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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텔레비전 심볼.jpg 텔레비전 | ||
입성날짜 | 2005년 6월 23일 | ||
위치 | 6834 Hollywood Blvd. | }}}}}}}}} |
로저 이버트 Roger Ebert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출생 | 1942년 6월 18일 |
미국 일리노이 주 어배너 | |
사망 | 2013년 4월 4일 (향년 71세) |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영화 평론가, 영화 각본가 |
학력 | 일리노이 대학교/어배너-섐페인 캠퍼스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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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영화 평론가. 영화 평론에 최초로 별점 시스템을 도입한 인물은 아니지만 대중화시킨 것은 로저 이버트라고 한다.# 참고로 로저 이버트는 별 4개가 만점이다.영화 평론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인물이지만 대중적으로 굉장히 재밌게 평론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1] 또 진 시스컬[2]과 86년부터 진행한 평론쇼인 At The Movies도 매우 널리 알려져 있다. 시스컬의 사망 이후로는 리처드 로퍼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2. 업적
시스컬과 이버트 |
4점 만점으로 영화에 별점 평가를 매기는데, 별점 기준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그 영화의 장르와 타깃을 고려했을 때 얼마나 효과적으로 만들어졌는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별점 4개는 주로 장르의 경계를 초월했다고 평가하는 작품에 주는 듯. 예를 들어 《2012》는 별 3개 반을 받았는데, "이 영화가 걸작인가? 아니다. 올해 최고의 작품인가? 아니다. 에머리히가 재난 영화 모음집에서 이것저것 따와서 합쳐놨는가? 그렇다. 하지만 재난 영화라는 장르에서 할만큼 했는가? 그렇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액션 영화는 액션만 좋으면 되지" 식의 입장도 아닌 것이, 100분 동안 주구장창 액션만 펼치는 《레이드: 첫 번째 습격》은 다른 평론가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별 1개 받았다.
3. 생애
1942년 6월 11일에 전기수리공인 월터 해리 이버트와 경리 애너벨 사이에서 일리노이 주 어바나에서 태어났다. 소싯적 일리노이 대학교/어배너-섐페인 캠퍼스와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1967년부터 시카고 선타임스에서 영화 평론가와 영화 담당 기자로 일하며 1975년에 영화 평론가로는 최초로 퓰리처상 평론 부문을 수상했고, 1975년부터 시카고 트리뷴 기자인 진 시스컬과 함께 방송에 진출하여 1999년 시스켈이 사망할 때까지 콤비로 활발히 활동했다.1999년에 시스켈이 뇌종양으로 사망한 뒤 리처드 로퍼와 함께 활발히 활동하다 2002년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기 시작하여 2003년과 2006년에 두 차례 암이 재발하여 투병생활을 시작했고, 특히 2006년에 침샘암으로 1차 수술을 받을 당시 종아리뼈와 어깨의 일부 조직을 떼어 인공 턱뼈를 만들어 호전되나 싶었지만, 불행히도 경동맥이 끊어져 호흡 곤란으로 기관지가 절제되어 말을 못하게 되었다. 당시 아래턱을 제거한 상태라서 수술 후 얼굴이 많이 달라졌고. 아예 아래턱을 스카프로 가리고 나올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평론은 글을 쓰거나 기계의 도움[4]을 빌린 목소리를 통해 계속 하는 듯.
2011년 봄 TED에서 연설을 하였다. 영화평론이나 관련경력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수술 후 다시 세상과 소통하기까지의 과정과 그를 통해 느낀 디지털 문명에 대한 통찰로만 채워진 내용이다. 크나큰 육체적 고통을 겪고도 낙천적인 자세로 저술과 소통활동을 계속하는 그의 모습이 감동을 준다.
2011년에 인공턱을 끼워 넣어 예전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근데 2012년 12월에 또 다시 엉덩이뼈에 금이 가서 입원하기도 했다. 변호사인 아내와 춤을 추다가 뼈에 금이 갔다고 한다.
