시즌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9승 73패)에 이은 역대 2위였다.[10]
1987년 오프시즌에서 베일러 단장은 맥스웰과 백업 센터 커트 님피우스를 휴스턴 로키츠 및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각각 지닌 드래프트 2장과 맞바꿨고, 드래프트에서 레지 윌리엄스(조지타운대, 4번)[11]와 조 울프(노스캐롤라이나대, 13번), 켄 노먼(일리노이대, 19번)을 각각 뽑는 등 리빌딩에 돌입했고, 체이니 감독 대신 진 슈를 7년만에 다시 감독직에 불러서 새롭게 도전하려 했다.
그러나 정규시즌 개막 전에 막 회복했던 닉슨이 연습 도중 아킬레스건이 파열됐고, 촉망받던 신인 레지 윌리엄스도 무릎 부상으로 35경기, 울프도 42경기를 각각 기록하는 등 부상 행진이 이어졌다. 그나마 데뷔 4시즌차인 주전 PF 마이클 케이지가 리바운드 폭풍을 발산해 최종 경기에서 30개를 찍고 평균 13.03개로 시카고 불스의 찰스 오클리를 소수점 밑 3점차로 이기는 등 파란이 일었으나 17승 65패로 2시즌 연속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1988년 드래프트 때 캔자스대 농구부의 우승 멤버 대니 매닝을 전체 1번으로 뽑은 후, 케이지를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팔아 게리 그랜트(미시건대, 15번) 및 1라운드 픽을 받았다. 거기에 허시 호킨스(브래들리대, 6번)과 1라운드 픽도 팔아 찰스 스미스(3번, 피츠버그대)를 받았다. 정규시즌 초반에 10승 19패로 3할을 기록했으나 매닝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26경기밖에 못 나가서 연패를 거듭했다.
이에 구단은 11연패 시점에 진 슈 감독 대신 돈 케이시 코치에게 지휘봉을 맡겼고, 켄 노먼과 찰스 스미스가 분전했지만 8연패를 더 기록하여 21승 61패로 시즌을 마쳤다. 그나마 신생팀 샬럿 호네츠와 마이애미 히트의 승수가 낮아 리그 꼴찌를 면했다.1989년 드래프트 전체 2번픽으로 듀크대 출신 대니 페리(듀크대)가 클리퍼스를 포기하고 이탈리아 리그로 냅다 튀자,[12] 이에 팀은 페리와 레지 윌리엄스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팔아치운 후, 론 하퍼와 1라운드 픽 2장, 2라운드 픽 1장을 각각 샀다.
하퍼는 클리퍼스에 오면서 기량이 더욱 상승했고, 매닝도 건강을 되찾으면서 팀에 활기가 불어났다. 그랜트의 진두지휘 하에 스미스와 하퍼가 득점을, 노먼과 매닝 등이 수비를, 벤자민이 골밑을 각각 맡아 시즌 초반에는 16승 19패를 기록했으나, 하퍼와 그랜트가 한달 간격으로 부상을 입어 30승 52패로 전 시즌 대비 1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1990년 오프시즌 때 케이시 대신 전 포틀랜드 감독 마이크 슐러를 감독으로 부르고, 드래프트에서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교 출신 보 킴블을 8번, 전년도 미시건대 우승 멤버 로이 보트(Loy Vaught)를 13번으로 각각 뽑았다. 정규시즌 초반 6주 동안은 5할 승률을 유지했지만 하퍼가 발목 부상으로 39경기나 결장해 성적이 추락했고, 1991년 2월에 벤자민을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올든 팔러니스 및 드래프트 픽 2장과 맞바꿨다. 시즌 내내 스미스가 분전했지만 전 시즌보다 1승 더 오른 31승 51패를 기록했다.
1991년 오프시즌 때 드래프트 픽 2장을 애틀랜타 호크스의 닥 리버스랑 맞바꿨고, 제프 마틴 및 1995년 드래프트 2라운드 픽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제임스 에드워즈랑 맞바꾸는 등 팀을 또 갈아엎었다. 정규시즌 도중인 1992년 2월에 21승 24패로 부진해지자 슐러 감독이 잘리고 맥 캘빈 코치가 감독대행을 잠시 맡다가, 샌안토니오 스퍼스 감독이던 래리 브라운이 급히 들어왔다. 보트는 폭발적인 리바운드 및 득점력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막판에 승수를 더 올려 23승 22패를 보태 동 시즌 플옵에 진출했고, 칼 말론-존 스탁턴 콤비의 유타 재즈에게 2승 3패로 졌다.
1992년 오프시즌 때는 뉴욕 닉스 및 올랜도 매직과 3각 트레이드를 벌여 찰스 스미스와 닥 리버스, 보 킴블을 뉴욕의 마크 잭슨 및 1995년 드래프트 2라운드 픽과 맞바꾸고, 1994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을 올랜도의 스탠리 로버츠랑 맞바꿨다. 또한 워싱턴 불리츠의 존 "핫 플레이트" 윌리엄스를 FA로 영입해 로버츠랑 묶어 콤비를 만든 뒤, 뉴욕의 키키 반더웨이도 FA로 들여왔다. 반면 에드워즈를 FA로 풀어 레이커스로 떠나보냈다. 드래프트에서 네바다 대학교 라스베가스 캠퍼스 출신 엘모어 스펜서도 전체 25번으로 뽑았다. 시즌 개막 후 레이커스가 잠깐 약한 틈을 타 매닝, 하퍼, 노먼 등의 활약에 힘입어 41승 41패를 찍고 2년 연속으로 플옵에 진출했지만, 하킴 올라주원의 휴스턴 로키츠에게 2승 3패로 졌다. 시즌이 끝난 뒤 스털링 구단주가 투자에 인색한 탓인지 브라운 감독이 재계약을 하지 않고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떠났다.
1993년 오프시즌 때 모션 오펜스에 능한 밥 와이스 전 애틀랜타 호크스 감독을 3년 계약으로 부임시킨 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노장 마크 어과이어를 FA로 영입했고, 노먼을 FA로 풀어 밀워키 벅스로 떠나보냈다. 드래프트에선 시튼홀 대학교 출신 테리 데헤어를 전체 13번으로 뽑았다. 정규시즌 초반에 11승 14패로 가다가 12월 4일 레이커스전에서 로버츠의 오른쪽 아킬레스건이 찢어지는 등으로 인해 연패를 거듭했다. 그나마 스펜서가 로버츠의 자리를 메꿨으며 1994년 2월에 매닝은 애틀랜타 호크스의 도미니크 윌킨스 및 1994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과 맞바꾸는 한편, 어과이어도 방출시켰다. 동년 1월과 2월에 각각 등용된 무명 선수 보 아웃로와 해롤드 엘리스 등이 활약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우왕좌왕한 플레이 탓에 27승 55패로 굴러떨어졌다.
1994년 오프시즌 때 팀은 와이스 대신 명장 빌 피치 감독을 선임했고, 드래프트에서 UC 버클리 출신 라몬드 머레이를 7번, 루이빌대 출신 그렉 마이너를 25번으로 각각 뽑았지만, 마이너는 마크 잭슨과 세트로 인디애나가 15번으로 뽑은 에릭 피아코스키[13](네브래스카대)와 푸 리차드슨, 말릭 실리랑 맞바꿔졌다. 또한 저니맨 토니 마센버그도 FA로 영입했다. 반면 윌킨스와 하퍼를 FA로 풀어 보스턴과 시카고로 각각 떠나보내는 등 쇄신을 했다. 정규시즌에선 로버츠가 또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해 결장하자, 보트와 머레이, 데헤어 등이 분전했으나 17승 65패로 더 굴러떨어졌다.
