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13 23:23:16

말 콜룸 3세

말콤 3세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3eaa 0%, #005eb8 30%, #005eb8 70%, #003eaa);"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픽트인의 왕
알핀 왕조
키나드 1세 돔날 1세 카우산틴 1세 아드 기리크
픽트인의 왕 알바국왕
알핀 왕조
오하드 돔날 2세 카우산틴 2세 말 콜룸 1세 일둘브
알바국왕
알핀 왕조
두브 킬렌 키나드 2세 아믈리브 키나드 2세
알핀 왕조 둔켈드 왕조 모레이 왕조
카우산틴 3세 키나드 3세 말 콜룸 2세 돈카드 1세 막 베하드
모레이 왕조 둔켈드 왕조
룰라흐 말 콜룸 3세 돔날 3세 돈카드 2세 에드가르
둔켈드 왕조
알락산더르 1세 다비드 1세 말 콜룸 4세 일리암 1세 알락산더르 2세
알바국왕 스코트인의 왕
둔켈드 왕조 스베리르 왕조 발리올 왕조 브루스 왕조
알락산더르 3세 마르그레트 로버트 1세 데이비드 2세
스코트인의 왕
발리올 왕조 브루스 왕조 스튜어트 왕조
에드워드 데이비드 2세 로버트 2세 로버트 3세 제임스 1세
스튜어트 왕조
제임스 2세 제임스 3세 제임스 4세 제임스 5세 메리 1세
제임스 6세 찰스 1세 찰스 2세 제임스 7세 메리 2세
윌리엄 2세
}}}}}}}}}}}}}}}

<colcolor=#ffffff><colbgcolor=#0065bd> 스코틀랜드 알바 왕국 국왕
말 콜룸 3세
Malcolm III
파일:말 콜룸 3세.jpg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 야코브 데 베트 2세(Jacob de Wet II)가 그린 상상화.
이름 스코틀랜드 게일어 말 콜룸 막 돈카다
(Máel Coluim mac Donnchada)
영어 맬컴 3세
(Malcolm III)
출생 1031년
사망 1093년 11월 13일 (향년 61~62세)
재위 스코틀랜드 알바 국왕
1058년 3월 17일 ~ 1093년 11월 13일
배우자 잉에보르 핀스도티르 (? 결혼/1069년 사망)
웨식스의 마거릿[1] ​(1070년 결혼/1093년 사망)
자녀 돈카드 2세, 돔날, 말 콜룸, 에드워드, 에드먼드, 에드가르, 알락산더르 1세, 마틸다[2], 메리[3], 다비드 1세
부모 돈카드 1세(던컨)
형제 돔날 3세, 멜마르

1. 개요2. 생애
2.1. 집권 이전의 생애2.2. 치세2.3. 최후
3. 가족4. 여담5. 대중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전신인 알바 왕국 제21대 국왕. 35년간 통치하면서 잉글랜드 왕국을 5차례 침공했으며, 둔켈드 왕조가 장기간 군림하는 기반을 닦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비극 멕베스에 등장하는 '맬컴 왕자'가 바로 이 인물이다.

2. 생애

2.1. 집권 이전의 생애

1031년 돈카드 1세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당대 기록에는 돈카드 1세의 아내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후대에 작성된 <스코틀랜드 왕들의 목록> 중 한 사본은 말 콜룸 3세의 어머니가 수타인(Suthen)이었다고 설명했다. 13세기에 집필된 <스코틀랜드 연대기>에 따르면, 돈카드 1세의 아내는 노섬브리아 백작 시워드의 혈족이었다고 한다. 윈튼의 앤드류가 쓴 또 다른 후대 연대기에 따르면, 돈카드 1세는 젊은 시절 사냥을 나갔다가 포르테비오트에 있는 밀러라는 사람의 집을 우연히 찾아갔고, 밀러의 환대를 받던 중 밀러의 딸과 사랑에 빠졌고, 그날 밤 그녀와 관계를 맺었다. 그녀는 나중에 뱃사공과 결혼했지만, 돈카드 1세와 하룻밤을 보내면서 말 콜룸 3세를 임신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돈카드 1세는 말 콜룸 3세를 자기 아들로 인지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윈튼의 앤드류는 말 콜룸 3세가 돈 카드 1세의 사생아로 보이게 해, 그와 아내인 잉글랜드 공주 마거릿이 새로운 왕조의 창시자로 각광받게 하려 했다고 추정한다. 형제돔날 3세, 멜마르[4]가 있었다.