2013년 4월 4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하루 전까지도 자신의 웹사이트 업데이트와 영화제를 비롯한 향후 계획에 대해 열정적인 글을 남겼다. 마지막 리뷰는 테렌스 맬릭의 《투 더 원더》.
어쩌면 후대는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스티븐 호킹이나 장도미니크 보비[5]의 경우처럼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신체의 결점을 극복하고 지적 활동을 계속한 점을 꼽을지도 모른다. 영화평론과 같은 예술, 인문분야는 그 특성상 한 사람의 업적에 대한 평가기준이 획일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그의 평론가로서의 위상에 대해서는 사실 개인의 입장에 따라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퓰리처나 칸 영화제, 그랑프리 등의 수상은 스포츠 분야의 올림픽 금메달 또는 세계 신기록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하지만 그와 학문적으로 반대편 입장에 선 사람이라도, 그가 노년기에 보여준 삶에 대한 열정에는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014년 그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Life Itself》가 개봉하였다.
영화 각본가로도 활동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컬트 영화로 유명한 러스 메이어의 '인형의 골짜기를 넘어서(Beyond the Valley of the Dolls)'다. 이 작품 말고도 러스 메이어랑 친했는지 몇몇 영화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4. 평가한 작품들
- 위대한 영화로 평가한 작품들. (접기 클릭)
- 12인의 성난 사람들
- 나라야마 부시코
- 로빈 후드의 모험
- 에이리언(영화)
- 대부 1, 대부 2
- 다크 시티
- 지옥의 묵시록
- 국가의 탄생
- 차이나타운
- 시민 케인
- Duck Amuck
- 이지 라이더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버스터 키튼의 1920년대 영화들
- 아마데우스(영화)
- 위대한 독재자
- 죠스
- 킹콩(1933)
- 마이 페어 레이디
- 메트로폴리스(영화)
- 메트로폴리스(애니메이션)
- 멀홀랜드 드라이브
- 내쉬빌(영화)
- One Froggy Evening
- What's Opera, Doc?
- 피노키오(애니메이션)
-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 싸이코(영화)
- 라쇼몽
- 스카페이스(1983년)
- 7인의 사무라이
- 샤이닝
- 슈퍼맨 1
-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 현기증
- 오즈의 마법사(영화)
- 택시 드라이버
- 멋진 인생
- 스타워즈 4
- 이웃집 토토로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블레이드 러너
- A.I.
- 콘택트(영화)
- 컴 앤 씨
- 사랑은 비를 타고
- 컬러 퍼플
- 특근
- 쇼생크 탈출
- 판의 미로
- 트리 오브 라이프
- 배리 린든 등등
참조 - 2013년에 사망한 관계로 대부분 2012년이 기준. 우선순위는 없고 모두 별 4개 만점에 별 4개 작품들이다. 2013년 3월 7일, 별 4개 준 〈나라야마 부시코〉는 사망하기 불과 28일 전에 평론한 작품이었다. 사망 하루 전까지도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자신의 영화 평론에 반대하는 다른 시네필들과 치열하게 키보드 배틀을 벌였던 진정한 시네필의 위엄이었다.