그 댓가로 1995년 드래프트에선 전체 2번으로 앨라배마대 출신 안토니오 맥다이스를 뽑았다가 덴버 너기츠가 15번으로 뽑은 브렌트 배리(오레곤 주립대), 로드니 로저스, 랜디 우즈 셋과 맞바꾸고, 스펜서를 덴버 너기츠의 바이슨 딜레[14]와 맞바꿨다. 더 나아가 그랜트를 FA로 풀어 뉴욕으로 떠나보내고 마센버그도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신규 팀 토론토 랩터스로 보내는 등 팀을 다시 갈아엎었다. 정규시즌 초반엔 7승 5패로 순항하다 로버츠, 실리, 리차드슨, 윌리엄스 등이 무더기로 부상을 당해 연패를 거듭했다. 이에 보트, 로저스, 데헤어 등이 최선을 다했으나 29승 53패로 무너졌다.
1996년 드래프트 때는 멤피스대 출신 로렌젠 라이트를 전체 7번으로 뽑은 뒤, 36번으로 이스라엘인 선수 도론 셰플러(UCONN)도 뽑았지만 그는 고국 팀 마카비 텔아비브로 갔다. 트레이드 시장에선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대릭 마틴과 밀워키의 케빈 덕워스를 FA로 영입하는 등 전력 보강을 했다. 다만 딜레는 220만 달러라는 고액 연봉 문제로 한 시즌을 뛰지 못했다. 정규시즌에선 덕워스와 로버츠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보트와 실리, 로저스 등이 최선을 다하여 36승 46패로 간신히 플옵에 갔다가 유타 재즈에게 3전 전패를 당했다.
1997년 오프시즌에서 로버츠를 미네소타의 스토이코 브란코비치와 맞바꾸고, 디헤어와 실리를 FA로 풀어 새크라멘토와 디트로이트로 각각 내보냈다. 드래프트 때는 미시건대 출신 모리스 테일러를 11번으로 뽑고 미네소타의 제임스 로빈슨을 FA로 받긴 했지만 정규시즌 들어 보트의 부상 등 악재가 생겨 연패를 거듭했다. 1998년 2월에 브렌트 배리를 마이애미 히트의 아이작 오스틴과 찰스 스미스[15], 드래프트 픽 1장과 맞바꿨고, 머레이와 로저스, 마틴, 라이트, 피아코스키 등이 분전했지만 17승 65패를 찍고 경질되었다.
1998년에 밀워키 벅스에서 온 크리스 포드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보트를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아이작 오스틴을 올랜도 매직으로 각각 FA로 풀어 떠나보냈으며, CBA에서 뛰던 타이론 네스비 및 트로이 허드슨을 FA로 영입했다. 드래프트에서 퍼시픽대 출신의 나이지리아인[16] 선수 '캔디맨' 마이클 올로워칸디를 전체 1번, 베일러대 출신 브라이언 스키너를 22번으로 각각 뽑았으나, 올로워칸디는 선수노조 파업이 터지자 1999년 초에 이탈리아 팀 비트루스 볼로냐로 갔다가 금세 방출된 후 팀과 계약했다. 정규시즌 당시 스캇 브룩스, 리차드슨 등의 부상으로 연패를 거듭했고, 2월에는 뉴저지 네츠의 셔먼 더글라스를 FA로 영입하며 피아코스키와 로저스, 테일러, 네스비 등이 분전했지만 9승 41패로 또 말아먹었다.
그 댓가로 1999년 드래프트에서 로드아일랜드 대학교 출신 라마 오돔을 전체 4번으로 뽑아 모리스 테일러와 짝을 짓고, 머레이를 클블의 데릭 앤더슨 및 조니 뉴먼과 맞바꿨는데, 이 중 뉴먼은 뉴저지의 에릭 머독과 또 맞바꿔졌다. 라이트는 애틀랜타 호크스가 지닌 드래프트 2장과 맞바꿔지고 더글라스, 리차드슨, 로저스, 마틴 등이 FA로 풀려 뉴저지 등지로 떠났다. 정규시즌에선 올로워칸디의 부상 등으로 연거푸 연패를 거듭했다. 특히 2000년 2월 라이벌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서 2쿼터에 단 2점만 올렸고, 시즌 도중 포드 감독이 잘리고 짐 토드 코치가 대행했다. 또한 무명선수 제프 매키니스를 FA로 등용하고 허드슨을 방출시키는 등 선수진을 변화시켰으나 15승 67패를 찍었다.
2000년 오프시즌 때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감독이던 앨빈 젠트리로 갈아치운 후, 코치진에 보스턴 셀틱스와 LA 레이커스의 레전드 데니스 존슨 및 카림 압둘자바를 각각 초빙했다. 드래프트에서 전체 3번으로 이스트 세인트루이스 고등학교 출신 대리우스 마일스를 뽑아 오돔과 짝을 지었고, 10번으로 미주리대 출신 키언 둘링도 뽑았지만 올랜도 매직이 지닌 코리 마게티와 데릭 스트롱, 2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과 맞바꿨다. 그 외에 드폴대 출신 퀸틴 리차드슨도 18번, 세르비아인 선수 마르코 야리치를 30번으로 각각 뽑았으나, 야리치는 이탈리아 팀 비트루스 볼로냐로 갔다.
또한 모리스 테일러를 휴스턴 로켓츠로 팔고 에릭 머독을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과 묶어 포틀랜드의 션 룩스와 맞바꾸는 한편, 매키니스 역시 실력을 만개시켰다. 그가 제창한 '업템포 농구'는 팀과 빠르게 융화되어 정규시즌에선 여전히 부진했지만, 2000년 11월에 타이론 네스비를 워싱턴 위저즈의 오비나 에케지[17] 및 체로키 팍스랑 맞바꿔가며 전 시즌보다 16승이 더 오른 31승 51패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올로워칸디가 전 경기를 소화해내긴 했으나 여전히 야투율 43.5%, 자유투 성공률 54% 등의 부진한 기록을 보인 게 흠이다.
2001/02 시즌 전에는 도미니게 고교 출신 타이슨 챈들러를 드래프트에서 전체 2번으로 뽑았으나, 스키너[18]랑 세트로 시카고 불스의 젊은 에이스였던 엘튼 브랜드랑 맞바꿨다. 트레이드 시장에서 셰플러의 지명권을 포틀랜드의 윌 퍼듀랑 맞바꾸고, 같이 지닌 2005년 드래프트 2라운드 픽도 비니 델 네그로와 바꿨지만 둘 다 웨이버 공시됐다. 다른 한편 마이애미 히트의 해롤드 재미슨, 댈러스의 에케지를 FA로 각각 영입했다. 브랜드는 기존의 오돔과 퀸틴 리차드슨, 대리우스 마일스 등 젊고 운동능력 뛰어난 선수들과 짝을 지어 빠른 농구로 '3단 엘리웁'을 선보여 39승 43패로 5할 근처까지 갔다.
2002년 오프시즌에서 마일스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안드레 밀러 및 브라이언트 스티스[19]랑 맞바꾸고 댈러스 매버릭스로부터 왕즈즈를 샀으며, 샌안토니오에서 FA로 팍스를 다시 부르고 볼로냐에서 뛰던 야리치도 영입했다. 또한 얼 보이킨스를 웨이버 공시시켜 골든스테이트로 팔았으며 제프 매키니스도 FA를 행사해 포틀랜드로 떠났다. 드래프트에서 메릴랜드대 우승멤버 크리스 윌콕스를 8번, 캘리포니아 주립대 프레즈노 캠퍼스 출신 멜빈 일라이를 13번으로 각각 뽑았다. 밀러가 1시즌 간 전체 어시스트 1위를 달성했으나 리딩능력이 부족해 오돔이 떠맡아야 했고, 젠트리 감독의 선수 역할분담 실패, 베일러 단장의 간섭, 올로워칸디의 부상 등으로 최종 성적은 27승 55패를 찍었다.