1034년 11월 알바 왕위에 오른 아버지 돈카드 1세는 1040년 8월 14일 모레이로 쳐들어갔다가 보스나고완 전투에서 모레이의 모르마르[5] 막 베하드에게 패배하고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살해되었다. 그 후 막 베하드는 알바 국왕이 되었지만, 돈카드 1세의 어린 자식들은 당장 위협받지 않았다. 그러나 1045년 돈카드 1세의 아버지이며 아솔의 모르마르인 크리난이 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막 베하드가 파견한 토벌대에 의해 던켈드에서 살해되었고, 크리난의 둘째 아들이자 돈카드 1세의 동생 말드레드도 피살되었다. 돈카드 1세의 자식들은 어머니와 함께 잉글랜드 왕국으로 망명했고, 당시 잉글랜드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참회왕은 말 콜룸 3세에게 노섬브리아의 작은 영지를 수여했다.

1054년, 노섬브리아 백작 시워드가 말 콜룸 3세를 앞세워 알바 왕국으로 쳐들어갔다. 그 해 7월 27일 타이 강 북쪽 퍼스셔 지방의 던시네인 언덕에서 양군이 격돌했다. 얼스터 연대기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스코틀랜드인 3,000명과 잉글랜드인 1,500명이 전사했으며, 시워드의 아들 오스베온과 조카 시워드가 전사했다고 한다. 12세기 연대기 작가 헌팅던의 헨리에 따르면, 시워드는 승리를 거둔 뒤 알바 왕국 각지를 약탈해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했으며, 막 베하드는 시워드의 요구에 따라 말 콜룸 3세에게 땅과 지위를 줘야 했다고 한다. 말 콜룸 3세가 받은 땅이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막 베하드가 여전히 마운트 강 북쪽 지역을 통제하는 가운데 말 콜룸 3세가 포스강과 클라이드 강 남쪽 지역을 통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1057년, 말 콜룸 3세와 막 베하드간의 전쟁이 재개되었다. 그 해 8월 초, 막 베하드는 룸파난 전투에서 말 콜룸 3세에게 패배해 목숨을 잃었다. <베찬의 에언>에 따르면, 말 콜룸 3세는 룸파난 전투 며칠 후인 8월 15일에 스콘에서 남쪽으로 60마일 떨어진 지점인 케어나마운트 고개에서 부상이 악화되어 죽었다고 한다. 그 후 막 베하드의 추종자들이 막 베하드의 의붓아들인 룰라흐 막 길레 쿰가인을 새 국왕으로 옹립했다. 이는 막 베하드가 전사한 후에도 그의 추종자들이 말 콜룸 3세를 제쳐놓고 룰라흐를 왕으로 세울 만큼 여전히 강력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룰라흐의 통치는 얼마 가지 못했다. 1058년 3월 17일, 그는 스트라스보기의 라이니 인근 에시에서 말 콜룸 3세에게 피살되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포던의 존은 그가 전투 도중에 전사했다는 전승과 습격을 당해 죽었다는 전승을 밝혔으며, <티거나흐 연대기>는 그가 배신당해 죽었다고 설명했다. 이리하여 모든 경쟁자를 무찌른 말 콜룸 3세는 비로소 알바 국왕이 되었다.

2.2. 치세

1059년, 말 콜룸 3세는 글로스터에 있는 에드워드 참회왕의 궁정으로 찾아가서 요크 대주교 키네시게(Cynesige), 더럼 주교 애설와인, 노섬브리아 백작 토스티그 고드윈슨의 중재하에 에드워드 왕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그는 1061년 트위드 강과 티스 강 사이의 노섬브리아를 공략하기로 마음먹고 공세를 개시해 린디스판을 약탈했다. 이 습격은 신민들이 새 정권에 순응하도록 군공을 빨리 거둘 필요성 때문에 감행되었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버니시아 백작 고스페트릭이 경쟁자인 밤버러 가문을 약화하기 위해 말 콜룸 3세가 밤버러 가문의 영지를 침략하도록 부추겼을 거라고 주장했다. 에드워드 참회왕과 잉글랜드의 실권자인 고드윈슨 가문은 말 콜룸 3세의 침략에 대해 어떠한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오크네잉가 사가>(Orkneyinga Saga)[6]에 따르면, 말 콜룸 3세는 노르웨이 대귀족이자 올라프 1세스벤 트베스케그의 고문이었던 핀 아르나손(Finnr Árnason)의 딸이자 오크니 제도 통치자 토르핀 2세 시그르드손의 미망인인 잉에보르 핀스도티르와 결혼했다고 한다. 또한 그 다음으로 왕위에 오른 돈카드 2세는 그와 잉에보르의 아들이라고 한다. 맘스버리의 윌리엄을 비롯한 중세 잉글랜드 연대기 작가들은 돈카드 2세가 사생아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돈카드 2세와 후계자들의 왕위 계승권을 훼손하고 말 콜룸 3세와 웨식스의 마거릿 사이의 자녀들의 왕위 계승권을 옹호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다. 말 콜룸 3세는 1069년에 웨식스의 마거릿과 결혼했는데, 잉게보르는 그 이전에 죽었거나 그 즈음에 이혼했을 것이다.