5. 여담
- 한국인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로튼토마토를 비판하는 와중에 로저 이버트를 자질이 떨어지는 평론가로 비판했다. 본인 말로는 제대로 된 절대적인 가치의 영화 평론을 보고 싶으면 레너드 말틴의 평론을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출처 실제로 이동진이 호평하는 영화와 이버트가 호평하는 영화들을 보면 많이 갈린다.[6] 하지만 비판을 하면서도 국내에 영화가 소개될 때 이버트의 평을 꼭 본다고 했다. 평 절반이 스토리 요약에 영어를 굉장히 쉽게 써 처음 접하는 외화를 이해하는데 정말 좋다고... 이어 바통을 받아 같은 한국인 영화 평론가 정성일도 로저 이버트는 평론에 소설이나 써대는 인물이라고 가루가 되도록 깠다. 이버트의 비평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이 많이 제기되는 편이다.[7] 반면 영화 평론가 듀나는 로저 이버트를 상당히 좋아하는 평론가로 꼽았다. 실제로 듀나의 영화평론은 초창기 당시 이버트의 영향을 지나치게 많이 받아 영화 팬들 사이에서 표절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 영화에 대한 다량의 지식으로 수많은 영화책을 냈다. 유명한 저서로는 《위대한 영화》 시리즈가 있다. 모두 4권이며 한국에선 2006년 을유문화사를 통해 발매됐으며 번역은 윤철희가 맡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영화 모음집도 낸 적이 있는데 표지가 은근히 귀엽다. 참고
- Nostalgia Critic이 이버트와 시스컬 헌정비디오를 만들었는데 퍼니플래닛에 자막 번역이 되어있다.
5.1. 게임과 예술에 대한 의견
2010년 4월 "비디오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없다" 라는 제목의 글을 썼는데, 이 글이 쓰인 이버트의 블로그는 물론이고 국내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찬반으로 갈려 키배가 벌어졌다. 이버트가 그저 "저급한 전자오락이 어떻게 하이컬처의 지경을 넘보냐"라는 혐오 워딩을 한 것이었다면 탐구할 여지가 없었겠지만 이버트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비디오 게임이 열등하기 때문에 예술이 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게임은 체스나 운동 경기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이전부터 게임 업계 내외에서 종종 다뤄지던 주제이기에 공감을 얻어 널리 퍼져나갔던 것이다. 불과 몇년 뒤, 8세대 콘솔 시대가 개막하며 게임 업계를 선도하는 AAA급 게임 시장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비난을 받고 있는 유사영화 장르의 게임들이 범람하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로저의 글을 선견지명으로 보는 이들도 많은 편. 게이머들은 플레이를 통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전자오락을 구매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 것이지 개발사들의 어줍잖은 '영화 따라하기'의 결과물을 원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이버트의 글은 오히려 시간이 흐르고 그의 사후에 더 많은 지지를 얻기도 하였다. 당장 라스트 오브 어스 2가 어줍잖은 예술병에 걸려서 어떻게 됐는지 잘 생각해 보자.[8]지금이야 비디오 게임은 컷신 범벅 따위로 영화를 따라하는게 아니라 오락 본연으로서 즐거움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영화에는 별 관심없는 겜덕이 이 글을 계기로 로저 이버트를 접할 경우 그를 신세대 매체(게임)에 이해가 결여된 듣보잡 보수 평론가나 틀딱 겜알못으로 알기도 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상술했다시피 로저는 절대로 모든 비디오 게임을 무시하려는 의도로 저런 글을 작성한 것이 아니었다. 이버트 본인이 해명 비슷하게 쓴 글에 따르면 본인은 Cosmology of Kyoto[9]를 매우 재밌게 플레이했으며 미스트 같은 어드벤처 게임도 플레이해봤다고 한다. 또한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우에다 후미토의 완다와 거상도 걸작에 가깝다고 칭찬했고 2007년 개최된 '할리우드 & 게임' 컨퍼런스에 나와서는 언다잉와 제리코로 유명한 클라이브 바커와 동일한 주제로 토론을 한 이력도 있다. 예시로 든 작품들을 보면 알겠지만 이버트는 절대로 비디오 게임의 가치를 평가절하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계속해서 영화의 영역에 발을 걸치려는 일부 제품들로 인해 벌어진 게이머들의 혼란에 경보를 울린 것이었다.[10]