2003년에 스털링 구단주는 젠트리 대신 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감독 마이크 던리비 시니어를 새 감독으로 앉히고, 엘튼 브랜드와 코리 마게티 같은 FA급 대어들과 재계약을 해서 나름 '통 큰' 투자를 해서 짠돌이 이미지를 벗었다. 반면 드래프트에서 센트럴 미시간대 출신 크리스 케이먼을 6번으로 뽑은 뒤 트레이드 시장에서 오돔을 마이애미 히트로, 올로워칸디를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밀러를 덴버로, 피아코스키를 휴스턴으로 각각 팔고 워싱턴 위저즈에서 바비 시먼스[20]를 샀다. 이 시즌 성적은 28승 54패로 별로 나아지지 않았으나 2004/05 시즌에 37승 45패를 기록해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고,이에 팀은 샘 카셀과 커티노 모블리 같은 베테랑들을 사들이며 추가로 전력 보강에 나서 2005/06 시즌 47승 35패로 오랜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에 성공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1라에서 덴버를 꺾고 2라운드에서는 피닉스 선즈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며 선전했다. 2006년에는 3점 슈터 블라디미르 라드마노비치가 레이커스로 떠나자 피닉스 선즈로부터 팀 토마스를 FA로 샀으나 제 역할을 못했고, 숀 리빙스턴이 부상으로 한 시즌을 날리고 매거티가 팀과 불화를 겪는 등 악재가 생겨 40승 42패로 아쉽게 5할을 찍지 못했다.
2008년에 베일러 단장이 스털링 구단주와의 갈등으로 쫓겨나 던리비 감독이 단장을 겸했고, 덴버에서 마커스 캠비를, 골든스테이트에서 '배산적' 배런 데이비스를 각각 영입하여 엘튼 브랜드와 짝을 지으려고 했으나 브랜드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떠나게 되었다. 대신 동년 드래프트에서 픽한 에릭 고든이 그 해에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클리퍼스 팬들에게 나름 위안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고든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캠비가 부상으로 드러눕고, 배산적이 개인기만 남발하여 19승 63패로 처졌다.
그 댓가로 2009년 드래프트에서 17.7%의 확률에 당첨되어 1번픽 획득, 당시 오클라호마 대학교 출신의 전도유망한 선수 블레이크 그리핀을 픽하게 되었다. 그리핀을 품에 안은 팀은 LA의 새로운 강자 탄생을 기대하게 했지만, 시즌을 시작하기도 전에 어깨를 다쳤다. 거기에다 어깨 부상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무릎 부상을 당하여 6주 결장이 예상되었는데, 이 부상이 끝내 호전되지 않아서 수술을 결정, 루키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클리퍼스는 역시나 저주받은 구단이라며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클리퍼스에 1번 드래프트가 당첨된 후, 한 전문가는 블레이크 그리핀의 재능을 안타깝게 여겨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라고 했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링크는 블레이크 그리핀이 드래프트된 이후 ESPN 칼럼니스트 빌 시몬즈가 그에게 쓴 편지/칼럼. 실제로 이후에 그가 부상당하자 씁쓸했다고 한다.
그리핀은 팬들의 우려대로 갑작스런 부상으로 루키 시즌을 통으로 날렸고, 2010-11 시즌을 사실상의 데뷔 시즌으로 보내게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과 팬들의 기대만큼 말그대로 파워풀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줘 이제 한번 플옵 가보자!!!...하는 소망은 개뿔 32승 50패라는 별볼일없는 성적을 거두며 탈락했다.
성적이 최하위긴 하지만 엄청난 운동능력과 성적을 보여주는 블레이크 그리핀덕분에 이웃집 레이커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으며 게다가 주전 슈팅가드 에릭 고든의 성장과 2010 드래프트에서 픽한 두 루키 알 파룩 아미누와 에릭 블레드소가 괜찮은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기대되는 팀으로 보인다. 올스타 센터 크리스 카먼이 건강하게 잘지내고 괴물같은 배런 데이비스의 샐러리같은 문제들이 잘 해결된다면 제2의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했는데....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맞추어 배런 데이비스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트레이드 해버리고,[21] 대신에 모 윌리엄스와 자마리오 문을 받아왔다. 그동안 배런 데이비스의 부실한 몸관리와 개인플레이 때문에 속좀 탔을 클리퍼스는 수준급 포인트가드 모 월리엄스와 뛰어난 수비수인 문을 받아오면서 어느정도 로스터에 숨통을 트이게 되었다.
4. Lob City[22]
4.1. 2011-12 시즌
2011년 12월 12일, 크리스 케이먼, 에릭 고든, 알 파룩 아미누 등 3명의 젊은 선수와 2012년 신인 1라운드 최상위 지명권을 내주는 대가로 현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 크리스 폴을 데려오는 대형사고를 친다! 크리스 폴 트레이드가 무산되고 팀의 주력 선수 몇 명마저 떠나보낸 LA 레이커스와 대비하여 클리퍼스 팬들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다. 이로써 클리퍼스는 크리스 폴X블레이크 그리핀이라는 듀오를 구축하게 된다.그리고 2012년 클리퍼스는 드디어 창단 이래 최초로 강팀의 반열에 들며 없던 팬도 만들어내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크리스 폴X블레이크 그리핀 듀오의 시너지가 기대 이하이며, 신임 감독 비니 델 네그로[23]가 무능하며 전략이 없다는 비판도 많이 받지만 팀 전력이 전반적으로 확실히 상승한 게 눈에 띄고 심지어 크리스 폴이 부상으로 결장한 동안에도 어떻게 어떻게 잘 이긴다. 클리퍼스가 강팀으로 불리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은 NBA 올드팬이라면 진정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건만, 실제로 그 날이 오고야 만 것.
단축시즌으로 치러진 2011-12 시즌 최종 성적은 40승 26패 승률 .606 승률 6할은 프랜차이즈 사상 최초 기록이다. 그리고 멤피스 그리즐리스와의 PO 1라운드 1차전에서 4쿼터에 21점차를 뒤집는 역전쇼를 연출하며 선승을 따냈고, 풀 세트 접전 끝에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상대는
4.2. 2012-13 시즌
2012년 오프시즌 동안 근 10년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온 라마 오돔과 최고 식스맨 중 한명인 자말 크로포드, 알짜배기 노장 그랜트 힐, 유틸리티 포워드 맷 반스[24] 등 많은 선수를 영입하며 기대감을 높혔다. 특히 오돔, 크로포드, 힐의 영입으로 이제 벤치마저 탄탄해짐에 따라 시즌 전부터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폴이 슬슬 팀2013년 4월 7일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서 승리, 창단 이후 처음으로 디비전 우승을 성공했다. 그리고 팀 역사상 처음으로 50승을 달성했다. 그것도 모자라 사상 처음으로 LA 레이커스를 스윕했다.
4.3. 2013-14 시즌
비시즌기간엔 크리스 폴과 5년간 1억 7백만불의 맥시멈 규모의 재계약에 성공하고, VDN 감독을 해임했다. 그리고 보스턴 셀틱스에서 케빈 가넷과 명감독 닥 리버스 등을 데려오는 대형 트레이드가 논의되었으나, 감독 트레이드에 현금이나 선수를 끼우는 것은 불가하다는 사무국의 저지로 실패. 결국 가넷을 데려오는 데는 실패했지만 대신 닥 리버스 감독을 데려오는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트레이드로 JJ 레딕과 자레드 더들리 등 알짜 선수들을 영입하며 성공적인 비시즌 기간을 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2013-14 시즌이 시작되고 돈값 못한다고 까이던 주전 센터 디안드레 조던이 괄목상대급 성장을 하게 되면서 그 결과 팀의 로스터가 더욱 안정화되면서 신흥 강호로서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지만 자레드 더들리가 피닉스로 떠나더니 갑자기 모든 면에서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면서 결국 쩌리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말았고 주전 슈팅가드 레딕의 부상, 레딕이 돌아올때가 되니 에이스인 폴이 다치면서 풀전력을 돌리는 일이 적어서 그런지 변함없는 강자 샌안토니오, 케빈 듀란트가 MVP 달라고 시위중인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에 약간 미치지 못하지만 작년보다 1승 더 오른 57승 25패를 찍었다.