말 콜룸 3세는 1065년 노섬브리아인들에게 쫓겨난 토스티그 고드윈슨에게 피난처를 제공했고, 1066년 하랄 3세 하르드라다가 토스티그와 함께 잉글랜드 왕국을 침공했을 때 지원군을 보냈다. 그러나 하랄 3세는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에서 해럴드 2세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에게 참패하고 목숨을 잃었다. 이후 해럴드 2세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노르망디 공국기욤 2세가 이끄는 노르만족 군대에게 패사하고 잉글랜드 왕국이 노르만군의 수중에 넘어갔다. 1068년, 앵글로색슨 왕족들이 알바 왕국으로 대거 망명했다. 그중에는 에드워드 참회왕의 조카 망명자 에드워드의 아들 에드거 2세, 딸 마거릿, 크리스티나, 노섬브리아 백작 고스패트릭이 있었다. 말 콜룸 3세는 이들을 후원해 노르만족이 장악한 잉글랜드 왕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이를 토대로 이득을 챙길 계획을 세웠다.

1069년 초, 에드거 2세는 말 콜룸 3세와 누나 마거릿의 혼인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복위에 대한 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이후 노섬브리아로 가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서 요크를 침공했다. 여기에 노섬브리아인들의 구원 요청을 받은 덴마크 왕 스벤 2세 에스트리드센이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공세를 개시하여 엑서터와 슈루즈베리 일대를 휩쓸었다. 요크는 곧 에드거와 스벤 2세의 연합군에게 함락되었고, 에드거 2세는 지지자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 윌리엄 1세는 이에 대응해 1069년 크리스마스에 폐허가 된 요크로 돌아와서 왕관을 썼다. 이후 그는 티스 강으로 진군하면서 농촌을 모조리 짓밟았고, 스벤 2세에게 거액의 돈을 줘서 덴마크로 도로 돌아가게 했다. 이에 추종자들이 모조리 이탈하자, 에드거 2세는 스코틀랜드로 도피했다. 윌리엄은 겨울 동안 페나인 산맥을 진군해 슈루즈베리에서 남은 반군을 격파한 뒤 체스터와 스태퍼드 성을 건설했다.

스코틀랜드로 도로 돌아온 에드거 2세는 프랑스 국왕 필리프 1세로부터 윌리엄의 대륙 근거지인 노르망디를 협공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에드거 2세는 이에 호응해 추종자들과 매형 말 콜룸 3세의 지원을 받아 무리를 이끌고 바다 건너 프랑스로 향했지만, 도중에 풍랑을 만나 잉글랜드 해안에 좌초했고, 많은 군사와 인원을 상실한 뒤 스코틀랜드로 돌아갔다. 한편, 말 콜룸 3세는 1070년 봄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트위드 강 남쪽을 약탈했다. 윌리엄 1세는 잉글랜드 북부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뒤, 말 콜룸 3세의 연이은 침략에 보복하기로 마음먹었다.

1072년, 윌리엄 1세는 알바 왕국을 침공해 알바 왕국의 중심지인 테이만에 이르렀다. 이후 에버네시에서 말 콜룸 3세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는 대가로 그가 알바 국왕으로 군림하는 걸 인정했다. 에드거 2세는 더 이상 알바 왕국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윌리엄 1세와 화해하고 그로부터 영지를 받았다. 1074~1076년 노섬브리아의 윌터오프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지만, 말 콜룸 3세는 이에 가담하지 않고 1079년까지 윌리엄 1세와 평화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1079년 9월, 말 콜룸 3세는 윌리엄 1세가 자신의 장남 로베르 2세의 반란에 대처하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잉글랜드 북부를 침공했다. 그의 군대는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3주 동안 노섬벌랜드를 약탈하고, 막대한 전리품과 많은 노예를 데리고 본국으로 귀환했다.