어찌됐든 찬반 여부와는 상관없이 로저 이버트의 발언이 전세계적으로 매우 핫한 이슈가 된 것은 사실이라, 당시에 Nostalgia Critic은 이런 이버트의 견해에 반대하며 게임의 예술성을 옹호하는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이 주제에 관한 내용은 상술했다시피 잊을만하면 다뤄지던 것이기에 나무위키에도 별도 문서로 작성되었다. 게임과 예술 문서 참고.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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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예로, 호불호가 갈렸지만 평론가들은 대체로 혹평했던 스페이스 잼에는 시스컬과 이버트 둘 다 후한 점수를 매겼다.[2] 사후 2001년 시카고에 있던 시네마테크 시카고 예술대학 필름센터가 진 시스컬 필름 센터로 명명되었다.[3] 대표적으로 《고질라》에 등장하는 시장과 부시장 콤비. At The Movies에서 이 영화를 평가할 당시, 시스컬은 영화 자체는 물론 자신들을 패러디한 장면도 유치하다고 깠다. 파트너 진 시스컬은 '우리를 영화에 나오게 하려는 위험을 감수했다면, 우리가 괴물에 깔리는 장면이나 먹히는 장면 같은걸 넣지 그랬나?'라며 깠다.[4] 2009년에 스코틀랜드의 개인 TTS 제작업체 CereProc에 의뢰하여, 자신의 TV프로그램 및 DVD 코멘터리 등에 담긴 음성 데이터에서 추출한 '실제 자신의 목소리로 된' TTS 소스를 개발했다. 녹음된 음원을 사용한 최초의 경우라고 하며, 2010년 3월에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여 이것을 통해 대화를 나눴다! 게다가 이 과정을 통해 Ebert Test(TTS의 인공지능을 측정하는 그만의 척도. 아직 전문 테스터로 개발된 것이 아닌, 아이디어 수준의 개념이다. TED 영상에 보면 이 단어의 뜻이 나온다. 영문위키에도 등재되어 있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5]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 엘르 지 편집장으로 일하다 전신마비가 온 후,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왼쪽 눈꺼풀을 깜빡이는 방법으로 책 《잠수종과 나비》를 썼다.[6] 대표적인 한국 영화로 박찬욱 감독의 박쥐. 이동진은 '어느 방향에서 보든, 영화적 체험의 강렬한 극단'이라며 별 5개 만점을 준 반면 이버트는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로 철학을 잃어버렸다고 혹평했다.[7] 미국 영화 평론가 중 학술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태그 갤러거나 로빈 우드, 폴린 카엘, 조너선 로젠봄이 꼽힌다.[8] 특히 3대 플랫폼 홀더 중 소니의 플스 진영에 이러한 게임들이 많아 PC 대전 게임이 주가 되는 국내에선 루리웹으로 대표되는 플베충 이미지와 함께 안 좋은 이미지가 쌓이게 되었다. 다른 두 플랫폼 홀더에서는, 닌텐도야 말할 것도 없이 창립 시기부터 이러한 유사영화 장르의 대척점에 서 있던 회사였고, MS는 소니와 비슷한 포지셔닝을 하고 있지만 누구나 다들 알다시피 8세대 엑스박스는 망해버려서 게임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9] 원제는 교토 천년 이야기(京都千年物語). 중세시대 전쟁과 역병, 요괴출몰로 인해 황폐해진 교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퇴마사(음양사) 게임으로서 비선형적인 플레이 방식이 꽤 수준 높았고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아트 디자인과 사운드가 일품인 어드벤처 게임이다. 교토 사학자들이 참여해 발군의 고증을 자랑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도 좋아하는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10] 애초에 전자오락의 마법사를 리뷰할 때 이버트는 패미컴판 닌자 거북이를 직접 해본 적이 있어서 옥에 티를 바로 눈치챘다. 비디오 게임 업계 시장이 커지자 괜히 숟가락을 얹어 유명세를 타려 한 것도 아니었고, 근본 게이머였던 것. 거기에 이버트는 파트너인 시스켈과 같이 닌텐도 게임기를 플레이한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