한편으로는 이 시즌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치열한 다툼으로 인해 험악한 라이벌 관계로 치달은 시즌이기도 했는데, 우선 첫번째 경기였던 10월 31일에 골든스테이트 센터 앤드류 보것이 디안드레 조던의 팔꿈치를 강하게 내려치면서 시작되었고, 2013년 크리스마스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맞붙었는데 이 경기 내내 두 팀 선수들이 치열한 몸싸움을 하였고 3쿼터에 골든스테이트 식스 맨 드레이먼드 그린이 블레이크 그리핀의 팔꿈치를 또다시 건드려 퇴장당하더니 결국 4쿼터에 리바운드 싸움 도중 앤드류 보것과 블레이크 그리핀이 매우 심한 몸싸움을 벌이다 양팀 선수들이 코트에 나와 대치하기도 했었다. 여기서 그리핀은 테크니컬 파울을 받으면서 퇴장당했고 보것 역시 플래그넌트 파울을 받았다. 다만 이 게임 이후 그리핀은 골든스테이트와 보것을 비난하면서 억울하다는 입장을 표현했고 사무국은 그리핀이 퇴장당할 이유는 없었다면서 오심을 인정했다. 그 이후의 정규시즌에서는 큰 문제는 없었으나 아래에 후술할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치열하게 붙게 되면서 견원지간 확정. 더군다나 이 두 팀은 캘리포니아 남부와 북부 팀인데다가 같은 지구여서 그렇잖아도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2013-14 시즌 동안의 이러한 여러가지 사건사고로 인해서 더더욱 관계가 악화되었다.
결국 서부지구 3위를 차지하였고 6위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맞붙게 되었다. 바로 아래에 기술할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의 인종차별 병크 발언이 터지면서 4차전을 대패해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1차전을 제외하고는 홈에서 홈 팬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 속에서 디안드레 조던이 확실히 골밑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그리핀과 폴, 레딕, 크로포드 등이 아주 적절하게 활약해주면서 7차전에서 113-103으로 승리하면서 2라운드 진출 성공. 7차전을 마친 후 골든스테이트 선수들과 라커룸에서 일부 시비가 붙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일부 클리퍼스 선수들이 패배한 골든스테이트를 약올리는듯한 발언을 했고 그것이 골든스테이트 선수들 라커룸에 들려서 몇몇 선수들이 말다툼을 벌였다는 이야기인데... 2013년 크리스마스 이후로 두 팀 사이는 엄청나게 험악해진 것이 절정으로 치달은듯.
한편 자말 크로포드는 올해의 맹활약에 힘입어 올해의 식스 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2010년에 이어 두번째 식스맨 상.
플레이오프 중 클리퍼스 팬들이 기뻐할 만 할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플레이오프라는 큰 잔치에 물을 끼얹는 일이 생겼는데 바로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이 인종차별 발언[26]을 하여 NBA로부터 구단주 자격이 정지된 것. 이때 클리퍼스의 선수들은 골든스테이트와의 4차전 원정경기를 앞두고 팀 로고가 박힌 셔츠를 코트 가운데에 집어던지고 아무 로고가 달리지 않은 셔츠로 연습을 하는 것으로 간접 시위에 들어갔고, 심지어 감독인 닥 리버스[27] 마저 스탈링을 보스로서 부정하고 플레이오프를 마지막으로 팀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으며 타 팀 선수들 역시 항의가 빗발치면서 커미셔너인 애덤 실버는 스털링을 빠르게 구단주 자격 정지 자격을 내렸으며 스털링은 앞으로 클리퍼스의 홈경기때 선수들 라커룸이나 감독실 같은 곳은 물론이고 심지어 스테이플스 홈경기 관람까지 못하게 되었다.
이 사건에 NBA 모든 구단이 드물게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합친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마이클 조던 샬럿 밥캣츠 구단주를 포함한 많은 구단의 구단주들이 이 소식을 듣고 스탈링에 대해 매우 깊은 실망과 리그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기대하는 인터뷰를 했으며, 모든 구단은 그들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검은색 바탕의 "We Are One" 이라는 배너를 달았다. 심지어 클리퍼스 구단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넣은 것으로도 모자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홈경기 동안 전광판에 "We Are One" 로고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스탈링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 소식 이후 매직 존슨은 "투자자 그룹을 설득해서 클리퍼스를 직접 매입하겠다."라고 클리퍼스 매입 의지를 드러냈다. 심지어 오프라 윈프리 역시 드림워크의 창설자인 데이빗 제펜 등과 팀을 이루어서 클리퍼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중. 그리고 2014년 5월 30일 부로 스털링 가문의 클리퍼스 매각이 완료되었고 새 주인이 결정되었는데 그 주인은 바로 스티브 발머가 되었다.[28] 플레이오프에 드리웠던 악재로 인해 졸지에 NBA 최악으로 꼽히던 구단주를 떠나보내고 NBA 역대 최대 인수금액인 20억 달러를 팀에 뿌리면서 농구를 사랑하고 팀을 사랑한다며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정 반대의 구단주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세미파이널 상대는 멤피스를 물리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로 결정되었다. 골든스테이트전에서 대활약하던 디안드레 조던이 오클라호마의 몸빵 좋은 빅맨들에게 막혀 존재감이 사라졌고, 멤피스하고는 달리 케빈 듀란트와 러셀 웨스트브룩을 막을만한 수비수가 없었던 클리퍼스는 2-4로 패배하면서 이번에도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 실패한다. 5차전 마지막에 104-102일때 폴이 웨스트브룩에게 파울을 해서 자유투 3개를 헌납해 역전패했는데, 그 직전에 클리퍼스 입장에서 석연찮은 판정이 나왔기 때문에 팬들은 불평을 터트리기도 했다.
4.4. 2014-15 시즌
새로운 클리퍼스 구단주 공식 발표일의 스티브 발머 |
골든스테이트가 독주하면서 퍼시픽 디비전 리더 자리는 내줬고, 시즌 초에 어정쩡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하위시드까지 떨어졌다. 그리핀이 장기결장을 하게 되면서 위기가 찾아오는 듯 했지만 폴과 디조던, 레딕 등의 분전 덕분에 오히려 순위는 상승, 4위까지는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올라왔다. 그리핀 복귀 이후에는 14승 2패로 신나게 달리며 56승 26패를 기록, 서부 3위를 차지한 건 좋았는데 1라운드 상대가 전반기에 부진하다가 후반기에 미친듯이 치고 올라온 전 시즌 우승팀 샌안토니오 스퍼스.(…)
하지만 플레이오프 1라운드, 역대급 명승부를 찍어내며 7차전까지 간 끝에 샌안토니오를 잡고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 진출하는 데 성공한다. 7차전을 제외하고는 매 경기 3점 난조에 시달리고, 얇은 벤치진과 판정 문제등으로 고전했지만 폴과 그리핀이 멱살을 끌고 가며 캐리했다. 특히 현지시간 5월 2일 있었던 7차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입고 뜀에도 기어이 팀을 승리로 이끌어 낸 크리스 폴의 모습은 눈물없이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세미파이널에서 휴스턴 로키츠와 만나 4차전까지 3-1로 앞서나가며 창단 이후 처음으로 컨파에 진출하는 듯 했으나...이후 거짓말처럼 3연패를 당하며 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 대패로 지금 클리퍼스의 분위기는 개판이 되고있다. espn first take에서 전문가들은 NBA 역사상 가장 수치스럽고 어이없는 패배라고... 그리고 클리퍼스의 막장행보 때문에 한 전문가는 레이커스팬들은 오히려 클리퍼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거라 하더라, 플옵도 진출 못한 팀보다 이렇게 패배를 당한게 더 쪽팔린다고 하였다. 심지어 매직 존슨은 트위터에 대놓고 디스했다.