노섬브리아인들은 스코틀랜드의 침략에 무기력하게 당한 당국에 강한 반감을 품었다. 여기에 1080년 봄 대 집사 레오빈이 노섬브리아 출신의 고문 리굴프의 영향력이 커지는 걸 질투한 끝에 월처의 친척 길버트를 포함한 부하 2명과 함께 리굴프를 살해하자, 노섬브리아인들이 분노해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위협했다. 윌리엄 월처는 반란군과 협상하려 시도했지만, 5월 14일 게이츠헤드에서 피살당했다. 윌리엄은 바이외의 오돈을 파견해 이들을 진압하도록 했다. 오돈은 노섬브리아의 거의 모든 시골을 황폐화했고, 대다수 토착 귀족은 망명했다. 이리하여 노섬브리아에서 앵글로색슨 귀족의 권력은 완전히 무너졌다.

1080년 7월 노르망디를 떠나 런던으로 이동한 윌리엄 1세는 그해 가을 장남 로베르에게 스코틀랜드를 응징하는 원정을 이끌도록 했다. 로베르는 스코틀랜드로 진군해 로디언 일대를 황폐화한 뒤, 말 콜룸 3세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고 잉글랜드 국왕에게 복종하라고 강요했다. 말 콜룸 3세는 이에 따랐고, 이후 10여년간 잉글랜드와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한편, 말 콜룸 3세는 1078년 룰라흐 막 길레 쿰가인의 아들이자 모레이의 모르마르인 말 스네크타이가 자신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자 즉시 공격해 모레이를 완전히 공략했다. 말 스네크타이는 가족과 재산까지 모조리 빼앗기자 귀순했고, 수도원으로 은퇴해 조용히 지내다가 1085년에 사망했다.

1087년 윌리엄 1세가 사망한 뒤 차남 윌리엄 2세가 잉글랜드 국왕이 되었다. 이후 윌리엄 2세의 형 로베르 2세를 지지하는 귀족들이 윌리엄 2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말 콜룸 3세는 이들을 전혀 돕지 않고 방관하기만 했다. 그 후 반란을 진압한 윌리엄 2세는 1091년 잉글랜드에 있던 에드거 2세의 영지를 몰수했고, 에드거는 알바 왕국으로 달아났다. 그 해 5월, 말 콜룸 3세는 남쪽으로 진군해 스코틀랜드-잉글랜드 국경지대의 주요 요새인 뉴캐슬을 포위했다. 그러다가 윌리엄 2세가 9월에 군대를 이끌고 다가오자, 말 콜룸 3세는 철수했다. 윌리엄 2세는 곧바로 스코틀랜드 침공군을 조직했지만, 잉글랜드 함대가 폭풍으로 인해 흩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육군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후 평화 협약이 체결되었다. 윌리엄 2세는 말 콜룸 3세에게 헌팅던 백작령에 속한 잉글랜드 마을 12개를 양도하며, 말 콜룸 3세가 자기에게 경의를 표하는 대가로 연간 12마르크를 보내기로 했다.

2.3. 최후

1092년, 윌리엄 2세는 칼라일에 새로운 성을 세우고, 그 주변에 잉글랜드 농민을 정착했다. 말 콜룸 3세는 자기 영토에 속했다고 여기던 칼라일에 그러는 건 부당한 주권 침해라고 여기고, 윌리엄 2세에게 사절을 보내 협상을 요청했다. 윌리엄 2세는 이에 동의했고, 말 콜룸 3세는 1093년 8월 24일 글로스터에 있는 윌리머 2세의 궁정에 도착했다. 그러나 윌리엄 2세는 그를 일개 가신으로 취급하며 푸대접했으며, 칼라일의 소유권은 자신이 임의로 결정할 게 아니라 현지 귀족들이 판단해야 한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에 깊은 불만을 품은 말 콜룸 3세는 알바 왕국으로 돌아갔고, 대규모 군대를 소집했다.

1093년 10월 말, 말 콜룸 3세는 웨식스의 마거릿과의 사이에서 낳은 장남 에드워드와 3남 에드가르를 데리고 노섬브리아를 침략해 심각한 파괴와 약탈을 자행했다. 이후 안윅성을 포위했다가 곧 본국으로 귀환했다. 그러던 11월 13일, 해안가에 있는 밤버러 요새의 총독이자 노섬브리아 백작 로버트 드 모브레이가 지휘하는 소규모 잉글랜드군이 기습 공격했다. 말 콜룸 3세와 에드워드는 피살되었고, 에드가르가 군대를 간신히 수습해 돌아갔다. 말 콜룸 3세의 유해는 타인머스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에드가르로부터 남편과 장남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마거릿은 깊은 슬픔에 빠져 식사하기를 거부하다가 11월 16일에 사망했고, 던펌린에 있는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그 후 돈카드 1세의 차남이자 말 콜룸 3세의 남동생인 돔날 3세가 알바 국왕이 되었다.

1115년, 알락산더르 1세가 아버지의 유해를 발굴한 뒤 덤펌린 수도원으로 옮겨서 마거릿의 무덤 옆에 안장했다. 그러나 1580년 스코틀랜드에서 개신교 세력이 봉기를 일으켰을 때 덤펌린 수도원이 약탈당했다. 그 후 웨식스의 마거릿과 말 콜룸의 유해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에 의해 마드리드 인근의 엘 에스코리알로 옮겨졌고, 현재까지도 그곳에 보존되어 있다.

3. 가족

  • 잉에보르 핀스도티르(? ~ 1069?): 노르웨이 대귀족이자 올라프 1세스벤 트베스케그의 고문이었던 핀 아르나손(Finnr Árnason)의 딸이자 오크니 제도 통치자 토르핀 2세 시그르드손의 미망인.
    • 돈카드 2세(? ~ 1094): 1094년 5월부터 11월까지 알바 국왕 역임.
    • 돔날(? ~ 1085): 1116년 모레이인들에게 피살된 라드만(Ladhmann)의 아버지로 전해진다.
    • 말 콜룸: 1094년 돈카드 2세의 헌장에서 언급되었다.
  • 웨식스의 마거릿(1046 ~ 1093): 망명자 에드워드의 딸, 에드거 2세의 누이.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 가톨릭 전례에 따라 검소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1250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1673년 클레멘스 10세에 의해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 에드워드(? ~ 1093): 아버지 말 콜룸 3세와 함께 전장에서 사망했다.
    • 에드먼드(? ~ 1100): 1094년 삼촌 돔날 3세로부터 후계자로 지명되었지만 1097년 동생 에드가르에게 밀려났다.
    • 에드가르(1074 ~ 1107): 1097년부터 1107년까지 알바 국왕.
    • 알락산더르 1세(1080 ~ 1124): 1107년부터 1124년까지 알바 국왕.
    • 마틸다(1080 ~ 1118): 잉글랜드 국왕 헨리 1세의 왕비.
    • 메리(1082 ~ 1116): 볼로뉴 백작 외스타슈 3세의 부인.
    • 다비드 1세(1084 ~ 1153): 1124년부터 1153년까지 알바 국왕.

4. 여담

까막눈이었기에 성경은 읽지 못했다. 그래서 대신 양장본 성경에 입맞추는 것으로 경의를 표시했다고 한다.

가톨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잉글랜드 출신들을 높이 썼으며, 잉글랜드 풍습을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스코틀랜드 토착 귀족들에게는 썩 인기가 좋지 않았다고.

5. 대중매체에서

미디블2: 토탈 워에서는 시작 당시의 스코틀랜드 지도자 "국왕 맬컴"으로 등장한다.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에서 1066년 시나리오를 선택하면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 시점에 스코틀랜드를 다스리는 왕으로 있다. 파이프의 영주도 봉신으로 두고 있지만 따로 막역한 관계는 아니다. 시나리오별 추천 군주가 생긴 3편에서는 해럴드 2세하랄 3세, 윌리엄 1세와 함께 정복왕 윌리엄 관련 시나리오에서 선택할 수 있는 주역 군주들 중 한 명으로 나온다. 잉글랜드 왕위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스벤 2세와 함께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는 입장이라 난이도는 쉬운 편이다. 한편 말 콜룸 3세로 플레이하면서 봉신인 모레이 공작을 선택해 보면 부모가 사망 상태인데, 아버지의 사인이 바로 플레이어에게 살해당한 것이라는 깨알 고증이 되어 있다.


[1] 망명자 에드워드의 딸로 앨프레드 대왕의 후손이다.[2] 헨리 1세의 첫번째 왕비이자 잉글랜드의 여군주 마틸다,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애설링의 어머니.[3] 불로뉴 백작 외스타슈 3세의 아내이자 불로뉴 여백작 마틸드의 어머니.[4] ? ~ 1135년 이후, 아솔(Atholl)의 모르마르 왕조의 창시자라고 전해진다.[5] Mormaer, 중세 스코틀랜드의 지역 통치자를 지칭하는 용어[6] 오크니 제도와 셰틀랜드 섬의 역사와 노르웨이스코틀랜드를 비롯한 다른 지역 세력과의 관계를 다룬 사료.