4.5. 2015-16 시즌
맷 반스를 내보내고 3번 포지션에 폴 피어스를 채워넣었으나, 우려대로 디조던이 댈러스 매버릭스로 간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러나 계약 성사 직전에 마음을 돌려놓아 간신히 잔류시키는데 성공. 문제는 정식으로 사인을 안했을 뿐이지 댈러스와 계약한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거나 마찬가지인 모양새가 되어 맹비난이 쏟아졌다. 조던이 나갈 때까지만 해도 센터포지션에 대책이 전혀 없어 상당한 전력 약화가 예상되었으나, 어찌됐든 조던이 돌아오고 파블로 프리지오니와 랜스 스티븐슨과 조쉬 스미스까지 합류하며 오히려 전력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조던 계약 건과 감독인 닥리버스가 인터뷰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우승을 운좋은우승이라고 말하는등 워낙 진상짓을 저지른 탓에 안티도 많이 양산되었다..프리시즌 너겟츠전에서 뇌조던이 자유투 2개를 연속 성공(!) 하는둥, 프리시즌 3승 3패로 무난하게 시작하였다. 레귤러 시즌에 들어가서 디 조던 매치라 불리는 매버릭스전에서 104-88로 제대로 터는 모습을 보여주며 안정화가 되는 모습을 보인다. 강화된 전력을 바탕으로 한국 시간 10월 31일까지 2승 0패로 좋은 시작을 끊었다. 이 모습만 계속 보여준다면 플레이 오프 진출은 껌 씹듯 쉽게 갈거라는 예상이 된다.
그런데 11월 12일 댈러스홈에서 열린 디조던매치 2차전에
그러나 이후 블레이크 그리핀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2016년 1월 15일 현재 10연승을 달리고 있다. 이번 시즌에 한정하여 골든스테이트에 이어 샌안토니오와 같이 10연승을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야심차게 영입한 조쉬 스미스와 랜스 스티븐슨을 모두 내보내며 팀 구성에 미스가 있었다는 걸 인정한 꼴이 되었지만, 꾸역꾸역 이기면서 서부 4위를 유지중이다.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53승 29패 서부 4위.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는 서부 5위인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2차전을 잡고 쉽게 올라가는 듯 했지만 3차전을 내준 뒤 4차전에서 핵심전력인 폴과 그리핀이 부상을 당해 경기를 못뛰게 되는 대참사가 발생, 그대로 남은 경기를 모조리 내주며 어이없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4.6. 2016-17 시즌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시즌. 클리퍼스의 중심인 크리스 폴X블레이크 그리핀 듀오는 16-17시즌이 끝나면 FA가 된다.프리시즌이 시작 되어 첫 경기는 서부 컨퍼런스 최강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경기를 치렀으나 75-120으로 대패했다. 이 후 토론토 랩터스와 경기를 치러 98-104로 승리했으나 클리퍼스의 최대 문제인 후반쿼터에서 힘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경기에서도 2점차로 패배했으나 아직 정규시즌이 아닌 프리시즌이고, 여러모로 주전과 벤치를 골고루 돌려가며 시험해보는 중인 듯 하다. 크리스 폴X블레이크 그리핀 듀오는 모두 28분 미만으로 출전시간을 가져갔다.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아슬아슬하게 1점차로 승리했다. 역시 후반 쿼터의 부진이 큰 문제로 작용하였다.
유타 재즈와의 프리시즌 두번째 경기는 그야말로 광탈. 104-78로 처참하게 패배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크리스 폴X블레이크 그리핀 듀오가 모두 기용되지 않은 경기로 그 외의 선수들의 생산력을 시험해본 경기이다. 그러나 역시 클리퍼스의 두번째 약점인 너무나도 부실한 벤치진이 별 활약을 못하면서 26점차로 완전히 패배했다.
프리시즌 마지막 경기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경기에서 89-92로 승리했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경기이다. 물론 아직 프리시즌이라고 변명을 할 순 있지만 전체적으로 전반쿼터는 쿼터당 25+ 득점을 꾸준히 했지만 후반쿼터에 들어서자 4쿼터에 13득점 밖에 못하였다. 물론 주전들이 모두 30분 이상 뛰진 않았지만 이쯤 되면 클리퍼스의 벤치진이 너무너무 약하다는게 드러난다.
그리고 10월 28일 NBA개막이후 첫 정규 시즌 경기를 가졌다! 상대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승리를 거뒀다.
크리스 폴, 블레이크 그리핀이 30분 이상 기용되자 전반, 후반 쿼터가 비교적 평이한 쿼터당 득점을 기록했다. 1쿼터 28점, 2쿼터 30점, 3쿼터 24점, 4쿼터 28점. 이 날 블레이크 그리핀은 27득점 12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 했다. 그리고 JJ 레딕과 자말 크로포드의 개난사로 조금 위험했으나 어찌저찌 다시 위기를 모면하며 승리를 쟁취했다. 또한 모리스 스페이츠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이적 후 매우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기에 안심이지만, 그 외의 벤치자원은 영.. 쓸만하다고 보기에 힘들다. 모리스 스페이츠[33]를 제외한 벤치의 득점은 30점이다. 그런데 그 30점 중 자말 크로포드는 25분을 뛰며 15점을 낸 것이다. 주석을 참조해보면 스페이츠와 크로포드의 효율성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특히나 닥 리버스의 아들 오스틴 리버스는 26분동안 8득점 밖에 못하는 비효율의 끝을 보여주었다.
10월 30일 유타 재즈와의 경기에서 75-88로 승리, 이번엔 반대로 벤치진에서 화력포가 터졌다. 모리스 스페이츠의 침묵이 있었지만 갑자기 효도를 시작한 어스틴 리버스의 활약이 컸다.
11월 1일 피닉스 선즈와의 경기에서 116-98로 승리하였다. 주전, 벤치고 할거 없이 모두 훌륭한 활약을 펼쳤기에 꽤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블레이크 그리핀은 21득점, 11리바운드, 5어시스트, 디안드레 조던은 19득점, 11리바운드, 2블록슛을 보여주며 더블더블을 이루었다. 그 외에도 크리스 폴도 24득점 8어시스트로 팀의 승리를 진두지휘 했다. 3쿼터 때 잠시 주춤한거 빼면 역시 똑같은 페이스였다. 주전라인업이 괴물같이 상대를 찢어놓고 나면 벤치들이 그 상처가 아물지 못하게 최선을 다하는 중!
무엇보다 벤치진의 야투율이 어느정도 향상된 경기로 평가된다. 그러나 벤치의 득점은 상당히(...) 저조하다. 뭐 벤치진이니 어쩔 수 없지만. 라고 하지만 사실 주전이나 벤치진이나 둘다 많이 던지고 많이 놓치고 많이 넣었다. 난사퍼스였다.
11월 2일 케빈 듀란트가 빠진 오클라호마 시티 선더와의 홈경기에서 83-85로 패배했다. 일단 주전멤버인 블레이크 그리핀의 야투 난조가 심각했고, 팀의 전문 슈터 JJ 레딕도 심한 야투난조를 보였다. 오히려 벤치 멤버인 모리스 스페이츠가 야투율 60%를 넘는 (...) 기록을 내며 그리핀과 같은 득점을 올렸다.[34] 물론 둘의 스타일이 확실히 다르기에 자세히는 알 수 없는 부분. 무엇보다 듀란튤라가 빠진 선더에게 패배했다는 점은 클리퍼스의 부진을 보여준다. 빈약한 벤치, 후반전 뒷심의 모자람
그러나 11월 4일~11월 5일 멤피스 그리즐리스-샌안토니오 스퍼스 백투백 원정에서 승리를 거뒀다. 특히 우승후보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상대로 벤치멤버들의 좋은 경기력과 함께 원정에서 116-92로 대승을 거두어 많은 클리퍼스 팬들이 기대하게 만들었다. 염용근 기자는 이제 더이상 벤치는 구멍이 아니라고 호평을 하였다!
연승을 계속하며 이전의 클리퍼스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특히 쿼터당 득점이 30점으로 상승하여 미친듯한 득점력을 자랑하고 있다. 15일 기준 10승 1패로 서부컨퍼런스 1위를 당당히 기록하였다!
평균 실점 90.6을 기록하며 아주 좋은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정말 이대로의 모습만 보인다면 클리퍼스 팬들은 정말 기쁠 것 같다.
브루클린 네츠를 제물로 리그 7연승을 달성했다. 현재 리그 전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후 11월 21일 토론토 랩터스를 홈에서, 11월 23일 댈러스 매버릭스를 원정에서 연파했지만 11월 25일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11월 27일 인디애나 페이서스 원정에서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연패를 당했다. 특히 인디애나와의 경기는 전반전에만 14턴오버를 범하고 전체득점이 겨우 70점에 그친 졸전이었다.
11월 29일 브루클린 네츠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블레이크 그리핀에게 휴식을 줬고 3쿼터까지 13점차 리드로 잘 이끌어나가다가 4쿼터에 급격한 집중력 저하와 함께 따라잡히며 결국 2차 연장전끝에 패배하며 3연패를 당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안좋아진 상태에 12월 1일 디펜딩 챔피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원정을 맞이해서 부담이 있었지만 의외로 110-94로 깔끔한 완승을 거뒀다.
12월 2일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원정에서 JJ 레딕에게 휴식을 줬고 114-96 승리를 거두며 원정 6연전을 3승 3패 반타작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12월 4일 홈으로 돌아왔지만 인디애나 페이서스에게 또한번 부진한 경기력끝에 102-111로 패배했다. 다음 상대가 올스타급의 무시무시한 라인업을 꾸려 우승후보 1순위로 평가받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라 이틀의 휴식기간 동안 정비가 필요할듯하다. 그러나 12월 6일 골든스테이트에게 홈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이후 6승 1패로 분위기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크리스 폴과 블레이크 그리핀이 부상을 당하며 댈러스 매버릭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게 연패하여 2016년 12월 25일 기준 22승 10패 서부 4위를 마크하고 있다. 그리고 JJ 레딕까지 부상당하여 상황은 더욱 나빠져서 이런 부상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6연패를 기록하며 2016년을 22승 14패 서부 7위로 마쳤다.
하지만 2017년 들어서 폴과 레딕이 복귀에 성공하면서 최근에는 다시 6연승을 기록, 28승 14패를 기록하고 있다. 순위 역시 서부 컨퍼런스 4위를 다시 회복했다. 여기에 1월 말이나 2월 초에는 블레이크 그리핀까지 돌아오는 아직 충분히 반등할 기회가 있다. 문제는 언제까지나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여부. 이미 크리스 폴이 팬들 사이에서 그그컨(그래서 그분 컨파는?)이라는 치욕적인 별명으로 불리는 와중에 사실상 폴에게나 클리퍼스에게나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2017년 1월 16일 크리스 폴이 오클라호마와의 경기에서 왼쪽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6~8주 결장이 확정되며 또다시 암운이 드리워졌다.
후반기 성적은 9승 10패로 좋지 않다. 특히 2017년 3월 26일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홈 경기에서 종료 5분전 18점차 리드를 날려버리는 참사를 겪었다.
다행히 이후 5연승을 달리며 2017년 4월 8일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원정에서 잡고 49승 31패로 서부 4위에 오르며 최소 플레이오프 5번시드를 확보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도 유타 재즈로 결정되었으며, 상대전적에서 앞서기에 홈코트 어드밴티지 경쟁에서 유리할 전망이다. 결국 홈에서 휴스턴과 새크라멘토를 잡고 7연승에 51승 31패 서부 4위로 정규시즌을 마감했다. 유타와의 시리즈 홈코트 어드밴티지도 확정.
그러나 유타와의 시리즈에서 유타는 루디 고베어가 1차전에 부상을 당해 4차전부터 복귀했고, 클리퍼스는 블레이크 그리핀이 3차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는 피눈물 나는 혈전끝에 크리스 폴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결국 7차전 승부에서 패배하며 이번에도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원정에서 2승 1패를 기록했으나 홈에서 1승 3패를 당하며 어드밴티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5. 리툴링
5.1. 2017-18 시즌
팀 전력에 대대적인 변화가 생길 수도 있는 시즌이다. 일단 6년동안 클리퍼스 최초의 전성기인 '랍 시티'를 이끈 크리스 폴X블레이크 그리핀 듀오가 FA 시장에 나설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클리퍼스에게는 대단한 압박일 듯.그리고 FA시장을 앞두고 크리스 폴이 옵트 인 뒤에 휴스턴 로키츠로 트레이드 이적하는 빅딜이 일어났다. 이럼으로써 클리퍼스는 6년동안 이어지던 크리스 폴X블레이크 그리핀 듀오의 시대가 끝이 나고 말았다. 그 결과 클리퍼스는 크리스 폴의 트레이드 대가로 루 윌리엄스, 패트릭 베벌리, 샘 데커 ,몬트레즐 하렐등 8명(!)과 1라운드픽 1장을 얻었다.
이후 애틀란타 호크스, 덴버 너기츠 와의 삼각트레이드를 통해식스맨
그리고 주전 슈팅가드였던 JJ 레딕은 FA를 통해 필라델피아로 이적하게 되었다. 연이은 가드들의 이탈로 공석이 된 포인트가드 자리는 유럽 최고의 가드인 밀로스 테오도시치를 영입하며 기대를 높이고있다. 백업 센터를 구하는 중이며 폴이 나갔지만 오히려 상당한 백업뎁스와 알찬 영입으로 오히려 전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이 들릴 정도이다. 여러가지로 새로운 기대감을 갖게하는 시즌이다.
다만 스타들이 서부 컨퍼런스로 몰리면서 서부팀들의 전력이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되었고, 폴의 공백이 클거라 예상된 탓인지 전문가들의 평가는 그렇게 높지 않다. 현지에서는 플레이오프 막차를 두고 경쟁할 것이라 보고 있으므로,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팀의 진정한 '더 맨'으로 거듭난 그리핀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첫 두경기(LA 레이커스, 피닉스 선즈)와의 경기를 4쿼터 가비지를 만들면서 관광시키면서 폴이 나갔으나 경기력은 더 좋아졌다는 평을 받는중, 하지만 레이커스, 선즈 다 하위권 확정인 팀이라 진짜는 유타 재즈와의 경기부터가 될 전망이다.
10월 25일 - 유타와의 경기에서 3경기 초반부분 벌린 점수차를 유지하면서 무난하게 승리하였다.
10월 27일 - 포틀랜드와의 경기에서 2쿼터까지 무난한 점수차를 유지하다 3-4쿼터 혼전 상황에서 루 윌리엄스의 분전과 4쿼터 패트릭 베벌리와 마지막 3점 버저비터를 쏜 블레이크 그리핀의 활약으로 104-103으로 승리하며 4전 전승을 달린다.
10월 29일 - 디트로이트와의 홈경기에서 효도왕 리버스의 분전(3P 6개 20점)에도 불구하고 패배하며 첫 패배를 당했다
10월 31일 - 그리고 천적관계인( 최근 11경기 연속패배) 골든스테이트에게 113-141로 졌다. 이로써 2연패
12월 3일 현재 기준으로 주전 5명 중 베벌리(시즌 아웃), 테오도시치, 갈리나리가 부상으로 없는 상황에서 그리핀 마저 장기 결장 확정(최소 2달)으로 시즌 자체의 전망이 망가진 상황으로, 디안드레 조던의 트레이드설이 나오고 있는 현황이다.
12월 24일 현재 서부 10위인데도
그 후에도 휴스턴을 상대로 승리하여 5연승을 달리는 중이다.
한편 양 팀간의 거친 몸싸움이 벌어진데다 블레이크 그리핀이 경기 막판에 퇴장까지 당하는 치열한 경기로 끝나서, 경기가 끝나고 휴스턴 선수들의 라커룸 침입 문제가 생겼다. 이 살벌한 분위기 때문에 양측의 충돌을 막기위해 LAPD가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경기 후 양 팀간의 분쟁 때문에 경찰이 출동한 건 전대미문의 사태여서, 해당 소식을 들은 찰스 바클리와 샤킬 오닐이 TNT의 Inside The NBA 쇼에서 포복절도 했을 정도이다.
2018년 1월 30일 클리퍼스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블레이크 그리핀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넘기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하였다. 클리퍼스는 그리핀을 필두로 센터 윌리 리드, 포워드 브라이스 존슨을 건넸다. 이에 디트로이트는 가드 에이브리 브래들리, 포워드 토바이어스 해리스, 센터 보반 마리야노비치, 향후 1라운드 티켓(보호), 2019 2라운드 티켓을 넘겼다. 그리핀 본인도 이 트레이드를 SNS를 통해 알았다며 경악한 모습을 보였을 정도로 충격적인 트레이드였다. 이번 트레이드 이후 시즌 후 계약 만료인 루 윌리엄스와 플레이어 옵션을 가진 디안드레 조던 등 주요 전력의 트레이드와 리툴링의 시작이 점쳐졌으나 두 선수 모두 팀에 남았고, 특히 윌리엄스와는 새로운 3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블레이크 그리핀을 영입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는 후반기 이후 계속되는 하락세로 포스트시즌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에 비해 클리퍼스는 영입한 선수들이 괜찮게 해주고 있는데다 3위와 겨우 2.5경기차(!)인 9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 밑에 유타까지 따라오고 있어 3월 3일 3위~10위 경기차가 단 4경기차인 역대급 헬게이트가 열렸다. 참고로 경쟁팀은 포틀랜드, 덴버, 샌안토니오, 미네소타, 뉴올리언스, 오클라호마인데 어느 팀이더라도 한번 삐끗하면 이제 장담을 못한다. 그러나 결국 부상선수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2경기를 남기고 여전히 5위 경쟁중인 뉴올리언즈, 샌안토니오, 오클라호마, 덴버, 미네소타에 밀려 인디애나에 패배하며 5할 이상의 승률 + 디비전 2위 + 디비전 12승 3패를 기록하고도 10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8년 NBA 드래프트 로터리 추첨을 통해 12번픽[35][36]과 13번픽을 받았다. 현 상황을 감안하면 픽업을 하는데 주로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5.2. 2018-19 시즌
오프시즌 때 센터 디안드레 조던이 댈러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 결과 조던이 떠난 센터 자리에는 워싱턴의 베테랑 빅맨 마르친 고탓을 오스틴 리버스와 트레이드하여 채우면서 부자간의 이별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2015년부터 2년간 클리퍼스에서 뛰었던 룩 음바 아 무테와 단년 계약을 맺으면서 재회하게 되었다.코비가 아킬레스건을 다친 이후 암흑기가 찾아온 레이커스가 르브론 제임스를 영입하면서 LA의 농구인기가 오랜만에 클리퍼스에서 레이커스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레이커스가 성적이나 역사가 훨씬 긴 만큼 겨우 끌어올린 인기를 유지하고 LA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단도 노력을 해야 한다.
개막전 덴버에 홈에서 패했지만, 시즌 초반 전시즌 정규 시즌 1위팀 휴스턴과의 두 경기를 모두 승리하는 등 4승 2패로 시즌을 나쁘지 않게 시작하고 있다. 상위권 경쟁 중인 멤피스(홈), 포틀랜드(원정)는 물론 골든스테이트(홈)까지 침몰시키며 올스타 출신 선수가 로스터에 전무하며 별다른 전력 보강이 없었음에도 전 시즌 부상 악령으로 쓰러졌던 선수들이 모두 건강하게 뛰며 두터운 뎁스와 조직적인 팀플레이를 보여 주고 있다. 12월 4일 현재 서부 14위 유타가 무려 동부 컨퍼런스 9위 워싱턴보다 승률이 높은 11승 13패(!)를 하는 역대급 헬게이트가 열렸음에도 덴버와 함께 공동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올스타급 선수의 부재라는 한계때문에 중위권으로 내려가고, 미래를 바라보고 토바이어스 해리스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트레이드시킨다. 그래도 일단 전반기는 32승 27패 서부 8위로 끝마쳤다. 9위 새크라멘토와는 1게임차. 그리고 올스타브레이크 이후에도 물이 오른 루윌-하렐의 투맨게임이 빛을 발하고 트레이드로 합류한 롤플레이어들도 쏠쏠히 활약해주며 트레이드 직후의 예상과 달리 플레이오프 가능성을 더 높여가고 있다. 그리고 새크라멘토 킹스를 스윕하여 타이브레이커를 획득했고, 3월 5일 LA 레이커스를 박살내면서(레이커스전 원정 5연승) 10위 레이커스-8위 샌안토니오간 경기차를 5.5경기차로 늘렸다. 이로써 18경기가 남은 레이커스의 가능성을 1% 미만으로 떨어뜨렸다. 3월 성적을 무려 12승 1패를 찍으면서 45승 30패를 기록하며 3월 26일 서부 팀들 중 다섯 번째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시즌 시작 전 ESPN과 찰스 바클리는 클리퍼스의 시즌 33승과 플레이오프 탈락을 예상했지만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은 큰 성과를 거뒀다. 반면 레이커스는 6년 연속 플레이오프 탈락. 결국 LA맹주는 이번에도 클리퍼스가 되었다.
최종성적 48승 34패 서부 8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1라운드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13-14 시즌 이후 5시즌만에 플레이오프에서 대결하게 되었다.
오라클 아레나에서의 1라운드 1차전은 104-121로 패배했지만, 2차전에서는 NBA 플레이오프 역사상 가장 큰 점수차의 경기를 역전[37]하는 길이길이 남을 명승부를 연출하며 135-131로 승리했다. 3차전 대패 후, 4차전은 석패했지만, 5차전에서 오라클 아레나에서 골든스테이트에 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6차전에서, 기본 전력차를 이기지 못하고 홈에서 19점차로 크게 패해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또다시 1라 탈락으로 끝났지만 이전과는 달리 꽤 긍정적인 시즌으로 볼 수 있는데, 별다른 슈퍼스타 없이도 헬서부 플옵에 진출한데다 서부 1위팀인 골든스테이트를 상대로 기대 이상의 저력을 보여주었기 때문.
가장 중요한 건 기존 에이스인 루윌-헤럴을 엄청난 염가계약으로 묶어놓은 덕에 다음시즌 확정 샐러리가 49밀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이렇다 할 전력누수 없이 슈퍼스타급 선수를 포함한 자원들을 여유롭게 영입할 수 있다는 소리. 현재의 전력에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의 호성적을 거둔 와중에[38] 눈앞의 전망도 밝다. 할만큼 했으니 이제 어떤 FA를 데려올지가 중요한 상황.
6. 카와이 레너드·폴 조지 듀오 시대
6.1. 2019-20 시즌
자세한 내용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2019-20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 |
6.2. 2020-21 시즌
자세한 내용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2020-21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 |
6.3. 2021-22 시즌
자세한 내용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2021-22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 |
6.4. 2022-23 시즌
자세한 내용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2022-23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 |
7. 카와이 레너드·폴 조지·제임스 하든 빅3 결성
7.1. 2023-24 시즌
자세한 내용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2023-24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8. 카와이 레너드·제임스 하든 듀오 시대
8.1. 2024-25 시즌
자세한 내용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2024-25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1] 1964년에 창업주 할랜드 샌더스로부터 KFC를 사들여 전국구급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로 끌어올린 걸로 제일 유명하다.[2] 없었던 것은 아니고 NBA 자체가 인기가 너무 없어서 중계권이 팔리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1964년부터 1973년까지 NBA 자체의 독점중계권을 갖고 있었던 것은 ABC였는데, 60년대에는 일요일 오후 경기만 중계될 정도였다. 실제로 사상 최초로 파이널 시리즈의 모든 경기가 방송된 것은 1970년이었는데, 그전까지는 주중 경기라면 파이널 경기도 중계가 안됐다는 소리다. NBA파이널조차 이 정도인데 비인기팀인 버펄로 브레이브스의 중계권이 팔릴 리가 만무했으며, TV중계도 안되는 경기에 광고를 하려는 광고주가 있을리도 없다. 당시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던 것은 NBA가 아닌 대학농구였으며, 7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의 광팬이었지만 NBA는 관심도 없었다.[3] 밥 쿠지의 홀리크로스 칼리지 시절 선배로, 1949년부터 1년여를 보스턴 셀틱스에서 뛴 뒤 1955~1969, 1981~1985년까지 두 차례 프로비던스 칼리지의 감독을 맡아 레니 윌킨스, 조니 이건, 존 톰슨, 지미 워커, 짐 라라내가, 오티스 도프, 빌리 도노반 등을 발굴해냈으며 1969~1971년까지 콩라인 시절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감독을 맡았다.[4] 미국의 유명한 독립영화 제작자.[5] 사실 그는 보스턴에 싫증을 느껴 자신의 본거지인 로스엔젤레스로 연고이전하려 했으나 셀틱스에 주주 그룹이라는 장벽이 있고, 더구나 NBA 최다 우승팀이라는 자존심도 있고 라이벌인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영역이 겹친다는 점 때문에 자구책으로 마련한 것이다. 이를 제안한 사람은 당시 NBA 경영 고문이자 변호사로 재직했던 데이비드 스턴이었다.[6] 이후 존 Y. 브라운은 셀틱스 구단주가 되었지만, 그가 구단 내의 실세인 레드 아워백 단장 겸 사장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멋대로 브레이브스로부터 빌리 나이트 등 선수 몇 명을 싸게 영입했다. 이에 아워백 사장은 뉴욕 닉스로 옮기려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팀을 떠나는 대신 브라운 구단주의 퇴진 운동을 벌이자, 그는 결국 구단주 자리에서 1시즌도 못 되어 쫓겨나게 된다. 이후 그는 켄터키 주지사를 4년간 지냈다.[7] 초기 로고 모양에서 보듯이 범선의 일종인 클리퍼에서 따왔다. 항구도시인 샌디에이고에 맞춘 이름이다.[8] 사실 스털링이 클리퍼스를 구입한 계기는 당시 LA 레이커스 구단주였던 제리 버스(1933~2013)의 제안 때문이었다.[9] 매직 존슨 이전 LA 레이커스의 주전 포인트가드였다.[10] 1992/93 시즌에 댈러스 매버릭스가 11승밖에 못 찍어서 기록이 깨졌다.[11] 패트릭 유잉의 2년 후배다.[12] 팀 상황 외에 매닝처럼 페리와 포지션이 겹친 선수들이 우글댄 것도 한몫한다.[13] ABA 선수 출신이던 월트 피아코스키의 아들.[14] 당시 이름은 브라이언 윌리엄스로, 1998년에 해당 이름으로 개명함.[15] 풀네임은 찰스 코넬리어스 스미스로, 1975년생이며 선배 찰스 스미스(1965년생)와는 동명이인이다.[16] 어릴 적 영국 런던으로 이민갔으나, 2004년 국적 취득 당시 영국 국적은 안 땄다.[17] 얼마 안 가 웨이버 공시 후 댈러스 매버릭스로 떠났다.[18] 그는 얼마 안가 불스에서 토론토를 거쳐 클리블랜드로 갔다.[19] 이후 웨이버 공시.[20] 2004/05 시즌에 기량발전상을 받았으나 시즌 후 밀워키 벅스로 튀었다.[21] 2011년 1라운드 드래프트 픽도 함께 줘버렸다.[22] 여기서 lob은 '높이 솟구쳐 던진다'는 뜻의 영어 단어로, 던져주는 공을 으레 엘리웁한다는 팀의 특성에서 유래한다.[23] 90년대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주전 SG 출신. 시카고 불스의 전임 감독이기도 하다.[24] 사실 이 선수도 오돔과 똑같이 클리퍼스에서 데뷔한뒤 10년만에 돌아온 선수이다.[25] 카림 압둘자바와 매직 존슨이 이끌던 1980년대 레이커스의 별명. 속공과 화려한 패싱, 센터 중심의 막강 수비 등을 앞세운 유기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26] 스털링의 연인이 매직 존슨 그리고 맷 켐프와 찍은 사진을 보고 "앞으로 내 경기장에서 흑인은 OUT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흑인들과 찍은 사진 다 지워라."라는 발언을 했다.[27] 닥 리버스 감독 역시 흑인이다.[28] 시애틀로 클리퍼스를 옮긴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발머는 클리퍼스를 시애틀로 옮길 계획은 없다고 했다. 사실 시애틀하고 로스엔젤레스는 비행기로 3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니 (게다가 직항 비행기 표도 넘쳐난다.) 굳이 옮길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29] 여담으로 단순 농구팬뿐만이 아닌 네이버칼럼, 오늘의 NBA의 염용근은 본인의 칼럼 제목을 이날 디르크 노비츠키의 정의라고 적었고 마찬가지로 팟캐스트를 진행중인 월간 점프볼의 손대범편집장과 루키의 조현일편집장또한 이날 경기를 정의매치라고 말했다.[30] 현재 덴버 너게츠가 6승 8패로 뒤에 바짝 붙어있다. 꼭 특정팀을 떠나서도 언제 어떤팀이 급부상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분위기상 무너지고있는 현상황에선 대위기인 셈.[31] 이부분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라는 팀의 위엄이기도하지만 클리퍼스의 뒷심부족을 나타내기도한다. 1,2,3쿼터~4쿼터 초반까지만해도 절대 내줄것같지 않던 분위기였지만 마지막 5분동안 에너지와 집중력부족으로 결국 패배했기때문. 농구는 오래 이기고 있을 필요 없습니다 마지막에 이기면 됩니다. 엄청난 경기력을 보이며 게임을 지탱하던 크리스 폴이 마지막 중요한순간에 체력저하와 부상으로 야투가 잠잠해졌던것이 뼈아팠다.[32] 데미안 릴라드가 블레이크 그리핀을 막고있는 미스매치 상황임에도 그리핀이 득점에 실패하고 오펜스 파울까지 불렸을정도로 4쿼터 후반 경기력저하가 심했다. 여담으로 그리핀은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에서도 커리와 탐슨이 번갈아막았을 때 더블팀을 의식했던건지 단지 망설였던건지 공격에서 버벅대는 모습을 보여 팬들의 속을 애타게한적이있는데 그래서인지 이전부터 가끔 얘기 되었던 새가슴 논란이 더욱 불거졌다.[33] 이 날 모리스 스페이츠는 15분 뛰고 15점을 기록했으며 8번의 야투 시도, 50%의 슛 성공률을 보였으며 3점 야투는 3번중 2번을 성공 시키며 66.6%의 3점 야투 성공률과 7개 중 5개의 자유투를 적립하는 기록을 했다. 그야말로 좋은 효율성을 보이나 반면 자말 크로포드는 25분을 뛰며 15점을 기록, 12번의 슛 시도와 3번의 성공 밖에 못하고 있다. 3점은 6번 시도 끝에 1번 밖에 기록하지 못하였다. 이쯤 되면 자말 크로포드의 효율성이 정말 극악이다. 물론 나이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볼 호그 기질이 굉장히 심하면서 엄청난 비효율을 보여주기에 암울하다. 그렇다고 자말 크로포드를 기용하지 않으면 정말 클리퍼스 벤치진은 개판이 된다.[34] 이날 그리핀은 34분 동안 14점, 스페이츠는 16분 동안 14점을 냈다.[35] 그리핀을 보내는 디트로이트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1라운드픽을 획득[36] 이 픽으로 마일스 브리지스를 얻었고, 클리퍼스는 곧바로 브리지스를 직전 픽인 11번픽으로 지명된 이 선수와 트레이드한다.[37] 3쿼터 중반까지 63-94로 31점이나 뒤지고 있었다. 상대팀이 스테픈 커리를 3쿼터에 조기퇴근시켰을 정도로 패색이 짙었던 경기를 역전했다.[38] 19-20시즌 확정 샐러리가 클리퍼스보다 낮은 팀은 미칠듯한 탱킹시즌을 보내고 있는 닉스 외에는 없다. 보통 이정도로 샐러리를 비워놓은 팀은 다음 시즌을 기대하며 탱킹으로 한 해를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클리퍼스는 그 빡쎈 서부에서 완성되지 않은 전력으로도 플레이오프에 여유롭게 진출했다. 거기에 쓰리핏을 노리는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 4승 2패로 나름대로 선전했으니 팬들과 FA들에게 확실하게 어필하는데 성공한 셈. 이정도면 주어진 환경 내에서 최선의 시즌을 보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